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기적 같다는 말을 곧잘 들어요. 인생사를 돌아보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살아온 게 기적 같다’ ’꿈만 같아.‘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말이지요. 기적이든 꿈이든 연약한 인생이 살아가는데 빛과 소금 같은 언어입니다.

 

지인 모임에서 영화평론가인 분이 뉴욕 가는 비행기에서 생긴 인연 을 이야기 했어요. 옆자리에 백인 여자가 앉았는데, 인사를 나누고 보니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임을 알고 친해졌답니다.

 

그녀는 199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영화로 만들 때 각색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였어요. 대화는 삶을 바꿔놓은 4일간의 사랑 이야기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옮겨갑니다.

 

평범한 농부의 아내인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 길을 물으며 나타난 사진작가 킨 케이트(클린트 이스트우드) 와의 사랑에 대해. 평론가에게 작가가 물어요. 두 남녀의 만남이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각색하는 동안 떠나지 않은 화두였다고 해요. 우연일수도, 필연일 수도 있는 그 모호함... 두 사람은 대화 끝에 공감대를 찾습니다. ‘우연 없는 필연은 없다. 참 명료한 조합을 찾았어요.

 

덕분에 긴 비행시간을 지루한 줄 모르고 공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헤어지면서 즐거웠어요. 우연하게 귀한 분을 만났습니다.” 남자가 인사를 하자 여자가 , 이 만남은 필연예요. 좋은 분을 옆자리에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데요.” 라며 해맑게 웃습니다.

 

어쨌든 인연의 정의 하나는 구한 셈입니다. ‘필연 없는 우연은 없다.’두 분은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도 우정을 이어갑니다.사진작가 분도 오래 전의 경험을 들려줍니다.

 

4월 초, 강원도 한 목장으로 촬영을 나갔는데 날씨가 어찌나 변덕을 부리는지, 바람이 불다가 비가 오고 함박눈까지 쏟아졌다고 해요. 저 번에도 날씨 심술에 허탕친 적도 있어 입안에 쓴 맛이 돌았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해요. 건초창고에 두 시간은 족하게 앉아 무심한 하늘을 바라보는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더랍니다. 방목지 위로 눈발이 그치더니 순백의 구름장이 몰려오고 그 틈새로 햇빛이 들면서 순식간에 신세계가 열렸답니다. 그날 얻은 행운의 컷이 자신을 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LG재단의 총괄 임원을 지낸 친구가 파리에 들렀던 얘기를 합니다. 현지 주재원인 김 아무개 부장의 영접을 받았다고 해요. 주말에 불러낸 것 같아 점심이나 나누고 헤어지려했는데, 달팽이 요리를 대접하면서 시간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식당에서 현지인과 대화하는 것을 보고 불어가 어떻게 그리 유창하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불어를 택한 학교가 없었는데 혹시?” 갑자기 화제가 출신학교로 바뀝니다.

 

아이구 선배님이시네요.” 넙죽 인사부터 합니다. 우연하게 이역 땅에서 생각지 못한 선후배가 만난 겁니다. 얘기가 깊어질 수밖에요. 후배는 자신의 미래 걱정도 하면서, 주재원 생활 10년을 전합니다.

 

파리에 살다간 흔적이라도 남긴다는 생각에 쉬는 날이면 파리의 골목을 뒤지고 다녔다고 해요. 그러면서 골동품 마력에 빠지게 되었고, 여기에 세월이 덧대면서 취미 수준을 넘게 되었다는 군요. 듣고 보니 대단한 수집광임을 알게 됩니다.

 

그 뒤로 수년이 지났어요. LG재단에서 명지대의 고문서연구에 해마다 수억 원을 지원하던 때입니다. 어느 날, 그 후배로부터 귀국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났답니다. “혹시 프랑스 고문서도 수집했나?” “그럼요.” 얘기를 들으니 내용물이 상당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친구는 며칠 후 대학 총장과 고문서 연구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후배의 소장품 얘기를 전하자 당장 만났으면 합니다. 친구가 양쪽의 중재자로 나섰지요. 수집품을 다 기증할 테니, 교수자리를 달라. 그 결과 후배는 어렵다는 대학교수가 되었지요.

 

파리에서 후배와의 우연한 만남이 그의 인생에 일대 전환을 불렀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우연은 하느님이 모습을 숨기고 행하는 기적의 방식이라고 말했어요.그러나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는 데는 전제조건이 갖추어져야 해요. 그의 10년 노력이 필연을 부른 것처럼.

 

세상을 인연에 기대여 살 수 없지만, 묵묵히 일에 정성을 쏟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답니다.. 그게 인생사의 매력입니다. 그래야 지금 하는 일에 의미도 찾고.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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