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력시장 구조적 모순이 심각하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에 힘쓰고 있음에도 에너지 전환 속도가 느린 이유는 한전 중심의 경직된 체계가 재생에너지의 성장과 민간 참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의 구조적 모순은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만이 발전, 송·배전, 소매 3개 부문에서 발전을 제외하고 모두 독점하며, 발전 부문마저 한전 자회사들이 70%를 장악하고 있다.
남동발전 등 대부분의 한전 자회사는 석탄·가스에 의존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는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툭하면 출력 제한에 걸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기업들은 재생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탄소 감축을 강요받고, RE100 압박 속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21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까지 원전 35%, 재생에너지 29% 확대와 소형원전 도입을 명시하며 한발 나아간 계획을 제시했지만, 새로운 에너지에 불리한 전력시장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설비 확대도 중요하지만, 전력시장 개혁이 먼저다. 정부가 설비 확대에 힘쓰고 있음에도 에너지 전환 속도가 느린 이유는 한전 중심의 경직된 체계가 재생에너지의 성장과 민간 참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이 재생에너지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하고, 한전의 송·배전 비중은 점진적으로 중립적 운영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해야 한다. 독일이나 영국처럼 재생에너지 우선 송전을 보장하고, 전기요금도 현실화해야 한다. 영국의 내셔널 그리드는 송전만 독점하고 발전과 배전을 민간에 개방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한전도 이런 방향으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력 인프라도 분산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강원도에 풍력·수소, 전라도에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특구를 조성하고, 소형원전으로 안정성을 뒷받침하면 인공지능과 첨단 산업이 지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한전의 기존 송전망을 활용하되, 지역 특구에서 생산과 소비를 효율화하면 비용도 줄고 효과는 극대화된다. 막대한 화석연료 보조금을 줄여나가고 이 재원으로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면 RE100 기업들을 유인할 수 있고,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으로 지역 소멸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