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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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에 생각나는 소녀
    일기책을 뒤적이다 원치 않은 기록과 마주했다. 1999년 12월 12일 내가 남긴 지문은 선명했다. 시기적으로는 ‘뉴 밀레니엄’ 시대가 열린다고 온 세상이 과도한 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당시 몸에 일었던 전율은 지금도 기억된다. 그 날짜 언론들은 몸도 시원치 않은 소아마비 초등학교 2학년 여아가 계모의 음흉한 계획과 장기적인 학대로 죽었다는 쇼킹한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이 비보는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계모가 1년 넘게 몸에 해로운 약을 계속해 먹인 것이 경찰 수사로 밝혀지면서였다. 여아 책상엔 2년 전 죽은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안데르센 동화집이 꽂혀 있고, 아이는 수시로 그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데르센 전집 7권 중 유난히 낡아 보인 책이 ‘성냥팔이 소녀’ 였다고 한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해질 정도가 되었을까. 담임선생은 아이가 늘 그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불러 물어보았다. “이 책이 그리 좋으니? 뭐가 좋아?” 한참 뜸을 들인 아이가 내놓은 말은 “슬퍼서”였다. 선생님은 아이를 붙들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음 문을 연 아이는 “커서 안데르센 선생님처럼 동화책을 쓰고 싶어요.” 동화작가라는 야무진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안데르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안데르센은 아주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들로 태어나,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는 재혼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단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지. 네가 좋아하는 ‘성냥팔이 소녀’는 안데르센이 어린 시절 가난한 엄마를 모델로 썼다고 해. 놀라운 일이지?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꼭 될 거야!” 그날 이후로 아이를 더 따뜻하게 관심을 갖고 봐 왔는데, 이런 비극이 찾아왔다고 슬퍼했다. 불우한 소녀에게 실낱같은 꿈을 이어준 안데르센. 그 꿈을 찢어버린 계모란 이름의 여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이렇게 달랐다. 철자법도 서툴었던 안데르센 소년은 거칠었던 삶의 질곡을 환희로 승화시켜 덴마크의 자존심이 되었고, 안데르센이 죽자 나라가 나서서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를 만큼 예우를 갖춰 애도했다. 강단에 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곧잘 안데르센과 쇼펜하우어를 비교했다. 국적은 달라도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고, 거부인 아버지 덕에 온갖 영화를 다 누리며 자라고도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고. 환경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끝말은 ‘성냥팔이 소녀’가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 안데르센은 불쌍한 소녀를 왜 얼어 죽게 만들었을까? 사무침은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소녀도 살았으면 지금쯤 서른 살쯤? 어쩌면 잘 자라서 소원한 대로 동화작가가 되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 외에 ‘미운 오리 새끼’ ‘인어 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등 보석처럼 반짝이는 160여 편의 동화를 세상에 남겼다. 그의 동화 속에는 늘 아름다운 환상 세계가 펼치어 있고, 낭만적인 세계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화는 곧잘 비극으로 끝나곤 했다. 부잣집 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성냥불로 몸을 녹이던 ‘성냥팔이 소녀’는 차가운 주검으로 남고, 짝사랑한 왕자를 만나려고 목소리를 팔아 두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끝내 바다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안데르센은 말년에 자서전을 냈는데, 세 번을 고쳐 낼만큼 애착을 보였다. 자신의 수많은 작품의 탄생 배경과 집필 동기 등을 자상하게 서술하여 안데르센 작품 주석서라는 평가가 따랐다. 그는 책머리에 “역경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으며, 어떤 요정이 도왔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삶으로 인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삶을 자긍 했다. 서양의 문학사가(文學史家) 들은 괴테의 ‘시와 진실’을 ‘루소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함께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를 세계 5대 자서전으로 꼽는다. 12월이 오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고, 딸랑딸랑 구세군 자선냄비가 종소리를 낼 때면 안데르센이 생각난다.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창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혹시 내 창밖 아래 그 누군가가 떨고 앉아 있는 건 아닐까? 이태원 참사, 열 달째 이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끝 모를 경기침체 등 유달리 마음을 아프게 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를 보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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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송산 초등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2023년 4월 1일, 송산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습니다. 90년대 농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당진시는 서해안 시대를 맞이하여 국내에서 가장 긴 서해대교가 완성되면서 수도권과는 1시간 생활권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제철, 당진화력발전 등이 입주해 있는 당진산업단지와 당진항만이 건설되면서 명실상부한 도농융합복합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00년의 전통을 지닌 우리 학교는 각급 학년이 20명 내외수준으로 전체 학생수가 141명에 불과하게 왜소해졌지만 지난 100년이라는 오랜 역사을 지닌 학교로서의 전통과 긍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송산초등교는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학교로써의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와 우리들은 모교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 동문들은 앞으로도 우리 모교가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자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는 무언간 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총동문회에서는 우리 학교의 100년사를 발간하고 100주년을 상징하는 기념비 및 조형물을 제작하며 기념 식수와 함께 100주년 축하공연 무대를 갖고자 합니다. 2023년 4월 1일, 100주년 축하 공연 무대를 학교 내에 마련하여 학생, 학부모, 동문, 지역사회 인사 등을 모시고 축하 공연과 함께 100주년 기념 작품전시회 및 예능발표 등도 가질 예정입니다. 우리 학교를 상징하는 소나무처럼 푸르고 변하지 않는 지조를 갖고 목련처럼 고귀하고 숭고한 품격을 지닌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써의 전통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선배 동문들의 몫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에 100주년기념 운영기금 마련하고자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많은 동문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로 의미있는 성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100주년 축하 무대에 다시 뵙게 되길 기약 드리면서 이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송산초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김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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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9
  • 가시가 있는 삶
    손마디에 작은 가시가 박히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빼내려고 손톱으로 쥐 뜯어보지만 쉽지가 않다. 작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이 가시의 속성이다. 성서에 나오는 바울은 기독교사에 빛난 인물이다. 이방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안고 죽기까지 기독교를 세계에 퍼뜨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었고, 끝까지 이를 외면하셨다. 학자들은 그 가시를 간질로 주목하고 있다. 바울은 오랜 기간 그 가시를 위해 기도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발작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주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결코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서. 주님과 바울의 대화를 의역하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주여, 내게서 이 가시를 제하여 주소서.” 그런데 답은 ‘yes’ ‘no’가 아니라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 성경에 보면 세 번씩 구했다고 하는데 답은 같았다. 내 나름 주석을 달면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 ‘크도다’ ‘많도다’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사람에게 이적을 베푸신 주님이 왜 사랑하는 제자의 기도를 세 번씩 거절했을까. 한 때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후로 바울은 더 이상 간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교만하지 않게, 자고 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사랑의 가시임을 안 것이다. 가시의 삶은 아프지만, 그를 통해 연약한 인간인 나를 돌아봄으로 인생을 실패하지 않게 하려는 주의 은총임을 깨달은 것이다. 오래전 서울 명일동에서 생긴 일이다. 20대 처녀가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40대 중년 남자와 열애를 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전처가 난 초등생 1학년 아이도 있는데…. 친정 부모마저 참석지 않은 결혼식을 올리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부모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내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이의 좋은 엄마가 되는 길뿐이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그 자리를 찾고자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노력하면 한 만큼 아이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학교에서 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부터 잠갔다. 밥 먹을 때만 살짝 나와 후딱 먹고 제방에 들어가면 끝이었다. 마침내는 자폐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울기도 하고, 인내도 해보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의 존재가 손톱 밑 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다. 뽑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거슬렀다. "저 아이만 없으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어쩌다 한 번 스친 생각은 잊을만하면 꼬리를 물고 나타나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초겨울 어느 휴일 새벽녘,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안개가 자욱한 이른 시각에 새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한강 둔치로 나와 수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새엄마가 걸음을 멈추더니, 안개 낀 사방을 돌아보고는 갑자기 아이를 강으로 떠밀었다. 그 순간 어디서 보았는지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다. 이 사건은 미수로 끝났지만,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비정한 새엄마의 기사는 밤 9시 뉴스 톱으로 올랐고,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기사로 장식되었다. 당사자인 아이와 새엄마, 아빠까지 일가족 모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후유로 세 가족은 용인 청량리 · 장흥 정신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의 종말을 맞았다. 새엄마는 ‘아이’ 란 가시를 뽑으려다 자신은 물론 한 가정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 이왕 모질게 결심한 일이니 좀 더 인내했더라면, 좀 더 사랑으로 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오래오래 남긴 사건이었다. 허남진은 프랑스 월드컵에서 축구공 묘기로 전 세계 축구팬을 감동시킨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무려 18시간 11분을 계속 축구공을 차올려 세계 기네스에 이름을 올렸다. 이마로 공을 쳐 올리며 물과 이온음료, 바나나 등을 받아서 먹었고, 생리도 선 채로 해결하면서 세계기록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의 인생역정도 눈길을 모았다. 어려서부터 축구선수로 제2의 차범근을 꿈꾸었다가 고교 선수 시절 큰 부상을 입으면서 모든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졸업 후는 공사장으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떠돌며 인생을 비관했다. 자포자기한 삶으로 그렇게 몸을 마구 굴리다가 어느 날 “내 젊음을 이렇게 끝내야 하나?”라는 자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각성은 했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세울 배경도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다시금 절망의 낭떠러지 위로 자신을 밀어 올리다가 생각이 스쳤다.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그걸 살려봐!’ 그제야 비로소 축구공을 가지고 묘기를 부려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내가 잘하는 축구공 묘기를 살려보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살려 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그는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축구공을 놓지 않고 살았다. 인생의 목표와 꿈이 함께 살아났다. 꿈을 떠올릴 때마다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잠을 잘 때에도 축구공을 가슴에 품고 잤다. 그 결과 축구공 묘기로 세계를 누비는 민간 외교관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수 억 명이 시청한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시간에 펼쳐진 허남진의 축구공 묘기는 한순간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2000년에는 또 다른 도전으로 축구공 헤딩 세계기록(7:24:54)을 세워 축구공 전신 컨트롤 세계기록과 함께 두 개의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을 장식했다.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소아마비 젊은이가 정규 레이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는 접수를 망설이는 주최 측을 설득해 꿈의 뉴욕 마라톤대회 출발대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주최 측도 중도에 기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몸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 쓰러지지 않고 반환점을 돌았다. 선두를 중심으로 비추었던 중계 카메라가 선두와 꼴찌의 그를 번갈아 비추기 시작했다. 연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주자들이 다 골인했는데도 TV 카메라는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꼴찌로 들어오는 소아마비 주자의 감격적인 골인 장면을 잡았고, 이를 지켜본 전 미국인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취재진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에게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을 만큼 탈진한 그에게 기자들이 ‘소감 한마디만!’을 주문하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격정의 한마디가 미국 시민들 가슴에 전율을 일으켰다. “내게 건강한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큼지막한 인터뷰 사진과 함께 그의 기사를 실었다. 뉴스의 헤드라인도 그의 말을 따옴표 안에 넣어 독자들에게 전달해 감동의 파장을 높였다. 누구나 삶에, 가시가 있다. 밖으로 드러난 가시도 있지만 자기만의 가슴속 가시도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시에 집착하다가 자멸하고, 비하하다 절망하고, 그것을 빼내려다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서의 바울이나 허남진, 소아마비 마라톤 주자처럼 가시를 끌어안고 살아 승리한 인물도 많이 있다.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사시면서 유난히 ‘팔자’를 강조하셨던 외할아버지. 여기서 ‘팔자’는 체념일까, 수긍일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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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 비로소 깨닫는 ‘시든다’는 말
    늦가을의 기억입니다. 막내아들 집을 찾은 어머니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뜬금없이 “세상이 참 헐거워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뭐가요?” 젊은 아들이 묻지만 어머니는 밍근한 웃음만 지어 보이셨지요. 그땐 무엇을 말씀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야 그 미소의 뜻을 알게 됩니다. 가을 끝을 돌다 절로 깨친 겁니다. 연이틀 추적되던 가을비가 그치자 문득 세상이 헐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낙엽진 거리가 성글어 보이고 공원도 휑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사람들 사이를 스치는 바람도 스산합니다. 산 계곡 물소리는 수척해졌고, 젖은 돌계단을 밟는 사람들 표정도 쓸쓸합니다. 들에도 산자락에도 이별하는 것뿐입니다. 그 길을 걷다 문득 때 지난 어머니의 대답을 찾았습니다. ‘너도 살아보면 안다’는 것을. 시든다는 것은 돌아가기 위한 생명체의 마지막 경건한 행위란 것을. 한 생을 휘돌았던 뜨거운 피가 빠지며 전하는 마지막 언어가 ‘시든다’ ‘시듦’이라는 말이겠지요. 다음은 ‘사위다.’ 불타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만 남습니다.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는….사람들은 1년이 훅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속절없어 하지만, 누구에겐 그 짧은 시간이 성심을 다해 살았던 생애입니다. 어느 시인은 낙엽을 보고 ‘땅에다 맨몸을 뉘고 상처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온 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지막 지움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시듦이란 소임을 다한 생명이 자신의 삶을 거두는 일이니까. 그래서 ‘잘 시들면 잘 거두는 것’이란 말이 생겼나 봅니다. 세월의 속도감은 12월 들어 유난히 빠르게 느껴집니다. 엊그제 꽃이 피었다 했는데 여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이 들더니 그도 잠시, 비바람이 낙엽을 털어냅니다. 그리고 앙상한 뼈마디로 남기까지 나무의 1년은 쉼 없이 가쁘게 돌아온 시간의 매듭뿐입니다. 지난 주말, 도봉산에 올랐다가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이 또 있습니다. 마른 낙엽을 밟다가 돌연 미안한 마음이 든 겁니다. 오롯이 순종으로 잇대 온 나뭇잎의 굽은 등을 밟다가 말입니다. 생애를 끝내고 갖는 마지막 쉼에 모질게 가하는 내 밟는 행위를 보고…. 잊고 지내온 이기적인 내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낙엽을 빗겨 밟으려고 하면 할수록 발에 밟히는 낙엽의 마른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어찌 성한 몸으로 피멍 든 등을 밟으려 하나. 산행 때마다 나무뿌리 밟지 말라고 당부하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등산길에 드러 나무뿌리를 밟는 모습에, 생명에 가하는 야만행위라고 펄쩍 뜁니다.나뭇잎이 돋아날 때의 향긋함, 우거진 수풀을 제초할 때 나는 알싸한 풀 향기, 쌓인 시든 잎에서 풍기는 농익은 낙엽의 향은 얼마나 코끝을 홀리고 벌렁거리게 하던가. 푸른 잎 단풍으로, 낙엽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 가슴에 위안을 주던 잎새의 생은 그래서 경건하기조차 합니다. 김동길 박사가 이런 말을 했지요.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모든 것이 이해될 줄 알았는데, 실은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더라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걸 느낍니다. 넓은 길보다는 호젓한 오솔길이 좋고,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좋습니다. 살가움보다 무던함에 마음이 가고, 질러가는 것보다 에둘러 돌아가는 굽잇길이 즐거움을 줍니다. 시든다는 것은, 힘줄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것은, 한 생을 휘돌아 나가는 생명들의 마지막 미사입니다. 시들어 마른 맨몸을 땅에 뉘이고 상처를 묻는, 숙연한 의례입니다. 길을 나서면 만나는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하찮은 마른 낙엽이 내게 죽비를 들이댈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지난 1년 삶을 털어서 슬픔은 슬픔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사위어 땅에 묻어야겠습니다. 미움도, 아픔도, 미련도 모두.그리고 다시 울고 웃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휘감고 돌아가면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나도 이런 변화를 맞습니다. 얼굴도, 생각도, 마음도, 모두가 다…. 시인 친구가 일러주더군요.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주머니에 편지가 그냥 있으면, 가을이 맞다고…. 가을 건망증은 다람쥐가 더합니다. 애써 도토리를 땅에 묻고는 잊으니까요. 세상뿐 아니라, 세월도 헐거워 보이는 12월의 시작입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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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1
  • 원했지만, 탕진한 사랑
    12월 8일은 비틀스의 아이콘 존 레넌의 사후 40주기가 된 날입니다. 매년 이맘 때, 추모 인파로 붐볐어야 할 뉴욕 센트럴파크의 레넌 추모공원엔 코로나19 때문에 사후 가장 쓸쓸한 추모회가 되었더군요. 비틀스는 젊은 날 세기의 우상이었지요. 레넌이 요노요코에 빠져 밴드를 위태롭게 할 때 그녀가 참 밉상이었는데, 흐르는 세월속에서 고등어 푸른 등처럼 선명한 레넌의 진실된 사랑의 언어를 발견합니다. “매일 신께 감사해. 운명이 우리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요노요코 널 만나기 위해서고, 내가 어른이 된 것은 너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어.” 만인의 사랑을 받고도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던 남자. 두 사람의 운명은 레넌이 그녀의 그림과 만나면서 시작되었지요. 사이가 깊어지면서 레넌은 비틀스와 멀어지고 해체가 선언되자 모든 비난이 그녀를 향했습니다. 음악잡지 커버 사진을 찍는 날, 레넌이 말합니다.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그 유명한 ‘사랑의 포즈’를 취했지요.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아도 함께 꾸는 꿈은현실이다.”라는 명구를 남기면서. 그것이 마지막임을 몰랐을까. 그날 밤 레넌은 집으로 가던 중 그의 광팬 체프만이 쏜 총에 최후를 맞지요. 그러고 40년, 올해 88세의 요노요코는 “난 지금도 그를 잊을 수 없단다”며 두 아들에게 연서를 썼다고해요. 12월엔 문득 살아나는 기억들이 많아요. 젊은 시절, 매년 네 친구 가정이 함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뮤지칼을 보던 기억이 아스라이 살아납니다. 당시 ‘호두까기 인형’처럼 12월 공연으로 빠지지 않던 것이 비련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빠담 빠담 빠담’입니다. 매번 피아프 역을 맡은 윤복희가 피를 토하듯 열창할 때, 뭉클하던 기억이 따스합니다. 거리의 노래 소녀 피아프가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사장 르프레의 눈에 띤 건 행운이었지요. 무명의 그녀에게 스타 탄생의 변주곡이 울립니다.당대 유명한 사교모임에서 펑크 난 가수를 대신하면서죠. 그러나 그것이 그녀 운명의 서곡일 줄은 몰랐어요. 르프레를 사랑하면서 사랑에 눈 뜨지만 남자의 돌연사로 물거품이 되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삶의 좌절을 곱씹던 그녀는 배우 이브몽땅을 만나 구원되는 듯했어요. 그녀의 인생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바람둥이 이브몽땅은 오래 가지 않아 그녀를 떠납니다. 깊은 시름에 알콜로 위안 받던 그녀에게 마지막 구원자로 등판한 이가 세계 미들급 챔피언 복서 마르셀입니다. 그녀는 모든 걸 바쳐 세기의 로맨스를 불태우지만, 운명은 마르셀까지 교통사고로 앗아가죠. 기자가 묻고 답해요. “죽음이 두렵나요?” “외로움 만큼은 아니에요.” 죽음보다 무서웠던 외로움을 술과 모르핀으로 달래던피아프. 결국 47세에 비운의 삶을 마칩니다. 피아프 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비련의 여인이 마릴린 먼로입니다. 20세기최고의 섹스 심볼이 된 먼로는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어머니를 정신병으로 잃는 극한 환경속에 성장했어요. 모든 남성을 열광시키며 한 해 30개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던 먼로는 굶어죽지 않고자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유명 야구선수와 두 번째 결혼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먼로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주목 받는 동시에 골빈 여자란 소리도 함께 들었지요. “난 잠자리에서 샤넬5 이외엔 아무 것도 입지 않아요.” 이 말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숨 막혀 했던 그녀의 저항적 음유가 깔렸습니다. 행복을 희구했던 먼로는 유명 극작가와 세 번째 결혼에 성공하나 그토록 갖고자 한 아기를 유산하고 그 충격에 다시 이혼합니다. 어딜가도 환호가 넘쳐나고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만 모두 섹스 어필뿐이었어요. 극도의 신경쇠약과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먼로.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중 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삶은 원했던 아이도, 남편도, 행복도 거머쥐지 못하고 의문사로 생을 마칩니다. 습도, 온도, 햇빛 같은 평범한 일상을 못 누리고 주어진 제몫의 사랑마저 탕진하고 만 사람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그 속을 모르니 운명이라고 돌릴 수밖에요. 세월과 운명은 진정 거스를 수 없는 걸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 오피니언
    • 기고
    2022-10-17
  • 나이 듦에 대하여
    왜 사람에게는 시든다는 말 대신 늙는다는 말을 쓸까. 나무도 꽃들도 다 시들어버린다면서 사람은 왜 세상을 뜬다고 할까. 무심코 흘려보냈던 말들이 잔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언젠가부터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몸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갑자기 눈귀가 밝아질 리도 없을 텐데... 살아온 날들로 많은 생각이 기울면서 젖는 현상일 것이다. 너무 인생을 무심히 살아왔다는,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거나, 회한 아니면 후회일 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걸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앞세워 살지는 않았는지, 인생이란 산허리를 내려오다가 문득 무심히 지나친 많은 일들이 잠들지 못하고 부스스 눈을 뜨곤 한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나를 부르고 찾기도 했을 텐데…. 그때 나는 보지 못했고 응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 듦이 현실이 된 나를 용하게 기억하고 불러 세운다. 석양의 그림자 같은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허상을 잡으려고 때 묻히고 얼룩진 나를 말이다. 시듦으로는 그것을 알리 없다. 오직 나이 듦으로 아는 진리이다. 이는 늙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음유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과 달리 주고받는 것이 다르고, 떠남과 만남에도 유별함이 생기니까. 이생이 허망할수록 내생에 기대고 싶고, 병들어 건강을 다치면 무심했던 내 몸의 소중함을 깨치는 이치와 같다. 보는 눈이 흐려지면 듣는 귀라도 쌩쌩했으면 좋으련만, 귀마저 예전 같지 않다. 돌아보면 살아온 지난 날들이 영특하지 못했고 좀은 미련스러웠다. 눈은 침침해졌다며 수술하고,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고, 건강 보조식품까지 챙겨 들면서, 실로 귀중한 것이 귀라는 것은 잘 몰랐다. 눈은 흐려져도 살 수 있지만, 귀가 어두워지면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을…. 시력을 잃으면 청력이 강해지듯 미움을 버리면 커지는 것도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비감해지고 미움과 원망이 커진다. 소유는 머리에 망념을 부르기 쉽다. 아직도 채울 것이 남은 사람은 부족함에 갈증이 남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마음에 족함을 갖게 된다. 옛 문장에 같은 것을 갖고도 ‘팔여(八餘?8개가 남음)’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구는 ‘팔부족(八不足)’ 이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기준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세우는 것이다. 나이 듦이 시듦보다 차원이 다른 것은 긴 세월을 살며 경험하고 축적한 내 인생의 스펙이 내 기준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푸르던 세월이 사위어 가고 있다. 생명의 경이에 눈 떴던 봄이 이울더니, 노동의 보람을 주던 여름이 오가고, 그 자리로 목마른 가을이 물들고, 그마저 잠깐, 어느새 낙엽귀근(落葉歸根)을 가늠해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굽은 등 너머 노을 진 서녘에서 부엉이가 울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이 듦이란, 떠난 것에 미련두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하지 말고, 마음에 찌든 미움이나 원망은 관용하고 화해할 시기임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별난 인생 있나?” “나도 잘 한 게 없네 미안하네.” 고까웠던 일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곰삭힌 감정은 다 흐르는 세월에 씻어내고 텅 빈 마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그곳에 명상의 시간으로 충만하자. 나이 듦이란, 비천한 인생의 한계를 알고 참회와 감사로 채우는 시간이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눈 뜨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때이다.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이만하면 잘 살았다 감사하다.” 마음에 평강이 깃든다. 무한한 성찰과 감사 뒤로 하늘의 자비와 은총이 내린다. 태양빛으로 짱짱한 한낮도 아름다웠지만, 낙조가 들 때의 고혹함도 매력적이다. 생의 어느 한 곳 의미가 없는 과정이 있을까. 해가 많이 기울었다. 촘촘하던 시간도 그만큼 헐거워졌다. 동네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깊고 서늘해졌다. 누가 노래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남은 세월을 배웅해야 하리라. -소설가/ daumcafe/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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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3
  • 그때 왜 그랬어요
    코로나로 격리를 당할 때처럼 맹랑하고 황당한 적이 없었다. 2년 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강제당하면서 느낀 감정이 그랬다. 크게 아프지도 않은 몸을 생으로 묶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지난날 나도 꽤나 헤매고 살았다. 본래 인간은 헤매는 것이라지만, 헤매도 방향을 잡아 제대로 헤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많았다. 후회되는 일들은 모조리 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실수를 할까 봐 포기하고, 실패할까 봐 망설였고, 그러다 때를 놓치기도 했다. 가족 부양이란 책임 때문에 여건이 받혀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인생을 한 걸음씩 확실히 딛고 나갔어야 했는데, 어느 날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어 돌아보니 여러 풍경이 엇갈려 보였다. 내가 몰랐던 것, 간과했던 것, 알고도 못한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생살처럼 차오를까? 후회감이 고요한 마음을 휘저었다. “그땐 그랬었지.”, “그래, 그런 적도 있고.” “그땐 천둥벌거숭이일 때였으니까….” 까맣게 잊힌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풀려 돌아갔다. 나 홀로 집에 있던 그날, 심심파적으로 떠오르는 후회스러운 일들을 적어보았다. 두어 시간 동안 떠올린 것이 서른 개가 넘었다. 미래와 연관된 일이 열넷으로 가장 많았고, 주택문제가 일곱으로 뒤를 따랐다. 나머지도 대부분 사람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름 명분이야 다 있지만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길을 잘못 들더라도 시도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완벽하게 하려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헤매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2년 반을 맹하게 소진하고 지난여름, 부산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해운대와 자갈치 시장을 들려 저녁을 먹으면서 긴 시간을 친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져 호텔로 향하다 밤바다에 흐르는 네온 불빛을 보았다. 바다 건너 영도 쪽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불빛에 이끌려 시장 앞 광장에서 빛이 흐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밤물결 위로 찰랑이는 저 불빛…. 영도 앞바다에 떠있는 것은 일곱 자로 된 한 문장이었다. ‘그때 왜 그랬어요.’ 영롱하고 명징한 문장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자력에 끌리듯 마음이 도리질을 했다. 수면 아래 깊은 곳에 묻고 봉인해 둔 것들이 들썩였다. 섣불리 물에 손을 뻗었다가 파도를 일으킬까 봐 후회는 후회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묻어두었는데, 문장이 내뿜는 파장에 회한의 그림자가 영도의 불빛을 타고 흘렀다.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 “그때 왜 그러셨어요?” “그전엔 안 그랬잖아?” 아내가 묻고, 아들이 묻고,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친구가 물어왔다. 해운대를 다녀간 사람마다 저 물음 앞에 섰으리라. 떠난 사람에 대해, 실패한 일에 대해, 깨진 우정에 대해, 누구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자식을 떠올리고, 먼저 떠난 아내를 생각하면서 무수한 상념으로 갈래를 쳤겠지. 어느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를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로 표현했다. 그날 밤 나는 이 세 가지 슬픈 대답을 번갈아 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스러운 것들이 이 셋과 연결돼 있어서였다. 인생을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회한은 남는다. 굳이 성공한 삶을 따진다면, ‘때를 지켜 잘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어느 때를 지나는 지를 알고 그때를 자기 다움으로 잘 살아내는 것. 꽃이 때를 찾아 피듯이, 때를 지켜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모든 후회나 회한은 때를 잊거나 지키지 못한 데서 시작된다. 성경 말씀처럼 심을 때와 거둘 때, 세울 때와 허물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가 있다 했듯이. 이 시대의 아픔은 모든 세대가 자기 때를 지켜 자기다움으로 살지 못하는 데 있다. 젊은이가 꿈을 상실하고 세상 눈치나 슬슬 본다거나, 장년은 장년다움을 깨치지 못하고 박약하거나 맹종으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뿐인 때와 기회를 훅 날리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깃들 곳이 없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잘 익어간다는 것이고, 잘 익는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누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은유했다. 옻칠은 더할수록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종종 허무감에 젖을 때가 있다. 이룬 것이 없으면 허망한 생각이 더 빈번해지고, 마땅히 할 일까지 없으면 삶이 쓸쓸하고 우울하다. 이렇게 마음에 그늘이 들기 시작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도 찾아든다. 노년의 생은 이런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생각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잊혔던 것들이 살아나면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든 대로 때가 있고 삶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 내가 주인이라는 행세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더 지치고 고달파진다. 세상의 주인 된 삶은 후대에 내주고 나는 그들을 돕는 수단이기를 자원하거나,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나서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의 보람을 나에게서 찾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가 되어 줄 때, 삶의 기쁨과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부산 밤바다에서 일렁이던 그 문장. 진짜 내가 그때는 왜 그랬을까? 채워지지 않는 일상의 공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흔들려 보시라. 비린내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늙은 거리악사가 연주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애절한 선율을 들으면서…. 어둠이 깔리는 남포동 밤바다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부산이 주는 낭만이다.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을 이들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되고, 원망과 미움을 키운 사람들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의 말처럼 ‘사물의 가치는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바다를 떠날 때쯤 긍정적이고 희망찬 문장 하나쯤 건질 수도 있으리.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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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0

실시간 기고 기사

  • 12월에 생각나는 소녀
    일기책을 뒤적이다 원치 않은 기록과 마주했다. 1999년 12월 12일 내가 남긴 지문은 선명했다. 시기적으로는 ‘뉴 밀레니엄’ 시대가 열린다고 온 세상이 과도한 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당시 몸에 일었던 전율은 지금도 기억된다. 그 날짜 언론들은 몸도 시원치 않은 소아마비 초등학교 2학년 여아가 계모의 음흉한 계획과 장기적인 학대로 죽었다는 쇼킹한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이 비보는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계모가 1년 넘게 몸에 해로운 약을 계속해 먹인 것이 경찰 수사로 밝혀지면서였다. 여아 책상엔 2년 전 죽은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안데르센 동화집이 꽂혀 있고, 아이는 수시로 그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데르센 전집 7권 중 유난히 낡아 보인 책이 ‘성냥팔이 소녀’ 였다고 한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해질 정도가 되었을까. 담임선생은 아이가 늘 그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불러 물어보았다. “이 책이 그리 좋으니? 뭐가 좋아?” 한참 뜸을 들인 아이가 내놓은 말은 “슬퍼서”였다. 선생님은 아이를 붙들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음 문을 연 아이는 “커서 안데르센 선생님처럼 동화책을 쓰고 싶어요.” 동화작가라는 야무진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안데르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안데르센은 아주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들로 태어나,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는 재혼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단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지. 네가 좋아하는 ‘성냥팔이 소녀’는 안데르센이 어린 시절 가난한 엄마를 모델로 썼다고 해. 놀라운 일이지?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꼭 될 거야!” 그날 이후로 아이를 더 따뜻하게 관심을 갖고 봐 왔는데, 이런 비극이 찾아왔다고 슬퍼했다. 불우한 소녀에게 실낱같은 꿈을 이어준 안데르센. 그 꿈을 찢어버린 계모란 이름의 여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이렇게 달랐다. 철자법도 서툴었던 안데르센 소년은 거칠었던 삶의 질곡을 환희로 승화시켜 덴마크의 자존심이 되었고, 안데르센이 죽자 나라가 나서서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를 만큼 예우를 갖춰 애도했다. 강단에 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곧잘 안데르센과 쇼펜하우어를 비교했다. 국적은 달라도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고, 거부인 아버지 덕에 온갖 영화를 다 누리며 자라고도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고. 환경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끝말은 ‘성냥팔이 소녀’가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 안데르센은 불쌍한 소녀를 왜 얼어 죽게 만들었을까? 사무침은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소녀도 살았으면 지금쯤 서른 살쯤? 어쩌면 잘 자라서 소원한 대로 동화작가가 되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 외에 ‘미운 오리 새끼’ ‘인어 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등 보석처럼 반짝이는 160여 편의 동화를 세상에 남겼다. 그의 동화 속에는 늘 아름다운 환상 세계가 펼치어 있고, 낭만적인 세계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화는 곧잘 비극으로 끝나곤 했다. 부잣집 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성냥불로 몸을 녹이던 ‘성냥팔이 소녀’는 차가운 주검으로 남고, 짝사랑한 왕자를 만나려고 목소리를 팔아 두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끝내 바다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안데르센은 말년에 자서전을 냈는데, 세 번을 고쳐 낼만큼 애착을 보였다. 자신의 수많은 작품의 탄생 배경과 집필 동기 등을 자상하게 서술하여 안데르센 작품 주석서라는 평가가 따랐다. 그는 책머리에 “역경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으며, 어떤 요정이 도왔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삶으로 인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삶을 자긍 했다. 서양의 문학사가(文學史家) 들은 괴테의 ‘시와 진실’을 ‘루소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함께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를 세계 5대 자서전으로 꼽는다. 12월이 오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고, 딸랑딸랑 구세군 자선냄비가 종소리를 낼 때면 안데르센이 생각난다.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창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혹시 내 창밖 아래 그 누군가가 떨고 앉아 있는 건 아닐까? 이태원 참사, 열 달째 이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끝 모를 경기침체 등 유달리 마음을 아프게 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를 보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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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송산 초등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2023년 4월 1일, 송산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습니다. 90년대 농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당진시는 서해안 시대를 맞이하여 국내에서 가장 긴 서해대교가 완성되면서 수도권과는 1시간 생활권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제철, 당진화력발전 등이 입주해 있는 당진산업단지와 당진항만이 건설되면서 명실상부한 도농융합복합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00년의 전통을 지닌 우리 학교는 각급 학년이 20명 내외수준으로 전체 학생수가 141명에 불과하게 왜소해졌지만 지난 100년이라는 오랜 역사을 지닌 학교로서의 전통과 긍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송산초등교는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학교로써의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와 우리들은 모교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 동문들은 앞으로도 우리 모교가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자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는 무언간 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총동문회에서는 우리 학교의 100년사를 발간하고 100주년을 상징하는 기념비 및 조형물을 제작하며 기념 식수와 함께 100주년 축하공연 무대를 갖고자 합니다. 2023년 4월 1일, 100주년 축하 공연 무대를 학교 내에 마련하여 학생, 학부모, 동문, 지역사회 인사 등을 모시고 축하 공연과 함께 100주년 기념 작품전시회 및 예능발표 등도 가질 예정입니다. 우리 학교를 상징하는 소나무처럼 푸르고 변하지 않는 지조를 갖고 목련처럼 고귀하고 숭고한 품격을 지닌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써의 전통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선배 동문들의 몫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에 100주년기념 운영기금 마련하고자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많은 동문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로 의미있는 성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100주년 축하 무대에 다시 뵙게 되길 기약 드리면서 이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송산초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김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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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9
  • 가시가 있는 삶
    손마디에 작은 가시가 박히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빼내려고 손톱으로 쥐 뜯어보지만 쉽지가 않다. 작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이 가시의 속성이다. 성서에 나오는 바울은 기독교사에 빛난 인물이다. 이방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안고 죽기까지 기독교를 세계에 퍼뜨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었고, 끝까지 이를 외면하셨다. 학자들은 그 가시를 간질로 주목하고 있다. 바울은 오랜 기간 그 가시를 위해 기도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발작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주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결코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서. 주님과 바울의 대화를 의역하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주여, 내게서 이 가시를 제하여 주소서.” 그런데 답은 ‘yes’ ‘no’가 아니라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 성경에 보면 세 번씩 구했다고 하는데 답은 같았다. 내 나름 주석을 달면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 ‘크도다’ ‘많도다’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사람에게 이적을 베푸신 주님이 왜 사랑하는 제자의 기도를 세 번씩 거절했을까. 한 때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후로 바울은 더 이상 간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교만하지 않게, 자고 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사랑의 가시임을 안 것이다. 가시의 삶은 아프지만, 그를 통해 연약한 인간인 나를 돌아봄으로 인생을 실패하지 않게 하려는 주의 은총임을 깨달은 것이다. 오래전 서울 명일동에서 생긴 일이다. 20대 처녀가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40대 중년 남자와 열애를 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전처가 난 초등생 1학년 아이도 있는데…. 친정 부모마저 참석지 않은 결혼식을 올리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부모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내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이의 좋은 엄마가 되는 길뿐이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그 자리를 찾고자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노력하면 한 만큼 아이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학교에서 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부터 잠갔다. 밥 먹을 때만 살짝 나와 후딱 먹고 제방에 들어가면 끝이었다. 마침내는 자폐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울기도 하고, 인내도 해보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의 존재가 손톱 밑 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다. 뽑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거슬렀다. "저 아이만 없으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어쩌다 한 번 스친 생각은 잊을만하면 꼬리를 물고 나타나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초겨울 어느 휴일 새벽녘,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안개가 자욱한 이른 시각에 새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한강 둔치로 나와 수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새엄마가 걸음을 멈추더니, 안개 낀 사방을 돌아보고는 갑자기 아이를 강으로 떠밀었다. 그 순간 어디서 보았는지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다. 이 사건은 미수로 끝났지만,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비정한 새엄마의 기사는 밤 9시 뉴스 톱으로 올랐고,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기사로 장식되었다. 당사자인 아이와 새엄마, 아빠까지 일가족 모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후유로 세 가족은 용인 청량리 · 장흥 정신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의 종말을 맞았다. 새엄마는 ‘아이’ 란 가시를 뽑으려다 자신은 물론 한 가정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 이왕 모질게 결심한 일이니 좀 더 인내했더라면, 좀 더 사랑으로 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오래오래 남긴 사건이었다. 허남진은 프랑스 월드컵에서 축구공 묘기로 전 세계 축구팬을 감동시킨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무려 18시간 11분을 계속 축구공을 차올려 세계 기네스에 이름을 올렸다. 이마로 공을 쳐 올리며 물과 이온음료, 바나나 등을 받아서 먹었고, 생리도 선 채로 해결하면서 세계기록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의 인생역정도 눈길을 모았다. 어려서부터 축구선수로 제2의 차범근을 꿈꾸었다가 고교 선수 시절 큰 부상을 입으면서 모든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졸업 후는 공사장으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떠돌며 인생을 비관했다. 자포자기한 삶으로 그렇게 몸을 마구 굴리다가 어느 날 “내 젊음을 이렇게 끝내야 하나?”라는 자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각성은 했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세울 배경도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다시금 절망의 낭떠러지 위로 자신을 밀어 올리다가 생각이 스쳤다.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그걸 살려봐!’ 그제야 비로소 축구공을 가지고 묘기를 부려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내가 잘하는 축구공 묘기를 살려보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살려 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그는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축구공을 놓지 않고 살았다. 인생의 목표와 꿈이 함께 살아났다. 꿈을 떠올릴 때마다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잠을 잘 때에도 축구공을 가슴에 품고 잤다. 그 결과 축구공 묘기로 세계를 누비는 민간 외교관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수 억 명이 시청한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시간에 펼쳐진 허남진의 축구공 묘기는 한순간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2000년에는 또 다른 도전으로 축구공 헤딩 세계기록(7:24:54)을 세워 축구공 전신 컨트롤 세계기록과 함께 두 개의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을 장식했다.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소아마비 젊은이가 정규 레이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는 접수를 망설이는 주최 측을 설득해 꿈의 뉴욕 마라톤대회 출발대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주최 측도 중도에 기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몸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 쓰러지지 않고 반환점을 돌았다. 선두를 중심으로 비추었던 중계 카메라가 선두와 꼴찌의 그를 번갈아 비추기 시작했다. 연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주자들이 다 골인했는데도 TV 카메라는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꼴찌로 들어오는 소아마비 주자의 감격적인 골인 장면을 잡았고, 이를 지켜본 전 미국인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취재진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에게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을 만큼 탈진한 그에게 기자들이 ‘소감 한마디만!’을 주문하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격정의 한마디가 미국 시민들 가슴에 전율을 일으켰다. “내게 건강한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큼지막한 인터뷰 사진과 함께 그의 기사를 실었다. 뉴스의 헤드라인도 그의 말을 따옴표 안에 넣어 독자들에게 전달해 감동의 파장을 높였다. 누구나 삶에, 가시가 있다. 밖으로 드러난 가시도 있지만 자기만의 가슴속 가시도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시에 집착하다가 자멸하고, 비하하다 절망하고, 그것을 빼내려다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서의 바울이나 허남진, 소아마비 마라톤 주자처럼 가시를 끌어안고 살아 승리한 인물도 많이 있다.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사시면서 유난히 ‘팔자’를 강조하셨던 외할아버지. 여기서 ‘팔자’는 체념일까, 수긍일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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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 비로소 깨닫는 ‘시든다’는 말
    늦가을의 기억입니다. 막내아들 집을 찾은 어머니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뜬금없이 “세상이 참 헐거워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뭐가요?” 젊은 아들이 묻지만 어머니는 밍근한 웃음만 지어 보이셨지요. 그땐 무엇을 말씀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야 그 미소의 뜻을 알게 됩니다. 가을 끝을 돌다 절로 깨친 겁니다. 연이틀 추적되던 가을비가 그치자 문득 세상이 헐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낙엽진 거리가 성글어 보이고 공원도 휑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사람들 사이를 스치는 바람도 스산합니다. 산 계곡 물소리는 수척해졌고, 젖은 돌계단을 밟는 사람들 표정도 쓸쓸합니다. 들에도 산자락에도 이별하는 것뿐입니다. 그 길을 걷다 문득 때 지난 어머니의 대답을 찾았습니다. ‘너도 살아보면 안다’는 것을. 시든다는 것은 돌아가기 위한 생명체의 마지막 경건한 행위란 것을. 한 생을 휘돌았던 뜨거운 피가 빠지며 전하는 마지막 언어가 ‘시든다’ ‘시듦’이라는 말이겠지요. 다음은 ‘사위다.’ 불타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만 남습니다.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는….사람들은 1년이 훅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속절없어 하지만, 누구에겐 그 짧은 시간이 성심을 다해 살았던 생애입니다. 어느 시인은 낙엽을 보고 ‘땅에다 맨몸을 뉘고 상처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온 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지막 지움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시듦이란 소임을 다한 생명이 자신의 삶을 거두는 일이니까. 그래서 ‘잘 시들면 잘 거두는 것’이란 말이 생겼나 봅니다. 세월의 속도감은 12월 들어 유난히 빠르게 느껴집니다. 엊그제 꽃이 피었다 했는데 여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이 들더니 그도 잠시, 비바람이 낙엽을 털어냅니다. 그리고 앙상한 뼈마디로 남기까지 나무의 1년은 쉼 없이 가쁘게 돌아온 시간의 매듭뿐입니다. 지난 주말, 도봉산에 올랐다가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이 또 있습니다. 마른 낙엽을 밟다가 돌연 미안한 마음이 든 겁니다. 오롯이 순종으로 잇대 온 나뭇잎의 굽은 등을 밟다가 말입니다. 생애를 끝내고 갖는 마지막 쉼에 모질게 가하는 내 밟는 행위를 보고…. 잊고 지내온 이기적인 내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낙엽을 빗겨 밟으려고 하면 할수록 발에 밟히는 낙엽의 마른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어찌 성한 몸으로 피멍 든 등을 밟으려 하나. 산행 때마다 나무뿌리 밟지 말라고 당부하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등산길에 드러 나무뿌리를 밟는 모습에, 생명에 가하는 야만행위라고 펄쩍 뜁니다.나뭇잎이 돋아날 때의 향긋함, 우거진 수풀을 제초할 때 나는 알싸한 풀 향기, 쌓인 시든 잎에서 풍기는 농익은 낙엽의 향은 얼마나 코끝을 홀리고 벌렁거리게 하던가. 푸른 잎 단풍으로, 낙엽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 가슴에 위안을 주던 잎새의 생은 그래서 경건하기조차 합니다. 김동길 박사가 이런 말을 했지요.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모든 것이 이해될 줄 알았는데, 실은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더라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걸 느낍니다. 넓은 길보다는 호젓한 오솔길이 좋고,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좋습니다. 살가움보다 무던함에 마음이 가고, 질러가는 것보다 에둘러 돌아가는 굽잇길이 즐거움을 줍니다. 시든다는 것은, 힘줄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것은, 한 생을 휘돌아 나가는 생명들의 마지막 미사입니다. 시들어 마른 맨몸을 땅에 뉘이고 상처를 묻는, 숙연한 의례입니다. 길을 나서면 만나는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하찮은 마른 낙엽이 내게 죽비를 들이댈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지난 1년 삶을 털어서 슬픔은 슬픔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사위어 땅에 묻어야겠습니다. 미움도, 아픔도, 미련도 모두.그리고 다시 울고 웃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휘감고 돌아가면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나도 이런 변화를 맞습니다. 얼굴도, 생각도, 마음도, 모두가 다…. 시인 친구가 일러주더군요.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주머니에 편지가 그냥 있으면, 가을이 맞다고…. 가을 건망증은 다람쥐가 더합니다. 애써 도토리를 땅에 묻고는 잊으니까요. 세상뿐 아니라, 세월도 헐거워 보이는 12월의 시작입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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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1
  • 원했지만, 탕진한 사랑
    12월 8일은 비틀스의 아이콘 존 레넌의 사후 40주기가 된 날입니다. 매년 이맘 때, 추모 인파로 붐볐어야 할 뉴욕 센트럴파크의 레넌 추모공원엔 코로나19 때문에 사후 가장 쓸쓸한 추모회가 되었더군요. 비틀스는 젊은 날 세기의 우상이었지요. 레넌이 요노요코에 빠져 밴드를 위태롭게 할 때 그녀가 참 밉상이었는데, 흐르는 세월속에서 고등어 푸른 등처럼 선명한 레넌의 진실된 사랑의 언어를 발견합니다. “매일 신께 감사해. 운명이 우리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요노요코 널 만나기 위해서고, 내가 어른이 된 것은 너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어.” 만인의 사랑을 받고도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던 남자. 두 사람의 운명은 레넌이 그녀의 그림과 만나면서 시작되었지요. 사이가 깊어지면서 레넌은 비틀스와 멀어지고 해체가 선언되자 모든 비난이 그녀를 향했습니다. 음악잡지 커버 사진을 찍는 날, 레넌이 말합니다.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그 유명한 ‘사랑의 포즈’를 취했지요.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아도 함께 꾸는 꿈은현실이다.”라는 명구를 남기면서. 그것이 마지막임을 몰랐을까. 그날 밤 레넌은 집으로 가던 중 그의 광팬 체프만이 쏜 총에 최후를 맞지요. 그러고 40년, 올해 88세의 요노요코는 “난 지금도 그를 잊을 수 없단다”며 두 아들에게 연서를 썼다고해요. 12월엔 문득 살아나는 기억들이 많아요. 젊은 시절, 매년 네 친구 가정이 함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뮤지칼을 보던 기억이 아스라이 살아납니다. 당시 ‘호두까기 인형’처럼 12월 공연으로 빠지지 않던 것이 비련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빠담 빠담 빠담’입니다. 매번 피아프 역을 맡은 윤복희가 피를 토하듯 열창할 때, 뭉클하던 기억이 따스합니다. 거리의 노래 소녀 피아프가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사장 르프레의 눈에 띤 건 행운이었지요. 무명의 그녀에게 스타 탄생의 변주곡이 울립니다.당대 유명한 사교모임에서 펑크 난 가수를 대신하면서죠. 그러나 그것이 그녀 운명의 서곡일 줄은 몰랐어요. 르프레를 사랑하면서 사랑에 눈 뜨지만 남자의 돌연사로 물거품이 되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삶의 좌절을 곱씹던 그녀는 배우 이브몽땅을 만나 구원되는 듯했어요. 그녀의 인생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바람둥이 이브몽땅은 오래 가지 않아 그녀를 떠납니다. 깊은 시름에 알콜로 위안 받던 그녀에게 마지막 구원자로 등판한 이가 세계 미들급 챔피언 복서 마르셀입니다. 그녀는 모든 걸 바쳐 세기의 로맨스를 불태우지만, 운명은 마르셀까지 교통사고로 앗아가죠. 기자가 묻고 답해요. “죽음이 두렵나요?” “외로움 만큼은 아니에요.” 죽음보다 무서웠던 외로움을 술과 모르핀으로 달래던피아프. 결국 47세에 비운의 삶을 마칩니다. 피아프 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비련의 여인이 마릴린 먼로입니다. 20세기최고의 섹스 심볼이 된 먼로는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어머니를 정신병으로 잃는 극한 환경속에 성장했어요. 모든 남성을 열광시키며 한 해 30개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던 먼로는 굶어죽지 않고자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유명 야구선수와 두 번째 결혼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먼로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주목 받는 동시에 골빈 여자란 소리도 함께 들었지요. “난 잠자리에서 샤넬5 이외엔 아무 것도 입지 않아요.” 이 말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숨 막혀 했던 그녀의 저항적 음유가 깔렸습니다. 행복을 희구했던 먼로는 유명 극작가와 세 번째 결혼에 성공하나 그토록 갖고자 한 아기를 유산하고 그 충격에 다시 이혼합니다. 어딜가도 환호가 넘쳐나고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만 모두 섹스 어필뿐이었어요. 극도의 신경쇠약과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먼로.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중 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삶은 원했던 아이도, 남편도, 행복도 거머쥐지 못하고 의문사로 생을 마칩니다. 습도, 온도, 햇빛 같은 평범한 일상을 못 누리고 주어진 제몫의 사랑마저 탕진하고 만 사람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그 속을 모르니 운명이라고 돌릴 수밖에요. 세월과 운명은 진정 거스를 수 없는 걸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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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7
  • 나이 듦에 대하여
    왜 사람에게는 시든다는 말 대신 늙는다는 말을 쓸까. 나무도 꽃들도 다 시들어버린다면서 사람은 왜 세상을 뜬다고 할까. 무심코 흘려보냈던 말들이 잔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언젠가부터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몸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갑자기 눈귀가 밝아질 리도 없을 텐데... 살아온 날들로 많은 생각이 기울면서 젖는 현상일 것이다. 너무 인생을 무심히 살아왔다는,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거나, 회한 아니면 후회일 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걸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앞세워 살지는 않았는지, 인생이란 산허리를 내려오다가 문득 무심히 지나친 많은 일들이 잠들지 못하고 부스스 눈을 뜨곤 한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나를 부르고 찾기도 했을 텐데…. 그때 나는 보지 못했고 응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 듦이 현실이 된 나를 용하게 기억하고 불러 세운다. 석양의 그림자 같은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허상을 잡으려고 때 묻히고 얼룩진 나를 말이다. 시듦으로는 그것을 알리 없다. 오직 나이 듦으로 아는 진리이다. 이는 늙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음유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과 달리 주고받는 것이 다르고, 떠남과 만남에도 유별함이 생기니까. 이생이 허망할수록 내생에 기대고 싶고, 병들어 건강을 다치면 무심했던 내 몸의 소중함을 깨치는 이치와 같다. 보는 눈이 흐려지면 듣는 귀라도 쌩쌩했으면 좋으련만, 귀마저 예전 같지 않다. 돌아보면 살아온 지난 날들이 영특하지 못했고 좀은 미련스러웠다. 눈은 침침해졌다며 수술하고,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고, 건강 보조식품까지 챙겨 들면서, 실로 귀중한 것이 귀라는 것은 잘 몰랐다. 눈은 흐려져도 살 수 있지만, 귀가 어두워지면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을…. 시력을 잃으면 청력이 강해지듯 미움을 버리면 커지는 것도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비감해지고 미움과 원망이 커진다. 소유는 머리에 망념을 부르기 쉽다. 아직도 채울 것이 남은 사람은 부족함에 갈증이 남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마음에 족함을 갖게 된다. 옛 문장에 같은 것을 갖고도 ‘팔여(八餘?8개가 남음)’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구는 ‘팔부족(八不足)’ 이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기준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세우는 것이다. 나이 듦이 시듦보다 차원이 다른 것은 긴 세월을 살며 경험하고 축적한 내 인생의 스펙이 내 기준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푸르던 세월이 사위어 가고 있다. 생명의 경이에 눈 떴던 봄이 이울더니, 노동의 보람을 주던 여름이 오가고, 그 자리로 목마른 가을이 물들고, 그마저 잠깐, 어느새 낙엽귀근(落葉歸根)을 가늠해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굽은 등 너머 노을 진 서녘에서 부엉이가 울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이 듦이란, 떠난 것에 미련두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하지 말고, 마음에 찌든 미움이나 원망은 관용하고 화해할 시기임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별난 인생 있나?” “나도 잘 한 게 없네 미안하네.” 고까웠던 일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곰삭힌 감정은 다 흐르는 세월에 씻어내고 텅 빈 마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그곳에 명상의 시간으로 충만하자. 나이 듦이란, 비천한 인생의 한계를 알고 참회와 감사로 채우는 시간이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눈 뜨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때이다.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이만하면 잘 살았다 감사하다.” 마음에 평강이 깃든다. 무한한 성찰과 감사 뒤로 하늘의 자비와 은총이 내린다. 태양빛으로 짱짱한 한낮도 아름다웠지만, 낙조가 들 때의 고혹함도 매력적이다. 생의 어느 한 곳 의미가 없는 과정이 있을까. 해가 많이 기울었다. 촘촘하던 시간도 그만큼 헐거워졌다. 동네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깊고 서늘해졌다. 누가 노래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남은 세월을 배웅해야 하리라. -소설가/ daumcafe/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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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3
  • 그때 왜 그랬어요
    코로나로 격리를 당할 때처럼 맹랑하고 황당한 적이 없었다. 2년 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강제당하면서 느낀 감정이 그랬다. 크게 아프지도 않은 몸을 생으로 묶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지난날 나도 꽤나 헤매고 살았다. 본래 인간은 헤매는 것이라지만, 헤매도 방향을 잡아 제대로 헤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많았다. 후회되는 일들은 모조리 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실수를 할까 봐 포기하고, 실패할까 봐 망설였고, 그러다 때를 놓치기도 했다. 가족 부양이란 책임 때문에 여건이 받혀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인생을 한 걸음씩 확실히 딛고 나갔어야 했는데, 어느 날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어 돌아보니 여러 풍경이 엇갈려 보였다. 내가 몰랐던 것, 간과했던 것, 알고도 못한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생살처럼 차오를까? 후회감이 고요한 마음을 휘저었다. “그땐 그랬었지.”, “그래, 그런 적도 있고.” “그땐 천둥벌거숭이일 때였으니까….” 까맣게 잊힌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풀려 돌아갔다. 나 홀로 집에 있던 그날, 심심파적으로 떠오르는 후회스러운 일들을 적어보았다. 두어 시간 동안 떠올린 것이 서른 개가 넘었다. 미래와 연관된 일이 열넷으로 가장 많았고, 주택문제가 일곱으로 뒤를 따랐다. 나머지도 대부분 사람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름 명분이야 다 있지만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길을 잘못 들더라도 시도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완벽하게 하려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헤매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2년 반을 맹하게 소진하고 지난여름, 부산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해운대와 자갈치 시장을 들려 저녁을 먹으면서 긴 시간을 친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져 호텔로 향하다 밤바다에 흐르는 네온 불빛을 보았다. 바다 건너 영도 쪽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불빛에 이끌려 시장 앞 광장에서 빛이 흐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밤물결 위로 찰랑이는 저 불빛…. 영도 앞바다에 떠있는 것은 일곱 자로 된 한 문장이었다. ‘그때 왜 그랬어요.’ 영롱하고 명징한 문장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자력에 끌리듯 마음이 도리질을 했다. 수면 아래 깊은 곳에 묻고 봉인해 둔 것들이 들썩였다. 섣불리 물에 손을 뻗었다가 파도를 일으킬까 봐 후회는 후회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묻어두었는데, 문장이 내뿜는 파장에 회한의 그림자가 영도의 불빛을 타고 흘렀다.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 “그때 왜 그러셨어요?” “그전엔 안 그랬잖아?” 아내가 묻고, 아들이 묻고,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친구가 물어왔다. 해운대를 다녀간 사람마다 저 물음 앞에 섰으리라. 떠난 사람에 대해, 실패한 일에 대해, 깨진 우정에 대해, 누구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자식을 떠올리고, 먼저 떠난 아내를 생각하면서 무수한 상념으로 갈래를 쳤겠지. 어느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를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로 표현했다. 그날 밤 나는 이 세 가지 슬픈 대답을 번갈아 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스러운 것들이 이 셋과 연결돼 있어서였다. 인생을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회한은 남는다. 굳이 성공한 삶을 따진다면, ‘때를 지켜 잘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어느 때를 지나는 지를 알고 그때를 자기 다움으로 잘 살아내는 것. 꽃이 때를 찾아 피듯이, 때를 지켜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모든 후회나 회한은 때를 잊거나 지키지 못한 데서 시작된다. 성경 말씀처럼 심을 때와 거둘 때, 세울 때와 허물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가 있다 했듯이. 이 시대의 아픔은 모든 세대가 자기 때를 지켜 자기다움으로 살지 못하는 데 있다. 젊은이가 꿈을 상실하고 세상 눈치나 슬슬 본다거나, 장년은 장년다움을 깨치지 못하고 박약하거나 맹종으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뿐인 때와 기회를 훅 날리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깃들 곳이 없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잘 익어간다는 것이고, 잘 익는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누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은유했다. 옻칠은 더할수록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종종 허무감에 젖을 때가 있다. 이룬 것이 없으면 허망한 생각이 더 빈번해지고, 마땅히 할 일까지 없으면 삶이 쓸쓸하고 우울하다. 이렇게 마음에 그늘이 들기 시작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도 찾아든다. 노년의 생은 이런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생각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잊혔던 것들이 살아나면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든 대로 때가 있고 삶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 내가 주인이라는 행세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더 지치고 고달파진다. 세상의 주인 된 삶은 후대에 내주고 나는 그들을 돕는 수단이기를 자원하거나,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나서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의 보람을 나에게서 찾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가 되어 줄 때, 삶의 기쁨과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부산 밤바다에서 일렁이던 그 문장. 진짜 내가 그때는 왜 그랬을까? 채워지지 않는 일상의 공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흔들려 보시라. 비린내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늙은 거리악사가 연주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애절한 선율을 들으면서…. 어둠이 깔리는 남포동 밤바다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부산이 주는 낭만이다.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을 이들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되고, 원망과 미움을 키운 사람들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의 말처럼 ‘사물의 가치는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바다를 떠날 때쯤 긍정적이고 희망찬 문장 하나쯤 건질 수도 있으리.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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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0
  •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 날 농사군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치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가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 게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욕심을 버려야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인다고 안개 걷힌다고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 내거라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산문시의 일가를 이룬 정진규 시인의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를 읽고 또 읽습니다. 입 안에 쌉쌀한 맛이 돕니다. 그리고 내다본 베란다 창밖으로 긴 장마에 짓무른 하늘이 파랗게 열리고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이 눈부십니다. 공기만큼 흔한 햇볕을 두고 ‘아깝다’는 표현을 거푸한 저 시어(詩語)는? 인간의 게으름을 탓하는 것일까. 어리석음을 나무라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을 놓고, 광복절 기념사를 놓고, 법무장관을 둘러싼 싸움에 여념없는 여의도 사람들, 그들은 햇볕에 관심조차 없어요. 물에 잠겼던 논밭을 건수하랴, 무너진 집을 복구하랴, 가재도구 씻고 젖은 옷가지를 말리랴... 한줌의 햇볕과 한 뺨의 시간이 아까운 때입니다. 장독도 열어놓고 이불도 널고 눅눅한 책들도 꺼내 포쇄하는 데, 사람만 젖은 몸을 말릴 줄 몰라 해요. 열매 살려내는 햇볕, 곰팡이를 말리는 햇볕, 그 귀한 것을 버리고 있다니 당치도 않다는 얘기입니다. 지천에 놀고 있는 것이 햇볕인데 아깝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시부렁대면서 살진 않느냐고 묻습니다. 경험한 사람만이 생명을 살리는 햇볕이 귀한 줄을 압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놀랍게도 죽비처럼 어깨를 때립니다. “사람아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 내거라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아깝다 한다” 정진규 시인은 ‘몸시’ ‘알시’ 같은 특유의 시 세계를 열었습니다. 시인과는 3년간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일한 인연이 있어요. ‘마른 수수깡의 평화’ ‘들판의 빈집이로소이다’ 같은 초기 시집을 내던 때입니다. 이후로 ‘현대시학’의 주간을 25년간 맡아 시단 발전과 신인 육성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여기서 그의 시 하나 더 ‘서서 자는 말’을 봅니다. 내 아들은 유도를 배우고 있다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했다 낙법만 배웠다고 했다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네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이태 동안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다 한 번 넘어지면 그뿐 일어설 수 없다고 세상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나는 서서 자는 말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구나 흐르는 물은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밤마다 꿈을 꾸지만 애비는 서서 자는 말 2년 동안 아들은 넘어지는 연습만 하고, 아버지는 서 있는 연습만 했다는 대칭이 마음에 끌질을 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온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초상이겠지요. 잠들어도 눕지 못하고 서서 자는 말의 일생이 아버지의 회한과 닮았습니다. 그래도 잘 넘어지는 것이 잘 일어나는 이치를 터득한 아들을 두었으니 위안입니다. 사람은 떠나야 그리움이 커지나 봐요, 시인의 3주기(9.28)가 눈앞입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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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6
  • 몽골평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낙타떼
    내 지인은 몽골의 별밤을 회상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향수에 젖습니다. "난 혼자서 몽골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몽골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정으로 몽골을 알려면 초원이 부르는 바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는 유하의 시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를 이렇게 변주했어요. ?나 어느 날 내가 사는 초원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어느 날 나의 초원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승마여행 중에 만난 초원의 무지개와 신비의 구름과 바람들. 광야에 핀 꽃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노을, 이 모두가 소리 내어 나를 찾는 곳. 그곳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망이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어요. “줄이고 또 줄여본다. 견디고 또 견뎌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접어야 할지 말지. 이 현실이 어지럽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이동이 곧 우리의 미래인데. 어느 날 그 이동이 막혀버렸다. 하늘길, 땅길, 물길도 모두. 텅 빈 인천국제공항에서 인간의 역사가 멈춤을 보았다.” 오늘은 17년간 몽골 초원을 함께 달린 낡은 모자 사진도 올렸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징기스칸’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글이 떠오르네요. “빵을 먹는 자 길을 내고, 밥을 먹는 자 마을을 만든다.” 이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계속 걷는 것은 희망이 보여서가 아닙니다. 계속 걸어야 희망이 보여서 입니다.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나,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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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3
  • 100년 짓는 천진암 성지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매년 2천만 명이 찾는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가우디성당)’ 앞에 서면 그 웅장함, 화려함에 놀라지만 지금도 짓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져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설계로 1882년 착공해 ‘가우디사망 백주년’에 맞추어 2027년 완공 예정이랍니다. 바티칸이 모든 성당은 베드로성당보다 낮게 짓도록 했지만 가우디성당의 예술성을 인정해 예외로 했다는군요. 수많은 첨탑 중에는 예수의 사도를 상징한 높이 100m 탑 12개와 예수를 상징하는 높이 172m의 중앙 탑이 있어,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 될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우리도 100년 짓는 건축물이 있으니까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성역화 사업으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 세워지는 ‘천진암 성지’가 벌써 착공 40년을 바라봅니다. 1995년 7월 24일 일기에는 18만평 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연 만평짜리 천진암 성지사업이 적혀 있어요. 1983년 착수해 설계와 터닦기로 30년, 골조공사 20년, 내부공사 50년, 해서 ‘100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본성당 대지 전경 초대 추진위원장 변기영 신부는 유럽의 로테르담성당, 성 베드로성당을 예로 “우리는 너무 당대주의에 사로잡혀 매사를 단시일에 해내려고 무리한다”고 무모한 집착을 꼬집었어요. 내 임기에, 내 생전에, 완공하려다가 졸속으로 끝난 일이 적지 않으니까요. 독립기념관은 5년 만에 완공하고, 예술의 전당은 3년 만에 뚝딱 짓는 그런 졸속공사는 이제 시정돼야 겠지요. “건물을 짓는 데는 건축기술 외에 반드시 세월이란 원료가 가미돼야 한다” 는 변 신부의 말은 울림 그대로입니다. 이후 건립위원회 총재를 맡은 김남수 신부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바뀌어도 사업은 계속 되는 풍토, 세대는 바뀌어도 역사는 전승되는 문화가 아쉽다”는 안타까움은 우리사회가 성찰해야 대목입니다. 한국기독교사에는 많은 순교의 피가 흐릅니다. 서울 마포 한강변의 절두산 성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가면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묻혀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로 답을 찾은 분들입니다. 한국 가톨릭이 자부심을 갖는 데는 외국 선교사에 의한 복음 전파가 아닌, 가톨릭사에 유래가 없는 자생적 발상이라는 점이지요. 천주교회의 100년 성역사업 현장 안내판에 이러한 자부와 긍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파견과 복음 전파 없이 순수한 학문 탐구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신앙으로 발전시켜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자랑스러운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우리나라 공식적인 천주교의 시작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1784년이나, 이보다 7년 전 권철신이 이끄는 학자들이 천진암과 주어사를 오가며 강학모임을 열어 조선 천주교의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어요.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등 5인이 창립 선조입니다. 규모는 성지안내도가 짐작케 해줘요. 광암성당, 대성당건립터, 천진암강학터, 200주년기념비, 한국천주교창립 성현5위 묘역, 조선교구설립자묘역, 성모경당, 세계평화의 성모상, 박물관 등 순례에만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핵심인 천진암 대성당은 1987년 터 닦기공사를 시작으로 1992년 대성당 터를 축성해 2079년 완공할 계획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천국열쇠를 든 베드로 동상과 마주칩니다. 석양을 받아 신비감을 더하네요. 천진암 성지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1996년, 2007년, 2020년,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아직도 세월이란 원료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멈추어 선 곳,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종이 울리면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떠오릅니다. 100세를 살아도 준공된 모습은 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조감도로 완공 후의 현장을 상상하며 돌아갑니다. 옛날에, 자신이 묻힐 곳을 미리 보고 뒤돌아서시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떠오르네요. 유한한 인생을 생각했나 봅니다. (이관순 소설가/daum cafe/ leeletter) 13.2 몽골평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낙타떼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내 지인은 몽골의 별밤을 회상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향수에 젖습니다. "난 혼자서 몽골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몽골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정으로 몽골을 알려면 초원이 부르는 바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는 유하의 시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를 이렇게 변주했어요. ?나 어느 날 내가 사는 초원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어느 날 나의 초원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승마여행 중에 만난 초원의 무지개와 신비의 구름과 바람들. 광야에 핀 꽃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노을, 이 모두가 소리 내어 나를 찾는 곳. 그곳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망이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어요. “줄이고 또 줄여본다. 견디고 또 견뎌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접어야 할지 말지. 이 현실이 어지럽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이동이 곧 우리의 미래인데. 어느 날 그 이동이 막혀버렸다. 하늘길, 땅길, 물길도 모두. 텅 빈 인천국제공항에서 인간의 역사가 멈춤을 보았다.” 오늘은 17년간 몽골 초원을 함께 달린 낡은 모자 사진도 올렸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징기스칸’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글이 떠오르네요. “빵을 먹는 자 길을 내고, 밥을 먹는 자 마을을 만든다.” 이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계속 걷는 것은 희망이 보여서가 아닙니다. 계속 걸어야 희망이 보여서 입니다.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나,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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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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