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30(금)
 

루게릭 병입니다.” 50대 초반의 그녀에게 떨어진 진단예요. 이 가혹한 한 마디에 그녀의 일상이 혼돈 속에 회오리칩니다. 그날 이후, 일과마다에 이명처럼 따라붙는 혼란스러운 생각들. 내가 행복전도사라? 사람들 앞에 강연할 때도 나 지금 뭘 하는 거지? 당장 내일 어찌 될지 모르면서.” 순간, 어쩌다 이런 병이 왔을까 눈물부터 그렁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속속들이 알게 된 병.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게릭이 30대 젊은 나이에 이 질환으로 죽자 붙여진 병명임도 알았습니다.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으로, 서서히 팔다리의 근육이 위축되다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 이른다는 병...

 

내 속은 썩어드는데 남의 속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러워요? 추가 강연요청은 받지 않고 남은 스케줄을 가까스로 마칠 때, 몸은 탈진된 상태였습니다. 6개월밖에 안 됐는데 팔다리의 힘이 전 같지 않고 수저질, 단추 잠금이 편치 않아요. 점차 무거운 물건을 못 들고, 팔도 크게 올리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켜켜이 쌓입니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병.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 질병을 55년간 앓으면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의사가 희망을 북돋울 때, 그녀는 내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립니다. 그나마 치료술 향상으로 10년 이상 생존한다지만 마지막 투병단계의 모습엔 눈이 감깁니다.

 

그녀가 심리상담 치료를 받겠다고 김 박사를 찾았을 때는 거동이 불편해질 즈음입니다. 그로부터 지인인 김 박사를 통해 그녀의 투병과정에 관심을 갖으면서 모든 질병과의 싸움은 결국엔 마음과의 싸움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 안정에 애쓰는 변화를 보였어요.

 

침대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너 왜 이래? 왜 오지도 않은 날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려는데, 걸음이 제대로 안 떼지는 거 있죠. 이러다 옷에 실수하겠다는 생각에 억척스레 한 발짝을 떼다보니 화장실 앞입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박사님이 버티라고 얘기한 그 한 발짝이 이거다 싶었어요.”

 

하루는 그녀가 호소합니다. “박사님,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게 운명이면 너무 가혹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까지 들추면서 얘기합니다. “맞아요. 운명은 할키고 인생은 버틴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면 아픔이 기를 숙일 때가옵니다. 고통 사이에 조금 덜 아픈 틈이 있거든요.” 입술을 깨물고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언제부터 희망이 되었어요. 덜 아플 때. 움직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수다도 떨었다고 해요. “때론 병증이 악화돼 한 발짝 떼기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약을 먹으면 2시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하루 3번 그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것이 희망인가 봐요.”

 

조금씩 여유를 찾아갑니다. 인생길 굽이치다 이제 살만하니 루게릭이 친구하자고 왔대요. 그래, 모진 인생을 살려면 이런 친구도 끌어안아야지 생각하고 웃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배웠다고 해요. 인생은 버티고 견디는 것임을. 상담자도, 상담역도 버티는 인생은 같아요. 한 쪽은 병을 버티고, 한 쪽은 잘 버티도록 잡아주니까.

 

버틴다는 건 말없이 순종하는 수동의 상태가 아니죠. 내면에서 솟는 울분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말예요. “내가 만일 버티지 않고 포기한다면 쉽겠지만 엄청 후회를 하겠죠.” 그녀의 마음은 그만큼 여물어졌습니다.

 

그녀는 병이 진행되면서 내 몸이 달팽이가 돼간다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에 눈을 뜹니다. 뜰에 새싹이 나고, 꽃대가 솟고.... 자연의 변화가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지면서 살 거면 어떻게든 살자. 누워만 있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조물주가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든 건 삶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겠지. 인간은 포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란 뜻이겠지.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래서 고통은 축복이란 것이겠지. 고통을 겪으면서 진짜 감사를 배우고 내 질병이 스승임을 알았다는 그녀. 그녀는 지금 제주에서 15년차 투병생활을 씩씩하게 버텨냅니다. (이관순 소설가)

 

 

태그
첨부파일 다운로드
이-1.jpg (25.4K)
다운로드

전체댓글 0

  • 6132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삶이란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게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