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18(금)
 

우리들은 요즈음 GMO, 유해물질, 방사능 오염, 곰팡이독소 등 각종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위해’요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막상 어떤 식품을 선택하여야 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품질 및 안전성 등을 입증받는 제도인 ‘농식품 국가인증제도’가 도입하게 되었다.

 

국내 농식품 안전 인증제도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수축산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가공식품에 대한 인증을 주관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GAP(농산물), 친환경인증(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가공식품), HACCP(축산물, 수산물) 등을 인중하고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HACCP(가공식품), GMP(건강기능식품) 등을 인증하고 있다.

 

한편 농식품에 대한 유통단계별로 인증제도를 연계하여 실시하고 있다. 생산단계에서는 GAP(농산물우수관리), 가공단계에서는 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 및 GMP(우수제조관리), 유통단계에서는 GHP(우수위생관리)1), 소비단계에서는 리콜 및 PL(제조물 책임)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력추적관리는 농장부터 식탁까지(farm to table) 전 단계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인증제도를 통해서 농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탐색비용을 절감토록 하고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농식품의 안전성에 관련된 정보는 비대칭성 및 불완전성으로 인해 시장의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는 소지를 최소화 시키고 있다. 이에 정부는 품질이 우수하고 안전한 농식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안전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인증제를 비롯한 각종 농식품 위생관련 제도가 글로벌푸드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면서 농업과 먹거리에 대한 농민과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표적으로 농가 가공에 대한 규제를 들 수 있다. 식품위생법은 식품의 제조, 가공, 운반, 판매, 보존 등의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기준의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품가공을 위한 건물과 작업장을 설치해야 하고, 작업장에는 식품의 오염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러한 시설기준과 영업 규제는 결국 영세한 농민의 가공 참여를 가로막고, 자본 조달이 용이한 대기업이 식품가공을 독점케 하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6차 산업을 육성하고 로컬푸드와 결합을 도모하려 해도, 시설과 규모를 기준으로 삼아 막대한 자본투입을 요구하는 식품위생법이 결국에는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고 있 다.

 

또 외부의 오염시설과도 일정 거리를 둬야 한다. 가공시설로 등록하려면 제2종 근린생활시설 혹은 500㎡ 이상의 건물이 있어야 한다. 농촌지역에서 마을회관이나 농기계 창고 등을 리모델링해서 가공사업장으로 사용하려 해도 건축물등록대장에 등재되지 않았거나 용도가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농민들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로 즙을 짜거나 추출물을 만든다든지, 고추장 등을 만들어 팔려고 해도, 영업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 이러한 시설기준과 영업 규제는 결국 영세한 농민의 가공 참여를 가로막고, 자본 조달이 용이한 대기업이 식품가공을 독점케 하는 시스템이 된다.

 

또한 식약처가 불량식품을 근절한다고 의무화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HACCP 역시 농가를 식품가공에서 소외시키고, 지역의 전통식품업체를 옥죄는 제도로 작동한다. 예컨대 청국장을 만드는 소규모 가공시설에서 HACCP 인증을 받으려면 작업공간을 비롯해 위생 전실, 공간 구분, 천장, 벽면, 바닥면과 세척·소독 등 위생설비를 다 갖춰야 한다.

 

우리 농산물로 절임류를 만드는 한 업체는 구매업체들의 요구 때문에 HACCP 인증을 시도했디. 그렇지만, 시설 개보수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중도 포기했다고 한다. 이 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1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주는데도, 자부담 비용 1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통주나 전통식품에 대해 HACCP 인증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전통식품이란 국산농산물을 원료로 제조·가공되고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우리 고유의 맛, 향, 색을 내는 식품인데, 이것을 글로벌 기준에 맞춘다는 것은 난센스다.

 

세계 유수의 명품 지역식품과 농산물은 가장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이것을 국제기준에 맞춰 규격화한다는 것은 스스로 함정을 파는 것과 같다.

 

농가가 HACCP 인증을 받아도 별 혜택이 없어 나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축산의 경우 농가 HACCP을 추진 중인데, HACCP 인증을 반납한 농가가 2011년 202개소에서 2012년 196개소, 2013년 257개소, 2014년 233개소, 2015년이후에는 310개소까지 늘어났다. 일선 농장에서는 HACCP 인증 획득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농장과 판로나 가격 측면에서 별반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HACCP이나 GAP은 기업, 특히 유통자본들의 필요에 의해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글로벌 갭(Global G.A.P)’이다.

글로벌갭은 ‘유럽소매업 생산자단체’가 1997년 ‘EUREPGAP’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06년 ‘유럽갭EUROPE GAP’으로 바뀐 뒤 2007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진행 중이다. 현재는 독일 쾰른에 소재한 푸드플러스사에서 관리한다.

 

글로벌갭의 인증기준은 HACCP은 물론이고 위험예방, 위험분석, 병해충종합관리IPM, 작물양분종합관리INM 등을 포함하고 있어 현재 우리나라의 GAP 인증보다 범위가 넓다. 이 제도는 유통업체들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TESCO, Coop, Otto 등 상당수 유럽의 대형유통업체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안전관리기준이다.

 

즉 HACCP나 GAP은 유통업체 입장에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이윤추구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국제표준으로 고착화되고, 이 제도에 동승하려면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소농, 가족농, 중소기업보다는 대농과 대기업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어 결국 인증제도의 확대는 농업과 먹거리 시장을 대기업 위주로 재편하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

 

HACCP 적용으로 이익을 보는 부류는 시설투자가 가능한 대기업, 시설 공급업체, 인증업무를 대행하는 컨설팅업체,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는 프랜차이즈업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정부주도의 인증정책은 친환경농업에도 혼선을 부르고 있다. 친환경농업이란 고투입 관행농업, 산업적인 농업과는 다른 대안적인 농업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의 농업지배 강화는 농약, 비료, 시설·에너지의 고투입, 대규모 단작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식 산업적 농업을 확산시켜 먹거리 안전과 생태문제를 부르고, 공동체를 해체하며, 부의 집중으로 농촌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에 비해 친환경농업은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면서 자원의 순환고리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한다. 친환경농업은 농업의 순환성, 농지 생태계의 풍부화, 외부투입 화학농자재 배제, 지역자원의 순환을 위주로 하는 농업이다. 그 철학이 되는 키워드는 ‘생태, 순환,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획일적인 친환경농산물 인증이 시행되면서, 고투입 관행화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 등 외부 농자재 투입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 친화성, 지역 순환성을 가치로 해야 함에도, 인증기준에 따라 허용된 농자재를 기계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 고착화됐다.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획일적인 친환경농산물 인증이 시행되면서, 고투입 관행화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 등 외부 농자재 투입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친화성, 지역순환성을 가치로 해야 함에도, 인증기준에 따라 허용된 농자재를 기계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 고착화됐다.

 

정부정책이 인증과 농자재 지원에 집중되면서, 정부의 친환경유기농자재 목록공시나 품질인증을 받은 비싼 자재를 구입해 사용하는 일이 일반화됐다. 획일적인 기준은 유기농의 주체인 소농·가족농과 소비자 대신 친환경농자재를 생산하는 기업, 표준화된 유기농산물을 높은 가격으로 유통하는 유통·가공자본에 이익을 주는 구조로 변질된 것이다.

 

세계 최강의 농산물 수출국 뉴질랜드의 경우 농가가공을 위한 HACCP 시설이 매우 간소하다. 농장에서 체험·가공장·농가숍을 운영하며 잼, 와인, 아이스크림, 농축액, 주스, 비누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20ha 규모의 뉴질랜드 블루베리 농장의 HACCP 인증 가공장 크기는 어지간한 식당의 주방 수준에 불과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소농 육성을 위해 내수 시장에 한해 저비용 유기농인증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3~5농가가 공동체를 형성, 인증기준에 맞게 농장을 관리하는지 상호 점검하고 감사를 통해 인증한다. 비용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비용의 10%면 된다.

 

친환경농업의 요체는 생태·순환·공생이고, 이에 적합한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소농·가족농이다. 친환경 인증제도는 친환경농업 방식, 생산자의 자질, 물리적인 환경을 포함한 생산시스템과 과정을 살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농약 검출만 따지는 인증, 외부 투입재 사용을 강요하는 인증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 순환, 생태계 보전을 따지는 인증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의 인증은 결과 중심 인증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인증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대부분 나라는 생산과정을 평가함으로써 유기적인 품질을 관리한다. 요즘 국내 생협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참여인증, 자주인증제도는 좋은 대안이다.

 

이 제도는 인증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와 농민이 연대하는 공생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농가의 부담을 덜고, 지역순환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농자재 지원정책이 아니라 유기농에 대한 직불금 확대, 경축순환 농업 지원, 소농과 가족농의 공동작업 촉진, 로컬푸드 지원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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