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남극에선 ‘빙저 화산’ 100여개 잠복
대륙 빙하는 인간이 만든 지구 온난화 때문에 녹고 녹은 대륙 빙하의 중량은 줄어들어 화산을 내리누르던 압력이 약해져 100여개 빙저 화산이 동시다발적으로 분화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미국 브라운대와 독일 아헨공대 소속 과학자들이 구성한 공동 연구진은 인간이 유발한 지구 온난화 때문에 남극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지오케미트리, 지오피직스, 지오시스템스’에 실렸다.
연구진은 남극 땅 위를 2~4㎞ 두께로 덮은 거대 얼음, 즉 ‘대륙 빙하(빙상)’가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최근 크게 감소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따뜻해진 기후로 대륙 빙하가 녹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녹은 빙하가 영향을 주는 특이한 대상에 시선을 집중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빙저 화산’이었다. 빙저 화산은 대륙 빙하 아래에 숨은 화산이다. 바다 밑 해저 화산처럼 얼음 밑에 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빙저 화산은 땅 위에 노출돼 있지 않아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한다. 남극 대륙 남부에 해발 3794m 높이로 솟아 있는 에레버스 화산 등 몇몇을 제외하고 남극 화산 대부분은 빙저 화산이다.
빙저 화산은 남극에 100여개 있는데 대부분 현재는 마그마를 뿜지 않는, ‘활동 중지’ 상태다. 포장을 뜯지 않은 채 호주머니에 넣어놓은 손난로 같은 존재다.
주목할 점은 남극 빙저 화산 대부분이 현재 활동하지 않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빙저 화산이 대륙 빙하의 엄청난 중량에 눌려 있기 때문에 생기는 ‘평화’다.
자동차에 동력을 공급하는 엔진처럼 빙저 화산 하부에서 힘을 제공하는 마그마 덩어리가 두껍고 무거운 대륙 빙하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그마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면 빙저 화산 폭발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대륙 빙하는 인간이 만든 지구 온난화 때문에 녹고 있다. 녹은 대륙 빙하의 중량은 줄어든다. 이러면 빙저 화산을 내리누르던 압력이 약해진다. 빙저 화산 폭발이 발생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100여개 빙저 화산이 동시다발적으로 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피부 상처를 손으로 꽉 눌러 출혈이 멎었는데, 손을 갑자기 뗀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혈되지 않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혈액처럼 남극의 빙저 화산에서 마그마가 뿜어져 나오는 상황이 현실화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연구진은 미국 지구물리학회 소식지를 통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약 4000건 실행했다”며 “대륙 빙하가 녹으면서 빙저 화산의 폭발 횟수와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