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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상, 그래도
누구처럼 말하고 누구처럼 사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 이태석 신부같이, 데레사 수녀처럼 우리 곁에 사셨던 분들이 그리움으로 숨 쉬는 오늘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한 파울로 코엘료, 직관을 따랐을 뿐이라는 스티브 잡스,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수능 만점자까지. 그렇게 쉬운 일들이 왜 내가 손을 댔다하면 껀껀이 망하는 걸까. 바닷가 질척한 펄 아래 ‘그래도(島)’ 라는 섬이 섰습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고, 고통 받고 살다가 세상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숨이 찬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아가는 곳 입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숨길 것도 없다는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사는 섬입니다. 아름다운 섬 그래도. 섬마을 초입에 걸린 슬로건부터 철학적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는 분이 내걸었습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해준 설명은 보다 심오합니다. “사람답게 죽을 텐가, 죽은 듯이 살 텐가, 삶이란 평생의 업이로다.” 오늘은 그래도가 열린지 100일. 주민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통성명에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인생 족보에 대해선 서로가 함구해 왔지요. 오늘은 상처는 상처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살아온 인생을 털어놓고, 그래도 사람답게 살자고 만든 자리입니다. 턱수염이 짙은 운영회장이 일어나 “지금까지 돈 낳고 사람 낳다고 우겨댄 게 바로 나여” 하고 말머리를 엽니다. 당초 돈이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인데, 돈에 집착하다가 돈의 노예가 돼버린 바보가 여기 서 있다며 돈 때문에 실패한 자신을 고백합니다. 섬에서 가장 예쁜 부녀회장도 상처가 커 보입니다. 옷이란 원래 몸을 보호하려고 생겨난 건데 어쩌다 명품만 치렁치렁 감고 살다가 옷을 보호하는 치사한 여자가 되었답니다. “아무리 옷이 명품이고 화려하면 뭘 해요 저녁엔 다 벗어야 하는 데.” 사치하다 탈난 여자의 변입니다. 이런 남자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려고 집을 지었는데, 집에 환장한 사람처럼 집에다 처바르고 비까번쩍 치장했더니, 뭐야! 내가 집을 지키는 개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가 거꾸로 생각의 노예가 됐다는 생각장이 40대. 핸드폰 충전은 열심히 하면서 진짜 인생은 충전하지 못했다는 30대 고백이 이채롭습니다. 많은 걸 쟁여만 두었지 한 푼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갈 날을 기다리는 현대인이 나라는 60대 말기암 남자의 얘기는 주위를 숙연하게 합니다. 오지도 않은 노후대책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잃고, 구제받지 못할 희귀성 괴질에 걸렸다는 분의 스토리는 바로 내 일처럼 들려옵니다. 나누면 행복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지 못한,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현대인도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도 어영부영하다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낸 자칭 바보천치도 있습니다. 인류가 파멸하는 길이라고 방방 뜨다가 슬그머니 돈 챙기고 폐수방류에 눈 감은 환경운동가. 모두 그래도 사람들의 자화상입니다. 아등바등 벌어 쌓아놨더니 자식들 재산 싸움 되고 결국 큰 아들 칼부림에 둘째가 죽었다는 노부부의 탄식도 쏟아집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부부 앞에 다들 눈시울이 붉습니다. 버스 떠나면 파장이 빤한데 어쩌자고 일만하다가 낙상으로 고관절을 깨먹었다며, 평생 꿈인 세계여행까지 일장춘몽이 됐다고 뒤돌아 앉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공통점은 딱 둘입니다. 모두가 슬픈 사연을 안고, 세상을 거꾸로 보며 살았다는 점이죠. 머리를 숙여 다리가랑이 사이로 본 세상이 진짜로 생각하며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산 사람들. 사물을 바로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거나, 헛된 꿈을 꾸면서도 현실로 착각하며 헤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섬이 되고픈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 목숨만은 끊지 말고 희망의 끈은 쥐자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GPS 에도 잡히지 않은 곳, 그래서 더 아련하고 외로운 섬, 그래도 꽃은 피고 봄은 깊어 갑니다. 오늘도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사라진 일상을 찾아 나선 순례자” 라면서 헛헛한 웃음을 하늘에 날리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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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과 아리랑고개
외국인이 내게 ‘아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하시겠어요? 나도 똑 부러지게 답하지 못한 아쉬운 기억을 지닙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아리랑’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리랑만큼 우리 민족의 서정이 곰삭혀진 노래는 없을 테니까요. 민초들이 토해내는 세상살이의 서러움, 모진 시집살이를 탄식하는 아낙네, 어느 감정이든 얹기만 하면 노랫가락이 되는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의 고개는 거친 세상을 살면서 숱한 애환과 희비애락을 겪을 때마다 숱하게 넘었을 마음 속 고개이기도 합니다. 아리랑은 혼자 부를 때보다 여럿이 ‘떼창’을 할 때가 더 감흥을 주지요. 정교하게 짜인 흥과 한이 공명을 일으키니까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은 오정해(송화 역)가 구성지게 아리랑을 육자배기로 뽑는 장면입니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어느 고개인고...” 무심코 듣는 가락에 의문이 듭니다. 진도 아리랑에 문경새재가 왜 등장하지? 한동안 나를 낯설게 했던 대목입니다. 나운규 영화 ‘아리랑’ 마지막 장면도 아리랑고개입니다. 주인공이 이 고개에서 일본 경찰에 연행될 때 절규합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마오. 나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나와 함께 아리랑을 부른 생각을 하며 아리랑을 기억해 주시오.”라는 대사가 심금을 울립니다. 열사의 땅 중동 건설근로자도, 파독 광부들도, 2002 월드컵 순간에도 목청을 높였던 노래는 아리랑입니다. 슬퍼서 부르고 좋아서 부르고... 아리랑 연구가인 서지학자 김연갑 선생은 문경새재를 아리랑고개로 지목합니다.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아리랑에서 아리랑고개가 없다면 그 많은 영화, 연극, 시, 소리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민족정서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전합니다. 아리랑은 1869년부터 큰 변화기를 맞습니다. 7년 동안 진행된 경복궁 중수 때 영향을 받으면서죠. 삼남에서 차출된 부역꾼들이 한양으로 올라오는데 대부분 문경새재를 넘어야했습니다. 그곳에 유달리 많았던 박달나무는 민초들이 새재를 넘으면서 숨을 돌리고 빈궁한 처지를 하소연했던 신목입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리랑의 상징목이 될 만큼 민초의 애환이 서린 박달나무가 몽땅 벌목돼 사라진 사실이 알려집니다. 경복궁 중수에 쓰기 위해 모두 공출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자조적 언어로 “문경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며 장탄식을 쏟았지요. 이는 학정을 비웃는 상실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아리랑은 부역꾼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흩어지며 부르던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변주되었다는 게 정설로 보입니다. 경복궁 중수가 끝나자 부역꾼 상당수가 일을 찾아 철도 노동자로 변합니다. 나운규는 이들이 철길을 놓으며 절절하게 부르는 아리랑을 가슴에 담았다가 후일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는 군요. “극장에는 손구락 하나를 꼬즐 틈 없시” 당시 신문 기사 표현대로 흥행에 성공한 당대 최고의 영화인 나운규의 ‘아리랑’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지요. 조선총독부가 아리랑에 탄압을 가하자 아리랑이 지하로 흘러들면서 항일 감정을 담는 등 다양한 가사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대중가요에는 ‘고개’를 붙인 노래가 유난히 많습니다.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구름도 쉬었다 넘을 만큼 높은 ‘추풍령고개’, 기약 없는 이별의 슬픔을 담은 ‘울고 넘는 박달재’, 징용으로 아들을 기차에 실어 보내는 사연 많은 ‘비나리는 고모령’도 있어요. 고개는 곧 한의 상징이고, 고개를 넘는 일은 고통의 표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리랑고개가 어딘 지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김연갑 선생은 아리랑고개를 문경새재로 말하지만, 많은 문인들은 아리랑고개를 ‘마음 속 상상의 고개’로 생각합니다. 재밌는 것은 밀양아리랑에도, 진도아리랑에도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나온다는 점이지요. 정확히 알려진 건 없지만, 신목처럼 아낀 새재의 박달나무를 몽땅 베간데 대한 불만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가락에 녹아든 걸로 유추해 볼 수는 있겠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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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 한 번 먹어요.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이처럼 살가운 말이 있을까. 아부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침과 모자람도 없는, 정감을 주는 이만한 표현도 없습니다. 말하고 듣는 사람 다 기분 좋게 하니 참 좋아요. 먹는 것에 허기진 보릿고개 시절도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먹는 일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어라.”고은 친구든 남녀든 사람끼리 마주앉아 밥 먹는 것만큼 일상사가 어디 있겠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끼를 같이 하는 일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생들이 정분과 위로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 짧은 순간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순대국 그릇 사이에 깍두기 한 접시 놓고 웃음 짓는 사이, 따뜻한 마음과 행복이 익어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의 청을 사양한 적 없나요? 내가 후회하는 게 그런 것들입니다. 이번 일만 마치면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사는 게 늘 그렇지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또 일이 터지고, 출장가고, 그러다 1년이 후딱 갑니다. 나이 들며 그런 기억이 안쓰럽습니다. “승진만 하면, 적금 붓는 것 끝내면” 이란 가정법에 주술을 걸다 해가 바뀌고 1년이 갑니다. KBS 1TV ‘개그콘서트’에 ‘밥 묵자’ 코너가 있었지요. 권위적인 가장이 가족들의 공격을 받을 때면 “자, 우리 밥 묵자.”로 분위기 반전을 꾀합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니까 마음이 상했어도 밥상 앞에서는 일단 감정부터 추스르지요. 대화 없이 숟가락 소리만 달그락거릴 땐 식후 분위기가 점쳐집니다. 그래도 칭찬만은 밥상머리가 제격이지요. “여보. 야가 이번 시험서 평균 10점이나 올랐대요.” “정말? 그래 잘했다. 우리 외식하자 주말에.” 독신으로 사는 여자의 말입니다. 사람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지만, 대부분 끝머리에 “우리 얼굴보고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빼먹지 않습니다. 곤혹스러운 것은 다른 직장처럼 밥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데 있죠. 자칭 ‘노가다’라는 무대 일을 하다보면 삼시세끼 제때 찾기가 어렵습니다. 낮에 잠자고 남잘 때 일어나 일하는 뒤바뀐 생활이 많다보니까요. 성격이 불같은 친구가 아침부터 전화에다 “밥 한번 먹자는 데 그리 힘드냐? 세상일 혼자 해?” 약속에 빠졌다고 십자포화를 맞습니다. 가까스로 전화를 끊자 “밥은 먹고 다니냐?” 엄마가 빈집에 들렀다가 텅 빈 냉장고 문짝에 붙인 메모 글이 눈에 띕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송강호가 용의자에게 던진 대사와 같은 말이죠. 가끔 그런 말을 들으면 “잘 먹어. 다 먹고 살자는 거알아.” 그렇게 해석합니다. 먹자고 일하든, 일하려고 먹든 밥은 참 중요합니다. 대학생 때 교수님이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셨지요. 학생에겐 은총의 날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국물까지 싹 비웠는데 다음 날 연락이 옵니다. “설렁탕 맛있었냐?” “네 교수님. 다음에도 그런 기회를.” 이틀 후 똑 같은 말을 들을 때도 우스개다 했는데 “그 집 깍두기 맛있지?” “내가 사준 설렁탕 안 잊었지?” 나중에는 토하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됐지만, 돌이켜 보면 학창의 추억 하나를 내게 주신 분입니다. 오늘 그 교수님께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밥 한번’이 인연이 돼 차진 관계로 발전했지요.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타이밍임을. 팀 페리스가 쓴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에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일렬로 세워 처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건강, 가족, 사람관계 등은 하나씩 순차방식으로 해내는 게 아니라고 했지요. 삶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열심히 꿈을 좇아 일하면서 가족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시간내 운동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핑계가 많습니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미루며 사양하죠. 실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부지런히 만나고 한 끼 밥을 나누세요. 그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약입니다. 살아온 세월에서 이런 메시지를 깨칩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시간이다”란 것을. 이때 시간은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에 깃든 소중한 추억이지요. 그래서 시간은 첫째도, 둘째도 ‘내는 것!’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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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선택, 최고의 만남
독일작가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이 없는 건 죽음뿐” 이라했습니다. 운명적 요소가 다분한 만남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비극의 출발도 됩니다. 만남은 내구성이 길지 못한 흠이 있어서죠. 그래서 만남은 이별을 잉태한다는 슬픈 가설을 낳습니다. 아이에게 그토록 조르던 장난감을 사줘 보세요. 잠을 잘 때도 끼고 잘 만큼 아끼는 것 같지만 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곧 한 구석에 버려놓고 흥을 잃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인 생애에서 우리가 찾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막상 얻고 나면 세월과 함께 시들해지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만족을 주는 건 없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 것을 갈망하고, 어제의 새 것을 오늘의 헌 것으로 버리며 삽니다. 지구력이 세다는 남녀의 사랑도 그래요. 지순지고로 연모한 사랑이 어느새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돌아서는 건 숱한 노래 가사로도 확인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벼락처럼 나타난 순애보 사랑, 짧고도 긴사랑, 부귀와 명예도 다 버리는 사랑 이야기는 물씬한 감동을 전합니다. 이 세상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러브 스토리들이 있습니다. 절묘한 선택을 한 세기의 커플들 사랑 이야기가 이에 해당하겠지요. 세기의 톱스타 리즈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두 번의 결혼, 두 번의 이혼을 합니다. 테일러는 이혼하면서 사유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의 별거가 다시 우리를 결합시켜 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지요. 남편과 아내를 버려 불륜커플이란 곱지 않은 시선 속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 버튼은 테일러에게 33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선물해 온 세계 여성의 가슴을 달뜨게 했지요. 하지만 알코올중독에 빠진 버튼 때문에 9년 만에 파경을 맞고, 이후 식지 않은 사랑으로 재결합을 하지만 반년도 못가 다시 헤어집니다. ‘7명의 남편과 8번의 결혼’ 이력을 남긴 테일러는 가장 사랑한 남자로 버튼을 꼽고, 죽으면 그의 고향에 뿌려달라는 유언도 남겼지요. 그녀는 배우자만 여덟 번의 선택을 한 셈이지요. 현대판 신데렐라,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이들의 결혼은 전 세계의 이목을 모은 세기의 결혼식이란 기록을 남겼지요. 찰스는 원래 다이애나의 언니와 교제하다가 실제 반려자로는 청순한 이미지의 동생을 선택했습니다. 두 아들을 낳으며 영국민의 총애를 받은 다이애나였지만, 찰스의 계속되는 여자문제로 괴로워하다가 한순간 신데렐라에서 비련의 여인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중동의 한 왕자와 자동차로 이동 중 파파라치의 추적을 따돌리려다가 전복사고를 내고 비운의 삶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마린 먼로와 비교하지만 그녀와 비교되고 싶진 않아요. 그녀의 죽음이 빨라서가 아니라 사랑을 못 이루고 죽었기 때문이죠. 난 사랑을 이루고 싶어요.” 다이애나의 간절했던 소망은 잘못된 만남과 선택으로 슬프게 막을 내립니다. 천사 같은 여자, 능력 있는 남자, 모두가 넋을 놓을 그런 만남을 부러워 하지 마세요. 그 선택이 탁월하지도 최고인 것도 아니니까요. 좀 부족해도 내 옆구리를 한 결 같이 지키고 있는 남자, 살뜰하게 가족을 잘 돌보는 내 옆의 여자가 더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내 옆 사람을 바라보고 한 번 빙그레 웃어보면 어떨까요? “당신 왜 웃어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냥 예뻐서” “사람 싱겁긴!” 핀잔하면 한 번 더 웃어보이세요. 치즈라고 말하면서... 저물어가는 2019년의 끝말로 ‘사랑’이란 말을 선택해 보세요. ( 글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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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천국
우리사회에 점점 꿈을 잃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젊은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합니다. 꿈이 메마른 사회는 가뭄 날의 풀밭같이 까칠해져 온기가 없고 스칠 때마다 소리가 납니다. 사람들이 자기자리를 진득하게 찾으려 하지 않아요. 파르르 끓는 냄비처럼 금세 싫증을 내고 다른 사람의 동향에 민감합니다. 찰나적인 것을 좇아가고 순간에 많은 이익을 낸 사람을 승자로 부러워합니다. 임시변통에 능하면 아예 재주꾼으로 묘사되기도 하지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이작 싱어의 소설 ‘바보들의 천국’은 이렇게 전개 됩니다. 주인공 아첼은 부자 상인의 외아들입니다. 너무 게을러서 공부도, 일도, 만사를 귀찮게 생각할 뿐입니다. 훗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온데요. 그러던 중 유모로부터 천국에는 일할 필요가 없고 매일 놀고먹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합니다. “그래 이렇게 살 바엔 죽어 천국에나 가야지.” 그는 천국에 가려는 욕망으로 죽기를 바라며 꼼짝 않고 침대에만 누워있자 아첼 부모는 고민 끝에 여러 사람들과 상의를 합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딴 세상이 열렸습니다. 아첼은 화려한 방에 누워있었고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 찾아옵니다.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국? 여기가요?” 아첼은 날듯이 기뻐합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고, 잘 때가 되면 천사들이 포근한 침대에 눕혀 줍니다. 식사시간엔 온갖 산해진미를 담은 금 접시, 금 쟁반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이 며칠 지나자 아첼은 갓 구은 빵과 버터, 커피가 먹고 싶어 천사에게 주문합니다. 그랬더니 천국에는 그런 음식이 없다고 하네요. 실망한 아첼은 “지금 몇 시나 되었어요?” 하고 물으니 저런 “천국엔 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돌아옵니다. “그럼 난 이제부터 무얼 하나요?” 천사가 말합니다. “천국에서 할 일이란 없어요.” 아첼은 맛난 산해진미를 먹어도 잠자는 일밖에 할 일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으로 뭔가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은 똑 같지요. “천국에서 할일이 없어요.”라고. 아첼은 가짜 천국에서 한 주를 보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난 소리로 크게 외칩니다. “이렇게는 못 살아! 차라리 죽는 게 백번 낫겠어!” 하지만 왕 실망! 천사는 ‘천국에는 죽음조차 없다’는 걸 알려줍니다. 8일째 되는 날, 그의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오지요. 이로부터 아첼은 열심히 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싱어 특유의 우화적이면서도 단순한 이야기지만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증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곳, 아무 할 일도, 희망도 없는 곳, 그런 곳이 진정한 천국은 아닐 테니까요. 삶에 조급증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멀리 볼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산 너머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시력을 잃게 됩니다. 눈에 꿈이 담기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직하게 내 일을 찾고 꾸준히 노력하는 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꿈꾸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이 힘들어도 내 눈에 꿈을 담고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면. 그리던 천국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글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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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자리를 지켜주는 힘
새해가 되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난 해 일기를 살피면서 나쁜 습관이나 고쳐 야 할 것은 무엇인지 찾아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매년 계속해 이름을 올리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편리함에 물들고 있다’는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죠. 이는 ‘게을러터지다’는 뜻과도, 이기적인 생각과도 통하죠. 편리하고 빠른 것만 눈에 들어 했으니까요. 자잘한 욕심들도 내가 버려야 할 짐입니다. 곳곳에 독버섯처럼 일었다 시든 욕망의 분칠을 보면 아직도 내가 내려놓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의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욕망의 포로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그러한 유혹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지만 이 둘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이탈할 때 생겼다는 점에서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각기 정해진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별은 하늘에 있을 때 밝게 빛나고, 들꽃은 들판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우며, 아이는 엄마 아빠랑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들꽃이 예쁘다고 몇 송이를 꺾어 집에 가져와 꽃병에 꽂아두면 며칠은 마음이 즐겁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꽃을 꺾지 않았다면 집에서 사는 날보다 훨씬 많은 날을 살며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꽃이 진자리엔 더 많은 꽃을 피울 씨앗이 땅에 뿌려졌겠죠. 그걸 알면서도 순간의 이기적 충동으로, 사랑해서라는 말로, 제자리에 잘 있던 것을 내 옆에 슬쩍한 적은 없나요?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이기적 사랑을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세상은 기쁜 사람보다 슬픈 사람이 많아지겠죠. 제자리를 찾아 행복한 사람보다, 제자리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입니다. 파블로 네루다가 쓴 ‘안녕, 나의 별’은 제자리를 잃고 슬픔에 빠진 별 이야기 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갖고 싶었던 소년이 별 하나를 따서 주머니 속에 넣습니다. 그 순간 도시가 새까맣게 어두워집니다. 밤하늘에서 반짝 이다가 소년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 별은 무서워 떱니다. 몸이 추우니 마음도 춥습니다. 소년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별을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 낯설기조차 합니다. 무엇이 소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집에 온 소년은 주머니에서 별을 꺼냅니다. 그러나 별빛이 너무 강해 숨길 수 없는 데다 사람들이 별빛을 보고 몰려올 것 같습니다. 별을 훔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쩌나, 소년의 마음이 불안해 집니다. 이러다가 엄청난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은 별을 손수건에 싸서 몰래 집밖으로 나옵니다. 별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소년은 별이 잘못될까봐 죄책감이 들어, 별을 강물에 놓아줍니다. 별은 물결에 흔들리며 멀어져갑니다. 미안한 마음에 소년은 별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했어요. 별을 두려움에 빠뜨리고, 소년을 불안하게 만든 건 무얼까? 바로 ‘욕심 많은 나’ 입니다. 이기적인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지켜주는 힘이지요. (글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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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고유명사로 살기
어떡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은퇴한 사람들이 자주 주고받는 말입니다. 누구는 생각을 바꾸라고 하고, 누구는 삶의 프레임을 확 뜯어 고치 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굳이 이러한 대화에 눈을 맞출 필요는 없겠지요. 연초에, 암 투병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친구와 만나,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 연민했습니다. 통증에 매몰된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고통의 날을 반복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내가 마지못해 살고 있는 오늘이 ‘누군가의 간절한 내일’ 임을 자각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이 뼛속 깊이 파고들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기적으로 변하면서 감사와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답니다. 고통으로 포기하고 싶은 오늘을 새롭게 정의 하자 삶의 태도가 확 달라졌고, 용기와 희망을 되찾게 됐다고 말할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인생은 몸으로 살은 만큼 안다고 하죠. ‘프레임을 바꾼다’는 말도 친구가 온몸 으로 전해줄 때 비로소 그런 것임을 느꼈습니다. ‘모든 끝은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절망의 ‘끝’에 새 프레임을 씌우니 희망의 출구가 보입니다. 어느 작가는 자신의 서재를 ‘외부와 격리된 방’으로 규정했습니다. 단순히 서재로 부를 때는 걸려온 전화를 다 받았는데, ‘격리’로 바꾼 뒤는 전원부터 끄게 되더라고 합니다. 자신의 업을 ‘직업’으로 부르고, 누구는 ‘소명’으로 생각한다면, 이들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게 됩니다. 소명으로 여긴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이 훨씬 더 클 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난 행복하다’고 단정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비교하며 살 뿐, 정작 난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사는지 들여다보는 데는 생각보다 소홀합니다. 나보다도 남에게 보여 지는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나만의 일을 사랑하기보다 대중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익명이 판치는 SNS에 접속해 ‘좋아요’ ‘멋져요’ 같은 버튼에 손이 가고, 남 일에 끼어들며 존재감을 지키려고 합니다. 가장 편한 삶은 나다울 때 찾아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살려고 하면 복제된 인생을 사는 것에 다름 아니지요. 여기엔 가식과 과장이 도사립니다. 나라는 고유명사로 살아야 행복의 기준이 내가 되고 편안함을 얻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 때처럼, 내가 나다울 때 안락함을 느끼게 되지요. 행복의 기준을 타인과 공유하면, 그때부터 나는 소외되기 시작합니다. 마을사람이 나를 아는 고향에서 사는 삶과 나를 모르는 도시에서 사는 삶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집 누구로 살면 몸가짐부터 조심하지만, 익명으로 사는 도시의 삶은 규제받지 않아 훨씬 편하죠. 4차 산업, 5G시대가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편리함은 주겠지만 외로움은 더 격해 지고, 나는 더 흐릿해 집니다. 진짜와 가짜, 진실과 조작, 실상과 허상의 혼란은 더 커 지겠죠. 올해는 나만의 사전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관습이란 프레임부터 거둬내고 고유명사로서의 나를 찾아, 잃어버린 나의 풍경을 만들며 살았으면 합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참된 진보’ 라고 한 안데르센 말처럼.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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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라는 불행의 레시피
이 세상은 내가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운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완벽주의자가 아닌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린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보다 앞서지 못하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소소한 일까지 완벽하게 챙기고 챙겨서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그렇지만 세상이란 복잡미묘하게 변하는 것이기에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앞설 수 있는 기회보다도 실패를 하는 경우가 더 많게 된다. 실패를 맛보고 좌절도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밀리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 또 다시 완벽한 인간이 되길 다짐하게 된다. 최근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페트라 비르츠 박사팀이 스위스 중년 남성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분비가 더 많고 피로를 쉽게 느껴 신경질적이 되며 의기소침해지는 양상을 보였다”고 발표하였다. 연구팀은 설문지를 통해 답변을 받은 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완벽주의자를 선정해 개인의 신경 및 호르몬 시스템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에 완벽주의적 성향이 영향을 주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은 실수나 실패에 대한 불안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리고 불안은 보통 사람들의 수행 능력을 깎아 먹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단 1점이라도 깎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적인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시험 불안이 높고 그 결과 실제 공부하는 것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다가 아예 아무것도 안 해버리는 경향이 높아 일에 대한 성취도가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낮아 완벽주의자는 불행의 레시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전까지 일을 시작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조금 더 좋은 결과물을 내겠다며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기한을 넘어서도 일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완벽주의적인 교수들이 그렇지 않은 교수들에 비해 출간한 논문의 수가 적고 논문의 질 또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완벽주의가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고 수행 능력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과잉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에 시달림을 받고 있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이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다람쥐 체 바퀴 돌 듯이 반복적인 직장생활에서도 몇 번이고 완벽주의자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직장을 은퇴한 후 그간 쓸데없이 완벽주의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후회하게 된다. 현대문명 사회에서 너무나 복잡다기한 환경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완벽주의자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세상을 제대로 읽고 대처하여 나가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결국 열심히 살아왔지만 살아온 결과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고 항상 실패와 좌절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더욱이 친구와 이웃과 함께 차 한 잔이라고 나누면서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눈다면 오히려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는데 허망 된 욕망에 파묻혀 무모하리만큼 열심히만 살아왔던 것이다. 팔순이 된 요즈음 젊은이에게 너무 완벽주의자로 열심히 살아가지 말 것을 권유하고 싶다. 인생이란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때가 가장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는 법이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온 인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 부류는 귀인을 만나 귀인에게 충성하면서 주인으로 섬기면서 살아가는 타입이다. 다른 한 부류는 내가 주인으로 모든 책임을 내 스스로 감당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타입이다. 귀인을 만나 이에 충성을 다 바친다면 일시적으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주인의 운명과 같은 배를 타기 마련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난파선이 되어 큰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 주인으로 모든 책임을 감당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오랜 세월을 힘들고 밫을 볼 수는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굵고 짧게 영광을 누리면서 횡재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겐 결코 영광도 횡재도 찾아오지 않고 함정에 빠지는 경우를 겪게 된다. 인생이란 길고 먼 길을 내 스스로 감당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은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때 행복감도 성공도 얻어낼 수 있는 법이다. 아부를 하면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고 주인을 모시는 하인에겐 일시적인 영광을 쉽게 차지할 수는 있을런지 모르지만 결국 성공도 행복도 차지할 수 없는 법이다. 결국 이 세상은 내가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운이 주어지는 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완벽주의자가 아닌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요즈음 정치권의 움직임을 부면서 출세욕에 사라잡혀 주인을 모시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수모를 겪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를 생각하게 된다. 완벽주위자란 불행의 레시피이지만 귀인을 만나 출세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함정의 레시피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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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세상에서는 울지 마오
아이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일 때가 있습니다. 하다하다 안 될 때, 엄마도 화가 나 “그래 언제까지 우나 실컷 울어봐” 하고 돌아섭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돼 울던 아이의 울음이 개울물 소리처럼 잦아들고 훌쩍거리던 아이는 지쳐 잠이 듭니다. 사실 우는 것만큼 에너지 소비가 큰 것도 없습니다. 온 몸의 장기를 다 흔들어 놓는 일이니까요. 우는 것이 직업인 곡비(哭婢)를 아시나요? 울어서 먹고사는 사람. 예전엔 사람이 죽으면 고인이 가는 길을 밝혀준다는 뜻에서 소리 내어 우는 장례 풍습이 있었지요. 상을 치르는 동안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죽은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체면 때문에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양반가 상주를 대신해 곡을 해주는 역할을 곡비가 합니다. 잘 풀어놓은 곡(哭)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그동안 갈등했던 사람들 간의 서운함도 눈 녹듯 녹여냅니다. 그뿐인가요? 문상객까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줍니다. ‘울음으로 길 밝히는 곡비’는 곡비 이야기를 그린 역사동화책입니다. 동화는 아이들만의 책이 아닙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읽고 듣고 공감하는 가족문학에 가깝지요. 은실이 어머니 집안은 대대로 곡비였습니다. 엄마가 곡비면 딸도 곡비여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 은실과 그 시대를 사는 백성들의 역사를 담았지요. 명성황후의 억울한 죽음에도 울지 않는 곡비 은실이 되려는 모진 이야기가 마음을 저밉니다. 슬프지 않은데 울어야 하는 곡비의 운명에서 벗어나고파, 은실은 엄마에게 입찬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엄니는 사람이 많이 죽어야 좋겠네!” 그래도 엄마는 성을 내지 않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엄마가 딸을 옆에 앉히고 곡을 가르칩니다. “잘 듣고 따라 해라” 엄마는 양손을 바닥에 짚고 머리를 조아리며 구성지게 곡을 뽑지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반응이 없자 다리를 툭 칩니다. 따라하라는 신호지만, 은실은 꿈쩍도 않습니다. 이번엔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은실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었어요. 아랫입술을 물고 눈을 흘겨도 소용없습니다. “울어라. 네가 울면 곡 값으로 두 배는 받아 이것아.” 엄니가 귀엣말로 말하자 딸이 엄마를 빤히 보고 말합니다. “슬프지 않은데 어찌 울어? 엄니는 우는 게 왜 그리 쉬워?”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는 은실의 입을 엄마가 틀어막습니다. “왜 우는 게 싫으냐?” “우는 게 좋은 사람도 있남.” “남의 돈 그저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난 곡비가 싫어. 엄니처럼 울지만 않는 일이면 다 할 거야.” 어머니가 죽자 은실은 한양으로 올라오고, 운 좋게 서양 아주머니 손탁을 만난 인연으로 손탁호텔에서 일하게 됩니다. 호텔 일 배우면서 학당에서 공부하고 호텔매니저의 꿈을 키우지요. 곡비가 아니라 호텔 매니저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은실은 이곳에서 우는 여자가 아니라, 거꾸로 웃어야 하는 여자로 성장합니다. 어느 날, 은실은 남자에게 지나온 삶을 이야기합니다. 먹고 살자고 평생을 울고 살 수는 없었다고, 뒤바뀐 자기의 운명이 신기하듯 “그랬던 내가 호텔에서 일하니 희한한 일이지? 호텔에서는 손님에게 친절하고 항상 상냥하게 웃어야 하잖아.” 은실은 그것이 어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질게 다그쳤지만 속마음은 곡비가 안 되도록 기도했을 것이라고. 이제야 어둠에 잠겼던 것들이 보이고, 곡비 엄마가 그리워집니다. “나 어렸을 때 엄니한테 막 대들었어. 곡비가 좋으냐고. 그때 엄니가 그러더라. 저승 가는 사람에게 울음으로 길을 밝혀주니 좋다고.” 이제야 엄마가 한 일이 좋은 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산 사람끼리도 위로하지 못하는 세상에, 죽은 사람을 위로해 주니 귀한 일 아닐까. 이승에서 슬피 울던 기억은 다 지우고 부디 저승에선 울지 말라고, 엄마는 그렇게 당부하며 울었겠지. 세상이 힘들고 거칠어지니 사람들 마음도 부풀어 오릅니다. 누가 옆구리라도 쿡 찌르면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이... 갈수록 세상은 휘황찬란한데 샹들리에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은 군상은 늘어만 가죠. 울분과 원망으로 가슴 아픈 사람들. 그들을 위해 울어줄 사람 없을까. 서러운 마음 풀어줄 그런 현대판 곡비라도 있었으면.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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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상, 그래도
- 누구처럼 말하고 누구처럼 사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 이태석 신부같이, 데레사 수녀처럼 우리 곁에 사셨던 분들이 그리움으로 숨 쉬는 오늘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한 파울로 코엘료, 직관을 따랐을 뿐이라는 스티브 잡스,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수능 만점자까지. 그렇게 쉬운 일들이 왜 내가 손을 댔다하면 껀껀이 망하는 걸까. 바닷가 질척한 펄 아래 ‘그래도(島)’ 라는 섬이 섰습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고, 고통 받고 살다가 세상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숨이 찬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아가는 곳 입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숨길 것도 없다는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사는 섬입니다. 아름다운 섬 그래도. 섬마을 초입에 걸린 슬로건부터 철학적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는 분이 내걸었습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해준 설명은 보다 심오합니다. “사람답게 죽을 텐가, 죽은 듯이 살 텐가, 삶이란 평생의 업이로다.” 오늘은 그래도가 열린지 100일. 주민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통성명에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인생 족보에 대해선 서로가 함구해 왔지요. 오늘은 상처는 상처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살아온 인생을 털어놓고, 그래도 사람답게 살자고 만든 자리입니다. 턱수염이 짙은 운영회장이 일어나 “지금까지 돈 낳고 사람 낳다고 우겨댄 게 바로 나여” 하고 말머리를 엽니다. 당초 돈이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인데, 돈에 집착하다가 돈의 노예가 돼버린 바보가 여기 서 있다며 돈 때문에 실패한 자신을 고백합니다. 섬에서 가장 예쁜 부녀회장도 상처가 커 보입니다. 옷이란 원래 몸을 보호하려고 생겨난 건데 어쩌다 명품만 치렁치렁 감고 살다가 옷을 보호하는 치사한 여자가 되었답니다. “아무리 옷이 명품이고 화려하면 뭘 해요 저녁엔 다 벗어야 하는 데.” 사치하다 탈난 여자의 변입니다. 이런 남자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려고 집을 지었는데, 집에 환장한 사람처럼 집에다 처바르고 비까번쩍 치장했더니, 뭐야! 내가 집을 지키는 개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가 거꾸로 생각의 노예가 됐다는 생각장이 40대. 핸드폰 충전은 열심히 하면서 진짜 인생은 충전하지 못했다는 30대 고백이 이채롭습니다. 많은 걸 쟁여만 두었지 한 푼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갈 날을 기다리는 현대인이 나라는 60대 말기암 남자의 얘기는 주위를 숙연하게 합니다. 오지도 않은 노후대책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잃고, 구제받지 못할 희귀성 괴질에 걸렸다는 분의 스토리는 바로 내 일처럼 들려옵니다. 나누면 행복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지 못한,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현대인도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도 어영부영하다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낸 자칭 바보천치도 있습니다. 인류가 파멸하는 길이라고 방방 뜨다가 슬그머니 돈 챙기고 폐수방류에 눈 감은 환경운동가. 모두 그래도 사람들의 자화상입니다. 아등바등 벌어 쌓아놨더니 자식들 재산 싸움 되고 결국 큰 아들 칼부림에 둘째가 죽었다는 노부부의 탄식도 쏟아집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부부 앞에 다들 눈시울이 붉습니다. 버스 떠나면 파장이 빤한데 어쩌자고 일만하다가 낙상으로 고관절을 깨먹었다며, 평생 꿈인 세계여행까지 일장춘몽이 됐다고 뒤돌아 앉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공통점은 딱 둘입니다. 모두가 슬픈 사연을 안고, 세상을 거꾸로 보며 살았다는 점이죠. 머리를 숙여 다리가랑이 사이로 본 세상이 진짜로 생각하며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산 사람들. 사물을 바로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거나, 헛된 꿈을 꾸면서도 현실로 착각하며 헤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섬이 되고픈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 목숨만은 끊지 말고 희망의 끈은 쥐자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GPS 에도 잡히지 않은 곳, 그래서 더 아련하고 외로운 섬, 그래도 꽃은 피고 봄은 깊어 갑니다. 오늘도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사라진 일상을 찾아 나선 순례자” 라면서 헛헛한 웃음을 하늘에 날리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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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상,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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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과 아리랑고개
- 외국인이 내게 ‘아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하시겠어요? 나도 똑 부러지게 답하지 못한 아쉬운 기억을 지닙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아리랑’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리랑만큼 우리 민족의 서정이 곰삭혀진 노래는 없을 테니까요. 민초들이 토해내는 세상살이의 서러움, 모진 시집살이를 탄식하는 아낙네, 어느 감정이든 얹기만 하면 노랫가락이 되는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의 고개는 거친 세상을 살면서 숱한 애환과 희비애락을 겪을 때마다 숱하게 넘었을 마음 속 고개이기도 합니다. 아리랑은 혼자 부를 때보다 여럿이 ‘떼창’을 할 때가 더 감흥을 주지요. 정교하게 짜인 흥과 한이 공명을 일으키니까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은 오정해(송화 역)가 구성지게 아리랑을 육자배기로 뽑는 장면입니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어느 고개인고...” 무심코 듣는 가락에 의문이 듭니다. 진도 아리랑에 문경새재가 왜 등장하지? 한동안 나를 낯설게 했던 대목입니다. 나운규 영화 ‘아리랑’ 마지막 장면도 아리랑고개입니다. 주인공이 이 고개에서 일본 경찰에 연행될 때 절규합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마오. 나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나와 함께 아리랑을 부른 생각을 하며 아리랑을 기억해 주시오.”라는 대사가 심금을 울립니다. 열사의 땅 중동 건설근로자도, 파독 광부들도, 2002 월드컵 순간에도 목청을 높였던 노래는 아리랑입니다. 슬퍼서 부르고 좋아서 부르고... 아리랑 연구가인 서지학자 김연갑 선생은 문경새재를 아리랑고개로 지목합니다.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아리랑에서 아리랑고개가 없다면 그 많은 영화, 연극, 시, 소리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민족정서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전합니다. 아리랑은 1869년부터 큰 변화기를 맞습니다. 7년 동안 진행된 경복궁 중수 때 영향을 받으면서죠. 삼남에서 차출된 부역꾼들이 한양으로 올라오는데 대부분 문경새재를 넘어야했습니다. 그곳에 유달리 많았던 박달나무는 민초들이 새재를 넘으면서 숨을 돌리고 빈궁한 처지를 하소연했던 신목입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리랑의 상징목이 될 만큼 민초의 애환이 서린 박달나무가 몽땅 벌목돼 사라진 사실이 알려집니다. 경복궁 중수에 쓰기 위해 모두 공출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자조적 언어로 “문경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며 장탄식을 쏟았지요. 이는 학정을 비웃는 상실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아리랑은 부역꾼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흩어지며 부르던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변주되었다는 게 정설로 보입니다. 경복궁 중수가 끝나자 부역꾼 상당수가 일을 찾아 철도 노동자로 변합니다. 나운규는 이들이 철길을 놓으며 절절하게 부르는 아리랑을 가슴에 담았다가 후일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는 군요. “극장에는 손구락 하나를 꼬즐 틈 없시” 당시 신문 기사 표현대로 흥행에 성공한 당대 최고의 영화인 나운규의 ‘아리랑’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지요. 조선총독부가 아리랑에 탄압을 가하자 아리랑이 지하로 흘러들면서 항일 감정을 담는 등 다양한 가사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대중가요에는 ‘고개’를 붙인 노래가 유난히 많습니다.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구름도 쉬었다 넘을 만큼 높은 ‘추풍령고개’, 기약 없는 이별의 슬픔을 담은 ‘울고 넘는 박달재’, 징용으로 아들을 기차에 실어 보내는 사연 많은 ‘비나리는 고모령’도 있어요. 고개는 곧 한의 상징이고, 고개를 넘는 일은 고통의 표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리랑고개가 어딘 지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김연갑 선생은 아리랑고개를 문경새재로 말하지만, 많은 문인들은 아리랑고개를 ‘마음 속 상상의 고개’로 생각합니다. 재밌는 것은 밀양아리랑에도, 진도아리랑에도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나온다는 점이지요. 정확히 알려진 건 없지만, 신목처럼 아낀 새재의 박달나무를 몽땅 베간데 대한 불만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가락에 녹아든 걸로 유추해 볼 수는 있겠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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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과 아리랑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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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 한 번 먹어요.
-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이처럼 살가운 말이 있을까. 아부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침과 모자람도 없는, 정감을 주는 이만한 표현도 없습니다. 말하고 듣는 사람 다 기분 좋게 하니 참 좋아요. 먹는 것에 허기진 보릿고개 시절도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먹는 일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어라.”고은 친구든 남녀든 사람끼리 마주앉아 밥 먹는 것만큼 일상사가 어디 있겠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끼를 같이 하는 일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생들이 정분과 위로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 짧은 순간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순대국 그릇 사이에 깍두기 한 접시 놓고 웃음 짓는 사이, 따뜻한 마음과 행복이 익어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의 청을 사양한 적 없나요? 내가 후회하는 게 그런 것들입니다. 이번 일만 마치면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사는 게 늘 그렇지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또 일이 터지고, 출장가고, 그러다 1년이 후딱 갑니다. 나이 들며 그런 기억이 안쓰럽습니다. “승진만 하면, 적금 붓는 것 끝내면” 이란 가정법에 주술을 걸다 해가 바뀌고 1년이 갑니다. KBS 1TV ‘개그콘서트’에 ‘밥 묵자’ 코너가 있었지요. 권위적인 가장이 가족들의 공격을 받을 때면 “자, 우리 밥 묵자.”로 분위기 반전을 꾀합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니까 마음이 상했어도 밥상 앞에서는 일단 감정부터 추스르지요. 대화 없이 숟가락 소리만 달그락거릴 땐 식후 분위기가 점쳐집니다. 그래도 칭찬만은 밥상머리가 제격이지요. “여보. 야가 이번 시험서 평균 10점이나 올랐대요.” “정말? 그래 잘했다. 우리 외식하자 주말에.” 독신으로 사는 여자의 말입니다. 사람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지만, 대부분 끝머리에 “우리 얼굴보고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빼먹지 않습니다. 곤혹스러운 것은 다른 직장처럼 밥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데 있죠. 자칭 ‘노가다’라는 무대 일을 하다보면 삼시세끼 제때 찾기가 어렵습니다. 낮에 잠자고 남잘 때 일어나 일하는 뒤바뀐 생활이 많다보니까요. 성격이 불같은 친구가 아침부터 전화에다 “밥 한번 먹자는 데 그리 힘드냐? 세상일 혼자 해?” 약속에 빠졌다고 십자포화를 맞습니다. 가까스로 전화를 끊자 “밥은 먹고 다니냐?” 엄마가 빈집에 들렀다가 텅 빈 냉장고 문짝에 붙인 메모 글이 눈에 띕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송강호가 용의자에게 던진 대사와 같은 말이죠. 가끔 그런 말을 들으면 “잘 먹어. 다 먹고 살자는 거알아.” 그렇게 해석합니다. 먹자고 일하든, 일하려고 먹든 밥은 참 중요합니다. 대학생 때 교수님이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셨지요. 학생에겐 은총의 날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국물까지 싹 비웠는데 다음 날 연락이 옵니다. “설렁탕 맛있었냐?” “네 교수님. 다음에도 그런 기회를.” 이틀 후 똑 같은 말을 들을 때도 우스개다 했는데 “그 집 깍두기 맛있지?” “내가 사준 설렁탕 안 잊었지?” 나중에는 토하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됐지만, 돌이켜 보면 학창의 추억 하나를 내게 주신 분입니다. 오늘 그 교수님께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밥 한번’이 인연이 돼 차진 관계로 발전했지요.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타이밍임을. 팀 페리스가 쓴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에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일렬로 세워 처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건강, 가족, 사람관계 등은 하나씩 순차방식으로 해내는 게 아니라고 했지요. 삶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열심히 꿈을 좇아 일하면서 가족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시간내 운동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핑계가 많습니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미루며 사양하죠. 실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부지런히 만나고 한 끼 밥을 나누세요. 그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약입니다. 살아온 세월에서 이런 메시지를 깨칩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시간이다”란 것을. 이때 시간은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에 깃든 소중한 추억이지요. 그래서 시간은 첫째도, 둘째도 ‘내는 것!’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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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선택, 최고의 만남
- 독일작가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이 없는 건 죽음뿐” 이라했습니다. 운명적 요소가 다분한 만남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비극의 출발도 됩니다. 만남은 내구성이 길지 못한 흠이 있어서죠. 그래서 만남은 이별을 잉태한다는 슬픈 가설을 낳습니다. 아이에게 그토록 조르던 장난감을 사줘 보세요. 잠을 잘 때도 끼고 잘 만큼 아끼는 것 같지만 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곧 한 구석에 버려놓고 흥을 잃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인 생애에서 우리가 찾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막상 얻고 나면 세월과 함께 시들해지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만족을 주는 건 없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 것을 갈망하고, 어제의 새 것을 오늘의 헌 것으로 버리며 삽니다. 지구력이 세다는 남녀의 사랑도 그래요. 지순지고로 연모한 사랑이 어느새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돌아서는 건 숱한 노래 가사로도 확인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벼락처럼 나타난 순애보 사랑, 짧고도 긴사랑, 부귀와 명예도 다 버리는 사랑 이야기는 물씬한 감동을 전합니다. 이 세상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러브 스토리들이 있습니다. 절묘한 선택을 한 세기의 커플들 사랑 이야기가 이에 해당하겠지요. 세기의 톱스타 리즈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두 번의 결혼, 두 번의 이혼을 합니다. 테일러는 이혼하면서 사유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의 별거가 다시 우리를 결합시켜 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지요. 남편과 아내를 버려 불륜커플이란 곱지 않은 시선 속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 버튼은 테일러에게 33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선물해 온 세계 여성의 가슴을 달뜨게 했지요. 하지만 알코올중독에 빠진 버튼 때문에 9년 만에 파경을 맞고, 이후 식지 않은 사랑으로 재결합을 하지만 반년도 못가 다시 헤어집니다. ‘7명의 남편과 8번의 결혼’ 이력을 남긴 테일러는 가장 사랑한 남자로 버튼을 꼽고, 죽으면 그의 고향에 뿌려달라는 유언도 남겼지요. 그녀는 배우자만 여덟 번의 선택을 한 셈이지요. 현대판 신데렐라,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이들의 결혼은 전 세계의 이목을 모은 세기의 결혼식이란 기록을 남겼지요. 찰스는 원래 다이애나의 언니와 교제하다가 실제 반려자로는 청순한 이미지의 동생을 선택했습니다. 두 아들을 낳으며 영국민의 총애를 받은 다이애나였지만, 찰스의 계속되는 여자문제로 괴로워하다가 한순간 신데렐라에서 비련의 여인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중동의 한 왕자와 자동차로 이동 중 파파라치의 추적을 따돌리려다가 전복사고를 내고 비운의 삶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마린 먼로와 비교하지만 그녀와 비교되고 싶진 않아요. 그녀의 죽음이 빨라서가 아니라 사랑을 못 이루고 죽었기 때문이죠. 난 사랑을 이루고 싶어요.” 다이애나의 간절했던 소망은 잘못된 만남과 선택으로 슬프게 막을 내립니다. 천사 같은 여자, 능력 있는 남자, 모두가 넋을 놓을 그런 만남을 부러워 하지 마세요. 그 선택이 탁월하지도 최고인 것도 아니니까요. 좀 부족해도 내 옆구리를 한 결 같이 지키고 있는 남자, 살뜰하게 가족을 잘 돌보는 내 옆의 여자가 더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내 옆 사람을 바라보고 한 번 빙그레 웃어보면 어떨까요? “당신 왜 웃어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냥 예뻐서” “사람 싱겁긴!” 핀잔하면 한 번 더 웃어보이세요. 치즈라고 말하면서... 저물어가는 2019년의 끝말로 ‘사랑’이란 말을 선택해 보세요. ( 글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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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선택, 최고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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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천국
- 우리사회에 점점 꿈을 잃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젊은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합니다. 꿈이 메마른 사회는 가뭄 날의 풀밭같이 까칠해져 온기가 없고 스칠 때마다 소리가 납니다. 사람들이 자기자리를 진득하게 찾으려 하지 않아요. 파르르 끓는 냄비처럼 금세 싫증을 내고 다른 사람의 동향에 민감합니다. 찰나적인 것을 좇아가고 순간에 많은 이익을 낸 사람을 승자로 부러워합니다. 임시변통에 능하면 아예 재주꾼으로 묘사되기도 하지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이작 싱어의 소설 ‘바보들의 천국’은 이렇게 전개 됩니다. 주인공 아첼은 부자 상인의 외아들입니다. 너무 게을러서 공부도, 일도, 만사를 귀찮게 생각할 뿐입니다. 훗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온데요. 그러던 중 유모로부터 천국에는 일할 필요가 없고 매일 놀고먹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합니다. “그래 이렇게 살 바엔 죽어 천국에나 가야지.” 그는 천국에 가려는 욕망으로 죽기를 바라며 꼼짝 않고 침대에만 누워있자 아첼 부모는 고민 끝에 여러 사람들과 상의를 합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딴 세상이 열렸습니다. 아첼은 화려한 방에 누워있었고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 찾아옵니다.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국? 여기가요?” 아첼은 날듯이 기뻐합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고, 잘 때가 되면 천사들이 포근한 침대에 눕혀 줍니다. 식사시간엔 온갖 산해진미를 담은 금 접시, 금 쟁반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이 며칠 지나자 아첼은 갓 구은 빵과 버터, 커피가 먹고 싶어 천사에게 주문합니다. 그랬더니 천국에는 그런 음식이 없다고 하네요. 실망한 아첼은 “지금 몇 시나 되었어요?” 하고 물으니 저런 “천국엔 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돌아옵니다. “그럼 난 이제부터 무얼 하나요?” 천사가 말합니다. “천국에서 할 일이란 없어요.” 아첼은 맛난 산해진미를 먹어도 잠자는 일밖에 할 일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으로 뭔가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은 똑 같지요. “천국에서 할일이 없어요.”라고. 아첼은 가짜 천국에서 한 주를 보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난 소리로 크게 외칩니다. “이렇게는 못 살아! 차라리 죽는 게 백번 낫겠어!” 하지만 왕 실망! 천사는 ‘천국에는 죽음조차 없다’는 걸 알려줍니다. 8일째 되는 날, 그의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오지요. 이로부터 아첼은 열심히 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싱어 특유의 우화적이면서도 단순한 이야기지만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증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곳, 아무 할 일도, 희망도 없는 곳, 그런 곳이 진정한 천국은 아닐 테니까요. 삶에 조급증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멀리 볼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산 너머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시력을 잃게 됩니다. 눈에 꿈이 담기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직하게 내 일을 찾고 꾸준히 노력하는 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꿈꾸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이 힘들어도 내 눈에 꿈을 담고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면. 그리던 천국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글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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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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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자리를 지켜주는 힘
- 새해가 되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난 해 일기를 살피면서 나쁜 습관이나 고쳐 야 할 것은 무엇인지 찾아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매년 계속해 이름을 올리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편리함에 물들고 있다’는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죠. 이는 ‘게을러터지다’는 뜻과도, 이기적인 생각과도 통하죠. 편리하고 빠른 것만 눈에 들어 했으니까요. 자잘한 욕심들도 내가 버려야 할 짐입니다. 곳곳에 독버섯처럼 일었다 시든 욕망의 분칠을 보면 아직도 내가 내려놓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의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욕망의 포로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그러한 유혹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지만 이 둘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이탈할 때 생겼다는 점에서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각기 정해진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별은 하늘에 있을 때 밝게 빛나고, 들꽃은 들판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우며, 아이는 엄마 아빠랑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들꽃이 예쁘다고 몇 송이를 꺾어 집에 가져와 꽃병에 꽂아두면 며칠은 마음이 즐겁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꽃을 꺾지 않았다면 집에서 사는 날보다 훨씬 많은 날을 살며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꽃이 진자리엔 더 많은 꽃을 피울 씨앗이 땅에 뿌려졌겠죠. 그걸 알면서도 순간의 이기적 충동으로, 사랑해서라는 말로, 제자리에 잘 있던 것을 내 옆에 슬쩍한 적은 없나요?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이기적 사랑을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세상은 기쁜 사람보다 슬픈 사람이 많아지겠죠. 제자리를 찾아 행복한 사람보다, 제자리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입니다. 파블로 네루다가 쓴 ‘안녕, 나의 별’은 제자리를 잃고 슬픔에 빠진 별 이야기 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갖고 싶었던 소년이 별 하나를 따서 주머니 속에 넣습니다. 그 순간 도시가 새까맣게 어두워집니다. 밤하늘에서 반짝 이다가 소년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 별은 무서워 떱니다. 몸이 추우니 마음도 춥습니다. 소년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별을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 낯설기조차 합니다. 무엇이 소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집에 온 소년은 주머니에서 별을 꺼냅니다. 그러나 별빛이 너무 강해 숨길 수 없는 데다 사람들이 별빛을 보고 몰려올 것 같습니다. 별을 훔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쩌나, 소년의 마음이 불안해 집니다. 이러다가 엄청난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은 별을 손수건에 싸서 몰래 집밖으로 나옵니다. 별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소년은 별이 잘못될까봐 죄책감이 들어, 별을 강물에 놓아줍니다. 별은 물결에 흔들리며 멀어져갑니다. 미안한 마음에 소년은 별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했어요. 별을 두려움에 빠뜨리고, 소년을 불안하게 만든 건 무얼까? 바로 ‘욕심 많은 나’ 입니다. 이기적인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지켜주는 힘이지요. (글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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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고유명사로 살기
- 어떡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은퇴한 사람들이 자주 주고받는 말입니다. 누구는 생각을 바꾸라고 하고, 누구는 삶의 프레임을 확 뜯어 고치 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굳이 이러한 대화에 눈을 맞출 필요는 없겠지요. 연초에, 암 투병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친구와 만나,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 연민했습니다. 통증에 매몰된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고통의 날을 반복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내가 마지못해 살고 있는 오늘이 ‘누군가의 간절한 내일’ 임을 자각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이 뼛속 깊이 파고들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기적으로 변하면서 감사와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답니다. 고통으로 포기하고 싶은 오늘을 새롭게 정의 하자 삶의 태도가 확 달라졌고, 용기와 희망을 되찾게 됐다고 말할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인생은 몸으로 살은 만큼 안다고 하죠. ‘프레임을 바꾼다’는 말도 친구가 온몸 으로 전해줄 때 비로소 그런 것임을 느꼈습니다. ‘모든 끝은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절망의 ‘끝’에 새 프레임을 씌우니 희망의 출구가 보입니다. 어느 작가는 자신의 서재를 ‘외부와 격리된 방’으로 규정했습니다. 단순히 서재로 부를 때는 걸려온 전화를 다 받았는데, ‘격리’로 바꾼 뒤는 전원부터 끄게 되더라고 합니다. 자신의 업을 ‘직업’으로 부르고, 누구는 ‘소명’으로 생각한다면, 이들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게 됩니다. 소명으로 여긴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이 훨씬 더 클 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난 행복하다’고 단정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비교하며 살 뿐, 정작 난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사는지 들여다보는 데는 생각보다 소홀합니다. 나보다도 남에게 보여 지는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나만의 일을 사랑하기보다 대중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익명이 판치는 SNS에 접속해 ‘좋아요’ ‘멋져요’ 같은 버튼에 손이 가고, 남 일에 끼어들며 존재감을 지키려고 합니다. 가장 편한 삶은 나다울 때 찾아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살려고 하면 복제된 인생을 사는 것에 다름 아니지요. 여기엔 가식과 과장이 도사립니다. 나라는 고유명사로 살아야 행복의 기준이 내가 되고 편안함을 얻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 때처럼, 내가 나다울 때 안락함을 느끼게 되지요. 행복의 기준을 타인과 공유하면, 그때부터 나는 소외되기 시작합니다. 마을사람이 나를 아는 고향에서 사는 삶과 나를 모르는 도시에서 사는 삶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집 누구로 살면 몸가짐부터 조심하지만, 익명으로 사는 도시의 삶은 규제받지 않아 훨씬 편하죠. 4차 산업, 5G시대가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편리함은 주겠지만 외로움은 더 격해 지고, 나는 더 흐릿해 집니다. 진짜와 가짜, 진실과 조작, 실상과 허상의 혼란은 더 커 지겠죠. 올해는 나만의 사전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관습이란 프레임부터 거둬내고 고유명사로서의 나를 찾아, 잃어버린 나의 풍경을 만들며 살았으면 합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참된 진보’ 라고 한 안데르센 말처럼.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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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더 큰별이 된 '리더의 품격’
- 묘비는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무명의 초라한 묘비나, 화려한 비문으로 장식된 묘비나 생명의 스러짐을 일깨워 주니까요. 현충일이면 국립묘지는 참배객들로 붐빕니다.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짓는 소복한 늙은 어미의 휜 등을 볼 때나, 성인 된 자녀들이 술잔을 올리는 모습이나, 묘비 앞에서 흐느끼는 미망인을 보면서, 생명이 진 자리가 저리도 명징할까, 생각 합니다. 동작동의 국립묘지에 들면 먼저 현충탑과 마주치죠.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들을 보호하리라.” 잠시 옷깃을 여민 후, 묘역으로 향합니다. 도열해 있는 묘비는 다 같은 재질, 같은 크기지만 쓰인 글은 살은 길이 다르듯 하나같이 다릅니다. 따뜻하고, 애절하고, 절절하고, 각각의 그리움과 소망이 새겨있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너를 보내리라.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 저 세상에서 이루어라. 잘 가라 내 아들아” 어미의 한이 서린 어느 국군 소위의 비문입니다. “겨레 위해 바친 목숨, 그 넋이 조국을 길이 빛나게 하리” 생존한 형이 남긴 글이지요. 애잔한 사랑을 보내는 아비의의 글도 눈에 띕니다. “이역만리 월남 전선에서 적 포탄에 쓰러진 전우를 구출하려다 용감히 산화한 23세의 넋이 고이 잠들고 있다... 나는 너를 내 가슴에 묻는다.” “보고 싶은 내 아들아 꿈에라도 한 번 만나다오.” 홀로 된 아내와 자녀들의 글도 마음을 저밉니다. “영원한 사랑을 드리옵니다”(부인), “아버지의 딸 정희와 사위 세용이가 대망의 뜻을 이어 받겠습니다.”(딸과 사위), “축 결혼 신랑 강창규 신부 안동 김씨 임자년 7월6일 양인 백년을 언약함” 영령과의 백년가약도, “아빠 안녕~!” 짧고 명료하게 그리움을 표현한 자녀들의 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비문은 대부분 엄숙한 반면, 서양의 비문은 좀 다릅니다. 비문 자체가 생활의 연장이란 생각을 갖게 하지요. 작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음악가 하이든은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에 맡깁니다.” 겸손함을 보였지요. 영국 시인 에이츠는 “흐르는 물에 이름을 쓴 사람이 여기 누워있다”고 시 한 귀절을 남겼습니다. 절해의 고도 세인트헬레나에 잠든 나폴레옹은 죽기까지 외친 단 한마디 ‘진군이다(Cigit)’를 비문에 새겼다더군요. 한국군 최대의 전투병 파병인 월남전(戰)에서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고 채명신 장군은 죽어서 더 큰 영웅으로 추앙되었습니다. 32만 명이 참전해 3500여명의 전사자를 낸 월남전의 영웅답게 3년 전 세상을 뜨면서 “나를 장군묘역에 안장하지 말고 전우들이 잠든 사병묘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1/8 크기인 월남전 참전용사 사병묘역을 택한 거지요. 수많은 아들들이 전장에서 원한을 삼켰는데 사령관 혼자 편하게 누울 수 없다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과 묻히길 원한 것입니다. 사람은 죽은 뒤 받는 평가가 진짜라는데, 그는 죽어서도 리더의 품격을 빛낸 참 군인이었지요. 서양에는 2차 대전의 영웅 죠지 패튼 장군이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뼈가 굵은 죠지 패튼은 미국의 기갑군단을 이끌고 독일군을 격파해 유럽전(戰)을 승리로 이끈 영웅입니다. 당시 연합군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진짜 영웅이지요. 그는 생전에 “내가 죽으면 미국으로 운구하지 말고 장병들 옆에 눕겠다”고 말한 대로 룩셈부르크 아덴산맥에 사병과 같은 크기의 동판 아래 영면을 취했지요. “나 죠지는 아덴에서 싸웠던 장병들과 함께 여기 묻혔노라”는 비문과 함께. 두 장군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난 영웅입니다. 보통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을 생각하지만, 두 장군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참 삶을 사는 방식임을 알았기 때문이죠. 사람이 늙어 죽으면 부음을 알립니다. 우리의 부음과 달리, 미국 신문에 나는 부음 란은 재밌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기본 알림에 덧붙이는 말이 인상적이지요. 죽음을 뛰어넘는 신선한 글귀 때문입니다. “그는 좀 멍청했지만 남을 속인 적은 없다” 고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고, “28세 나이로 죽었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약간의 장난기도 보입니다. 임종에 앞서 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부음기사를 작성해 두는 노인이나 환자가 늘고 있다합니다. 소수가 보는 유서와 달리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밝히는 솔직한 내용으로요. 하긴 떠나는 마당에 미사여구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들... 다 부질없는 일이겠지요. (소설가) Daum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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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더 큰별이 된 '리더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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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도 꿈이 아닐까
- 다뉴브 강 유람선 침몰로 26명의 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여섯 살 어린 딸과 헝가리 여행 중이던 3대 가족이 모두 변을 당했다는 비보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죽음이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손녀와 젊은 엄마, 떠나기에 이른 6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 우리 집도 3대가 살다보니 더 애틋하고 속이 쓰라립니다. 그들 가족은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마치 꿈인 것처럼. 삼국유사에 조신(調信)이란 스님이 있습니다. 하루는 강릉 태수의 딸을 보고 한 눈에 푹 빠져듭니다.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흠모하는 마음만 깊어질 뿐... 낙산사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랑의 성취를 간절하게 빕니다. 그런데 어쩌나, 소문도 없이 그녀가 혼처를 정해 떠나가 버렸으니. 고통을 명상으로 수행해온 스님이라지만, 애욕을 명상으로 수행하기에 조신은 너무 젊었습니다. 마음의 정처를 잃고 부처님 앞에 심경을 호소하며 슬피 울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눈물의 기도 때문일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꿈에도 잊지 못한 여인이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겁니다. “부모님 명으로 혼인을 했지만 저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찾아왔으니 같이 살자고 합니다. 순간, 조신의 심장은 얼마나 벌렁거렸을까요. 두 사람은 벅찬 가슴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비록 가진 건 없어도 건강한 몸과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있으니 비가 새는 오두막집이면 어떻겠어요.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했습니다. 아이를 다섯 낳으면서 어언 4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는데, 이상 신호가 감지됩니다. 더듬이 부러진 곤충처럼 방황하며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살림살이는 나물죽을 먹을 만큼 궁색해진데다, 잇달아 비극은 찾아옵니다. 명주의 해현 고개를 넘다가 열다섯 살 큰 아들이 굶어죽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부부는 통곡하며 시신을 거두어 길가에 묻어줍니다. 젊음은 가고 몸은 쇠약해져 병들고, 춥고 배고픈 생활고가 그들을 덮쳤습니다. 또 하루는 열 살 된 딸아이가 구걸을 나갔다 개에 물려왔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방에 누이고 하염없이 흐느끼던 부인이 눈물을 닦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당신과 만났을 때는 젊고 얼굴도 아름다웠으며 입는 옷도 좋았습니다. 음식이 있으면 나누어 먹었고, 몇 자의 옷감만 생겨도 함께 옷을 지어 입었지요. 오랜 세월 정은 거슬림 없이 쌓였고, 사랑도 깊었으니 가히 두터운 인연입니다. 허나, 몸은 쇠해지고 병은 깊어진데다 춥고 배곯는 것도 지쳤습니다. 이젠 사람들조차 내미는 죽 사발을 외면하니 문전에서 당하는 부끄러움은 태산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돌봐줄 방법이 없는 데 어찌 부부의 마음에 애정인들 견뎌내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이고, 난초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풀잎일 뿐. 내가 있어 당신에게 누가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괴롭습니다. 지난날의 즐거움을 생각하니 바로 근심과 걱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쩌다 이 지경에 왔습니까. 새들이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짝 잃은 새가 거울 앞에서 짝을 찾는 것이 되레 나을 것입니다. 추울 때는 버리고 더울 때는 가까이 함이 사람으로 못할 짓이나, 나가고 멈춤이 인력으로 될 일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도 운명에 달린 일입니다. 우리 이만 헤어졌으면 합니다.“ 여인이 정갈하게 정리해주니 남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가족은 흩어져야 합니다. 사랑도 삶도 허망함을 곱씹으면서. 타다 남은 초롱불은 어른거리고 밤도 지나 동이 트려합니다. 아침이 되자 조신의 수염과 머리털은 하얗게 세고, 고통스럽던 인생살이가 넘실대며 주름진 얼굴위로 흘러갑니다.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만 일어나요. 깨어보니 법당에서의 꿈이었습니다. 조신의 꿈은 사랑하는 여자와 한 몸을 이루었으나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먼 옛날의 설화로만 돌리기에는 오늘의 우리네 인생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어제 다뉴브 강 유람선 사고로 희생된 여섯 살 여아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가슴에 파편처럼 박힐 때, 허공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딸도 다 보내고 덩그마니 혼자 남아야할 아빠의 목 멘 흐느낌이... “사랑하는 딸아, 엄마 할머니 손 꼭 잡고 즐거운 여행길 계속 걸으렴. 꽃길만 밟으렴.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말고. 안녕!” 어쩌면 삶도 꿈이 아닐까요? 기억은 무성하고 아름다운데 실체가 없는 꿈. 그런 생각이 엄습해 옵니다. Daum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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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과 신발의 숨은 매력
- 발은 손과 ‘수족’으로 불리면서도 푸대접을 받습니다. 부리는 사람도 이를 미안해하지 않거든요. 손이 호사로운 치장으로 호강할 때도, 발은 음습한 골방에서 시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어쩌다 얼굴에 가까이라도 가면 “그 족 좀 치워!”라는 상소리가 가차 없지요. 이는 발의 가치를 몰라서입니다. 세계적으로 장수부족인 마사이족 마을엔 100세 넘는 장수의 꽃들이 흔합니다. 카이로에는 그들의 장수비결을 찾는 연구소까지 등장해 그 비결을 발에서 찾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매일 20-30㎞를 걷는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특유의 ‘걸음새’ 연구가 돋보입니다. 마치 담배꽁초를 발바닥으로 비벼 끄듯 발목을 안쪽으로 힘차게 돌려 걷는 걸음새를 본 것입니다. 마사이족 장수코드는 ‘발’이었어요. 더 나아가 발을 감싸는 ‘발과 신발’의 코드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장수를 생각한 사람들은 이 숨은 기호를 은밀하게 추적했나봅니다. 여러 문화에도 발에 대한 재인식을 돕는 단초들이 곳곳에 도사립니다. 영화 ‘대통령의 연인’을 보자고요. 홀아비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과 미모의 독신녀 로비스트(아네트버닝)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입니다. 대통령은 그녀를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져듭니다.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데이트를 앞두고 안절부절 못하는 대통령에게 깜찍한 딸이 한 수를 가르칩니다. “아빠, 기회를 잡으면 무조건 신발부터 칭찬해 보세요.” 대통령이 여인을 만나자 딸의 주문을 실행에 옮깁니다. 순간 여인의 눈에서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비로소 남자는 발과 신발이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자 성적 매력의 매체임을 알게 됩니다. 한국 여성이 가장 선망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신데렐라가 아닐까. 주인공이 친모의 도움을 받아 유리 구두를 매개로 왕자와 결혼한다는 구조지요. 신데렐라는 발과 신발이라는 시니피앙, 즉 상징물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줍니다. 못된 새엄마와 두 언니 밑에서 설움을 겪던 신데렐라가 우여곡절 끝에 왕궁 무도회에 참가합니다. 그녀는 차밍왕자와 비몽사몽의 황홀한 스텝을 밟다가 유리 댄싱슈즈와 이브닝드레스의 반납시간을 놓치고 맙니다. 그녀는 허둥지둥 거리다가 구두 한 짝을 흘린 채 궁중을 빠져 나왔죠. 사랑에 빠진 왕자가 아이디어를 내 유리구두에 맞는 발을 지닌 여자를 전국에 수배합니다. 수상한 건 바로 이점입니다. 유일한 단서가 구두라해도 오랜 시간을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면 왜 하필 구두였을까. 몽타주를 만들면 쉬웠을 텐데. 발을 찾는 발상이 수상쩍지 않나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신데렐라는 명성만큼 곳곳에 유사 동화를 전파했습니다. ‘콩쥐 팥쥐’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 것은 구두가 아니란 것이 달라요. 신데렐라 이야기는 두 가지 주장이 엇갈립니다. 발의 크기와 여성의 성적 매력을 소재로 한 동화라는 주장과 이야기의 원형이 중국의 전족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해요. 발의 크기를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은 서양만이 아닙니다. 자이르의 바쿳족의 기혼여성이 차고 있는 쇠족쇄와 중국의 전족이 그랬으니까요. 바쿳족은 결혼 후 맨 먼저 신부를 대장간에 데려가 발목에 맞는 족쇄를 채웠어요. 이를 착용한 여성은 보행 중 수시로 들고 다니던 간이의자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답니다. 중국의 전족도 같은 버전이죠. 여자가 4-5세가 되면 발을 천으로 칭칭 동여매 발육을 정지시킵니다. 이렇게 완성된 전족은 10㎝ 정도라고 해요. 발등은 튀어나오고 발가락은 발바닥 쪽으로 구부러진 기형입니다. 중국인은 이를 궁족(弓足)으로도 불렀어요. 옛 중국에서는 젓가락을 떨어뜨려 이를 줍는 척하며 여자의 전족을 만지는데 가만있으면 이는 남녀간의 ‘길조’로 통한답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하는 동양문화(Shame Culture)에서 발은 숨김의 대상입니다. 춤을 봐도 그래요. 우리의 춤 문화가 발끝을 수줍게 가리는 것을 코드로 한다면, 서양의 발레는 발이 매혹의 꽃이고 향기입니다. 손은 누구나 키스하며 만질 수 있어도, 발은 쉽게 만질 수 없는 은밀한 그 무엇입니다. 우호적 제스처로 나누는 악수나 건배에서 드는 손과 달리, 발은 아무에게나 내놓지 않는 시니피앙입니다. 발과 신발의 코드도 세월 따라 달라집니다. 서자 취급받던 발이 드러내놓고 족상(足相)을 보거나 발관리, 발마사지로 대우를 받습니다. 이제 “섬섬옥수 뿌리치고”는 옛 버전이고, 숨은 진주 발이 신 버전입니다. 앙증스런 신발은 사라지고 군화 같은 신발까지 등장하는 신발 파괴형의 시대지만, 발은 여전히 은밀한 매력 덩어리입니다.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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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과 신발의 숨은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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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삶’을 위하여
- 인간만이 생의 끝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요. 사람은 삶의 유한함을 알기에 죽음에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서 의미 있게 마감하고픈 욕구가 더해집니다. 살아있는 기쁨에 눈뜨고 올바른 삶을 고민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체험하진 못합니다. 다만 앞서 간 사람의 죽음을 추론하거나, 삶의 막바지에 이른 극한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유추합니다. 토마스 모어는 소설 ‘유토피아’로 우리에게 친근한 영국의 작가죠. 그는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했다가 종교적 반역자로 몰려 단두대 처형을 당합니다. 그러나 처형장의 토머스 모어는 태연했고 유머까지 잃지 않았지요. 단두대 받침대에 머리를 올려놓고는 형리에게 말합니다. “여보게, 내 수염이 잘리지 않게 조심하게. 수염은 죄가 없으니까.” 자신의 신념을 유머로 풀어냈던 모어. 그의 일생을 그린 영화 ‘4계절의 사나이’에서의 대사 한 토막이 인상적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자 친척들이 찾아와 제발 왕과 타협해 목숨만은 건지라며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자 “그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고 거부하지요. 끝까지 타협 않고 토마스 모어는 갔지만 우리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거울입니다. 한 사람의 평가는 죽는 순간 드러나지요.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이 보입니다. 유럽을 종횡으로 유린했던 철권 나폴레옹은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 묻혔지만 묘비에는 한마디 ‘여기 잠들다(Ciget)’ 뿐이지요. 죽음이란 극한 상황을 돌아온 사람의 삶을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28세의 포병장교였던 시절, 그는 혁명가담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시베리아 형무소로 갑니다. 영하 50도 설한의 땅에서 아침마다 그날 사형이 집행될 수형자 이름이 호명되면, 또 하루의 생명을 연장하는 삶을 삽니다. 마침내 그도 호명을 받는 날이 왔습니다. 총구 앞에 선 그에게 집행관이 5분의 시간을 주고 인생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그의 생명은 이제 5분뿐.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회한이 넘쳐나고 허송한 28년 세월이 뼈저리게 느껴옵니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삶을 살 텐데...” 입술을 깨뭅니다.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졌습니다. 흰 깃발을 흔들며 달려온 병사의 손엔 황제의 사면령이 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는 삶의 끝 벼랑에서 생명을 탈환하는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역시 삶의 벼랑 끝에 서본 인간만이 지순해질 수 있는 걸까. 그 경계를 체험한 도스토옙스키는 고질인 간질을 앓으면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백치’ ‘악령’ 같은 대작을 남기는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죽음을 아는 사람이 치열한 삶을 살고, 죽음을 절감하는 자가 삶의 환희를 느낍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런 인물입니다. BC399년 70세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독배를 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어리석은 아테네 시민법정은 타락한 시민의 정신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기 때문이죠. 교만과 허영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각성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여준 사람이지요. ‘악법도 법’이란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그는 기꺼이 법의 미명아래 내리는 독배를 받아듭니다. 그의 입에서 마지막 무슨 소리가 나올까,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내린 아테네 시민대표 500명과 눈을 맞추면서 말합니다. “이제 떠나갈 시간이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가오. 누가 더 행복할까. 그건 신만이 알 것이오.” 사람들 가슴에 끌질을 남기고 소크라테스는 유유히 떠납니다. 그는 생전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살기를 원하느냐? 바로 살아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진실 되게, 아름답게.” 그리고 철학이 무어냐고 묻는 학생에겐 ‘죽음을 생각하는 학문, 죽음을 훈련하는 학문’이라고 쉽게 가르쳤어요. 죽음은 진실로 삶을 철학케 합니다. 사람은 생김과 생각이 다 다르지만 응애 하고 울다가 꼴깍 하고 죽는다는 것, 그것을 일찍 숙지하는 사람일수록 ‘죽어있는 삶’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겠지요.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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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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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안나 카레니나’
-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름으로 불행하다.”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소설로 읽히는 ‘안나카레니나’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이 문장 하나를 얻기까지 열여섯 번 고쳐 썼다. 우리네 인생을 함축한 표현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세계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중 하나로 꼽힌다. 간결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아리송한 이 글귀에 끌려 소설을 읽은 지 50년이 지났는데,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매혹의 첫 문장이 곧바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바람피운 남편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는 가정의 파경으로 펼쳐진다. 분노한 아내는 더 이상 남편과 한집에서 살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인들도 저마다 살길을 찾아 뿔뿔이 떠나버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치되어 제멋대로 산다.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위기에 처한 이 가족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소설 속 여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파국의 원죄인 문제 남편의 여동생이다. 안나는 고위직 관료인 남편과 아홉 살 아들을 둔, 외견상 모든 게 완벽한 행복의 여건을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의 주선으로 망가진 오빠 집안을 봉합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행이 잉태되었다. 정작 안나 자신이 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기 가정을 깨뜨리는 상황으로 번지고 만 것이다. 가벼운 쾌락을 좇는 바람둥이 남자는 쾌락을 즐기는 것으로 행복을 꿈꾸지만, 안나는 단 한 번의 진짜 행복, 진짜 사랑에 눈을 뜬 여인이었다. 그렇게 진실된 인생을 갈구했던 여인을 ‘외도’라는 이름 아래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건 일견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 모순을 잘 알기에 톨스토이는 연민의 손길로 안나의 인생을 어루만진다. 작품 구성상 안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하고 용서한 듯하다. 소설은 생명체로서의 그녀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생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사실 안나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 대부분이 죄를 짓고 산다 우리들처럼. 믿었던 누구는 배반하고, 누구는 증오하고, 누구는 위선적으로 산다. 또 누구는 이기적이며 때로는 도덕적 우위를 가장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 서로가 ‘내 잘못은 없다’고 주장한다. 잘못하지 않은 나는 행복해져야 하고, 불행해져야 할 사람은 바로 너라고 생각하면서…. 각자 입장으로 들어가 생각하면 때로는 실제로 죄가 없을 수도 있다.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죄가 경우에 따라 충분히 이해받고 용서받을 만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저 높은 창공에 뜬 매의 눈을 하고, 한쪽은 평화롭고, 다른 쪽은 전쟁터가 된 가정을 들여다본다. 한쪽은 이유를 막론하고, 이유를 초월해 온 가족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데, 다른 한쪽은 각자 이유를 들이대며 원망하고 갈라지고 시끄럽기만 하다. 톨스토이가 그려낸 소설 속 조감도의 포인트는 첫 문장에 다 나와 있다. ‘모두가 닮았다’와 ‘모두가 다 다르다’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은 한마음으로 한 몸을 이룬 관계일 때이다. 그러나 행복의 모습을 그렸던 톨스토이 자신은 평생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박물관에 가면 톨스토이의 가족 초상화가 있는데, 의미심장하게도 톨스토이 부부의 시선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만큼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 같다. 행복이란 이 단순 명료한 원리가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도 복잡하고 어렵게 얽히는지…. 누구나 잘 아는 뻔한 얘기에 불과한 사실이 결코 뻔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지닌 심오한 진실이 ‘안나카레니나의 법칙’이란 말을 낳았다. 소설은 언뜻 보면 가족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 보일 수 있으나, 좀 더 파고들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 그 힘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 법칙은 가족의 행복에 기여하는 특정한 요소가 있는데 이런 요소가 행불행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원활한 의사소통, 상호존중, 가치관의 공유, 일치된 목적의식 등의 요소는 갖출수록 가족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내 아들엔 왕자님의 DNA가 있다”라며 담임교사를 호통친 교육부 사무관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주연은 오직 나뿐이고 남은 다 나를 돕는 조연 아니면 엑스트라로 생각하는 걸까. 세상이 갈수록 자기애에 몰입하고 환각에 빠져드는 것 같다. 먹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에도 마을이 하나가 되었는데 달 여행이 현실화 돼 가는 21세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서로가 닮기를 거부하고 제각각의 이유로 시끄러운 시대, 이 불행한 사회를 살아내려니 힘들고 혼란스럽다. 물질문명은 갈수록 풍요로운데 언제라야 분열 없이 화목한 자아, 가정, 사회가 이루어질까. 풍요 속의 반작용일까? 죄를 짓고도 천연덕스럽게 결백을 주장하고, 법적 대응을 공언하며 들레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불같은 사랑도 한철인 것을, 자기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공과 행복을 꿈꾸는 현대인들. ‘성공은 모든 실패 요인들을 모두 피할 때 가능하다’는 ‘안나카레니나의 법칙’이 이 사회를 더 냉혹하게 한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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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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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고 한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원래 말이란 대충 해도 통하게 돼 있다.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말을 배우는 아기들이 한두 단어만 오물거려도 가족들과 소통이 이뤄진다. 주어와 술어가 상응하지 않은 비문이거나 표현이 정확하지 않아도 의사 전달이 가능한 게 언어다. 말이 안 되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언어의 잉여성 또는 융통성 때문이다. 언어는 원래 품이 넉넉해서 표현이 조금 모자라도 소통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언어에 융통성이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할까.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융통성이 가져오는 해악도 만만치 않다. 요즘 세태를 보면 이를 악용해 별 이상한 신조어들이 양산돼 언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정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세상’에 놀랄 따름이다. 말은 문법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고받도록 설계돼 있다. “말에서 사람의 인격을 본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 말이 되고, 말씀이 되고, 말투가 된다. 말에서 가장 고약한 것이 ‘말투’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상처가 되는 말은 가장 친근해야 할 부부간에, 친구 간에 가장 많다는 연구도 있다. 일반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는 쉽게 아물어도,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처가 깊다. 개에 물리면 병원에 가면 되지만 말에 잘못 베이면 반영구적 상처가 될 수 있다. 말도 흉기처럼 마음을 해친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자식들에게 험한 말을 쓴다 해서 ‘욕쟁이 엄마’로 불리던 분이 계셨다. 아들 쌍둥이에, 연년생 아들을 둔, 7남매의 엄마였다. 어디 그 엄마뿐일까. 척박한 경제 환경에서 여러 자식을 키운 엄마들에게 거친 말은 흔히 보는 일이었다. 내가 어른이 돼서야 그 시절 엄마들의 말투가 이해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연민부터 앞선다. 얼마나 사는 게 고단하고 힘들었으면 해서는 안 될 말이 자식들을 향했을까. 6.25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시절, 집집이 겪는 경제적 궁핍과 찌든 생활로 모두가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 때의 일들이다. 자식들도 생기는 대로 낳다 보니 한집에 예닐곱은 보통이고 10남매도 흔했다. 자식들 배곯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대가족의 수발을 다 들다 보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쌓이는 빨래 더미에 눌리고 손목이 아프도록 비벼 빨아 입혀 보냈더니 한나절도 안 돼 흙장난으로 휘질러 돌아오질 않나... 썰매 타러 나간 형제가 얼음이 깨쳐 젖은 바지를 불에 말리다 태우고 오질 않나... 자식은 자식 대로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는데, 가장이란 분은 술주정이라는 이름 아래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쩌면 자식을 향한 모진 말투는 엄마의 화를 푸는 통로였는지 모른다. 일에 치여서 머리는 터질 듯한 데,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자식들은 일만 저질러 엄마를 울리니…. 쏟아 낼 입마저 없었으면 쌓이는 스트레스로 정신인들 온전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고달팠던 그 시대 여인들의 삶에 가슴이 짠해진다. 친구와 노천카페에 앉았는데, 중학생 또래들이 시끌벅적 지나간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대화가 하나같이 상스러운 비속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SNS상에 오르는 언어는 더 심각하다. 애도 어른도 욕지거리로 도배를 하고, 댓글 창에는 인격이란 아예 없는 쓰레기들로 난무한다. 낯 뜨거운 말은 방송에도 버젓이 나오고 있다. 예전엔 방송심의실이라는 곳에서 방송에 부적합한 말을 엄격히 걸렀는데 지금은 그러한 제방이 무너졌다. 말의 유희를 따르는 외래어의 범람, 술자리에서나 주고받을 비속어, 천박한 말들이 출연자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지고, 여기에 자막까지 달아 흥행을 돋운다. ‘말이 타락하면 나라가 타락한다’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우리 사회의 언어 타락이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말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예부터 선비의 덕목으로 꼽는 것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몸가짐을 잘하고(身), 덕스러운 말(言)을 공부보다 앞세우라는 뜻이다. 어려서부터 덕스러운 언어의 습관을 들여야 함은 말이 곧 사람이고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존댓말을 쓰게 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려서부터 말만 곱게 쓰도록 가르쳐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언어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처방이 될 것 같다. 친구 사이에 존댓말을 쓰고 아무개님으로 부르는 초등학교도 있단다. 100년 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끼리라도 존댓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지금도 학창 시절 교단에서 또박또박 존댓말을 쓰신 선생님을 존경했던 기억이 난다. 언어 예절이 살아야 교육도 사회도 정화된다. 언어는 우리의 일상을 휘감고 있는 산의 숲과 같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한 나무가 해충으로 병들면 온 숲이 망가지기 쉽다. 겸손하고 선한 말, 배려하고 정제된 말이 향기 나는 언어의 숲이다. 처세의 으뜸은 사람의 말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내가 습관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그 뒤로는 습관이 나를 부린다. 좋은 언어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밸 때, 비로소 웅변은 은(銀)이고 침묵은 금(金)이 된다. 사람 사이에 궁합이 있다면 말에도 궁합이 있다. 내가 아무리 언변이 뛰어나고 모두가 내 말에 귀를 쫑긋하는 것 같지만, 저들 중엔 나와 궁합이 틀린 사람이 있다. 말을 할 때마다 이를 깨닫는다면 말이 길어지지 않고, 말수를 줄이게 된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다. 생각과 정신, 내 영혼까지 담아내니까. 말에는 정령(精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험한 세상을 사는 데는 위로와 격려, 보듬는 말이 최고의 표현이자 선물이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덕스러운 말을 건네었을까. 나의 말버릇은 어떠한가? 한 번쯤 되돌아보면 어떨까. (*)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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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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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과 음악가의 영감
- 오페라가 막을 내리면 무대 위에 펼쳐졌던 치열한 삶들은 사라집니다. 사랑과 증오에 불탔던 배역들은 흩어지고, 객석의 사람도 모두들 떠나가지요. 조명이 꺼지면 사방이 곧 흑암에 같힙니다. 인생이 덧없기가 들에 핀 꽃같이 짧고 허망합니다. 남산 밑을 걷다가 한 게스트하우스 앞에 내걸린 팻말이 눈을 환하게 해주었어요. ‘거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 그 공간의 낭비를 아름다운 음률로 채우는 사람, 곡을 짓는 음악가란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만큼 시공을 넘나들며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없습니다. 그중에도 클래식은 어제와 오늘 내일의 공간을 이어놓는 감성의 영역입니다. 그 바탕에 그리스 로마 신화와 함께 서양 예술사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성경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신간 ‘바이블 클래식’(김성현 지음)은 수많은 작곡가가 어떻게 성경을 통해 영감을 얻어 명곡을 탄생시켰는지 클래식 작품 속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많은 예술가의 일생이 불우했듯이 그늘진 삶을 산 음악가도 의외로 많습니다. 종교음악은 생각보다 시대와 장르를 초월해 폭 넓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헨델은 유명한 합창곡 ‘할렐루야’가 나오는 ‘메시아’ 같은 많은 종교곡을 남겼고, 우리가 잘 아는 바흐, 비발디, 멘델스존, 구노, 20세기에 활약한 쇤베르크, 메시앙, 스트라빈스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경 속 이야기는 작곡가가 처한 현실에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게 했지요.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믿음이 충돌할 때, 경제적 궁핍과 예술적 자각 사이를 방황할 때, 삶의 결정적 순간마다 종교적 영감이 작동해 많은 곡이 탄생합니다. 헨델은 40년간 영국과 유럽에서 오페라 음악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 지만, 자신의 명성에서 덧없음을 느낍니다. 나이 들고 빈털터리가 된 뒤에는 뇌출혈까지 겹쳐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었어요. 암울한 그에게 한 시인이 찾아옵니다. 시인은 성경 읽으며 영감을 받아 썼다는 시 한 편을 내밀고 작곡해줄 것을 제안합니다. 별 관심 없이 시를 받아 읽던 헨델의 동공이 한 순간 열리기 시작했어요. “그는 멸시를 받아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지라 그를 위로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이사야서 구절이 헨델 마음에 큰 울림으로 파동쳤어요. 세상에서 얻은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헨델은 펜을 잡고 오선지 끌어당겨 작곡을 시작했어요. 작곡을 하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그렇게 21일간 쉬지 않고 매달려 세기의 명작 <메시야>를 탄생시켰습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도 우리에게 친근한 곡이죠. 파리외방선교회가 세운 학교에는 음악 신동 구노와 음악천재로 불린 친구가 다녔어요 둘은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였는데 친구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길이 갈렸습니다. 사제의 길을 간 친구는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고 이 소식을 들은 구노는 친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따금 학교 게시판에 순교자 이름이 붉은 글씨로 붙을 때면 구노의 가슴엔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했어요. 얼마 후, 구노는 게시판에서 친구 엥베르가 ‘조선대교구 주교’가 돼 죽음의 땅 조선으로 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랍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가 어렵다는 곳. 순교를 위해 조선에 간다는 말이 나돌던 때니까요. 구노는 날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했습니다. 어느 주일, 요란하게 종소리가 울렸어요. 종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던 구노는 이날 게시판 앞에서 얼어붙습니다. ‘엥베르 주교 조선에서 순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의 마지막 편지가 떠오르며 더 마음을 아프게 했지요. 구노는 뒷동산으로 뛰어가 성모상 앞에서 목 놓아 울며 ‘성모송’을 만들어 바치게 되었어요. 그것이 ‘아베마리아’ 성모송입니다. 구노가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남긴 ‘아베마리아’ 성모송인 셈이죠. 순교한 엥베르 성인은 지금 명동 대성당 지하에 묻혀 있습니다. 인연은 이렇게 엮이기도 합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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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과 음악가의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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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들어주는 나무
- 사람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는 누굴까. 동물로는 개와 소, 식물로는 나무일 것입니다. 가난한 농가에도 집집이 나무 한두 그루씩은 자랍니다. 감나무, 대추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할아버지는 자손이 하나 생기면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한 그루 한 그루 심을 때마다 정성을 다하셨고 당신만의 기원을 함께 묻으셨죠. 8남매를 두셨으니 여기서 자손이 늘 때마다 할아버지는 덩달아 바쁘셨습니다. 출산 소식이 오면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무시장에 나가 수종을 고르셨고, 선택된 나무는 당신의 뜻에 따라 울안 어딘가에 심어져 우리집 새 가족이 됩니다. 북을 주고 때로는 둘레에 막걸리를 붓기도 하셨어요. 토양 세균들의 증식을 도우려는 뜻이지요. 제법 큰 나무를 이식할 때는 자랐던 곳의 흙을 떠와 섞어주기도 하십니다. 낯선 땅에 적응을 잘하라는 정성일 것입니다. 노년의 할아버지는 그것이 낙이셨고 나무 돌보는 일을 보람으로 아셨습니다. 그러자 과실수와 꽃나무들이 마당과 뒤란으로 자리를 넓혀가면서 해마다 가지치기 하는 것도 일이 되었지요. 손이 귀한 집 외아들로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사랑이야 한껏 받고 자라 셨겠지만 일면 외롭기도 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나무를 벗삼아 취미 삼아 재미를 붙이신 모양입니다. 할아버지 무릎에서 자라며 가장 많이 들은 것도 나무 이야기였으니까요. 막내 삼촌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할아버지는 조석으로 삼촌 나무인 단풍나무를 찾아서 상심을 달래던 모습이 아련합니다. 그 때 할아버지가 나무를 통해 자손을 보고 계신다는 걸 느꼈어요. 아픈 자손이 생기거나 집안의 이런저런 대소사와 만날 때면 나무와 끊임 없이 교감하십니다. 혼기를 놓친 고모를 위해서는 매일 같이 뒤란의 오동나무를 찾아 생시처럼 당부하셨죠. ‘금년 넘기지 마라’고. 사람이 머문 자리는 늘 이야기를 남깁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평 양수리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은 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400년 된 보호수 은행나무가 주인공입니다. 치유 나무라는 신령함까지 더해 ‘이야기 들어주는 나무’로 제법 유명세를 탑니다. 그 옆으로, 바람과 물과 나무가 어울리는 북한강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카페 ‘수수’가 있고요. 이곳 테라스엔 250년 된 또 다른 느티나무가 서 있어 은행나무와 짝을 이뤄 옛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들어주는 나무’에는 어떤 빛깔의 이야기가 있을까. 오랜 세월, 풍우 한설을 견뎌온 늙은 은행나무는 찬 강바람에 속살을 드러낸채 강을 타고 오를 춘심을 기다립니다. 원래 이 자리는 6.25 전쟁 때 미군 야전병원이 있던 곳이래요. 전선에서 전상자를 실은 후송 차량이 이곳 야전병원에 도착할 땐 사람만 오는 게 아니랍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함께 실려오죠. 이역만리 낯선 땅에 와서 부상을 입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가슴에 쌓이는 건 그리움이고 보고 싶은 얼굴들입니다. 병동 앞으로는 무심한 강물이 흐르고 뒤로는 허허로운 들판뿐, 마음을 위로 받을 무엇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가슴에 쌓이는 말입니다. 부상병 막사엔 불면의 밤이 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병사도 따라 늡니다. 산은 사람에게 안정을 주지만, 물은 충동을 일으킨다는 걸 북한강 암록빛 물결에서 깨닫죠. 고립무원의 부상 병사들을 맞아준 것이 북한강변 은행나무였어요. 70년 전이면 나무는 더 젊고 무성했겠죠? 풍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병사들의 애환을 들어줍니다. 우는 병사의 눈물도 씻어주고, 언젠가부터 후송온 병사가 맨 먼저 신고하는 곳이 나무가 되었답니다. 이심전심, 은행나무 이름이 ‘이야기 들어주는 나무’로 불리게 되면서죠.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병사들에겐 아름답고 슬픈 추억속 이름입니다. 5년 전 한국인 얼굴의 미국 청년이 이 나무를 찾았습니다. 시카고에서 서울로 출장가는 아들에게 늙은 아비가 미션을 주었다고 했어요. 양부는 자신을 입양시킬만큼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지녔다고 합니다. 꾀벗은 은행나무를 돌아보는 아들 얼굴이 감개에 젖습니다. 둘레 7m의 나무는 세월에 깎여 나무 중심부가 텅비어 시멘트로 메꿔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나무를 그리워 하셨어요. 사진을 보시면 무척 행복해 하시겠죠.” 찰칵찰칵, 연방 셔터음이 터지고, 촬영을 마친 아들이 나무 앞에 서서 거수 경례를 올립니다. “아버지께 잘 계시다고 안부 올릴게요. 오래 사십시오. 땡큐!” -글 이관순 소설가/ daum 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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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들어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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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벼움
- 20년 넘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 책을 쓰기 위한 만남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한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인데도 한결같이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시간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면서 각자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시간만큼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없지만 불평등한 것도 없다. 사람에 따라 같은 시간을 갖고도 일군 결과물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사람과의 경쟁인 것 같아도 실은 저마다 시간과의 경쟁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정신 사나운 발짓 같은. 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들이는 내공이 오르려는 결심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남 없이 다 그러한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시간과 밀당을 하다가 훌쩍 중장년이 되고, 어느새 정년퇴직이란 깃발 앞에 하차라는 낯선 길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만남이 줄어들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20~30대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대책 없이 불거질 때도 있다. 나를 지탱해 주던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내일만 보이니 정처가 딱할 수밖에…. 평균 예닐곱의 단톡방을 갖고 있어도 나이가 들수록 호불호가 나뉘고 친구의 영역은 좁아진다. 진심으로 사귐을 갖는 친구 열 명을 세기가 간단하지 않다. 나이 들어도 자기 관리를 잘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서로의 욕구를 풀어주고 위로하며 걸을 수 있는 친구란 극히 제한적이다. 벌써 삼십 년 전 일이다. 큰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인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구십 노인의 몸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 자락 바람에도 바스러질 것 같은 앙상한 팔다리와 계곡진 가슴과 드러난 등뼈를 보고 옥상에 올라가 눈물을 흘렸다. 그 기억이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접하면서 되살아났다. 선생의 마지막 증언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아프시면서 매일같이 몸무게를 쟀다. 50kg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마음을 쓰셨다. 하루의 컨디션이 그날의 몸무게에 따라 출렁였다. 빠지는 몸무게가 그렇게 서운하신 지 “평생소원이 100근(60kg) 되는 것이었는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운동선수처럼 애석해하셨다.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는 것 같아. 매일 가벼워져. 옛날엔 몸이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늙으면 눈물도 한 방울 이상을 흘릴 수 없다네. 가벼워져서 많은 걸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이어령 선생의 글은 늘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흐느끼며 한참을 울 수 있는 것도 젊은 날의 축복이다. 그 옛날 옥상에 올라 주체할 수없이 흐르던 눈물 같이. 그때는 사내가 웬 눈물이 많으냐고 할머니가 걱정을 다하셨는데, 아버지가 어느 날 “눈물이 속절없이 말라버린 갈천이 되었다”라고 툭 던지신 말씀이 벌써 나의 말이 되는 것을 느낀다. 평생을 두 발로 혼자 걸을 줄 알았는데 지팡이를 짚으시면서는 “마른 수수깡처럼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라는 그 말씀도 나름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가벼워진다’는 말에서 슬픔의 냄새가 났다. 늙은 몸은 하루에 얼마씩 가벼워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앞서 보내고 10년을 홀로 사시면서 “하루에 깃털 몇 개씩 빠지는 것 같다”라며 가벼워지는 육신을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내겐 몸은 가벼워지되 존재의 무게는 반대로 버거워진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들렸다. 그것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친구에게서 느꼈다. 인생을 함께 나눈 친구는 지난해 아내를 유방암으로 작별했다. 48년을 함께 살은 생의 동반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온통 세상의 무게가 그의 어깨 위로 쏠리는 것 같았다. 같은 해 또 한 친구는 43년을 함께 살던 아내와 이혼했다. 각기 다른 아내의 부재를 겪는 친구들이지만 배회하는 쓸쓸한 눈빛은 비슷했다. 뜨거운 발열로 짝을 찾아 시작한 삶이 차가운 이별로 끝나는 건 결혼과 이혼뿐인가. 생과 사도 같은 과정이 아닌가. 사별로 인한 별리의 슬픔도 크지만, 살면서 갈라서는 이별은 또 다른 아픔이다. 1년 전 황혼 이혼한 친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이 무언가를 조금씩 쌓아 올리는 기쁨의 것이라면, 이혼은 적은 하나까지 몽땅 까놓고 나눠야 하는 가늠조차 어려운 그 기분”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은 이혼을 하고도 예사롭게 만나 식사도 한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마저 예사롭지 않다. “공유했던 시간이나 추억까지 나눌 것과 폐기할 것을 가르는 허망한 인생 세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내린 삶의 뿌리가 깊어서일 것이다. 오늘 아침, 조카가 결혼 8년 만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반가운 출산 소식을 들었다. 만인의 축복을 받을 만한 집안의 경사다. 시험관 아이로 어렵게 탄생한 아기에게 엄마는 무슨 말로 기쁨의 첫 운을 뗐을까. 한쪽에서는 주먹을 꼭 쥔 생명이 태어나 그날부터 무게를 더하고, 다른 한쪽에선 서서히 주먹을 풀며 매일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두 손에 시간을 꼭 쥔 존재와 시간을 놓는 존재가 상극으로 교차하는 세상 가운데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하루에 ‘몇 그램’씩….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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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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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 지난달 경기도 퇴촌으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볕바른 잔디밭에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여전히 병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근육은 좀 더 굳어져 보였고 어눌한 말과 낮은 소리는 조금 더 느려져 물컵을 드는 데도 손이 많이 떨렸다. 4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파킨슨병으로 10년째 투병 중인 하버드대 출신의 물리학자였다. 그때보다 병이 진행되어 보였지만 그는 “끈질긴 재활운동과 특수치료를 받은 덕에 화장실 출입 정도는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며 웃었다. 그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가 며칠 전 출판사로 나를 찾는 전화를 걸어왔다.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내겠다며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연락을 준 것이다. 일부 원고에 첨삭을 했다면서 의자 위에 놓인 두툼한 원고 봉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왜 마음이 바뀌었느냐고 안 물으세요?” 나를 바라보며 묻더니 스스로 답을 대신했다. “막상 다 된 원고를 읽고 나니까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을 책으로 엮어낸다는 게 구차하게 느껴져 포기하려 했는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더라”라고 했다. 그녀를 각성시킨 것은 민들레였다. 봄날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돌쩌귀에 눌린 채 얼굴을 내민 노란 꽃 민들레가 그렇게 가여웠단다. “한참을 슬프게 내려다보는데 민들레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거 같았어요. 나는 살아야 한다고요. 꼭 살 거라면서 나를 향해 환히 웃는 거예요. 무거운 돌이 가녀린 몸을 짓누르지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사명인 것처럼. 그날 집에 돌아와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민들레가 나보다 사려 깊고 근성 있고 당차다는 걸 알았거든요.” 한 철을 살다가는 생명도 저리 모질게 버티는데 이 좋은 환경 다 누리면서 65년이란 세월을 살고도 그만한 인내도 못 배웠느냐고! 부박한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서 서랍에 넣어둔 원고를 다시 꺼냈다. 형식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위로 글이지만, 같은 30대 젊은이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투병에서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난 병상의 아들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듯, 교훈스러운 말투는 가려내 버리고 엄마의 곰삭은 언어로 몸과 마음이 지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더 굳어진 손가락으로 원고를 치는 작업은 고난이었을 것이다. 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30분만 자판을 두드려도 온몸이 뒤틀려 며칠을 끙끙 앓았다는 그녀.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쓴 글을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자각에 정신이 번쩍 난다”라고 했다. 그는 파킨슨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 이런저런 수술을 받았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 발목에 금이 가고 어깨뼈가 탈골되는 등 여러 차례 변고를 겪었다. 고통은 쌍으로 온다더니 이태 전엔 갑상선암과 자궁근종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을 원망할 때인데, 그 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 그분의 존재를 의심할 때였어요.” 그 말을 하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죄송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금 감정을 추스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간밤 꿈에 꽃밭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어깨에 앉아 노래를 불렀어요.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해지길 원하시지 결코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요. 잠에서 깨났는데 그 말이 생시처럼 선명했어요. 이 고통은 내 일생 중 한 부분이 일으킨 일탈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세상이 온통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라는 것도 알았어요. 노란 민들레가 그렇고, 꿈에 찾아온 새가 그렇고, 오늘은 선생님이 나를 응원하시잖아요.” 편안한 얼굴로 나를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는 것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는가. 고통 없이 살기를 원한다는 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래요. 봄은 아름답고 환할 뿐인데 김영랑 시인은 찬란한 슬픔을 이야기했잖아요. 고통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거예요. 처음 진단을 받을 때의 그 끔찍함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는데도 실상은 좋아진 거예요 지금이. 그때 쉽게 포기해 버렸다면 참 많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내 마음조차 나를 비웃었겠죠.” 성경의 욥 이야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내가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으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6).’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롬 5:3-4).’ 그녀는 성경의 이 두 구절을 닳도록 입에 올리며 구원을 노래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밖에 있는 현대 의술이나 명의를 좇아 다녔는데, 이젠 앙팡지게 안에 있는 나를 찾고 의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 비로소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걸 깨친 거죠.” 그 뒤로 몸이 오그라드는 통증이 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버텨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최후의 사명인 것처럼. 무엇을 잡고 인생을 견뎌낼 것인가? 원고가 담긴 USB를 받아 일어서면서 그에게 같은 말로 위로를 전했다. “맞아요. 예수님도 홀로 십자가의 고초를 견디셨으니까요. 창조주이신 그분을 신뢰하고 참고, 견디며 은총을 소망하세요”라는 말로… 그날 그와의 만남은 이 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 저녁 발문을 썼다. 그의 ‘참고, 견디고, 기다림’의 이야기는 곧 서점가에 나올 것이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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