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7(월)
 

발은 손과 수족으로 불리면서도 푸대접을 받습니다. 부리는 사람도 이를 미안해하지 않거든요. 손이 호사로운 치장으로 호강할 때도, 발은 음습한 골방에서 시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어쩌다 얼굴에 가까이라도 가면 그 족 좀 치워!”라는 상소리가 가차 없지요. 이는 발의 가치를 몰라서입니다.

 

세계적으로 장수부족인 마사이족 마을엔 100세 넘는 장수의 꽃들이 흔합니다. 카이로에는 그들의 장수비결을 찾는 연구소까지 등장해 그 비결을 발에서 찾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매일 20-30를 걷는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특유의 걸음새연구가 돋보입니다. 마치 담배꽁초를 발바닥으로 비벼 끄듯 발목을 안쪽으로 힘차게 돌려 걷는 걸음새를 본 것입니다.

 

마사이족 장수코드는 이었어요. 더 나아가 발을 감싸는 발과 신발의 코드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장수를 생각한 사람들은 이 숨은 기호를 은밀하게 추적했나봅니다. 여러 문화에도 발에 대한 재인식을 돕는 단초들이 곳곳에 도사립니다.

 

영화 대통령의 연인을 보자고요. 홀아비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과 미모의 독신녀 로비스트(아네트버닝)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입니다. 대통령은 그녀를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져듭니다.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데이트를 앞두고 안절부절 못하는 대통령에게 깜찍한 딸이 한 수를 가르칩니다. “아빠, 기회를 잡으면 무조건 신발부터 칭찬해 보세요.”

 

대통령이 여인을 만나자 딸의 주문을 실행에 옮깁니다. 순간 여인의 눈에서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비로소 남자는 발과 신발이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자 성적 매력의 매체임을 알게 됩니다. 한국 여성이 가장 선망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신데렐라가 아닐까. 주인공이 친모의 도움을 받아 유리 구두를 매개로 왕자와 결혼한다는 구조지요.

 

신데렐라는 발과 신발이라는 시니피앙, 즉 상징물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줍니다. 못된 새엄마와 두 언니 밑에서 설움을 겪던 신데렐라가 우여곡절 끝에 왕궁 무도회에 참가합니다. 그녀는 차밍왕자와 비몽사몽의 황홀한 스텝을 밟다가 유리 댄싱슈즈와 이브닝드레스의 반납시간을 놓치고 맙니다. 그녀는 허둥지둥 거리다가 구두 한 짝을 흘린 채 궁중을 빠져 나왔죠.

 

사랑에 빠진 왕자가 아이디어를 내 유리구두에 맞는 발을 지닌 여자를 전국에 수배합니다. 수상한 건 바로 이점입니다. 유일한 단서가 구두라해도 오랜 시간을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면 왜 하필 구두였을까. 몽타주를 만들면 쉬웠을 텐데. 발을 찾는 발상이 수상쩍지 않나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신데렐라는 명성만큼 곳곳에 유사 동화를 전파했습니다. ‘콩쥐 팥쥐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 것은 구두가 아니란 것이 달라요. 신데렐라 이야기는 두 가지 주장이 엇갈립니다. 발의 크기와 여성의 성적 매력을 소재로 한 동화라는 주장과 이야기의 원형이 중국의 전족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해요.

 

발의 크기를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은 서양만이 아닙니다. 자이르의 바쿳족의 기혼여성이 차고 있는 쇠족쇄와 중국의 전족이 그랬으니까요. 바쿳족은 결혼 후 맨 먼저 신부를 대장간에 데려가 발목에 맞는 족쇄를 채웠어요. 이를 착용한 여성은 보행 중 수시로 들고 다니던 간이의자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답니다.

 

중국의 전족도 같은 버전이죠. 여자가 4-5세가 되면 발을 천으로 칭칭 동여매 발육을 정지시킵니다. 이렇게 완성된 전족은 10정도라고 해요. 발등은 튀어나오고 발가락은 발바닥 쪽으로 구부러진 기형입니다. 중국인은 이를 궁족(弓足)으로도 불렀어요. 옛 중국에서는 젓가락을 떨어뜨려 이를 줍는 척하며 여자의 전족을 만지는데 가만있으면 이는 남녀간의 길조로 통한답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하는 동양문화(Shame Culture)에서 발은 숨김의 대상입니다. 춤을 봐도 그래요. 우리의 춤 문화가 발끝을 수줍게 가리는 것을 코드로 한다면, 서양의 발레는 발이 매혹의 꽃이고 향기입니다. 손은 누구나 키스하며 만질 수 있어도, 발은 쉽게 만질 수 없는 은밀한 그 무엇입니다. 우호적 제스처로 나누는 악수나 건배에서 드는 손과 달리, 발은 아무에게나 내놓지 않는 시니피앙입니다.

 

발과 신발의 코드도 세월 따라 달라집니다. 서자 취급받던 발이 드러내놓고 족상(足相)을 보거나 발관리, 발마사지로 대우를 받습니다. 이제 섬섬옥수 뿌리치고는 옛 버전이고, 숨은 진주 발이 신 버전입니다. 앙증스런 신발은 사라지고 군화 같은 신발까지 등장하는 신발 파괴형의 시대지만, 발은 여전히 은밀한 매력 덩어리입니다.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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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과 신발의 숨은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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