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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따는 돈키호테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죠. 그럼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고개부터 갸우뚱해집니다. “세르반테스 알아?” “누군데?” 그러다가도 ‘돈키호테’ 란 말에 금방 ‘아, 그 돌직구!‘ 수긍합니다. 돈키호테하면 곧잘 권력의 중심에서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햄릿(형)과 대칭된 인간유형으로 비교되곤 하지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동서양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돈키호테 이후의 소설은 이 소설을 다시 썼거나 그 일부를 쓴 것.” 이라거나 “미래의 작가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수백 년 전에 다써놓았다.”고 할 만큼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국민문학으로, 성경 다음 많이 읽히는 책으로 소개되지요. 시대를 막론하고 혁명을 꿈꾼 사람들은 돈키호테 취급을 받습니다. 현실감이 없는 허무맹랑한 인물로 비쳤던 돈키호테가 다시 현대사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주영이 그랬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새로운 것에 배고파하고 우직하게 살자(Stay hungry, Stay foolish)”고 연설한 스티브잡스가 그런 사람들이지요. 스페인 라만차 마을에 사는 귀족 출신의 늙고 가난한 지주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를 읽다가 블랙홀로 빠져듭니다.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스스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돼 세상을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죠. 조상대대로 내려온 낡은 갑옷을 꺼내 입고, 늙고 초라한 말에 올라타요. 이 모험 길에 이웃인 산초 판사가 따라나섭니다. 그의 모험은 끊임없는 좌충우돌에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유명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고, 지나는 양떼와 목동에게 역사적 전투라고 선포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놋대야를 황금 투구로 생각하고 이를 쟁취하려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친 사람이지요. 어떤 이는 그의 멍청함에 읽던 책을 덮기도 하고, 누구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담았기에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걸까. 돈키호테는 자신의 생명을 이상과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어요. 이웃과 현재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의 화신이고. 옳다고 믿는 일엔 망설임 없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행동주의자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나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최근에 접한 책 중에 고려대 안영옥 교수가 쓴 ‘돈키호테의 말’ 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돈키호테 완역본을 펴낸 안 교수가 돈키호테가 남긴 지혜의 글귀에다 자신의 생각을 얹어 펴낸 책이지요. 낡은 갑옷에 구부러진 창을 들고 늙은 말 위에 올라탄 주인공 이미지는 자신의 신념과 꿈을 좇아 돌진하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심약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줍니다. 400년 된 돈키호테가 오늘도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층 더 주목 받는 이유는 돈키호테란 인물이 우리시대의 결핍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 선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쁨을 주고, 그의 말 한마디는 지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선물해요. 불온한 세상을 향하는 도전적 발언과 동반자 산초와 나눈 대화는 인생길에 지혜로도 찾아옵니다. 저자는 “돈키호테처럼 인생을 나의 무대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생은 누군가의 소품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언합니다. 인생이란 공연은 한 번 뿐이고, 하늘은 우리에게 두 번의 인생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세상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돈키호테는 오늘도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을 향해 돌진해 옵니다. 아무리 어려운 모험일지라도 이 일에 도전하겠다는 욕망으로 내 심장은 터질 것 같다고 외치면서.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말고 나다운 삶을 찾아 당당하게 밀고 나가라고 우리 모두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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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지난 5월 21일 2시, 당진시청 대강당에서는 당진지역사회 연구소(소장 최태석)가 주체하는 ‘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기 열렸다. 6개의 시민단체와 2개의 언론기관이 연합으로 참여하는 시민단체의 토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80년간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서비스 대행기관으로서 관치행정중심의 일을 해왔다.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켜 나가는 자치행정체제는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지역개발사업은 시장의 시혜적 사업으로 인식돼 각계각층의 여러가지 요구사항들이 많이 나와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지역 단체장의 가장 큰 일로 여겨왔다. 그렇지만 당진시는 이미 당진산업단지에는 화력발전단지와 철강단지가 입주해 있어 중화학공업 중심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도농융합복합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자치행정체제릂 구축하여 지역갈등과 지속적인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지역주민중심의 민관거버넌스체제를 결성하여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역갈등을 최소화하고 연대와 협력체제로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중앙집권체제에서의 지방정부로서 시장에게 시민단체에서 각종 요구사항을 내놓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당진, 바꿔야 한다, 민생경제’ 등의 캐츠 플레이드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당진경제의 미래에 대한 토론회가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당진시장 후보들의 의견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번에 당선된 당진시장은 2030년 5월말까지 임기이어서 국내 최고의 온실가스 배출지역인 당진시는 탄소중립 목표의 50%이상 달성해야 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더욱이 2029년부터 당진화력발전소 1호기, 2호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폐가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현대제철 일괄제철소(용광로)의 20년 수명이 만기가 되어 이를 다시 건설해야 되는데 1기당 6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이미 수소 환원제철을 포기하고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했으니 역시 2030년부터 본격적인 용광로 폐기수순을 밟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런 탄소중립 문제가 당진경제의 미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어서 이번 토론회의 주제가 되어야 할 텐데도 이를 배제시켰다. 그렇다고 당진시장 후보들도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어 당진시민들은 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021년 1일 1일부터 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 가동 중단, 폐기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서 지방세수가 연간 약 44억 원 감소했고, 소비지출은 약 190억 원 줄었다. 인구는 1,800명 이상 감소해 10만 명 선이 무너졌고, 지역 내 총생산은 1년 만에 3,380억 원 감소되었다. 당진 화력은 총 10기의 석탄 화력 설비 중 2029년부터 2037년까지 8기를 순차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2029년 1·2호기 △2030년 3·4호기 △2035년 5호기 △2036년 6호기 △2037년 7·8호기가 해당된다. 이에 따라 일자리 상실, 인구 유출, 지역경제 침체 등 지역 소멸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이는 보령화력의 4배나 되는 세수감소, 소비지출 감소. 인구감소, 지역총생산 감소 등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재앙인데도 오성환 후보는 연구용역으로 처리할 계획이며 지역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하였다. 진정으로 당진경제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중심의 에너지전환 방안과 지방성장주도시대에서의 경제재편방안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당진시장 선거는 민주당의 김기재 후보냐? 아니면 국민의 힘의 오성환 후보냐? 둘 중에 택일하는 선거이다. 따라서 두 후보자들의 특성을 면밀하게 분석, 평가하여 과연 당진경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시장으로서 덕목을 갖추고 있냐를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우선 지난 4년간 시정운영을 맡아왔던 오성환 후보는 먼저 시정운영에 대한 잘, 잘못을 평가해서 당진시정운영에 반영시켜야 하는 피드백 과정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오성환 후보는 ‘1-5-100 마스터플랜’이라는 화려한 공약을 내세워 ‘과거에 대한 피드백 없이 재선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겠다’는 도전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실 ‘발로 뛰는 기업유치를 통하여 국내 최고의 당진경제를 이뤄나가겠다’는 그의 패러다임은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김기재 후보는 “19조라는 기업유치 실적은 사실상 투자의향서를 받아놓은 것에 불과하고 지난 3년간 기업유치는 7,059억원으로 전체의 3.8%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혀 사실상 오성환의 발로 뛰는 기업유치방안이란 당진경제의 발전방안이라고 보기 어렵고 다만 재선목표로 내세운 지역주민들의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반해 김기재 후보는 ‘3선 어기구 의원, 박수현 충남지사 후보, 이재명 대통령’을 원팀으로 하는 여당 주도권을 내세워 상대 후보보다도 힘 있는 당진경제 발전에 노력할 수 있다는 여당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아무리 중앙정부가 도와준다고 해도 당진경제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를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진시장으로서 당진경제를 어떻게 되살려 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서 지역주민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기재 후보는 이런 비전제시에는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상대방보다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당선하고자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당진경제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탄소중립과 당진산단 경제재편에 대한은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라도 마련하여 성공적으로 탄소중립과 당진경제 재편을 추진하겠다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진시는 당진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비중이 97%나 차지하고 있는 당진산업단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당진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을 완성시켜 나가면서 지방주도형 성장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당진시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당진시장에 후보로 나선 사람들은 이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디는 것은 지역주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간척지 사업으로 건설된 당진산단은 실질적으로 3분의 1만 활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직도 농장(한국수자원 공사)과 늪지대로 그대로 버려진 채로 남아 있다. 내가 진정으로 당진시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면 당연히 나머지 3분의 2를 산업단지로 재활용하여 요즈음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2차 전지, 조선, 방위산업 등을 유치시켜 당진경제를 도약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평택시의 산단 용지가 평당 2백원이 넘어서고 있는데 반해 당진시의 산단 용지는 120만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산업용수는 물론 전력생산, 당진항만 등 산업체의 각종 여건을 갖추고 있는 당진시로서는 당연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비전을 준비해야 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은 의미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의 도움도 받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누가 이를 돕겠다고 나서겠는가? 당진시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탄소중립을 피하고 발로 뛰는 기업유치를 통하여 당진경제를 국내 최고로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구상으로 당진경제를 발목이나 잡고 있으니 당진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한 사람은 여권의 프리미엄을 내세워 상대방보다 자신이 힘을 갖고 있어 당진경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니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당진시장으로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당진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이를 달성시켜 나갈 수 있는 민관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여 당진경제의 도약의 발판은 마련해야 당진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이라도 오성환 후보는 지난 시정에 대한 잘못이 있으면 이를 인정하고 앞으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해 책임지는 면모를 보여야 당진시장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김기재 후보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키는 정책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시켜 나갈 수 있는 자문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 도구를 통하여 보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당진시장 후보들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자세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당진경제가 도약해 나갈 수 있는 지를 재정리하여 발표하는 당당한 당진시장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 중이라도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당진경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당진시민을 대표하는 수임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는 자세로 당진시민들의 검증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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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70돌, 잊힌 전쟁 잊힌 승리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참혹한 기억에서 도망치려합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어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으니까. 7년 전쟁을 끝낸 일본이 전후사 연구에 몰입하던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고 조선에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며 비웃더라는 얘기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6·25 70주년’- 이념의 더께는 여전하고 무심한 세월만 덧씌웠습니다. 폐허의 벌판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대국으로 나가는 발판을 제공한 전쟁이었음에도, 우리의 기억은 멀리 도망가 있어요. 잊힌 전쟁, 잊힌 승리로.... 40주년이던 1990년, 서울시청 정문위에 한 장의 대형 흑백사진이 내걸려 모든 시선을 붙잡았어요. 6·25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 부모를 잃은 소년이 길을 헤매다가 덕수궁 우물가에 잠든 것을 외신기자가 찍어 라이프 지에 실었던 ‘우물가소년’ 입니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6·25자 조선일보는 “전쟁고아 ‘우물가소년’ 하버드 박사 돼 40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과 사진을 톱으로 올렸습니다. 임종덕(J. 화이트)씨. 화려한 인생역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첫 말은 “6·25를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때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당시 그분의 육성 증언을 직접 들은 기억으로 이글을 씁니다. 공무원인 소년의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자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었어요. 악착 같은 인민군은 아버지를 인민재판에 끌어냅니다. 그들은 마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살하고, 자녀들이 감금된 안방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광경을 14세 소년은 나무위에서 지켜봤습니다. 세계에 6.25 참상을 알린 사진 <우물가소년>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데리고 전장을 누비던 외신기자는 1·4후퇴 때 전사하고, 소년은 고아원 생활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원장의 비리를 봤어요. 원생들은 시래기죽도 못 먹는데 쌀밥을 먹고,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준 구호품까지 몽땅 회수해 팔아먹는 것입니다. 소년은 당찬 결심을 해요. 어디가면 못 살까. 아이들을 집합시킨 후 당돌하게 외칩니다. “우리 나가자. 따라올 사람은 다 나오라.” 82명이 따라나섰습니다. 이 많은 아이들과 어디로 가? 두렵기도 했으나 발걸음은 어느 새 불광동 고개를 넘어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남산의 방공호 자리를 아지트로 만들고, 다음날부터 미군 쓰레기장을 뒤져 돈 될 것을 찾습니다. 깡통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적자생존은 이 바닥에도 있어요. 힘 센 자들이 아이들을 괴롭히자 소년은 조직을 갖추어 남대문, 도동, 양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세 싸움을 벌였고, 마침내 이 일대 양아치의 두목이 됩니다. 별칭 빨강셔츠. 그가 빨강셔츠를 입고 나가면 아이들이 달려와 머리를 숙여요.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한 얘들이 고열로 쓰러집니다. 들쳐 업고 달려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양아치라며 모두 문을 닫아겁니다. 하루사이 32명의 아이가 홍역으로 죽어나갔어요. 시신을 그러묻으며 소년은 돈독이 오릅니다. 그런 소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와요. 하루는 서울역 앞에 미군 세단이 서고, 별 단 장군이 내리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건 뒷좌석에 놓인 가죽가방. 직감에 ‘돈이다’ 판단하고 삽시에 가방을 빼돌려 골목으로 뛰어 들었지만 접힌 지도 한 장뿐입니다. 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죽가방만 챙겨 남대문시장에다 팔고 나오는데. 낯익은 형사들이 덮칩니다. “미공군사령관 가방 갖고 튀었지?” 가방에 비밀지도가 들었다며 방방 뛰는 형사를 따라 서울역에 오니 경찰과 헌병이 깔렸고, 얘들은 무릎이 꿇려 있습니다. 소년은 I'm sorry, very sorry, 이리ok, 저리ok 해가며 쓰레기통에 버린 지도를 찾아줍니다. 그런 소년에게 찾아온 건 벌 대신 사랑이었어요. 미공군사령관 화이트 장군이 지도를 돌려받은 고마움으로 사령관 가방보이로 채용한 겁니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중인 외아들이 전사하자 소년을 아예 양아들로 입양시킵니다. 1952년 8월의 일이예요. 소년의 미국생활을 이렇게 시작됐답니다. 재기 있고 명석한 소년은 양부모의 후원아래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하기까지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보직을 수행했어요. 그는 “하버드에서 하루 3시간 자면서 공부할 때나 미군에 근무할 때도 6·25의 아픔과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어요. 우물가소년의 '비극과 승리'는 바로 우리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살아요.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켜지고, 융성해졌는지를 망각하고. 70돌이 된 6·25는 우리에게 그것을 묻습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며..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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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아이큐(IQ)’ 에 대해
부자에도 부류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제힘으로 남보다 넉넉히 사는 촌부자,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떼부자, 겉보다 실속 있는 알부자가 있어요. 요즘엔 으뜸가는 부(富)를 재벌(거대자본의 기업·기업가)이라 부릅니다. 돈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돈이 사람에게 군림하면 바른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떼부자가 돈 쓸 줄을 몰라 졸부증후군에 빠지고, 멀쩡한 집안을 패가망신시키니까요. 버는 것보다 쓰는 법이 더 중요한 게 돈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도 교육을 탓할 수밖에요. 학교가 돈을 위해 일하는 방법은 가르쳐도 돈에 대한 가치관이나 돈을 관리하는 방법은 심어주지 않으니까요. 돈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데, 정작 교육은 없습니다. 돈에 대한 관념을 바로 심어주고 ‘금융 IQ’를 키우는 교육을 하라.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의 주장입니다. 그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라”고 했어요.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많은 물의를 일으킵니다. 내 땀과 눈물이 밴 돈만이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돈이란 신념을 갖도록 사회가 더 힘써야 합니다. 지난 봄, 주총 시즌이 있었어요. 회사는 주주와 마찰 없이 잘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회사에 따라 긴장감이 돌고 고성도 터집니다. 주총이 축제의 자리가 되면 안 될까? 가을 추수를 끝내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내년을 기약하는 그런 자리 말입니다. 아쉬움이 들 때, 한 회사의 주총이 신선함으로 다가왔어요. 부드러움과 진지함과 자심감이 밴 주총입니다. 주주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음악회를 식전행사로 준비했다가 코로나로 취소했다는 전언은 신선하고 멋스러웠어요. 세계 온라인시장에 침대와 가구를 생산 판매하는 1조 클럽의 회사(ZINUS) 얘기입니다. 총 2시간 40분 중 2시간을 주주와 질의응답으로 보낸 것은 색다른 볼거리였지요. 40년 된 이 회사엔 업무용차와 비서진이 없습니다. 회장부터 전용차나 비서가 없고, 다른 임원과 같은 규모의 사무실을 씁니다. 카펫이 깔리지 않은 방엔 책상과 책장, 보고자가 앉을 의자 하나뿐, 소파나 그림 한 점 없습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회장부터 아래 직원까지 한 팀임을 느끼게 하는 회사. 그래서 주총 분위기가 달랐구나. 5월에 그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대주주인 회장이 배당금 전액을 회사에 내놨다는 주총 보고내용을 묻고 싶었어요. 그러자 “회사는 어렵지 않지만 코로나 상황이 지속될 텐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란, 쿨한 답을 듣습니다. 더 놀라운 건 딸까지 수억 원의 배당금을 포기했다는 겁니다. 아들은 애초부터 주식이 없었고요. 딸이 주식을 갖게 된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회사가 파산위기에 몰려 화의 신청을 하던 해, 딸 결혼이 겹쳤습니다. 하나뿐인 딸인데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어렵게 1억8천만 원을 만들어 전세 집을 마련해 주었답니다. 1년 뒤, 딸 내외가 찾아와 봉투를 내밉니다. “뭐냐?” “아빠에게 빌린 돈예요.” 순간 아찔했다고 합니다. “이 돈은 아빠가 준 거야. 빌려준 게 아니야.” 진심을 전했지만 딸은 극구 아빠 돈이라며 내 놓은 봉투를 거두지 않고 갔습니다. 이건 딸 돈인데...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망했다고 투매하는 자사주식을 샀답니다. 딸이 맡긴 액수만큼 딸 명의로 헐값에 사둔 겁니다. 그 후 잊고 지내다가 회사가 회생하고 지난해 재상장을 하면서 휴지 같던 주식이 대박을 터드리게 됐다는 스토리입니다. 지금도 딸은 그 주식의 소유는 아빠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자녀 모두 아버지 회사에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훗날 아버지가 지분이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하든 노터치랍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물의를 빚은 재벌가의 재산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말예요. “그 짐 하나는 일찍 덜었다”는 말로 편한 웃음을 주고받습니다. 경영권도 권력인데 어떻게 먼산바라기 할까? 나름 그 배경을 둘로 생각합니다. ‘금융 아이큐’가 높거나, 원칙주의자이거나. 결혼지참금을 굳이 빌렸다며 내놓은 딸과 끝까지 딸의 돈으로 생각한 아버지. 여기서 높은 금융 아이큐와 원칙을 봅니다. 그 결과가 생각지 않은 부를 가져온 것이죠. 직원들은 굴곡진 기업경영의 굽이를 오롯이 윈칙으로 극복해온 회장에 대해 존경심을 갖습니다. 걸어온 역정이 그래서겠죠. 그는 매스컴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나 강연 요청을 사양합니다. 기업인생 40년인데도. ‘지금도 승승장구하던 초년기의 교만했던 모습을 주기도문처럼 입에 달고 자신을 살핍니다. 꽃이 피면 향이 납니다. 향을 지니고 있으면 알음알음 벌나비가 찾아오겠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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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오는 봄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에서 오네...” 오늘아침 FM방송에서 박재란의 봄노래를 들으며 달력을 보았습니다.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그녀의 명곡입니다. “꽃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지인들 실어 안 오리 남에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아직은 조석에 이는 바람이 매워도 더는 봄을 막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봄을 노래하지 못하는 건 녹록지 않은 안팎의 환경 탓이겠죠. 무지막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백척간두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이 그렇고... 방역 성공을 자랑하던 나라가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 세계 1위라는 순위도 가시처럼 목에 걸려요. 모진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의 봄으로 가는 고비가 이렇게 힘겹습니다. 옛날, 작은 왕국이 있었어요. 인자한 왕과 착한 백성이 평화를 사랑하는 행복한 소왕국입니다. 여기에도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마법사가 있었어요. 하루는 왕을 찾아가 백성 흉을 늘어놨어요. 백성을 믿다가 발등 찍힌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사악한 마법사를 쫓아냅니다. 그러자 이번엔 백성 대표를 찾아가 왕의 간악함을 알렸어요. 왕이 머잖아 백성을 내치고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고. 대표들도 마법사 말에 현혹되지 않고 그를 내쫓았습니다. 왕과 백성 모두 에게 박대를 당한 마법사는 약이 머리끝까지 올랐어요. 왕국에 어떻게 복수할까를 생각하다 엄청난 일을 꾸몄어요. 자신이 지닌 바이러스를 퍼뜨리기로 한 겁니다. 마법사는 모두가 잠든 새벽, 백성들이 사용하는 우물에 바이러스를 풀었어요.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지요.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물을 따로 쓰는 왕의 가족만 빼고요. 흥분한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평화의 왕국이 한순간 미친 왕국이 돼버린 거예요. 왕은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할 관청이나 치안을 맡은 경찰이 이미 바이러스에 중독된 상태여서 왕명에 복종을 거부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왕명은 받들 필요가 없다”라며 오히려 왕을 비난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미쳐버렸다고 탄식의 소리를 높였어요. 시위대로 돌변한 백성들이 궁궐 앞으로 몰려들더니 왕의 하야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였어요. 절망에 빠진 왕이 하야를 고민합니다. 그때 지혜로운 왕비가 묘안을 냈어요. “우리도 저들과 똑같은 우물물을 마셔보자고요. 그러면 백성과 같아질 게 아니겠어요?” 정신이 온전하든 돌아버리든 백성과 같아지면 더 이상 왕을 비난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왕은 시녀에게 우물물을 길어 오게 하고 왕비와 함께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왕이 희한한 헛소리를 시작합니다. 그것을 본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와! 우리 왕이 제정신을 찾으셨다”라며. 백성들은 왕을 악령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면서 고을마다 ‘왕빠’들이 앞장서 결사옹위를 다짐합니다. 왕국에는 잃었던 평화가 찾아왔어요. 왕과 백성이 생각과 마음이 같아 지면서 모든 사물이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마을이 평온을 찾자 심기가 상한 마법사가 이번에는 우물에다 바이러스 해독제를 풀었어요. 이물을 마신 신하들이 또 왕이 이상해졌다며 숙덕입니다. 삽시에 왕이 다시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신하들은 망령이 도졌다며 왕은 말도 안 되는 명을 거두라고 반발합니다. “미친 왕은 하야하라.” 금세 시위대가 들끓어 올랐고, 왕은 할 수 없이 하야를 결심하는데 왕비가 새로 길어온 우물물을 들고 나타납니다. 물을 마신 왕은 다시 정상이 됐고 나라도 마침내 평온을 찾았지요. 우리가 사는 것이 새날 같지만 실은 데자뷔 같은 세상을 사는 거예요. 정상과 비정상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진심과 사심(邪心)이 모호해져 분별력을 잃게도 하죠. 그제 전철을 타고 양수리를 찾았습니다. 운길산역에서 철길을 건너 강변을 따라 걸으면 발 끝에 ‘두물경’이라 쓰인 돌비석과 만납니다. 결빙과 해빙이 공존한 곳…. 밀려나는 겨울과 밀려오는 봄이 합수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두 강줄기가 합수해 만든 호수와 팔 벌린 운길산과 검단산이 사방으로 열어놓은 아름다운 경관과 조우합니다. 암록빛 강물과 강가 버드나무에 스치는 연록 빛과 억새 위로 소복이 내려 앉는 봄볕들…. 봄은 강을 타고 오른다는 말이 맞아요. 두 시간 남짓, 친구와 둘이서 겨우내 눅눅했던 마음을 훈풍에 말리고, 따뜻한 자연의 성정과 위로를 청하기도 하면서…. 자연이 주는 위로는 늘 어질고 진실됩니다. 엄혹했던 겨울을 이기고 찾아오는 봄소식을 듣습니다. 강화도 친구가 담장 아래 잔설을 헤집고 꽃대를 올린 복수초 사진을 보내오고, 횡성에 사는 친지는 변산바람꽃 소식을 담아보냈습니다. 봄의 특징은 바람입니다. 봄은 흔들리며 옵니다. 꽃도 흔들리며 피고, 가지들도 흔들리며 잎을 냅니다. 바람이 생명을 깨우고 봄길을 열어요.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더니, 어둑한 동네 골목에도 춘광이 쌓입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 자식을 잃고도, 공장을 불태우고도, 숯덩이 된 가슴으로 이 봄을 맞는 사랑하는 내 이웃들…. 꿋꿋하게 겨울을 이겨낸 이들이 고맙습니다. 이 봄에 전하고 싶은 안부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농밀한 마음입니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잘 할 거야.”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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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지난달 경기도 퇴촌으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볕바른 잔디밭에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여전히 병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근육은 좀 더 굳어져 보였고 어눌한 말과 낮은 소리는 조금 더 느려져 물컵을 드는 데도 손이 많이 떨렸다. 4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파킨슨병으로 10년째 투병 중인 하버드대 출신의 물리학자였다. 그때보다 병이 진행되어 보였지만 그는 “끈질긴 재활운동과 특수치료를 받은 덕에 화장실 출입 정도는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며 웃었다. 그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가 며칠 전 출판사로 나를 찾는 전화를 걸어왔다.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내겠다며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연락을 준 것이다. 일부 원고에 첨삭을 했다면서 의자 위에 놓인 두툼한 원고 봉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왜 마음이 바뀌었느냐고 안 물으세요?” 나를 바라보며 묻더니 스스로 답을 대신했다. “막상 다 된 원고를 읽고 나니까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을 책으로 엮어낸다는 게 구차하게 느껴져 포기하려 했는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더라”라고 했다. 그녀를 각성시킨 것은 민들레였다. 봄날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돌쩌귀에 눌린 채 얼굴을 내민 노란 꽃 민들레가 그렇게 가여웠단다. “한참을 슬프게 내려다보는데 민들레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거 같았어요. 나는 살아야 한다고요. 꼭 살 거라면서 나를 향해 환히 웃는 거예요. 무거운 돌이 가녀린 몸을 짓누르지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사명인 것처럼. 그날 집에 돌아와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민들레가 나보다 사려 깊고 근성 있고 당차다는 걸 알았거든요.” 한 철을 살다가는 생명도 저리 모질게 버티는데 이 좋은 환경 다 누리면서 65년이란 세월을 살고도 그만한 인내도 못 배웠느냐고! 부박한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서 서랍에 넣어둔 원고를 다시 꺼냈다. 형식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위로 글이지만, 같은 30대 젊은이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투병에서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난 병상의 아들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듯, 교훈스러운 말투는 가려내 버리고 엄마의 곰삭은 언어로 몸과 마음이 지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더 굳어진 손가락으로 원고를 치는 작업은 고난이었을 것이다. 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30분만 자판을 두드려도 온몸이 뒤틀려 며칠을 끙끙 앓았다는 그녀.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쓴 글을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자각에 정신이 번쩍 난다”라고 했다. 그는 파킨슨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 이런저런 수술을 받았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 발목에 금이 가고 어깨뼈가 탈골되는 등 여러 차례 변고를 겪었다. 고통은 쌍으로 온다더니 이태 전엔 갑상선암과 자궁근종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을 원망할 때인데, 그 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 그분의 존재를 의심할 때였어요.” 그 말을 하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죄송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금 감정을 추스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간밤 꿈에 꽃밭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어깨에 앉아 노래를 불렀어요.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해지길 원하시지 결코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요. 잠에서 깨났는데 그 말이 생시처럼 선명했어요. 이 고통은 내 일생 중 한 부분이 일으킨 일탈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세상이 온통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라는 것도 알았어요. 노란 민들레가 그렇고, 꿈에 찾아온 새가 그렇고, 오늘은 선생님이 나를 응원하시잖아요.” 편안한 얼굴로 나를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는 것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는가. 고통 없이 살기를 원한다는 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래요. 봄은 아름답고 환할 뿐인데 김영랑 시인은 찬란한 슬픔을 이야기했잖아요. 고통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거예요. 처음 진단을 받을 때의 그 끔찍함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는데도 실상은 좋아진 거예요 지금이. 그때 쉽게 포기해 버렸다면 참 많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내 마음조차 나를 비웃었겠죠.” 성경의 욥 이야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내가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으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6).’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롬 5:3-4).’ 그녀는 성경의 이 두 구절을 닳도록 입에 올리며 구원을 노래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밖에 있는 현대 의술이나 명의를 좇아 다녔는데, 이젠 앙팡지게 안에 있는 나를 찾고 의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 비로소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걸 깨친 거죠.” 그 뒤로 몸이 오그라드는 통증이 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버텨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최후의 사명인 것처럼. 무엇을 잡고 인생을 견뎌낼 것인가? 원고가 담긴 USB를 받아 일어서면서 그에게 같은 말로 위로를 전했다. “맞아요. 예수님도 홀로 십자가의 고초를 견디셨으니까요. 창조주이신 그분을 신뢰하고 참고, 견디며 은총을 소망하세요”라는 말로… 그날 그와의 만남은 이 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 저녁 발문을 썼다. 그의 ‘참고, 견디고, 기다림’의 이야기는 곧 서점가에 나올 것이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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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팝콘
신록은 꽃철에서 시작합니다. 꽃철은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냅니다. 살아난 산들이 골짝마다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딱히 갈 데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꽃동산을 열어줍니다.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등 색색으로 피어난 봄꽃들이 능선과 골짝을 물들이고, 흥에 겨운 아이들이 쉬지 않고 꽃을 찾아다니던 풍경 속엔 아이들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야, 여기! 이리 와!” 또래 형이 소리치면 아이들은 소리 난 곳을 향해 우르르 비탈을 내달리죠. 와~! 아이들이 지르는 탄성엔 아름다움보다 ‘많다’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봄꽃은 곧 먹는 꽃이니까요. 아이들은 그때가 보릿고개란 것을 모릅니다. 쫄쫄 배를 골아도 사는 게 그러려니 할 뿐. 또래들의 관심은 늘 노는 데만 정신을 팔지요. 그러다 허기를 느끼면 또래 형이 소리칩니다. “야, 산에 가자!”. 뒷산에서 삘기를 뽑아 먹고, 붉은 진달래를 따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습니다. 쌉쌀한 맛이지만 모두들 입술이 물 들도록 꽃잎을 따 먹고 집으로 향할 때면 입술마다 보랏빛에 물들었죠. 음식으로 치자면 요즘 한창인 이팝나무꽃이 더 살갑습니다. 나뭇가지를 뒤덮은 하얀 꽃이 마치 ‘이밥(쌀밥)’ 같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핀다고 입하 목(立夏木)으로도 불립니다. 이팝이 꽃을 피울 때가 공교롭게도 보릿고개와 겹쳤습니다. 보릿고개를 넘던 옛 조상들 눈에는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꽃이 쌀밥으로 보였나 뵵니다. 이팝꽃이 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환영입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압권인 장면은 정적을 깨는 팝콘 판타지입니다.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마을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아픈 서사를 더 저리게 했던 바로 그 장면…. 수류탄이 마을 옥수수 창고로 굴러들어가 터지면서 옥수수가 팝콘으로 튀겨져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사람들 얼굴에 온기를 돌리고, 팝콘이 밤하늘에서 흰 눈으로 내릴 때, 모두를 잠시나마 선한 얼굴로 되돌려 함박웃음을 짓게 했던 팝콘 판타지…. 어제 들린 서울 현충원에도 이팝나무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혼의 넋을 위로하는 지금은, 저보다 맞춤한 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새 정부가 국민 품으로 돌려준 청와대에도 이팝나무 꽃이 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고항인 대구 달성에서 가져와 심었다는데, 올해는 더 풍성하게 피어 ‘웰컴 투 청와대’의 한 자리를 밝힙니다. 언젠가부터 은행나무를 대체해 가로수로 각광을 받더니 청계천에도 가로수에서 흰 팝콘을 터트립니다. 전주 팔복동 철길, 함평 양재리도 그 소박한 꽃송이가 밥사발 가득 흰쌀밥을 얹었습니다. 조선 왕조 때는 벼슬을 해야 이씨가 주는 귀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 ‘이(李)밥나무’로 불렸다는 꽃.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로도 불리지만 이미지는 다 흰쌀밥이죠. 나무에 무슨 귀족이 있고 서민이 있을까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서민 나무의 대표라 할 것입니다. 군락을 이루어 피는 벚꽃, 배꽃, 지금이 한창인 이팝꽃, 아카시아꽃처럼 흰꽃만큼 우리 눈을 환하게 열어주는 꽃도 없습니다. 지금은 산하마다 아카시아가 제철입니다. 오늘도 워커힐을 지나 집으로 가는 아차산로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로 진동합니다. 사시사철 내게 넓은 품을 열어준 아차산의 지금은, 하얀 꽃무리가 구름꽃이 되어 녹색 숲을 덮고 있습니다. 밤에 창을 열면, 베란다를 지나 서재로 들이친 고혹한 향기가 절로 깊은 들숨부터 쉬게 합니다. 아카시아는 서러움의 꽃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밥 대신 따먹던 꽃이었으니까요. 또한 그리움의 꽃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 ‘아카시아’가 그렇습니다.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아카시아 향이 멀어지고 찝찔한 밤꽃 향이 나면, 여름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벌써 봄의 끝자락, 야속한 건 부리나케 폈다 떠나는 봄꽃의 속성입니다. 어쩜 성질머리가 봄을 꼭 빼닮았을까? 삶을 그리웁게 하는 건 배불리 먹고 잘 놀던 기억이 아니라, 힘든 때를 함께 한 사람들과의 기억입니다. 봄꽃은 그래서 애잔하고, 지울 수 없는 얼룩이고, 정겨운 내 기억의 문신이죠.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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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결혼식 주례사
세상에는 향기를 내는 사람과 악취를 내는 사람, 두 부류의 인생이 살아 갑니다. 다시 말해 ‘사람 같은 사람’과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인간’은 뜻은 같아도 용례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집니다. “저,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라고 말할 때는 인간성이 별로인 부정적 이미지를 전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 마음씨는 비단결이야!”라고 할 때 ‘사람’은 호감과 긍정의 이미지를 전합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의좋은 형제’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이 돼 벼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나란히 볏단을 쌓아 노적가리를 만들었습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볏가리가 빈약해 보입니다. 그날 밤, 형은 가난한 아우 형편을 헤아려 자신의 볏단 일부를 동생의 가리로 옮겨 놓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은 아우가 식솔 많은 형을 걱정해 볏단을 옮기지요. 그렇게 오고 가는 사이, 형과 아우는 줄었어야 할 볏단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의문을 키우던 형제는 보름달이 뜬 밤에 비로소 의문이 풀립니다.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가난했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인생은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만드는 것이 다 어디서 시작될까? 하나 같이 ‘마음의 문제’입니다. 오늘 주례자는 딱 한 가지만 당부합니다. 신혼부부가 오늘 맞는 첫날 밤을 우리말로 ‘꽃잠’이라고 부릅니다. 신혼 초야를 ‘꽃이 잠자는 시간’ 으로 표현한 우리말이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답습니까? 두 사람은 오늘 꽃잠을 자면서 이 한 가지를 다짐했으면 합니다. 배우 김보성이 외친 유명한 말인데, 큰소리로 내 말을 따라 해 보세요. ‘우리 부부 의리를 지키며 살자’. 한 번 더 크게! 네, 아주 잘했습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한완석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붓글씨로 큼직하게 ‘의리를 지키자’라는 문구를 써서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노 목사의 눈에 세상이 오죽했으면 유언처럼 당부한 말이 의리였을까. 그만큼 세상에 의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의리를 빼면 시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리가 밥 먹여 주나?’로 험악해졌습니다. 의리란 ‘사람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갖춰야 할 가치와 덕목이 이 말에 몽땅 녹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이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을 때입니다. 그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사람 사는 맛이 있었다고 옛날을 회상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엔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대는 동물 세계만 남습니다. ‘사람’은 없고 욕망으로 충혈된 ‘인간’들로 넘쳐납니다. 이웃간 의리가 깨지더니, 친구간에 의리가 무너졌다고 탄식합니다. 급기야는 형제간, 부부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를 저버렸다는 서글픈 소식이 들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 어떤 교훈보다 필요한 것이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삶에 의리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 지켜야 할 의무 중 으뜸으로 삼을 게 의리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의리를 다하고, 친구 사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의리가 앞서야 합니다. 세상을 요령 있게 사는 것도 지혜이겠으나, 의리 하나만큼은 우직하게 지키는 사람이 고결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풍성하게 하려면, 돈에 앞서 의리를 지키고 가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향기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리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인간적 풍미에서 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리는 말로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도 사업도 결국은 모두가 마음의 문제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삶을 다잡고 살면,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다음 세 가지 마음입니다. ? 初心을 지키는 신실한 마음(眞心) ? 童心과 같은 깨끗한 마음 (淸心) ? 熱과 誠을 다하는 마음 (誠心) 이 세 마음을 끝까지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부가 세상에서 존중받으며 복 되게 사는 길이고 인생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면서 사는 길입니다. 두 사람은 오늘 당부한 3가지 마음, 즉 ‘三心’을 잘 닦고 소중히 지켜 ‘의리 있는 가정, 의리 있는 부부’로 백년해로 하면서 만복의 기쁨을 나누기를 축복합니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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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친구가 있나요
누가 그의 임종을 지켰을까? 지난해 봄 코미디계의 대부 쟈니 윤의 부음을 듣고 떠올린 생각입니다. 일찍이 미국 NBC의 ‘자니 카튼 쇼’에 동양인 최초로 발탁되면서 꽃길을 걸은 그였기에… 국내에선 ‘쟈니윤 쇼’로 토크쇼의 새 장을 열었지요. 하지만 삶은 화려해 보였어도 말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LA의 한 허름한 요양원에서 치매 등과 싸우다 홀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인생도, 등산도, 성공은 하산에 있습니다. 돈 많고 지체 높은 세도가들도 모든 게 한 순간, 끝까지 잘 내려오는 게 성공한 삶입니다. 살아볼수록 그 이상의 가치가 없어 보여서죠. “너무 바쁜 사람과는 친구 하지 마라.” 선배 분이 병상에서 아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친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왜 그런 말을 남겼을까…. 죽음은 경험을 못 하니 앞서 간 분들의 말에서 유추할 뿐입니다. 세계적인 갑부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세상을 뜨기 전,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를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무소의 뿔처럼, 오직 한 곳만을 향해 치달리며 살다가 삶의 잔뿌리를 내리지 못했어요. 위기의 순간에, 곁에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으로 산 친구는 돈 때문에 떠나지만, 가슴으로 만난 친구는 가슴이 아플 때 나타납니다. 톨스토이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 문제를 다뤘어요. 임종을 앞둔 이반 일리치가 괴로운 건 용변을 볼 때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겁니다. 이 견디기 힘든 일을 도와준 건 하인 게라심이었지요. 생각하니 내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해 준 사람은 게라심 뿐임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잠들기까지 곁을 지키는 그에게 미안함을 표하자 게라심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우린 다 언젠가 죽잖아요. 그러니 주인을 위해 마지막 수고 좀 못하겠어요?"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이 곁에 있다는 데 큰 위안과 행복을 느낍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의 일화도 있어요. 미국 내브래스카 대학의 한 학생이 Fortune지가 주최한 '여성과 일'이란 주제의 강연회에서 세계적인 부호에게 묻습니다. “현 위치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누구는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알아요.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고 당신 이름의 빌딩을 가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버핏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도 전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유태계 여성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오.” “워런,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더딘 게 탈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여러 번 이런 질문을 하거든요. 저 사람이 나를 정말 숨겨줄 수 있을까?” 워런은 말합니다. “위험에 처한 나를 숨겨줄 만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면 성공한 거고, 반대로 아무도 당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성공했다고는 말 못 해요.” 학교를 같이 다니고 나이가 비슷해야 친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나이 차가 많아도 진정 마음이 통하면 가능합니다. 워런 버핏은 25세나 어린 빌 게이츠를 친구라고 불렀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를 원하면서도 내가 그러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는지는 깊이 생각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게 지낸 지난날이 후회될 때가 되면, 친구는 내 곁에 없기 쉬워요. 진정한 친구를 찾으십니까? 먼저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대만의 한 잡지사가 노령 인구의 빠른 증가로 인하여 달라질 미래의 모습을 다룬 웹 영화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미래의 노후(친구 편)’은 많은 독신 네티즌의 공감을 샀습니다. 성공한 4명의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아들과 손자가 온다는 소식에 들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합니다. 준비를 다했는데 사정이 생겨 못 오겠다는 전화가 옵니다. 준비했던 음식은 그만 주인을 잃고 맙니다. 노인은 우중충한 밖을 보다가 친구를 생각합니다. 색 바랜 수첩을 펼치고 앞뒤로 넘겨 보지만, 나와 같이 식사해줄 만한 마땅한 친구를 찾지 못합니다. 조용히 수첩을 접고 창가로 다가갑니다. 창밖엔 비가 옵니다. 결국 노인은 음식을 가득 차린 식탁에 홀로 앉아 식사를 시작합니다. 음식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지 목젖이 위아래로 움찔댑니다. 그 위로 마지막 엔딩 자막이 뜹니다. 끝까지 함께 할 친구가 있습니까?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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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따는 돈키호테
-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죠. 그럼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고개부터 갸우뚱해집니다. “세르반테스 알아?” “누군데?” 그러다가도 ‘돈키호테’ 란 말에 금방 ‘아, 그 돌직구!‘ 수긍합니다. 돈키호테하면 곧잘 권력의 중심에서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햄릿(형)과 대칭된 인간유형으로 비교되곤 하지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동서양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돈키호테 이후의 소설은 이 소설을 다시 썼거나 그 일부를 쓴 것.” 이라거나 “미래의 작가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수백 년 전에 다써놓았다.”고 할 만큼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국민문학으로, 성경 다음 많이 읽히는 책으로 소개되지요. 시대를 막론하고 혁명을 꿈꾼 사람들은 돈키호테 취급을 받습니다. 현실감이 없는 허무맹랑한 인물로 비쳤던 돈키호테가 다시 현대사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주영이 그랬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새로운 것에 배고파하고 우직하게 살자(Stay hungry, Stay foolish)”고 연설한 스티브잡스가 그런 사람들이지요. 스페인 라만차 마을에 사는 귀족 출신의 늙고 가난한 지주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를 읽다가 블랙홀로 빠져듭니다.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스스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돼 세상을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죠. 조상대대로 내려온 낡은 갑옷을 꺼내 입고, 늙고 초라한 말에 올라타요. 이 모험 길에 이웃인 산초 판사가 따라나섭니다. 그의 모험은 끊임없는 좌충우돌에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유명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고, 지나는 양떼와 목동에게 역사적 전투라고 선포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놋대야를 황금 투구로 생각하고 이를 쟁취하려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친 사람이지요. 어떤 이는 그의 멍청함에 읽던 책을 덮기도 하고, 누구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담았기에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걸까. 돈키호테는 자신의 생명을 이상과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어요. 이웃과 현재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의 화신이고. 옳다고 믿는 일엔 망설임 없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행동주의자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나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최근에 접한 책 중에 고려대 안영옥 교수가 쓴 ‘돈키호테의 말’ 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돈키호테 완역본을 펴낸 안 교수가 돈키호테가 남긴 지혜의 글귀에다 자신의 생각을 얹어 펴낸 책이지요. 낡은 갑옷에 구부러진 창을 들고 늙은 말 위에 올라탄 주인공 이미지는 자신의 신념과 꿈을 좇아 돌진하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심약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줍니다. 400년 된 돈키호테가 오늘도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층 더 주목 받는 이유는 돈키호테란 인물이 우리시대의 결핍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 선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쁨을 주고, 그의 말 한마디는 지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선물해요. 불온한 세상을 향하는 도전적 발언과 동반자 산초와 나눈 대화는 인생길에 지혜로도 찾아옵니다. 저자는 “돈키호테처럼 인생을 나의 무대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생은 누군가의 소품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언합니다. 인생이란 공연은 한 번 뿐이고, 하늘은 우리에게 두 번의 인생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세상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돈키호테는 오늘도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을 향해 돌진해 옵니다. 아무리 어려운 모험일지라도 이 일에 도전하겠다는 욕망으로 내 심장은 터질 것 같다고 외치면서.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말고 나다운 삶을 찾아 당당하게 밀고 나가라고 우리 모두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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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따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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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 지난 5월 21일 2시, 당진시청 대강당에서는 당진지역사회 연구소(소장 최태석)가 주체하는 ‘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기 열렸다. 6개의 시민단체와 2개의 언론기관이 연합으로 참여하는 시민단체의 토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80년간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서비스 대행기관으로서 관치행정중심의 일을 해왔다.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켜 나가는 자치행정체제는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지역개발사업은 시장의 시혜적 사업으로 인식돼 각계각층의 여러가지 요구사항들이 많이 나와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지역 단체장의 가장 큰 일로 여겨왔다. 그렇지만 당진시는 이미 당진산업단지에는 화력발전단지와 철강단지가 입주해 있어 중화학공업 중심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도농융합복합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자치행정체제릂 구축하여 지역갈등과 지속적인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지역주민중심의 민관거버넌스체제를 결성하여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역갈등을 최소화하고 연대와 협력체제로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중앙집권체제에서의 지방정부로서 시장에게 시민단체에서 각종 요구사항을 내놓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당진, 바꿔야 한다, 민생경제’ 등의 캐츠 플레이드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당진경제의 미래에 대한 토론회가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당진시장 후보들의 의견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번에 당선된 당진시장은 2030년 5월말까지 임기이어서 국내 최고의 온실가스 배출지역인 당진시는 탄소중립 목표의 50%이상 달성해야 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더욱이 2029년부터 당진화력발전소 1호기, 2호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폐가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현대제철 일괄제철소(용광로)의 20년 수명이 만기가 되어 이를 다시 건설해야 되는데 1기당 6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이미 수소 환원제철을 포기하고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했으니 역시 2030년부터 본격적인 용광로 폐기수순을 밟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런 탄소중립 문제가 당진경제의 미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어서 이번 토론회의 주제가 되어야 할 텐데도 이를 배제시켰다. 그렇다고 당진시장 후보들도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어 당진시민들은 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021년 1일 1일부터 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 가동 중단, 폐기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서 지방세수가 연간 약 44억 원 감소했고, 소비지출은 약 190억 원 줄었다. 인구는 1,800명 이상 감소해 10만 명 선이 무너졌고, 지역 내 총생산은 1년 만에 3,380억 원 감소되었다. 당진 화력은 총 10기의 석탄 화력 설비 중 2029년부터 2037년까지 8기를 순차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2029년 1·2호기 △2030년 3·4호기 △2035년 5호기 △2036년 6호기 △2037년 7·8호기가 해당된다. 이에 따라 일자리 상실, 인구 유출, 지역경제 침체 등 지역 소멸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이는 보령화력의 4배나 되는 세수감소, 소비지출 감소. 인구감소, 지역총생산 감소 등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재앙인데도 오성환 후보는 연구용역으로 처리할 계획이며 지역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하였다. 진정으로 당진경제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중심의 에너지전환 방안과 지방성장주도시대에서의 경제재편방안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당진시장 선거는 민주당의 김기재 후보냐? 아니면 국민의 힘의 오성환 후보냐? 둘 중에 택일하는 선거이다. 따라서 두 후보자들의 특성을 면밀하게 분석, 평가하여 과연 당진경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시장으로서 덕목을 갖추고 있냐를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우선 지난 4년간 시정운영을 맡아왔던 오성환 후보는 먼저 시정운영에 대한 잘, 잘못을 평가해서 당진시정운영에 반영시켜야 하는 피드백 과정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오성환 후보는 ‘1-5-100 마스터플랜’이라는 화려한 공약을 내세워 ‘과거에 대한 피드백 없이 재선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겠다’는 도전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실 ‘발로 뛰는 기업유치를 통하여 국내 최고의 당진경제를 이뤄나가겠다’는 그의 패러다임은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김기재 후보는 “19조라는 기업유치 실적은 사실상 투자의향서를 받아놓은 것에 불과하고 지난 3년간 기업유치는 7,059억원으로 전체의 3.8%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혀 사실상 오성환의 발로 뛰는 기업유치방안이란 당진경제의 발전방안이라고 보기 어렵고 다만 재선목표로 내세운 지역주민들의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반해 김기재 후보는 ‘3선 어기구 의원, 박수현 충남지사 후보, 이재명 대통령’을 원팀으로 하는 여당 주도권을 내세워 상대 후보보다도 힘 있는 당진경제 발전에 노력할 수 있다는 여당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아무리 중앙정부가 도와준다고 해도 당진경제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를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진시장으로서 당진경제를 어떻게 되살려 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서 지역주민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기재 후보는 이런 비전제시에는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상대방보다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당선하고자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당진경제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탄소중립과 당진산단 경제재편에 대한은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라도 마련하여 성공적으로 탄소중립과 당진경제 재편을 추진하겠다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진시는 당진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비중이 97%나 차지하고 있는 당진산업단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당진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을 완성시켜 나가면서 지방주도형 성장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당진시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당진시장에 후보로 나선 사람들은 이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디는 것은 지역주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간척지 사업으로 건설된 당진산단은 실질적으로 3분의 1만 활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직도 농장(한국수자원 공사)과 늪지대로 그대로 버려진 채로 남아 있다. 내가 진정으로 당진시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면 당연히 나머지 3분의 2를 산업단지로 재활용하여 요즈음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2차 전지, 조선, 방위산업 등을 유치시켜 당진경제를 도약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평택시의 산단 용지가 평당 2백원이 넘어서고 있는데 반해 당진시의 산단 용지는 120만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산업용수는 물론 전력생산, 당진항만 등 산업체의 각종 여건을 갖추고 있는 당진시로서는 당연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비전을 준비해야 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은 의미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의 도움도 받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누가 이를 돕겠다고 나서겠는가? 당진시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탄소중립을 피하고 발로 뛰는 기업유치를 통하여 당진경제를 국내 최고로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구상으로 당진경제를 발목이나 잡고 있으니 당진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한 사람은 여권의 프리미엄을 내세워 상대방보다 자신이 힘을 갖고 있어 당진경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니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당진시장으로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당진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이를 달성시켜 나갈 수 있는 민관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여 당진경제의 도약의 발판은 마련해야 당진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이라도 오성환 후보는 지난 시정에 대한 잘못이 있으면 이를 인정하고 앞으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해 책임지는 면모를 보여야 당진시장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김기재 후보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키는 정책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시켜 나갈 수 있는 자문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 도구를 통하여 보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당진시장 후보들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자세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당진경제가 도약해 나갈 수 있는 지를 재정리하여 발표하는 당당한 당진시장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 중이라도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당진경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당진시민을 대표하는 수임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는 자세로 당진시민들의 검증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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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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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70돌, 잊힌 전쟁 잊힌 승리
-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참혹한 기억에서 도망치려합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어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으니까. 7년 전쟁을 끝낸 일본이 전후사 연구에 몰입하던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고 조선에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며 비웃더라는 얘기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6·25 70주년’- 이념의 더께는 여전하고 무심한 세월만 덧씌웠습니다. 폐허의 벌판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대국으로 나가는 발판을 제공한 전쟁이었음에도, 우리의 기억은 멀리 도망가 있어요. 잊힌 전쟁, 잊힌 승리로.... 40주년이던 1990년, 서울시청 정문위에 한 장의 대형 흑백사진이 내걸려 모든 시선을 붙잡았어요. 6·25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 부모를 잃은 소년이 길을 헤매다가 덕수궁 우물가에 잠든 것을 외신기자가 찍어 라이프 지에 실었던 ‘우물가소년’ 입니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6·25자 조선일보는 “전쟁고아 ‘우물가소년’ 하버드 박사 돼 40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과 사진을 톱으로 올렸습니다. 임종덕(J. 화이트)씨. 화려한 인생역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첫 말은 “6·25를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때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당시 그분의 육성 증언을 직접 들은 기억으로 이글을 씁니다. 공무원인 소년의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자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었어요. 악착 같은 인민군은 아버지를 인민재판에 끌어냅니다. 그들은 마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살하고, 자녀들이 감금된 안방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광경을 14세 소년은 나무위에서 지켜봤습니다. 세계에 6.25 참상을 알린 사진 <우물가소년>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데리고 전장을 누비던 외신기자는 1·4후퇴 때 전사하고, 소년은 고아원 생활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원장의 비리를 봤어요. 원생들은 시래기죽도 못 먹는데 쌀밥을 먹고,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준 구호품까지 몽땅 회수해 팔아먹는 것입니다. 소년은 당찬 결심을 해요. 어디가면 못 살까. 아이들을 집합시킨 후 당돌하게 외칩니다. “우리 나가자. 따라올 사람은 다 나오라.” 82명이 따라나섰습니다. 이 많은 아이들과 어디로 가? 두렵기도 했으나 발걸음은 어느 새 불광동 고개를 넘어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남산의 방공호 자리를 아지트로 만들고, 다음날부터 미군 쓰레기장을 뒤져 돈 될 것을 찾습니다. 깡통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적자생존은 이 바닥에도 있어요. 힘 센 자들이 아이들을 괴롭히자 소년은 조직을 갖추어 남대문, 도동, 양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세 싸움을 벌였고, 마침내 이 일대 양아치의 두목이 됩니다. 별칭 빨강셔츠. 그가 빨강셔츠를 입고 나가면 아이들이 달려와 머리를 숙여요.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한 얘들이 고열로 쓰러집니다. 들쳐 업고 달려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양아치라며 모두 문을 닫아겁니다. 하루사이 32명의 아이가 홍역으로 죽어나갔어요. 시신을 그러묻으며 소년은 돈독이 오릅니다. 그런 소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와요. 하루는 서울역 앞에 미군 세단이 서고, 별 단 장군이 내리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건 뒷좌석에 놓인 가죽가방. 직감에 ‘돈이다’ 판단하고 삽시에 가방을 빼돌려 골목으로 뛰어 들었지만 접힌 지도 한 장뿐입니다. 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죽가방만 챙겨 남대문시장에다 팔고 나오는데. 낯익은 형사들이 덮칩니다. “미공군사령관 가방 갖고 튀었지?” 가방에 비밀지도가 들었다며 방방 뛰는 형사를 따라 서울역에 오니 경찰과 헌병이 깔렸고, 얘들은 무릎이 꿇려 있습니다. 소년은 I'm sorry, very sorry, 이리ok, 저리ok 해가며 쓰레기통에 버린 지도를 찾아줍니다. 그런 소년에게 찾아온 건 벌 대신 사랑이었어요. 미공군사령관 화이트 장군이 지도를 돌려받은 고마움으로 사령관 가방보이로 채용한 겁니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중인 외아들이 전사하자 소년을 아예 양아들로 입양시킵니다. 1952년 8월의 일이예요. 소년의 미국생활을 이렇게 시작됐답니다. 재기 있고 명석한 소년은 양부모의 후원아래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하기까지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보직을 수행했어요. 그는 “하버드에서 하루 3시간 자면서 공부할 때나 미군에 근무할 때도 6·25의 아픔과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어요. 우물가소년의 '비극과 승리'는 바로 우리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살아요.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켜지고, 융성해졌는지를 망각하고. 70돌이 된 6·25는 우리에게 그것을 묻습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며..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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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70돌, 잊힌 전쟁 잊힌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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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아이큐(IQ)’ 에 대해
- 부자에도 부류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제힘으로 남보다 넉넉히 사는 촌부자,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떼부자, 겉보다 실속 있는 알부자가 있어요. 요즘엔 으뜸가는 부(富)를 재벌(거대자본의 기업·기업가)이라 부릅니다. 돈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돈이 사람에게 군림하면 바른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떼부자가 돈 쓸 줄을 몰라 졸부증후군에 빠지고, 멀쩡한 집안을 패가망신시키니까요. 버는 것보다 쓰는 법이 더 중요한 게 돈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도 교육을 탓할 수밖에요. 학교가 돈을 위해 일하는 방법은 가르쳐도 돈에 대한 가치관이나 돈을 관리하는 방법은 심어주지 않으니까요. 돈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데, 정작 교육은 없습니다. 돈에 대한 관념을 바로 심어주고 ‘금융 IQ’를 키우는 교육을 하라.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의 주장입니다. 그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라”고 했어요.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많은 물의를 일으킵니다. 내 땀과 눈물이 밴 돈만이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돈이란 신념을 갖도록 사회가 더 힘써야 합니다. 지난 봄, 주총 시즌이 있었어요. 회사는 주주와 마찰 없이 잘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회사에 따라 긴장감이 돌고 고성도 터집니다. 주총이 축제의 자리가 되면 안 될까? 가을 추수를 끝내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내년을 기약하는 그런 자리 말입니다. 아쉬움이 들 때, 한 회사의 주총이 신선함으로 다가왔어요. 부드러움과 진지함과 자심감이 밴 주총입니다. 주주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음악회를 식전행사로 준비했다가 코로나로 취소했다는 전언은 신선하고 멋스러웠어요. 세계 온라인시장에 침대와 가구를 생산 판매하는 1조 클럽의 회사(ZINUS) 얘기입니다. 총 2시간 40분 중 2시간을 주주와 질의응답으로 보낸 것은 색다른 볼거리였지요. 40년 된 이 회사엔 업무용차와 비서진이 없습니다. 회장부터 전용차나 비서가 없고, 다른 임원과 같은 규모의 사무실을 씁니다. 카펫이 깔리지 않은 방엔 책상과 책장, 보고자가 앉을 의자 하나뿐, 소파나 그림 한 점 없습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회장부터 아래 직원까지 한 팀임을 느끼게 하는 회사. 그래서 주총 분위기가 달랐구나. 5월에 그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대주주인 회장이 배당금 전액을 회사에 내놨다는 주총 보고내용을 묻고 싶었어요. 그러자 “회사는 어렵지 않지만 코로나 상황이 지속될 텐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란, 쿨한 답을 듣습니다. 더 놀라운 건 딸까지 수억 원의 배당금을 포기했다는 겁니다. 아들은 애초부터 주식이 없었고요. 딸이 주식을 갖게 된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회사가 파산위기에 몰려 화의 신청을 하던 해, 딸 결혼이 겹쳤습니다. 하나뿐인 딸인데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어렵게 1억8천만 원을 만들어 전세 집을 마련해 주었답니다. 1년 뒤, 딸 내외가 찾아와 봉투를 내밉니다. “뭐냐?” “아빠에게 빌린 돈예요.” 순간 아찔했다고 합니다. “이 돈은 아빠가 준 거야. 빌려준 게 아니야.” 진심을 전했지만 딸은 극구 아빠 돈이라며 내 놓은 봉투를 거두지 않고 갔습니다. 이건 딸 돈인데...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망했다고 투매하는 자사주식을 샀답니다. 딸이 맡긴 액수만큼 딸 명의로 헐값에 사둔 겁니다. 그 후 잊고 지내다가 회사가 회생하고 지난해 재상장을 하면서 휴지 같던 주식이 대박을 터드리게 됐다는 스토리입니다. 지금도 딸은 그 주식의 소유는 아빠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자녀 모두 아버지 회사에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훗날 아버지가 지분이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하든 노터치랍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물의를 빚은 재벌가의 재산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말예요. “그 짐 하나는 일찍 덜었다”는 말로 편한 웃음을 주고받습니다. 경영권도 권력인데 어떻게 먼산바라기 할까? 나름 그 배경을 둘로 생각합니다. ‘금융 아이큐’가 높거나, 원칙주의자이거나. 결혼지참금을 굳이 빌렸다며 내놓은 딸과 끝까지 딸의 돈으로 생각한 아버지. 여기서 높은 금융 아이큐와 원칙을 봅니다. 그 결과가 생각지 않은 부를 가져온 것이죠. 직원들은 굴곡진 기업경영의 굽이를 오롯이 윈칙으로 극복해온 회장에 대해 존경심을 갖습니다. 걸어온 역정이 그래서겠죠. 그는 매스컴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나 강연 요청을 사양합니다. 기업인생 40년인데도. ‘지금도 승승장구하던 초년기의 교만했던 모습을 주기도문처럼 입에 달고 자신을 살핍니다. 꽃이 피면 향이 납니다. 향을 지니고 있으면 알음알음 벌나비가 찾아오겠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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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아이큐(IQ)’ 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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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오는 봄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에서 오네...” 오늘아침 FM방송에서 박재란의 봄노래를 들으며 달력을 보았습니다.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그녀의 명곡입니다. “꽃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지인들 실어 안 오리 남에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아직은 조석에 이는 바람이 매워도 더는 봄을 막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봄을 노래하지 못하는 건 녹록지 않은 안팎의 환경 탓이겠죠. 무지막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백척간두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이 그렇고... 방역 성공을 자랑하던 나라가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 세계 1위라는 순위도 가시처럼 목에 걸려요. 모진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의 봄으로 가는 고비가 이렇게 힘겹습니다. 옛날, 작은 왕국이 있었어요. 인자한 왕과 착한 백성이 평화를 사랑하는 행복한 소왕국입니다. 여기에도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마법사가 있었어요. 하루는 왕을 찾아가 백성 흉을 늘어놨어요. 백성을 믿다가 발등 찍힌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사악한 마법사를 쫓아냅니다. 그러자 이번엔 백성 대표를 찾아가 왕의 간악함을 알렸어요. 왕이 머잖아 백성을 내치고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고. 대표들도 마법사 말에 현혹되지 않고 그를 내쫓았습니다. 왕과 백성 모두 에게 박대를 당한 마법사는 약이 머리끝까지 올랐어요. 왕국에 어떻게 복수할까를 생각하다 엄청난 일을 꾸몄어요. 자신이 지닌 바이러스를 퍼뜨리기로 한 겁니다. 마법사는 모두가 잠든 새벽, 백성들이 사용하는 우물에 바이러스를 풀었어요.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지요.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물을 따로 쓰는 왕의 가족만 빼고요. 흥분한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평화의 왕국이 한순간 미친 왕국이 돼버린 거예요. 왕은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할 관청이나 치안을 맡은 경찰이 이미 바이러스에 중독된 상태여서 왕명에 복종을 거부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왕명은 받들 필요가 없다”라며 오히려 왕을 비난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미쳐버렸다고 탄식의 소리를 높였어요. 시위대로 돌변한 백성들이 궁궐 앞으로 몰려들더니 왕의 하야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였어요. 절망에 빠진 왕이 하야를 고민합니다. 그때 지혜로운 왕비가 묘안을 냈어요. “우리도 저들과 똑같은 우물물을 마셔보자고요. 그러면 백성과 같아질 게 아니겠어요?” 정신이 온전하든 돌아버리든 백성과 같아지면 더 이상 왕을 비난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왕은 시녀에게 우물물을 길어 오게 하고 왕비와 함께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왕이 희한한 헛소리를 시작합니다. 그것을 본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와! 우리 왕이 제정신을 찾으셨다”라며. 백성들은 왕을 악령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면서 고을마다 ‘왕빠’들이 앞장서 결사옹위를 다짐합니다. 왕국에는 잃었던 평화가 찾아왔어요. 왕과 백성이 생각과 마음이 같아 지면서 모든 사물이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마을이 평온을 찾자 심기가 상한 마법사가 이번에는 우물에다 바이러스 해독제를 풀었어요. 이물을 마신 신하들이 또 왕이 이상해졌다며 숙덕입니다. 삽시에 왕이 다시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신하들은 망령이 도졌다며 왕은 말도 안 되는 명을 거두라고 반발합니다. “미친 왕은 하야하라.” 금세 시위대가 들끓어 올랐고, 왕은 할 수 없이 하야를 결심하는데 왕비가 새로 길어온 우물물을 들고 나타납니다. 물을 마신 왕은 다시 정상이 됐고 나라도 마침내 평온을 찾았지요. 우리가 사는 것이 새날 같지만 실은 데자뷔 같은 세상을 사는 거예요. 정상과 비정상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진심과 사심(邪心)이 모호해져 분별력을 잃게도 하죠. 그제 전철을 타고 양수리를 찾았습니다. 운길산역에서 철길을 건너 강변을 따라 걸으면 발 끝에 ‘두물경’이라 쓰인 돌비석과 만납니다. 결빙과 해빙이 공존한 곳…. 밀려나는 겨울과 밀려오는 봄이 합수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두 강줄기가 합수해 만든 호수와 팔 벌린 운길산과 검단산이 사방으로 열어놓은 아름다운 경관과 조우합니다. 암록빛 강물과 강가 버드나무에 스치는 연록 빛과 억새 위로 소복이 내려 앉는 봄볕들…. 봄은 강을 타고 오른다는 말이 맞아요. 두 시간 남짓, 친구와 둘이서 겨우내 눅눅했던 마음을 훈풍에 말리고, 따뜻한 자연의 성정과 위로를 청하기도 하면서…. 자연이 주는 위로는 늘 어질고 진실됩니다. 엄혹했던 겨울을 이기고 찾아오는 봄소식을 듣습니다. 강화도 친구가 담장 아래 잔설을 헤집고 꽃대를 올린 복수초 사진을 보내오고, 횡성에 사는 친지는 변산바람꽃 소식을 담아보냈습니다. 봄의 특징은 바람입니다. 봄은 흔들리며 옵니다. 꽃도 흔들리며 피고, 가지들도 흔들리며 잎을 냅니다. 바람이 생명을 깨우고 봄길을 열어요.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더니, 어둑한 동네 골목에도 춘광이 쌓입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 자식을 잃고도, 공장을 불태우고도, 숯덩이 된 가슴으로 이 봄을 맞는 사랑하는 내 이웃들…. 꿋꿋하게 겨울을 이겨낸 이들이 고맙습니다. 이 봄에 전하고 싶은 안부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농밀한 마음입니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잘 할 거야.”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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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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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 지난달 경기도 퇴촌으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볕바른 잔디밭에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여전히 병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근육은 좀 더 굳어져 보였고 어눌한 말과 낮은 소리는 조금 더 느려져 물컵을 드는 데도 손이 많이 떨렸다. 4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파킨슨병으로 10년째 투병 중인 하버드대 출신의 물리학자였다. 그때보다 병이 진행되어 보였지만 그는 “끈질긴 재활운동과 특수치료를 받은 덕에 화장실 출입 정도는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며 웃었다. 그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가 며칠 전 출판사로 나를 찾는 전화를 걸어왔다.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내겠다며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연락을 준 것이다. 일부 원고에 첨삭을 했다면서 의자 위에 놓인 두툼한 원고 봉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왜 마음이 바뀌었느냐고 안 물으세요?” 나를 바라보며 묻더니 스스로 답을 대신했다. “막상 다 된 원고를 읽고 나니까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을 책으로 엮어낸다는 게 구차하게 느껴져 포기하려 했는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더라”라고 했다. 그녀를 각성시킨 것은 민들레였다. 봄날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돌쩌귀에 눌린 채 얼굴을 내민 노란 꽃 민들레가 그렇게 가여웠단다. “한참을 슬프게 내려다보는데 민들레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거 같았어요. 나는 살아야 한다고요. 꼭 살 거라면서 나를 향해 환히 웃는 거예요. 무거운 돌이 가녀린 몸을 짓누르지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사명인 것처럼. 그날 집에 돌아와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민들레가 나보다 사려 깊고 근성 있고 당차다는 걸 알았거든요.” 한 철을 살다가는 생명도 저리 모질게 버티는데 이 좋은 환경 다 누리면서 65년이란 세월을 살고도 그만한 인내도 못 배웠느냐고! 부박한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서 서랍에 넣어둔 원고를 다시 꺼냈다. 형식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위로 글이지만, 같은 30대 젊은이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투병에서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난 병상의 아들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듯, 교훈스러운 말투는 가려내 버리고 엄마의 곰삭은 언어로 몸과 마음이 지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더 굳어진 손가락으로 원고를 치는 작업은 고난이었을 것이다. 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30분만 자판을 두드려도 온몸이 뒤틀려 며칠을 끙끙 앓았다는 그녀.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쓴 글을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자각에 정신이 번쩍 난다”라고 했다. 그는 파킨슨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 이런저런 수술을 받았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 발목에 금이 가고 어깨뼈가 탈골되는 등 여러 차례 변고를 겪었다. 고통은 쌍으로 온다더니 이태 전엔 갑상선암과 자궁근종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을 원망할 때인데, 그 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 그분의 존재를 의심할 때였어요.” 그 말을 하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죄송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금 감정을 추스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간밤 꿈에 꽃밭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어깨에 앉아 노래를 불렀어요.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해지길 원하시지 결코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요. 잠에서 깨났는데 그 말이 생시처럼 선명했어요. 이 고통은 내 일생 중 한 부분이 일으킨 일탈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세상이 온통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라는 것도 알았어요. 노란 민들레가 그렇고, 꿈에 찾아온 새가 그렇고, 오늘은 선생님이 나를 응원하시잖아요.” 편안한 얼굴로 나를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는 것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는가. 고통 없이 살기를 원한다는 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래요. 봄은 아름답고 환할 뿐인데 김영랑 시인은 찬란한 슬픔을 이야기했잖아요. 고통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거예요. 처음 진단을 받을 때의 그 끔찍함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는데도 실상은 좋아진 거예요 지금이. 그때 쉽게 포기해 버렸다면 참 많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내 마음조차 나를 비웃었겠죠.” 성경의 욥 이야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내가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으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6).’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롬 5:3-4).’ 그녀는 성경의 이 두 구절을 닳도록 입에 올리며 구원을 노래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밖에 있는 현대 의술이나 명의를 좇아 다녔는데, 이젠 앙팡지게 안에 있는 나를 찾고 의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 비로소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걸 깨친 거죠.” 그 뒤로 몸이 오그라드는 통증이 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버텨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최후의 사명인 것처럼. 무엇을 잡고 인생을 견뎌낼 것인가? 원고가 담긴 USB를 받아 일어서면서 그에게 같은 말로 위로를 전했다. “맞아요. 예수님도 홀로 십자가의 고초를 견디셨으니까요. 창조주이신 그분을 신뢰하고 참고, 견디며 은총을 소망하세요”라는 말로… 그날 그와의 만남은 이 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 저녁 발문을 썼다. 그의 ‘참고, 견디고, 기다림’의 이야기는 곧 서점가에 나올 것이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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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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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팝콘
- 신록은 꽃철에서 시작합니다. 꽃철은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냅니다. 살아난 산들이 골짝마다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딱히 갈 데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꽃동산을 열어줍니다.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등 색색으로 피어난 봄꽃들이 능선과 골짝을 물들이고, 흥에 겨운 아이들이 쉬지 않고 꽃을 찾아다니던 풍경 속엔 아이들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야, 여기! 이리 와!” 또래 형이 소리치면 아이들은 소리 난 곳을 향해 우르르 비탈을 내달리죠. 와~! 아이들이 지르는 탄성엔 아름다움보다 ‘많다’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봄꽃은 곧 먹는 꽃이니까요. 아이들은 그때가 보릿고개란 것을 모릅니다. 쫄쫄 배를 골아도 사는 게 그러려니 할 뿐. 또래들의 관심은 늘 노는 데만 정신을 팔지요. 그러다 허기를 느끼면 또래 형이 소리칩니다. “야, 산에 가자!”. 뒷산에서 삘기를 뽑아 먹고, 붉은 진달래를 따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습니다. 쌉쌀한 맛이지만 모두들 입술이 물 들도록 꽃잎을 따 먹고 집으로 향할 때면 입술마다 보랏빛에 물들었죠. 음식으로 치자면 요즘 한창인 이팝나무꽃이 더 살갑습니다. 나뭇가지를 뒤덮은 하얀 꽃이 마치 ‘이밥(쌀밥)’ 같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핀다고 입하 목(立夏木)으로도 불립니다. 이팝이 꽃을 피울 때가 공교롭게도 보릿고개와 겹쳤습니다. 보릿고개를 넘던 옛 조상들 눈에는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꽃이 쌀밥으로 보였나 뵵니다. 이팝꽃이 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환영입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압권인 장면은 정적을 깨는 팝콘 판타지입니다.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마을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아픈 서사를 더 저리게 했던 바로 그 장면…. 수류탄이 마을 옥수수 창고로 굴러들어가 터지면서 옥수수가 팝콘으로 튀겨져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사람들 얼굴에 온기를 돌리고, 팝콘이 밤하늘에서 흰 눈으로 내릴 때, 모두를 잠시나마 선한 얼굴로 되돌려 함박웃음을 짓게 했던 팝콘 판타지…. 어제 들린 서울 현충원에도 이팝나무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혼의 넋을 위로하는 지금은, 저보다 맞춤한 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새 정부가 국민 품으로 돌려준 청와대에도 이팝나무 꽃이 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고항인 대구 달성에서 가져와 심었다는데, 올해는 더 풍성하게 피어 ‘웰컴 투 청와대’의 한 자리를 밝힙니다. 언젠가부터 은행나무를 대체해 가로수로 각광을 받더니 청계천에도 가로수에서 흰 팝콘을 터트립니다. 전주 팔복동 철길, 함평 양재리도 그 소박한 꽃송이가 밥사발 가득 흰쌀밥을 얹었습니다. 조선 왕조 때는 벼슬을 해야 이씨가 주는 귀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 ‘이(李)밥나무’로 불렸다는 꽃.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로도 불리지만 이미지는 다 흰쌀밥이죠. 나무에 무슨 귀족이 있고 서민이 있을까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서민 나무의 대표라 할 것입니다. 군락을 이루어 피는 벚꽃, 배꽃, 지금이 한창인 이팝꽃, 아카시아꽃처럼 흰꽃만큼 우리 눈을 환하게 열어주는 꽃도 없습니다. 지금은 산하마다 아카시아가 제철입니다. 오늘도 워커힐을 지나 집으로 가는 아차산로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로 진동합니다. 사시사철 내게 넓은 품을 열어준 아차산의 지금은, 하얀 꽃무리가 구름꽃이 되어 녹색 숲을 덮고 있습니다. 밤에 창을 열면, 베란다를 지나 서재로 들이친 고혹한 향기가 절로 깊은 들숨부터 쉬게 합니다. 아카시아는 서러움의 꽃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밥 대신 따먹던 꽃이었으니까요. 또한 그리움의 꽃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 ‘아카시아’가 그렇습니다.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아카시아 향이 멀어지고 찝찔한 밤꽃 향이 나면, 여름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벌써 봄의 끝자락, 야속한 건 부리나케 폈다 떠나는 봄꽃의 속성입니다. 어쩜 성질머리가 봄을 꼭 빼닮았을까? 삶을 그리웁게 하는 건 배불리 먹고 잘 놀던 기억이 아니라, 힘든 때를 함께 한 사람들과의 기억입니다. 봄꽃은 그래서 애잔하고, 지울 수 없는 얼룩이고, 정겨운 내 기억의 문신이죠.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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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따는 돈키호테
-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죠. 그럼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고개부터 갸우뚱해집니다. “세르반테스 알아?” “누군데?” 그러다가도 ‘돈키호테’ 란 말에 금방 ‘아, 그 돌직구!‘ 수긍합니다. 돈키호테하면 곧잘 권력의 중심에서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햄릿(형)과 대칭된 인간유형으로 비교되곤 하지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동서양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돈키호테 이후의 소설은 이 소설을 다시 썼거나 그 일부를 쓴 것.” 이라거나 “미래의 작가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수백 년 전에 다써놓았다.”고 할 만큼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국민문학으로, 성경 다음 많이 읽히는 책으로 소개되지요. 시대를 막론하고 혁명을 꿈꾼 사람들은 돈키호테 취급을 받습니다. 현실감이 없는 허무맹랑한 인물로 비쳤던 돈키호테가 다시 현대사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주영이 그랬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새로운 것에 배고파하고 우직하게 살자(Stay hungry, Stay foolish)”고 연설한 스티브잡스가 그런 사람들이지요. 스페인 라만차 마을에 사는 귀족 출신의 늙고 가난한 지주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를 읽다가 블랙홀로 빠져듭니다.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스스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돼 세상을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죠. 조상대대로 내려온 낡은 갑옷을 꺼내 입고, 늙고 초라한 말에 올라타요. 이 모험 길에 이웃인 산초 판사가 따라나섭니다. 그의 모험은 끊임없는 좌충우돌에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유명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고, 지나는 양떼와 목동에게 역사적 전투라고 선포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놋대야를 황금 투구로 생각하고 이를 쟁취하려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친 사람이지요. 어떤 이는 그의 멍청함에 읽던 책을 덮기도 하고, 누구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담았기에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걸까. 돈키호테는 자신의 생명을 이상과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어요. 이웃과 현재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의 화신이고. 옳다고 믿는 일엔 망설임 없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행동주의자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나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최근에 접한 책 중에 고려대 안영옥 교수가 쓴 ‘돈키호테의 말’ 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돈키호테 완역본을 펴낸 안 교수가 돈키호테가 남긴 지혜의 글귀에다 자신의 생각을 얹어 펴낸 책이지요. 낡은 갑옷에 구부러진 창을 들고 늙은 말 위에 올라탄 주인공 이미지는 자신의 신념과 꿈을 좇아 돌진하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심약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줍니다. 400년 된 돈키호테가 오늘도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층 더 주목 받는 이유는 돈키호테란 인물이 우리시대의 결핍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 선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쁨을 주고, 그의 말 한마디는 지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선물해요. 불온한 세상을 향하는 도전적 발언과 동반자 산초와 나눈 대화는 인생길에 지혜로도 찾아옵니다. 저자는 “돈키호테처럼 인생을 나의 무대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생은 누군가의 소품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언합니다. 인생이란 공연은 한 번 뿐이고, 하늘은 우리에게 두 번의 인생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세상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돈키호테는 오늘도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을 향해 돌진해 옵니다. 아무리 어려운 모험일지라도 이 일에 도전하겠다는 욕망으로 내 심장은 터질 것 같다고 외치면서.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말고 나다운 삶을 찾아 당당하게 밀고 나가라고 우리 모두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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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따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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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 지난 5월 21일 2시, 당진시청 대강당에서는 당진지역사회 연구소(소장 최태석)가 주체하는 ‘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기 열렸다. 6개의 시민단체와 2개의 언론기관이 연합으로 참여하는 시민단체의 토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80년간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서비스 대행기관으로서 관치행정중심의 일을 해왔다.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켜 나가는 자치행정체제는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지역개발사업은 시장의 시혜적 사업으로 인식돼 각계각층의 여러가지 요구사항들이 많이 나와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지역 단체장의 가장 큰 일로 여겨왔다. 그렇지만 당진시는 이미 당진산업단지에는 화력발전단지와 철강단지가 입주해 있어 중화학공업 중심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도농융합복합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자치행정체제릂 구축하여 지역갈등과 지속적인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지역주민중심의 민관거버넌스체제를 결성하여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역갈등을 최소화하고 연대와 협력체제로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중앙집권체제에서의 지방정부로서 시장에게 시민단체에서 각종 요구사항을 내놓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당진, 바꿔야 한다, 민생경제’ 등의 캐츠 플레이드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당진경제의 미래에 대한 토론회가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당진시장 후보들의 의견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번에 당선된 당진시장은 2030년 5월말까지 임기이어서 국내 최고의 온실가스 배출지역인 당진시는 탄소중립 목표의 50%이상 달성해야 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더욱이 2029년부터 당진화력발전소 1호기, 2호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폐가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현대제철 일괄제철소(용광로)의 20년 수명이 만기가 되어 이를 다시 건설해야 되는데 1기당 6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이미 수소 환원제철을 포기하고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했으니 역시 2030년부터 본격적인 용광로 폐기수순을 밟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런 탄소중립 문제가 당진경제의 미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어서 이번 토론회의 주제가 되어야 할 텐데도 이를 배제시켰다. 그렇다고 당진시장 후보들도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어 당진시민들은 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021년 1일 1일부터 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 가동 중단, 폐기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서 지방세수가 연간 약 44억 원 감소했고, 소비지출은 약 190억 원 줄었다. 인구는 1,800명 이상 감소해 10만 명 선이 무너졌고, 지역 내 총생산은 1년 만에 3,380억 원 감소되었다. 당진 화력은 총 10기의 석탄 화력 설비 중 2029년부터 2037년까지 8기를 순차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2029년 1·2호기 △2030년 3·4호기 △2035년 5호기 △2036년 6호기 △2037년 7·8호기가 해당된다. 이에 따라 일자리 상실, 인구 유출, 지역경제 침체 등 지역 소멸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이는 보령화력의 4배나 되는 세수감소, 소비지출 감소. 인구감소, 지역총생산 감소 등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재앙인데도 오성환 후보는 연구용역으로 처리할 계획이며 지역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하였다. 진정으로 당진경제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중심의 에너지전환 방안과 지방성장주도시대에서의 경제재편방안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당진시장 선거는 민주당의 김기재 후보냐? 아니면 국민의 힘의 오성환 후보냐? 둘 중에 택일하는 선거이다. 따라서 두 후보자들의 특성을 면밀하게 분석, 평가하여 과연 당진경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시장으로서 덕목을 갖추고 있냐를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우선 지난 4년간 시정운영을 맡아왔던 오성환 후보는 먼저 시정운영에 대한 잘, 잘못을 평가해서 당진시정운영에 반영시켜야 하는 피드백 과정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오성환 후보는 ‘1-5-100 마스터플랜’이라는 화려한 공약을 내세워 ‘과거에 대한 피드백 없이 재선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겠다’는 도전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실 ‘발로 뛰는 기업유치를 통하여 국내 최고의 당진경제를 이뤄나가겠다’는 그의 패러다임은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김기재 후보는 “19조라는 기업유치 실적은 사실상 투자의향서를 받아놓은 것에 불과하고 지난 3년간 기업유치는 7,059억원으로 전체의 3.8%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혀 사실상 오성환의 발로 뛰는 기업유치방안이란 당진경제의 발전방안이라고 보기 어렵고 다만 재선목표로 내세운 지역주민들의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반해 김기재 후보는 ‘3선 어기구 의원, 박수현 충남지사 후보, 이재명 대통령’을 원팀으로 하는 여당 주도권을 내세워 상대 후보보다도 힘 있는 당진경제 발전에 노력할 수 있다는 여당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아무리 중앙정부가 도와준다고 해도 당진경제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를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진시장으로서 당진경제를 어떻게 되살려 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서 지역주민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기재 후보는 이런 비전제시에는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상대방보다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당선하고자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당진경제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탄소중립과 당진산단 경제재편에 대한은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라도 마련하여 성공적으로 탄소중립과 당진경제 재편을 추진하겠다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진시는 당진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비중이 97%나 차지하고 있는 당진산업단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당진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을 완성시켜 나가면서 지방주도형 성장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당진시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당진시장에 후보로 나선 사람들은 이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디는 것은 지역주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간척지 사업으로 건설된 당진산단은 실질적으로 3분의 1만 활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직도 농장(한국수자원 공사)과 늪지대로 그대로 버려진 채로 남아 있다. 내가 진정으로 당진시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면 당연히 나머지 3분의 2를 산업단지로 재활용하여 요즈음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2차 전지, 조선, 방위산업 등을 유치시켜 당진경제를 도약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평택시의 산단 용지가 평당 2백원이 넘어서고 있는데 반해 당진시의 산단 용지는 120만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산업용수는 물론 전력생산, 당진항만 등 산업체의 각종 여건을 갖추고 있는 당진시로서는 당연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비전을 준비해야 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은 의미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의 도움도 받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누가 이를 돕겠다고 나서겠는가? 당진시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탄소중립을 피하고 발로 뛰는 기업유치를 통하여 당진경제를 국내 최고로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구상으로 당진경제를 발목이나 잡고 있으니 당진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한 사람은 여권의 프리미엄을 내세워 상대방보다 자신이 힘을 갖고 있어 당진경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니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당진시장으로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당진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이를 달성시켜 나갈 수 있는 민관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여 당진경제의 도약의 발판은 마련해야 당진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이라도 오성환 후보는 지난 시정에 대한 잘못이 있으면 이를 인정하고 앞으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해 책임지는 면모를 보여야 당진시장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김기재 후보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키는 정책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시켜 나갈 수 있는 자문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 도구를 통하여 보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당당한 당진시장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당진시장 후보들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자세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당진경제가 도약해 나갈 수 있는 지를 재정리하여 발표하는 당당한 당진시장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기간 중이라도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당진경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당진시민을 대표하는 수임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는 자세로 당진시민들의 검증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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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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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70돌, 잊힌 전쟁 잊힌 승리
-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참혹한 기억에서 도망치려합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어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으니까. 7년 전쟁을 끝낸 일본이 전후사 연구에 몰입하던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고 조선에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며 비웃더라는 얘기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6·25 70주년’- 이념의 더께는 여전하고 무심한 세월만 덧씌웠습니다. 폐허의 벌판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대국으로 나가는 발판을 제공한 전쟁이었음에도, 우리의 기억은 멀리 도망가 있어요. 잊힌 전쟁, 잊힌 승리로.... 40주년이던 1990년, 서울시청 정문위에 한 장의 대형 흑백사진이 내걸려 모든 시선을 붙잡았어요. 6·25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 부모를 잃은 소년이 길을 헤매다가 덕수궁 우물가에 잠든 것을 외신기자가 찍어 라이프 지에 실었던 ‘우물가소년’ 입니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6·25자 조선일보는 “전쟁고아 ‘우물가소년’ 하버드 박사 돼 40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과 사진을 톱으로 올렸습니다. 임종덕(J. 화이트)씨. 화려한 인생역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첫 말은 “6·25를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때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당시 그분의 육성 증언을 직접 들은 기억으로 이글을 씁니다. 공무원인 소년의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자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었어요. 악착 같은 인민군은 아버지를 인민재판에 끌어냅니다. 그들은 마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살하고, 자녀들이 감금된 안방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광경을 14세 소년은 나무위에서 지켜봤습니다. 세계에 6.25 참상을 알린 사진 <우물가소년>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데리고 전장을 누비던 외신기자는 1·4후퇴 때 전사하고, 소년은 고아원 생활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원장의 비리를 봤어요. 원생들은 시래기죽도 못 먹는데 쌀밥을 먹고,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준 구호품까지 몽땅 회수해 팔아먹는 것입니다. 소년은 당찬 결심을 해요. 어디가면 못 살까. 아이들을 집합시킨 후 당돌하게 외칩니다. “우리 나가자. 따라올 사람은 다 나오라.” 82명이 따라나섰습니다. 이 많은 아이들과 어디로 가? 두렵기도 했으나 발걸음은 어느 새 불광동 고개를 넘어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남산의 방공호 자리를 아지트로 만들고, 다음날부터 미군 쓰레기장을 뒤져 돈 될 것을 찾습니다. 깡통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적자생존은 이 바닥에도 있어요. 힘 센 자들이 아이들을 괴롭히자 소년은 조직을 갖추어 남대문, 도동, 양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세 싸움을 벌였고, 마침내 이 일대 양아치의 두목이 됩니다. 별칭 빨강셔츠. 그가 빨강셔츠를 입고 나가면 아이들이 달려와 머리를 숙여요.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한 얘들이 고열로 쓰러집니다. 들쳐 업고 달려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양아치라며 모두 문을 닫아겁니다. 하루사이 32명의 아이가 홍역으로 죽어나갔어요. 시신을 그러묻으며 소년은 돈독이 오릅니다. 그런 소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와요. 하루는 서울역 앞에 미군 세단이 서고, 별 단 장군이 내리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건 뒷좌석에 놓인 가죽가방. 직감에 ‘돈이다’ 판단하고 삽시에 가방을 빼돌려 골목으로 뛰어 들었지만 접힌 지도 한 장뿐입니다. 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죽가방만 챙겨 남대문시장에다 팔고 나오는데. 낯익은 형사들이 덮칩니다. “미공군사령관 가방 갖고 튀었지?” 가방에 비밀지도가 들었다며 방방 뛰는 형사를 따라 서울역에 오니 경찰과 헌병이 깔렸고, 얘들은 무릎이 꿇려 있습니다. 소년은 I'm sorry, very sorry, 이리ok, 저리ok 해가며 쓰레기통에 버린 지도를 찾아줍니다. 그런 소년에게 찾아온 건 벌 대신 사랑이었어요. 미공군사령관 화이트 장군이 지도를 돌려받은 고마움으로 사령관 가방보이로 채용한 겁니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중인 외아들이 전사하자 소년을 아예 양아들로 입양시킵니다. 1952년 8월의 일이예요. 소년의 미국생활을 이렇게 시작됐답니다. 재기 있고 명석한 소년은 양부모의 후원아래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하기까지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보직을 수행했어요. 그는 “하버드에서 하루 3시간 자면서 공부할 때나 미군에 근무할 때도 6·25의 아픔과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어요. 우물가소년의 '비극과 승리'는 바로 우리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살아요.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켜지고, 융성해졌는지를 망각하고. 70돌이 된 6·25는 우리에게 그것을 묻습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며..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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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70돌, 잊힌 전쟁 잊힌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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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아이큐(IQ)’ 에 대해
- 부자에도 부류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제힘으로 남보다 넉넉히 사는 촌부자,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떼부자, 겉보다 실속 있는 알부자가 있어요. 요즘엔 으뜸가는 부(富)를 재벌(거대자본의 기업·기업가)이라 부릅니다. 돈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돈이 사람에게 군림하면 바른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떼부자가 돈 쓸 줄을 몰라 졸부증후군에 빠지고, 멀쩡한 집안을 패가망신시키니까요. 버는 것보다 쓰는 법이 더 중요한 게 돈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도 교육을 탓할 수밖에요. 학교가 돈을 위해 일하는 방법은 가르쳐도 돈에 대한 가치관이나 돈을 관리하는 방법은 심어주지 않으니까요. 돈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데, 정작 교육은 없습니다. 돈에 대한 관념을 바로 심어주고 ‘금융 IQ’를 키우는 교육을 하라.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의 주장입니다. 그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라”고 했어요.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많은 물의를 일으킵니다. 내 땀과 눈물이 밴 돈만이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돈이란 신념을 갖도록 사회가 더 힘써야 합니다. 지난 봄, 주총 시즌이 있었어요. 회사는 주주와 마찰 없이 잘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회사에 따라 긴장감이 돌고 고성도 터집니다. 주총이 축제의 자리가 되면 안 될까? 가을 추수를 끝내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내년을 기약하는 그런 자리 말입니다. 아쉬움이 들 때, 한 회사의 주총이 신선함으로 다가왔어요. 부드러움과 진지함과 자심감이 밴 주총입니다. 주주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음악회를 식전행사로 준비했다가 코로나로 취소했다는 전언은 신선하고 멋스러웠어요. 세계 온라인시장에 침대와 가구를 생산 판매하는 1조 클럽의 회사(ZINUS) 얘기입니다. 총 2시간 40분 중 2시간을 주주와 질의응답으로 보낸 것은 색다른 볼거리였지요. 40년 된 이 회사엔 업무용차와 비서진이 없습니다. 회장부터 전용차나 비서가 없고, 다른 임원과 같은 규모의 사무실을 씁니다. 카펫이 깔리지 않은 방엔 책상과 책장, 보고자가 앉을 의자 하나뿐, 소파나 그림 한 점 없습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회장부터 아래 직원까지 한 팀임을 느끼게 하는 회사. 그래서 주총 분위기가 달랐구나. 5월에 그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대주주인 회장이 배당금 전액을 회사에 내놨다는 주총 보고내용을 묻고 싶었어요. 그러자 “회사는 어렵지 않지만 코로나 상황이 지속될 텐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란, 쿨한 답을 듣습니다. 더 놀라운 건 딸까지 수억 원의 배당금을 포기했다는 겁니다. 아들은 애초부터 주식이 없었고요. 딸이 주식을 갖게 된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회사가 파산위기에 몰려 화의 신청을 하던 해, 딸 결혼이 겹쳤습니다. 하나뿐인 딸인데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어렵게 1억8천만 원을 만들어 전세 집을 마련해 주었답니다. 1년 뒤, 딸 내외가 찾아와 봉투를 내밉니다. “뭐냐?” “아빠에게 빌린 돈예요.” 순간 아찔했다고 합니다. “이 돈은 아빠가 준 거야. 빌려준 게 아니야.” 진심을 전했지만 딸은 극구 아빠 돈이라며 내 놓은 봉투를 거두지 않고 갔습니다. 이건 딸 돈인데...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망했다고 투매하는 자사주식을 샀답니다. 딸이 맡긴 액수만큼 딸 명의로 헐값에 사둔 겁니다. 그 후 잊고 지내다가 회사가 회생하고 지난해 재상장을 하면서 휴지 같던 주식이 대박을 터드리게 됐다는 스토리입니다. 지금도 딸은 그 주식의 소유는 아빠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자녀 모두 아버지 회사에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훗날 아버지가 지분이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하든 노터치랍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물의를 빚은 재벌가의 재산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말예요. “그 짐 하나는 일찍 덜었다”는 말로 편한 웃음을 주고받습니다. 경영권도 권력인데 어떻게 먼산바라기 할까? 나름 그 배경을 둘로 생각합니다. ‘금융 아이큐’가 높거나, 원칙주의자이거나. 결혼지참금을 굳이 빌렸다며 내놓은 딸과 끝까지 딸의 돈으로 생각한 아버지. 여기서 높은 금융 아이큐와 원칙을 봅니다. 그 결과가 생각지 않은 부를 가져온 것이죠. 직원들은 굴곡진 기업경영의 굽이를 오롯이 윈칙으로 극복해온 회장에 대해 존경심을 갖습니다. 걸어온 역정이 그래서겠죠. 그는 매스컴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나 강연 요청을 사양합니다. 기업인생 40년인데도. ‘지금도 승승장구하던 초년기의 교만했던 모습을 주기도문처럼 입에 달고 자신을 살핍니다. 꽃이 피면 향이 납니다. 향을 지니고 있으면 알음알음 벌나비가 찾아오겠지요?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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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아이큐(IQ)’ 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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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오는 봄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에서 오네...” 오늘아침 FM방송에서 박재란의 봄노래를 들으며 달력을 보았습니다.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그녀의 명곡입니다. “꽃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지인들 실어 안 오리 남에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아직은 조석에 이는 바람이 매워도 더는 봄을 막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봄을 노래하지 못하는 건 녹록지 않은 안팎의 환경 탓이겠죠. 무지막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백척간두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이 그렇고... 방역 성공을 자랑하던 나라가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 세계 1위라는 순위도 가시처럼 목에 걸려요. 모진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의 봄으로 가는 고비가 이렇게 힘겹습니다. 옛날, 작은 왕국이 있었어요. 인자한 왕과 착한 백성이 평화를 사랑하는 행복한 소왕국입니다. 여기에도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마법사가 있었어요. 하루는 왕을 찾아가 백성 흉을 늘어놨어요. 백성을 믿다가 발등 찍힌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사악한 마법사를 쫓아냅니다. 그러자 이번엔 백성 대표를 찾아가 왕의 간악함을 알렸어요. 왕이 머잖아 백성을 내치고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고. 대표들도 마법사 말에 현혹되지 않고 그를 내쫓았습니다. 왕과 백성 모두 에게 박대를 당한 마법사는 약이 머리끝까지 올랐어요. 왕국에 어떻게 복수할까를 생각하다 엄청난 일을 꾸몄어요. 자신이 지닌 바이러스를 퍼뜨리기로 한 겁니다. 마법사는 모두가 잠든 새벽, 백성들이 사용하는 우물에 바이러스를 풀었어요.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지요.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물을 따로 쓰는 왕의 가족만 빼고요. 흥분한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평화의 왕국이 한순간 미친 왕국이 돼버린 거예요. 왕은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할 관청이나 치안을 맡은 경찰이 이미 바이러스에 중독된 상태여서 왕명에 복종을 거부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왕명은 받들 필요가 없다”라며 오히려 왕을 비난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미쳐버렸다고 탄식의 소리를 높였어요. 시위대로 돌변한 백성들이 궁궐 앞으로 몰려들더니 왕의 하야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였어요. 절망에 빠진 왕이 하야를 고민합니다. 그때 지혜로운 왕비가 묘안을 냈어요. “우리도 저들과 똑같은 우물물을 마셔보자고요. 그러면 백성과 같아질 게 아니겠어요?” 정신이 온전하든 돌아버리든 백성과 같아지면 더 이상 왕을 비난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왕은 시녀에게 우물물을 길어 오게 하고 왕비와 함께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왕이 희한한 헛소리를 시작합니다. 그것을 본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와! 우리 왕이 제정신을 찾으셨다”라며. 백성들은 왕을 악령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면서 고을마다 ‘왕빠’들이 앞장서 결사옹위를 다짐합니다. 왕국에는 잃었던 평화가 찾아왔어요. 왕과 백성이 생각과 마음이 같아 지면서 모든 사물이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마을이 평온을 찾자 심기가 상한 마법사가 이번에는 우물에다 바이러스 해독제를 풀었어요. 이물을 마신 신하들이 또 왕이 이상해졌다며 숙덕입니다. 삽시에 왕이 다시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신하들은 망령이 도졌다며 왕은 말도 안 되는 명을 거두라고 반발합니다. “미친 왕은 하야하라.” 금세 시위대가 들끓어 올랐고, 왕은 할 수 없이 하야를 결심하는데 왕비가 새로 길어온 우물물을 들고 나타납니다. 물을 마신 왕은 다시 정상이 됐고 나라도 마침내 평온을 찾았지요. 우리가 사는 것이 새날 같지만 실은 데자뷔 같은 세상을 사는 거예요. 정상과 비정상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진심과 사심(邪心)이 모호해져 분별력을 잃게도 하죠. 그제 전철을 타고 양수리를 찾았습니다. 운길산역에서 철길을 건너 강변을 따라 걸으면 발 끝에 ‘두물경’이라 쓰인 돌비석과 만납니다. 결빙과 해빙이 공존한 곳…. 밀려나는 겨울과 밀려오는 봄이 합수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두 강줄기가 합수해 만든 호수와 팔 벌린 운길산과 검단산이 사방으로 열어놓은 아름다운 경관과 조우합니다. 암록빛 강물과 강가 버드나무에 스치는 연록 빛과 억새 위로 소복이 내려 앉는 봄볕들…. 봄은 강을 타고 오른다는 말이 맞아요. 두 시간 남짓, 친구와 둘이서 겨우내 눅눅했던 마음을 훈풍에 말리고, 따뜻한 자연의 성정과 위로를 청하기도 하면서…. 자연이 주는 위로는 늘 어질고 진실됩니다. 엄혹했던 겨울을 이기고 찾아오는 봄소식을 듣습니다. 강화도 친구가 담장 아래 잔설을 헤집고 꽃대를 올린 복수초 사진을 보내오고, 횡성에 사는 친지는 변산바람꽃 소식을 담아보냈습니다. 봄의 특징은 바람입니다. 봄은 흔들리며 옵니다. 꽃도 흔들리며 피고, 가지들도 흔들리며 잎을 냅니다. 바람이 생명을 깨우고 봄길을 열어요.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더니, 어둑한 동네 골목에도 춘광이 쌓입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 자식을 잃고도, 공장을 불태우고도, 숯덩이 된 가슴으로 이 봄을 맞는 사랑하는 내 이웃들…. 꿋꿋하게 겨울을 이겨낸 이들이 고맙습니다. 이 봄에 전하고 싶은 안부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농밀한 마음입니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잘 할 거야.”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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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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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 지난달 경기도 퇴촌으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볕바른 잔디밭에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여전히 병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근육은 좀 더 굳어져 보였고 어눌한 말과 낮은 소리는 조금 더 느려져 물컵을 드는 데도 손이 많이 떨렸다. 4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파킨슨병으로 10년째 투병 중인 하버드대 출신의 물리학자였다. 그때보다 병이 진행되어 보였지만 그는 “끈질긴 재활운동과 특수치료를 받은 덕에 화장실 출입 정도는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며 웃었다. 그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가 며칠 전 출판사로 나를 찾는 전화를 걸어왔다.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내겠다며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연락을 준 것이다. 일부 원고에 첨삭을 했다면서 의자 위에 놓인 두툼한 원고 봉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왜 마음이 바뀌었느냐고 안 물으세요?” 나를 바라보며 묻더니 스스로 답을 대신했다. “막상 다 된 원고를 읽고 나니까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을 책으로 엮어낸다는 게 구차하게 느껴져 포기하려 했는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더라”라고 했다. 그녀를 각성시킨 것은 민들레였다. 봄날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돌쩌귀에 눌린 채 얼굴을 내민 노란 꽃 민들레가 그렇게 가여웠단다. “한참을 슬프게 내려다보는데 민들레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거 같았어요. 나는 살아야 한다고요. 꼭 살 거라면서 나를 향해 환히 웃는 거예요. 무거운 돌이 가녀린 몸을 짓누르지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사명인 것처럼. 그날 집에 돌아와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민들레가 나보다 사려 깊고 근성 있고 당차다는 걸 알았거든요.” 한 철을 살다가는 생명도 저리 모질게 버티는데 이 좋은 환경 다 누리면서 65년이란 세월을 살고도 그만한 인내도 못 배웠느냐고! 부박한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서 서랍에 넣어둔 원고를 다시 꺼냈다. 형식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위로 글이지만, 같은 30대 젊은이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투병에서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난 병상의 아들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듯, 교훈스러운 말투는 가려내 버리고 엄마의 곰삭은 언어로 몸과 마음이 지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더 굳어진 손가락으로 원고를 치는 작업은 고난이었을 것이다. 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30분만 자판을 두드려도 온몸이 뒤틀려 며칠을 끙끙 앓았다는 그녀.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쓴 글을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자각에 정신이 번쩍 난다”라고 했다. 그는 파킨슨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 이런저런 수술을 받았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 발목에 금이 가고 어깨뼈가 탈골되는 등 여러 차례 변고를 겪었다. 고통은 쌍으로 온다더니 이태 전엔 갑상선암과 자궁근종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을 원망할 때인데, 그 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 그분의 존재를 의심할 때였어요.” 그 말을 하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죄송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금 감정을 추스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간밤 꿈에 꽃밭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어깨에 앉아 노래를 불렀어요.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해지길 원하시지 결코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요. 잠에서 깨났는데 그 말이 생시처럼 선명했어요. 이 고통은 내 일생 중 한 부분이 일으킨 일탈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세상이 온통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라는 것도 알았어요. 노란 민들레가 그렇고, 꿈에 찾아온 새가 그렇고, 오늘은 선생님이 나를 응원하시잖아요.” 편안한 얼굴로 나를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는 것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는가. 고통 없이 살기를 원한다는 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래요. 봄은 아름답고 환할 뿐인데 김영랑 시인은 찬란한 슬픔을 이야기했잖아요. 고통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거예요. 처음 진단을 받을 때의 그 끔찍함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는데도 실상은 좋아진 거예요 지금이. 그때 쉽게 포기해 버렸다면 참 많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내 마음조차 나를 비웃었겠죠.” 성경의 욥 이야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내가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으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6).’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롬 5:3-4).’ 그녀는 성경의 이 두 구절을 닳도록 입에 올리며 구원을 노래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밖에 있는 현대 의술이나 명의를 좇아 다녔는데, 이젠 앙팡지게 안에 있는 나를 찾고 의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 비로소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걸 깨친 거죠.” 그 뒤로 몸이 오그라드는 통증이 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버텨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최후의 사명인 것처럼. 무엇을 잡고 인생을 견뎌낼 것인가? 원고가 담긴 USB를 받아 일어서면서 그에게 같은 말로 위로를 전했다. “맞아요. 예수님도 홀로 십자가의 고초를 견디셨으니까요. 창조주이신 그분을 신뢰하고 참고, 견디며 은총을 소망하세요”라는 말로… 그날 그와의 만남은 이 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 저녁 발문을 썼다. 그의 ‘참고, 견디고, 기다림’의 이야기는 곧 서점가에 나올 것이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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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팝콘
- 신록은 꽃철에서 시작합니다. 꽃철은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냅니다. 살아난 산들이 골짝마다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딱히 갈 데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꽃동산을 열어줍니다.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등 색색으로 피어난 봄꽃들이 능선과 골짝을 물들이고, 흥에 겨운 아이들이 쉬지 않고 꽃을 찾아다니던 풍경 속엔 아이들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야, 여기! 이리 와!” 또래 형이 소리치면 아이들은 소리 난 곳을 향해 우르르 비탈을 내달리죠. 와~! 아이들이 지르는 탄성엔 아름다움보다 ‘많다’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봄꽃은 곧 먹는 꽃이니까요. 아이들은 그때가 보릿고개란 것을 모릅니다. 쫄쫄 배를 골아도 사는 게 그러려니 할 뿐. 또래들의 관심은 늘 노는 데만 정신을 팔지요. 그러다 허기를 느끼면 또래 형이 소리칩니다. “야, 산에 가자!”. 뒷산에서 삘기를 뽑아 먹고, 붉은 진달래를 따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습니다. 쌉쌀한 맛이지만 모두들 입술이 물 들도록 꽃잎을 따 먹고 집으로 향할 때면 입술마다 보랏빛에 물들었죠. 음식으로 치자면 요즘 한창인 이팝나무꽃이 더 살갑습니다. 나뭇가지를 뒤덮은 하얀 꽃이 마치 ‘이밥(쌀밥)’ 같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핀다고 입하 목(立夏木)으로도 불립니다. 이팝이 꽃을 피울 때가 공교롭게도 보릿고개와 겹쳤습니다. 보릿고개를 넘던 옛 조상들 눈에는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꽃이 쌀밥으로 보였나 뵵니다. 이팝꽃이 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환영입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압권인 장면은 정적을 깨는 팝콘 판타지입니다.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마을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아픈 서사를 더 저리게 했던 바로 그 장면…. 수류탄이 마을 옥수수 창고로 굴러들어가 터지면서 옥수수가 팝콘으로 튀겨져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사람들 얼굴에 온기를 돌리고, 팝콘이 밤하늘에서 흰 눈으로 내릴 때, 모두를 잠시나마 선한 얼굴로 되돌려 함박웃음을 짓게 했던 팝콘 판타지…. 어제 들린 서울 현충원에도 이팝나무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혼의 넋을 위로하는 지금은, 저보다 맞춤한 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새 정부가 국민 품으로 돌려준 청와대에도 이팝나무 꽃이 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고항인 대구 달성에서 가져와 심었다는데, 올해는 더 풍성하게 피어 ‘웰컴 투 청와대’의 한 자리를 밝힙니다. 언젠가부터 은행나무를 대체해 가로수로 각광을 받더니 청계천에도 가로수에서 흰 팝콘을 터트립니다. 전주 팔복동 철길, 함평 양재리도 그 소박한 꽃송이가 밥사발 가득 흰쌀밥을 얹었습니다. 조선 왕조 때는 벼슬을 해야 이씨가 주는 귀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 ‘이(李)밥나무’로 불렸다는 꽃.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로도 불리지만 이미지는 다 흰쌀밥이죠. 나무에 무슨 귀족이 있고 서민이 있을까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서민 나무의 대표라 할 것입니다. 군락을 이루어 피는 벚꽃, 배꽃, 지금이 한창인 이팝꽃, 아카시아꽃처럼 흰꽃만큼 우리 눈을 환하게 열어주는 꽃도 없습니다. 지금은 산하마다 아카시아가 제철입니다. 오늘도 워커힐을 지나 집으로 가는 아차산로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로 진동합니다. 사시사철 내게 넓은 품을 열어준 아차산의 지금은, 하얀 꽃무리가 구름꽃이 되어 녹색 숲을 덮고 있습니다. 밤에 창을 열면, 베란다를 지나 서재로 들이친 고혹한 향기가 절로 깊은 들숨부터 쉬게 합니다. 아카시아는 서러움의 꽃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밥 대신 따먹던 꽃이었으니까요. 또한 그리움의 꽃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 ‘아카시아’가 그렇습니다.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아카시아 향이 멀어지고 찝찔한 밤꽃 향이 나면, 여름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벌써 봄의 끝자락, 야속한 건 부리나케 폈다 떠나는 봄꽃의 속성입니다. 어쩜 성질머리가 봄을 꼭 빼닮았을까? 삶을 그리웁게 하는 건 배불리 먹고 잘 놀던 기억이 아니라, 힘든 때를 함께 한 사람들과의 기억입니다. 봄꽃은 그래서 애잔하고, 지울 수 없는 얼룩이고, 정겨운 내 기억의 문신이죠.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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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결혼식 주례사
- 세상에는 향기를 내는 사람과 악취를 내는 사람, 두 부류의 인생이 살아 갑니다. 다시 말해 ‘사람 같은 사람’과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인간’은 뜻은 같아도 용례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집니다. “저,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라고 말할 때는 인간성이 별로인 부정적 이미지를 전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 마음씨는 비단결이야!”라고 할 때 ‘사람’은 호감과 긍정의 이미지를 전합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의좋은 형제’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이 돼 벼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나란히 볏단을 쌓아 노적가리를 만들었습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볏가리가 빈약해 보입니다. 그날 밤, 형은 가난한 아우 형편을 헤아려 자신의 볏단 일부를 동생의 가리로 옮겨 놓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은 아우가 식솔 많은 형을 걱정해 볏단을 옮기지요. 그렇게 오고 가는 사이, 형과 아우는 줄었어야 할 볏단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의문을 키우던 형제는 보름달이 뜬 밤에 비로소 의문이 풀립니다.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가난했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인생은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만드는 것이 다 어디서 시작될까? 하나 같이 ‘마음의 문제’입니다. 오늘 주례자는 딱 한 가지만 당부합니다. 신혼부부가 오늘 맞는 첫날 밤을 우리말로 ‘꽃잠’이라고 부릅니다. 신혼 초야를 ‘꽃이 잠자는 시간’ 으로 표현한 우리말이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답습니까? 두 사람은 오늘 꽃잠을 자면서 이 한 가지를 다짐했으면 합니다. 배우 김보성이 외친 유명한 말인데, 큰소리로 내 말을 따라 해 보세요. ‘우리 부부 의리를 지키며 살자’. 한 번 더 크게! 네, 아주 잘했습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한완석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붓글씨로 큼직하게 ‘의리를 지키자’라는 문구를 써서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노 목사의 눈에 세상이 오죽했으면 유언처럼 당부한 말이 의리였을까. 그만큼 세상에 의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의리를 빼면 시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리가 밥 먹여 주나?’로 험악해졌습니다. 의리란 ‘사람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갖춰야 할 가치와 덕목이 이 말에 몽땅 녹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이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을 때입니다. 그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사람 사는 맛이 있었다고 옛날을 회상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엔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대는 동물 세계만 남습니다. ‘사람’은 없고 욕망으로 충혈된 ‘인간’들로 넘쳐납니다. 이웃간 의리가 깨지더니, 친구간에 의리가 무너졌다고 탄식합니다. 급기야는 형제간, 부부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를 저버렸다는 서글픈 소식이 들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 어떤 교훈보다 필요한 것이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삶에 의리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 지켜야 할 의무 중 으뜸으로 삼을 게 의리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의리를 다하고, 친구 사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의리가 앞서야 합니다. 세상을 요령 있게 사는 것도 지혜이겠으나, 의리 하나만큼은 우직하게 지키는 사람이 고결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풍성하게 하려면, 돈에 앞서 의리를 지키고 가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향기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리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인간적 풍미에서 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리는 말로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도 사업도 결국은 모두가 마음의 문제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삶을 다잡고 살면,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다음 세 가지 마음입니다. ? 初心을 지키는 신실한 마음(眞心) ? 童心과 같은 깨끗한 마음 (淸心) ? 熱과 誠을 다하는 마음 (誠心) 이 세 마음을 끝까지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부가 세상에서 존중받으며 복 되게 사는 길이고 인생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면서 사는 길입니다. 두 사람은 오늘 당부한 3가지 마음, 즉 ‘三心’을 잘 닦고 소중히 지켜 ‘의리 있는 가정, 의리 있는 부부’로 백년해로 하면서 만복의 기쁨을 나누기를 축복합니다.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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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결혼식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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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하소서
-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그 말종 암이다. 길어야 1년이라는 예단된 수명. 태산이 눈앞을 가로막고 선 느낌이 이런 걸까. 사람의 어리석음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 데 있고, 더 안타까운 것은 기회를 다 놓친 후 눈물짓는 일이다. 그 말이 현실로 찾아왔다. 신기루 같은 삶을 좇다가 때가 저물어서야 헛된 인생을 살았다는 자각이, 아프게 뼛속을 찔렀다. 그로부터 하루하루 내 세포를 갉아먹고 사는 암세포와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출렁이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죽어갈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며 불굴의 투혼을 불사른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전쟁과 사랑 영화쯤으로 알다가 반도 읽지 못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결국 책장을 덮고 말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다름 아닌 나를 향한 종소리였기에… 헤밍웨이가 소설 제목으로 인용했다는 성공회 신부 존 던이 쓴 기도문을 세 번째 읽을 때, 종탑 계단을 밟는 종지기의 발자국 소리가 가슴에서 공명을 일으켰다. 당시 영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교회의 종을 치는 관습이 있었다. 하인은 종소리가 들리면 누가 죽었나를 알아다 주인에게 고해야 했다. 왜 그런 수고를 이어간 것일까? 세상 어느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다 누구의 죽음이든 나를 줄어들게 한다 그러니 저 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일이니 깊이 애도하라는 메시지처럼 종소리가 들렸다. 헤밍웨이도 작품에서 생명의 연대를 강조하려고 이 문구를 제목으로 차용했나보다. 참혹한 전쟁의 광기 앞에 죽어가는 생명들. 질병으로 죽든, 사고로 죽든, 그때마다 울려 퍼졌을 종소리... 나도 죽으면 누군가가 종을 쳐 줄까? 하지만 지금은 죽음의 연대감을 기대할 수 없다. 누가 죽든 종소리는커녕,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이니까. 인생은 한순간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날 저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을 뿐이다. 왜 생명이 코에 있음을 일찍이 몰랐을까. 주야장천 호흡을 하면서도 코에 달린 호흡이 죽음을 자각하라는 신호임을 좀더 진작 알지 못했을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열 달, 아니 여섯 달?… 그러한 내게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나? 인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무슨 말을 준비해야 할까? 다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15년 만의 일이다. 목사님이 지난주는 세 번이나 나를 찾아와 기도해 주셨다. 사그라드는 젊음이 불쌍했을 것이다. 혹시 목사님이 나의 죽음을 연대해 주시는 걸까? 오늘은 위로가 될 것이라며 내게 적합한 찬송가를 선곡해 담았다는 USB를 놓고 가셨다. 친절하게도 첫 곡을 설명한 글도 함께. A4용지 한 장에 또박또박 손으로 쓴 글이었다. 오후 내내 1번 곡을 리플레이하면서 목사님이 주신 글을 읽고 또 읽었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이 임박한 순간에 승선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렀고, 2009년 네덜란드 항공기 추락사고 현장에 울려 퍼졌다는 노래… 비극의 현장뿐 아니라, 축제의 현장에서도 불려졌다고 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되었고, 유럽축구 FA컵 결승전 경기장에서 관중이 모두 일어나 합창한다는 저 노래… 환호와 환희의 순간에도 죽음을 잊지 말라는 뜻인가?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조차 국경일인 공화국의 날에 이 곡을 연주한다니 더욱 놀랍다.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애창한 노래라고도 메모돼 있다. ABIDE WITH ME 나와 함께 하소서 무겁고 장중한 노래가 시공을 초월해 불리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기도일까? 아니면 영광의 순간에도 일몰의 순간을 상기하라는 뜻일까? 소프라노 찬양곡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의 쓰임새가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한 편의 시가곡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영국 국가(여왕을 지켜주소서)’ ‘독일 국가(독일인의 노래)’가 찬송으로 번안돼 있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도 많은 사람이 찬양하는 곡이다. 눈가에 이슬이 촉촉하게 맺힌 건 찬송이 탄생한 배경을 알면서였다. 100년 전부터 불려진 ‘abide with me(찬송가481장)’는 헨리 라이트 성공회 신부가 병이 깊은 선배 신부를 병문안하며 만들어졌다. 젊은 사제는 병상의 늙은 신부로부터 절절한 신앙 고백을 들었다. 임종을 앞둔 신부는 성경 말씀대로 신실하지 못했다고 눈물 흘리며 회개했다. 그러면서 계속 한 문장을 반복해 되뇌다 숨을 거두었다. Abide with me Abide with me… 세월이 흘러 헨리 사제도 늙어 요양을 떠나게 되었다. 시인이던 사제는 떠나면서 딸에게 시 한 편을 건넸다. 아버지가 선종한 뒤 딸은 시를 들고 작곡가 윌리엄 몽크를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몽크 또한 어린 딸을 여의고 깊은 슬픔에 젖어있었다. 노래는 이러한 배경 아래 탄생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격정의 순간에도 찰나의 삶을 살피라는 자기 성찰을 실어 국경과 종교를 넘어 전파되었다. 일출처럼 장엄하게 떠오르는 인생 같지만, 한 순간 서산 그림자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임을 안다면, 그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이 쇠락해질 때, 더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때…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할 때라 서야, 병상에서 임종을 앞두고 서야, 자식을 잃고 참척의 아픔을 느낄 때 서야 사람들은 신의 은총을 희구한다. 멀리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나를 위한 종소리가 울리나 보다. 종지기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때가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더 가까이서…(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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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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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친구가 있나요
- 누가 그의 임종을 지켰을까? 지난해 봄 코미디계의 대부 쟈니 윤의 부음을 듣고 떠올린 생각입니다. 일찍이 미국 NBC의 ‘자니 카튼 쇼’에 동양인 최초로 발탁되면서 꽃길을 걸은 그였기에… 국내에선 ‘쟈니윤 쇼’로 토크쇼의 새 장을 열었지요. 하지만 삶은 화려해 보였어도 말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LA의 한 허름한 요양원에서 치매 등과 싸우다 홀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인생도, 등산도, 성공은 하산에 있습니다. 돈 많고 지체 높은 세도가들도 모든 게 한 순간, 끝까지 잘 내려오는 게 성공한 삶입니다. 살아볼수록 그 이상의 가치가 없어 보여서죠. “너무 바쁜 사람과는 친구 하지 마라.” 선배 분이 병상에서 아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친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왜 그런 말을 남겼을까…. 죽음은 경험을 못 하니 앞서 간 분들의 말에서 유추할 뿐입니다. 세계적인 갑부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세상을 뜨기 전,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를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무소의 뿔처럼, 오직 한 곳만을 향해 치달리며 살다가 삶의 잔뿌리를 내리지 못했어요. 위기의 순간에, 곁에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으로 산 친구는 돈 때문에 떠나지만, 가슴으로 만난 친구는 가슴이 아플 때 나타납니다. 톨스토이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 문제를 다뤘어요. 임종을 앞둔 이반 일리치가 괴로운 건 용변을 볼 때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겁니다. 이 견디기 힘든 일을 도와준 건 하인 게라심이었지요. 생각하니 내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해 준 사람은 게라심 뿐임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잠들기까지 곁을 지키는 그에게 미안함을 표하자 게라심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우린 다 언젠가 죽잖아요. 그러니 주인을 위해 마지막 수고 좀 못하겠어요?"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이 곁에 있다는 데 큰 위안과 행복을 느낍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의 일화도 있어요. 미국 내브래스카 대학의 한 학생이 Fortune지가 주최한 '여성과 일'이란 주제의 강연회에서 세계적인 부호에게 묻습니다. “현 위치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누구는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알아요.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고 당신 이름의 빌딩을 가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버핏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도 전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유태계 여성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오.” “워런,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더딘 게 탈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여러 번 이런 질문을 하거든요. 저 사람이 나를 정말 숨겨줄 수 있을까?” 워런은 말합니다. “위험에 처한 나를 숨겨줄 만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면 성공한 거고, 반대로 아무도 당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성공했다고는 말 못 해요.” 학교를 같이 다니고 나이가 비슷해야 친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나이 차가 많아도 진정 마음이 통하면 가능합니다. 워런 버핏은 25세나 어린 빌 게이츠를 친구라고 불렀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를 원하면서도 내가 그러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는지는 깊이 생각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게 지낸 지난날이 후회될 때가 되면, 친구는 내 곁에 없기 쉬워요. 진정한 친구를 찾으십니까? 먼저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대만의 한 잡지사가 노령 인구의 빠른 증가로 인하여 달라질 미래의 모습을 다룬 웹 영화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미래의 노후(친구 편)’은 많은 독신 네티즌의 공감을 샀습니다. 성공한 4명의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아들과 손자가 온다는 소식에 들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합니다. 준비를 다했는데 사정이 생겨 못 오겠다는 전화가 옵니다. 준비했던 음식은 그만 주인을 잃고 맙니다. 노인은 우중충한 밖을 보다가 친구를 생각합니다. 색 바랜 수첩을 펼치고 앞뒤로 넘겨 보지만, 나와 같이 식사해줄 만한 마땅한 친구를 찾지 못합니다. 조용히 수첩을 접고 창가로 다가갑니다. 창밖엔 비가 옵니다. 결국 노인은 음식을 가득 차린 식탁에 홀로 앉아 식사를 시작합니다. 음식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지 목젖이 위아래로 움찔댑니다. 그 위로 마지막 엔딩 자막이 뜹니다. 끝까지 함께 할 친구가 있습니까? (소설가 이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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