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정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헌법소원, '절반의 승리?' ,
정부가 2030년 이후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 지난 29일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는 국내 첫 기후 소송이 제기된 지 4년 5개월 만에 정부의 기후 대응이 일부 헌법에 어긋난다는 기념비적인 판결이 나왔다.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정부가 2030년 이후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러한 점에서 해당 조항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라며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새로운 기후 대응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가장 대표적인 기후변화 대응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따지는 소송으로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국내 첫 기후 헌법소원은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이 제기한 것이었다. 피청구인은 대한민국 국회와 대통령. 청구인들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미흡해 청소년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2021년 10월에는 기후위기비상행동과 녹색당 등 123명의 시민들이, 2022년 6월에는 62명의 ‘아기기후소송단’(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20주 차 태아 1명)이, 2023년에는 환경단체 회원 등 시민 51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네 건의 소송에 참여하는 원고는 총 255명. 헌재는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등을 고려해 지난 4월과 5월 이례적으로 두 차례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청구인들은 공통으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충분하지 않아 미래세대를 비롯한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소송의 청구인 목록에는 엄마 뱃속의 태아부터 영·유아, 10대 청소년까지 이름을 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중 한 명으로 10살 때부터 소송에 참여한 한제아 양은 이날 판결이 내려진 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치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기쁘고 뿌듯하다”며 “이 소송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얼마나 깊이 기후위기에 대해 걱정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청소년기후소송 청구인인 김서경(22) 씨도 "기후 헌법소원의 위헌 판결은 기후위기 속 보호받을 우리의 기본권 존재를 인정하는 판결"이라며 눈물 흘렸다. 환경단체와 청구인 변호인단은 이날 판결에서 대부분 사안이 기각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기후변화가 기본권의 문제”라는 점을 처음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헌재는 이번 판결을 통해 기후 위기와 관련한 미래 세대의 부담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이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헌재가 이번 소송을 ‘일부 인용’하는데 그쳤다는 점에서 ‘절반의 승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은 청구인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해당 조항은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을 “40퍼센트”로 규정하고 있다. 즉, 현재 한국이 파리협정에 따라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량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은 오는 2030년에는 2018년 대비 탄소 배출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