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17(목)
 

아이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일 때가 있습니다. 하다하다 안 될 때, 엄마도 화가 나 그래 언제까지 우나 실컷 울어봐하고 돌아섭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돼 울던 아이의 울음이 개울물 소리처럼 잦아들고 훌쩍거리던 아이는 지쳐 잠이 듭니다. 사실 우는 것만큼 에너지 소비가 큰 것도 없습니다. 온 몸의 장기를 다 흔들어 놓는 일이니까요.

 

우는 것이 직업인 곡비(哭婢)를 아시나요? 울어서 먹고사는 사람. 예전엔 사람이 죽으면 고인이 가는 길을 밝혀준다는 뜻에서 소리 내어 우는 장례 풍습이 있었지요. 상을 치르는 동안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죽은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체면 때문에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양반가 상주를 대신해 곡을 해주는 역할을 곡비가 합니다.

 

잘 풀어놓은 곡()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그동안 갈등했던 사람들 간의 서운함도 눈 녹듯 녹여냅니다. 그뿐인가요? 문상객까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줍니다. ‘울음으로 길 밝히는 곡비는 곡비 이야기를 그린 역사동화책입니다. 동화는 아이들만의 책이 아닙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읽고 듣고 공감하는 가족문학에 가깝지요.

 

은실이 어머니 집안은 대대로 곡비였습니다. 엄마가 곡비면 딸도 곡비여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 은실과 그 시대를 사는 백성들의 역사를 담았지요. 명성황후의 억울한 죽음에도 울지 않는 곡비 은실이 되려는 모진 이야기가 마음을 저밉니다.

슬프지 않은데 울어야 하는 곡비의 운명에서 벗어나고파, 은실은 엄마에게 입찬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엄니는 사람이 많이 죽어야 좋겠네!” 그래도 엄마는 성을 내지 않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엄마가 딸을 옆에 앉히고 곡을 가르칩니다. “잘 듣고 따라 해라엄마는 양손을 바닥에 짚고 머리를 조아리며 구성지게 곡을 뽑지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반응이 없자 다리를 툭 칩니다. 따라하라는 신호지만, 은실은 꿈쩍도 않습니다. 이번엔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은실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었어요. 아랫입술을 물고 눈을 흘겨도 소용없습니다.

 

울어라. 네가 울면 곡 값으로 두 배는 받아 이것아.” 엄니가 귀엣말로 말하자 딸이 엄마를 빤히 보고 말합니다. “슬프지 않은데 어찌 울어? 엄니는 우는 게 왜 그리 쉬워?”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는 은실의 입을 엄마가 틀어막습니다. “왜 우는 게 싫으냐?” “우는 게 좋은 사람도 있남.” “남의 돈 그저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난 곡비가 싫어. 엄니처럼 울지만 않는 일이면 다 할 거야.”

 

어머니가 죽자 은실은 한양으로 올라오고, 운 좋게 서양 아주머니 손탁을 만난 인연으로 손탁호텔에서 일하게 됩니다. 호텔 일 배우면서 학당에서 공부하고 호텔매니저의 꿈을 키우지요. 곡비가 아니라 호텔 매니저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은실은 이곳에서 우는 여자가 아니라, 거꾸로 웃어야 하는 여자로 성장합니다.

 

어느 날, 은실은 남자에게 지나온 삶을 이야기합니다. 먹고 살자고 평생을 울고 살 수는 없었다고, 뒤바뀐 자기의 운명이 신기하듯 그랬던 내가 호텔에서 일하니 희한한 일이지? 호텔에서는 손님에게 친절하고 항상 상냥하게 웃어야 하잖아.” 은실은 그것이 어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질게 다그쳤지만 속마음은 곡비가 안 되도록 기도했을 것이라고. 이제야 어둠에 잠겼던 것들이 보이고, 곡비 엄마가 그리워집니다.

 

나 어렸을 때 엄니한테 막 대들었어. 곡비가 좋으냐고. 그때 엄니가 그러더라. 저승 가는 사람에게 울음으로 길을 밝혀주니 좋다고.” 이제야 엄마가 한 일이 좋은 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산 사람끼리도 위로하지 못하는 세상에, 죽은 사람을 위로해 주니 귀한 일 아닐까. 이승에서 슬피 울던 기억은 다 지우고 부디 저승에선 울지 말라고, 엄마는 그렇게 당부하며 울었겠지.

 

세상이 힘들고 거칠어지니 사람들 마음도 부풀어 오릅니다. 누가 옆구리라도 쿡 찌르면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이... 갈수록 세상은 휘황찬란한데 샹들리에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은 군상은 늘어만 가죠. 울분과 원망으로 가슴 아픈 사람들. 그들을 위해 울어줄 사람 없을까. 서러운 마음 풀어줄 그런 현대판 곡비라도 있었으면.

(소설가 이관순)

 

 

태그
첨부파일 다운로드
아-1.jpg (9.3K)
다운로드

전체댓글 0

  • 3694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저 세상에서는 울지 마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