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오페라가 막을 내리면 무대 위에 펼쳐졌던 치열한 삶들은 사라집니다.

사랑과 증오에 불탔던 배역들은 흩어지고, 객석의 사람도 모두들

떠나가지요. 조명이 꺼지면 사방이 곧 흑암에 같힙니다.

 

인생이 덧없기가 들에 핀 꽃같이 짧고 허망합니다.

남산 밑을 걷다가 한 게스트하우스 앞에 내걸린 팻말이 눈을 환하게

해주었어요. ‘거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

그 공간의 낭비를 아름다운 음률로 채우는 사람, 곡을 짓는 음악가란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만큼 시공을 넘나들며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없습니다.

그중에도 클래식은 어제와 오늘 내일의 공간을 이어놓는 감성의

영역입니다. 그 바탕에 그리스 로마 신화와 함께 서양 예술사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성경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신간 바이블 클래식’(김성현 지음)은 수많은 작곡가가 어떻게 성경을 통해

영감을 얻어 명곡을 탄생시켰는지 클래식 작품 속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많은 예술가의 일생이 불우했듯이 그늘진 삶을 산 음악가도

의외로 많습니다.

 

종교음악은 생각보다 시대와 장르를 초월해 폭 넓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헨델은 유명한 합창곡 할렐루야가 나오는 메시아같은 많은 종교곡을

남겼고, 우리가 잘 아는 바흐, 비발디, 멘델스존, 구노, 20세기에 활약한

쇤베르크, 메시앙, 스트라빈스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경 속 이야기는 작곡가가 처한 현실에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게 했지요.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믿음이 충돌할 때, 경제적

궁핍과 예술적 자각 사이를 방황할 때, 삶의 결정적 순간마다 종교적

영감이 작동해 많은 곡이 탄생합니다.

 

헨델은 40년간 영국과 유럽에서 오페라 음악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

지만, 자신의 명성에서 덧없음을 느낍니다. 나이 들고 빈털터리가 된

뒤에는 뇌출혈까지 겹쳐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었어요.

 

암울한 그에게 한 시인이 찾아옵니다. 시인은 성경 읽으며 영감을

받아 썼다는 시 한 편을 내밀고 작곡해줄 것을 제안합니다. 별 관심

없이 시를 받아 읽던 헨델의 동공이 한 순간 열리기 시작했어요.

 

그는 멸시를 받아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지라 그를 위로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이사야서 구절이 헨델 마음에 큰 울림으로

파동쳤어요. 세상에서 얻은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헨델은 펜을 잡고 오선지 끌어당겨 작곡을 시작했어요. 작곡을 하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그렇게 21일간

쉬지 않고 매달려 세기의 명작 <메시야>를 탄생시켰습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도 우리에게 친근한 곡이죠. 파리외방선교회가

세운 학교에는 음악 신동 구노와 음악천재로 불린 친구가 다녔어요

둘은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였는데 친구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길이 갈렸습니다.

 

사제의 길을 간 친구는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고 이 소식을 들은

구노는 친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따금 학교 게시판에

순교자 이름이 붉은 글씨로 붙을 때면 구노의 가슴엔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했어요.

 

얼마 후, 구노는 게시판에서 친구 엥베르가 조선대교구 주교가 돼

죽음의 땅 조선으로 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랍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가 어렵다는 곳. 순교를 위해 조선에 간다는

말이 나돌던 때니까요.

 

구노는 날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했습니다. 어느 주일, 요란하게

종소리가 울렸어요. 종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던 구노는 이날

게시판 앞에서 얼어붙습니다. ‘엥베르 주교 조선에서 순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의 마지막 편지가 떠오르며 더

마음을 아프게 했지요. 구노는 뒷동산으로 뛰어가 성모상 앞에서

목 놓아 울며 성모송을 만들어 바치게 되었어요. 그것이

아베마리아성모송입니다.

 

구노가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남긴 아베마리아성모송인 셈이죠.

순교한 엥베르 성인은 지금 명동 대성당 지하에 묻혀 있습니다. 인연은

이렇게 엮이기도 합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태그
첨부파일 다운로드
이-4.jpg (577.4K)
다운로드

전체댓글 0

  • 0706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바이블과 음악가의 영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