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묘비는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무명의 초라한 묘비나, 화려한 비문으로 장식된 묘비나 생명의 스러짐을 일깨워 주니까요. 현충일이면 국립묘지는 참배객들로 붐빕니다.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짓는 소복한 늙은 어미의 휜 등을 볼 때나, 성인 된 자녀들이 술잔을 올리는 모습이나, 묘비 앞에서 흐느끼는 미망인을 보면서, 생명이 진 자리가 저리도 명징할까, 생각 합니다.

 

동작동의 국립묘지에 들면 먼저 현충탑과 마주치죠.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들을 보호하리라.” 잠시 옷깃을 여민 후, 묘역으로 향합니다. 도열해 있는 묘비는 다 같은 재질, 같은 크기지만 쓰인 글은 살은 길이 다르듯 하나같이 다릅니다. 따뜻하고, 애절하고, 절절하고, 각각의 그리움과 소망이 새겨있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너를 보내리라.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 저 세상에서 이루어라. 잘 가라 내 아들아어미의 한이 서린 어느 국군 소위의 비문입니다. “겨레 위해 바친 목숨, 그 넋이 조국을 길이 빛나게 하리생존한 형이 남긴 글이지요. 애잔한 사랑을 보내는 아비의의 글도 눈에 띕니다. “이역만리 월남 전선에서 적 포탄에 쓰러진 전우를 구출하려다 용감히 산화한 23세의 넋이 고이 잠들고 있다... 나는 너를 내 가슴에 묻는다.” “보고 싶은 내 아들아 꿈에라도 한 번 만나다오.”

 

홀로 된 아내와 자녀들의 글도 마음을 저밉니다. “영원한 사랑을 드리옵니다”(부인), “아버지의 딸 정희와 사위 세용이가 대망의 뜻을 이어 받겠습니다.”(딸과 사위), “축 결혼 신랑 강창규 신부 안동 김씨 임자년 76일 양인 백년을 언약함영령과의 백년가약도, “아빠 안녕!” 짧고 명료하게 그리움을 표현한 자녀들의 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비문은 대부분 엄숙한 반면, 서양의 비문은 좀 다릅니다. 비문 자체가 생활의 연장이란 생각을 갖게 하지요. 작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음악가 하이든은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에 맡깁니다.” 겸손함을 보였지요. 영국 시인 에이츠는 흐르는 물에 이름을 쓴 사람이 여기 누워있다고 시 한 귀절을 남겼습니다. 절해의 고도 세인트헬레나에 잠든 나폴레옹은 죽기까지 외친 단 한마디 진군이다(Cigit)’를 비문에 새겼다더군요.

 

한국군 최대의 전투병 파병인 월남전()에서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고 채명신 장군은 죽어서 더 큰 영웅으로 추앙되었습니다. 32만 명이 참전해 3500여명의 전사자를 낸 월남전의 영웅답게 3년 전 세상을 뜨면서 나를 장군묘역에 안장하지 말고 전우들이 잠든 사병묘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1/8 크기인 월남전 참전용사 사병묘역을 택한 거지요. 수많은 아들들이 전장에서 원한을 삼켰는데 사령관 혼자 편하게 누울 수 없다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과 묻히길 원한 것입니다. 사람은 죽은 뒤 받는 평가가 진짜라는데, 그는 죽어서도 리더의 품격을 빛낸 참 군인이었지요.

 

서양에는 2차 대전의 영웅 죠지 패튼 장군이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뼈가 굵은 죠지 패튼은 미국의 기갑군단을 이끌고 독일군을 격파해 유럽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입니다. 당시 연합군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진짜 영웅이지요. 그는 생전에 내가 죽으면 미국으로 운구하지 말고 장병들 옆에 눕겠다고 말한 대로 룩셈부르크 아덴산맥에 사병과 같은 크기의 동판 아래 영면을 취했지요. “나 죠지는 아덴에서 싸웠던 장병들과 함께 여기 묻혔노라는 비문과 함께. 두 장군은 지상에서 영원으로떠난 영웅입니다. 보통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을 생각하지만, 두 장군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참 삶을 사는 방식임을 알았기 때문이죠.

 

사람이 늙어 죽으면 부음을 알립니다. 우리의 부음과 달리, 미국 신문에 나는 부음 란은 재밌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기본 알림에 덧붙이는 말이 인상적이지요. 죽음을 뛰어넘는 신선한 글귀 때문입니다. “그는 좀 멍청했지만 남을 속인 적은 없다고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고, “28세 나이로 죽었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약간의 장난기도 보입니다. 임종에 앞서 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부음기사를 작성해 두는 노인이나 환자가 늘고 있다합니다. 소수가 보는 유서와 달리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밝히는 솔직한 내용으로요. 하긴 떠나는 마당에 미사여구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들... 다 부질없는 일이겠지요. (소설가)

Daum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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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더 큰별이 된 '리더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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