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다뉴브 강 유람선 침몰로 26명의 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여섯 살 어린 딸과 헝가리 여행 중이던 3대 가족이 모두 변을 당했다는 비보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죽음이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손녀와 젊은 엄마, 떠나기에 이른 6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 우리 집도 3대가 살다보니 더 애틋하고 속이 쓰라립니다. 그들 가족은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마치 꿈인 것처럼.

 

삼국유사에 조신(調信)이란 스님이 있습니다. 하루는 강릉 태수의 딸을 보고 한 눈에 푹 빠져듭니다.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흠모하는 마음만 깊어질 뿐... 낙산사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랑의 성취를 간절하게 빕니다. 그런데 어쩌나, 소문도 없이 그녀가 혼처를 정해 떠나가 버렸으니. 고통을 명상으로 수행해온 스님이라지만, 애욕을 명상으로 수행하기에 조신은 너무 젊었습니다. 마음의 정처를 잃고 부처님 앞에 심경을 호소하며 슬피 울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눈물의 기도 때문일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꿈에도 잊지 못한 여인이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겁니다. “부모님 명으로 혼인을 했지만 저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그래서 먼 길을 찾아왔으니 같이 살자고 합니다. 순간, 조신의 심장은 얼마나 벌렁거렸을까요. 두 사람은 벅찬 가슴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비록 가진 건 없어도 건강한 몸과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있으니 비가 새는 오두막집이면 어떻겠어요.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했습니다.

 

아이를 다섯 낳으면서 어언 4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는데, 이상 신호가 감지됩니다. 더듬이 부러진 곤충처럼 방황하며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살림살이는 나물죽을 먹을 만큼 궁색해진데다, 잇달아 비극은 찾아옵니다. 명주의 해현 고개를 넘다가 열다섯 살 큰 아들이 굶어죽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부부는 통곡하며 시신을 거두어 길가에 묻어줍니다. 젊음은 가고 몸은 쇠약해져 병들고, 춥고 배고픈 생활고가 그들을 덮쳤습니다. 또 하루는 열 살 된 딸아이가 구걸을 나갔다 개에 물려왔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방에 누이고 하염없이 흐느끼던 부인이 눈물을 닦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당신과 만났을 때는 젊고 얼굴도 아름다웠으며 입는 옷도 좋았습니다. 음식이 있으면 나누어 먹었고, 몇 자의 옷감만 생겨도 함께 옷을 지어 입었지요. 오랜 세월 정은 거슬림 없이 쌓였고, 사랑도 깊었으니 가히 두터운 인연입니다. 허나, 몸은 쇠해지고 병은 깊어진데다 춥고 배곯는 것도 지쳤습니다. 이젠 사람들조차 내미는 죽 사발을 외면하니 문전에서 당하는 부끄러움은 태산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돌봐줄 방법이 없는 데 어찌 부부의 마음에 애정인들 견뎌내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이고, 난초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풀잎일 뿐. 내가 있어 당신에게 누가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괴롭습니다. 지난날의 즐거움을 생각하니 바로 근심과 걱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쩌다 이 지경에 왔습니까. 새들이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짝 잃은 새가 거울 앞에서 짝을 찾는 것이 되레 나을 것입니다. 추울 때는 버리고 더울 때는 가까이 함이 사람으로 못할 짓이나, 나가고 멈춤이 인력으로 될 일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도 운명에 달린 일입니다. 우리 이만 헤어졌으면 합니다.“

 

여인이 정갈하게 정리해주니 남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가족은 흩어져야 합니다. 사랑도 삶도 허망함을 곱씹으면서. 타다 남은 초롱불은 어른거리고 밤도 지나 동이 트려합니다. 아침이 되자 조신의 수염과 머리털은 하얗게 세고, 고통스럽던 인생살이가 넘실대며 주름진 얼굴위로 흘러갑니다.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만 일어나요. 깨어보니 법당에서의 꿈이었습니다. 조신의 꿈은 사랑하는 여자와 한 몸을 이루었으나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먼 옛날의 설화로만 돌리기에는 오늘의 우리네 인생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어제 다뉴브 강 유람선 사고로 희생된 여섯 살 여아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가슴에 파편처럼 박힐 때, 허공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딸도 다 보내고 덩그마니 혼자 남아야할 아빠의 목 멘 흐느낌이... “사랑하는 딸아, 엄마 할머니 손 꼭 잡고 즐거운 여행길 계속 걸으렴. 꽃길만 밟으렴. 영영 꿈에서 깨어나지 말고. 안녕!”

어쩌면 삶도 꿈이 아닐까요? 기억은 무성하고 아름다운데 실체가 없는 꿈. 그런 생각이 엄습해 옵니다.

Daum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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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도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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