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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앉아있는 자리
    스산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니 단풍은 지고 낙엽만 우수수 쌓입니다. 이렇듯 나무도 꽃도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사이즈를 줄이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한 주기의 마지막 겨울을 상대하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 또한 사이즈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몸집이 줄고, 먹는 게 줄듯 이것이 절제의 근본이며 이치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작게 나왔으니 돌아갈 때도 비우고 작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실상과 허상이 공존하지만 스스로 말수를 줄이고, 욕심도 미움도 줄이고, 자랑, 명예 같은 덧없는 것은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이즈가 줄지요. 루디 세네카는 “인간은 마치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꼬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를 알면서도 어제의 습관을 오늘도 고집하고 삽니다.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시나요? 바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보다는 흉금을 터놓고 말할 한 사람의 친구가 더 소중한 때입니다. 친구도, 만남도, 분주함도 지혜롭게 줄여가는 것이 노년의 삶을 가볍게 하고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은 수분이 80% 이상이라고 하죠. 비슷한 비율로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그만큼 물과 말은 몸을 유지하고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말입니다. 내가 살면서 토해낸 말을 양으로 계측한다면 얼마나 될까. 그중 꼭 필요했던 말은 얼마쯤 일까. 이제는 할 말 못할 말, 안 해도 좋을 말, 상처 주는 말을 가려가며 했으면 합니다. 내뱉은 말은 흘러간 세월처럼 돌릴 수 없으니... 그래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많이 들어주자. 듣는 귀는 8로 열고 말하는 입은 2로 줄이자. 남이 말할 때 자르지 말자. 중간에 끼어들지 말자. 말 줄기를 돌리지 말자.” 비위 상한다고 파르르, 욱, 버럭 하는 감정도 이젠 삭혀 없애야 합니다. 행여 그런 상황이 되면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버리세요. 대신 많이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가족, 친구, 이웃, 누구든 만나면 웃는 것으로 말문을 열어요. 나이가 들면 웃는 근육도 굳는다는데, 얼굴에 웃음기마저 빠지면 노인 특유의 표정 없는 일그러진 인상만 남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옻칠을 더하는 것처럼 윤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움이나 시기, 질투는 다 헛된 뜬구름이지요. 뜬구름을 좇다가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아픈 일입니다. 살고 있는 이날,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족해야 할 자리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맘대로 못할 게 뭐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사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살아보니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상의 스승은 없더군요. 사서삼경이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편 입장을 늘 먼저 헤아리면 그것이 상선의 절제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래 저럴 수 있겠다... 나도 그 입장이면... 저도 사람인데.”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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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너도 죽는다‘메멘토 모리’
    말에는 묘한 힘이 있어 곱씹을수록 향기를 내는 말이 있고, 겸손함을 가르치는 말도 있지요. 라틴어는 그런 철학적 의미를 함의한 말과 글이 꽤 많습니다. 언젠가의 기억입니다.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 1인이 된 학생에게 50번 마지막 골든벨 문제가 주어집니다.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주위에서 외쳤던 라틴어는?“ “메멘토 모리" 영예의 골든벨이 울리는 짜릿한 순간을 지켜보았지요. 다소 생소한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유래는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개선장군은 관습에 따라 전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영웅이 탄 마차가 시민의 환호 속을 헤치고 행진하는 동안 뒤에서 노예들이 큰소리로 외쳐댑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승리에 도취된 장군에게 본분을 잊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장치인 셈이죠. 로마 최고의 환대 속에서도 너는 신이 아닌, 한 인간일 뿐임을 알린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 이 셋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를 강조했습니다. 췌장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격찬합니다. 그러므로 제한된 인간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 듯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집중하라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뜻이 통하는 라틴어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습니다. 몬래 이 말은 신을 공경하고 오만해지지 말라는,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는 뜻인데 이후 기독교 영향을 받아 현세의 부귀나 영화의 부질없음을 알립니다. 우리에게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죠.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다는 이 말엔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 는 속뜻을 지닙니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명한 노래 ‘아모르 파티’도 같은 말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하는 파티가 합성된 라틴어로 이 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지요.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철학자 니체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미국 남서부에 거주해온 나바호족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그들은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라.”는 의미심장한 철학을 닮고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화무십일홍>까지 모두 겸손한 삶을 가르칩니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인생에게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에 충실하라.... 이보다 더 삶을 성찰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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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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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8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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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4
  • 슬픔이여 안녕!
    죄 없는 어린 생명이 희생될 때 더없이 고통스럽습니다. 남달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덟 살에 충북 영동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과 몰려서 마을 앞에 흐르는 강에 나갑니다. 겨울엔 썰매를 타고 여름엔 물놀이를 하는 곳. 경부선이 지나가는 철교 아래가 또래들의 여름 아지트지요. 흰줄 하나를 내린 검정 팬티를 입고 상급생들은 수영으로 강을 건너고, 하급생들은 교각 중턱에 걸터앉아 형들을 부럽게 바라보다가 텀벙 강물에 몸을 던집니다. 이날도 철교 아래에 한 떼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비가 와서 물이 좀 불었지만 누구도 겁내지 않았지요. 그런데 물이 불면 수심에서 물돌이가 이는 걸 모른 게 비극입니다. 형들이 수영을 가르친다고 아이들을 밀어 넣는데 그만 1학년 쌍둥이 동생이 소용돌이에 말려든 겁니다. 아이가 물속에서 허우적이자 더럭 겁이 난 아이들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나도 겁에 질려 뛰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발을 구르며 울부짖는 쌍둥이 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죽은 아이는 내 짝꿍이었습니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지고... 나도 밤마다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땀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지요. 물에 퉁퉁 부은 친구가 나를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넋이 나간 친구 엄마, 고래고래 소리질러 아들 이름을 부르는 아빠, 나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쌍둥이 형... 나는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친구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과 슬픔이 어린 가슴을 쿵쿵 뛰게 했지요. 이로 인해 부모님 걱정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발령을 받아 새 임지로 이사하면서입니다. 가족이 아버지의 전근을 반색한 것도 나 때문이었죠. 아픈 기억은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많이 옅어졌습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끊은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결혼 후로는 아예 잊다시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도 길에서 쌍둥이 형을 만나면서 덜컥 상처가 뜯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매셨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답니다. 한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가족을 황폐화 시켰구나. 아물었던 내 상처에도 피가 나는 걸 느꼈습니다.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형의 얼굴에 깔린 그늘을 보았습니다. “가족 몫까지 잘 살아야지. 흔들릴 때마다 그렇게 위로해.” 예민한 성격 탓일까, 이후로 이따금 꿈을 꿉니다. 시골에서 놀던 추억들이, 떠난 어린 친구의 모습도 생생하게 포착됩니다. 더 힘들게 하는 건 잊을 만하면 날아드는 이런저런 또래 아이들 희생소식입니다. 줄어드는 인구도 걱정인데 죽었다하면 아이들이냐고 격분도 합니다. 지난 봄, 헝가리에서 유람선 전복으로 6세 소녀가 숨졌다는 비보가 그랬었죠. 외할머니 손을 꼭 잡은 아이의 인양된 모습은 더 애처로웠습니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엄마가 일곱 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했다는 비보가 들렸습니다. 죽음이 낯설기만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섬뜩했을까, 얼마나 설득했을까, 아니 강요했을까. 그래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푸른 6월에는 전 세계인을 슬픔에 잠기게 한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멕시코 국경에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25세 아빠와 두 살짜리 딸이 익사한 것입니다. 아빠가 아이를 셔츠 안에 넣고 아이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은 채 떠내려 온 사진을 봤습니다. 물살을 이겨내려 했던 아빠의 다리는 물위에 떠 있고, 아이의 바지는 물먹은 기저귀로 불룩했습니다. 강 건너서 울부짖는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멕시코 영화 ‘신 놈브레’는 중남미사람들이 ‘죽음의 열차’를 올라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열차 지붕에 올라타다 떨어져 죽고 힘겹게 탄 뒤는 살해나 강간을 당하기도 합니다. 서글픈 것은 점쟁이가 찾아온 주인공에게 일러주는 말이죠. “넌 미국에 도착할거야. 그런데 안내는 신이 아닌 악마가 하지.”라고. 그 악마는 죽음의 열차를 올라 탄 아빠와 딸을 강물 속에 빠뜨린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찾아간 저세상이 험난한 이 세상을 사느니 보다 낫지 않겠냐고. "여긴 낙원이 아냐. 슬퍼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오래전 읽은 프랑수아 사강이 쓴 ‘슬픔이여 안녕’ 이란 소설 제목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요? *글/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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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노을처럼 아름답던 식탁의 축제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골드러시를 따라 미 서부로 향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공자는 제자의 질문에 ‘행복은 없다’고 간단명료하게 답합니다. 공자는 이에다 ‘인생에는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행복이란 눈이 혹할 보석 같은 게 아니라고 내 나름 유추 해석합니다. 거대한 바위 밑 은밀한 곳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일상의 그 사소한 것들, 그 자체에 있음을 말하려 한 것으로 주석을 답니다. 행복은 더 이상 파랑새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일상에 흘러갑니다. 매일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듯 행복도 일상이란 우물에서 길어 올려야 합니다. 돌아보니 그 많던 내 일상들이 다 허공에 흩어졌습니다.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도 값진 것들입니다. 나이가 들면 외롭다고 합니다. 수많았던 그 일상들을 되돌릴 수 없고 함께 할 수도 없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자식들로 들썩이던 공간은 소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흐릅니다. 전화도 오고 주말이면 찾아주니 반갑기도 하지만 잠시 머물다 떠나고 나면... 이젠 막내마저 직장 따라 지방으로 갔으니 그마저도 용이하지 않습니다. 옛말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가 지척이고, 마음이 멀어지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 형제간의 소통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통화를 해도 쉽게 대화거리가 궁해지죠. 전 같으면 자식걱정에, 자랑에, 줄줄이 엮을 테지만 빈 둥지끼리 나눌 것은 그저 서로의 건강 걱정이나 해주면 끝입니다. 존경하는 선배와 만났습니다. 큰 아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현지에 눌러 앉은 지 11년째랍니다. 오늘은 손자가 화상통화를 할려나? “아참, 이번 주는 바쁘다 했지? 그래 바빠야지.” 일본에 있는 둘째 딸은 엊그제 통화에서 아이 교육이 힘들다고 넋두리하던데. “타지도 아닌 타국 생활이니 그렇겠지.” 제 둥지를 찾아간 자녀들한테 옛 일상을 더듬자고 할 일은 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넋두리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 거쳐야 할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요. 늘 아쉽고, 부족하고, 늘 그리움이 많은 게 우리네 인생인 듯합니다. 그래도 아직 남은 인생이 있고 걸어야 할 여정이 있고, 맞이할 일상이 남았으니 희망이란 새 한 마리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아 주길 기대합니다. 그러다보니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분만이 내 남은 여정에 행복의 무늬를 함께 짜 주실 분이 시니까요. 식탁의 빈자리를 채워주시고 내가 입술을 열어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을 펴면 말씀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자고 합니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아이들과 즐기던 저녁 식탁의 축제는 흩어져갔지만, 그 분과 함께 하는 식탁의 축제는 노을빛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사랑과 그리움이 묻은 집에서, 가족의 기억들이 숨 쉬는 공간에서, ‘고뇌는 내가 갈아입는 옷 중 하나이니 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그 상처받은 사람이 된다'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 중에서 글 이관순(소설가/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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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시간보다 소중한, 함께 할 사람
    살면 살수록 강해지지 못하고 약해지는 게 사람입니다. 유독 사람만 신앙에 의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몸집도 키도 작아지고, 꿈도 희미해지고, 늘어나는 건 나이테뿐입니다. 친구 병문안을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하나님이 새 생명을 선물하셨어.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내게”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건넨 말입니다. 25일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는 친구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가장의 책무보다는 평생 자기가 좋아한 일에 빠져 살았지요. 전국의 명산을 섭렵하더니 세계의 명산 순례를 끝낼 만큼 건강도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지어야 할 짐을 고스란히 떠안은 건 아내였죠. 그가 만든 그늘 때문에 가족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당신 성당에만 나가요. 그 이상 더 바라지 않을 게요.” 모든 걸 체념하고 남편 구원에만 희망을 걸었지요. 그러한 아내에게 ‘죽을 때 가까워지면 고백해 볼게’라고 했던 그가 큰일을 겪더니 달라진 것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단어가 ‘선물’일 것입니다. 주고받는 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랑’ 같은 귀한 어휘입니다. 친구를 눈물겹게 한 고결한 선물, 감당이 안 되는 분에 넘친 선물, 생명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선물이겠지요. 작가 볼테르는 창조자가 내려주신 선물로 ‘생명’을 꼽았고, 프랜치스코 교황은 ‘시간’을 말했습니다. 친구는 나를 보기 며칠 전 병상에서 영화 ‘라스트 미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콕 집어 말하는 것 같아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라스트 미션(the mule 노새)’은 어느 낙제점 가장의 참회록입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것’을 들려 줍니다. 실존인물을 각색한 주인공 역을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가 맡았습니다. 원제목에서 보듯 주인공 얼의 삶은 ‘노새’를 닮았지요. 한 가지만 생각하는 노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에 익숙한 얼은 화훼농장을 가꾸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백합경연대회는 그가 기다려온 무대입니다. 대회마다 우승컵은 그의 차지였고, 그 순간 느끼는 행복감은 컸습니다. 이를 삶의 낙으로 삼았던 얼이 생의 끝자락에 이르면서 눈물을 짓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은 대개가 때늦은 ‘후회’입니다. 분신과도 같던 꽃 농장이 기울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어느 날, 가족에게 평생 좋은 일을 못해온 얼이 거금을 내밉니다. 꽃 농장이 압류될 만큼 쫄딱 망한 직후여서, 아내는 돈의 출처를 수상히 여깁니다. 비밀은 영화의 원제(原題)인 ‘mule'에 숨어있지요. 얼이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마약 운반책을 맡은 것입니다.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얼은 가족에게 진 마음의 빚을 보상하기 위해 노새처럼 일합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매달 시간 엄수가 밀매조직의 생명임에도 얼은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를 위로합니다. “사랑해 여보” 수십 년 만에 해보는 말이지만 낯설지 않습니다. 아내가 기뻐합니다. 얼은 아내의 눈을 보며 약속합니다. “앞으로 더 사랑할게 더 많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범죄 조직은 규칙을 위반한 얼의 제거에 나섭니다. 이쯤에서 작가는 말합니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 이라고. 너무 늦긴 했으나 이 진리를 깨달은 90세의 얼은 평생 등졌던 딸과 함께 할 시간을 그리며 마지막 배달에 나섭니다. 얼은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알게 되고 끝내 마약 단속국과 맞닥뜨리는 운명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는 어떤 길을 선택을 할까요?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최근 펴낸 신작에서 “삶의 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각별한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굽이쳐온 삶의 길목에서 찾아낸 인생의 지혜가 겸양으로 들리지만, 살고 또 살아봐도 알지 못할 게 인생이라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샘물 같이 말입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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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실시간 기고 기사

  • 사랑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산행 멤버 중에 두 사람의 영구 결번이 생겼다. 한 사람은 죽지 못할 만큼 사랑해서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하고 잘 산다 싶었는데, 10년 전 이혼하고 미국으로 떠난 여성이다. 결혼도 성격대로 급행으로 몰아치더니 헤어질 때도 한순간 쿨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1년 있다가 현지에서 미국인과 재혼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한 사람은 평생을 한 여자를 가슴에 담고 비혼으로 산 남성이다. 중학교 선생이었던 남자는 학부모인 여자를 만나면서 그리움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나 하나의 사랑인 것이, 난생처음 한눈에 반한 여자가 유부녀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가 가난한 집안을 살리려고 열두 살 연상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애틋한 일기를 썼다. 이를 눈치챈 친구들이 비극을 자초하지 말라고 많은 권면을 했지만 사랑이 질서 정연한 이론으로 성립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남자는 마음에 품은 한 여자의 안부를 평생 먼발치에서 들으며 살았다. 같은 신도시에 사는 까닭에 운이 좋으면 스치기도 하고 짧은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학부모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딱 한 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을 뿐이다. 남자는 입을 열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사랑은 가슴으로나 품을 일이라 자위하면서 그날의 일기를 썼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 때 여자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조문을 마치고 접견실에 잠시 앉아 그녀가 타다 준 커피를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뒤 우연하게 길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마침 큰일을 치른 뒤라 자연스럽게 길 옆의 스타벅스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었다. 장례는 잘 치렀느냐고? 문상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그렇게 일상의 얘기들을 주고받다가 여자가 시계를 보았다. 오늘 병원 예약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푸른 6월의 햇살이 눈에 부셨다. “날이 참 좋네요.” “그러게요.” “잘 다녀오시고 밝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의 인사에 여자는 웃으면서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또 얼마를 지났을까. 가을비가 추적되는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와 만났다. 전 같지 않게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날도 차가운데 따뜻한 커피나 들고 가시라고 여자의 소매를 끌었다. 잠시 망설이던 여자가 따라나섰다. 남자는 그날 스타벅스에서 여자로부터 암투병 중인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곧 입원해야 한다는 말도 듣게 된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수술 후 회복 중인 그녀를 병실로 찾았다. 고통이 심했는지 짧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많이 수척해 보였다. 간호사의 말로는 수술은 잘 됐지만 말기암이라 예후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사흘돌이로 남자는 여자를 찾았다. 쓸쓸하게도 그녀에겐 병상을 지켜 줄 만한 가족이 없어서였다. 가족이라고는 유일하게 직장에 나가는 여동생 하나뿐이었다. 죽은 남편이 형제가 없는 데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에 나가 있었다. 귀국할 수 없는 형편임을 알고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았단다. 남자는 지극 정성을 다해 여자를 돌보았다. 그럼에도 회복이 안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고 여자는 남자의 곡진한 정성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가누고 있었다. 남자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생각에 가슴속 깊이 묻어둔 말을 꺼냈다. “내 마음을 아시겠어요?” “예... 알아요. 고마워요.” 두 사람은 평생 하지 못한 말을 나누었다. 말은 짧았어도 천금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여자는 남자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남자는 여자가 떠난 뒤에도 가슴속 깊이 잔물결을 일으키는 사랑의 파동을 품고 살았다. 그 뿌리에 측은지심은 없었다. 만남이 짧다고 잊히는 것도 아니고, 애틋한 추억이 없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라고 한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의 말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사랑에 유효기간이란 있는 걸까? 젊어서는 사랑으로 살고 늙어서는 정으로 산다거나, 정주고 살다가 나중에는 측은지심으로 산다는 말은 맞는 말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 같다. 우리는 사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daumcafe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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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1
  • 남자가 남긴 토막말
    “어이” “이봐” “여기” 결혼을 앞둔 여자가 남자에게 한 가지 꼭 지켜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이런 식으로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될 막말이라면서. 그동안 남자가 아내를 부르는 수많은 입을 보았는데 가장 혐오스럽고 비인격적인 호칭이라고 했습니다. ‘부부관계를 지키는 마지노 선’이라며 처음부터 금을 딱 긋고, 대신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어요. 가장 가까운 남편으로부터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다는 것이 여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부부관계를 말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겠느냐며 자존감 지닌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약속대로 남자는 결혼 30년이 지날 때까지 그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살다 보면 화가 치솟고 감정이 욱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남자는 말로 여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댁 어른들 앞에서도 매번 이름 뒤에 ‘씨’를 붙였고 존댓말을 썼어요. 당시로는 흔치 않은 말법입니다. 그러던 남자가 딱 한 번 실수를 범하고 만 건, IMF 환란 때 사업이 부도에 몰리는 긴박한 상황에서였죠. 이 고비만 넘기면 회생이 가능할 텐데, 처가가 끝까지 외면하고 보증을 피하자 한 순간 감정이 폭발하며 나온 소리입니다. 거친 막말이 나오더니 아내를 밀쳐 넘어지게 했습니다. 한 순간 넋이 나간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주어 담으려 했지만 이미 쏟은 물이었지요. 그날이 하필 아내 생일과 겹쳤습니다. 잊었다가도 해마다 그날이 오면 생각나는 아픈 기억…. 남자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계절이 찾아오듯 때만 되면 회한으로 떠오르는 토막말. 딱지가 앉기도 전에 다시 생채기를 내는 일이 반복됩니다. 사업한다는 남자한테 딸을 주고 싶지 않다던 장인어른의 말도 떠오릅니다. 말이 좋아 사업가지 호강은커녕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마음고생을 시켰고, 급전이 필요할 때면 처가로, 친구로, 돈 심부름도 다녔습니다. 생각은 심연에 가라앉은 부끄러움까지 휘저어 올리죠.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뜰히 살펴 준 것도 없는데, 내색 없이 살림에 충실해준 아내가 고맙고, 알아서 잘 커서 스스로 짝을 만나 제 앞길을 찾아간 두 아들 딸이 대견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결혼 45주년이 되던 그해 봄. 부부는 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마련해준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 날이 돼버렸습니다. 새벽녘, 잠을 자던 남자가 흉통을 호소하며 온몸이 땀에 젖을 때,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협심증을 앓아온 남자는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남자의 명줄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창졸간에 삼일장이 치러졌습니다. 삼우제를 마친 아내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책상 서랍 안쪽 밑에 깔려 있는 흰 봉투 하나를 찾았어요. 죽음을 예견한 걸까. 꼼꼼한 남편이 미리 써둔 유서였어요. 남자의 체온이 실린 육필은 첫 문장을 참회로 시작했습니다. “효은 씨.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합니다. 그것도 당신 생일에, 홧김에 쏟은 해서는 안 될 나의 막말에 용서를 구합니다. 평생 후회로 안고 살았습니다...” 두 번째 단락에는 어려서 죽은 큰 아들의 회한을 담았습니다. 네 살배기 아들 준이를 폐렴으로 잃고 한강에 나가 가루를 뿌리던 날, 그 밤의 아픈 기억을 말했습니다. 그 후로 한강 근처를 나가지 못하고 시린 가슴으로 몇 년을 방황할 때, 나를 보고 모두가 잊으라고 했었지요, 자식은 가슴에 묻고 그만 잊으라 했을 때... 당신만은 내게 그러지 않았습니다. “잊으려고 애쓰지 말아요. 그건 너무 가혹해요. 그다음 생기는 빈 공간은 어쩌려고요. 그 무엇도 대신해 채울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 죽을 때까지 옹이처럼 가슴에 박고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상처는 보듬고 싸매야지 뜯어내면 덧나게 마련이고, 시련은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라고 나를 다독일 때, 캄캄한 밤바다에서 한 점 빛으로 흔들리는 등대를 보는 심정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시련은 운명이고, 운명은 떨치고 이겨낼 때 소망이 생긴다는 사실을. 의사가 말했지만 차마 당신에겐 전하지 못하고 당신 옆에서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이젠 내가 당신께 당부할 차례입니다. 효은 씨, 끝이 정해진 책처럼 내 생의 길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별의 아픔이 크겠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삶의 시선을 꼿꼿하게 지켜주길 원해요. 앞서 가서 자리 잡고 그날의 당신을 기다리렵니다 용서해줘 감사하고, 사랑해줘 고맙고, 먼저 떠나 미안해요... -소설가/ daumcafe/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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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7
  • 어머니, 꽃 구경가요
    올 들어 유난히 사랑했던 분들이 차례로 이 땅을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모든 나무들이 힘을 다해 푸른 생명을 풀어내는 봄철에, 세상을 등졌다는 부음은 생명의 부활로서가 아닌 소멸로서의 ‘잔인한 봄’을 반추하게 합니다. “애 낳으면 기저귀 가는 엄마들만 보인다더니, 나이가 드니 떠나는 사람만 보인다더라.“ 하는 글귀에도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니 ‘生과 死’는 쌍태(雙胎)인 모양입니다. ... 4월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돼 외출에서 돌아오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춘의 사랑과 아픔을 서로 싸매주고 아파했던 해묵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소리에 치받는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치매로 모시기 어려워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산길을 내려오다가 개울에 주저앉아 통곡했다는 겁니다. 어머니를 ‘고려장(高麗葬)’하고 돌아오는 그 자식이 나라고... 자책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떨리더군요. 나도 가슴이 먹먹해 말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분은 친구의 어머니만이 아녔으니까요. 대학시절, 하숙생활로 늘 배고파하던 날 불러다 따뜻한 이밥에 김치찌개를 배불리 먹이신 내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그래 힘든 결정을 했구나.”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더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친구의 모습이 한 동안 어른거렸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고려장’이란 슬픈 어휘로 채색한 친구의 말이 가슴을 그리도 시리게 하더군요. 김형영의 시 ‘따뜻한 봄날’을 떠올립니다. 지금은 소리꾼 장사익이 한 맺힌 가락으로 풀어낸 ‘꽃구경‘의 노랫말로 거듭나 못난 자식들에 그리움을 키웁니다. 꽃구경 (따뜻한 봄날) 어머니 꽃구경 가요 내동에 업혀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에그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고 가네 엄니, 지금 뭐하신데유 솔잎은 따서 뭐하신데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그리고 한 달 후 어버이 날 전날에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그 한 달을 더 못 참아서, 불효막심한 죄를 저질렀다고 친구는 얼마나 탄식해 할까. 그의 아픔이 전류를 타고 내 가슴에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발인을 마친 후, 장지인 충북 제천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가는 동안 차창으로 5월의 눈부신 신록이 달려옵니다. 목적지에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내게로 줄지어 달려오던 산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마땅히 물을 곳이 없습니다. 낯선 벌판에 홀로 선 심정이었습니다. 친구가 한줌 재로 남으신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앞장서 걸었습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키 낮은 봉분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갔습니다. 한 발, 두 발... 발걸음이 한참을 더하면서 동트는 새벽빛 같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내 상념 속으로 잉크처럼 번져왔습니다. 그리고 명징하게 살아나는 가슴의 말을 듣습니다. “그래, 지금도 난 무겁게 살고 있구나. 손 놓으면 큰일 날 줄 알고... 훌훌 털고 빈손으로 가는 것을.” 마치 빈 몸 하나 들고서 조촐히 살다 갈 길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듯합니다. ##... 멀지도 않은 그날, 여울져간 친구의 전화 속 목소리가 이 밤에 또렷이 살아납니다. 고려장 떠나는 길목에서 나누는 모자간의 곡진한 사랑이, 아름답고도 애잔한 삶이, 마음에 꽃길을 엽니다. 자식은 어머니를 버리려고 가는데, 자식이 내려갈 어두운 숲길을 걱정하는 어머니... 5월은 그런 달인가 봅니다.* <이관순의 손편지. daum. 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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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9
  • 2024년 사단법인 과학키움 정기총회를 지켜보고 나서
    지난 2월 27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삼성 컨벤센 센터 목련홀(1층)에서는 ’2024년 사단법인 과학키움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사단법인 과학키움‘은 2022년 3월 25일. 이 자리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과학자 105명이 모여서 일본에서는 25명이나 되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우리나라는 단 한명의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자가 없다는 것을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즉 일본에서는 1949년애 처음으로 유가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후 지난 75년간 일본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각종 연구보고서를 번역해 세계 각국에게 확산, 보급 시키는 번역국이 있고 스웨덴에 연락 센터까지 설치하면서 과학외교를 펼치는 노력으로 노벨과학상 25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미래 꿈나무들에게 노벨과학상이라는 꿈을 심어주는 민간 공익단체를 만들어 일본 정부가 하고 있는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다짐으로 우선 물리학, 화학, 생리 의학 3개 분야에 노벨상 후보발굴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에 과학의 꿈나무를 키워 나가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창립총회에는 노벨사이언스가 매년 12월 말에 수상하였던 노벨과학상 수상자와 노벨사이언스 포럼을 주관하였던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첫발을 내닫게 되었다. 우선 서울대학교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한림원 초대회장이었던 조완규 생물학자께서 기꺼이 이사장직을 기꺼이 맡아주시고 초대 회장에는 인천대 총장과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인천 연구원장으로 계신 박호군 고문께서 맡았다. 그리고 2대 회장에는 처음으로 노벨과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한국노벨과학문화연구원장이신 성용길 동국대 명예교수께서 바톤을 이어받아 오늘 ’2024년 사단법인 과학키움 정기총회를 열게 되었다. 본래 과학도란 세계적인 발명왕 에디슨를 꿈꾸면서 ”수천번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 번도 실패하리라는 생각을 하지않고 도전하고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로 실험과 실험으로 통하여 일구어 내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 꿈나무들에게 창의력과 불굴의 도전정신을 심어주어야 한국의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에 지난해 사단법인 과학키움은 물리학, 화학, 생리 의학 3개 분야에 노벨상 후보발굴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도 유망한 신진 과학자 발굴사업 및 지원사업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2023년 6월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아 동년 12월 29일, 지정 기부금단체(공익법인)로 지정을 받아 유수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기부금을 받으면 세금공제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2024년부터는 본격적인 사단법인 과학키움기금 모금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어 본격적인 사단법인 과학키움의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될 입장이다. 사단법인 과학키움의 기본 사업이란 노벨과학상 인재발굴 및 지원사업을 기반으로 2024년부터는 과학키움 포럼을 개최하고 2025년에는 과학영재 체험캠프 개설, 2026년에는 미래 교육 세미나와 노벨과학에세이 대회, 2027년에는 과학키움 교육연구 채널을 개설 운영하는 일이다. 이로써 명실상부한 과학인재를 키워나가는 공익법인으로써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업들은 과학키움 기금의 뒷받침없이는 이뤄질 없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과학키움 기금을 모우는 일이 가장 먼제 선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것이다. 21세기는 세계경제는 초연결 저탄소사회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지질학계가 ”인간의 활동에 따라서 지질학적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인류세를 선언하고 있어 과거 화석연료에 기반으로 하는 각종 과학 문명에서 무탄소 청정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저탄소 사회로 구조변혁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컴퓨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생명공학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으로 하는 초지능, 초연결, 초융합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젠 세계 각국의 국민경제는 과학기술력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 기틀을 마련해 나갈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진흥을 위해서 한국 과학의 진흥발전은 불가피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에 미래 과학의 꿈나무들에게 노벨과학상이라는 꿈을 갖고 창의력과 불굴의 도전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주고자 사단법인 과학키움의 큰 역할을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사단법인 과학키움은 유수의 기업들과 단체들로부터 과학키움 기금을 모아서 한국에 노벨과학상 대상자를 발굴, 지원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키움 포럼, 미래 교육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앞으로 어린 꿈나무들에게 과학 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주고자 과학영재 체험캠프개설, 노벨과학 에세이 대회 등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에 사단법인 한국키움이 한알의 밀알이 되어 1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유수의 기업과 단체들의 성원이 지속 되길 기대하면서 세계 최고의 한국 과학기술이 뒷받침되는 한국 경제의 발전의 역사가 이뤄지길 기원한다.
    • 오피니언
    • 기고
    2024-02-28
  • 엄마, 힘 내세요!
    요즘 정희 엄마의 얼굴에는 살짝 수심이 드리워져 있다. 오늘도 봄볕이 길게 빨려드는 베란다 창에 서서 딸이 다니는 아파트단지 내 중학교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모습은 봄볕만큼 화사하지 못하다. 성격이 외향적이긴 해도 은근함이 매력이라 생각한 딸아이가 스커트 자락을 걷어 올리고 담벼락을 기어오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맞벌이 좋아하다가 애 꼴이 이런 것도 모르고.” 잠복돼 있던 맞벌이 문제가 불거질 조짐을 보였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주말 피자집에서였다. 연속 열흘을 밤늦게 퇴근했던 아빠가 모처럼 가족과 저녁 스케줄을 잡으면서였다. 실로 얼마만인가, 한 가족이 둘러앉아 쫄깃쫄깃한 피자 맛을 곱씹으며 각기 지내온 생활담을 화제로 삼는 일이. 역시 두 남매가 풀어놓는 입담만큼 신선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내가 교실에서 한다는 놀이가 고작 실뜨기란 말이지?” 아빠가 5학년생 아들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 때만해도 엄마는 웃기만 했다. “요즘 시대가 그런데 어쩌겠어요.” 말을 받아 아들이 한술 더 뜬다. “아빠, 내 짝꿍 여자앤 나한테 주먹, 발치기, 그럴 땐 진짜 겁나.” 이런 못난 것, 아들 말에 아빠는 혀를 찼지만 어쩌랴, 다음 얘기는 자연스럽게 딸에게 넘어갔다. “엄마, 우리학교 홍 선생님 알지? 윤리 선생님.” 엄마는 딸의 수다 속에서 익히 들어온 이름이다. 우리 학교 홍 선생님 모르면 아싸(아웃사이더)야. 학생들의 인기투표에서 항상 1위에 오르는 선생님. 나이가 서른아홉인데도 총각이란 사실과 못하는 운동이 없고 진지한 학습법으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선생님. 게다가 고래뱃속을 울리고 나온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 대충 이만하면 그 선생님의 인기는 짐작할 만 했다. “홍 선생님 18곡은 ‘백만송이 장미’고, 신발은 275, 롱다리에 매일 바꾸는 금테 뿔 안경이 여섯 개, 수입맥주 매니아 등 줄줄이 꿰찬다. 그래, 사춘기 때는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는 지난날을 반추하며 웃어보였다. 그동안 많이 컸구나, 그저 대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급기야 ‘어머’ ‘그래서’를 연발하며 눈빛을 세운 건 그 다음에서다. 그날따라 수업에 들어온 홍 선생의 모습은 창백했고 간혹 배에다 손을 얹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왕 팬들이 그걸 놓칠 리 없다. “선생님 배탈나셨죠?” “응, 간밤에 마신 생맥주가...” 아랫배가 쏟아질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수업이 끝나려면 7분이 남았다.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뭐가 남았다고 또 뒤틀리는 걸까. “자습해라.” 아랫배를 움켜잡은 홍 선생이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교사 화장실까지는 너무 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눈에 띤 가까운 여학생용 화장실로 달려갔다. 고통의 한 순간이 지나고 뱃속이 평정을 찾을 즈음 수업종료 차임벨이 울렸다. 홍 선생은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바지춤을 올리는데, 아뿔싸! 한 발이 늦어버렸다. 왁자지껄,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며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밀어닥친 것이다. 탕탕, 쿵쿵, 들어서기 무섭게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발로 찼다. 나 선생님! 홍 선생은 목젖을 넘어오는 말을 침과 함께 꼴깍 삼켰다. “야, 너 누구냐구?” 우악스레 문을 두드리며 차며 한마디씩 내뱉는데 완전 선머슴들이다. “너 땡땡이지?” 그래도 안에서는 묵묵부답이다. 이놈들이, 홍 선생은 낯익은 목소리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난감해 했다. 새침 떼기 열다섯의 소녀가 아닌, 완전 불량소녀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홍 선생은 꼼짝없이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어서 시작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무슨 궁금증이 많은지 끈덕지게 물고 늘어질 조짐을 보인다. “그럼, 쳐들어간다!” 3학년 7반 국정희 목소리였다. 순간 화장실 칸막이가 흔들리더니 칸막이 위로 뽀얀 두 손이 올라왔다. 뒤따라 끙끙대는 소리와 깔깔거리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야지랑스럽게 칸막이를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칸막이 위로 얼굴을 내밀던 학생이 ‘선생님’ 하며 비명을 내지른 건 그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삽시에 전 교실로 퍼졌고 학생들 사이에는 홍 선생님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냐에 어린 참새들의 입방아가 이어졌다. 학생들 간에 약정된 교사 인기투표가 눈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네가 화장실 벽을 타고 올라갔단 말야?” 아빠의 눈에 충격이 비쳐지고 엄마의 입은 문 닫은 우물 같았다. 저런 선 머슴아가 되다니. 당신 어찌된 거야 애가 이리되기까지. 아이구 그러는 당신은? 딸이 준 충격은 다시금 맞벌이 유죄론 쪽으로 근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다음날 오후.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늘 따라 학교에서 정희가 일찍 돌아왔다. “무슨 날이니?” 현관에 들어서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환해보였다. “엄마, 나 반장됐다.” “뭐야? 너 그런 거 말랬지 엄마 힘 든다고!” “어떡해, 애들이 몰빵 준걸.” 엄지척, 손을 높이 흔들며 엄마 품으로 달려오는 딸이다. “얘는, 싫어 저리 비켜” “에이 왜 그러셔. 기분은 좋으면서.”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티 없는 청순함 그뿐이었다. 엄마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지는 건 ž告?.. <이관순의 손편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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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집은‘기억이 사는 곳’
    하루는 짧지만 눈물겹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하루는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 귀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값진 시간은 가족이 모이는 저녁시간입니다. 어느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구호로 내걸었을 때 멋진 인문학적 성찰이라 반겼지요. 정말 가족이 모인 저녁만큼 복된 곳은 없습니다. 1년 365일 아침이면 흩어지고 저녁이면 모이는 곳... 냇물소리 같은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 때로는 서럽게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상처를 얘기하며 싸매주는 곳... 가정은 때 묻은 일상을 위로하고 웃음을 되찾아주는 행복제작소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엔 집이 있습니다. 마을마다 사람들의 집이 있고, 산과 숲에는 동물의 집이 숨어 있습니다. 물고기들은 바다와 강에다 집을 짓습니다. 사람의 집에는 또다른 집들이 공생하고 있지요.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담장 한켠에는 길고양이의 집이 깃들어있습니다. 집은 생명이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공간이고, 행복을 찾는 온갖 아이디어가 숨어있는 곳입니다. 전국을 돌며 추억의 ‘구멍가게’ 를 그린 화가 이미경은 “집은 기억이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특정한 어느 때를 떠올릴 때면 그 기억에는 항상 집이 있으니까요.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추억을 함께 만들었는지, 그 기억이 숨 쉬는 공간이 집입니다. 가족이란 함께 기억을 만들고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서로의 가슴에다 집을 짓고 들어가지요. 황동규 시인은 “죽음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족” 이라 했습니다. 사랑과 그리움을 묻어 둔 곳. 세상에서 실패해도 보듬어 주는 곳,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소망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는 작아지는 곳, 그 집을 가리켜 ‘기쁨과 슬픔도 같이 하니 한 칸의 초가도 낙원이라’ 고 말합니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홈 스위트 홈’ 미국의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애창곡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정서에 더 깊이 녹아있는 노래는 ’Home Sweet Home‘입니다.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만 한 곳은 세상에 없다"고 한 노래죠.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죤 하워드 페인입니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같이 한 뉴욕의 집 말고는 평생을 유랑하며 고향의 집을 그리워하다가 이 노랫말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가 아프리카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던 날, '홈스위트 홈'이 연주되는 뉴욕항에서 체스터 아더 대통령(21대)이 그를 맞았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죠. 앞만 보고 세계최고의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미국인들에게 그 어떤 가치와도 비할 바 없는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워싱턴 근교 공원묘지에 안장돼서야 비로소 집 한 칸을 마련한 셈입니다. 묘비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미국을 건강한 나라로 만들어주신 존 하워드 페인. 편안히 잠드소서."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원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 즐거움들과 화려한 궁전 같은 곳들을 다닐지라도 비록 초라한 곳이지만 내 집 같은 곳은 없다네. 하늘로부터 오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곳, 온 세상 다 배회하며 찾아다녀도.. 정말 내 집 같은 곳은 없다네(하략)...” 이 노래는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진가를 발휘합니다. 강(江)을 사이에 두고 남군과 북군이 양보할 수 없는 ‘프레데릭스버그 전투’를 이어갈 때입니다. 이 전투는 18만 명이 참전해 1만 7천명의 사상자를 낼 만큼 치열했습니다. 밤이 되면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양 진영에서는 군악대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때 북군이 연주한 곡이 ‘홈 스위트 홈’입니다. 행진곡을 연주하던 강 건너 남군도 어느새 같은 연주를 따라합니다. 홈 스위트홈이 밤하늘에 울려 퍼지게 된 거죠. 이 연주는 고향집을 그리워했던 병사들의 심금을 울렸고, 마침내 남?북군 할 것 없이 강물로 뛰어들어 떼창을 부르는 진풍경이 전선의 밤을 메아리쳤습니다. 고향 집을 열망해온 마음이 적의 개념마저 잊게 한 겁니다. 결국 이 노래로 전선에는 하루의 휴전이 선포되는 위력을 보였지요. 그렇습니다. 시공을 넘어 가정보다 소중한 건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엔 가정을 위협하는 불행의 요소들로 차있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집은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이, 해체되는 가정이, 흩어지는 가족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같은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이관순의 손편지 . da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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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2
  • 아버지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
    우리 속담에 ‘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무한 사랑하지만, 자식은 불효할 따름이라는 뜻이죠. 부모는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가를 늘 물어도, 자식은 배곯고 추위에 떠는 부모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꽃들은 나무의 아픔을 모릅니다.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나무의 헌신을 갓 피어난 꽃들이 기억할리 없지요. 독일 시인 안톤 시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의 소행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가?’ 가슴의 언어를 토합니다. 자식과 부모는 천성이 그런가 봅니다. 우리 건설업이 중동에서 건설신화를 만들던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KDI에 연구용역을 의뢰했었지요. ‘무엇이 한국 근로자로 하여금 하루 16시간 노동 하게 하는가?’ 석유부국 사우디가 장차 석유자원이 고갈될 때를 대비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었죠. 그들을 궁금하게 했던 ‘한국인의 16시간 노동’을 가능케 한 것은 잘 살아보자는 ‘희망’으로 요약됩니다.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부산에서 함정을 타고 월남 전선으로 떠나던 병사들은 불안한 심정을 노래로 달랬지요.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가시는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며 힘을 모아준 국민적 성원과 가족들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염원 때문이 아닐까요?. 또 하나, 월남전의 한 상황입니다. 통증을 호소하며 죽어가는 부상병에게 차마 몰핀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의무병이 대신 식염수를 놔주고는 “이제 괜찮아질 거야.” 희망을 주자 사르르 잠이 들더라는 얘기는 단순한 전선의 무용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희망’은 지금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약발이니까요. ?… 고래 같은 아버지를 춤추게 하는 것들. 비록 학교 과제로 이뤄졌지만 자녀들의 편지는 고래같은 아버지들을 춤추게 했습니다. 천근으로 눌려 있던 어깨를 펴지게 해주었지요. 이런 것이 인문학의 학습효과입니다. 두 아버지가 내게 직접 전화를 주었지요. 좋은 과제를 내주어 고맙다고요. 가슴에서 포기했던 딸을 되찾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편지에서 발췌한 일부입니다. “아빠가 답장을 주셨네요. 편지 한 통이 아빠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드렸다니 정말 기뻐요. 그런데 아빠가 없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친구에게는 교수님이 편지를 대신 써 주시겠다고 했어요.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은데 전 너무 허영에 들떠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부터는 아빠의 희망이 되는 딸이 되겠어요. 어느새 많이 늘어난 흰 머리카락이 안타까워요.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 “아버지, 못난 아들입니다. 요즘 무척 힘드시죠? 매우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런 가운데도 못난 아들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장기도 많이 두셨는데, 여의도에서 자전거도 많이 타고.... 커서는 추억거리가 아무것도 없네요. 아버지 언제 우리 둘이 산이라도 함께 타요. 막상 편지를 쓰자니 아버지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만 듭니다. 몰라서 죄송합니다.” “스물넷의 나이에 아버지에게 글을 쓰니 기분이 묘합니다. 늘 말썽만 피우고 다닌 저였잖아요. 언젠가 거리에서 시비가 커져 경찰서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뒤치다꺼리를 하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젊었을 땐 이런 것도 경험이다. 어깨 펴라.“ 말하시며 제 어깨를 툭 치셨죠. 그날 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린 후 제 생활은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제게 ‘왕’이십니다. 앞으로 좋은 아들이 되겠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많은 게 변했어요. 웃음이 사라졌고, 아빠란 단어가 사라졌어요. 계실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이 하나하나 상처가 되더군요. 지금도 좋은 걸 보면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더 잘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되네요. 전 항상 아빠가 지켜보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며 살게요. 아빠에게 전달 안 될 걸 알면서도 썼어요. 봉투에다는 ‘하늘나라의 아빠에게’ 라고 썼어요. 아빠, 정말 그립습니다....” <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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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역사의 덫에 걸린 남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갚아야 할 때를 애써 몰라 할 뿐. 원래 인간은 배은망덕한 존재입니다. 동시에 남의 배은엔 혀를 차는 존재죠. 망덕으로 덮어씌우는데도 능하답니다. 그러니 애초 은공으로 엮일 자리엔 비켜서는 게 상책입니다. 하지만 인간사를 그 같은 단순 셈법으로 풀기엔 역부족입니다. 사노라면 알면서도 역사의 덫에 말려드는 아픈 경우가 있어요. 올가을 단종의 혼이 어린 영월 청령포를 바라보며 떠올린 단상입니다. 사약을 내리라 충동한 사람, 모양새를 만들어 사약을 내린 사람, 사약을 들고 찾아간 사람, 시신을 수습해 무덤을 만든 사람, 이들 모두 은공의 그물 짜기에 가담한 사람들입니다. 세조 3년에, 금성대군이 모반을 기획했다는 고변이 들어온 후 넉 달간 조정은 피로 물듭니다. 주군인 단종을 사사하여 모반의 뿌리를 뽑으라는 정인지, 신숙주의 주청을 받아 세조는 사약을 내립니다. 조정은 사약을 받고 승하한 어린 단종의 육신을 강물에 던진 뒤 시신을 거두는 자 3대를 멸한다는 어명을 내렸지요. 물위에 뜬 옥체가 물길 따라 빙빙 돌다 되돌아오고 그때마다 곱고 여린 열손가락이 수면에 떴습니다. 이를 통곡한 영월 호장 엄홍도가 한밤에 시신을 수습해 노모를 위해 준비해둔 관에 옥체를 염하여 장사를 지냈습니다. 역사는 그의 충절을 높이 사 충의공이란 시호를 내렸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 역사의 기록에서 빠졌어요. 영월로 귀양 가는 단종을 호송했고, 유배지로 사약을 들고 갔던 의금부도사 장방연입니다. 주군을 배은하고 은공의 가시밭길을 걸은 사람의 고뇌는 무엇일까?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그가 남긴 시조에는 단종을 향한 애끓는 충심이 절절하지만, 역사는 그의 행적을 지웠습니다. 240년 후 쓰인 숙종실록에 한 차례 이름이 오를 뿐이죠. 때마침, 서울에서 11월 8일까지 국립창극단이 무대에 올린 팩션 창극 ‘아비, 방연’과 만났습니다. 계유정란을 배경으로 군권을 노린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에 간계로 역사의 덫에 빠지는 왕방연을 그렸습니다. 극은 강직한 충신이 주군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부성애’로 풀면서 굽이치는 감동과 굵은 서사를 전합니다. 난세의 영웅이 될 건가. 딸을 지키는 평범한 아비가 될 건가. 신하된 신념과 현실의 삶 사이에서 고뇌한 아버지 왕방연을 부부예술가 서재형(연출), 한아름(작)이 그의 숨은 삶을 복원시켜 역사의 결을 다듬었습니다. 한 밤 북한산 기슭에서 수양대군이 어린 사슴의 목에 칼을 꽂으며 말합니다. “김종서를 비롯한 불충한 자들을 베고 어지러운 종사를 바로 세우려 한다. 그대들 뜻은 무엇인가?” 한 무리 사내들이 소리 높여 “忠!”을 외칩니다. 이제 수양은 조카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이 되는 운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단종이 총애한 무인 방연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혼례를 앞둔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명을 받드는 아비니까요. 혼례 날 밤에, 단종 복위를 모의한 혐의로 사위가 체포되면서 또 다시 광풍이 붑니다. 딸이 공신노비로 보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 아비의 고뇌는 깊어지고, 간특한 한명회가 사약을 전하는 사명을 주지요. 방연은 딸을 구하려고 한양에서 영월까지 달려갑니다. 땅이 일어나고 강물이 출렁이도록 사흘 밤낮 말을 달리는 아버지 방연의 모습에서 오늘도 가족을 위해 치달리는 현대의 아버지들이 떠오릅니다. 이 시간도 어디선가 말 달리는 슬픈 아비가 있겠지요. 덫에 걸린 무대 위 남자가 고통을 창으로 쏟아냅니다. 창극은 극도의 정한을 표현하지 못할 때 판소리로 풀었습니다. 오로지 소리의 힘으로, 포효하는 한 인간의 통한을 해일처럼 밀어내자 객석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높아집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지요. 세조실록(세조3년 10월 21일)은 단종의 사인을 자살로 변조했습니다. “임금께서 명하시길 송헌수는 교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논하지 말도록 했다. 노산군(단종)이 이를 알고 스스로 목메어 졸하니 예로써 장사를 지냈다.” 세자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565년 전 단종이 승하한 10월 그날처럼, 올가을도 청령포를 둘러싸고 흐르는 서강(西江)은, 어진 햇볕아래 남빛 물결을 반짝이며 무심히 흐를 뿐입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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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5
  •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화석이 되고
    인간만이 지닌 고귀한 것은 무엇일까? 누구는 ‘지능’이라 하고 혹자는 ‘말’ 또는 ‘글’ 이라고 합니다. 이 모두 창조주의 귀한 선물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기억’ 만큼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지능이 모자란 사람도 행복할 수 있고, 말이나 글이 서툴러도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나름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어요. 하지만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 행불행을 나누는 선이 됩니다. 기억을 상실한다는 것은 한 인생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한 만큼이 한 사람의 인생이 되고 존재한 삶이니까요. 기억은 부부, 가족, 친구, 사회를 연결하는 회로입니다. 기억의 공유가 없으면 사랑마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 다음으로 공포를 갖게 하는 것이 기억상실증입니다. 치매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언젠가부터 익숙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수십 년째 사는 동네에서 길을 잃고, 그러다 어느 날 기억이 뿌리째 뽑혀 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일입니다. 치매 환자 가족이 기억을 살리려고 옛 추억을 꺼내는데, 한 노인학자는 치매 환자에게 과거 일을 자꾸 묻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보다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이 효과적이라는군요. “엄마, 여기 온 거 기억나요?”라고 묻지 말고 “엄마, 꽃이 참 예쁘죠?” 이렇게 지금의 얘기, 아무 말을 해도 답이 되는 말을 권합니다. 이런 대화가 언어를 잃은 치매환자와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고 조언합니다. 노인이 되면 외로움을 탑니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뒤집으면 기억이 온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지난 9월 ‘너무 외롭다’고 광고를 낸 영국의 한 할아버지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내이자 영혼의 동반자인 아내 조(JOE)를 잃었습니다. 친구나 가족이 없어 대화를 할 사람이 없어요. 24시간 계속되는 적막이 견딜 수 없는 고문과 같습니다. 나를 도와 줄 사람 없나요?” 은퇴 물리학자 윌리엄 씨(75)는 외로움에 사무친 나머지 자택 창문에 이렇게 쓴 포스터를 내걸고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슬하에 자식 없이 아내 조와 35년을 사랑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봉쇄령이 내려져 있던 5월, 췌장암을 앓던 아내가 갑자기 떠나자 삶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생의 동반자를 잃은 뒤 밀려오는 외로움과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적막강산인 집에서 하염없이 아내 사진만 쳐다보며 말입니다. ‘기억’ 은 이렇게 무섭기도, 슬프기도 합니다. 누구는 기억 상실로 가족을 불행에 빠뜨리고, 누구는 온전한 기억 때문에 절절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은 기형도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 붙인 해설에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가 죽을 때, 또 한 번은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사라질 때”라고 썼어요. 그렇다면 윌리엄 씨의 기억엔 여전히 살아 있는 아내의 두 번째 죽음이 남아있으니, 얼마나 긴 세월을 외로워하면서 또 그리워해야 할까. 내게도 살아 있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3형제로 구성된 한국의 3인조 록 밴드 ‘산울림’이 30년 활동을 접고 해체하면서입니다. 2008년 11월 발매된 ‘산울림 전집 박스 세트’ 에 남긴 보컬 김창완의 글은 아직도 명료한 기억으로 빛납니다. “이제 바람은 멈추었다. 모든 색은 합쳐져 하나의 작고 검은 마침표가 됐으며, 모든 빛은 합쳐져 수억 겁의 미래로 가버렸다. 산울림, 그들의 노래는 화석이 되었다.” 겨울초입에 친구 아내가 하늘나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눈 내리는 적막한 들판을 혼자 걷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퍽이나 좋아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선율을 사뿐히 지르밟으며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갔습니다. 기억은 늘 애잔하고, 슬프고, 그립습니다. 옷은 낡아지면 갈아입지만,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화석이 되어 풍화를 이깁니다. 생전에 했던 말대로, 이방인처럼 찾아온 그대여! 이방인처럼 떠나간 그대여!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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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5
  • 키리에 엘레이손 Kyrie Eleison
    8월은 잔인했습니다. 광복절 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발표하자 마자 탈레반이 전광석화처럼 진격하더니, 베트남 사이공(호치민)처럼 눈 깜짝할 사이 수도 카불의 함락 소식이 들렸습니다. 국경을 향한 육로마다 수백만의 난민 행렬이 늘어섰습니다. 주변국은 철조망을 두르고 장벽을 치고 국경을 봉쇄했는데도 꾸역꾸역 밀려드는 아프간인들. 막힌 건 땅길에, 하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블 공항엔 수천 명의 아프가니스탄인 으로 장사진을 쳤습니다. 미군 수송기에 매미 떼처럼 붙어 몸뚱이 하나를 쑤셔 넣으려는 사람들의 비장함이 삽시에 비행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지요. 움직이는 수송기에 매달리다 떨어지고 깔리고, 구명대 하나를 놓고 죽기 살기 매달리는 모습에서 1950년 12월 흥남 부두에서 사투를 벌이던 피난민들이 오버랩 됩니다. 그때나 이때나 똑 같은 아우성···. 그 시각. 한쪽에선 참혹한 인간 도륙이 시작됐습니다. 탈레반이 동족을 줄 세워 꿇어앉히는 순간, 총구마다 불을 뿜습니다. 볏단처럼 쓰러지는 사람들에 다가가 2탄 3탄을 쏴대는 광란의 춤판이 펼쳐졌지요. 그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동영상이 인터넷 SNS 공간을 유령처럼 떠돌았습니다. 평화롭던 일상이 깨지며 정신까지 너덜너덜해진 사람들. 아프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저주의 땅으로 변해 버렸지요. 그런 가운데 또 한쪽에서는 숭고한 생명이 꽃핍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수송기 안에서 여인의 출산 소식이 들렸습니다. ‘오, 아가야 어쩌자고 이 시각에 태어나니?’ 탄식이 명치 끝을 가시가 돼 찌릅니다. 그래도 찾아온 생명이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축복 송은 불러주어야 하겠지요. 무구한 생명 앞에 불행 운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니까요. 벌써 비행 중인 수송기가 고향이 된 아기가 셋입니다. 최고의 행복 속에 불행은 잉태되고 최악의 상황에도 행복이 배태된다. 아, 이것이 우리네 삶의 현장임을 여실히 짚어줍니다. 기내의 생명 탄생은 까마득한 옛 기억까지 소환합니다. 무너진 집터를 지나다 마주친 경이로운 순간의 기억. 깨진 기왓장을 들추자 짓눌린 풀포기의 가녀린 얼굴에서, 생명의 경건함에 소름이 돋았어요. 베트남 패망 때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1974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직전의 긴박했던 곳은 미국 대사관입니다. 밖은 대사관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고, 대사관 옥상엔 흙빛 얼굴들이 하늘을 봅니다. 얼마나 급박했으면 헬리콥터가 앉지도 못하고 상공을 맴돌다 밧줄만 내렸을까. 한 사람이 밧줄에 매달리기 무섭게 헬기는 상공으로 치솟고, 대사관의 성조기가 내려졌습니다. 미군 철수의 마지막 종언이었죠. 미국 대사관에 들어왔으니 살았다고 안도한 그 많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안에는 현지의 건설 현장 철수를 지휘하다가 미처 나오지 못한 두 분의 우리 회사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해안선이 긴 베트남은 바다로 뛰어든 난민 100만 명을 받아냈습니다. 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군 ‘보트 피플’의 슬픈 탄생입니다. 그중 운 좋은 사람은 수장을 면했지만, 아프간에는 뛰어 들 바다도 없습니다. 베트남 패망을 연민의 눈으로 지켜본 사람은 월남에서 사선을 넘어 온 32만 참전 용사들입니다. 그렇게 비원을 안긴 베트남은 그 후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깨진 기왓장 사이로 생명이 꽃을 피웠습니다. 광기의 칼춤이 난무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언제라야 나라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국처럼, 베트남처럼, 세월이가면 아프간 사람들도 희망을 노래할 날이 오면 좋으련만. 이념보다 무서운 건 신념입니다. 71년 전 한국, 47년 전 베트남이 이를 경험했습니다. 다음은 아프가니스칸 차례입니다. 허망한 이념과 신념의 너울을 벗고 기적의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두려움을 키우는 건 지금의 어려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입니다. 그래도 한강의 기적이 있었고, 메콩 강의 축복이 있었으니 그날을 꿈꾸며 피투성이가 돼 있더라도 살아만 있으라. 살아만 있으라···.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설가 / daumcafe leeretter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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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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