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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왜 향기가 나는가
보이는 건 사라지고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나니, 사라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라…. 그래서 이상향을 꿈꾸고 천국 같은 내세를 연모하지만,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미련을 못 놓고 자꾸 뒤를 돌아본다. 5년 전 친구 손에 잡혀 처음 지리산 종주를 할 때의 기억이다. 천왕봉에 오르기까지 밟는 발자국마다 설렘이고 기쁨이었다. 그중에도 나를 가장 놀라움으로 빠뜨린 것은 연하선경을 지나며 만난 들꽃 무리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 고봉준령의 찬 밤바람을 맞으며 어쩌자고 꽃을 피웠을까. 철없이 덜컥 임신한 소녀를 보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앉아 작은 꽃들을 바라보았다. 산바람에 연신 몸을 누이면서도 여린 자태와 몸짓은 사랑의 언어로 충만했다. 들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절절히 재우친 시간이었다. 심심산골에 핀 작은 꽃도 찬찬히 관찰하고 가슴으로 안다 보면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길 가에, 들판에, 시골 밭두렁에 아무렇게 핀 이를 모를 풀꽃들과 눈을 맞추는 일은 살가운 일이다. 얼핏 하찮아 보여도 끈기 있게 사랑의 눈길을 건네다 보면 어느새 더없이 귀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때마다 풀꽃이 내 손등을 간지럽히며 실눈을 뜰 때, 가슴에 활짝 피어나는 꽃향을 느끼며 편안한 쉼을 얻는다. 좋아하는 우리말 중에 으뜸은 ‘꽃’이다. 철 따라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꽃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토담집, 산막, 폐가에도 피는 꽃이지만, 애어른 구분 없이 심신에 평안을 주고 낙심한 사람에겐 위로의 말을 건네며 토닥여준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데 꽃만 한 선물이 또 있을까. 때마다 곳마다 시의적절하게 꽃다발, 화환, 꽃바구니, 꽃병과 같이, 각양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꽃은 그대로가 사랑과 위로, 기쁨과 축복의 메신저다. 내가 꽃의 존재에 처음 눈 뜬 것은 중3 때였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대하면서였다. 천천히 읽고 또 읽고를 거듭하다가 나도 몰래 코끝이 찡해 옴을 느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시구에는 마음에 쟁여 놓은 말들을 다 쏟아놓은 듯했다. 시인은 무엇을 꽃으로 불렀을까? 어떤 꽃을 콕 집었을까? 아니면, 사람을 부른 것일까? 물음에 물음을 잇대면서 나의 동공 속에 자라는 건 한 소녀의 얼굴이었다.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덩이 같기도 하고, 막 쪄낸 햇감자의 우윳빛 속살 같기도 한, 뽀얀 단발머리 얼굴이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라고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이 말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노라면 못난 얼굴이 따로 없고, 모두가 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내가 소녀의 이름을 부를 때 꽃이 돼 나에게 오듯 소녀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나도 꽃이 되겠구나. ‘꽃’은 그렇게 어린 나에게 다가왔다. 그 소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딱 한번 만났다. 여름방학이 돼 시골집으로 가던 대전 역에서였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만남이 한 번이라고 잊히는 건 아니다. 그 뒤로 더는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도, 여름방학이 돼 시골집에 들어설 때면 그때처럼 장독대엔 박하꽃이 피었고, 스피아민트 향은 그때를 더 아련하게 해 주었다. 여름이 올 때마다 늘 기억을 되살려주던 박하꽃.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면, 그 소녀가 지닌 아름다움 역시 소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에 있겠지. 보인 것은 사라지고 찾으려면 보이지 않아도, 나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저 둥근달을 그녀도 볼 것이고, 추억은 생물이기에 공동의 추억은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줄 테니까. 다시 詩 하나, 나태주의 ‘내가 너를’ 떠올린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모른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삶은 집 짓기와 같다. 큰 극장을 지을 때는 기둥의 간격을 최대한 벌려서 세워야 기둥 사이로 울림이 오롯이 살아난다. 무너진 신전에 듬성듬성 서 있는 기둥을 보면 안다. 기억도 핵심기둥만 받쳐지면 울림과 떨림은 시공을 넘어 더 아득하게 웅숭깊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뭔가를 더하면 더할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비울수록 깊고 긴 여운을 느끼게 될 테니까. 추억이 아름다운 건 시공을 뛰어넘는 향기 때문이다. 첫 만남이 있던 날, 돌아온 우리 집 장독대에서는 박하꽃이 잔뜩 박하향을 뿜고 있었다. 박하꽃 앞에서 향에 취하다 꽃을 보고 나직이 그 이름을 불렀다. “박하 향기가 너의 기억을 찾을 때, 어디선가 박하향이 나거든 내가 왔다 갔구나 생각해 줘.” 감성이 풍요로웠던 시절, 일기장에 남긴 내 마음의 흔적이다. 참 오랜만에 맡아보는 풋풋한 날의 꽃향기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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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아이가 피아노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었나 봐요. ‘코로나’로 시작된 교습 중단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에 나름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전화를 끊고 난 아이 표정이 밝지 못해 엄마가 묻습니다. “뭐라시든?” “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문을 열 수가 없대요.” 뭐라, 세상이 아프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어? 어쩌면 우리가 처한 아픈 상황을 저리도 센스있게,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얼굴도 마음도 다 예쁠 것 같습니다. 사방에 모두 아픈 사람뿐입니다. 전철에도 거리에도 버스에도 성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신음하는 모습들입니다. 얼굴을 온통 붕대로 칭칭 감은 사람들이 타고 내립니다. 오늘 전철에서 입 코 양 볼을 덮은 마스크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모자까지 눌러 쓴 한 여성을 봤어요. 뚝 떨어진 외계인 같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 같기도 합니다. 앞자리 그 여성을 보다 갑자기 사람이 죽어 염할 때 모습이 떠올랐어요. 신체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틀어막는. 그러다 갑자기 저것도 패션이란 생각을 했어요.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서 올해는 어떤 패션이 또 등장할까? 몸이 아프면 말하는 것부터 귀찮죠. 말을 거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도 싫습니다. 간섭은 물론이고, 누구랑 눈 맞추고 싶지도 않아요. 세상 일에 눈 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멀리하고 싶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조카는 상가에 들릴 때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를 틀어막는 일부터 한대요. 입, 귀 다 막았으니 ‘말 시키지 마세요.’ 무언의 사인입니다. 마스크가 갑갑은 해도 이런 심리적 방어벽을 치는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불편해 하는 세대가 늘어납니다. 낯선 사람이 불쑥 말을 걸어올 때, 피하고픈 충동부터 생기나 봅니다. 지인이 지하철에서 딸이 새로 사준 스마트 폰을 익히다가 옆 자리의 아가씨에게 물어보려고 ‘이것 좀’ 하는데, 벌떡 일어나 가버리더랍니다. 이 기막힌 상황에 황당해진 지인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세태 탓으로 자위합니다. SNS 소통이 워낙 대세이다보니 통화 공포증 (call phobia), 대화 공포증(talk phobia)을 부르나 봅니다. 나이 들면 사람도 비슷해집니다. 예전엔 외출할 때 시계부터 챙겼는데 어쩌다 놓고 나가면 종일 손목이 허전함을 느꼈지요. 지금은 마스크, 핸드폰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이어폰이 추가됐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사는 손녀에게 “네게 이어폰은 어떤 존재냐?” 물었더니, “얘 없인 하루도 못 버티는 내 고막 절친”이라네요.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은 불안불안하다는 게 또래들 생각이랍니다. 귀에 꽂혀 있지 않으면 불안을 키우는 이어폰. 주변을 둘러보세요. 출퇴근길 전철과 버스, 카페, 어딜가도 귀를 틀어막고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납니다. 전에는 예의를 차린다고 윗사람 앞에선 모자부터 벗었는데, 요즘엔 귀에서 이어폰을 뽑지요. 주변에 신경 안 쓰고 오롯이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 공부나 일할 때 구분 없이 낀다해요.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혼밥 혼술처럼 혼자일 때가 편하다는 생각이 소리도 골라듣겠다는 청각의 개인주의”로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가 장·노년층에도 보편적 가치로 확대됐습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탓할 바 아니나 더불어 사는 사람의 가치나 영역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 아파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사람이 사람 만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면 결혼은 더 기피할 테고, 대신 외로움을 나누려는 욕구는 엉뚱한 곳으로 분출할 수밖에요.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애완견이 반려견이 되고, 인공지능이 발전해 로봇이 사람의 고유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그러다 창의성, 감정, 기억까지 공유하는 날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과부대끼며 사느니 ‘반려로봇’과 살림을 차리는 그런 세상은 아닐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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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하늘이 내린 선물
살면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단어가 희망이고, 피하고 싶은 단어가 고통입니다. 단테의 ‘신곡’엔 ‘지옥의 문’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희망은 모두 박박 긁어 버리라고 하죠. 지옥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오래전 대상포진으로 큰 고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넘는 치료과정에서 겪은 통증의 기억은 10년이 다 된 지금도 ‘대상포진’이란 말에서 조차 신경이 써집니다. 중추를 칼끝으로 헤집고 침이 곳곳의 피부를 뚫어대는 통증에 한바탕 진땀을 흘리다보면 고통도 잠시 쉴 때가 있습니다. 그때 먹고, 웃고, 수다도 떨지만 다시 올 고통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해도 고통의 강도가 센들 회복이 주는 기쁨만 할까. 여자가 겪는 산고도 마찬가지겠지요. 입덧이 나면서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짊어지는 고통을 남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산실 밖에서 기다리다 조는 남자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산고가 심한들, 새 생명의 탄생이 주는 환희에 비할까. 그 고통을 겪고도 둘째, 셋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희락과 기대가 훨씬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낳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 힘들 텐데, 그 때문에 양육을 포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받은 고통의 수천만 배를 더 얹어 자식들을 사랑합니다. 자식의 혼사를 끝내고 속 시원하다는 말은 다 겉치레 수사입니다. 여전히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손수건을 꺼내듭니다. 천방지축이던 것이 언제 저렇게 성장해서 제 가정을 이룬다는 사실에 한 없이 파도치는 것은 감동과 감사뿐이지요. 세상이 온통 다 변했다 해도 고통의 질과 양은 옛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피하고 싶은 것이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태도를 바꾸고 그 속으로 뛰어들지요.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겪다’와 동의어입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한 고통은 불가피 하니까요. 꽃도 흔들리며 피고 바람에 눕는 풀도 아프긴 마찬가지입니다. 통증의 신호가 잘 전달돼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 고통이 지겹다고 감각 신경을 제거해버리면 통증을 잊을지 몰라도 신체 어딘가에 마비를 부릅니다. 한 의료 선교사가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다가 겪은 이야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발에서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감염을 의심할 수밖에요. 발에 주삿바늘을 여기저기 찔러보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가 밤새 홀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단 한 가지뿐. “주님, 제게 고통을 돌려주세요! 통증을 느끼게 해주세요!” 그제사 비로소 통증이 생명에 없어선 안 될 하늘이 내려준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무엇일까? 지금 내가 겪는 이 고통도, 이 역경도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옛 어른의 가르침은 결코 빈말이 아녔어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인생도 생명의 탄생에는 고통이 있고 성숙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갓 핀 국화송이가 전합니다.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었다고 해요. 이듬해 봄이 됐어요.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에 잎과 가지는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첫 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음해도 그다음해도 꽃은 피지 않는 걸 보면서 비로소 알았답니다. 혹한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음을. 저온을 거쳐야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이라고 하는데 진달래, 철쭉, 튤립, 백합, 라일락 등이 이에 속한답니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 보다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가 수확도 많고 맛도 좋은 이치와 같아요.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풍성하고 더욱 견실해집니다. 사람도 고난을 많이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인생의 깊이가 다릅니다. 무르익은 누군가의 인생이 부럽다면 그의 고난부터 이해할 일입니다. 지금 겪는 내 고난을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통증’이 몸이 건강함을 알리는 신호듯이 그 고통이 나를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일 수 있으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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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내 스펙이다.
현실에 지쳐 희망을 접었다는 학생이 연구실로 교수를 찾아왔다. 가난한 환경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 왔는데 부족한 성적 때문에 기업의 해외연수생 모집에 응시를 못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잠 안 자고 안 먹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지금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낙심했다. 교수는 그 학생의 성실한 생활 태도를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스승은 학생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까.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다. “네가 살아온 삶이 네 스펙이다.” 일단 접수부터 하라고 권했다. “학점이 'all B' 이상여야 하는데 'C'가 하나 있어요.” 스승이 제자 등을 두드리며 “학점이 다가 아니다. 너는 너만의 스펙이 있잖니? 힘을 내라. 추천서는 내가 해주마.” 결국 학생은 스승의 정성 어린 추천서 덕에 선발되었고, 1년 연수를 성실하게 마치자 곧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런던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살아온 것이 내 스펙’이라고 알려준 스승의 한마디가 절망의 어둠 속 인생을 부활시킨 것이다. 스승의 그 한마디에 열등을 치유하고 온전한 자유를 찾은 제자는 런던에 부임한 첫날밤, 비 오는 테임즈 강가에서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스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어둠은 순식간에 희망, 꿈, 환상, 미래까지 다 덮어버리지만, 천년의 어둠도 한 줄기 빛에 날아간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 영화 ‘미션’ 첫 장면에 떠오르는 자막이다.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 같이 붙어 있다. 문제는 내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느냐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과 역경이 따라붙지만 그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어딘가에 열려 있다. 인생이 매력적인 것은 ‘고난을 거듭할수록 지혜는 쌓이고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막을 여행하다 쓰러지는 사람은 대개 오아시스를 눈앞에 두고있다고 한다. 시련의 시간을 좀만 더 견뎌냈더라면 찾을 텐데. 이 고통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지상의 언어요 약속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해 줄까? 나는 나다운 멋이 있고 재능을 지닌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이다. 이것이 자존감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존심과는 다르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이가 역경에서 이긴다. 주눅 들지 말고 어깨를 쫙 펴고 걸어가자. 때가 되면 ‘나 자신’이 바로 비장의 무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완벽한 정보는 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거나 패한 것에 있다.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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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시름에 찬, 여름 한(恨) 세월이 간다 폭우 속에 잠긴 집들 산사태에 쓸려간 삶의 터전들 둑은 터지고 다리는 끊어지고 지붕 위로 올라간 소의 수난까지 아버지가 물 빠진 쓰레기 속에서 사진액자를 찾아들고 수건으로 훔치고 한참을 본다 단란했던 시절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속에 일곱 가족이 웃고 있다 넥타이 매고 행복해하는 아버지 오빠가 암으로 이승을 뜰 때도 아들이 힘들다며 어머니가 요양원을 자원할 때도 가족은 웃었다 웃음 속에 흐르는 애잔함이란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이다 백로(白露)가 가까워진 아침 풀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뜨락 위로 부는 바람은 정갈하고 계절은 이처럼 쉽게 오가는데 아직도 웃고 있는 가족들... 지금은 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함지에 가득 물을 받아놓고 현관에 흩어진 신발을 닦아야지 씻고 헹구고 물기를 털어서 가지런히 줄을 세워 말려야지 신발장 위의 박스는 내려서 그 속의 신발은 꺼내놓고 여름 신발은 담아서 올려야지 신발장이 정리되는 동안 신발은 새집에 들어갈 생각에 한가슴 부풀고 산만했던 마음은 가을바람에 살포시 부풀고.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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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간을 지배할까
천고마비(天高馬肥). 말이 살찌는 계절, 말만 들어도 평화로운 초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몽골을 경계해온 중국에는 평화보다 긴장을 상징합니다. 원기를 회복한 몽골족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몽골을 늘 경계해 왔어요. ‘몽고’라는 국호로 얕잡아보면서도 그들의 전술 전략에 수없이 농락당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북방 유목민족을 경계하고자 만리장성을 쌓고, 동북 부족 때문에 천리장성을 축성했을까. 알려진 대로 칭기즈칸의 몽골은 한 때 1억의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막강한 제국이었죠.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까지 그들의 말발굽 아래 수많은 나라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와중에 국가의 명패를 지킨 나라는 고려뿐입니다. 형제의 맹방이라고 의리를 지켜주어서죠. 유목민족인 몽골이 고려를 맹방으로 우대한 것은 한반도가 몽골족의 후예라는 연대의식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큽니다. 유독 한국인 신생아의 엉덩이의 시퍼런 반점을 ‘몽골리안 마크’로 불린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21세기 문명이 새롭게 유목 문화를 주시합니다. “집을 짓고 사는 자, 다 망한다”라고 한 몽골 장수 돈유 코코 말처럼, 누가 시간을 지배하느냐라는 인류의 초관심사가 IT 문명과 맥이 닿아서입니다. 그동안 문명의 쥬류인 정착 민족의 관심은 ‘누가 공간을 제어하며 사나?’ 였다면, 유목 문화는 ‘누가 시간을 제어하며 사느냐?’에 있습니다. 이는 수직적 위계사회가 수평적 위계사회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한국인의 유목성 기질을 분석한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이를 보면 우리도 다분히 유목민 DNA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합니다. 그 하나로 <활쏘기>를 꼽았어요. 우리나라 양궁이 유달리 강한 이유를 유목민 기질에서 찾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세요. “얼마나 말과 활을 잘 다루면, 달리는 말에서도 뒤를 향해 쏠 수 있을까?” 고구려 시조 주몽의 뜻이 ‘활을 잘 쏘는 자’란 점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골프> <바둑>에서도 빛나는 유목 기질을 찾습니다. 바둑은 어떤가요? 수직적 위상으로 설정된 장기나 체스와 달리 바둑은 수평적 위상에서 출발합니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장기와 달리, 바둑은 끝까지 가봐야 승부가 납니다. <이동통신> 발달은 보다 뚜렷한 우리민족의 장점이 투시되어 있습니다. 이동통신 세계 3대 보급률 국가인 한국, 핀란드, 스웨덴의 공통점은 몽골리안 계란 점입니다. 유목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속 풍습> 중엔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많아요. 단오, 삼짇날, 천렵, 단풍놀이가 그렇습니다. 유목성에는 남의 마을, 이웃집에 대해 늘 궁금함이 있습니다. 옛날엔 발품을 팔고 귀동냥으로 알아챘지만, 지금은 애어른 구별 없이 핸드폰을 들고 궁금증을 풀잖아요. <음주문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양 음주는 스스로 따르고 마시는 자작(自酌)문화지요. 우리도 농경사회 땐 비슷한 자배(自杯)를 즐겼지만, 서서히 돌려마시는 순배(巡杯)로 바뀌면서 ‘우리는 하나’를 외쳐댑니다. 몽골 음주습관은 각배(角杯)예요. 좌장이 병권을 쥐고 뿔로 만든 각배를 돌려 마십니다. 이동하는 짐을 줄이기 위해 한 사람만 술잔을 지닙니다. 그것이 이동에 효능임을 아니까요. 몽골대학의 졸업식은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처럼 졸업식장에 모여 끝내지 않고 계속 이동하며 행사를 이어가죠. 오전 졸업식, 점심 호텔, 오후에 학교로 이동, 다시 야외로 나가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즐깁니다. 우리가 1·2·3차로 술집을 순례하고 폭탄주를 돌리는 것에도 유목문화의 이동성이 잠재돼 있는 걸까?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건, 빨리 끝내고 떠나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은 아닐까? <고스톱>도 같은 관점에서 봤어요. 일반 화투는 위계질서가 분명하지만 고스톱은 ‘광’과 ‘껍질’이 동등한 반열에 서 있습니다. 왕이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승패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죽기도 하니까. <춤사위>는 어떨까요? 어깨춤, 관광버스춤, 말춤, 위아래로 흔드는 마상 춤사위 등 시간·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합니다. 한국경제의 급성장엔 <빨리 빨리>라는 주술이 작동했지요. 1년에 초장을 찾아 네 번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최대 관심은 빨리빨리 다음 초지를 찾는 일입니다. 21세기는 시간을 제압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신 유목시대입니다. 그러니 ‘싸게 싸게’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치워야 합니다. 영화 <친구>의 패러디 대사처럼 “이제 마이 머물렀다 아이가. 고마 퍼뜩 떠나재.”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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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들
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사교모임을 즐기는 미국의 한 상류층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침실이 여섯 개나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날도 저녁 파티에 참석할 준비에 들떠 있었습니다. 막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뜻밖에도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어머니, 방금 제대하여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오, 아들! 네가 살아 돌아왔다니 정말 기쁘구나. 언제 집에 오느냐?” 어머니가 기쁨에 넘치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빨리 갈게요. 그런데 집에 내 전우 한명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여부가 있냐. 내가 환영해 주마. 그 친구도 데리고 오너라.”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어요. “어머니, 그런데 제 친구는 두 다리가 절단되고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귀 하나와 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매우 흉한데, 딱히 갈 집이 없답니다.” “그래?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같이 쉬면서 갈 곳을 찾아보자.” 아들은 감사하다면서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승낙을 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그가 우리 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게 하고 싶거든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당황한 기색입니다. 그녀는 황급히 아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건 안 된다. 친구의 딱한 사정은 백 번이고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마냥 있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실 테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깊게 생각을 해보렴. 동네 사람들은 무어라고 할 것이며 네 아버지가 이를 허락하시겠니? 친구는 나라가 적절한 예우로 사는데 지장 없게 돌봐 줄 거다. 마침 연휴도 다가오니 너나 빨리 집에 돌아와서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휴가를 즐기도록 하자.” 그 말에 아들이 침묵하면서 대화가 끊겼습니다. “아들아, 내 말 안 들리니? 아들아?” “띠띠띠......” 어머니는 먹통이 된 전화통에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전화가 통화 중에 끊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전화 오기를 기다렸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어요. 초조하게 시계를 보던 부부는 할 수 없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부재 중 전화 메시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메시지는 없고 대신 캘리포니아 한 카운티 경찰서에서 온 녹음된 메시지 하나가 기다라고 있었어요. 이건 뭐지? 알지도 못하는 경찰서에서 왜? 이상한 예감이 든 어머니는 다급히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마을로 먼 길을 달려서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경찰서장이 부부를 앉히고 침통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여기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고 눈과 귀가 하나씩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어서요.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의 신원증명서를 보니 당신의 아드님인 것 같습니다.” 미국 전쟁사에 기록된 가슴 아픈 사연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그 어머니를 탓하기가 쉽겠죠. 그러나 막상 우리가 그 어머니였다면 달리 어떤 처신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어머니는 평소에 자원 봉사도 열심히 하고 교회의 자선 사업에 앞장 서서 적극 참여한 여성이었습니다. 월남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미국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미군 5만8천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낸 월남전은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부작용을 불러왔지요. 히피족이 등장한 것도 실은 월남전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당한 부상보다 더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은 사회의 냉대였습니다. 자신의 참담한 모습과 마주하게 될 부모님의 절망하는 모습이 두렵고 무서웠던 아들은 집을 찾기 전에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의중부터 살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깊은 고뇌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지요. 어머니의 선을 긋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그리워한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저장된 자랑스러운 아들의 이미지를 지켜드리고 싶은 아들이었을 테니까요. 가정의 달엔 가족 간의 이동과 모임으로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양지가 환할수록 한쪽으로 그늘이 짙어집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들뿐이 아닙니다. 아버지일 수도, 엄마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도는 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랑에 굶주려 있는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겐 5월의 웃음소리가 가슴 저미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금년 5월에는, 우리 가족 이름으로 그늘진 이웃을 헤아리고 살피는 작은 무엇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가정의 달’로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아서···. 한 뼘 그늘을 지우는 빛이 되기도 하겠죠.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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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으로 보내는 여름편지
푸른 바다에 갈매기들이 온다 여름 한철 내내 사람들에게 바다를 내어주고 떠나갔던 갈매기 가족들이다 사람들은 갈매기를 쫓아냈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갈매기들은 잠시 바다를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바다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동안 먼바다로 나갔던 물고기들은 해안으로 돌아오고 짓무른 모래밭도 파도에 씻기며 다시 편안한 제 몸을 찾는다. 모래밭에 새긴 사랑의 발자국들 뜨겁게 일렁이던 욕망의 그림자 모두 다 지워내고 이젠 고요의 시간으로 돌아갈 때 바다가 바다로 돌아가듯 이젠 마음의 서랍을 정리할 시간 여름 내내 눅눅했던 마음은 볕에 내다 말리고 현관에 널린 신발은 씻어 올리고 때로 얼룩진 시간은 닦아내고 이슬... 풀꽃... 사랑... 감사... 그런 착한 말들로 가지런하게 마음을 정돈하고 싶다 바다에서 돌아와 신발을 벗을 그대를 위하여 함초롬히 이슬에 젖어 올 가을을 위하여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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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오네
올여름, 낭만은 없었다. 미쳐 돌아가는 염천 아래로 극한 폭염과 극강 호우,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에 급급해야 했던 올여름은 애초 낭만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푹푹 찌는 날씨에 세 시간 걸리는 열차에 몸을 실은 건 여수 밤바다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어둑한 밤바다를 보며 넘실거리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에, 읊조리듯 속삭이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상상했다. 이 노래는 이명박 정부가 그 당시 잘 나가던 장범준에게 여수엑스포를 띄워줄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나온 노래다. 그런데 웬걸 수많은 ‘낭만 포차’에선 아이돌 그룹 노래가 고막을 때렸다. 늘 기대는 70~80%에 놓아야 하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았다. 시어터진 갓김치를 우적우적 씹다가, 밖으로 나와 조명 없는 곳에 걸터앉아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내 모습이 좀은 청승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아, 그렇구나. 이제 내가 살았던 세상의 낭만이 기댈 곳은 좁다랗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연 나흘째 동해안을 훑으며 차를 몰고 주유천하 중인 대학 동창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는 지치지 않고 좌충우돌한 그날의 에피소드를 뚝딱뚝딱 만들어 카톡에 올렸다. 본인은 괜한 화장발을 올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내 주변에 몇 남지 않은 '서정파'이자 유일하게 남은 '낭만가객'이 아닌가 싶다. 댄스면 댄스, 노래면 노래, 운동이면 운동(테니스, 탁구, 수영), 더하여 사람까지 좋아해 새벽부터 밤까지 그가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즐기는 것만 꼽아도 열 손가락은 펴야 한다. 그 나이에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길 줄 알고 사랑하며 힘써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를 보며 잘 놀고 즐기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는 걸 생각한다. 세상에는 ‘기다리는 것’과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다가 스친 것이다. 늘 생각했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의 입장으로 생각을 비틀어 보았다. 극 중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고도야 말로 오히려 그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초조함보다 불안과 긴장이 더 크지 않았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 막 뒤에서 느끼는 배우들처럼. 분명 고도는 어딘가에 오고 있다. 그 점만은 진실이다. 단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기다려지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다. 고도의 존재는 온전히 그를 기다리는 사람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남보다 만남 이전의 기다림의 시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려 본다. 갑자기 ‘고도를 기다리며’를 생각한 것은 순전히 가을 탓이다. 오후 들어 한바탕 소나기가 훑고 지나간 산능선 위로 뭉게구름이 해맑은 하늘에 떠 있고, 그 푸른 하늘 끝에 물린 검단산 자락이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처서(處暑)가 지난 지도 닷새째다. 이제 모기 입은 삐뚤어지고 풀은 더 이상 웃자라지 않는다는 자연의 신호를 사람들은 알려주지 않아도 감지할 줄 안다. 여전히 한낮 더위는 쨍쨍해도 높이 뜬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가을이 스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서 계절의 박동을 느낀다. 우리가 여름에 지쳤던 강도만큼 기다림을 키워온 가을이기에,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오늘은 안 오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차질 수밖에… 그래서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고 좋은가 보다. 처서가 지나면서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소슬하고 풀벌레 우는 밤이 가깝게 다가온다. 풀잎에 이는 바람의 숨결이 다르고, 꽃잎마다 달린 아침 이슬이 영롱하니 빛난다. 길가에 갓 피어난 코스모스가 생글생글 웃음 지며 하늘하늘 속삭이는 것도 이맘때 풍경이다. “나 많이 기다렸나 봐? 조금만 기다려. 다 왔어.” “어서 와. 팔월도 낼모레가 끝이야.” 8월의 밑동을 바라보는 사람들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 같다. 떠나는 여름에 대한 원성만큼 상대적으로 커진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기다리는 사이, 남은 여름의 잔해부터 마무리하자. 눅눅한 옷가지는 햇볕에 보송하게 말리고, 장독대는 독마다 뚜껑을 열어놓고, 책들은 거풍 시켜 책갈피로 스민 습기를 날려야겠다. 이제 여름은 가고 가을이 대세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밤공기는 더욱 서늘해질 것이고, 텃밭에 내린 아침이슬이 바짓가랑이를 휘적실 테니까. 계절은 이처럼 쉽게 가고 오는데, 우리는 또 얼마나 어렵게 고단한 삶을 준비해야 하는지. 문득 여수 밤바다에 떠올랐던 둥근 달이 생각난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날 밤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두 대교의 불빛이 아련하고 아득하게 흔들린다. 기다림의 기쁨도 아쉬움의 작별도 쓰라린 아픔까지 지나고 나면 늘 그리워지는 법이다. 어느새 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보인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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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왜 향기가 나는가
- 보이는 건 사라지고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나니, 사라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라…. 그래서 이상향을 꿈꾸고 천국 같은 내세를 연모하지만,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미련을 못 놓고 자꾸 뒤를 돌아본다. 5년 전 친구 손에 잡혀 처음 지리산 종주를 할 때의 기억이다. 천왕봉에 오르기까지 밟는 발자국마다 설렘이고 기쁨이었다. 그중에도 나를 가장 놀라움으로 빠뜨린 것은 연하선경을 지나며 만난 들꽃 무리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 고봉준령의 찬 밤바람을 맞으며 어쩌자고 꽃을 피웠을까. 철없이 덜컥 임신한 소녀를 보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앉아 작은 꽃들을 바라보았다. 산바람에 연신 몸을 누이면서도 여린 자태와 몸짓은 사랑의 언어로 충만했다. 들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절절히 재우친 시간이었다. 심심산골에 핀 작은 꽃도 찬찬히 관찰하고 가슴으로 안다 보면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길 가에, 들판에, 시골 밭두렁에 아무렇게 핀 이를 모를 풀꽃들과 눈을 맞추는 일은 살가운 일이다. 얼핏 하찮아 보여도 끈기 있게 사랑의 눈길을 건네다 보면 어느새 더없이 귀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때마다 풀꽃이 내 손등을 간지럽히며 실눈을 뜰 때, 가슴에 활짝 피어나는 꽃향을 느끼며 편안한 쉼을 얻는다. 좋아하는 우리말 중에 으뜸은 ‘꽃’이다. 철 따라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꽃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토담집, 산막, 폐가에도 피는 꽃이지만, 애어른 구분 없이 심신에 평안을 주고 낙심한 사람에겐 위로의 말을 건네며 토닥여준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데 꽃만 한 선물이 또 있을까. 때마다 곳마다 시의적절하게 꽃다발, 화환, 꽃바구니, 꽃병과 같이, 각양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꽃은 그대로가 사랑과 위로, 기쁨과 축복의 메신저다. 내가 꽃의 존재에 처음 눈 뜬 것은 중3 때였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대하면서였다. 천천히 읽고 또 읽고를 거듭하다가 나도 몰래 코끝이 찡해 옴을 느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시구에는 마음에 쟁여 놓은 말들을 다 쏟아놓은 듯했다. 시인은 무엇을 꽃으로 불렀을까? 어떤 꽃을 콕 집었을까? 아니면, 사람을 부른 것일까? 물음에 물음을 잇대면서 나의 동공 속에 자라는 건 한 소녀의 얼굴이었다.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덩이 같기도 하고, 막 쪄낸 햇감자의 우윳빛 속살 같기도 한, 뽀얀 단발머리 얼굴이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라고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이 말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노라면 못난 얼굴이 따로 없고, 모두가 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내가 소녀의 이름을 부를 때 꽃이 돼 나에게 오듯 소녀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나도 꽃이 되겠구나. ‘꽃’은 그렇게 어린 나에게 다가왔다. 그 소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딱 한번 만났다. 여름방학이 돼 시골집으로 가던 대전 역에서였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만남이 한 번이라고 잊히는 건 아니다. 그 뒤로 더는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도, 여름방학이 돼 시골집에 들어설 때면 그때처럼 장독대엔 박하꽃이 피었고, 스피아민트 향은 그때를 더 아련하게 해 주었다. 여름이 올 때마다 늘 기억을 되살려주던 박하꽃.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면, 그 소녀가 지닌 아름다움 역시 소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에 있겠지. 보인 것은 사라지고 찾으려면 보이지 않아도, 나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저 둥근달을 그녀도 볼 것이고, 추억은 생물이기에 공동의 추억은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줄 테니까. 다시 詩 하나, 나태주의 ‘내가 너를’ 떠올린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모른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삶은 집 짓기와 같다. 큰 극장을 지을 때는 기둥의 간격을 최대한 벌려서 세워야 기둥 사이로 울림이 오롯이 살아난다. 무너진 신전에 듬성듬성 서 있는 기둥을 보면 안다. 기억도 핵심기둥만 받쳐지면 울림과 떨림은 시공을 넘어 더 아득하게 웅숭깊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뭔가를 더하면 더할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비울수록 깊고 긴 여운을 느끼게 될 테니까. 추억이 아름다운 건 시공을 뛰어넘는 향기 때문이다. 첫 만남이 있던 날, 돌아온 우리 집 장독대에서는 박하꽃이 잔뜩 박하향을 뿜고 있었다. 박하꽃 앞에서 향에 취하다 꽃을 보고 나직이 그 이름을 불렀다. “박하 향기가 너의 기억을 찾을 때, 어디선가 박하향이 나거든 내가 왔다 갔구나 생각해 줘.” 감성이 풍요로웠던 시절, 일기장에 남긴 내 마음의 흔적이다. 참 오랜만에 맡아보는 풋풋한 날의 꽃향기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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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왜 향기가 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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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 아이가 피아노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었나 봐요. ‘코로나’로 시작된 교습 중단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에 나름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전화를 끊고 난 아이 표정이 밝지 못해 엄마가 묻습니다. “뭐라시든?” “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문을 열 수가 없대요.” 뭐라, 세상이 아프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어? 어쩌면 우리가 처한 아픈 상황을 저리도 센스있게,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얼굴도 마음도 다 예쁠 것 같습니다. 사방에 모두 아픈 사람뿐입니다. 전철에도 거리에도 버스에도 성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신음하는 모습들입니다. 얼굴을 온통 붕대로 칭칭 감은 사람들이 타고 내립니다. 오늘 전철에서 입 코 양 볼을 덮은 마스크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모자까지 눌러 쓴 한 여성을 봤어요. 뚝 떨어진 외계인 같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 같기도 합니다. 앞자리 그 여성을 보다 갑자기 사람이 죽어 염할 때 모습이 떠올랐어요. 신체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틀어막는. 그러다 갑자기 저것도 패션이란 생각을 했어요.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서 올해는 어떤 패션이 또 등장할까? 몸이 아프면 말하는 것부터 귀찮죠. 말을 거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도 싫습니다. 간섭은 물론이고, 누구랑 눈 맞추고 싶지도 않아요. 세상 일에 눈 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멀리하고 싶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조카는 상가에 들릴 때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를 틀어막는 일부터 한대요. 입, 귀 다 막았으니 ‘말 시키지 마세요.’ 무언의 사인입니다. 마스크가 갑갑은 해도 이런 심리적 방어벽을 치는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불편해 하는 세대가 늘어납니다. 낯선 사람이 불쑥 말을 걸어올 때, 피하고픈 충동부터 생기나 봅니다. 지인이 지하철에서 딸이 새로 사준 스마트 폰을 익히다가 옆 자리의 아가씨에게 물어보려고 ‘이것 좀’ 하는데, 벌떡 일어나 가버리더랍니다. 이 기막힌 상황에 황당해진 지인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세태 탓으로 자위합니다. SNS 소통이 워낙 대세이다보니 통화 공포증 (call phobia), 대화 공포증(talk phobia)을 부르나 봅니다. 나이 들면 사람도 비슷해집니다. 예전엔 외출할 때 시계부터 챙겼는데 어쩌다 놓고 나가면 종일 손목이 허전함을 느꼈지요. 지금은 마스크, 핸드폰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이어폰이 추가됐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사는 손녀에게 “네게 이어폰은 어떤 존재냐?” 물었더니, “얘 없인 하루도 못 버티는 내 고막 절친”이라네요.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은 불안불안하다는 게 또래들 생각이랍니다. 귀에 꽂혀 있지 않으면 불안을 키우는 이어폰. 주변을 둘러보세요. 출퇴근길 전철과 버스, 카페, 어딜가도 귀를 틀어막고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납니다. 전에는 예의를 차린다고 윗사람 앞에선 모자부터 벗었는데, 요즘엔 귀에서 이어폰을 뽑지요. 주변에 신경 안 쓰고 오롯이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 공부나 일할 때 구분 없이 낀다해요.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혼밥 혼술처럼 혼자일 때가 편하다는 생각이 소리도 골라듣겠다는 청각의 개인주의”로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가 장·노년층에도 보편적 가치로 확대됐습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탓할 바 아니나 더불어 사는 사람의 가치나 영역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 아파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사람이 사람 만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면 결혼은 더 기피할 테고, 대신 외로움을 나누려는 욕구는 엉뚱한 곳으로 분출할 수밖에요.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애완견이 반려견이 되고, 인공지능이 발전해 로봇이 사람의 고유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그러다 창의성, 감정, 기억까지 공유하는 날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과부대끼며 사느니 ‘반려로봇’과 살림을 차리는 그런 세상은 아닐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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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하늘이 내린 선물
- 살면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단어가 희망이고, 피하고 싶은 단어가 고통입니다. 단테의 ‘신곡’엔 ‘지옥의 문’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희망은 모두 박박 긁어 버리라고 하죠. 지옥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오래전 대상포진으로 큰 고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넘는 치료과정에서 겪은 통증의 기억은 10년이 다 된 지금도 ‘대상포진’이란 말에서 조차 신경이 써집니다. 중추를 칼끝으로 헤집고 침이 곳곳의 피부를 뚫어대는 통증에 한바탕 진땀을 흘리다보면 고통도 잠시 쉴 때가 있습니다. 그때 먹고, 웃고, 수다도 떨지만 다시 올 고통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해도 고통의 강도가 센들 회복이 주는 기쁨만 할까. 여자가 겪는 산고도 마찬가지겠지요. 입덧이 나면서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짊어지는 고통을 남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산실 밖에서 기다리다 조는 남자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산고가 심한들, 새 생명의 탄생이 주는 환희에 비할까. 그 고통을 겪고도 둘째, 셋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희락과 기대가 훨씬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낳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 힘들 텐데, 그 때문에 양육을 포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받은 고통의 수천만 배를 더 얹어 자식들을 사랑합니다. 자식의 혼사를 끝내고 속 시원하다는 말은 다 겉치레 수사입니다. 여전히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손수건을 꺼내듭니다. 천방지축이던 것이 언제 저렇게 성장해서 제 가정을 이룬다는 사실에 한 없이 파도치는 것은 감동과 감사뿐이지요. 세상이 온통 다 변했다 해도 고통의 질과 양은 옛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피하고 싶은 것이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태도를 바꾸고 그 속으로 뛰어들지요.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겪다’와 동의어입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한 고통은 불가피 하니까요. 꽃도 흔들리며 피고 바람에 눕는 풀도 아프긴 마찬가지입니다. 통증의 신호가 잘 전달돼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 고통이 지겹다고 감각 신경을 제거해버리면 통증을 잊을지 몰라도 신체 어딘가에 마비를 부릅니다. 한 의료 선교사가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다가 겪은 이야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발에서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감염을 의심할 수밖에요. 발에 주삿바늘을 여기저기 찔러보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가 밤새 홀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단 한 가지뿐. “주님, 제게 고통을 돌려주세요! 통증을 느끼게 해주세요!” 그제사 비로소 통증이 생명에 없어선 안 될 하늘이 내려준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무엇일까? 지금 내가 겪는 이 고통도, 이 역경도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옛 어른의 가르침은 결코 빈말이 아녔어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인생도 생명의 탄생에는 고통이 있고 성숙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갓 핀 국화송이가 전합니다.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었다고 해요. 이듬해 봄이 됐어요.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에 잎과 가지는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첫 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음해도 그다음해도 꽃은 피지 않는 걸 보면서 비로소 알았답니다. 혹한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음을. 저온을 거쳐야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이라고 하는데 진달래, 철쭉, 튤립, 백합, 라일락 등이 이에 속한답니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 보다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가 수확도 많고 맛도 좋은 이치와 같아요.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풍성하고 더욱 견실해집니다. 사람도 고난을 많이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인생의 깊이가 다릅니다. 무르익은 누군가의 인생이 부럽다면 그의 고난부터 이해할 일입니다. 지금 겪는 내 고난을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통증’이 몸이 건강함을 알리는 신호듯이 그 고통이 나를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일 수 있으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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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하늘이 내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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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내 스펙이다.
- 현실에 지쳐 희망을 접었다는 학생이 연구실로 교수를 찾아왔다. 가난한 환경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 왔는데 부족한 성적 때문에 기업의 해외연수생 모집에 응시를 못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잠 안 자고 안 먹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지금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낙심했다. 교수는 그 학생의 성실한 생활 태도를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스승은 학생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까.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다. “네가 살아온 삶이 네 스펙이다.” 일단 접수부터 하라고 권했다. “학점이 'all B' 이상여야 하는데 'C'가 하나 있어요.” 스승이 제자 등을 두드리며 “학점이 다가 아니다. 너는 너만의 스펙이 있잖니? 힘을 내라. 추천서는 내가 해주마.” 결국 학생은 스승의 정성 어린 추천서 덕에 선발되었고, 1년 연수를 성실하게 마치자 곧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런던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살아온 것이 내 스펙’이라고 알려준 스승의 한마디가 절망의 어둠 속 인생을 부활시킨 것이다. 스승의 그 한마디에 열등을 치유하고 온전한 자유를 찾은 제자는 런던에 부임한 첫날밤, 비 오는 테임즈 강가에서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스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어둠은 순식간에 희망, 꿈, 환상, 미래까지 다 덮어버리지만, 천년의 어둠도 한 줄기 빛에 날아간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 영화 ‘미션’ 첫 장면에 떠오르는 자막이다.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 같이 붙어 있다. 문제는 내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느냐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과 역경이 따라붙지만 그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어딘가에 열려 있다. 인생이 매력적인 것은 ‘고난을 거듭할수록 지혜는 쌓이고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막을 여행하다 쓰러지는 사람은 대개 오아시스를 눈앞에 두고있다고 한다. 시련의 시간을 좀만 더 견뎌냈더라면 찾을 텐데. 이 고통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지상의 언어요 약속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해 줄까? 나는 나다운 멋이 있고 재능을 지닌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이다. 이것이 자존감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존심과는 다르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이가 역경에서 이긴다. 주눅 들지 말고 어깨를 쫙 펴고 걸어가자. 때가 되면 ‘나 자신’이 바로 비장의 무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완벽한 정보는 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거나 패한 것에 있다.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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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내 스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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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 시름에 찬, 여름 한(恨) 세월이 간다 폭우 속에 잠긴 집들 산사태에 쓸려간 삶의 터전들 둑은 터지고 다리는 끊어지고 지붕 위로 올라간 소의 수난까지 아버지가 물 빠진 쓰레기 속에서 사진액자를 찾아들고 수건으로 훔치고 한참을 본다 단란했던 시절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속에 일곱 가족이 웃고 있다 넥타이 매고 행복해하는 아버지 오빠가 암으로 이승을 뜰 때도 아들이 힘들다며 어머니가 요양원을 자원할 때도 가족은 웃었다 웃음 속에 흐르는 애잔함이란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이다 백로(白露)가 가까워진 아침 풀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뜨락 위로 부는 바람은 정갈하고 계절은 이처럼 쉽게 오가는데 아직도 웃고 있는 가족들... 지금은 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함지에 가득 물을 받아놓고 현관에 흩어진 신발을 닦아야지 씻고 헹구고 물기를 털어서 가지런히 줄을 세워 말려야지 신발장 위의 박스는 내려서 그 속의 신발은 꺼내놓고 여름 신발은 담아서 올려야지 신발장이 정리되는 동안 신발은 새집에 들어갈 생각에 한가슴 부풀고 산만했던 마음은 가을바람에 살포시 부풀고.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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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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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간을 지배할까
- 천고마비(天高馬肥). 말이 살찌는 계절, 말만 들어도 평화로운 초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몽골을 경계해온 중국에는 평화보다 긴장을 상징합니다. 원기를 회복한 몽골족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몽골을 늘 경계해 왔어요. ‘몽고’라는 국호로 얕잡아보면서도 그들의 전술 전략에 수없이 농락당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북방 유목민족을 경계하고자 만리장성을 쌓고, 동북 부족 때문에 천리장성을 축성했을까. 알려진 대로 칭기즈칸의 몽골은 한 때 1억의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막강한 제국이었죠.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까지 그들의 말발굽 아래 수많은 나라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와중에 국가의 명패를 지킨 나라는 고려뿐입니다. 형제의 맹방이라고 의리를 지켜주어서죠. 유목민족인 몽골이 고려를 맹방으로 우대한 것은 한반도가 몽골족의 후예라는 연대의식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큽니다. 유독 한국인 신생아의 엉덩이의 시퍼런 반점을 ‘몽골리안 마크’로 불린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21세기 문명이 새롭게 유목 문화를 주시합니다. “집을 짓고 사는 자, 다 망한다”라고 한 몽골 장수 돈유 코코 말처럼, 누가 시간을 지배하느냐라는 인류의 초관심사가 IT 문명과 맥이 닿아서입니다. 그동안 문명의 쥬류인 정착 민족의 관심은 ‘누가 공간을 제어하며 사나?’ 였다면, 유목 문화는 ‘누가 시간을 제어하며 사느냐?’에 있습니다. 이는 수직적 위계사회가 수평적 위계사회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한국인의 유목성 기질을 분석한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이를 보면 우리도 다분히 유목민 DNA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합니다. 그 하나로 <활쏘기>를 꼽았어요. 우리나라 양궁이 유달리 강한 이유를 유목민 기질에서 찾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세요. “얼마나 말과 활을 잘 다루면, 달리는 말에서도 뒤를 향해 쏠 수 있을까?” 고구려 시조 주몽의 뜻이 ‘활을 잘 쏘는 자’란 점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골프> <바둑>에서도 빛나는 유목 기질을 찾습니다. 바둑은 어떤가요? 수직적 위상으로 설정된 장기나 체스와 달리 바둑은 수평적 위상에서 출발합니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장기와 달리, 바둑은 끝까지 가봐야 승부가 납니다. <이동통신> 발달은 보다 뚜렷한 우리민족의 장점이 투시되어 있습니다. 이동통신 세계 3대 보급률 국가인 한국, 핀란드, 스웨덴의 공통점은 몽골리안 계란 점입니다. 유목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속 풍습> 중엔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많아요. 단오, 삼짇날, 천렵, 단풍놀이가 그렇습니다. 유목성에는 남의 마을, 이웃집에 대해 늘 궁금함이 있습니다. 옛날엔 발품을 팔고 귀동냥으로 알아챘지만, 지금은 애어른 구별 없이 핸드폰을 들고 궁금증을 풀잖아요. <음주문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양 음주는 스스로 따르고 마시는 자작(自酌)문화지요. 우리도 농경사회 땐 비슷한 자배(自杯)를 즐겼지만, 서서히 돌려마시는 순배(巡杯)로 바뀌면서 ‘우리는 하나’를 외쳐댑니다. 몽골 음주습관은 각배(角杯)예요. 좌장이 병권을 쥐고 뿔로 만든 각배를 돌려 마십니다. 이동하는 짐을 줄이기 위해 한 사람만 술잔을 지닙니다. 그것이 이동에 효능임을 아니까요. 몽골대학의 졸업식은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처럼 졸업식장에 모여 끝내지 않고 계속 이동하며 행사를 이어가죠. 오전 졸업식, 점심 호텔, 오후에 학교로 이동, 다시 야외로 나가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즐깁니다. 우리가 1·2·3차로 술집을 순례하고 폭탄주를 돌리는 것에도 유목문화의 이동성이 잠재돼 있는 걸까?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건, 빨리 끝내고 떠나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은 아닐까? <고스톱>도 같은 관점에서 봤어요. 일반 화투는 위계질서가 분명하지만 고스톱은 ‘광’과 ‘껍질’이 동등한 반열에 서 있습니다. 왕이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승패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죽기도 하니까. <춤사위>는 어떨까요? 어깨춤, 관광버스춤, 말춤, 위아래로 흔드는 마상 춤사위 등 시간·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합니다. 한국경제의 급성장엔 <빨리 빨리>라는 주술이 작동했지요. 1년에 초장을 찾아 네 번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최대 관심은 빨리빨리 다음 초지를 찾는 일입니다. 21세기는 시간을 제압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신 유목시대입니다. 그러니 ‘싸게 싸게’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치워야 합니다. 영화 <친구>의 패러디 대사처럼 “이제 마이 머물렀다 아이가. 고마 퍼뜩 떠나재.”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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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간을 지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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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들
- 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사교모임을 즐기는 미국의 한 상류층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침실이 여섯 개나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날도 저녁 파티에 참석할 준비에 들떠 있었습니다. 막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뜻밖에도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어머니, 방금 제대하여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오, 아들! 네가 살아 돌아왔다니 정말 기쁘구나. 언제 집에 오느냐?” 어머니가 기쁨에 넘치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빨리 갈게요. 그런데 집에 내 전우 한명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여부가 있냐. 내가 환영해 주마. 그 친구도 데리고 오너라.”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어요. “어머니, 그런데 제 친구는 두 다리가 절단되고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귀 하나와 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매우 흉한데, 딱히 갈 집이 없답니다.” “그래?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같이 쉬면서 갈 곳을 찾아보자.” 아들은 감사하다면서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승낙을 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그가 우리 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게 하고 싶거든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당황한 기색입니다. 그녀는 황급히 아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건 안 된다. 친구의 딱한 사정은 백 번이고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마냥 있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실 테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깊게 생각을 해보렴. 동네 사람들은 무어라고 할 것이며 네 아버지가 이를 허락하시겠니? 친구는 나라가 적절한 예우로 사는데 지장 없게 돌봐 줄 거다. 마침 연휴도 다가오니 너나 빨리 집에 돌아와서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휴가를 즐기도록 하자.” 그 말에 아들이 침묵하면서 대화가 끊겼습니다. “아들아, 내 말 안 들리니? 아들아?” “띠띠띠......” 어머니는 먹통이 된 전화통에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전화가 통화 중에 끊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전화 오기를 기다렸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어요. 초조하게 시계를 보던 부부는 할 수 없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부재 중 전화 메시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메시지는 없고 대신 캘리포니아 한 카운티 경찰서에서 온 녹음된 메시지 하나가 기다라고 있었어요. 이건 뭐지? 알지도 못하는 경찰서에서 왜? 이상한 예감이 든 어머니는 다급히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마을로 먼 길을 달려서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경찰서장이 부부를 앉히고 침통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여기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고 눈과 귀가 하나씩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어서요.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의 신원증명서를 보니 당신의 아드님인 것 같습니다.” 미국 전쟁사에 기록된 가슴 아픈 사연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그 어머니를 탓하기가 쉽겠죠. 그러나 막상 우리가 그 어머니였다면 달리 어떤 처신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어머니는 평소에 자원 봉사도 열심히 하고 교회의 자선 사업에 앞장 서서 적극 참여한 여성이었습니다. 월남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미국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미군 5만8천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낸 월남전은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부작용을 불러왔지요. 히피족이 등장한 것도 실은 월남전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당한 부상보다 더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은 사회의 냉대였습니다. 자신의 참담한 모습과 마주하게 될 부모님의 절망하는 모습이 두렵고 무서웠던 아들은 집을 찾기 전에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의중부터 살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깊은 고뇌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지요. 어머니의 선을 긋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그리워한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저장된 자랑스러운 아들의 이미지를 지켜드리고 싶은 아들이었을 테니까요. 가정의 달엔 가족 간의 이동과 모임으로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양지가 환할수록 한쪽으로 그늘이 짙어집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들뿐이 아닙니다. 아버지일 수도, 엄마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도는 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랑에 굶주려 있는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겐 5월의 웃음소리가 가슴 저미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금년 5월에는, 우리 가족 이름으로 그늘진 이웃을 헤아리고 살피는 작은 무엇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가정의 달’로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아서···. 한 뼘 그늘을 지우는 빛이 되기도 하겠죠.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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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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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왜 향기가 나는가
- 보이는 건 사라지고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나니, 사라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라…. 그래서 이상향을 꿈꾸고 천국 같은 내세를 연모하지만,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미련을 못 놓고 자꾸 뒤를 돌아본다. 5년 전 친구 손에 잡혀 처음 지리산 종주를 할 때의 기억이다. 천왕봉에 오르기까지 밟는 발자국마다 설렘이고 기쁨이었다. 그중에도 나를 가장 놀라움으로 빠뜨린 것은 연하선경을 지나며 만난 들꽃 무리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 고봉준령의 찬 밤바람을 맞으며 어쩌자고 꽃을 피웠을까. 철없이 덜컥 임신한 소녀를 보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앉아 작은 꽃들을 바라보았다. 산바람에 연신 몸을 누이면서도 여린 자태와 몸짓은 사랑의 언어로 충만했다. 들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절절히 재우친 시간이었다. 심심산골에 핀 작은 꽃도 찬찬히 관찰하고 가슴으로 안다 보면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길 가에, 들판에, 시골 밭두렁에 아무렇게 핀 이를 모를 풀꽃들과 눈을 맞추는 일은 살가운 일이다. 얼핏 하찮아 보여도 끈기 있게 사랑의 눈길을 건네다 보면 어느새 더없이 귀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때마다 풀꽃이 내 손등을 간지럽히며 실눈을 뜰 때, 가슴에 활짝 피어나는 꽃향을 느끼며 편안한 쉼을 얻는다. 좋아하는 우리말 중에 으뜸은 ‘꽃’이다. 철 따라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꽃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토담집, 산막, 폐가에도 피는 꽃이지만, 애어른 구분 없이 심신에 평안을 주고 낙심한 사람에겐 위로의 말을 건네며 토닥여준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데 꽃만 한 선물이 또 있을까. 때마다 곳마다 시의적절하게 꽃다발, 화환, 꽃바구니, 꽃병과 같이, 각양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꽃은 그대로가 사랑과 위로, 기쁨과 축복의 메신저다. 내가 꽃의 존재에 처음 눈 뜬 것은 중3 때였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대하면서였다. 천천히 읽고 또 읽고를 거듭하다가 나도 몰래 코끝이 찡해 옴을 느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시구에는 마음에 쟁여 놓은 말들을 다 쏟아놓은 듯했다. 시인은 무엇을 꽃으로 불렀을까? 어떤 꽃을 콕 집었을까? 아니면, 사람을 부른 것일까? 물음에 물음을 잇대면서 나의 동공 속에 자라는 건 한 소녀의 얼굴이었다.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덩이 같기도 하고, 막 쪄낸 햇감자의 우윳빛 속살 같기도 한, 뽀얀 단발머리 얼굴이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라고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이 말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노라면 못난 얼굴이 따로 없고, 모두가 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내가 소녀의 이름을 부를 때 꽃이 돼 나에게 오듯 소녀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나도 꽃이 되겠구나. ‘꽃’은 그렇게 어린 나에게 다가왔다. 그 소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딱 한번 만났다. 여름방학이 돼 시골집으로 가던 대전 역에서였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만남이 한 번이라고 잊히는 건 아니다. 그 뒤로 더는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도, 여름방학이 돼 시골집에 들어설 때면 그때처럼 장독대엔 박하꽃이 피었고, 스피아민트 향은 그때를 더 아련하게 해 주었다. 여름이 올 때마다 늘 기억을 되살려주던 박하꽃.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존재한다면, 그 소녀가 지닌 아름다움 역시 소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에 있겠지. 보인 것은 사라지고 찾으려면 보이지 않아도, 나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저 둥근달을 그녀도 볼 것이고, 추억은 생물이기에 공동의 추억은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줄 테니까. 다시 詩 하나, 나태주의 ‘내가 너를’ 떠올린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모른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삶은 집 짓기와 같다. 큰 극장을 지을 때는 기둥의 간격을 최대한 벌려서 세워야 기둥 사이로 울림이 오롯이 살아난다. 무너진 신전에 듬성듬성 서 있는 기둥을 보면 안다. 기억도 핵심기둥만 받쳐지면 울림과 떨림은 시공을 넘어 더 아득하게 웅숭깊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뭔가를 더하면 더할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비울수록 깊고 긴 여운을 느끼게 될 테니까. 추억이 아름다운 건 시공을 뛰어넘는 향기 때문이다. 첫 만남이 있던 날, 돌아온 우리 집 장독대에서는 박하꽃이 잔뜩 박하향을 뿜고 있었다. 박하꽃 앞에서 향에 취하다 꽃을 보고 나직이 그 이름을 불렀다. “박하 향기가 너의 기억을 찾을 때, 어디선가 박하향이 나거든 내가 왔다 갔구나 생각해 줘.” 감성이 풍요로웠던 시절, 일기장에 남긴 내 마음의 흔적이다. 참 오랜만에 맡아보는 풋풋한 날의 꽃향기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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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왜 향기가 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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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 아이가 피아노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었나 봐요. ‘코로나’로 시작된 교습 중단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에 나름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전화를 끊고 난 아이 표정이 밝지 못해 엄마가 묻습니다. “뭐라시든?” “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문을 열 수가 없대요.” 뭐라, 세상이 아프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어? 어쩌면 우리가 처한 아픈 상황을 저리도 센스있게,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얼굴도 마음도 다 예쁠 것 같습니다. 사방에 모두 아픈 사람뿐입니다. 전철에도 거리에도 버스에도 성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신음하는 모습들입니다. 얼굴을 온통 붕대로 칭칭 감은 사람들이 타고 내립니다. 오늘 전철에서 입 코 양 볼을 덮은 마스크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모자까지 눌러 쓴 한 여성을 봤어요. 뚝 떨어진 외계인 같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 같기도 합니다. 앞자리 그 여성을 보다 갑자기 사람이 죽어 염할 때 모습이 떠올랐어요. 신체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틀어막는. 그러다 갑자기 저것도 패션이란 생각을 했어요.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서 올해는 어떤 패션이 또 등장할까? 몸이 아프면 말하는 것부터 귀찮죠. 말을 거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도 싫습니다. 간섭은 물론이고, 누구랑 눈 맞추고 싶지도 않아요. 세상 일에 눈 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멀리하고 싶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조카는 상가에 들릴 때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를 틀어막는 일부터 한대요. 입, 귀 다 막았으니 ‘말 시키지 마세요.’ 무언의 사인입니다. 마스크가 갑갑은 해도 이런 심리적 방어벽을 치는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불편해 하는 세대가 늘어납니다. 낯선 사람이 불쑥 말을 걸어올 때, 피하고픈 충동부터 생기나 봅니다. 지인이 지하철에서 딸이 새로 사준 스마트 폰을 익히다가 옆 자리의 아가씨에게 물어보려고 ‘이것 좀’ 하는데, 벌떡 일어나 가버리더랍니다. 이 기막힌 상황에 황당해진 지인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세태 탓으로 자위합니다. SNS 소통이 워낙 대세이다보니 통화 공포증 (call phobia), 대화 공포증(talk phobia)을 부르나 봅니다. 나이 들면 사람도 비슷해집니다. 예전엔 외출할 때 시계부터 챙겼는데 어쩌다 놓고 나가면 종일 손목이 허전함을 느꼈지요. 지금은 마스크, 핸드폰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이어폰이 추가됐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사는 손녀에게 “네게 이어폰은 어떤 존재냐?” 물었더니, “얘 없인 하루도 못 버티는 내 고막 절친”이라네요.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은 불안불안하다는 게 또래들 생각이랍니다. 귀에 꽂혀 있지 않으면 불안을 키우는 이어폰. 주변을 둘러보세요. 출퇴근길 전철과 버스, 카페, 어딜가도 귀를 틀어막고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납니다. 전에는 예의를 차린다고 윗사람 앞에선 모자부터 벗었는데, 요즘엔 귀에서 이어폰을 뽑지요. 주변에 신경 안 쓰고 오롯이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 공부나 일할 때 구분 없이 낀다해요.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혼밥 혼술처럼 혼자일 때가 편하다는 생각이 소리도 골라듣겠다는 청각의 개인주의”로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가 장·노년층에도 보편적 가치로 확대됐습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탓할 바 아니나 더불어 사는 사람의 가치나 영역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 아파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사람이 사람 만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면 결혼은 더 기피할 테고, 대신 외로움을 나누려는 욕구는 엉뚱한 곳으로 분출할 수밖에요.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애완견이 반려견이 되고, 인공지능이 발전해 로봇이 사람의 고유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그러다 창의성, 감정, 기억까지 공유하는 날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과부대끼며 사느니 ‘반려로봇’과 살림을 차리는 그런 세상은 아닐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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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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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하늘이 내린 선물
- 살면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단어가 희망이고, 피하고 싶은 단어가 고통입니다. 단테의 ‘신곡’엔 ‘지옥의 문’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희망은 모두 박박 긁어 버리라고 하죠. 지옥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오래전 대상포진으로 큰 고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넘는 치료과정에서 겪은 통증의 기억은 10년이 다 된 지금도 ‘대상포진’이란 말에서 조차 신경이 써집니다. 중추를 칼끝으로 헤집고 침이 곳곳의 피부를 뚫어대는 통증에 한바탕 진땀을 흘리다보면 고통도 잠시 쉴 때가 있습니다. 그때 먹고, 웃고, 수다도 떨지만 다시 올 고통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해도 고통의 강도가 센들 회복이 주는 기쁨만 할까. 여자가 겪는 산고도 마찬가지겠지요. 입덧이 나면서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짊어지는 고통을 남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산실 밖에서 기다리다 조는 남자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산고가 심한들, 새 생명의 탄생이 주는 환희에 비할까. 그 고통을 겪고도 둘째, 셋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희락과 기대가 훨씬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낳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 힘들 텐데, 그 때문에 양육을 포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받은 고통의 수천만 배를 더 얹어 자식들을 사랑합니다. 자식의 혼사를 끝내고 속 시원하다는 말은 다 겉치레 수사입니다. 여전히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손수건을 꺼내듭니다. 천방지축이던 것이 언제 저렇게 성장해서 제 가정을 이룬다는 사실에 한 없이 파도치는 것은 감동과 감사뿐이지요. 세상이 온통 다 변했다 해도 고통의 질과 양은 옛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피하고 싶은 것이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태도를 바꾸고 그 속으로 뛰어들지요.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겪다’와 동의어입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한 고통은 불가피 하니까요. 꽃도 흔들리며 피고 바람에 눕는 풀도 아프긴 마찬가지입니다. 통증의 신호가 잘 전달돼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 고통이 지겹다고 감각 신경을 제거해버리면 통증을 잊을지 몰라도 신체 어딘가에 마비를 부릅니다. 한 의료 선교사가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다가 겪은 이야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발에서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감염을 의심할 수밖에요. 발에 주삿바늘을 여기저기 찔러보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가 밤새 홀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단 한 가지뿐. “주님, 제게 고통을 돌려주세요! 통증을 느끼게 해주세요!” 그제사 비로소 통증이 생명에 없어선 안 될 하늘이 내려준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무엇일까? 지금 내가 겪는 이 고통도, 이 역경도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옛 어른의 가르침은 결코 빈말이 아녔어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인생도 생명의 탄생에는 고통이 있고 성숙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갓 핀 국화송이가 전합니다.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었다고 해요. 이듬해 봄이 됐어요.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에 잎과 가지는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첫 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음해도 그다음해도 꽃은 피지 않는 걸 보면서 비로소 알았답니다. 혹한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음을. 저온을 거쳐야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이라고 하는데 진달래, 철쭉, 튤립, 백합, 라일락 등이 이에 속한답니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 보다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가 수확도 많고 맛도 좋은 이치와 같아요.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풍성하고 더욱 견실해집니다. 사람도 고난을 많이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인생의 깊이가 다릅니다. 무르익은 누군가의 인생이 부럽다면 그의 고난부터 이해할 일입니다. 지금 겪는 내 고난을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통증’이 몸이 건강함을 알리는 신호듯이 그 고통이 나를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일 수 있으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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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하늘이 내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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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내 스펙이다.
- 현실에 지쳐 희망을 접었다는 학생이 연구실로 교수를 찾아왔다. 가난한 환경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 왔는데 부족한 성적 때문에 기업의 해외연수생 모집에 응시를 못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잠 안 자고 안 먹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지금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낙심했다. 교수는 그 학생의 성실한 생활 태도를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스승은 학생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까.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다. “네가 살아온 삶이 네 스펙이다.” 일단 접수부터 하라고 권했다. “학점이 'all B' 이상여야 하는데 'C'가 하나 있어요.” 스승이 제자 등을 두드리며 “학점이 다가 아니다. 너는 너만의 스펙이 있잖니? 힘을 내라. 추천서는 내가 해주마.” 결국 학생은 스승의 정성 어린 추천서 덕에 선발되었고, 1년 연수를 성실하게 마치자 곧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런던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살아온 것이 내 스펙’이라고 알려준 스승의 한마디가 절망의 어둠 속 인생을 부활시킨 것이다. 스승의 그 한마디에 열등을 치유하고 온전한 자유를 찾은 제자는 런던에 부임한 첫날밤, 비 오는 테임즈 강가에서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스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어둠은 순식간에 희망, 꿈, 환상, 미래까지 다 덮어버리지만, 천년의 어둠도 한 줄기 빛에 날아간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 영화 ‘미션’ 첫 장면에 떠오르는 자막이다.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 같이 붙어 있다. 문제는 내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느냐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과 역경이 따라붙지만 그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어딘가에 열려 있다. 인생이 매력적인 것은 ‘고난을 거듭할수록 지혜는 쌓이고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막을 여행하다 쓰러지는 사람은 대개 오아시스를 눈앞에 두고있다고 한다. 시련의 시간을 좀만 더 견뎌냈더라면 찾을 텐데. 이 고통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지상의 언어요 약속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해 줄까? 나는 나다운 멋이 있고 재능을 지닌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이다. 이것이 자존감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존심과는 다르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이가 역경에서 이긴다. 주눅 들지 말고 어깨를 쫙 펴고 걸어가자. 때가 되면 ‘나 자신’이 바로 비장의 무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완벽한 정보는 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거나 패한 것에 있다.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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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내 스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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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 시름에 찬, 여름 한(恨) 세월이 간다 폭우 속에 잠긴 집들 산사태에 쓸려간 삶의 터전들 둑은 터지고 다리는 끊어지고 지붕 위로 올라간 소의 수난까지 아버지가 물 빠진 쓰레기 속에서 사진액자를 찾아들고 수건으로 훔치고 한참을 본다 단란했던 시절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속에 일곱 가족이 웃고 있다 넥타이 매고 행복해하는 아버지 오빠가 암으로 이승을 뜰 때도 아들이 힘들다며 어머니가 요양원을 자원할 때도 가족은 웃었다 웃음 속에 흐르는 애잔함이란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이다 백로(白露)가 가까워진 아침 풀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뜨락 위로 부는 바람은 정갈하고 계절은 이처럼 쉽게 오가는데 아직도 웃고 있는 가족들... 지금은 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함지에 가득 물을 받아놓고 현관에 흩어진 신발을 닦아야지 씻고 헹구고 물기를 털어서 가지런히 줄을 세워 말려야지 신발장 위의 박스는 내려서 그 속의 신발은 꺼내놓고 여름 신발은 담아서 올려야지 신발장이 정리되는 동안 신발은 새집에 들어갈 생각에 한가슴 부풀고 산만했던 마음은 가을바람에 살포시 부풀고.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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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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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간을 지배할까
- 천고마비(天高馬肥). 말이 살찌는 계절, 말만 들어도 평화로운 초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몽골을 경계해온 중국에는 평화보다 긴장을 상징합니다. 원기를 회복한 몽골족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몽골을 늘 경계해 왔어요. ‘몽고’라는 국호로 얕잡아보면서도 그들의 전술 전략에 수없이 농락당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북방 유목민족을 경계하고자 만리장성을 쌓고, 동북 부족 때문에 천리장성을 축성했을까. 알려진 대로 칭기즈칸의 몽골은 한 때 1억의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막강한 제국이었죠.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까지 그들의 말발굽 아래 수많은 나라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와중에 국가의 명패를 지킨 나라는 고려뿐입니다. 형제의 맹방이라고 의리를 지켜주어서죠. 유목민족인 몽골이 고려를 맹방으로 우대한 것은 한반도가 몽골족의 후예라는 연대의식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큽니다. 유독 한국인 신생아의 엉덩이의 시퍼런 반점을 ‘몽골리안 마크’로 불린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21세기 문명이 새롭게 유목 문화를 주시합니다. “집을 짓고 사는 자, 다 망한다”라고 한 몽골 장수 돈유 코코 말처럼, 누가 시간을 지배하느냐라는 인류의 초관심사가 IT 문명과 맥이 닿아서입니다. 그동안 문명의 쥬류인 정착 민족의 관심은 ‘누가 공간을 제어하며 사나?’ 였다면, 유목 문화는 ‘누가 시간을 제어하며 사느냐?’에 있습니다. 이는 수직적 위계사회가 수평적 위계사회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한국인의 유목성 기질을 분석한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이를 보면 우리도 다분히 유목민 DNA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합니다. 그 하나로 <활쏘기>를 꼽았어요. 우리나라 양궁이 유달리 강한 이유를 유목민 기질에서 찾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세요. “얼마나 말과 활을 잘 다루면, 달리는 말에서도 뒤를 향해 쏠 수 있을까?” 고구려 시조 주몽의 뜻이 ‘활을 잘 쏘는 자’란 점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골프> <바둑>에서도 빛나는 유목 기질을 찾습니다. 바둑은 어떤가요? 수직적 위상으로 설정된 장기나 체스와 달리 바둑은 수평적 위상에서 출발합니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장기와 달리, 바둑은 끝까지 가봐야 승부가 납니다. <이동통신> 발달은 보다 뚜렷한 우리민족의 장점이 투시되어 있습니다. 이동통신 세계 3대 보급률 국가인 한국, 핀란드, 스웨덴의 공통점은 몽골리안 계란 점입니다. 유목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속 풍습> 중엔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많아요. 단오, 삼짇날, 천렵, 단풍놀이가 그렇습니다. 유목성에는 남의 마을, 이웃집에 대해 늘 궁금함이 있습니다. 옛날엔 발품을 팔고 귀동냥으로 알아챘지만, 지금은 애어른 구별 없이 핸드폰을 들고 궁금증을 풀잖아요. <음주문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양 음주는 스스로 따르고 마시는 자작(自酌)문화지요. 우리도 농경사회 땐 비슷한 자배(自杯)를 즐겼지만, 서서히 돌려마시는 순배(巡杯)로 바뀌면서 ‘우리는 하나’를 외쳐댑니다. 몽골 음주습관은 각배(角杯)예요. 좌장이 병권을 쥐고 뿔로 만든 각배를 돌려 마십니다. 이동하는 짐을 줄이기 위해 한 사람만 술잔을 지닙니다. 그것이 이동에 효능임을 아니까요. 몽골대학의 졸업식은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처럼 졸업식장에 모여 끝내지 않고 계속 이동하며 행사를 이어가죠. 오전 졸업식, 점심 호텔, 오후에 학교로 이동, 다시 야외로 나가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즐깁니다. 우리가 1·2·3차로 술집을 순례하고 폭탄주를 돌리는 것에도 유목문화의 이동성이 잠재돼 있는 걸까?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건, 빨리 끝내고 떠나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은 아닐까? <고스톱>도 같은 관점에서 봤어요. 일반 화투는 위계질서가 분명하지만 고스톱은 ‘광’과 ‘껍질’이 동등한 반열에 서 있습니다. 왕이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승패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죽기도 하니까. <춤사위>는 어떨까요? 어깨춤, 관광버스춤, 말춤, 위아래로 흔드는 마상 춤사위 등 시간·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합니다. 한국경제의 급성장엔 <빨리 빨리>라는 주술이 작동했지요. 1년에 초장을 찾아 네 번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최대 관심은 빨리빨리 다음 초지를 찾는 일입니다. 21세기는 시간을 제압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신 유목시대입니다. 그러니 ‘싸게 싸게’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치워야 합니다. 영화 <친구>의 패러디 대사처럼 “이제 마이 머물렀다 아이가. 고마 퍼뜩 떠나재.”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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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간을 지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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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들
- 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사교모임을 즐기는 미국의 한 상류층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침실이 여섯 개나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날도 저녁 파티에 참석할 준비에 들떠 있었습니다. 막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뜻밖에도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어머니, 방금 제대하여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오, 아들! 네가 살아 돌아왔다니 정말 기쁘구나. 언제 집에 오느냐?” 어머니가 기쁨에 넘치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빨리 갈게요. 그런데 집에 내 전우 한명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여부가 있냐. 내가 환영해 주마. 그 친구도 데리고 오너라.”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어요. “어머니, 그런데 제 친구는 두 다리가 절단되고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귀 하나와 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매우 흉한데, 딱히 갈 집이 없답니다.” “그래?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같이 쉬면서 갈 곳을 찾아보자.” 아들은 감사하다면서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승낙을 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그가 우리 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게 하고 싶거든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당황한 기색입니다. 그녀는 황급히 아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건 안 된다. 친구의 딱한 사정은 백 번이고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마냥 있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실 테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깊게 생각을 해보렴. 동네 사람들은 무어라고 할 것이며 네 아버지가 이를 허락하시겠니? 친구는 나라가 적절한 예우로 사는데 지장 없게 돌봐 줄 거다. 마침 연휴도 다가오니 너나 빨리 집에 돌아와서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휴가를 즐기도록 하자.” 그 말에 아들이 침묵하면서 대화가 끊겼습니다. “아들아, 내 말 안 들리니? 아들아?” “띠띠띠......” 어머니는 먹통이 된 전화통에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전화가 통화 중에 끊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전화 오기를 기다렸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어요. 초조하게 시계를 보던 부부는 할 수 없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부재 중 전화 메시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메시지는 없고 대신 캘리포니아 한 카운티 경찰서에서 온 녹음된 메시지 하나가 기다라고 있었어요. 이건 뭐지? 알지도 못하는 경찰서에서 왜? 이상한 예감이 든 어머니는 다급히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마을로 먼 길을 달려서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경찰서장이 부부를 앉히고 침통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여기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고 눈과 귀가 하나씩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어서요.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의 신원증명서를 보니 당신의 아드님인 것 같습니다.” 미국 전쟁사에 기록된 가슴 아픈 사연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그 어머니를 탓하기가 쉽겠죠. 그러나 막상 우리가 그 어머니였다면 달리 어떤 처신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어머니는 평소에 자원 봉사도 열심히 하고 교회의 자선 사업에 앞장 서서 적극 참여한 여성이었습니다. 월남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미국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미군 5만8천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낸 월남전은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부작용을 불러왔지요. 히피족이 등장한 것도 실은 월남전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당한 부상보다 더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은 사회의 냉대였습니다. 자신의 참담한 모습과 마주하게 될 부모님의 절망하는 모습이 두렵고 무서웠던 아들은 집을 찾기 전에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의중부터 살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깊은 고뇌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지요. 어머니의 선을 긋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그리워한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저장된 자랑스러운 아들의 이미지를 지켜드리고 싶은 아들이었을 테니까요. 가정의 달엔 가족 간의 이동과 모임으로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양지가 환할수록 한쪽으로 그늘이 짙어집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들뿐이 아닙니다. 아버지일 수도, 엄마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도는 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랑에 굶주려 있는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겐 5월의 웃음소리가 가슴 저미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금년 5월에는, 우리 가족 이름으로 그늘진 이웃을 헤아리고 살피는 작은 무엇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가정의 달’로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아서···. 한 뼘 그늘을 지우는 빛이 되기도 하겠죠.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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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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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으로 보내는 여름편지
- 푸른 바다에 갈매기들이 온다 여름 한철 내내 사람들에게 바다를 내어주고 떠나갔던 갈매기 가족들이다 사람들은 갈매기를 쫓아냈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갈매기들은 잠시 바다를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바다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동안 먼바다로 나갔던 물고기들은 해안으로 돌아오고 짓무른 모래밭도 파도에 씻기며 다시 편안한 제 몸을 찾는다. 모래밭에 새긴 사랑의 발자국들 뜨겁게 일렁이던 욕망의 그림자 모두 다 지워내고 이젠 고요의 시간으로 돌아갈 때 바다가 바다로 돌아가듯 이젠 마음의 서랍을 정리할 시간 여름 내내 눅눅했던 마음은 볕에 내다 말리고 현관에 널린 신발은 씻어 올리고 때로 얼룩진 시간은 닦아내고 이슬... 풀꽃... 사랑... 감사... 그런 착한 말들로 가지런하게 마음을 정돈하고 싶다 바다에서 돌아와 신발을 벗을 그대를 위하여 함초롬히 이슬에 젖어 올 가을을 위하여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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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으로 보내는 여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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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오네
- 올여름, 낭만은 없었다. 미쳐 돌아가는 염천 아래로 극한 폭염과 극강 호우,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에 급급해야 했던 올여름은 애초 낭만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푹푹 찌는 날씨에 세 시간 걸리는 열차에 몸을 실은 건 여수 밤바다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어둑한 밤바다를 보며 넘실거리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에, 읊조리듯 속삭이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상상했다. 이 노래는 이명박 정부가 그 당시 잘 나가던 장범준에게 여수엑스포를 띄워줄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나온 노래다. 그런데 웬걸 수많은 ‘낭만 포차’에선 아이돌 그룹 노래가 고막을 때렸다. 늘 기대는 70~80%에 놓아야 하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았다. 시어터진 갓김치를 우적우적 씹다가, 밖으로 나와 조명 없는 곳에 걸터앉아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내 모습이 좀은 청승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아, 그렇구나. 이제 내가 살았던 세상의 낭만이 기댈 곳은 좁다랗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연 나흘째 동해안을 훑으며 차를 몰고 주유천하 중인 대학 동창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는 지치지 않고 좌충우돌한 그날의 에피소드를 뚝딱뚝딱 만들어 카톡에 올렸다. 본인은 괜한 화장발을 올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내 주변에 몇 남지 않은 '서정파'이자 유일하게 남은 '낭만가객'이 아닌가 싶다. 댄스면 댄스, 노래면 노래, 운동이면 운동(테니스, 탁구, 수영), 더하여 사람까지 좋아해 새벽부터 밤까지 그가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즐기는 것만 꼽아도 열 손가락은 펴야 한다. 그 나이에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길 줄 알고 사랑하며 힘써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를 보며 잘 놀고 즐기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는 걸 생각한다. 세상에는 ‘기다리는 것’과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다가 스친 것이다. 늘 생각했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의 입장으로 생각을 비틀어 보았다. 극 중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고도야 말로 오히려 그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초조함보다 불안과 긴장이 더 크지 않았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 막 뒤에서 느끼는 배우들처럼. 분명 고도는 어딘가에 오고 있다. 그 점만은 진실이다. 단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기다려지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다. 고도의 존재는 온전히 그를 기다리는 사람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남보다 만남 이전의 기다림의 시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려 본다. 갑자기 ‘고도를 기다리며’를 생각한 것은 순전히 가을 탓이다. 오후 들어 한바탕 소나기가 훑고 지나간 산능선 위로 뭉게구름이 해맑은 하늘에 떠 있고, 그 푸른 하늘 끝에 물린 검단산 자락이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처서(處暑)가 지난 지도 닷새째다. 이제 모기 입은 삐뚤어지고 풀은 더 이상 웃자라지 않는다는 자연의 신호를 사람들은 알려주지 않아도 감지할 줄 안다. 여전히 한낮 더위는 쨍쨍해도 높이 뜬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가을이 스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서 계절의 박동을 느낀다. 우리가 여름에 지쳤던 강도만큼 기다림을 키워온 가을이기에,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오늘은 안 오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차질 수밖에… 그래서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고 좋은가 보다. 처서가 지나면서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소슬하고 풀벌레 우는 밤이 가깝게 다가온다. 풀잎에 이는 바람의 숨결이 다르고, 꽃잎마다 달린 아침 이슬이 영롱하니 빛난다. 길가에 갓 피어난 코스모스가 생글생글 웃음 지며 하늘하늘 속삭이는 것도 이맘때 풍경이다. “나 많이 기다렸나 봐? 조금만 기다려. 다 왔어.” “어서 와. 팔월도 낼모레가 끝이야.” 8월의 밑동을 바라보는 사람들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 같다. 떠나는 여름에 대한 원성만큼 상대적으로 커진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기다리는 사이, 남은 여름의 잔해부터 마무리하자. 눅눅한 옷가지는 햇볕에 보송하게 말리고, 장독대는 독마다 뚜껑을 열어놓고, 책들은 거풍 시켜 책갈피로 스민 습기를 날려야겠다. 이제 여름은 가고 가을이 대세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밤공기는 더욱 서늘해질 것이고, 텃밭에 내린 아침이슬이 바짓가랑이를 휘적실 테니까. 계절은 이처럼 쉽게 가고 오는데, 우리는 또 얼마나 어렵게 고단한 삶을 준비해야 하는지. 문득 여수 밤바다에 떠올랐던 둥근 달이 생각난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날 밤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두 대교의 불빛이 아련하고 아득하게 흔들린다. 기다림의 기쁨도 아쉬움의 작별도 쓰라린 아픔까지 지나고 나면 늘 그리워지는 법이다. 어느새 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보인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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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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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존재하는 이유
- 비에 바람까지 불어 꽃비가 내리던 날, 지인이 페이스 북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습니다. 택배가 왔다고 해서 나갔더니 아들이 책을 보냈습니다. 별생각 없이 포장을 뜯다가 한바탕 웃고 말았다는 책···. 제목이 뜻밖에도 <알츠하이머의 종말>(2018)입니다. 책을 보낸 이유가 따로 있을 테지만 아버지가 치매에 걸릴까 걱정한 모양입니다. 불현듯 “요즘 엄마한테 자주 화를 내시나요?” 며칠 전 아들이 엄마와 통화하며 이것저것 묻더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하루 뒤 이 엄중한 책 한 권이 도착한 겁니다. 책 표지엔 아마존· 뉴욕타임스 종합 1위, 월스트리트 저널 올해의 책 등 베스트셀러 인증을 넷이나 달고 있었지요. “아들아, 걱정마라 아비는 멀쩡하다. 잘 읽고 더 건강해지마. 고맙다.” 그래도 걱정하는 아들이 기꺼워 휘파람을 불며 답글을 보내다가 문득 생각이 스칩니다. 내가 벌써 애들이 걱정할 나이인가? 쓴웃음 뒤로 한 줄기 바람이 스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결말은 항상 해피 엔딩입니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행복한 세상을 찾는다는, 설정 자체가 대부분 그렇게 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비틀면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백설 공주는 사악한 새엄마에게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불덩이에 마녀를 죽인 헨델과 그레텔은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동화작가들이 주인공들을 통해 어린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것은 재미와 함께 들려주려는 교훈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동화 속 규범이 획일적인 건 좀 불만스럽습니다. 현실과 통섭 없는 세계만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적 관찰로 동화를 보면 동화속 미심쩍은 부분에 눈이 떠져요. 관점을 달리해 보면 또 다른 모색과 재미, 상상이 더해지게 됩니다. ‘백설 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주지? 일곱 난쟁이가 신신당부했음에도 한 번도 아니고 사람만 찾아오면 번번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니 연거푸 곤경에 빠질 수밖에요. “엄마 백설 공주가 좀 멍청한 것 같아요?” 요즘엔 이렇게 되묻는 똑똑한 아이들이 있어 생각 없이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를 당황하게 합니다. 이점도 명작 동화가 예전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고 해요. 그러나 차분하게 뜯어보면 주목할 부분이 보입니다. 일곱 난쟁이가 아무리 백설 공주에게 잘해준들, 온종일 친구도 없는 빈집에 혼자라 생각해 봐요. 얼마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울까. 백설 공주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든 문에 손이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세상에는 소외됨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화는 주인공들을 통해 현대인이 지닌 결핍, 상실 등 사회적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죠. 많은 동화가 표면상의 교훈적인 것 외에도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획일화된 구조 속에 있는 세상은 ‘왜?’ 라고 묻는 사람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규범에 갇혀 살아요. 이에 맞설 설득력이 없으면 기존 논리를 따를 수밖에요. 과학이 ‘왜?’라는 것에서 출발했듯 우리의 삶도 이러한 물음을 통해 발전합니다. 이팝나무에 흰쌀밥이 탐스럽게 꽃 피던 때, 친구의 전화를 받았어요. 내용인즉 시골에서 혼자 사신 어머니를 모셔왔는데 얼마 전부터 자꾸 아파트 출입문을 열어준다고 걱정이 태산입니다. ‘딩동∼!’ 벨 소리만 나면 반사적으로 현관문으로 달려가 찰칵∼ 소릴 내며 문부터 열어준다는 어머니. 그렇게 설명하고 당부해도 허사라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부부 중 하나가 집에 남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답니다. 한동안 어머니 덕에 알바 없이도 부부가 편의점을 잘 운영해 왔는데···. 결국 알바를 다시 두기로 하고 아내와 교대로 집에 남기로 했다는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 이런저런 상념이 모락 거립니다. 어머니는 왜 현관문을 자꾸 열어주는 걸까? 시골집에선 밤새 사립문을 열어두고 사셨다는 어머니. 그 무의식 속엔 혹시 2년 전 세상을 뜨신 아버지가, 1년 전 사고로 잃은 큰딸이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후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혼자된 여동생이 올라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고. 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한시름 놓았다고... 그래도 어머니를 보내는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요. 책을 보낸 친지의 아들, 동화 속 주인공들, 친구의 어머니까지. 모두 물음을 던집니다. 왜 그랬을까? 때로는 내가 모르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고,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요 가족입니다. 삶이 외롭고 힘들어 다리가 휘청일 때, 발 벗고 나서서 그의 빛나던 한 때를 증언해야 함은 가족이 나눠야 할 몫입니다. 서로에 관심을 높이고 혼자가 아닌 함께 기대어 사는 것이, 메마른 세상을 이기는 참 지혜가 될 테니까요.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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