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천고마비(天高馬肥). 말이 살찌는 계절, 말만 들어도 평화로운 초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몽골을 경계해온 중국에는 평화보다

긴장을 상징합니다.

 

원기를 회복한 몽골족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몽골을 늘 경계해 왔어요. ‘몽고라는 국호로 얕잡아보면서도

그들의 전술 전략에 수없이 농락당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북방 유목민족을 경계하고자 만리장성을 쌓고, 동북

부족 때문에 천리장성을 축성했을까. 알려진 대로 칭기즈칸의 몽골은

한 때 1억의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막강한 제국이었죠.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까지 그들의 말발굽 아래

수많은 나라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와중에 국가의 명패를 지킨 나라는

고려뿐입니다. 형제의 맹방이라고 의리를 지켜주어서죠.

 

유목민족인 몽골이 고려를 맹방으로 우대한 것은 한반도가 몽골족의

후예라는 연대의식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큽니다. 유독 한국인

신생아의 엉덩이의 시퍼런 반점을 몽골리안 마크로 불린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21세기 문명이 새롭게 유목 문화를 주시합니다. “집을 짓고 사는 자,

망한다라고 한 몽골 장수 돈유 코코 말처럼, 누가 시간을 지배하느냐라는

인류의 초관심사가 IT 문명과 맥이 닿아서입니다.

 

그동안 문명의 쥬류인 정착 민족의 관심은 누가 공간을 제어하며 사나?’

였다면, 유목 문화는 누가 시간을 제어하며 사느냐?’에 있습니다. 이는

수직적 위계사회가 수평적 위계사회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한국인의 유목성 기질을 분석한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이를 보면 우리도

다분히 유목민 DNA, 피가 흐르고 있음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합니다.

그 하나로 <활쏘기>를 꼽았어요.

 

우리나라 양궁이 유달리 강한 이유를 유목민 기질에서 찾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세요. “얼마나 말과 활을 잘 다루면, 달리는 말에서도 뒤를

향해 쏠 수 있을까?” 고구려 시조 주몽의 뜻이 활을 잘 쏘는 자란 점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골프> <바둑>에서도 빛나는 유목 기질을 찾습니다. 바둑은 어떤가요?

수직적 위상으로 설정된 장기나 체스와 달리 바둑은 수평적 위상에서

출발합니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장기와 달리, 바둑은 끝까지

가봐야 승부가 납니다.

 

<이동통신> 발달은 보다 뚜렷한 우리민족의 장점이 투시되어 있습니다.

이동통신 세계 3대 보급률 국가인 한국, 핀란드, 스웨덴의 공통점은

몽골리안 계란 점입니다. 유목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속 풍습> 중엔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많아요. 단오, 삼짇날,

천렵, 단풍놀이가 그렇습니다. 유목성에는 남의 마을, 이웃집에 대해 늘

궁금함이 있습니다. 옛날엔 발품을 팔고 귀동냥으로 알아챘지만, 지금은

애어른 구별 없이 핸드폰을 들고 궁금증을 풀잖아요.

 

<음주문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양 음주는 스스로 따르고 마시는

자작(自酌)문화지요. 우리도 농경사회 땐 비슷한 자배(自杯)를 즐겼지만,

서서히 돌려마시는 순배(巡杯)로 바뀌면서 우리는 하나를 외쳐댑니다.

 

몽골 음주습관은 각배(角杯)예요. 좌장이 병권을 쥐고 뿔로 만든 각배를

돌려 마십니다. 이동하는 짐을 줄이기 위해 한 사람만 술잔을 지닙니다.

그것이 이동에 효능임을 아니까요.

 

몽골대학의 졸업식은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처럼 졸업식장에 모여 끝내지

않고 계속 이동하며 행사를 이어가죠. 오전 졸업식, 점심 호텔, 오후에

학교로 이동, 다시 야외로 나가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즐깁니다.

 

우리가 1·2·3차로 술집을 순례하고 폭탄주를 돌리는 것에도 유목문화의

이동성이 잠재돼 있는 걸까?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건, 빨리

끝내고 떠나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은 아닐까?

 

<고스톱>도 같은 관점에서 봤어요. 일반 화투는 위계질서가 분명하지만

고스톱은 껍질이 동등한 반열에 서 있습니다. 왕이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승패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죽기도 하니까.

 

<춤사위>는 어떨까요? 어깨춤, 관광버스춤, 말춤, 위아래로 흔드는

마상 춤사위 등 시간·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합니다. 한국경제의 급성장엔

<빨리 빨리>라는 주술이 작동했지요. 1년에 초장을 찾아 네 번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최대 관심은 빨리빨리 다음 초지를 찾는 일입니다.

 

21세기는 시간을 제압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신 유목시대입니다. 그러니

싸게 싸게’ ‘빠릿빠릿하게일을 해치워야 합니다. 영화 <친구>의 패러디

대사처럼 이제 마이 머물렀다 아이가. 고마 퍼뜩 떠나재.”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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