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지어다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실은 언제나 괴로운 것

모든 것이 순간이고

모든 것은 지나가나니

지나간 것은 모두가 그리워진다.

-푸시킨

 

지금도 시골에 가면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다방들이 있습니다. 멀지도

않은 한 시절, 우리 삶의 공간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던 이발소 그림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발소 그림이란 목가적인 풍경을 그린 복사 그림, 서정성 깊은 시,

명문장들을 액자에 넣어 이발소, 다방, 미장원, 목욕탕 등 대중업소를

꾸미는 장식품으로 걸려있던 것들을 통칭하는 말이죠.

중학교 때 처음 익힌 시가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동네 이발소에서였지요.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밀레의 만종

가화만사성같은 그림과 글귀를 그때 접했습니다. 이발소는 내게 작은

도서관이고 미술관이었지요.

푸시킨의 이 시는 지금 읽어도 마음에 와닿아요. 담담함과 관조적인 태도로

인생의 섭리를 통찰하고, 서정적인 시어와 낭만적인 비유로 아련하며

애잔한 분위기를 형성한 시가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시를 암송하면서도 출처를 잘 몰랐던 것은 소련이란 단어조차 금기시했던

냉전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푸시킨이 러시아 국민시인이며 20대에

7년을 유배지에서 보낼 때 쓴 시란 것도 알게 되었지요.

푸시킨은 이웃에 살던 16세 소녀에게 이 시를 써주었어요. 인생의 많은

아픔을 막 피어나는 꽃송이에게 기품 있는 잠언으로 남겨준 것입니다.

장차 몰아칠 풍우를 모르고 즐겁기만 한 소녀에게 시인은 연민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푸시킨의 이 시는 쨍하고 해 뜰 날을 바라는 단순한 희망가가 아닙니다.

희망을 흩날리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쓸쓸함에 무게를 느끼기 때문이죠.

현재는 괴로운 법이라는 안타까움을 긍정부터 하고 있으니까요.

늘 삶은 우리를 배반했다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을

참고 견디어 맞은 내일이 오늘이 되는 순간 늘 인생은 괴로움이었지요.

다만 모든 건 다 지나간다는 세월의 치유력에 기대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지나간 모든 것을 받아들임에는 그것이 삶이고 그럴수록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푸시킨도 우리가 겪는 코로나 시대처럼

콜레라 시대란 엄혹한 시기를 살았습니다.

치사율 50%의 역병이 모스크바를 점령할 때, 시인은 약혼녀를 그곳에

두고 몇 달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지요. 죽음이

휩쓸고 지날 때도 시를 썼습니다. ‘언젠가 내게도 기쁨이 있으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국 현대사의 증언입니다. 해방기가 그랬고,

경제개발기가 그랬고 모두 희망의 솟대였지요. 달동네, 쪽방, 구로공단,

콩나물 버스, 고시생 책상 모퉁이에도 출처 모를 희망가가 붙었습니다.

세월이 좋아질 때도 그 시절 나름의 운율을 입혔고 시대 따라 우리 삶의

희망과 슬픔을 녹여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맞은 오늘의 고달픔은 과거

경험한 역경과는 또 다른 무늬와 결입니다.

예전엔 미래를 찾는다고 괴로워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미래가 없다

아파합니다. 전엔 앞만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지난 것들과

싸우느라 내일을 준비할 여유가 없어 방황합니다.

오늘 다시 이 시를 소환해 본 것은 현실이 차단해 버린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낙심한 서로를 위로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치유 없는 시대를 살며, 치유해야 하는 아픔을 앓고 있습니다.

슬프고 허망한 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던 푸시킨이 38세 이른 나이에

죽음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장교 출신 단테스와 법으로 금지한 결투를

신청한 것이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았기 때문이지요.

결투 신청은 푸시킨이지만, 원인은 러시아 사교계의 꽃인 시인의 아내를

사랑한 단테스가 제공해 벌어진 일입니다. 총에 맞은 푸시킨이 집으로

옮겨져 혼수상태를 이어갑니다.

그 안타까운 시간에, 자택 부근에는 2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푸시킨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설파한 푸시킨의 마지막 상념은 무엇일까?

, 이 시를 읽는 지금의 내 생각은목적이 분명한 삶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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