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인간만이 생의 끝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요. 사람은 삶의 유한함을 알기에 죽음에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서 의미 있게 마감하고픈 욕구가 더해집니다.

 

살아있는 기쁨에 눈뜨고 올바른 삶을 고민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체험하진 못합니다. 다만 앞서 간 사람의 죽음을 추론하거나, 삶의 막바지에 이른 극한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유추합니다.

 

토마스 모어는 소설 유토피아로 우리에게 친근한 영국의 작가죠. 그는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했다가 종교적 반역자로 몰려 단두대 처형을 당합니다. 그러나 처형장의 토머스 모어는 태연했고 유머까지 잃지 않았지요. 단두대 받침대에 머리를 올려놓고는 형리에게 말합니다. “여보게, 내 수염이 잘리지 않게 조심하게. 수염은 죄가 없으니까.”

 

자신의 신념을 유머로 풀어냈던 모어. 그의 일생을 그린 영화 ‘4계절의 사나이에서의 대사 한 토막이 인상적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자 친척들이 찾아와 제발 왕과 타협해 목숨만은 건지라며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자 그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고 거부하지요.

 

끝까지 타협 않고 토마스 모어는 갔지만 우리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거울입니다. 한 사람의 평가는 죽는 순간 드러나지요.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이 보입니다. 유럽을 종횡으로 유린했던 철권 나폴레옹은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 묻혔지만 묘비에는 한마디 여기 잠들다(Ciget)’ 뿐이지요.

 

죽음이란 극한 상황을 돌아온 사람의 삶을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28세의 포병장교였던 시절, 그는 혁명가담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시베리아 형무소로 갑니다. 영하 50도 설한의 땅에서 아침마다 그날 사형이 집행될 수형자 이름이 호명되면, 또 하루의 생명을 연장하는 삶을 삽니다.

 

마침내 그도 호명을 받는 날이 왔습니다. 총구 앞에 선 그에게 집행관이 5분의 시간을 주고 인생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그의 생명은 이제 5분뿐.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회한이 넘쳐나고 허송한 28년 세월이 뼈저리게 느껴옵니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삶을 살 텐데...” 입술을 깨뭅니다.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졌습니다. 흰 깃발을 흔들며 달려온 병사의 손엔 황제의 사면령이 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는 삶의 끝 벼랑에서 생명을 탈환하는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역시 삶의 벼랑 끝에 서본 인간만이 지순해질 수 있는 걸까. 그 경계를 체험한 도스토옙스키는 고질인 간질을 앓으면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백치’ ‘악령같은 대작을 남기는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죽음을 아는 사람이 치열한 삶을 살고, 죽음을 절감하는 자가 삶의 환희를 느낍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런 인물입니다.

 

BC39970세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독배를 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어리석은 아테네 시민법정은 타락한 시민의 정신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기 때문이죠. 교만과 허영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각성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여준 사람이지요. ‘악법도 법이란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그는 기꺼이 법의 미명아래 내리는 독배를 받아듭니다. 그의 입에서 마지막 무슨 소리가 나올까,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내린 아테네 시민대표 500명과 눈을 맞추면서 말합니다.

이제 떠나갈 시간이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가오. 누가 더 행복할까. 그건 신만이 알 것이오.” 사람들 가슴에 끌질을 남기고 소크라테스는 유유히 떠납니다.

 

그는 생전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살기를 원하느냐? 바로 살아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진실 되게, 아름답게.” 그리고 철학이 무어냐고 묻는 학생에겐 죽음을 생각하는 학문, 죽음을 훈련하는 학문이라고 쉽게 가르쳤어요.

 

죽음은 진실로 삶을 철학케 합니다. 사람은 생김과 생각이 다 다르지만 응애 하고 울다가 꼴깍 하고 죽는다는 것, 그것을 일찍 숙지하는 사람일수록 죽어있는 삶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겠지요.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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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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