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살면 살수록 강해지지 못하고 약해지는 게 사람입니다. 유독 사람만 신앙에 의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몸집도 키도 작아지고, 꿈도 희미해지고, 늘어나는 건 나이테뿐입니다.

친구 병문안을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하나님이 새 생명을 선물하셨어.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내게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건넨 말입니다.

 

25일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는 친구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가장의 책무보다는 평생 자기가 좋아한 일에 빠져 살았지요. 전국의 명산을

섭렵하더니 세계의 명산 순례를 끝낼 만큼 건강도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지어야 할 짐을 고스란히 떠안은 건 아내였죠.

그가 만든 그늘 때문에 가족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당신 성당에만 나가요. 그 이상 더 바라지 않을 게요.”

 

모든 걸 체념하고 남편 구원에만 희망을 걸었지요. 그러한 아내에게 죽을 때 가까워지면 고백해 볼게라고 했던 그가 큰일을 겪더니 달라진 것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단어가 선물일 것입니다.

 

주고받는 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랑같은 귀한 어휘입니다. 친구를

눈물겹게 한 고결한 선물, 감당이 안 되는 분에 넘친 선물, 생명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선물이겠지요.

 

작가 볼테르는 창조자가 내려주신 선물로 생명을 꼽았고, 프랜치스코 교황은 시간을 말했습니다. 친구는 나를 보기 며칠 전 병상에서 영화 라스트 미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콕 집어 말하는 것 같아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라스트 미션(the mule 노새)’은 어느 낙제점 가장의 참회록입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것을 들려 줍니다.

실존인물을 각색한 주인공 역을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가 맡았습니다.

원제목에서 보듯 주인공 얼의 삶은 노새를 닮았지요. 한 가지만 생각하는 노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에 익숙한 얼은 화훼농장을 가꾸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백합경연대회는 그가 기다려온 무대입니다. 대회마다 우승컵은 그의 차지였고, 그 순간 느끼는 행복감은 컸습니다.

 

이를 삶의 낙으로 삼았던 얼이 생의 끝자락에 이르면서 눈물을 짓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은 대개가 때늦은 후회입니다.

분신과도 같던 꽃 농장이 기울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어느 날, 가족에게 평생 좋은 일을 못해온 얼이 거금을 내밉니다. 꽃 농장이 압류될 만큼 쫄딱 망한 직후여서,

아내는 돈의 출처를 수상히 여깁니다. 비밀은 영화의 원제(原題)‘mule'에 숨어있지요.

얼이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마약 운반책을 맡은 것입니다.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얼은 가족에게 진 마음의 빚을 보상하기 위해 노새처럼 일합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매달 시간 엄수가 밀매조직의 생명임에도 얼은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를 위로합니다.

 

사랑해 여보수십 년 만에 해보는 말이지만 낯설지 않습니다. 아내가 기뻐합니다.

얼은 아내의 눈을 보며 약속합니다. “앞으로 더 사랑할게 더 많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범죄 조직은 규칙을 위반한 얼의 제거에 나섭니다. 이쯤에서 작가는 말합니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 이라고. 너무 늦긴 했으나 이 진리를 깨달은 90세의 얼은 평생 등졌던 딸과 함께 할 시간을 그리며 마지막 배달에 나섭니다.

얼은 운반 물품이 마약임을 알게 되고 끝내 마약 단속국과 맞닥뜨리는 운명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는 어떤 길을 선택을 할까요?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최근 펴낸 신작에서 삶의 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각별한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굽이쳐온 삶의 길목에서 찾아낸 인생의 지혜가 겸양으로 들리지만,

살고 또 살아봐도 알지 못할 게 인생이라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샘물 같이 말입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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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보다 소중한, 함께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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