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1(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실시간뉴스
  • 웃고 웃는 결혼의 추억
    누나가 결혼을 앞두고 사진관에서 결혼사진 찍을 일로 수심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조명이 좋지만 그때는 사진관에서 마그네슘을 터드렸어요. 퍼억, 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일 때 셔터를 누르는데, 긴장한 나머지 퍽- 순간 눈을 감아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누나의 사진은 모두 눈 감은 것뿐입니다. 제대로 찍힌 것이 하나도 없으니 걱정이 클 수밖에요. 눈감은 결혼사진, 생각해도 악몽이라며 거울 앞에서 연습을 합니다. 하나, 둘, 셋, 퍼억! 순간 눈을 부릅뜨고 힘을 주는 거죠. 결혼을 앞두고 누나와 매형을 따라 사진관에 갔습니다. 긴장하는 누나에게 사진사가 자세를 잡아주고 약간의 미소도 주문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요.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퍽 소리가 나고 흰 연기가 펴오릅니다. 혹시나 해서 몇 판을 더 찍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 눈 감은 사진뿐. 그때부터 매형은 눈감은 사진을 들고서 누나를 웃기기도 하고 면박을 주기도 했답니다. 평생 사진의 추억을 안고 살았던 누님은 몇 해 전 돌아가셨지요. 매형이 끝까지 병상을 지키며 아내를 즐겁게 하려고 흔들어 보인 것이 눈 감은 결혼사진입니다. 세상이 변하더니 예식문화도 달라졌습니다. 요즘 예식은 비디오 한편을 찍는 세트장처럼 보입니다. 청첩장에 청첩인도 없고 근사한 남녀 모델의 사랑 이야기만 도드라지지요. 부모의 역할도 확 줄어, 신부는 아버지가 아닌 신랑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밟고 나타납니다. 어느 커플은 우주선을 타고 입장하고, 아예 주례를 제치고도 하네요. 집을 떠난다는 슬픔에 눈물짓던 신부와 친정 엄마의 석별의 정은 이제 액자 속 이야기입니다. 영화제 시상식의 남녀배우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연신 웃고 또 웃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 얼굴을 찾아 손을 흔들기도 하죠. 일부 나이 든 참석자는 변한 세상을 이해하면서도, 인륜대사가 좀 경망스럽다며 민망해 합니다. 가끔은 경험하지 못한 진풍경도 보지요. 친구가 늦은 오후에 호텔 결혼식에 갔다가 맞닥뜨린 이야기로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5시에 시작할 예식이 무슨 사정인지 계속 지연되었답니다. 시계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예식이 계속 늦어지자 사회자가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축가부터 진행합니다. 생뚱맞긴 해도 사정이 있겠지 했는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식 후에 나올 와인과 디너코스가 나오네요. 사람들이 웅성이자 주례자가 나와 말하는 이유가 더 가상합니다. 한의사인 신랑이 긴장한 나머지 우황청심환을 두 개나 먹었다가 탈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결혼식 때문에 신랑이 우황청심환을 먹었다고? 금시초문의 일이라 멍했지만 상황이 그렇다니 느긋하게 마음먹고 와인도 한 잔 더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예정 시간을 2시간 넘겨서야 마침내 신랑이 신부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장내가 웃음바다가 될 수밖에요. 신랑신부도 웃고 하객들도 웃고, 격려의 박수까지 터지면서 예식은 초스피드로 진행됐지요. 여러 사람을 진땀나게 만든 결혼식. 그래도 성혼선포는 됐으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결혼 날, 돈 주고도 못살 평생 못 잊을 추억하나를 건진 셈이죠. 시름에 젖다가도 결혼사진만 보면 웃던 누나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7-07
  • 광화문의 꽃 '교보 글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선 남산과 도시 한 중앙을 가로지르는 한강, 빌딩 숲 사이로 청아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청계천의 자연친화적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지요. 이들을 배경으로 광화문 네거리에 서면 더욱 환상적입니다. 파란 하늘을 이고 경복궁 뒤로 뻗어나간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빼어난 경관을 품은 곳이 광화문입니다. 도읍풍수로는 절창을 부를 만한 곳이지요. 광화문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또 하나의 명품이 자리합니다. 교보빌딩 정면에 걸린 ‘글판’ 입니다. 철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이 석 달마다 글판은 새 글로 단장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새 얼굴을 내밀죠. 이제는 제법 세월의 더께까지 더해 서울 도심의 명물이 됐습니다. 내년이면 광화문 글판이 첫 선을 보인지 30년쯤 됩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는 서울을 찾을 때마다 첫 이미지로 교보빌딩을 꼽습니다. 거래처와 일이 크게 꼬여 상심할 때 광화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글판을 보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30년 가깝게 교보빌딩에 걸린 글판은 8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도 다릅니다. 삶의 좌표를 일깨우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젊은 날의 추억, 삶의 위로와 격려도 받습니다. 글판은 길어야 석 줄 정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시나 글 중에서 임팩트한 구절을 주로 따옵니다. 세상이 변할 때는 글판도 따라갑니다. IMF 환란 때, 계절이 바뀔 때, 세월의 굽이마다 움츠러든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세상을 비관했던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기도 하고,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용기를 주는 등 때로는 공감을 안기고, 가슴에 풍경을 달아주기도 합니다. 수년 전 교보생명이 그동안 올린 글판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풀꽃 시인 나태주의 시 ‘풀꽃’이 1위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7년 전 봄에 올려 진 ‘풀꽃’은 시의 전문인 석 줄 그대로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도 그렇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순간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음을 알리고, 결구는 눈이 번적 뜨일 만큼 아름답습니다. 시작활동 50년의 나태주는 감성적 언어로 쇠락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마음마다 꽃다발을 안기는 서천의 향토시인입니다. 광화문에는 하루 백만 명, 수십만 대 차가 오가면서 팬도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외국인도 찾아보는 문화 상징물이 되었지요. 이 영향으로 기관과 기업들도 빌딩에 글들을 내걸고, 각종 화장실, 엘리베이터, 지금은 지하철 안전문에도 시가 보입니다. 광화문 글판의 향기가 퍼진 셈이죠. 오늘도 광화문에 가면 막 피어난 꽃잎에서 나는 향긋한 글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6-30
  • 돈키호테의 하늘의 별 잡기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죠. 그럼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고개부터 갸우뚱해집니다. “세르반테스 알아?” “누군데?” 그러다가도 ‘돈키호테’ 란 말에 금방 ‘아, 그 돌직구!‘ 수긍합니다. 돈키호테하면 곧잘 권력의 중심에서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햄릿(형)과 대칭된 인간유형으로 비교되곤 하지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동서양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돈키호테 이후의 소설은 이 소설을 다시 썼거나 그 일부를 쓴 것.” 이라거나 “미래의 작가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수백 년 전에 다써놓았다.”고 할 만큼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국민문학으로, 성경 다음 많이 읽히는 책으로 소개되지요. 시대를 막론하고 혁명을 꿈꾼 사람들은 돈키호테 취급을 받습니다. 현실감이 없는 허무맹랑한 인물로 비쳤던 돈키호테가 다시 현대사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주영이 그랬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새로운 것에 배고파하고 우직하게 살자(Stay hungry, Stay foolish)”고 연설한 스티브잡스가 그런 사람들이지요. 스페인 라만차 마을에 사는 귀족 출신의 늙고 가난한 지주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를 읽다가 블랙홀로 빠져듭니다.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스스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돼 세상을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죠. 조상대대로 내려온 낡은 갑옷을 꺼내 입고, 늙고 초라한 말에 올라타요. 이 모험 길에 이웃인 산초 판사가 따라나섭니다. 그의 모험은 끊임없는 좌충우돌에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유명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고, 지나는 양떼와 목동에게 역사적 전투라고 선포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놋대야를 황금 투구로 생각하고 이를 쟁취하려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친 사람이지요. 어떤 이는 그의 멍청함에 읽던 책을 덮기도 하고, 누구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담았기에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걸까. 돈키호테는 자신의 생명을 이상과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어요. 이웃과 현재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의 화신이고. 옳다고 믿는 일엔 망설임 없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행동주의자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나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최근에 접한 책 중에 고려대 안영옥 교수가 쓴 ‘돈키호테의 말’ 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돈키호테 완역본을 펴낸 안 교수가 돈키호테가 남긴 지혜의 글귀에다 자신의 생각을 얹어 펴낸 책이지요. 낡은 갑옷에 구부러진 창을 들고 늙은 말 위에 올라탄 주인공 이미지는 자신의 신념과 꿈을 좇아 돌진하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심약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줍니다. 400년 된 돈키호테가 오늘도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층 더 주목 받는 이유는 돈키호테란 인물이 우리시대의 결핍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 선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쁨을 주고, 그의 말 한마디는 지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선물해요. 불온한 세상을 향하는 도전적 발언과 동반자 산초와 나눈 대화는 인생길에 지혜로도 찾아옵니다. 저자는 “돈키호테처럼 인생을 나의 무대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생은 누군가의 소품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언합니다. 인생이란 공연은 한 번 뿐이고, 하늘은 우리에게 두 번의 인생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세상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돈키호테는 오늘도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을 향해 돌진해 옵니다. 아무리 어려운 모험일지라도 이 일에 도전하겠다는 욕망으로 내 심장은 터질 것 같다고 외치면서.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말고 나다운 삶을 찾아 당당하게 밀고 나가라고 우리 모두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6-23
  • 일본은 아픈 나라입니다
    슬퍼도 울지 않는 사람을 독하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눈가만 촉촉할 뿐 소리 내어 울지 않는 딸을 보고 ‘독한 년’ 이라고 숙덕이는 동네 어른들을 본적 있으나, 이는 한국 정서상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요. 우리는 영화보다 울고, 드라마 보다, 심지어 남의 사연을 듣다가도 화장지를 찾습니다. 슬퍼서 울지만 억울해서도 우는 게 우리니까요. 우리의 눈으로 일본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점입니다. 여름철마다 태풍이 왔다하면 열의 일곱 여덟은 죄다 일본열도로 상륙하는 걸 보면서 잘 태어나는 것도 복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의아스러운 것은, 그 많은 자연재해를 겪으면서도 일본사람들은 왜 대성통곡이 없을까. 홋카이도 지진, 오사카 태풍 등으로 자연재해가 연이은 2018년. 뉴스를 보다가 그런 의문이 듭니다. 산사태로 남동생을 잃은 누나가 시신을 찾고서 보인 반응은 ‘동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어떻게 울지도 않고 저리도 차분하지? 그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할 텐데, 저렇게까지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서울에서 사는 일본여성에게 물어봤어요. “가족이 죽었는데 왜 울지를 않죠?.” 돌아온 답은 슬프지만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거예요. “슬프면 우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하자 “울음을 터트리면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타인과 충돌할 수도 있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극구 피하려는 것이 일본사람의 의식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감정을 나누고 의지하는 우리와 다른 점이지요. 그녀도 느끼는 게 있는지 고베지진 때 일본에서 “눈물을 흘리는 만큼 강해질 수 있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전합니다. 감정을 삭이지 말고 드러내고 살자는 노래라고. 이런 노래까지 나온 걸 보면, 그들의 국민성을 알만도 해요. 우리에겐 안 우는 일본인이 신기한데, 그녀의 눈엔 잘 우는 한국인을 낯설어 하니까. 부모를 잃은 자녀들이 슬프게 우는 건 이해하지만, 주변사람들까지 따라 우는 것은 좀 어렵다고 하네요. 한국에는 일본에서 보기 힘든 눈물이 더 있다고 합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나오는 눈물이라는 군요. 분한 감정이야 다 같겠지만, 일본인은 ‘분함’의 이유를 내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되고 속상한 것인데, 한국 사람의 분함은 나보다 ‘너 때문에.’ 이유를 외부로 돌리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들은 자연재해를 당해도 운명으로 돌리고 곧 잘 체념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잦다보니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일까. 그렇게 감정 표현을 아끼면서 연애는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자 까르르 웃고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서울에 와서 처음 놀란 일이 있어요. 공원에 앉아 있는데 연인끼리 심하게 싸우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이제 헤어지겠다했는데, 좀 있으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손잡고 나오는 거예요.” 다시 웃음꽃이 핍니다. 이제 그녀가 내게 물을 차례예요. “일본서 한류의 주요 인기요인이 뭔 줄 아세요?” 내가 머뭇대다가 꽃미남? 하자 고개를 흔들고는 “남자의 눈물.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우는 장면을 보면 넘 신기한 거예요. 남자가 사랑 때문에 우는구나. 그 자체가 감동인데, 꽃미남이 울잖아요?” 아,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꽃미남의 감성이 일본 아줌마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음을.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고전입니다. 국화의 상징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면, 칼은 그 이면에 숨긴 잔인한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요. 오랜 바쿠후의 지배 때문이겠으나 사무라이 문화나 할복의 전통이 칼을 일본의 이미지로 굳혀놓은 듯합니다. 무거운 죽음의 이미지가 심미적 태도와 만나 기이하게 죽음의 미학으로 표현되고, 그래서인지 일본문학에서의 죽음은 슬픔을 크게 내포하지 않아요. 그저 삶의 한 유형으로 담백하게 마주하고 때론 아름답게 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사쿠라(벚꽃)를 자주 등장시키는 데서도 확인됩니다. 사꾸라는 우리 옛말 ‘사그라지다’에서 나왔다고 해요. 화사하게 피었다 어느 한 순간 쏟듯이 져버리는 담백함에서 일본인의 기질을 봅니다. 남동생의 시신 앞에서 차분하게 ‘마지막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 누나의 말에서처럼.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6-16
  • 하루하루가 기적인 삶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아는 것과 죽음을 경험하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과는 달리 죽음을 먼 날의 일로 잊고 살지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전혀 다른 고백이 뒤따릅니다. 지난 번 지인들 모임에서 나온 얘기예요. “사는 게 시들하다” “흥미가 없다” 같은 비슷한 말이 오갈 때, 뇌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친구가 호통을 칩니다. “이보게. 난 하루하루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사네. 내가 사는 1분1초가 기적인 걸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말게.” 맞아, 앎이란 경험 앞에 허접스러운 것이지요. 단 하루, 한 달, 1년만 더 살았으면... 가슴에 절절함을 지닌 사람들 얘기는 아가미가 펄떡이는 생선의 가시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내 주변에 아내를 앞세워 보낸 친구가 벌써 서넛입니다. 어제 만난 친구도 3년 전 아내를 앞세웠지요. 그래도 잊을 건 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지만, 혼자 넘는 마음의 산은 태산보다 높아 보입니다. 여름에 큰 딸이 마카오로 떠난답니다. 세계적 브랜드호텔의 이사로 스카웃 제의가 올 때만 해도, ‘내 걱정 말고 네 인생을 살라’고 등을 밀었는데, 막상 날이 잡히니까 마음에 한줌 바람이 일더랍니다. 60대의 아내를 병마로 보낼 때 그걸 인생이라 살았느냐고, 아쉬운 대로 일흔만 채웠어도 이렇게 미안하지는 않을 거라는 친구였어요. “그래도 자넨 행복한 줄 알게. 같이 사는 둘째 딸이 있잖아. 혼자 사는 사람들 생각해봐. 그리고 큰딸 속 깊은 것 좀 봐라. 언제든 아버지가 마카오 오시면 룸을 내주기로 계약에 명시까지 했다며? 효녀다. 하늘의 아내가 뿌듯해 하겠다.” 그제서 친구 얼굴에 밝은 미소가 지핍니다. 그건 그렇다면서... 나이 들면 결국 남는 건 가족뿐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분도 자녀가 해외에 사는 게 자랑이 아니라며 헛헛해 합니다. 대기업의 미국 주재원으로 10년 이상 지낸 아들이 귀국 발령을 받고는, 자녀 교육문제로 고민하다가 결심을 했답니다. 사표를 내려고 잠시 귀국했을 때만 해도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해했는데, 최근 동(洞)에서 서류를 떼다 아들 난에 해외이주로 표기된 걸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일렁이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내와 사별한지 5년이 됐습니다. 역시 60대에 남편 곁을 떠났지요. 5년간의 병수발 끝이라 좀은 홀가분할 법도 한데 “1년만 더 살았으면”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비원으로 남습니다. “떠난지 3년까진 정말 힘들더라. 5년 되니까 좀 낫긴 한데.” 그래도 웃는 얼굴에 그리움이 일렁입니다. 아들과 아파트 앞뒤 동에 사는 친구는 용문 5일장에 갔던 얘기를 해서 함께 웃음을 터뜨렸지요. 옛날 고향 장터를 생각하면서 재미삼아 이것저것 흥정도 하고 물건도 사봅니다. 그러다 시장기를 느끼고 장터에 생긴 식당에 들어가 앉습니다. 국밥에다 기분으로 평소 입에도 안 대던 막걸리도 한 병을 주문했답니다. 결국 술은 한잔도 못 마시고 옆 테이블에 넘겼다가 합석까지 하게 됐다는 군요. 연배가 비슷한 구로에서 왔다는 옆자리의 분과는 통성명을 했습니다. 평소 남에게 각박한 소리를 못하는 친구를 알아봤는지 물 만난 고기처럼 연신 말보를 풀어 놓습니다, 아들이 한 주에 3만원을 주면, 이렇게 시장 찾아다니며 술도 한 잔하고 말벗도 만드는 게 낙이라면서 주절주절... 매정하게 끊지 못한 친구는 한 시간 얘기를 듣고도 전철까지 같이 탔답니다. 내릴 때까지 며느리 흉보고, 아들 자랑하고, 한 얘기 또 하는 그를 상대하느라 말은 않지만, 고역이었을 겁입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그러겠나. 자넨 행복한 걸세. 그런 아들 며느리가 어딨나? 홀아버지 돌보려고 앞 동으로 이사까지 오는, 그런 자식 요즘 없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친구는 며느리를 칭찬합니다. 그날 친구는 좋은 일을 했습니다. 끝까지 싫은 표정 안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마음 수양을 넘어 덕을 쌓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태산보다 높은 마음의 산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높아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대화를 통해 한 가지는 확인했지요. ‘그래도 우린 행복한 사람’ 이란 것을. 오늘이 있어 그렇고, 같이 할 친구가 있어 그렇고, 오늘 우린 기적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요. 기적은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이다.?이 말을 아는 사람은 행복을 아는 사람일 테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2025-06-09
  • 삶이란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게임...
    “루게릭 병입니다.” 50대 초반의 그녀에게 떨어진 진단예요. 이 가혹한 한 마디에 그녀의 일상이 혼돈 속에 회오리칩니다. 그날 이후, 일과마다에 이명처럼 따라붙는 혼란스러운 생각들. 내가 행복전도사라? 사람들 앞에 강연할 때도 “나 지금 뭘 하는 거지?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면서.” 순간, 어쩌다 이런 병이 왔을까 눈물부터 그렁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속속들이 알게 된 병.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게릭이 30대 젊은 나이에 이 질환으로 죽자 붙여진 병명임도 알았습니다.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으로, 서서히 팔다리의 근육이 위축되다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 이른다는 병... 내 속은 썩어드는데 남의 속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러워요? 추가 강연요청은 받지 않고 남은 스케줄을 가까스로 마칠 때, 몸은 탈진된 상태였습니다. 6개월밖에 안 됐는데 팔다리의 힘이 전 같지 않고 수저질, 단추 잠금이 편치 않아요. 점차 무거운 물건을 못 들고, 팔도 크게 올리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켜켜이 쌓입니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병.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 질병을 55년간 앓으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의사가 희망을 북돋울 때, 그녀는 내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립니다. 그나마 치료술 향상으로 10년 이상 생존한다지만 마지막 투병단계의 모습엔 눈이 감깁니다. 그녀가 심리상담 치료를 받겠다고 김 박사를 찾았을 때는 거동이 불편해질 즈음입니다. 그로부터 지인인 김 박사를 통해 그녀의 투병과정에 관심을 갖으면서 모든 질병과의 싸움은 결국엔 마음과의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 안정에 애쓰는 변화를 보였어요. 침대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너 왜 이래? 왜 오지도 않은 날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려는데, 걸음이 제대로 안 떼지는 거 있죠. 이러다 옷에 실수하겠다는 생각에 억척스레 한 발짝을 떼다보니 화장실 앞입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박사님이 버티라고 얘기한 그 ‘한 발짝’이 이거다 싶었어요.” 하루는 그녀가 호소합니다. “박사님,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게 운명이면 너무 가혹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까지 들추면서 얘기합니다. “맞아요. 운명은 할키고 인생은 버틴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면 아픔이 기를 숙일 때가옵니다. 고통 사이에 조금 덜 아픈 틈이 있거든요.” 입술을 깨물고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언제부터 희망이 되었어요. 덜 아플 때. 움직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수다도 떨었다고 해요. “때론 병증이 악화돼 한 발짝 떼기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약을 먹으면 2시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하루 3번 그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것이 희망인가 봐요.” 조금씩 여유를 찾아갑니다. 인생길 굽이치다 이제 살만하니 루게릭이 친구하자고 왔대요. 그래, 모진 인생을 살려면 이런 친구도 끌어안아야지 생각하고 웃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배웠다고 해요. 인생은 버티고 견디는 것임을. 상담자도, 상담역도 버티는 인생은 같아요. 한 쪽은 병을 버티고, 한 쪽은 잘 버티도록 잡아주니까. 버틴다는 건 말없이 순종하는 수동의 상태가 아니죠. 내면에서 솟는 울분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말예요. “내가 만일 버티지 않고 포기한다면 쉽겠지만 엄청 후회를 하겠죠.” 그녀의 마음은 그만큼 여물어졌습니다. 그녀는 병이 진행되면서 내 몸이 달팽이가 돼간다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에 눈을 뜹니다. 뜰에 새싹이 나고, 꽃대가 솟고.... 자연의 변화가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지면서 “살 거면 어떻게든 살자. 누워만 있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조물주가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든 건 삶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겠지. 인간은 포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란 뜻이겠지.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래서 ‘고통은 축복’ 이란 것이겠지. 고통을 겪으면서 진짜 감사를 배우고 ‘내 질병이 스승’ 임을 알았다는 그녀. 그녀는 지금 제주에서 15년차 투병생활을 씩씩하게 버텨냅니다. (이관순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2025-06-02
  • 삶이란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게임...
    루게릭 병입니다.” 50대 초반의 그녀에게 떨어진 진단예요. 이 가혹한 한 마디에 그녀의 일상이 혼돈 속에 회오리칩니다. 그날 이후, 일과마다에 이명처럼 따라붙는 혼란스러운 생각들. 내가 행복전도사라? 사람들 앞에 강연할 때도 “나 지금 뭘 하는 거지?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면서.” 순간, 어쩌다 이런 병이 왔을까 눈물부터 그렁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속속들이 알게 된 병.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게릭이 30대 젊은 나이에 이 질환으로 죽자 붙여진 병명임도 알았습니다.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으로, 서서히 팔다리의 근육이 위축되다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 이른다는 병... 내 속은 썩어드는데 남의 속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러워요? 추가 강연요청은 받지 않고 남은 스케줄을 가까스로 마칠 때, 몸은 탈진된 상태였습니다. 6개월밖에 안 됐는데 팔다리의 힘이 전 같지 않고 수저질, 단추 잠금이 편치 않아요. 점차 무거운 물건을 못 들고, 팔도 크게 올리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켜켜이 쌓입니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병.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 질병을 55년간 앓으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의사가 희망을 북돋울 때, 그녀는 내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립니다. 그나마 치료술 향상으로 10년 이상 생존한다지만 마지막 투병단계의 모습엔 눈이 감깁니다. 그녀가 심리상담 치료를 받겠다고 김 박사를 찾았을 때는 거동이 불편해질 즈음입니다. 그로부터 지인인 김 박사를 통해 그녀의 투병과정에 관심을 갖으면서 모든 질병과의 싸움은 결국엔 마음과의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 안정에 애쓰는 변화를 보였어요. 침대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너 왜 이래? 왜 오지도 않은 날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려는데, 걸음이 제대로 안 떼지는 거 있죠. 이러다 옷에 실수하겠다는 생각에 억척스레 한 발짝을 떼다보니 화장실 앞입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박사님이 버티라고 얘기한 그 ‘한 발짝’이 이거다 싶었어요.” 하루는 그녀가 호소합니다. “박사님,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게 운명이면 너무 가혹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까지 들추면서 얘기합니다. “맞아요. 운명은 할키고 인생은 버틴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면 아픔이 기를 숙일 때가옵니다. 고통 사이에 조금 덜 아픈 틈이 있거든요.” 입술을 깨물고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언제부터 희망이 되었어요. 덜 아플 때. 움직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수다도 떨었다고 해요. “때론 병증이 악화돼 한 발짝 떼기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약을 먹으면 2시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하루 3번 그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것이 희망인가 봐요.” 조금씩 여유를 찾아갑니다. 인생길 굽이치다 이제 살만하니 루게릭이 친구하자고 왔대요. 그래, 모진 인생을 살려면 이런 친구도 끌어안아야지 생각하고 웃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배웠다고 해요. 인생은 버티고 견디는 것임을. 상담자도, 상담역도 버티는 인생은 같아요. 한 쪽은 병을 버티고, 한 쪽은 잘 버티도록 잡아주니까. 버틴다는 건 말없이 순종하는 수동의 상태가 아니죠. 내면에서 솟는 울분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말예요. “내가 만일 버티지 않고 포기한다면 쉽겠지만 엄청 후회를 하겠죠.” 그녀의 마음은 그만큼 여물어졌습니다. 그녀는 병이 진행되면서 내 몸이 달팽이가 돼간다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에 눈을 뜹니다. 뜰에 새싹이 나고, 꽃대가 솟고.... 자연의 변화가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지면서 “살 거면 어떻게든 살자. 누워만 있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조물주가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든 건 삶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겠지. 인간은 포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란 뜻이겠지.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래서 ‘고통은 축복’ 이란 것이겠지. 고통을 겪으면서 진짜 감사를 배우고 ‘내 질병이 스승’ 임을 알았다는 그녀. 그녀는 지금 제주에서 15년차 투병생활을 씩씩하게 버텨냅니다. (이관순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2025-05-26

실시간 기고 기사

  • 웃고 웃는 결혼의 추억
    누나가 결혼을 앞두고 사진관에서 결혼사진 찍을 일로 수심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조명이 좋지만 그때는 사진관에서 마그네슘을 터드렸어요. 퍼억, 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일 때 셔터를 누르는데, 긴장한 나머지 퍽- 순간 눈을 감아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누나의 사진은 모두 눈 감은 것뿐입니다. 제대로 찍힌 것이 하나도 없으니 걱정이 클 수밖에요. 눈감은 결혼사진, 생각해도 악몽이라며 거울 앞에서 연습을 합니다. 하나, 둘, 셋, 퍼억! 순간 눈을 부릅뜨고 힘을 주는 거죠. 결혼을 앞두고 누나와 매형을 따라 사진관에 갔습니다. 긴장하는 누나에게 사진사가 자세를 잡아주고 약간의 미소도 주문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요.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퍽 소리가 나고 흰 연기가 펴오릅니다. 혹시나 해서 몇 판을 더 찍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 눈 감은 사진뿐. 그때부터 매형은 눈감은 사진을 들고서 누나를 웃기기도 하고 면박을 주기도 했답니다. 평생 사진의 추억을 안고 살았던 누님은 몇 해 전 돌아가셨지요. 매형이 끝까지 병상을 지키며 아내를 즐겁게 하려고 흔들어 보인 것이 눈 감은 결혼사진입니다. 세상이 변하더니 예식문화도 달라졌습니다. 요즘 예식은 비디오 한편을 찍는 세트장처럼 보입니다. 청첩장에 청첩인도 없고 근사한 남녀 모델의 사랑 이야기만 도드라지지요. 부모의 역할도 확 줄어, 신부는 아버지가 아닌 신랑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밟고 나타납니다. 어느 커플은 우주선을 타고 입장하고, 아예 주례를 제치고도 하네요. 집을 떠난다는 슬픔에 눈물짓던 신부와 친정 엄마의 석별의 정은 이제 액자 속 이야기입니다. 영화제 시상식의 남녀배우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연신 웃고 또 웃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 얼굴을 찾아 손을 흔들기도 하죠. 일부 나이 든 참석자는 변한 세상을 이해하면서도, 인륜대사가 좀 경망스럽다며 민망해 합니다. 가끔은 경험하지 못한 진풍경도 보지요. 친구가 늦은 오후에 호텔 결혼식에 갔다가 맞닥뜨린 이야기로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5시에 시작할 예식이 무슨 사정인지 계속 지연되었답니다. 시계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예식이 계속 늦어지자 사회자가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축가부터 진행합니다. 생뚱맞긴 해도 사정이 있겠지 했는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식 후에 나올 와인과 디너코스가 나오네요. 사람들이 웅성이자 주례자가 나와 말하는 이유가 더 가상합니다. 한의사인 신랑이 긴장한 나머지 우황청심환을 두 개나 먹었다가 탈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결혼식 때문에 신랑이 우황청심환을 먹었다고? 금시초문의 일이라 멍했지만 상황이 그렇다니 느긋하게 마음먹고 와인도 한 잔 더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예정 시간을 2시간 넘겨서야 마침내 신랑이 신부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장내가 웃음바다가 될 수밖에요. 신랑신부도 웃고 하객들도 웃고, 격려의 박수까지 터지면서 예식은 초스피드로 진행됐지요. 여러 사람을 진땀나게 만든 결혼식. 그래도 성혼선포는 됐으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결혼 날, 돈 주고도 못살 평생 못 잊을 추억하나를 건진 셈이죠. 시름에 젖다가도 결혼사진만 보면 웃던 누나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7-07
  • 광화문의 꽃 '교보 글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선 남산과 도시 한 중앙을 가로지르는 한강, 빌딩 숲 사이로 청아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청계천의 자연친화적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지요. 이들을 배경으로 광화문 네거리에 서면 더욱 환상적입니다. 파란 하늘을 이고 경복궁 뒤로 뻗어나간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빼어난 경관을 품은 곳이 광화문입니다. 도읍풍수로는 절창을 부를 만한 곳이지요. 광화문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또 하나의 명품이 자리합니다. 교보빌딩 정면에 걸린 ‘글판’ 입니다. 철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이 석 달마다 글판은 새 글로 단장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새 얼굴을 내밀죠. 이제는 제법 세월의 더께까지 더해 서울 도심의 명물이 됐습니다. 내년이면 광화문 글판이 첫 선을 보인지 30년쯤 됩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는 서울을 찾을 때마다 첫 이미지로 교보빌딩을 꼽습니다. 거래처와 일이 크게 꼬여 상심할 때 광화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글판을 보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30년 가깝게 교보빌딩에 걸린 글판은 8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도 다릅니다. 삶의 좌표를 일깨우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젊은 날의 추억, 삶의 위로와 격려도 받습니다. 글판은 길어야 석 줄 정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시나 글 중에서 임팩트한 구절을 주로 따옵니다. 세상이 변할 때는 글판도 따라갑니다. IMF 환란 때, 계절이 바뀔 때, 세월의 굽이마다 움츠러든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세상을 비관했던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기도 하고,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용기를 주는 등 때로는 공감을 안기고, 가슴에 풍경을 달아주기도 합니다. 수년 전 교보생명이 그동안 올린 글판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풀꽃 시인 나태주의 시 ‘풀꽃’이 1위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7년 전 봄에 올려 진 ‘풀꽃’은 시의 전문인 석 줄 그대로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도 그렇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순간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음을 알리고, 결구는 눈이 번적 뜨일 만큼 아름답습니다. 시작활동 50년의 나태주는 감성적 언어로 쇠락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마음마다 꽃다발을 안기는 서천의 향토시인입니다. 광화문에는 하루 백만 명, 수십만 대 차가 오가면서 팬도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외국인도 찾아보는 문화 상징물이 되었지요. 이 영향으로 기관과 기업들도 빌딩에 글들을 내걸고, 각종 화장실, 엘리베이터, 지금은 지하철 안전문에도 시가 보입니다. 광화문 글판의 향기가 퍼진 셈이죠. 오늘도 광화문에 가면 막 피어난 꽃잎에서 나는 향긋한 글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6-30
  • 돈키호테의 하늘의 별 잡기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죠. 그럼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고개부터 갸우뚱해집니다. “세르반테스 알아?” “누군데?” 그러다가도 ‘돈키호테’ 란 말에 금방 ‘아, 그 돌직구!‘ 수긍합니다. 돈키호테하면 곧잘 권력의 중심에서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햄릿(형)과 대칭된 인간유형으로 비교되곤 하지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동서양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돈키호테 이후의 소설은 이 소설을 다시 썼거나 그 일부를 쓴 것.” 이라거나 “미래의 작가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수백 년 전에 다써놓았다.”고 할 만큼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국민문학으로, 성경 다음 많이 읽히는 책으로 소개되지요. 시대를 막론하고 혁명을 꿈꾼 사람들은 돈키호테 취급을 받습니다. 현실감이 없는 허무맹랑한 인물로 비쳤던 돈키호테가 다시 현대사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주영이 그랬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새로운 것에 배고파하고 우직하게 살자(Stay hungry, Stay foolish)”고 연설한 스티브잡스가 그런 사람들이지요. 스페인 라만차 마을에 사는 귀족 출신의 늙고 가난한 지주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를 읽다가 블랙홀로 빠져듭니다.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스스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돼 세상을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서죠. 조상대대로 내려온 낡은 갑옷을 꺼내 입고, 늙고 초라한 말에 올라타요. 이 모험 길에 이웃인 산초 판사가 따라나섭니다. 그의 모험은 끊임없는 좌충우돌에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유명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고, 지나는 양떼와 목동에게 역사적 전투라고 선포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놋대야를 황금 투구로 생각하고 이를 쟁취하려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친 사람이지요. 어떤 이는 그의 멍청함에 읽던 책을 덮기도 하고, 누구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담았기에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걸까. 돈키호테는 자신의 생명을 이상과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어요. 이웃과 현재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의 화신이고. 옳다고 믿는 일엔 망설임 없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행동주의자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나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최근에 접한 책 중에 고려대 안영옥 교수가 쓴 ‘돈키호테의 말’ 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돈키호테 완역본을 펴낸 안 교수가 돈키호테가 남긴 지혜의 글귀에다 자신의 생각을 얹어 펴낸 책이지요. 낡은 갑옷에 구부러진 창을 들고 늙은 말 위에 올라탄 주인공 이미지는 자신의 신념과 꿈을 좇아 돌진하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심약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줍니다. 400년 된 돈키호테가 오늘도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층 더 주목 받는 이유는 돈키호테란 인물이 우리시대의 결핍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 선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쁨을 주고, 그의 말 한마디는 지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선물해요. 불온한 세상을 향하는 도전적 발언과 동반자 산초와 나눈 대화는 인생길에 지혜로도 찾아옵니다. 저자는 “돈키호테처럼 인생을 나의 무대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생은 누군가의 소품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언합니다. 인생이란 공연은 한 번 뿐이고, 하늘은 우리에게 두 번의 인생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세상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돈키호테는 오늘도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을 향해 돌진해 옵니다. 아무리 어려운 모험일지라도 이 일에 도전하겠다는 욕망으로 내 심장은 터질 것 같다고 외치면서.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말고 나다운 삶을 찾아 당당하게 밀고 나가라고 우리 모두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6-23
  • 일본은 아픈 나라입니다
    슬퍼도 울지 않는 사람을 독하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눈가만 촉촉할 뿐 소리 내어 울지 않는 딸을 보고 ‘독한 년’ 이라고 숙덕이는 동네 어른들을 본적 있으나, 이는 한국 정서상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요. 우리는 영화보다 울고, 드라마 보다, 심지어 남의 사연을 듣다가도 화장지를 찾습니다. 슬퍼서 울지만 억울해서도 우는 게 우리니까요. 우리의 눈으로 일본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점입니다. 여름철마다 태풍이 왔다하면 열의 일곱 여덟은 죄다 일본열도로 상륙하는 걸 보면서 잘 태어나는 것도 복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의아스러운 것은, 그 많은 자연재해를 겪으면서도 일본사람들은 왜 대성통곡이 없을까. 홋카이도 지진, 오사카 태풍 등으로 자연재해가 연이은 2018년. 뉴스를 보다가 그런 의문이 듭니다. 산사태로 남동생을 잃은 누나가 시신을 찾고서 보인 반응은 ‘동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어떻게 울지도 않고 저리도 차분하지? 그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할 텐데, 저렇게까지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서울에서 사는 일본여성에게 물어봤어요. “가족이 죽었는데 왜 울지를 않죠?.” 돌아온 답은 슬프지만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거예요. “슬프면 우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하자 “울음을 터트리면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타인과 충돌할 수도 있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극구 피하려는 것이 일본사람의 의식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감정을 나누고 의지하는 우리와 다른 점이지요. 그녀도 느끼는 게 있는지 고베지진 때 일본에서 “눈물을 흘리는 만큼 강해질 수 있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전합니다. 감정을 삭이지 말고 드러내고 살자는 노래라고. 이런 노래까지 나온 걸 보면, 그들의 국민성을 알만도 해요. 우리에겐 안 우는 일본인이 신기한데, 그녀의 눈엔 잘 우는 한국인을 낯설어 하니까. 부모를 잃은 자녀들이 슬프게 우는 건 이해하지만, 주변사람들까지 따라 우는 것은 좀 어렵다고 하네요. 한국에는 일본에서 보기 힘든 눈물이 더 있다고 합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나오는 눈물이라는 군요. 분한 감정이야 다 같겠지만, 일본인은 ‘분함’의 이유를 내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되고 속상한 것인데, 한국 사람의 분함은 나보다 ‘너 때문에.’ 이유를 외부로 돌리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들은 자연재해를 당해도 운명으로 돌리고 곧 잘 체념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잦다보니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일까. 그렇게 감정 표현을 아끼면서 연애는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자 까르르 웃고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서울에 와서 처음 놀란 일이 있어요. 공원에 앉아 있는데 연인끼리 심하게 싸우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이제 헤어지겠다했는데, 좀 있으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손잡고 나오는 거예요.” 다시 웃음꽃이 핍니다. 이제 그녀가 내게 물을 차례예요. “일본서 한류의 주요 인기요인이 뭔 줄 아세요?” 내가 머뭇대다가 꽃미남? 하자 고개를 흔들고는 “남자의 눈물.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우는 장면을 보면 넘 신기한 거예요. 남자가 사랑 때문에 우는구나. 그 자체가 감동인데, 꽃미남이 울잖아요?” 아,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꽃미남의 감성이 일본 아줌마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음을.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고전입니다. 국화의 상징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면, 칼은 그 이면에 숨긴 잔인한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요. 오랜 바쿠후의 지배 때문이겠으나 사무라이 문화나 할복의 전통이 칼을 일본의 이미지로 굳혀놓은 듯합니다. 무거운 죽음의 이미지가 심미적 태도와 만나 기이하게 죽음의 미학으로 표현되고, 그래서인지 일본문학에서의 죽음은 슬픔을 크게 내포하지 않아요. 그저 삶의 한 유형으로 담백하게 마주하고 때론 아름답게 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사쿠라(벚꽃)를 자주 등장시키는 데서도 확인됩니다. 사꾸라는 우리 옛말 ‘사그라지다’에서 나왔다고 해요. 화사하게 피었다 어느 한 순간 쏟듯이 져버리는 담백함에서 일본인의 기질을 봅니다. 남동생의 시신 앞에서 차분하게 ‘마지막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 누나의 말에서처럼.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6-16
  • 하루하루가 기적인 삶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아는 것과 죽음을 경험하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과는 달리 죽음을 먼 날의 일로 잊고 살지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전혀 다른 고백이 뒤따릅니다. 지난 번 지인들 모임에서 나온 얘기예요. “사는 게 시들하다” “흥미가 없다” 같은 비슷한 말이 오갈 때, 뇌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친구가 호통을 칩니다. “이보게. 난 하루하루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사네. 내가 사는 1분1초가 기적인 걸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말게.” 맞아, 앎이란 경험 앞에 허접스러운 것이지요. 단 하루, 한 달, 1년만 더 살았으면... 가슴에 절절함을 지닌 사람들 얘기는 아가미가 펄떡이는 생선의 가시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내 주변에 아내를 앞세워 보낸 친구가 벌써 서넛입니다. 어제 만난 친구도 3년 전 아내를 앞세웠지요. 그래도 잊을 건 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지만, 혼자 넘는 마음의 산은 태산보다 높아 보입니다. 여름에 큰 딸이 마카오로 떠난답니다. 세계적 브랜드호텔의 이사로 스카웃 제의가 올 때만 해도, ‘내 걱정 말고 네 인생을 살라’고 등을 밀었는데, 막상 날이 잡히니까 마음에 한줌 바람이 일더랍니다. 60대의 아내를 병마로 보낼 때 그걸 인생이라 살았느냐고, 아쉬운 대로 일흔만 채웠어도 이렇게 미안하지는 않을 거라는 친구였어요. “그래도 자넨 행복한 줄 알게. 같이 사는 둘째 딸이 있잖아. 혼자 사는 사람들 생각해봐. 그리고 큰딸 속 깊은 것 좀 봐라. 언제든 아버지가 마카오 오시면 룸을 내주기로 계약에 명시까지 했다며? 효녀다. 하늘의 아내가 뿌듯해 하겠다.” 그제서 친구 얼굴에 밝은 미소가 지핍니다. 그건 그렇다면서... 나이 들면 결국 남는 건 가족뿐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분도 자녀가 해외에 사는 게 자랑이 아니라며 헛헛해 합니다. 대기업의 미국 주재원으로 10년 이상 지낸 아들이 귀국 발령을 받고는, 자녀 교육문제로 고민하다가 결심을 했답니다. 사표를 내려고 잠시 귀국했을 때만 해도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해했는데, 최근 동(洞)에서 서류를 떼다 아들 난에 해외이주로 표기된 걸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일렁이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내와 사별한지 5년이 됐습니다. 역시 60대에 남편 곁을 떠났지요. 5년간의 병수발 끝이라 좀은 홀가분할 법도 한데 “1년만 더 살았으면”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비원으로 남습니다. “떠난지 3년까진 정말 힘들더라. 5년 되니까 좀 낫긴 한데.” 그래도 웃는 얼굴에 그리움이 일렁입니다. 아들과 아파트 앞뒤 동에 사는 친구는 용문 5일장에 갔던 얘기를 해서 함께 웃음을 터뜨렸지요. 옛날 고향 장터를 생각하면서 재미삼아 이것저것 흥정도 하고 물건도 사봅니다. 그러다 시장기를 느끼고 장터에 생긴 식당에 들어가 앉습니다. 국밥에다 기분으로 평소 입에도 안 대던 막걸리도 한 병을 주문했답니다. 결국 술은 한잔도 못 마시고 옆 테이블에 넘겼다가 합석까지 하게 됐다는 군요. 연배가 비슷한 구로에서 왔다는 옆자리의 분과는 통성명을 했습니다. 평소 남에게 각박한 소리를 못하는 친구를 알아봤는지 물 만난 고기처럼 연신 말보를 풀어 놓습니다, 아들이 한 주에 3만원을 주면, 이렇게 시장 찾아다니며 술도 한 잔하고 말벗도 만드는 게 낙이라면서 주절주절... 매정하게 끊지 못한 친구는 한 시간 얘기를 듣고도 전철까지 같이 탔답니다. 내릴 때까지 며느리 흉보고, 아들 자랑하고, 한 얘기 또 하는 그를 상대하느라 말은 않지만, 고역이었을 겁입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그러겠나. 자넨 행복한 걸세. 그런 아들 며느리가 어딨나? 홀아버지 돌보려고 앞 동으로 이사까지 오는, 그런 자식 요즘 없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친구는 며느리를 칭찬합니다. 그날 친구는 좋은 일을 했습니다. 끝까지 싫은 표정 안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마음 수양을 넘어 덕을 쌓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태산보다 높은 마음의 산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높아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대화를 통해 한 가지는 확인했지요. ‘그래도 우린 행복한 사람’ 이란 것을. 오늘이 있어 그렇고, 같이 할 친구가 있어 그렇고, 오늘 우린 기적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요. 기적은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이다.?이 말을 아는 사람은 행복을 아는 사람일 테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2025-06-09
  • 삶이란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게임...
    “루게릭 병입니다.” 50대 초반의 그녀에게 떨어진 진단예요. 이 가혹한 한 마디에 그녀의 일상이 혼돈 속에 회오리칩니다. 그날 이후, 일과마다에 이명처럼 따라붙는 혼란스러운 생각들. 내가 행복전도사라? 사람들 앞에 강연할 때도 “나 지금 뭘 하는 거지?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면서.” 순간, 어쩌다 이런 병이 왔을까 눈물부터 그렁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속속들이 알게 된 병.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게릭이 30대 젊은 나이에 이 질환으로 죽자 붙여진 병명임도 알았습니다.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으로, 서서히 팔다리의 근육이 위축되다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 이른다는 병... 내 속은 썩어드는데 남의 속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러워요? 추가 강연요청은 받지 않고 남은 스케줄을 가까스로 마칠 때, 몸은 탈진된 상태였습니다. 6개월밖에 안 됐는데 팔다리의 힘이 전 같지 않고 수저질, 단추 잠금이 편치 않아요. 점차 무거운 물건을 못 들고, 팔도 크게 올리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켜켜이 쌓입니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병.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 질병을 55년간 앓으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의사가 희망을 북돋울 때, 그녀는 내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립니다. 그나마 치료술 향상으로 10년 이상 생존한다지만 마지막 투병단계의 모습엔 눈이 감깁니다. 그녀가 심리상담 치료를 받겠다고 김 박사를 찾았을 때는 거동이 불편해질 즈음입니다. 그로부터 지인인 김 박사를 통해 그녀의 투병과정에 관심을 갖으면서 모든 질병과의 싸움은 결국엔 마음과의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 안정에 애쓰는 변화를 보였어요. 침대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너 왜 이래? 왜 오지도 않은 날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려는데, 걸음이 제대로 안 떼지는 거 있죠. 이러다 옷에 실수하겠다는 생각에 억척스레 한 발짝을 떼다보니 화장실 앞입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박사님이 버티라고 얘기한 그 ‘한 발짝’이 이거다 싶었어요.” 하루는 그녀가 호소합니다. “박사님,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게 운명이면 너무 가혹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까지 들추면서 얘기합니다. “맞아요. 운명은 할키고 인생은 버틴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면 아픔이 기를 숙일 때가옵니다. 고통 사이에 조금 덜 아픈 틈이 있거든요.” 입술을 깨물고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언제부터 희망이 되었어요. 덜 아플 때. 움직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수다도 떨었다고 해요. “때론 병증이 악화돼 한 발짝 떼기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약을 먹으면 2시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하루 3번 그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것이 희망인가 봐요.” 조금씩 여유를 찾아갑니다. 인생길 굽이치다 이제 살만하니 루게릭이 친구하자고 왔대요. 그래, 모진 인생을 살려면 이런 친구도 끌어안아야지 생각하고 웃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배웠다고 해요. 인생은 버티고 견디는 것임을. 상담자도, 상담역도 버티는 인생은 같아요. 한 쪽은 병을 버티고, 한 쪽은 잘 버티도록 잡아주니까. 버틴다는 건 말없이 순종하는 수동의 상태가 아니죠. 내면에서 솟는 울분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말예요. “내가 만일 버티지 않고 포기한다면 쉽겠지만 엄청 후회를 하겠죠.” 그녀의 마음은 그만큼 여물어졌습니다. 그녀는 병이 진행되면서 내 몸이 달팽이가 돼간다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에 눈을 뜹니다. 뜰에 새싹이 나고, 꽃대가 솟고.... 자연의 변화가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지면서 “살 거면 어떻게든 살자. 누워만 있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조물주가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든 건 삶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겠지. 인간은 포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란 뜻이겠지.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래서 ‘고통은 축복’ 이란 것이겠지. 고통을 겪으면서 진짜 감사를 배우고 ‘내 질병이 스승’ 임을 알았다는 그녀. 그녀는 지금 제주에서 15년차 투병생활을 씩씩하게 버텨냅니다. (이관순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2025-06-02
  • 삶이란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게임...
    루게릭 병입니다.” 50대 초반의 그녀에게 떨어진 진단예요. 이 가혹한 한 마디에 그녀의 일상이 혼돈 속에 회오리칩니다. 그날 이후, 일과마다에 이명처럼 따라붙는 혼란스러운 생각들. 내가 행복전도사라? 사람들 앞에 강연할 때도 “나 지금 뭘 하는 거지?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면서.” 순간, 어쩌다 이런 병이 왔을까 눈물부터 그렁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속속들이 알게 된 병.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게릭이 30대 젊은 나이에 이 질환으로 죽자 붙여진 병명임도 알았습니다.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으로, 서서히 팔다리의 근육이 위축되다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 이른다는 병... 내 속은 썩어드는데 남의 속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러워요? 추가 강연요청은 받지 않고 남은 스케줄을 가까스로 마칠 때, 몸은 탈진된 상태였습니다. 6개월밖에 안 됐는데 팔다리의 힘이 전 같지 않고 수저질, 단추 잠금이 편치 않아요. 점차 무거운 물건을 못 들고, 팔도 크게 올리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켜켜이 쌓입니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병.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 질병을 55년간 앓으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의사가 희망을 북돋울 때, 그녀는 내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립니다. 그나마 치료술 향상으로 10년 이상 생존한다지만 마지막 투병단계의 모습엔 눈이 감깁니다. 그녀가 심리상담 치료를 받겠다고 김 박사를 찾았을 때는 거동이 불편해질 즈음입니다. 그로부터 지인인 김 박사를 통해 그녀의 투병과정에 관심을 갖으면서 모든 질병과의 싸움은 결국엔 마음과의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 안정에 애쓰는 변화를 보였어요. 침대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너 왜 이래? 왜 오지도 않은 날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려는데, 걸음이 제대로 안 떼지는 거 있죠. 이러다 옷에 실수하겠다는 생각에 억척스레 한 발짝을 떼다보니 화장실 앞입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박사님이 버티라고 얘기한 그 ‘한 발짝’이 이거다 싶었어요.” 하루는 그녀가 호소합니다. “박사님,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게 운명이면 너무 가혹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까지 들추면서 얘기합니다. “맞아요. 운명은 할키고 인생은 버틴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면 아픔이 기를 숙일 때가옵니다. 고통 사이에 조금 덜 아픈 틈이 있거든요.” 입술을 깨물고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언제부터 희망이 되었어요. 덜 아플 때. 움직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수다도 떨었다고 해요. “때론 병증이 악화돼 한 발짝 떼기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약을 먹으면 2시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하루 3번 그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것이 희망인가 봐요.” 조금씩 여유를 찾아갑니다. 인생길 굽이치다 이제 살만하니 루게릭이 친구하자고 왔대요. 그래, 모진 인생을 살려면 이런 친구도 끌어안아야지 생각하고 웃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배웠다고 해요. 인생은 버티고 견디는 것임을. 상담자도, 상담역도 버티는 인생은 같아요. 한 쪽은 병을 버티고, 한 쪽은 잘 버티도록 잡아주니까. 버틴다는 건 말없이 순종하는 수동의 상태가 아니죠. 내면에서 솟는 울분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말예요. “내가 만일 버티지 않고 포기한다면 쉽겠지만 엄청 후회를 하겠죠.” 그녀의 마음은 그만큼 여물어졌습니다. 그녀는 병이 진행되면서 내 몸이 달팽이가 돼간다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에 눈을 뜹니다. 뜰에 새싹이 나고, 꽃대가 솟고.... 자연의 변화가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지면서 “살 거면 어떻게든 살자. 누워만 있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조물주가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든 건 삶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겠지. 인간은 포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란 뜻이겠지.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래서 ‘고통은 축복’ 이란 것이겠지. 고통을 겪으면서 진짜 감사를 배우고 ‘내 질병이 스승’ 임을 알았다는 그녀. 그녀는 지금 제주에서 15년차 투병생활을 씩씩하게 버텨냅니다. (이관순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2025-05-26
  • 원초적 그리움 사랑의 정체
    “우리는 하나의 심연에서 솟아올라 또 다른 심연으로 사라져간다. 이 심연과 심연 사이를 인생이라고 부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심연과 심연 사이에 여전히 난해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은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 때문이겠죠. 생명의 그리움, 자연의 그리움, 우리가 사는 일생도 따지고 보면 ‘그리움의 집짓기’에 다름 아닙니다. 평생을 매달려도 그 끝에 닿지 못하는 것. 다만 예술작품을 들추어 그 정체를 유추해볼 뿐이지요.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다섯 단계로 정의하고, 첫 단계를 ‘관심’으로 꼽았지요. 사랑은 관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존중’을 꼽고, 여기서 발전한 단계가 ‘이해’입니다. 일방적 이해는 외눈박이 사랑을 부르지만 상호이해로 충족되면 뒷골목 사람이든 거리의 여자든 문제될 게 없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것만으로 참사랑의 척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게, 여기까지는 가식이나 정략적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사랑에서 가장 미덥지 못한 부문, 그래서 가장 강조돼야 할 덕목으로 에리히 프롬은 4단계의 ‘책임’을 들었지요. 사랑이 주는 감동은 책임부분에서 나옵니다. 책임이 담보되지 않은 사랑은 어느 한계 앞에 좌초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랑이 책임을 넘어설 때 비로소 ‘사랑은 주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흔히 사랑은 소프트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랑에는 고난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 고난이 왔을 때, 맞서서 대응할지, 아니면 피할지. 여기서 사랑은 극명한 갈림길에 서지요.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읽고 보면서 사랑에 전율함은 사랑의 고귀한 가치인 ‘책임’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유명작가의 작품이 아닌데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 동상 하나가 있습니다. 왼팔이 없는 ‘팔 없는 여인상’. 사람들은 이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상념에 잠깁니다. 그녀의 빈 어깨를 사람들이 얼마나 쓰다듬고 갔으면 반들반들 윤이 났을까요. 십자군전쟁 때의 일입니다. 무모한 원정 전을 벌인 십자군은 참패했고, 많은 병사가 모슬렘의 포로가 되었지요. 모두가 절망할 때 한 젊은 영국군 장교가 구명을 호소합니다. 그는 수용소의 놀림감이 되고, 마침내 모슬렘 사령관의 호출을 받습니다. “내가 없으면 아내는 죽습니다. 그녀를 위해 꼭 살아가야 합니다.” 사령관이 웃으며 “걱정 말게. 여자는 다른 남자가 책임질 걸세.” 이에 장교는 우리 사랑을 몰라서라고 강변했고, 그 말끝에 사령관은 야릇한 도박을 겁니다. “좋아, 그럼 내기하지. 자네를 사랑한다는 징표로 여자의 팔 하나를 가져오면 고려하겠네.” 이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사령관 앞으로 썩은 팔 하나가 배달됩니다. 그제서 사령관은 과오를 사죄하고 장교를 풀어줍니다. 팔 없는 여인상의 모델은 장교의 부인입니다. 진한 감동으로 전율시켰던 그 여인의 빈 어깨는 시공을 넘어 뭇사람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생 페테르부르크중앙박물관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유화 한 점이 있습니다.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좀은 해괴한 그림이지요. 그럼에도 이 유화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나폴레옹 전쟁 때의 일입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 없다던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폭설과 추위로 패퇴하는 비극을 맞지요. 그러나 비참하긴 눈구덩이에 갇힌 마을도 마찬가지. 먹을 것이 떨어진 가족들이 서로의 앞에서 굶어죽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유화는 이 참담함 속에서 늙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 마지막 사랑을 전하는 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사랑은 이런 빛깔로도 직조돼 전율을 주지요. 사람들이 사랑에 열광하는 것은 타인과 통하려는 욕구 때문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소한 욕구 저변에도 타인과 통하고 싶은 욕망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완성된 소통형태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유한하고 외로운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빛이자 출구로 다가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사랑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상처와 조건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비극입니다.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5-19
  • 진정한 나를 찾는 길
    고통과 역경의 연속이 우리가 사는 삶입니다. 게다가 삶을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야 하니 바람에 날리는 연약한 갈대와 같습니다. 한없이 약하고 불완전한 인생에 더 마음 쓰이는 것은, 인생은 동전과 같다는데 있어요. 무엇이든 원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딱 한 번밖에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허투루 소비할 수 없는 1회성 시간을 손에 들고 있는 셈이지요. 이처럼 운신의 폭은 제한돼 있고, 사는 시간은 유한하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사는 우리입니다.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부평초처럼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인생을 살면서, 왜 사람들은 하늘 높이 나는 새처럼 오르고 싶어 하고, 무한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온전한 자신의 모습엔 눈을 감습니다. 얼마나 문제가 있으면 성경에 “사람이 자기의 약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온전해 지는 것의 첫걸음”이라고 했을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어찌 저리도 허술하나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끊임없이 걸고 오직 그것만 꿈꾸며 사는 듯합니다. 수많은 자기계발 ? 인생수험서가 넘쳐나고, 소셜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과잉정보에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 못하고, 내 좋으면 그만이라는 ‘확증현상’에 매몰됩니다. 내 취향에 맞는 것만 찾으려고 하니까요. 자신을 살피지 못하면 욕망은 과잉되고, 교만은 웃자랍니다. 자칫하면 모방된 의식과 방식으로 한 번뿐인 삶을 그림자 인생으로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답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성경은 먼저 자기와의 조화를 이루라고 합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은 있는 그대로의 나, 내 약점과 단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시작하기가 좀은 힘들 수 있어도, 나의 능력과 한계를 드러내놓고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나를 찾아 나갈 이정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할 수 있다’고 외치니까 나도 따라 외친다거나 남들의 시선을 생각해 ‘척’ 하며 사는 것은 자기와의 부조화를 재촉하는 일입니다.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면 정작 착한 사람은 될 수 없고, 남에게 보이는 일에 신경 쓰면 정작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삶의 주도권을 뺏기고 정작 해야 할 내 일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소소한 일상에 기뻐하고 정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가려는 사람이 진짜 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면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 이것이 나와 조화를 이룬 사람의 모습이지요. 자신에 대해 눈 감고 있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나를 찾아낼 수 없고, 변화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사회는 다양한 능력, 성격, 취향과 다른 얼굴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이웃하며 사는 곳입니다. 그러려면 진실 돼야 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줘야 합니다. 나와의 조화를 이룬 사람만이 진실로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가면을 쓰거나 가식된 행실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못 보는 청맹과니가 되기 쉽습니다. 나무는 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숲을 이루면서 완전해 집니다. 풀과 꽃, 벌레들과 생명력을 교감하며 올곧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이지요. 숲이 돼 숲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나무도 풀도 꽃도 벌레도 모두 평등한 생명체이듯 세상의 모든 사람은 소중한 내 이웃입니다. 홀로 선 나무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 이웃과 더불어 숲을 이루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 때 완성되는 존재랍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5-05-12
  • 또 하나의 세상, 그래도
    누구처럼 말하고 누구처럼 사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 이태석 신부같이, 데레사 수녀처럼 우리 곁에 사셨던 분들이 그리움으로 숨 쉬는 오늘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한 파울로 코엘료, 직관을 따랐을 뿐이라는 스티브 잡스,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수능 만점자까지. 그렇게 쉬운 일들이 왜 내가 손을 댔다하면 껀껀이 망하는 걸까. 바닷가 질척한 펄 아래 ‘그래도(島)’ 라는 섬이 섰습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고, 고통 받고 살다가 세상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숨이 찬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아가는 곳 입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숨길 것도 없다는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사는 섬입니다. 아름다운 섬 그래도. 섬마을 초입에 걸린 슬로건부터 철학적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는 분이 내걸었습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해준 설명은 보다 심오합니다. “사람답게 죽을 텐가, 죽은 듯이 살 텐가, 삶이란 평생의 업이로다.” 오늘은 그래도가 열린지 100일. 주민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통성명에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인생 족보에 대해선 서로가 함구해 왔지요. 오늘은 상처는 상처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살아온 인생을 털어놓고, 그래도 사람답게 살자고 만든 자리입니다. 턱수염이 짙은 운영회장이 일어나 “지금까지 돈 낳고 사람 낳다고 우겨댄 게 바로 나여” 하고 말머리를 엽니다. 당초 돈이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인데, 돈에 집착하다가 돈의 노예가 돼버린 바보가 여기 서 있다며 돈 때문에 실패한 자신을 고백합니다. 섬에서 가장 예쁜 부녀회장도 상처가 커 보입니다. 옷이란 원래 몸을 보호하려고 생겨난 건데 어쩌다 명품만 치렁치렁 감고 살다가 옷을 보호하는 치사한 여자가 되었답니다. “아무리 옷이 명품이고 화려하면 뭘 해요 저녁엔 다 벗어야 하는 데.” 사치하다 탈난 여자의 변입니다. 이런 남자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려고 집을 지었는데, 집에 환장한 사람처럼 집에다 처바르고 비까번쩍 치장했더니, 뭐야! 내가 집을 지키는 개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가 거꾸로 생각의 노예가 됐다는 생각장이 40대. 핸드폰 충전은 열심히 하면서 진짜 인생은 충전하지 못했다는 30대 고백이 이채롭습니다. 많은 걸 쟁여만 두었지 한 푼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갈 날을 기다리는 현대인이 나라는 60대 말기암 남자의 얘기는 주위를 숙연하게 합니다. 오지도 않은 노후대책에 매달리다가 오늘을 잃고, 구제받지 못할 희귀성 괴질에 걸렸다는 분의 스토리는 바로 내 일처럼 들려옵니다. 나누면 행복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지 못한,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현대인도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도 어영부영하다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낸 자칭 바보천치도 있습니다. 인류가 파멸하는 길이라고 방방 뜨다가 슬그머니 돈 챙기고 폐수방류에 눈 감은 환경운동가. 모두 그래도 사람들의 자화상입니다. 아등바등 벌어 쌓아놨더니 자식들 재산 싸움 되고 결국 큰 아들 칼부림에 둘째가 죽었다는 노부부의 탄식도 쏟아집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부부 앞에 다들 눈시울이 붉습니다. 버스 떠나면 파장이 빤한데 어쩌자고 일만하다가 낙상으로 고관절을 깨먹었다며, 평생 꿈인 세계여행까지 일장춘몽이 됐다고 뒤돌아 앉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공통점은 딱 둘입니다. 모두가 슬픈 사연을 안고, 세상을 거꾸로 보며 살았다는 점이죠. 머리를 숙여 다리가랑이 사이로 본 세상이 진짜로 생각하며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산 사람들. 사물을 바로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거나, 헛된 꿈을 꾸면서도 현실로 착각하며 헤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섬이 되고픈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 목숨만은 끊지 말고 희망의 끈은 쥐자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GPS 에도 잡히지 않은 곳, 그래서 더 아련하고 외로운 섬, 그래도 꽃은 피고 봄은 깊어 갑니다. 오늘도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사라진 일상을 찾아 나선 순례자” 라면서 헛헛한 웃음을 하늘에 날리지요. (소설가 이관순)
    • 오피니언
    • 기고
    2025-04-2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