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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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짓는 천진암 성지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매년 2천만 명이 찾는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가우디성당)’ 앞에 서면 그 웅장함, 화려함에 놀라지만 지금도 짓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져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설계로 1882년 착공해 ‘가우디사망 백주년’에 맞추어 2027년 완공 예정이랍니다. 바티칸이 모든 성당은 베드로성당보다 낮게 짓도록 했지만 가우디성당의 예술성을 인정해 예외로 했다는군요. 수많은 첨탑 중에는 예수의 사도를 상징한 높이 100m 탑 12개와 예수를 상징하는 높이 172m의 중앙 탑이 있어,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 될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우리도 100년 짓는 건축물이 있으니까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성역화 사업으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 세워지는 ‘천진암 성지’가 벌써 착공 40년을 바라봅니다. 1995년 7월 24일 일기에는 18만평 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연 만평짜리 천진암 성지사업이 적혀 있어요. 1983년 착수해 설계와 터닦기로 30년, 골조공사 20년, 내부공사 50년, 해서 ‘100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본성당 대지 전경 초대 추진위원장 변기영 신부는 유럽의 로테르담성당, 성 베드로성당을 예로 “우리는 너무 당대주의에 사로잡혀 매사를 단시일에 해내려고 무리한다”고 무모한 집착을 꼬집었어요. 내 임기에, 내 생전에, 완공하려다가 졸속으로 끝난 일이 적지 않으니까요. 독립기념관은 5년 만에 완공하고, 예술의 전당은 3년 만에 뚝딱 짓는 그런 졸속공사는 이제 시정돼야 겠지요. “건물을 짓는 데는 건축기술 외에 반드시 세월이란 원료가 가미돼야 한다” 는 변 신부의 말은 울림 그대로입니다. 이후 건립위원회 총재를 맡은 김남수 신부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바뀌어도 사업은 계속 되는 풍토, 세대는 바뀌어도 역사는 전승되는 문화가 아쉽다”는 안타까움은 우리사회가 성찰해야 대목입니다. 한국기독교사에는 많은 순교의 피가 흐릅니다. 서울 마포 한강변의 절두산 성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가면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묻혀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로 답을 찾은 분들입니다. 한국 가톨릭이 자부심을 갖는 데는 외국 선교사에 의한 복음 전파가 아닌, 가톨릭사에 유래가 없는 자생적 발상이라는 점이지요. 천주교회의 100년 성역사업 현장 안내판에 이러한 자부와 긍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파견과 복음 전파 없이 순수한 학문 탐구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신앙으로 발전시켜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자랑스러운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우리나라 공식적인 천주교의 시작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1784년이나, 이보다 7년 전 권철신이 이끄는 학자들이 천진암과 주어사를 오가며 강학모임을 열어 조선 천주교의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어요.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등 5인이 창립 선조입니다. 규모는 성지안내도가 짐작케 해줘요. 광암성당, 대성당건립터, 천진암강학터, 200주년기념비, 한국천주교창립 성현5위 묘역, 조선교구설립자묘역, 성모경당, 세계평화의 성모상, 박물관 등 순례에만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핵심인 천진암 대성당은 1987년 터 닦기공사를 시작으로 1992년 대성당 터를 축성해 2079년 완공할 계획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천국열쇠를 든 베드로 동상과 마주칩니다. 석양을 받아 신비감을 더하네요. 천진암 성지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1996년, 2007년, 2020년,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아직도 세월이란 원료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멈추어 선 곳,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종이 울리면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떠오릅니다. 100세를 살아도 준공된 모습은 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조감도로 완공 후의 현장을 상상하며 돌아갑니다. 옛날에, 자신이 묻힐 곳을 미리 보고 뒤돌아서시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떠오르네요. 유한한 인생을 생각했나 봅니다. (이관순 소설가/daum cafe/ leeletter) 13.2 몽골평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낙타떼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내 지인은 몽골의 별밤을 회상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향수에 젖습니다. "난 혼자서 몽골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몽골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정으로 몽골을 알려면 초원이 부르는 바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는 유하의 시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를 이렇게 변주했어요. ?나 어느 날 내가 사는 초원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어느 날 나의 초원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승마여행 중에 만난 초원의 무지개와 신비의 구름과 바람들. 광야에 핀 꽃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노을, 이 모두가 소리 내어 나를 찾는 곳. 그곳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망이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어요. “줄이고 또 줄여본다. 견디고 또 견뎌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접어야 할지 말지. 이 현실이 어지럽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이동이 곧 우리의 미래인데. 어느 날 그 이동이 막혀버렸다. 하늘길, 땅길, 물길도 모두. 텅 빈 인천국제공항에서 인간의 역사가 멈춤을 보았다.” 오늘은 17년간 몽골 초원을 함께 달린 낡은 모자 사진도 올렸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징기스칸’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글이 떠오르네요. “빵을 먹는 자 길을 내고, 밥을 먹는 자 마을을 만든다.” 이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계속 걷는 것은 희망이 보여서가 아닙니다. 계속 걸어야 희망이 보여서 입니다.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나,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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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9
  • 갈 적 마음과 올 적 마음
    사람 마음에 베인 상처처럼 아프고 오래가는 것도 없다. 어느 날 믿고 아꼈던 사람이 배반을 하고 떠났을 때,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마음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일보다 힘든 일은 없다. 힘으로 나라를 정복했다고 다가 아닌 것이, 땅은 점령해도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지 못하면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그 많은 전쟁들, 인종 간의 분쟁, 권력을 에워싸고 벌이는 암투,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이 다 그래서 생겨났다. 배반, 배신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세상 일들이 다 사람의 문제로 시작되었다. 출신, 인종, 문화가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기업을 운영하는 일 또한 핵심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로 귀결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대치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데... 이런저런 일을 들먹이며 자신을 높이고 은근히 유세를 부린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만큼 허망한 때도 없다. 평생 한 직장에 같이 몸 담아온 사람이 명예롭지 않게 떠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같이 입사해 정이 들만큼 든 사람들일 때는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저 사람은 회사가 잘해 주었으니까 딴마음을 품을 리 없지”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질 때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회사의 은덕을 많이 입고도 작은 일에 서운해하고 등을 돌리고 칼을 꼽는 게 사람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면서 상대적이다. 회사는 줄 만큼 주었다는 것이고 직원은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부딪친다. 그래서 작은 이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이 그랬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거두어 가르치고 키워서 충복으로 삼았는데 그 사람이 발등을 찍을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은혜를 입은 사람이 비밀리에 회사의 기술을 베껴 새 공장을 짓고 하루아침에 경쟁업체 사장으로 나타났을 때 받는 당혹감이나 배신감은 어떠할까. 사람의 얼굴을 하고 해선 안 될 일이 믿음을 저버리는 짓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많은 반역자들은 모두 총애를 받았던 최측근의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절대적인 신임으로 옥쇄까지 맡겼는데 어느 날 칼끝이 주인을 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감지덕지하며 일하다가 세월이 가면서 욕심이 생겨 배신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진실로 믿음의 관계는 사람과 신(神)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하면서도 취약한 것이 ‘초심(初心)’으로 사는 일이다. 그만큼 초심을 끝까지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의리’ ‘신의’ ‘배신’ ‘배반’이란 말이 모두 초심의 문제가 아닌가.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고, 가난할 때와 부유해진 뒤가 다르고, 고생할 때와 성공한 후가 다른 것이 간교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이 숭앙해야 할 덕목으로 ‘시종일관’ ‘한결같이’ ‘처음처럼’ 사는 것을 꼽는 게 아닐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몇 해전 출범시킨 자선단체 이름을 ‘베이조스 데이원(DAY-1)’(처음처럼)으로 명명했다. 사는 곳은 달라도 인류를 관통하는 가치는 같은 맥락에 있다. 옛날, 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측간(화장실)에 가야 할 긴급한 상황이어서 아무 집이나 들어가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이 출타 중인 부인 혼자 있는 집이었다. 부인이 머뭇거릴 수밖에. 그러자 나그네가 부인에게 엽전 한냥을 주면서 사정을 했다. 그래도 부인이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아녀자 혼자인 집에...” 머뭇거리자 다급해진 나그네는 탈탈 털어 엽전 닷냥을 주고야 측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볼일을 마친 나그네가 쭈그려 앉아 생각하니 생돈을 빼앗긴 것 같아 속이 쓰려왔다. 일어날 생각은 않고 계속 앉아 잃은 돈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급해진 사람은 이 집 마님이었다. 외출한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얼추 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혼자인 집에 외간 남자를 들이다니, 남편이 이를 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여자가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예 아직. 제가 좀 측간 일을 길게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말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좀 더 기다릴 수밖에는. 시간이 흐르자 다급해진 부인이 협상을 걸었다. “한 냥을 드릴 테니 그만 나오시지요.” “서두르면 더 힘들어집니다.” 남자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발을 동동 구르던 부인이 애끓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럼 닷 냥 다 돌려드리면 되겠어요? 제발 좀 부탁합니다.” “모르시는 말씀이십니다. 제 조부께서는 설사가 나온다고 재촉하는 조모님 때문에 측간 일을 다 못 보고 나가셨다가 그만 변고를 당하셨다고요." 나그네 대답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애가 탄 부인이 마지막 패를 던졌다. “그러면 닷냥을 더 얹어 드릴 테니 그만 좀 나오세요. 이렇게 빕니다.” 그제야 나그네는 ‘콜~’하며 측간에서 나왔다. 그리고 엽전 열 냥을 받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를 ‘여측이심(如厠異心)’이라고 한다. ‘똥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의롭게 신실하게 사는 일은 초심을 지켜 사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이 아름답고, 처음과 나중이 같은 사람이 존귀하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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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6
  • 왜 하필이면 조선 땅인가
    이 넓은 세상에서 조선에 태어났나? 왜 여성으로 태어났나?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나? 조선의 천재 여류문인 허난설헌(이름 초희)의 한(恨)입니다.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한 여인이 무슨 정한이 그리 많아 셋씩이나 한을 품었을까? 긴 장마 뒤 해가 쨍쨍한 날,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의 안동김씨 선영으로 허난설헌 묘를 찾았습니다. 당대최고의 문벌가답게 묘역은 크고 잘 정비돼 있었어요. 하단에 그녀의 묘가 있고 옆에 어린 남매가 잠들어 있더군요. 아버지 초당 허엽은 동서 분당 때 동인의 영수였고, 오빠 허성은 이조판서를, 소설 ‘홍길동’을 쓴 남동생 허균은 유·불·천주교를 섭렵하며 관직에 오르는 등 말 그대로 한 시대의 문벌 가문입니다. 강릉엔 난설헌의 생가 초당고택이 있어요. “글을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다. 여자가 이에 힘쓰면 그 해로움이 끝없을 것.” 실학의 대가 이익의 말처럼 당시 여성은 문사의 길이 꽉 막힌 시대였어요. 그럼에도 천부적 재질을 보인 난설헌은 8세 때 시를 지어 후일 정조를 감탄시킵니다. 그녀가 풍부한 감성으로 시를 쏟아 내면, 허균이 암송해 훗날 ‘난설헌집’을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15세 때 김성립과의 결혼은 그녀의 삶을 험한 가시밭길로 내몰았어요. 남편은 5대 연속 문과에 급제한 안동김씨 문벌가 자손이었지만, 가부장적인 가풍으로 시집살이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시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은 시모 사이에 깊은 갈등의 골이 패이고, 아내를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남편과도 화락하지 못했어요. 아내에 대한 열등감으로 기생방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태반이었습니다. 지아비에게 버림받고 눈물로 지새는 규방의 날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달래는 것은 시 뿐이었어요. 그 하나가 규방의 슬픔을 담은 ‘규원’입니다. “비단 띠 깁 저고리 적신 눈물자국/ 여린 방초 임 그리운 한이외다/ 거문고 뜯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지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앉네. 엄마 옆에 나란히 누운 어린 남매 그래도 삶을 지탱시켜주는 건 어린 남매입니다. 자식 자라는 모습에 보람을 찾던 그녀 인생에 잇단 불행이 찾아듭니다. 봉오리도 맺기 전 남매가 다 돌림병으로 죽어요. 오죽하면 지식을 앞서 보낸 어미의 슬픔을 참척(慘慽)이라했을까. 이때 쓴 시가 ‘곡자(哭子)’. “지난해엔 귀여운 딸을 잃더니/ 이번 해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 응당 언니 아우의 혼들이 알아/ 밤마다 서로 손잡고 놀아라...” 남편은 가정과 더욱 멀어지고 그러는 사이 친정집도 몰락의 길을 갑니다. 경상감사였던 아버지가 상주에서 객사하고, 귀양을 간 큰 오빠도 객사하니 수족이 하나씩 잘리는 아픔을 느낄 수밖에요 여성의 재능을 부정한 시모의 학대, 무능한 남편, 친정의 몰락,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 두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몸이 쇠약해져요. 그럼에도 그녀가 지은 시와 문장은 방 한 칸에 가득 찰 정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시를 쓰더니 “아름다운 연꽃 39송이 붉게 떨어진다.” 처럼 27세에 요절합니다. 여기서 ‘39’는 엄마와 남매의 나이를 합한 수, 또는 3·9의 승수라고도 해요. 그녀는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허균이 누님의 시편들을 수습해 중국에서 ‘난설헌집’을 내 격찬을 받지만 정작 조선에서 간행될 때는 찬사보다 비판이 컸어요. 규방여인이 점잖지 못하게 연애시나 썼다고. 연암 박지원까지 “조선의 한 여자 이름이 중국에까지 퍼졌으니 유명하다고 할 수 있으나, 조선의 부인들은 일직이 이름이나 자를 찾아 볼 수 없으니, 난설헌은 호 하나만으로도 과분하다”고 했어요. 여성이 호와 자를 다 갖기란 극히 이례적이었으니까요. 정한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은 27년 생애. 시비(詩碑)앞에 서니 그녀의 일생이 너울거립니다. 왔다간 인생의 흔적이 고작 이것인가. 한없이 작아진 나를 만납니다. -소설가/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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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가을의 고요와 만날 무렵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더위와 집중호우라는 이중고를 안겼던 여름도 조석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절만 지나면 여름은 끝’이라는 생각이 올해도 얼추 맞게 돌아갔다. 여름의 끝을 8월 15일로 인식한 데는, 무주 구천동에서 형제들과 보낸 어느 해 여름휴가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3일이었는데 하루를 연장해 8월 16일까지 머물기로 하고 주인을 만났더니, 15일 숙박료를 절반으로 깎아 주는 것이었다. 8월 15일을 기준으로 숙박요금이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바뀐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았다. 젊은 날에는 확 트인 바다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산이 좋아졌다. 염분이 밴 끈적거림 보다 청량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고 보송보송한 산들바람에 몸을 말릴 수 있는 청량한 산이 좋다. 9월을 시작하는 첫날, 운길산에 올랐다가 수종사를 찾았다. 수종사를 찾은 지가 기억 속에 가물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은 여전하고, 고즈넉함까지 옛 그대로였다. 활짝 트인 시야로 북한강의 끝자락인 양수리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가슴이 절로 열렸다. 어제의 8월과 오늘의 9월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작열하던 햇살이 기를 숙이고 떠들썩했던 여름의 소음도 멀어지고 있다. 청정한 바람이 여름의 잔해를 쓸어내면, 가을의 고요가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수종사를 배경으로 팔짱을 끼고 북한강에서 오르는 강바람과 운길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을 타고 가을의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계절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아쉽고, 작별은 사람을 어질게 만든다. 견고하게 초록의 성을 쌓았던 무성한 잎새들과도 곧 작별이겠구나. 초록은 흩날리는 굴뚝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지난 세월, 백사장을 어지럽게 밟아놓은 젊은 날의 발자국들이 양수강 위로 아련하게 흔들렸다. 늘 시끌벅적했고, 뜨거운 아우성으로 소란스러웠던 그 많은 시간들…. 뒤돌아보는 그날의 발자국들은 태반이 상처 나고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무수히 다짐하고 맹세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를 바꾸어 놓지 못한 채 긴 세월을 흘러 보낸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나를 바꾸는 일이다. 그 중심에 천박하게 입만 열면 떠들었던 입이 있다. 아직도 그 입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고 굽은 언어로 나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오죽했으면 성철 스님까지 ‘불기자심(不欺自心·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을 화두로 삼고, 해인사 백련암에 직접 쓴 휘호를 걸었겠는가. 성경에도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라고 쓰여 있다. 호젓한 수종사에 계절의 전령처럼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찰랑찰랑한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인생의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고 바람 든 스산한 생각들을 정결하게 빗질해 주는 것도 저 풍경소리이다. 청아한 가을바람소리를 듣기 때문일까. 유난히 풍경소리가 높고 맑게 들렸다. 휘저은 마음속 앙금들이 풍경소리에 가라앉으면서 잊고 지내온 일들이 살아났다. 한참을 그렇게 상념에 잠겼다. 사찰마다 풍경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있다. 왜 추녀 밑 풍경에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만 매달려 있지? 등산길에 목을 축이려고 절에 들릴 때마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풍경과 매달린 물고기 사이엔 어떤 궁합이 있는 걸까? 그러한 의문은 군 입대를 앞두고 들렸던 선암사에서 풀렸다. 친절하게도 스님 한 분이 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물고기를 피사체로 삼을 때 뒤로 배경이 되어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 구름?”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보이지요. 저 푸른 하늘은 바다를 뜻합니다. 어떤 상상이 떠오릅니까?” 그러고 생각하니 광대한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매달아 물의 원천인 바다를 만들었구나. 물이 풍부하면 어떤 큰 불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대부분 목조 건물인 사찰은 어느 곳보다 화재에 취약한 곳이므로, 화재 진압에 쓰일 풍부한 수자원을 기원했으리라. 파아란 하늘을 바다로, 넉넉한 수량을 확보해 오래된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려는 지혜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풍경이 상징하는 것으로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물고기다. 평생을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를 무엇에 은유했을까? 수행자를 지도하거나 경책 할 때 손바닥에 치는 죽비가 떠올랐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으라. 언제나 혼돈과 번뇌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러면서 너도 깨닫고 남도 깨달을 지니….” 수종사에서 듣는 바람소리, 풍경 소리에 습하게 구겨진 마음을 펴 말리면서 시인 공광규(1960~ )의 시 ‘수종사 풍경’을 바람 타고 고요한 하늘로 퍼지는 풍경소리에 실어보냈다. “...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목소리...” 딱 떨어지는 지금의 수종사 풍경(風景)이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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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9
  • 가을의 고요와 만날 무렵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더위와 집중호우라는 이중고를 안겼던 여름도 조석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절만 지나면 여름은 끝’이라는 생각이 올해도 얼추 맞게 돌아갔다. 여름의 끝을 8월 15일로 인식한 데는, 무주 구천동에서 형제들과 보낸 어느 해 여름휴가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3일이었는데 하루를 연장해 8월 16일까지 머물기로 하고 주인을 만났더니, 15일 숙박료를 절반으로 깎아 주는 것이었다. 8월 15일을 기준으로 숙박요금이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바뀐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았다. 젊은 날에는 확 트인 바다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산이 좋아졌다. 염분이 밴 끈적거림 보다 청량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고 보송보송한 산들바람에 몸을 말릴 수 있는 청량한 산이 좋다. 9월을 시작하는 첫날, 운길산에 올랐다가 수종사를 찾았다. 수종사를 찾은 지가 기억 속에 가물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은 여전하고, 고즈넉함까지 옛 그대로였다. 활짝 트인 시야로 북한강의 끝자락인 양수리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가슴이 절로 열렸다. 어제의 8월과 오늘의 9월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작열하던 햇살이 기를 숙이고 떠들썩했던 여름의 소음도 멀어지고 있다. 청정한 바람이 여름의 잔해를 쓸어내면, 가을의 고요가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수종사를 배경으로 팔짱을 끼고 북한강에서 오르는 강바람과 운길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을 타고 가을의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계절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아쉽고, 작별은 사람을 어질게 만든다. 견고하게 초록의 성을 쌓았던 무성한 잎새들과도 곧 작별이겠구나. 초록은 흩날리는 굴뚝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지난 세월, 백사장을 어지럽게 밟아놓은 젊은 날의 발자국들이 양수강 위로 아련하게 흔들렸다. 늘 시끌벅적했고, 뜨거운 아우성으로 소란스러웠던 그 많은 시간들…. 뒤돌아보는 그날의 발자국들은 태반이 상처 나고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무수히 다짐하고 맹세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를 바꾸어 놓지 못한 채 긴 세월을 흘러 보낸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나를 바꾸는 일이다. 그 중심에 천박하게 입만 열면 떠들었던 입이 있다. 아직도 그 입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고 굽은 언어로 나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오죽했으면 성철 스님까지 ‘불기자심(不欺自心·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을 화두로 삼고, 해인사 백련암에 직접 쓴 휘호를 걸었겠는가. 성경에도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라고 쓰여 있다. 호젓한 수종사에 계절의 전령처럼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찰랑찰랑한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인생의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고 바람 든 스산한 생각들을 정결하게 빗질해 주는 것도 저 풍경소리이다. 청아한 가을바람소리를 듣기 때문일까. 유난히 풍경소리가 높고 맑게 들렸다. 휘저은 마음속 앙금들이 풍경소리에 가라앉으면서 잊고 지내온 일들이 살아났다. 한참을 그렇게 상념에 잠겼다. 사찰마다 풍경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있다. 왜 추녀 밑 풍경에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만 매달려 있지? 등산길에 목을 축이려고 절에 들릴 때마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풍경과 매달린 물고기 사이엔 어떤 궁합이 있는 걸까? 그러한 의문은 군 입대를 앞두고 들렸던 선암사에서 풀렸다. 친절하게도 스님 한 분이 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물고기를 피사체로 삼을 때 뒤로 배경이 되어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 구름?”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보이지요. 저 푸른 하늘은 바다를 뜻합니다. 어떤 상상이 떠오릅니까?” 그러고 생각하니 광대한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매달아 물의 원천인 바다를 만들었구나. 물이 풍부하면 어떤 큰 불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대부분 목조 건물인 사찰은 어느 곳보다 화재에 취약한 곳이므로, 화재 진압에 쓰일 풍부한 수자원을 기원했으리라. 파아란 하늘을 바다로, 넉넉한 수량을 확보해 오래된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려는 지혜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풍경이 상징하는 것으로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물고기다. 평생을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를 무엇에 은유했을까? 수행자를 지도하거나 경책 할 때 손바닥에 치는 죽비가 떠올랐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으라. 언제나 혼돈과 번뇌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러면서 너도 깨닫고 남도 깨달을 지니….” 수종사에서 듣는 바람소리, 풍경 소리에 습하게 구겨진 마음을 펴 말리면서 시인 공광규(1960~ )의 시 ‘수종사 풍경’을 바람 타고 고요한 하늘로 퍼지는 풍경소리에 실어보냈다. “...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목소리...” 딱 떨어지는 지금의 수종사 풍경(風景)이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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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5
  • 침착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20대 때는 세상을 바꾸겠노라. 30대는 아내를 바꾸어 놓겠노라, 40대에는 자식을 바꿔놓겠노라고 다짐했는데, 50대 이르러 보니 나는 아무것도 바꾸어놓은 것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변화되면 이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 미국 특파원 생활을 끝으로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50대에 목사님이 되면서 그가 남긴 글이다. 그 나이에 인생을 그토록 비틀 수 있는 과단성 있는 용기와 결행은 어떤 신념에서 나온 것일까? 이를 두고 열이면 열 사람 모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렇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고, 점차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끊으면서 간간이 먼발치로 그의 소식을 들었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고, 교회 개척에 나서 힘들어한다는 말까지….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때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된 그를 걱정했던 마음에 언젠가부터 존경스러움이 찾아들었다. 소명감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결연한 자유 의지인가. 우리가 안정된 중장년의 시기를 보낼 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광야의 길을 열어간 그의 모습에서 그것이 짧은 인생의 소망이겠다 싶었고,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 년이 지나 친구들이 은퇴 세대가 될 즈음, 다시 신문에 오른 그의 사진과 칼럼을 보았다. 청년이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그는 사진에 검은 올이 하나 없는 순백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글은 원정을 떠나는 장수의 출사표처럼 다가왔다. 정년을 앞당겨 젊은 목사를 청빙해 자리를 넘기고, 그는 더 먼 길로 아프리카 사역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63세라는 가볍지 않은 나이에. 글에서 전해지는 글향을 느꼈다. 좋은 말과 글은 에너지가 되고, 선한 마음에서 나온 글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차분하고 강인하라.’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사용한 말을 글의 제목으로 차용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는 뜨겁고 힘이 넘쳤다. 어쩌면 자신에게 향한 다짐으로도 보였다. 먼바다에서 자신의 몸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이 자신을 향했던 주문 ‘be calm & strong!'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 몰릴 때일수록 ‘침착하게, 강하게’ 밀고 나가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노인은 84일간 새벽에 나가 땅거미가 지도록 고통의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다 매일매일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럴수록 더 먼바다로 나가 열공을 드렸고, 마침내 청새치를 잡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노인과 바다’가 명작으로 읽히는 것은 삶이 내재하고 있는 ‘결정론’과 ‘자유 의지’ 간의 다툼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 다툼을 그린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 의지의 상징이었다. 결정론은 인간이 상황이란 힘 아래 움직이는 허약한 존재이다. 외부 압력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자이지만, 자유 의지는 ‘예’라고 답 해야 할 때 ‘아니오’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의지에 있다. 청년들에게 고난과 질곡 앞에 비굴해지지 말고, 상황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 의지의 젊음으로 살라는 것이 그의 글에서 역동했다. 그 역시 분명한 자유 의지의 사람이었다. 그는 때 늦은 나이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광야에 홀로 뛰어 나가 계속되는 난관 앞에 굴하지 않고 ‘침착하고, 담대하게’ 자신을 지키고 혹한 시련을 견뎌냈다. 만 10년 사투 끝에 성공한 목회자란 평가를 받기 무섭게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다들 은퇴를 했거나 앞둔 시점에서 쓸쓸한 노년생활을 준비할 때, 그는 더 먼바다로 나가 제 몸집보다 큰 청새치를 끌어올리려고 얼마나 진땀을 흘려야 할까. 그가 떠나기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일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명과 열정의 문제다.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가 적기이다. 일을 내가 다 마치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우리가 못 이룬 건 다음 세대가 잇고, 내가 못하면 후임자가 이어감이 생명의 순환 질서일 테니까.? 우리는 너나없이 바람이 불면 지는 낙엽에 다름 아니다. 낙엽이 떨어져 잘 썩으면 땅이 비옥해져 좋은 열매가 맺힌다. 사람도 세월이 가면 모두 낙엽처럼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 몸 하나 보듬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에게라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빈손으로 왔다 가는 인생은 아닐 것이다. 더더욱 나의 만족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수단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종교적으로도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의 인생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애석함이 있다. 찾아온 생의 전환 기회를 담대하게 붙잡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현실에 나를 가두고 시선을 거두었다. 선택을 해야 할 순간, 상황론자의 멍에를 떼려야 떼지 못하고, 꽃다운 시절을 이상과 현실이 뒤엉켜 혼돈 속에 살았다. 이젠 좋고 싫을 것도 없는, 그것도 내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가슴 한 구석에 봉인해 둔 웅크린 나를 풀어주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망설일 때가 곧 시작할 시간이고, 결정하는 순간이 빠른 출발이 된다. 그러므로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는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상황론에 휘둘리지 말고, 침착하고 담대하고 강하게! 매일매일 자유 의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야겠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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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나는 생각하는 갈대인가
    갈대와 억새는 생김새가 비슷해 혼동하기가 쉬워요. 이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늪지대 같은 물가에서 자라는 것이 갈대이고, 산과 들에서 만나는 것이 억새랍니다. 또 갈대는 색깔이 갈색이고 키가 크지만 억새는 은빛에 키가 갈대보다 작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입니다.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사상가,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 그의 명상집 ‘팡세’에 남긴 유명한 경구죠.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은 인간에게 내재한 연약함, 위대함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어요. 나무가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슬픔 그 자체로 끝이지만, 인간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대함이라는 깨침을 담고 있지요. 앞줄에 나오는 약한 갈대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성경구절과 통합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구세주의 구원 언약입니다. 소망 없이 노예로 살아가는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에 비유한 것이죠. 파스칼이 말하는 갈대는 비참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란 새로운 매시지를 전달함에 있었어요. 다음 구절이 파스칼이 인간을 향해 던지는 핵심 구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상하고 나약한 태생적인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인간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위대함은 무엇인지를 전합니다. 파스칼이 성서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은 기독교 사상가로, 구도적인 삶의 상징을 갈대에 둔 것으로 보여요. ‘팡세’는 프랑스어로 사색집이란 뜻입니다. ‘팡세’는 파스칼 사후에 가족이 그의 지혜와 사색이 담긴 메모 첩을 발견하고 한 권으로 묶어 낸 책입니다. ‘팡세’ 에는 모두 924편의 짧은 글이 실렸어요. 르네상스 이후 기독교의 위상이 추락할 때,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재가치를 설명하고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권합니다. 흥미로운 건 파스칼이 인간의 자아와 이성을 내내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 파스칼이 보기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를 ‘생각’과 ‘사유’에서 찾았습니다. 우리의 존엄인 내 인간의 자아와 이성을 강조한 것은 이를 근간으로 발달한 계몽사상과도 부합했어요. 팡세는 후대로 갈수록 인간의 이성과 자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밝혀낸 교과서로도 자리를 굳힙니다. 인간의 이성은 물론 보편적 심리까지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서죠. 10월이 되면 포천의 명성산, 정선의 민둥산, 하늘공원 같은 억새 명소에서 억새축제가 열립니다. 가을에 하얗게 무리지어 흔들리는 억새풀의 향연은 가을의 정점임을 알립니다. 황혼녘에 물드는 산허리에 형성된 억새 군락을 향해 쏴아하며 바람몰이 에 휩쌓일 때, 우윳빛 물결로 출렁이는 풍경은, 화려한 꽃이 아니더라도 은빛 하나만으로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답다는, 경탄을 부릅니다. 한없이 허약하면서 위대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갈대이든 억새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새 깃털처럼 가벼운 은꽃이 되어 산바람 들바람에 몸을 부대끼면서 소리내는 갈대와 억새. 흔들리고 흩날리는 건 그들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대에 억새에 시선을 모으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순백의 순결 속에 나는 누구인가. 생각 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갈대인가, 흔들리면서도 끊임없이 이성과 사유와 자아의 실천을 꿈꾸는 갈대인가. 한해가 소문없이 저무는 시간, 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가 들린다면,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해보세요 진심을 담아. ?나는 나약한 갈대에 불과 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고 싶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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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8

실시간 기고 기사

  • 100년 짓는 천진암 성지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매년 2천만 명이 찾는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가우디성당)’ 앞에 서면 그 웅장함, 화려함에 놀라지만 지금도 짓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져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설계로 1882년 착공해 ‘가우디사망 백주년’에 맞추어 2027년 완공 예정이랍니다. 바티칸이 모든 성당은 베드로성당보다 낮게 짓도록 했지만 가우디성당의 예술성을 인정해 예외로 했다는군요. 수많은 첨탑 중에는 예수의 사도를 상징한 높이 100m 탑 12개와 예수를 상징하는 높이 172m의 중앙 탑이 있어,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 될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우리도 100년 짓는 건축물이 있으니까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성역화 사업으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 세워지는 ‘천진암 성지’가 벌써 착공 40년을 바라봅니다. 1995년 7월 24일 일기에는 18만평 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연 만평짜리 천진암 성지사업이 적혀 있어요. 1983년 착수해 설계와 터닦기로 30년, 골조공사 20년, 내부공사 50년, 해서 ‘100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본성당 대지 전경 초대 추진위원장 변기영 신부는 유럽의 로테르담성당, 성 베드로성당을 예로 “우리는 너무 당대주의에 사로잡혀 매사를 단시일에 해내려고 무리한다”고 무모한 집착을 꼬집었어요. 내 임기에, 내 생전에, 완공하려다가 졸속으로 끝난 일이 적지 않으니까요. 독립기념관은 5년 만에 완공하고, 예술의 전당은 3년 만에 뚝딱 짓는 그런 졸속공사는 이제 시정돼야 겠지요. “건물을 짓는 데는 건축기술 외에 반드시 세월이란 원료가 가미돼야 한다” 는 변 신부의 말은 울림 그대로입니다. 이후 건립위원회 총재를 맡은 김남수 신부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바뀌어도 사업은 계속 되는 풍토, 세대는 바뀌어도 역사는 전승되는 문화가 아쉽다”는 안타까움은 우리사회가 성찰해야 대목입니다. 한국기독교사에는 많은 순교의 피가 흐릅니다. 서울 마포 한강변의 절두산 성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가면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묻혀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로 답을 찾은 분들입니다. 한국 가톨릭이 자부심을 갖는 데는 외국 선교사에 의한 복음 전파가 아닌, 가톨릭사에 유래가 없는 자생적 발상이라는 점이지요. 천주교회의 100년 성역사업 현장 안내판에 이러한 자부와 긍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파견과 복음 전파 없이 순수한 학문 탐구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신앙으로 발전시켜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자랑스러운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우리나라 공식적인 천주교의 시작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1784년이나, 이보다 7년 전 권철신이 이끄는 학자들이 천진암과 주어사를 오가며 강학모임을 열어 조선 천주교의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어요.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등 5인이 창립 선조입니다. 규모는 성지안내도가 짐작케 해줘요. 광암성당, 대성당건립터, 천진암강학터, 200주년기념비, 한국천주교창립 성현5위 묘역, 조선교구설립자묘역, 성모경당, 세계평화의 성모상, 박물관 등 순례에만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핵심인 천진암 대성당은 1987년 터 닦기공사를 시작으로 1992년 대성당 터를 축성해 2079년 완공할 계획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천국열쇠를 든 베드로 동상과 마주칩니다. 석양을 받아 신비감을 더하네요. 천진암 성지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1996년, 2007년, 2020년,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아직도 세월이란 원료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멈추어 선 곳,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종이 울리면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떠오릅니다. 100세를 살아도 준공된 모습은 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조감도로 완공 후의 현장을 상상하며 돌아갑니다. 옛날에, 자신이 묻힐 곳을 미리 보고 뒤돌아서시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떠오르네요. 유한한 인생을 생각했나 봅니다. (이관순 소설가/daum cafe/ leeletter) 13.2 몽골평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낙타떼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내 지인은 몽골의 별밤을 회상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향수에 젖습니다. "난 혼자서 몽골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몽골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정으로 몽골을 알려면 초원이 부르는 바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는 유하의 시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를 이렇게 변주했어요. ?나 어느 날 내가 사는 초원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어느 날 나의 초원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승마여행 중에 만난 초원의 무지개와 신비의 구름과 바람들. 광야에 핀 꽃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노을, 이 모두가 소리 내어 나를 찾는 곳. 그곳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망이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어요. “줄이고 또 줄여본다. 견디고 또 견뎌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접어야 할지 말지. 이 현실이 어지럽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이동이 곧 우리의 미래인데. 어느 날 그 이동이 막혀버렸다. 하늘길, 땅길, 물길도 모두. 텅 빈 인천국제공항에서 인간의 역사가 멈춤을 보았다.” 오늘은 17년간 몽골 초원을 함께 달린 낡은 모자 사진도 올렸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징기스칸’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글이 떠오르네요. “빵을 먹는 자 길을 내고, 밥을 먹는 자 마을을 만든다.” 이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계속 걷는 것은 희망이 보여서가 아닙니다. 계속 걸어야 희망이 보여서 입니다.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나,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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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9
  • 갈 적 마음과 올 적 마음
    사람 마음에 베인 상처처럼 아프고 오래가는 것도 없다. 어느 날 믿고 아꼈던 사람이 배반을 하고 떠났을 때,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마음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일보다 힘든 일은 없다. 힘으로 나라를 정복했다고 다가 아닌 것이, 땅은 점령해도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지 못하면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그 많은 전쟁들, 인종 간의 분쟁, 권력을 에워싸고 벌이는 암투,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이 다 그래서 생겨났다. 배반, 배신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세상 일들이 다 사람의 문제로 시작되었다. 출신, 인종, 문화가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기업을 운영하는 일 또한 핵심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로 귀결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대치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데... 이런저런 일을 들먹이며 자신을 높이고 은근히 유세를 부린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만큼 허망한 때도 없다. 평생 한 직장에 같이 몸 담아온 사람이 명예롭지 않게 떠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같이 입사해 정이 들만큼 든 사람들일 때는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저 사람은 회사가 잘해 주었으니까 딴마음을 품을 리 없지”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질 때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회사의 은덕을 많이 입고도 작은 일에 서운해하고 등을 돌리고 칼을 꼽는 게 사람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면서 상대적이다. 회사는 줄 만큼 주었다는 것이고 직원은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부딪친다. 그래서 작은 이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이 그랬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거두어 가르치고 키워서 충복으로 삼았는데 그 사람이 발등을 찍을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은혜를 입은 사람이 비밀리에 회사의 기술을 베껴 새 공장을 짓고 하루아침에 경쟁업체 사장으로 나타났을 때 받는 당혹감이나 배신감은 어떠할까. 사람의 얼굴을 하고 해선 안 될 일이 믿음을 저버리는 짓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많은 반역자들은 모두 총애를 받았던 최측근의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절대적인 신임으로 옥쇄까지 맡겼는데 어느 날 칼끝이 주인을 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감지덕지하며 일하다가 세월이 가면서 욕심이 생겨 배신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진실로 믿음의 관계는 사람과 신(神)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하면서도 취약한 것이 ‘초심(初心)’으로 사는 일이다. 그만큼 초심을 끝까지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의리’ ‘신의’ ‘배신’ ‘배반’이란 말이 모두 초심의 문제가 아닌가.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고, 가난할 때와 부유해진 뒤가 다르고, 고생할 때와 성공한 후가 다른 것이 간교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이 숭앙해야 할 덕목으로 ‘시종일관’ ‘한결같이’ ‘처음처럼’ 사는 것을 꼽는 게 아닐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몇 해전 출범시킨 자선단체 이름을 ‘베이조스 데이원(DAY-1)’(처음처럼)으로 명명했다. 사는 곳은 달라도 인류를 관통하는 가치는 같은 맥락에 있다. 옛날, 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측간(화장실)에 가야 할 긴급한 상황이어서 아무 집이나 들어가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이 출타 중인 부인 혼자 있는 집이었다. 부인이 머뭇거릴 수밖에. 그러자 나그네가 부인에게 엽전 한냥을 주면서 사정을 했다. 그래도 부인이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아녀자 혼자인 집에...” 머뭇거리자 다급해진 나그네는 탈탈 털어 엽전 닷냥을 주고야 측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볼일을 마친 나그네가 쭈그려 앉아 생각하니 생돈을 빼앗긴 것 같아 속이 쓰려왔다. 일어날 생각은 않고 계속 앉아 잃은 돈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급해진 사람은 이 집 마님이었다. 외출한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얼추 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혼자인 집에 외간 남자를 들이다니, 남편이 이를 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여자가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예 아직. 제가 좀 측간 일을 길게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말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좀 더 기다릴 수밖에는. 시간이 흐르자 다급해진 부인이 협상을 걸었다. “한 냥을 드릴 테니 그만 나오시지요.” “서두르면 더 힘들어집니다.” 남자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발을 동동 구르던 부인이 애끓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럼 닷 냥 다 돌려드리면 되겠어요? 제발 좀 부탁합니다.” “모르시는 말씀이십니다. 제 조부께서는 설사가 나온다고 재촉하는 조모님 때문에 측간 일을 다 못 보고 나가셨다가 그만 변고를 당하셨다고요." 나그네 대답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애가 탄 부인이 마지막 패를 던졌다. “그러면 닷냥을 더 얹어 드릴 테니 그만 좀 나오세요. 이렇게 빕니다.” 그제야 나그네는 ‘콜~’하며 측간에서 나왔다. 그리고 엽전 열 냥을 받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를 ‘여측이심(如厠異心)’이라고 한다. ‘똥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의롭게 신실하게 사는 일은 초심을 지켜 사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이 아름답고, 처음과 나중이 같은 사람이 존귀하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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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6
  • 왜 하필이면 조선 땅인가
    이 넓은 세상에서 조선에 태어났나? 왜 여성으로 태어났나?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나? 조선의 천재 여류문인 허난설헌(이름 초희)의 한(恨)입니다.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한 여인이 무슨 정한이 그리 많아 셋씩이나 한을 품었을까? 긴 장마 뒤 해가 쨍쨍한 날,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의 안동김씨 선영으로 허난설헌 묘를 찾았습니다. 당대최고의 문벌가답게 묘역은 크고 잘 정비돼 있었어요. 하단에 그녀의 묘가 있고 옆에 어린 남매가 잠들어 있더군요. 아버지 초당 허엽은 동서 분당 때 동인의 영수였고, 오빠 허성은 이조판서를, 소설 ‘홍길동’을 쓴 남동생 허균은 유·불·천주교를 섭렵하며 관직에 오르는 등 말 그대로 한 시대의 문벌 가문입니다. 강릉엔 난설헌의 생가 초당고택이 있어요. “글을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다. 여자가 이에 힘쓰면 그 해로움이 끝없을 것.” 실학의 대가 이익의 말처럼 당시 여성은 문사의 길이 꽉 막힌 시대였어요. 그럼에도 천부적 재질을 보인 난설헌은 8세 때 시를 지어 후일 정조를 감탄시킵니다. 그녀가 풍부한 감성으로 시를 쏟아 내면, 허균이 암송해 훗날 ‘난설헌집’을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15세 때 김성립과의 결혼은 그녀의 삶을 험한 가시밭길로 내몰았어요. 남편은 5대 연속 문과에 급제한 안동김씨 문벌가 자손이었지만, 가부장적인 가풍으로 시집살이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시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은 시모 사이에 깊은 갈등의 골이 패이고, 아내를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남편과도 화락하지 못했어요. 아내에 대한 열등감으로 기생방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태반이었습니다. 지아비에게 버림받고 눈물로 지새는 규방의 날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달래는 것은 시 뿐이었어요. 그 하나가 규방의 슬픔을 담은 ‘규원’입니다. “비단 띠 깁 저고리 적신 눈물자국/ 여린 방초 임 그리운 한이외다/ 거문고 뜯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지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앉네. 엄마 옆에 나란히 누운 어린 남매 그래도 삶을 지탱시켜주는 건 어린 남매입니다. 자식 자라는 모습에 보람을 찾던 그녀 인생에 잇단 불행이 찾아듭니다. 봉오리도 맺기 전 남매가 다 돌림병으로 죽어요. 오죽하면 지식을 앞서 보낸 어미의 슬픔을 참척(慘慽)이라했을까. 이때 쓴 시가 ‘곡자(哭子)’. “지난해엔 귀여운 딸을 잃더니/ 이번 해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 응당 언니 아우의 혼들이 알아/ 밤마다 서로 손잡고 놀아라...” 남편은 가정과 더욱 멀어지고 그러는 사이 친정집도 몰락의 길을 갑니다. 경상감사였던 아버지가 상주에서 객사하고, 귀양을 간 큰 오빠도 객사하니 수족이 하나씩 잘리는 아픔을 느낄 수밖에요 여성의 재능을 부정한 시모의 학대, 무능한 남편, 친정의 몰락,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 두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몸이 쇠약해져요. 그럼에도 그녀가 지은 시와 문장은 방 한 칸에 가득 찰 정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시를 쓰더니 “아름다운 연꽃 39송이 붉게 떨어진다.” 처럼 27세에 요절합니다. 여기서 ‘39’는 엄마와 남매의 나이를 합한 수, 또는 3·9의 승수라고도 해요. 그녀는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허균이 누님의 시편들을 수습해 중국에서 ‘난설헌집’을 내 격찬을 받지만 정작 조선에서 간행될 때는 찬사보다 비판이 컸어요. 규방여인이 점잖지 못하게 연애시나 썼다고. 연암 박지원까지 “조선의 한 여자 이름이 중국에까지 퍼졌으니 유명하다고 할 수 있으나, 조선의 부인들은 일직이 이름이나 자를 찾아 볼 수 없으니, 난설헌은 호 하나만으로도 과분하다”고 했어요. 여성이 호와 자를 다 갖기란 극히 이례적이었으니까요. 정한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은 27년 생애. 시비(詩碑)앞에 서니 그녀의 일생이 너울거립니다. 왔다간 인생의 흔적이 고작 이것인가. 한없이 작아진 나를 만납니다. -소설가/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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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가을의 고요와 만날 무렵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더위와 집중호우라는 이중고를 안겼던 여름도 조석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절만 지나면 여름은 끝’이라는 생각이 올해도 얼추 맞게 돌아갔다. 여름의 끝을 8월 15일로 인식한 데는, 무주 구천동에서 형제들과 보낸 어느 해 여름휴가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3일이었는데 하루를 연장해 8월 16일까지 머물기로 하고 주인을 만났더니, 15일 숙박료를 절반으로 깎아 주는 것이었다. 8월 15일을 기준으로 숙박요금이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바뀐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았다. 젊은 날에는 확 트인 바다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산이 좋아졌다. 염분이 밴 끈적거림 보다 청량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고 보송보송한 산들바람에 몸을 말릴 수 있는 청량한 산이 좋다. 9월을 시작하는 첫날, 운길산에 올랐다가 수종사를 찾았다. 수종사를 찾은 지가 기억 속에 가물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은 여전하고, 고즈넉함까지 옛 그대로였다. 활짝 트인 시야로 북한강의 끝자락인 양수리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가슴이 절로 열렸다. 어제의 8월과 오늘의 9월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작열하던 햇살이 기를 숙이고 떠들썩했던 여름의 소음도 멀어지고 있다. 청정한 바람이 여름의 잔해를 쓸어내면, 가을의 고요가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수종사를 배경으로 팔짱을 끼고 북한강에서 오르는 강바람과 운길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을 타고 가을의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계절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아쉽고, 작별은 사람을 어질게 만든다. 견고하게 초록의 성을 쌓았던 무성한 잎새들과도 곧 작별이겠구나. 초록은 흩날리는 굴뚝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지난 세월, 백사장을 어지럽게 밟아놓은 젊은 날의 발자국들이 양수강 위로 아련하게 흔들렸다. 늘 시끌벅적했고, 뜨거운 아우성으로 소란스러웠던 그 많은 시간들…. 뒤돌아보는 그날의 발자국들은 태반이 상처 나고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무수히 다짐하고 맹세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를 바꾸어 놓지 못한 채 긴 세월을 흘러 보낸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나를 바꾸는 일이다. 그 중심에 천박하게 입만 열면 떠들었던 입이 있다. 아직도 그 입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고 굽은 언어로 나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오죽했으면 성철 스님까지 ‘불기자심(不欺自心·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을 화두로 삼고, 해인사 백련암에 직접 쓴 휘호를 걸었겠는가. 성경에도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라고 쓰여 있다. 호젓한 수종사에 계절의 전령처럼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찰랑찰랑한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인생의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고 바람 든 스산한 생각들을 정결하게 빗질해 주는 것도 저 풍경소리이다. 청아한 가을바람소리를 듣기 때문일까. 유난히 풍경소리가 높고 맑게 들렸다. 휘저은 마음속 앙금들이 풍경소리에 가라앉으면서 잊고 지내온 일들이 살아났다. 한참을 그렇게 상념에 잠겼다. 사찰마다 풍경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있다. 왜 추녀 밑 풍경에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만 매달려 있지? 등산길에 목을 축이려고 절에 들릴 때마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풍경과 매달린 물고기 사이엔 어떤 궁합이 있는 걸까? 그러한 의문은 군 입대를 앞두고 들렸던 선암사에서 풀렸다. 친절하게도 스님 한 분이 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물고기를 피사체로 삼을 때 뒤로 배경이 되어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 구름?”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보이지요. 저 푸른 하늘은 바다를 뜻합니다. 어떤 상상이 떠오릅니까?” 그러고 생각하니 광대한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매달아 물의 원천인 바다를 만들었구나. 물이 풍부하면 어떤 큰 불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대부분 목조 건물인 사찰은 어느 곳보다 화재에 취약한 곳이므로, 화재 진압에 쓰일 풍부한 수자원을 기원했으리라. 파아란 하늘을 바다로, 넉넉한 수량을 확보해 오래된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려는 지혜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풍경이 상징하는 것으로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물고기다. 평생을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를 무엇에 은유했을까? 수행자를 지도하거나 경책 할 때 손바닥에 치는 죽비가 떠올랐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으라. 언제나 혼돈과 번뇌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러면서 너도 깨닫고 남도 깨달을 지니….” 수종사에서 듣는 바람소리, 풍경 소리에 습하게 구겨진 마음을 펴 말리면서 시인 공광규(1960~ )의 시 ‘수종사 풍경’을 바람 타고 고요한 하늘로 퍼지는 풍경소리에 실어보냈다. “...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목소리...” 딱 떨어지는 지금의 수종사 풍경(風景)이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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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2-09-19
  • 가을의 고요와 만날 무렵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더위와 집중호우라는 이중고를 안겼던 여름도 조석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절만 지나면 여름은 끝’이라는 생각이 올해도 얼추 맞게 돌아갔다. 여름의 끝을 8월 15일로 인식한 데는, 무주 구천동에서 형제들과 보낸 어느 해 여름휴가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3일이었는데 하루를 연장해 8월 16일까지 머물기로 하고 주인을 만났더니, 15일 숙박료를 절반으로 깎아 주는 것이었다. 8월 15일을 기준으로 숙박요금이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바뀐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았다. 젊은 날에는 확 트인 바다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산이 좋아졌다. 염분이 밴 끈적거림 보다 청량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고 보송보송한 산들바람에 몸을 말릴 수 있는 청량한 산이 좋다. 9월을 시작하는 첫날, 운길산에 올랐다가 수종사를 찾았다. 수종사를 찾은 지가 기억 속에 가물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은 여전하고, 고즈넉함까지 옛 그대로였다. 활짝 트인 시야로 북한강의 끝자락인 양수리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가슴이 절로 열렸다. 어제의 8월과 오늘의 9월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작열하던 햇살이 기를 숙이고 떠들썩했던 여름의 소음도 멀어지고 있다. 청정한 바람이 여름의 잔해를 쓸어내면, 가을의 고요가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수종사를 배경으로 팔짱을 끼고 북한강에서 오르는 강바람과 운길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을 타고 가을의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계절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아쉽고, 작별은 사람을 어질게 만든다. 견고하게 초록의 성을 쌓았던 무성한 잎새들과도 곧 작별이겠구나. 초록은 흩날리는 굴뚝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지난 세월, 백사장을 어지럽게 밟아놓은 젊은 날의 발자국들이 양수강 위로 아련하게 흔들렸다. 늘 시끌벅적했고, 뜨거운 아우성으로 소란스러웠던 그 많은 시간들…. 뒤돌아보는 그날의 발자국들은 태반이 상처 나고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무수히 다짐하고 맹세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를 바꾸어 놓지 못한 채 긴 세월을 흘러 보낸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나를 바꾸는 일이다. 그 중심에 천박하게 입만 열면 떠들었던 입이 있다. 아직도 그 입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고 굽은 언어로 나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오죽했으면 성철 스님까지 ‘불기자심(不欺自心·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을 화두로 삼고, 해인사 백련암에 직접 쓴 휘호를 걸었겠는가. 성경에도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라고 쓰여 있다. 호젓한 수종사에 계절의 전령처럼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찰랑찰랑한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인생의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고 바람 든 스산한 생각들을 정결하게 빗질해 주는 것도 저 풍경소리이다. 청아한 가을바람소리를 듣기 때문일까. 유난히 풍경소리가 높고 맑게 들렸다. 휘저은 마음속 앙금들이 풍경소리에 가라앉으면서 잊고 지내온 일들이 살아났다. 한참을 그렇게 상념에 잠겼다. 사찰마다 풍경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있다. 왜 추녀 밑 풍경에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만 매달려 있지? 등산길에 목을 축이려고 절에 들릴 때마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풍경과 매달린 물고기 사이엔 어떤 궁합이 있는 걸까? 그러한 의문은 군 입대를 앞두고 들렸던 선암사에서 풀렸다. 친절하게도 스님 한 분이 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물고기를 피사체로 삼을 때 뒤로 배경이 되어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 구름?”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보이지요. 저 푸른 하늘은 바다를 뜻합니다. 어떤 상상이 떠오릅니까?” 그러고 생각하니 광대한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매달아 물의 원천인 바다를 만들었구나. 물이 풍부하면 어떤 큰 불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대부분 목조 건물인 사찰은 어느 곳보다 화재에 취약한 곳이므로, 화재 진압에 쓰일 풍부한 수자원을 기원했으리라. 파아란 하늘을 바다로, 넉넉한 수량을 확보해 오래된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려는 지혜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풍경이 상징하는 것으로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물고기다. 평생을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를 무엇에 은유했을까? 수행자를 지도하거나 경책 할 때 손바닥에 치는 죽비가 떠올랐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으라. 언제나 혼돈과 번뇌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러면서 너도 깨닫고 남도 깨달을 지니….” 수종사에서 듣는 바람소리, 풍경 소리에 습하게 구겨진 마음을 펴 말리면서 시인 공광규(1960~ )의 시 ‘수종사 풍경’을 바람 타고 고요한 하늘로 퍼지는 풍경소리에 실어보냈다. “...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목소리...” 딱 떨어지는 지금의 수종사 풍경(風景)이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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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5
  • 침착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20대 때는 세상을 바꾸겠노라. 30대는 아내를 바꾸어 놓겠노라, 40대에는 자식을 바꿔놓겠노라고 다짐했는데, 50대 이르러 보니 나는 아무것도 바꾸어놓은 것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변화되면 이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 미국 특파원 생활을 끝으로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50대에 목사님이 되면서 그가 남긴 글이다. 그 나이에 인생을 그토록 비틀 수 있는 과단성 있는 용기와 결행은 어떤 신념에서 나온 것일까? 이를 두고 열이면 열 사람 모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렇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고, 점차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끊으면서 간간이 먼발치로 그의 소식을 들었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고, 교회 개척에 나서 힘들어한다는 말까지….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때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된 그를 걱정했던 마음에 언젠가부터 존경스러움이 찾아들었다. 소명감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결연한 자유 의지인가. 우리가 안정된 중장년의 시기를 보낼 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광야의 길을 열어간 그의 모습에서 그것이 짧은 인생의 소망이겠다 싶었고,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 년이 지나 친구들이 은퇴 세대가 될 즈음, 다시 신문에 오른 그의 사진과 칼럼을 보았다. 청년이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그는 사진에 검은 올이 하나 없는 순백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글은 원정을 떠나는 장수의 출사표처럼 다가왔다. 정년을 앞당겨 젊은 목사를 청빙해 자리를 넘기고, 그는 더 먼 길로 아프리카 사역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63세라는 가볍지 않은 나이에. 글에서 전해지는 글향을 느꼈다. 좋은 말과 글은 에너지가 되고, 선한 마음에서 나온 글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차분하고 강인하라.’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사용한 말을 글의 제목으로 차용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는 뜨겁고 힘이 넘쳤다. 어쩌면 자신에게 향한 다짐으로도 보였다. 먼바다에서 자신의 몸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이 자신을 향했던 주문 ‘be calm & strong!'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 몰릴 때일수록 ‘침착하게, 강하게’ 밀고 나가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노인은 84일간 새벽에 나가 땅거미가 지도록 고통의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다 매일매일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럴수록 더 먼바다로 나가 열공을 드렸고, 마침내 청새치를 잡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노인과 바다’가 명작으로 읽히는 것은 삶이 내재하고 있는 ‘결정론’과 ‘자유 의지’ 간의 다툼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 다툼을 그린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 의지의 상징이었다. 결정론은 인간이 상황이란 힘 아래 움직이는 허약한 존재이다. 외부 압력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자이지만, 자유 의지는 ‘예’라고 답 해야 할 때 ‘아니오’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의지에 있다. 청년들에게 고난과 질곡 앞에 비굴해지지 말고, 상황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 의지의 젊음으로 살라는 것이 그의 글에서 역동했다. 그 역시 분명한 자유 의지의 사람이었다. 그는 때 늦은 나이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광야에 홀로 뛰어 나가 계속되는 난관 앞에 굴하지 않고 ‘침착하고, 담대하게’ 자신을 지키고 혹한 시련을 견뎌냈다. 만 10년 사투 끝에 성공한 목회자란 평가를 받기 무섭게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다들 은퇴를 했거나 앞둔 시점에서 쓸쓸한 노년생활을 준비할 때, 그는 더 먼바다로 나가 제 몸집보다 큰 청새치를 끌어올리려고 얼마나 진땀을 흘려야 할까. 그가 떠나기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일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명과 열정의 문제다.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가 적기이다. 일을 내가 다 마치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우리가 못 이룬 건 다음 세대가 잇고, 내가 못하면 후임자가 이어감이 생명의 순환 질서일 테니까.? 우리는 너나없이 바람이 불면 지는 낙엽에 다름 아니다. 낙엽이 떨어져 잘 썩으면 땅이 비옥해져 좋은 열매가 맺힌다. 사람도 세월이 가면 모두 낙엽처럼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 몸 하나 보듬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에게라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빈손으로 왔다 가는 인생은 아닐 것이다. 더더욱 나의 만족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수단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종교적으로도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의 인생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애석함이 있다. 찾아온 생의 전환 기회를 담대하게 붙잡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현실에 나를 가두고 시선을 거두었다. 선택을 해야 할 순간, 상황론자의 멍에를 떼려야 떼지 못하고, 꽃다운 시절을 이상과 현실이 뒤엉켜 혼돈 속에 살았다. 이젠 좋고 싫을 것도 없는, 그것도 내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가슴 한 구석에 봉인해 둔 웅크린 나를 풀어주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망설일 때가 곧 시작할 시간이고, 결정하는 순간이 빠른 출발이 된다. 그러므로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는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상황론에 휘둘리지 말고, 침착하고 담대하고 강하게! 매일매일 자유 의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야겠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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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나는 생각하는 갈대인가
    갈대와 억새는 생김새가 비슷해 혼동하기가 쉬워요. 이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늪지대 같은 물가에서 자라는 것이 갈대이고, 산과 들에서 만나는 것이 억새랍니다. 또 갈대는 색깔이 갈색이고 키가 크지만 억새는 은빛에 키가 갈대보다 작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입니다.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사상가,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 그의 명상집 ‘팡세’에 남긴 유명한 경구죠.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은 인간에게 내재한 연약함, 위대함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어요. 나무가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슬픔 그 자체로 끝이지만, 인간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대함이라는 깨침을 담고 있지요. 앞줄에 나오는 약한 갈대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성경구절과 통합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구세주의 구원 언약입니다. 소망 없이 노예로 살아가는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에 비유한 것이죠. 파스칼이 말하는 갈대는 비참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란 새로운 매시지를 전달함에 있었어요. 다음 구절이 파스칼이 인간을 향해 던지는 핵심 구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상하고 나약한 태생적인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인간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위대함은 무엇인지를 전합니다. 파스칼이 성서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은 기독교 사상가로, 구도적인 삶의 상징을 갈대에 둔 것으로 보여요. ‘팡세’는 프랑스어로 사색집이란 뜻입니다. ‘팡세’는 파스칼 사후에 가족이 그의 지혜와 사색이 담긴 메모 첩을 발견하고 한 권으로 묶어 낸 책입니다. ‘팡세’ 에는 모두 924편의 짧은 글이 실렸어요. 르네상스 이후 기독교의 위상이 추락할 때,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재가치를 설명하고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권합니다. 흥미로운 건 파스칼이 인간의 자아와 이성을 내내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 파스칼이 보기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를 ‘생각’과 ‘사유’에서 찾았습니다. 우리의 존엄인 내 인간의 자아와 이성을 강조한 것은 이를 근간으로 발달한 계몽사상과도 부합했어요. 팡세는 후대로 갈수록 인간의 이성과 자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밝혀낸 교과서로도 자리를 굳힙니다. 인간의 이성은 물론 보편적 심리까지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서죠. 10월이 되면 포천의 명성산, 정선의 민둥산, 하늘공원 같은 억새 명소에서 억새축제가 열립니다. 가을에 하얗게 무리지어 흔들리는 억새풀의 향연은 가을의 정점임을 알립니다. 황혼녘에 물드는 산허리에 형성된 억새 군락을 향해 쏴아하며 바람몰이 에 휩쌓일 때, 우윳빛 물결로 출렁이는 풍경은, 화려한 꽃이 아니더라도 은빛 하나만으로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답다는, 경탄을 부릅니다. 한없이 허약하면서 위대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갈대이든 억새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새 깃털처럼 가벼운 은꽃이 되어 산바람 들바람에 몸을 부대끼면서 소리내는 갈대와 억새. 흔들리고 흩날리는 건 그들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대에 억새에 시선을 모으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순백의 순결 속에 나는 누구인가. 생각 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갈대인가, 흔들리면서도 끊임없이 이성과 사유와 자아의 실천을 꿈꾸는 갈대인가. 한해가 소문없이 저무는 시간, 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가 들린다면,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해보세요 진심을 담아. ?나는 나약한 갈대에 불과 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고 싶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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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8
  • 깊이로 흐르는 시간
    똑같은 인생을 살았는데 어떤 이는 100년을 살고도 ‘한이 맺혀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분이 있고, 또 다른 이는 47년을 살고도 ‘이젠 여한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우리네 인생을 잘 살고 못 사는 것으로 금을 긋는 것일까? 얼마 전, 친구가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미뤄두었던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감상을 날 것 그대로 보내왔다. 친구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가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면 다 같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흘러가면 다 세월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스치듯 왔다 사라지는 바람 같은 시간 말고, 깊이로 흐르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감성 깊은 언어로 쓴 친구의 편지를 재구성했다. 깔끔한 성품 탓에 신변 정리도 빨랐던 분이라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어머니의 작은 소품 하나에도 생전의 체취가 밴 것들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을 생각에 잠겨 어머니의 시간을 돌아보던 아들이 장롱 서랍 깊숙이에서 지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 특별한 날에 어머니 손에 들렸던 지갑. 아버지가 소싯적 서울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선물로 사 오신 그 지갑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제자였던 어머니와 결혼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범학교를 나와 첫 부임한 학교의 제자였다. 열 살이란 나이 차로 처가의 반대가 심했고, 결혼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하지만, 처가 어른들 마음을 돌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낙 사는 모습이 어른들 보시기에 살뜰하고 신통했으니까. 그렇게 두 분은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꾸며 사셨는데, 이를 시기한 것은 얄궂은 운명이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폐병을 앓아온 아버지가 훌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서른일곱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기고···. 그 시절엔 폐병이 흔한 병이면서 무서운 병이었다. 발단은 교사 신검에서 나온 이상 소견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열 달 간 공무원 휴양소에서 요양을 하셨고, 다행히 경과가 좋아 이듬해 복직을 하셨다. 하지만 복직 1년도 채 안 돼 병이 재발했다. 그리고 1년 뒤 이생의 삶을 끝내셨다. 진액을 다 쏟은 어머니의 곡진한 간호를 물리시고….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자식 하나 바라보며 수절하는 어머니께 죄송함을 느꼈다. 내가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 저변에는 어머니와 같이 아버지의 제자였던 한 남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한 여자를 스승에게 빼앗긴 불운한 남자는 결혼 1년 만에 아내를 잃고 오랫동안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쩌면 그분에겐 기회일 수 있었다. 외가 어른들이 은근히 재혼을 부추기는 데다, 시아버지도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며느리를 가로막을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아버지 3년상이 끝나길 묵묵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결정적 순간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보고, 남자는 더 이상 연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뤄온 이민을 떠났다. 비로소 어머니의 인생 길이 정리된 셈이 되었다. 아들 손에 들린 어머니의 유품인 지갑. 38년 비원이 담긴 듯한 지갑을 아들은 선뜩 열지 못했다. 그러다 똑딱! 하는 소리가 침묵을 흔들자 지갑이 속살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38년 된 두 장의 편지가 단정하게 접혀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휴양소 생활을 하실 때, 면회를 왔던 어머니를 버스에 태워 보내면서 손에 쥐어준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편지를 읽고 휴양소로 보낸 답신이었다. 종이 한 장에 쓰인 아버지의 편지엔 자작시 한 편이 그림과 함께 쓰여 있었다. ‘꽃은 왜 향기를 내나.’ 열세 줄짜리 시는 구절마다 행간마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끓는 정분을 꽃가루처럼 뿌리고 있었다. 삽화처럼 넣은 그림은 어머니에게 들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주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보낸 답장에도 시간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했어요. 휴양소 오솔길을 손잡고 걸었던 그 한나절의 의미를 새겼어요. 당신의 사랑이 제 몸에 흘러드는 강물이라면 나는 일평생 당신을 가두는 댐이 되겠다고···” 아들은 두 분이 주고받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들은 그제야 어렴풋이 잡히는 게 있었다. 그날, 아버지와 함께 한 한나절이 아버지 사후 38년보다 깊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38년은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깊이로 흐른 시간이었다. 고통받는 사람의 하루는 1년처럼 길어도, 연인들의 시간은 늘 짧고 부족한 것처럼. 그날 어머니에게 찾아온 그 카이로스의 시간이 38년 크로노스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다는 것을 아들은 알았다. 두 분의 정분이 그렇게 깊이로 흐르면서 백년설의 두께를 만들었다는 것도. 시공을 넘는 깊이와 두께를 만든 두 분의 삶과 사랑에 아들의 가슴은 한동안 먹먹함뿐이었다. 어머니가 사신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들은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죄송했다. 눈을 감았던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 사진 앞에 섰다. 입가에 고요히 웃음을 머금은 두 분의 모습이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분은 47년을, 한 분은 76년을 사시고 가셨지만, 여한이 없이 사신 분들처럼 보였다. 그래서 떠나실 때 그리도 평온하셨구나….(14.0) -소설가 /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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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5
  • 혼자 잘 노는 것도 능력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6천만 명을 향합니다. 중국 우환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후 1000만 명에 이른 기간이 6개월인데, 2천만 명 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3일, 그리고 석 달 만에 5000만명을 넘습니다. 우리나라도 확산세가 가팔라 연말 모임을 다 망치게 되었죠.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뜰 때마다 사람들은 ‘그래서 어쩌자고’ 한숨과 푸념을 앞세웁니다. 언택트 규제가 격상되면서 3월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는 것 같아, 사는 걱정에 울음을 참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걱정이 커지면 꿈도 많아져요. 심하면 악몽에 시달리고 외로움, 두려움을 느낍니다. 올해 내내 계속된 비대면 생활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속앓이를 한 거죠. 까닭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벌컥 화가 치밉니다. 외로움을 방치하면 질병이 되죠. 혼자인 것이 두려운 겁니다. 심리학자 카를융은 ‘외로움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요한 문제를 두고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을 때 생긴다’라고 진단합니다. 한 번 혼자인 게 두려웠던 경험을 한 사람은 작은 상황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난 것을 기억하니까요. 2001년 11월 시카고 공항에서의 일이죠. 출장을 마치고 동료와 헤어져 딸이 사는 테네시 레시빌로 가기 위해 터미널을 찾아 갈 때입니다. 때는 ‘9.11테러’가 난지 두 달 밖에 안 된 터라,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무장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돼 행장이 수상쩍은 사람은 가차 없이 검색을 하고, 보안검색대는 통과까지 가히 수용소 입감 수준입니다. 신발을 벗어 들어 보이고, 검색요원은 가방을 까발려 내용물을 하나씩 흔들어 댑니다. 여성의 속옷을 들고 흔들어도 입도 벙긋 못할 분위기였죠. 검색이 끝난 사람은 헝클어진 가방을 다시 정리하느라 북적이고, 밖으로는 검색을 기다리는 대기 줄이 공항 밖으로 한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나마 출발 5시간 앞에 나온 게 다행입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출발 15분 전에야 가까스로 탑승지역까지 왔지요. 어수선하긴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이젠 게이트 스크린에서 번호만 확인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쩔거나. 스크린에 탑승할 게이트 번호가 안 뜨는 거 있죠. 마음이 급해집니다. 스크린 보다 시계보고, 주변을 돌아봐도 말 붙일 사람이 없어요. 다들 시간에 쫓겨 뛰는 사람들뿐입니다. 뭔가 잘못됐구나! 긴장감에 불을 붙이는데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어요. 내게 티켓을 보이며 게이트 번호가 안 보인다고 슬픈 표정을 짓고서. 티켓을 보는 순간 이렇게 반가울 수가! 행선지가 같은 레시빌입니다. 동행인이 생기면서 이상한 것은 혼란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거였어요. 그녀도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는 차분하게 쌍 라이트를 켜고 스크린을 다시 보는데, 우리가 찾는 번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거 있죠.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정을 찾자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혼자였을 때는 보이지 않았을까? 지연 방송도 했다는데 내겐 왜 안 들렸을까? 그러면서 모아지는 생각은 내가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문제 중에는 혼자라고 생각할 때 의외로 많은 일과 맞닥뜨립니다. 어릴 때 경험이 그런 거였어요. 부모님이 안 계시면 평소 없던 상황과 마주치게 되고,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심리적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소통은 생명과 산소처럼 인간에겐 필수요소입니다. 성경에도 ‘홑겹은 쉬 끊어지나 겹줄은 견줄만하고 세 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데레사 수녀도 “인생에서 최고의 가난은 외로움”이라고 알렸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인데, 현실은 이를 가로막아요. 혼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히면 삶을 힘들게 합니다. 그렇다고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려면 좋든 싫든 혼자 사는 능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혼자일 때 온전히 혼자인 나와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나하고 잘 노는 것이 능력인 시대가 온 것입니다. 혼자서 잘 놀고 잘 먹고, 즐기기. 언제라야 이 야속한 세상이 끝날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긴겨울의 시작입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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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1
  • 사라진 설렘과 기다림의 시간
    코로나의 일상이 정상으로 향하면서 지난 주말 오랜만에 결혼식장을 찾았다. 마흔 된 딸을 시집보낸다고 감격하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찾은 예식장에서 반가운 옛 친구들을 만났다. 예식을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70년대 젊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포를 풀었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와 성악을 한 친구, 문학을 한 내가 친구가 된 것은 같은 대학을 다녀서였다. 전공은 달라도 기독 학생으로 함께 서클활동을 하면서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출신 학교와 고향이 제각각임에도 흉허물 없는 친구로 젊은 한 시절을 같이 걸었다. 이젠 다들 원로급 나이가 되었으니 주고받는 대화가 모두 지난날 그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때를 회상하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렇듯 친구는 10년을 못 만나도 금방 퍼즐이 맞추어진다.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딸에게 오래된 상자를 열어 소장해온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보여주며 의중을 물었다. “얘야, 아빠가 아꼈던 것인데 네가 보관할래?” “아빠, 이런 건 박물관이나 수집가들에게나 필요하잖을까? 난 사양할래요.” 딸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시답잖다는 표정을 얼굴에 그렸다.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진 않았지만, ‘박물관’ 운운하는 표현에서 섭섭함이 살짝 마음에 깔렸다. 아비가 박물관 갈 나이라도 됐다는 뜻인가? 호불호가 분명한 것은 좋지만 요즘 젊은 얘들은 같은 말을 해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둔감해 있다. 디스크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인데, 세상이 그리도 빠르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향해 불화살을 당기는 느낌이었다. 음원을 파일로 다운받아 듣고, 모든 정보를 핸드폰에 담고 사는데 익숙한 세대들이 흘리는 얘기를 듣다 보면, 불쑥불쑥 현대판 청맹과니의 부적응력이 잉어처럼 튀어 오를 때가 있다. 사진가 친구도 한 수 거들었다. 그 시절은 필름 값도 비싼 데다 일단 카메라에 필름을 넣은 후에는 다시 뺄 수도 없으니 순간순간 판단을 잘하고 찍어야 했다. 게다가 필름 한 통에 20~30여 컷으로 제한돼 있어 필름이 떨어질까 봐 남은 컷을 셈하면서 셔터를 눌러야 했다. 사진을 찍어도 확인해 볼 수가 없으니 다 찍은 필름은 서둘러 현상소에 맡기는 것이 상수였다. 그리고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기까지 몇 날을 또 기다렸던가. 사진은 나온 대로가 다였다. 보태고 뺄 것이 없으니까. 지금 같으면 온갖 수정으로 아예 딴 얼굴을 만들기도 하지만, 수정 불가의 시절에는 인화된 사진을 보고야 모든 것이 결판났다. 나왔다, 못 나왔다 볼멘소리가 나오고, 더불어 사진 몇 장으로 카메라 맨의 실력을 평가했다. “이게 뭐야. 나 눈 감고 있잖아?” “내 사진 뽑지마. 안 찾을 거야.” 제 얼굴 잘못 나왔다고 토라지는 여학생들에게 핀잔만 듣고 ‘미안해’ 하던 얼굴이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친구였다. 카메라 들고 나온 죄로 구박을 받고도 싱글싱글 웃는 데는 여전히 사진 잘 찍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의 형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약속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거나 야외로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한 날이면 으레 한 친구는 20~30분 늦게 나타났다. 모임마다 그런 짓하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지만, 그중에도 기다림의 끝판왕은 오늘 혼주였다. 그래도 그때는 인성들이 너그러워 한참을 기다려 주고도 크게 타박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핸드폰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요즘 세상에는 어디 용납이나 될 일인가.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기다리는 데 쓰는 시간이 줄면서 분단위 시간관리가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반대로 잃는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설렘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노래를 LP로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역광으로 찍었는데 잘 나왔을까” “그 여학생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지금처럼 영악하지 못했던 그때는 모든 것을 선의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실시간으로 추적을 당할 리도 없었으니 둘러대는 요령이 생기고 대충 넘어갈 틈도 주었다. 주변의 간섭이나 통제에서 수월하게 벗어나 나만이 즐기는 공상과 상상의 여백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의 모습이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나는 세상이라서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아졌다. 세상이 편해졌다고 날개를 달아준 것도 아닌데…. 어떡하든 디지털 삶에 뒤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쥐어짜느라 삶은 더 고달파졌다. 모처럼 해묵은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가 날이 어둑해져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손에 쥔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삶의 시간을 촘촘히 쓰고 있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연신 화면을 굴려 패션을 찾고, 먹방을 살피고, 게임에 몰입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내게서 사라져 간 그리움들이 생각났다. 마치 일상의 여백 같던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아득하고 아련하게 멀리서 요령처럼 흔들렸다. 가수 진성이 노래한 ‘안동역 앞에서’가 그런 것일까? “첫눈이 내리던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못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오지 않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퍼즐의 한 조각씩을 들고 서로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끝내 못 만나고 마는 걸까? 노년의 삶이란 ‘그리움’이고 ‘추억의 퍼즐’이다. 각자가 쥔 퍼즐을 들고 친구들과 한 자리에 모여 빠진 조각들을 채울 때, 잊혔던 그 시절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날 때, 그 환한 기쁨은 반갑고도 놀라움이었다. 그날 오래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느꼈던 그 감정처럼. 때때로 그 시절을 꺼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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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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