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할아버지가 되려면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다는 스토리를 남길 수만 있다면 후손들이 기억해 주는 멋진 할아버지로 남을 것이 아닌가?
요즈음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사람으로 늙은이를 평가하고 있다.
꼰대란 프랑스어로 백작을 꽁트(Comte)라 부른데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를 일본어로 꼰대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완용 등 친일파들이 일본에서 작위를 받고는 자신을 일본 꼰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 꼰대란 쓸데없이 간섭하고 불평하는 늙은이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꼰대 식별법도 나와 있다.
-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한다.
-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 불평불만만 한다고 주장한다.
- 버스나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젊은이에게 "비켜라"라고 말하고픈 충동이 있다.
- 후배의 장점이나 업적을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그의 단점과 약점을 찾게 된다.
- "내가 너만 했을 때" 얘기를 자주 한다.
-옷차림이나 인사 예절도 근무의 연장이라고 지적한다. 등 등이다.
그리고 꼰대로부터 탈출법도 있다.
첫째, 받아들이고 인정해라.
‘내가 나를 어찌 바라보는가?’의 관점이 아닌 ‘타인이 나를 어찌 바라보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꼰대 탈출법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꼰대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자기 뜻과 사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데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타인의 의견이나 방식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삼가라.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다 알고 거리낌 없는 대화를 할 만큼 친하지 않다면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해주어야 힌디. 그래서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독이 아니라 불필요한 참견이 되기 십상이다. 지나친 관심은 호구조사나 취조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아 한다.
셋째. 함부로 충고하지 마라.
선의에서 한 말들이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살 빼면 더 괜찮을 것 같아’라는 말은 살이 빠지지 않는 당사자에게는 비난이 될 수 있다. 상황의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짐짓 자신의 판단에만 의존해서 하는 부적절한 충고는 꼰대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진정한 존경을 원한다면,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훈수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과거의 내가 아닌 현재의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이 되면 국가가 나서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유도하는 현대판 고려장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이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너무나 많아서 입법화 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노인들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있다.
국가가 나서서 이제 그만 살아도 된다는 공식적인 선언을 한 셈이니 그렇지 않아도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노인들에겐 한 가닥의 희망 줄 마저 놓친 셈이 된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가야 될 길이고 누구나 다 겪어야 될 과정이다. 그런데 늙음을 부정한다는 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격이 된다. 결국 늙음이란 존경받아야 될 대상이 아니라 증오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란 자연과의 싸움, 사람과의 싸움, 그리고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3가지 싸움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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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린 시절 자연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면 결국 좋은 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즉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따뜻하게 꽃 피는 봄이 찾아오듯이 자연의 변화에 순종하고 참고 이겨내면 내게도 기회라는 것이 찾아올 수 있어 모든 일을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둘째, 사람과 사람과의 싸움에서 내 입장만 내세우게 되면 결국 갈등만 더욱 조장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협력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낸다면 상대방도 내편이 되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관계가 조성된다. 그래서 인간관계란 사랑이라는 묘약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 우리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내자신과의 싸움에 아집과 편견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결국 아집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보다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내 자신의 아집과 편견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된다는 철학과 신념을 갖고 가치 있는 일을 찾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집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이와 같이 인생이란 한 바퀴 돌아봐야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된다. 그런데 노인을 무시하고 질시한다면 결국 인생이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채 외골 수 인간들만 들끓게 되는 법이다.
혼자서 빨리 달려 1등만 하겠다고 살아온 경쟁사회에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1등으로 차지한 자그마한 메리트에 만족하면서 내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심으로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는 못난이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팔순이 된 내자신, 얼마 남지 않은 네 인생, 무엇으로 채우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것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무얼 위해서 살아 가야 되나를 생각하면서 보다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다는 스토리를 남길 수만 있다면 후손들이 기억해 주는 멋진 할아버지로 남을 것이 아닌가?
나는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다. 멋진 할아버지로 보다 아름답고 멋지게 이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 남길 수 있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