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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가 미안하다, 널 몰랐구나
    며칠 전 전국 청소년 글짓기 심사를 끝내면서 갖는 유감입니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받들어 유한재단이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합니다. 올해로 28년째니 연륜이나 규모면에서 전국 규모로 열리는 대표적 청소년 백일장입니다. 올해는 천여 명의 청소년이 아카시아 향이 흩날리는 유한공고 교정에 모여 초?중?고별 글제에 따라 글 향기를 뽐냈습니다. 씁쓸한 것은 ‘내가 아버지라면’ 이란 글제를 놓고 중학생들이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의식 때문입니다. 글제를 택할 때 10대의 자녀들이 평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글을 통해 아버지 상(像)을 유추해보자는 의도가 있었지요. 글제를 내면서 ‘혹시나’ 했는데, 적지 않은 학생에게서 아버지의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못함을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하다는데 불만이 컸습니다. “잘했네” “알았다” “수고했어.” 등과 같은 정감 없는 아버지의 말투에 아이들도 묻는 말에나 답하는 단답식 대화가 늘어남을 알 수 있었지요. 아버지의 칭찬이 있을 때도 그 뒤에 따라올 말에 신경을 쓴답니다. 때 아닌 칭찬이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죠. “그래 그건 잘했어. 그런데 넌...” 한숨까지 섞인 조언을 듣노라면 작은 희망조차 웅크려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칭찬에 목말라합니다. 아버지의 특징으로 감정표현이 없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아버지, 어려운 아버지라고 쓴 학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원합니다. 내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아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빠를 기다립니다. “이리와 봐” 식의 부름보다 격려의 부름이, 사랑의 부름이었으면 한답니다. “넌 왜 엄마를 통해서 말하지?” 아버지의 불만도 이해는 되지만 사실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평소 대화가 부족했다는 방증이지요. 아이들은 철부지가 아니었습니다. 속에 담아놓고 말을 안 할뿐,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도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분일뿐이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날, 친구들과 나눈 에피소드입니다. 어버이 날이라고 아들이 전화를 했을 때, 예전에 우리는 첫마디를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 나다. 기다려 엄마 바꿔줄게” 아들이 그게 아니고요 하면 “벌써 돈 떨어졌냐?” 그래도 아들이 용기를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미친 놈, 뚱 단지 같긴!” 옛날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파안대소했습니다. 자식의 마음을 알면서도 멋대가리 없는 말을 했다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아들이 지금의 아빠들입니다. 대를 이어 배워온 언어의 관습이 그렇다면, 누구를 탓할 입장도 아니지요. 대화도 훈련이 되지 않으면, 끊기고 단절되기 싶습니다. 대화의 부족이나 불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서적 불만으로 이어집니다. 갈수록 멀어지는 아버지,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는 어쩌면 현대사회가 만든 자화상일지 모릅니다. 피곤에 절어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처럼 나가는 아버지... 가뜩이나 어려워진 자영업자 아버지... 그 침통함이 무의식중에 그렇게 비춰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강한 이미지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아이들은 크면서 아버지가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엄마가 자녀들과 대화를 독점하고 있을 때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고 합니다. “나 요즘 힘들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는 아버지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도 느껴졌답니다. 좋은 세상이 된 줄 알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란 존재가 외롭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사람은 태어난 후 ‘아빠, 엄마‘ 로 부르며 성장기를 보내다가 때가 되면 ’아버지 어머니‘로 바꿔 부르기 시작합니다. 멀리 이스라엘에서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고 해 놀랐습니다. 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다 정년퇴임하고 거창으로 내려간 친구 이재철 목사가 전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갔을 때, 누가 아빠하고 뒤에서 부르더랍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스라엘 아이가 자기의 아빠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뜻의 어휘지만 ’아빠‘와 ’아버지‘는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아빠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고, 아버지는 역어인 헬라어입니다. 아빠로 불리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무한책임을 지지만, 아버지로 부르는 아들은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런 역할과 기능이 어휘에 담긴 거지요. 지금은 자녀들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아빠의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헌신으로 아이들을 키우지만, 어느 날이 되면 아버지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름다우려면 아버지가 자녀들과의 대화에 새로운 눈을 떴으면 합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네 맘을 헤아리지 못해서”라는 생각으로. 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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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음악은 천상의 소리
    밤바람이 선득한 주말. 저녁을 먹고 장자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로 청아한 색소폰 연주음이 들려옵니다. 발길이 절로 이끌려 간 곳엔 한 분이 ‘셀프 콘서트’를 열고 있네요. 잔디밭에 앉아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칩니다. 연주력이 준수한데다 가을밤의 정취까지 더해져 색소폰 선율에 젖는 아름다운 가을밤을 즐겼지요. 음악은 사랑을 전하는 신의 소리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지요. 음악은 연주자의 기쁨도 되지만 만인의 즐거움도 됩니다. 연주가의 재능을 부럽게 바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어거스트 러쉬.’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는 말이 잘 어울린 영화지요.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와 촉망 받는 첼리스트 라일라의 보석보다 반짝였던 단 하루 밤 이후, 남자는 그녀를 한 번도 잊은 적 없고,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낳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놓은 적이 없지요. 이들의 믿음 하나는 “음악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라는 것. 부모의 DNA를 받은 아이는 일찍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입니다. 시설에서 자란 11세의 소년은 부모만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뉴욕을 찾아갑니다. 모든 게 신비한 뉴욕. 도시가 만드는 수많은 소리들이 소년의 청각에 음계로 포착됩니다. 소년은 아이들을 모아 거리에서 노래를 시키는 워저드를 만나 어거스트란 이름으로 거리 연주자로 등장해 천부적인 실력을 보입니다. 하루는 소리에 끌려 교회 합창단 연습장에 들렸다가 처음 보는 오선지와 오르간 앞에서 작곡하고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합니다. 이를 지켜본 목사님이 줄리어드에 음악천재로 추천합니다. 줄리어드에서 사모곡 라프소디를 작곡해 주위를 놀라게 한 어거스트. 마침내 뉴욕필하모니 콘서트에 특별 출연자로 초청됩니다. 줄리어드 출신의 유명 첼리스트(엄마)와 함께. 하지만, 연주회를 앞두고 위기가 오죠. 워저드가 연습장에 나타나 아버지라며 친권을 주장하고 데려갑니다. 학교는 간곡히 연주회만큼은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절당하죠. 금관악기가 아이의 영혼을 뽑는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다시 광장 연주에 나서는 어거스트. 부근을 지나던 루이스가 소리에 홀려 찾아오고, 금세 호흡을 맞추더니 황홀한 기타 2중주를 펼칩니다. 어거스트가 오늘 밤 있을 센트럴파크 공연을 알려주지만, 루이스는 귀에 담지 않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만 주고 떠납니다. 그날 밤, 어거스트는 친구의 도움으로 탈주에 성공해 연주장으로 달려가고, 지방공연에 나서던 루이스는 뉴욕 중심가에서 아이 얼굴이 나온 배너광고를 보지요. 전율을 느낀 그도 차를 버리고 연주회장으로 내달립니다. 환호 속에 첼로 연주를 끝낸 라일라가 아이를 생각하며 공원을 빠져나올 때, 줄리어드 총장이 특별초청 지휘자를 소개합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어거스트. 환호하는 청중... 놀라운 자작곡이 그의 지휘 속에 연주를 시작합니다. 밖을 향하던 라일라가 연주음에 끌려 뒤돌아서고, 또 반대편에서는 황홀한 눈빛의 루이스가 나타납니다. 마침내 무대 앞에 이르러 12년 만에 마주 서는 남과 여... 환희의 포옹을 할 때 지휘하는 아이의 모습이 비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지요. 귀를 기울인 만큼 들리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세상의 소리를 옮겨 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천재가 말하죠. “아이들이 동화를 믿듯 저는 음악을 믿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제 음악을 꼭 듣게 될 거야요.” 어거스트의 간절한 믿음처럼 나는 어떤 믿음을 확신하며 살고 있나요?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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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9
  • 내 앉아있는 자리
    스산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니 단풍은 지고 낙엽만 우수수 쌓입니다. 이렇듯 나무도 꽃도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사이즈를 줄이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한 주기의 마지막 겨울을 상대하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 또한 사이즈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몸집이 줄고, 먹는 게 줄듯 이것이 절제의 근본이며 이치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작게 나왔으니 돌아갈 때도 비우고 작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실상과 허상이 공존하지만 스스로 말수를 줄이고, 욕심도 미움도 줄이고, 자랑, 명예 같은 덧없는 것은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이즈가 줄지요. 루디 세네카는 “인간은 마치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꼬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를 알면서도 어제의 습관을 오늘도 고집하고 삽니다.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시나요? 바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보다는 흉금을 터놓고 말할 한 사람의 친구가 더 소중한 때입니다. 친구도, 만남도, 분주함도 지혜롭게 줄여가는 것이 노년의 삶을 가볍게 하고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은 수분이 80% 이상이라고 하죠. 비슷한 비율로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그만큼 물과 말은 몸을 유지하고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말입니다. 내가 살면서 토해낸 말을 양으로 계측한다면 얼마나 될까. 그중 꼭 필요했던 말은 얼마쯤 일까. 이제는 할 말 못할 말, 안 해도 좋을 말, 상처 주는 말을 가려가며 했으면 합니다. 내뱉은 말은 흘러간 세월처럼 돌릴 수 없으니... 그래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많이 들어주자. 듣는 귀는 8로 열고 말하는 입은 2로 줄이자. 남이 말할 때 자르지 말자. 중간에 끼어들지 말자. 말 줄기를 돌리지 말자.” 비위 상한다고 파르르, 욱, 버럭 하는 감정도 이젠 삭혀 없애야 합니다. 행여 그런 상황이 되면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버리세요. 대신 많이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가족, 친구, 이웃, 누구든 만나면 웃는 것으로 말문을 열어요. 나이가 들면 웃는 근육도 굳는다는데, 얼굴에 웃음기마저 빠지면 노인 특유의 표정 없는 일그러진 인상만 남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옻칠을 더하는 것처럼 윤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움이나 시기, 질투는 다 헛된 뜬구름이지요. 뜬구름을 좇다가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아픈 일입니다. 살고 있는 이날,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족해야 할 자리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맘대로 못할 게 뭐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사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살아보니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상의 스승은 없더군요. 사서삼경이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편 입장을 늘 먼저 헤아리면 그것이 상선의 절제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래 저럴 수 있겠다... 나도 그 입장이면... 저도 사람인데.”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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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너도 죽는다‘메멘토 모리’
    말에는 묘한 힘이 있어 곱씹을수록 향기를 내는 말이 있고, 겸손함을 가르치는 말도 있지요. 라틴어는 그런 철학적 의미를 함의한 말과 글이 꽤 많습니다. 언젠가의 기억입니다.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 1인이 된 학생에게 50번 마지막 골든벨 문제가 주어집니다.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주위에서 외쳤던 라틴어는?“ “메멘토 모리" 영예의 골든벨이 울리는 짜릿한 순간을 지켜보았지요. 다소 생소한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유래는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개선장군은 관습에 따라 전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영웅이 탄 마차가 시민의 환호 속을 헤치고 행진하는 동안 뒤에서 노예들이 큰소리로 외쳐댑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승리에 도취된 장군에게 본분을 잊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장치인 셈이죠. 로마 최고의 환대 속에서도 너는 신이 아닌, 한 인간일 뿐임을 알린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 이 셋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를 강조했습니다. 췌장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격찬합니다. 그러므로 제한된 인간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 듯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집중하라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뜻이 통하는 라틴어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습니다. 몬래 이 말은 신을 공경하고 오만해지지 말라는,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는 뜻인데 이후 기독교 영향을 받아 현세의 부귀나 영화의 부질없음을 알립니다. 우리에게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죠.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다는 이 말엔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 는 속뜻을 지닙니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명한 노래 ‘아모르 파티’도 같은 말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하는 파티가 합성된 라틴어로 이 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지요.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철학자 니체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미국 남서부에 거주해온 나바호족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그들은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라.”는 의미심장한 철학을 닮고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화무십일홍>까지 모두 겸손한 삶을 가르칩니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인생에게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에 충실하라.... 이보다 더 삶을 성찰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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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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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8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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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4
  • 슬픔이여 안녕!
    죄 없는 어린 생명이 희생될 때 더없이 고통스럽습니다. 남달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덟 살에 충북 영동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과 몰려서 마을 앞에 흐르는 강에 나갑니다. 겨울엔 썰매를 타고 여름엔 물놀이를 하는 곳. 경부선이 지나가는 철교 아래가 또래들의 여름 아지트지요. 흰줄 하나를 내린 검정 팬티를 입고 상급생들은 수영으로 강을 건너고, 하급생들은 교각 중턱에 걸터앉아 형들을 부럽게 바라보다가 텀벙 강물에 몸을 던집니다. 이날도 철교 아래에 한 떼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비가 와서 물이 좀 불었지만 누구도 겁내지 않았지요. 그런데 물이 불면 수심에서 물돌이가 이는 걸 모른 게 비극입니다. 형들이 수영을 가르친다고 아이들을 밀어 넣는데 그만 1학년 쌍둥이 동생이 소용돌이에 말려든 겁니다. 아이가 물속에서 허우적이자 더럭 겁이 난 아이들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나도 겁에 질려 뛰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발을 구르며 울부짖는 쌍둥이 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죽은 아이는 내 짝꿍이었습니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지고... 나도 밤마다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땀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지요. 물에 퉁퉁 부은 친구가 나를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넋이 나간 친구 엄마, 고래고래 소리질러 아들 이름을 부르는 아빠, 나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쌍둥이 형... 나는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친구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과 슬픔이 어린 가슴을 쿵쿵 뛰게 했지요. 이로 인해 부모님 걱정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발령을 받아 새 임지로 이사하면서입니다. 가족이 아버지의 전근을 반색한 것도 나 때문이었죠. 아픈 기억은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많이 옅어졌습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끊은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결혼 후로는 아예 잊다시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도 길에서 쌍둥이 형을 만나면서 덜컥 상처가 뜯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매셨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답니다. 한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가족을 황폐화 시켰구나. 아물었던 내 상처에도 피가 나는 걸 느꼈습니다.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형의 얼굴에 깔린 그늘을 보았습니다. “가족 몫까지 잘 살아야지. 흔들릴 때마다 그렇게 위로해.” 예민한 성격 탓일까, 이후로 이따금 꿈을 꿉니다. 시골에서 놀던 추억들이, 떠난 어린 친구의 모습도 생생하게 포착됩니다. 더 힘들게 하는 건 잊을 만하면 날아드는 이런저런 또래 아이들 희생소식입니다. 줄어드는 인구도 걱정인데 죽었다하면 아이들이냐고 격분도 합니다. 지난 봄, 헝가리에서 유람선 전복으로 6세 소녀가 숨졌다는 비보가 그랬었죠. 외할머니 손을 꼭 잡은 아이의 인양된 모습은 더 애처로웠습니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엄마가 일곱 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했다는 비보가 들렸습니다. 죽음이 낯설기만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섬뜩했을까, 얼마나 설득했을까, 아니 강요했을까. 그래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푸른 6월에는 전 세계인을 슬픔에 잠기게 한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멕시코 국경에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25세 아빠와 두 살짜리 딸이 익사한 것입니다. 아빠가 아이를 셔츠 안에 넣고 아이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은 채 떠내려 온 사진을 봤습니다. 물살을 이겨내려 했던 아빠의 다리는 물위에 떠 있고, 아이의 바지는 물먹은 기저귀로 불룩했습니다. 강 건너서 울부짖는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멕시코 영화 ‘신 놈브레’는 중남미사람들이 ‘죽음의 열차’를 올라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열차 지붕에 올라타다 떨어져 죽고 힘겹게 탄 뒤는 살해나 강간을 당하기도 합니다. 서글픈 것은 점쟁이가 찾아온 주인공에게 일러주는 말이죠. “넌 미국에 도착할거야. 그런데 안내는 신이 아닌 악마가 하지.”라고. 그 악마는 죽음의 열차를 올라 탄 아빠와 딸을 강물 속에 빠뜨린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찾아간 저세상이 험난한 이 세상을 사느니 보다 낫지 않겠냐고. "여긴 낙원이 아냐. 슬퍼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오래전 읽은 프랑수아 사강이 쓴 ‘슬픔이여 안녕’ 이란 소설 제목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요? *글/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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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실시간 기고 기사

  • 우리가 사는 두 세상
    비대면과 디지털화가 가팔라지면서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종종 놀라움을 줘요. ‘모든 기회에는 어려움이 있고, 모든 어려움엔 기회가 있다’고 믿어왔는데 지금의 이 어려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때때로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거꾸로 도는 시계가 있어요. 르네상스 발상지인 이곳 두오모 성당에 우첼로가 디자인한 시계가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늘이 반대 방향으로 돕니다. 이를 보면서 집단양식에 반하는 것이 얼마나 낯선 것인가를 느꼈습니다. 인류의 오랜 삶의 양식인 먹고, 만나고, 일하고, 즐기고, 나누는 일체의 희로애락을 찾는 방식이 일순에 뒤바뀌는 아뜩함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비정상이던 비대면, 탈모임 같은 역방향의 양식으로 대체돼 가는 현실을 속절없이 바라봅니다. 좋든 싫든 2020년의 우리는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라는 두 개의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언택트는 일상이 되었고, 디지털과 마주하는 시간은 갈수록 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두 세계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합니다. SNS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 자신을 잊고 지내는 순간도 함께 늘었어요. 엄연한 현실 속의 물리적 존재란 사실까지 살짝살짝 잊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보면 이상한 나라에 빠지는주인공이 있어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매력적인 판타지와 해학을 담아 아이들에겐 환상을 주고, 어른들에겐 시공을 넘는 철학적 의미를 전합니다. 전혀 낯선 세상에 가게 된 엘리스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는 정말 이상하고 신비한 이야기지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이 이런 것인가.가상과 현실의 두 세계가 복선처럼 깔려듭니다. 엘리스가 고양이와 나누는 대화부터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고양이야, 여기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줘. 그건 네가 어디를 가고 싶으냐에 따라 달라. 아무데든 상관없어 가기만 하면 돼. 그래? 그럼 어디든 가면 되잖아. 어떻게? 계속 걷기만 해. 계속 걷다보면 그렇게 될 거야.” 목표가 없으면 우리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어요. 사는 게 혼미할수록 목표는 확실해야 합니다. 바다가 흉흉하고 풍랑이 심할수록 키를 놓치면 안 되는 이치와 같아요. 세상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을 열어주는 법. 좌표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이상한 세상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낙관만은 할 수 없는 현실이 불안감을 키웁니다. 이런 때일수록 내 삶의 중심을 잘 잡고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멈춤이 없는 코로나 감염확대, 부동산 폭등, 일자리 부족사태, 의사파업, 세상 돌아가는 것이 모두 아픈 것 밖에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더 많은 희망과 따뜻함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방역복을 벗지 못한 방역현장의 의료진, 생명을 구하는 119요원, 큰물에 허물어진 집에서 생존의 땀을 흘리는 사람들, 무너진 제방을 쌓고, 수마에 휩쓸린 논밭과 과수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끈질긴 삶의현장이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확진보다 더 무서운 건 심리방역의 붕괴입니다. 경직된 얼굴, 시름에 쌓인 눈빛, 지쳐가는 내 모습에 균열이 생기지는 않는지. 이마저 쉽게 호소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1초의 짧은 말’을 자주 주고받는 일입니다.*.고마워요... 말이 주는 따뜻함에 의지가 될 때가 있습니다.*.힘내세요.나는 누구인가의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 *.. 잘계시죠... 언제 들어도 살갑고 편하고 좋은 인사입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새마을 중앙연수원을 진원지로 한 ‘수·미·고 운동’이 벌어졌었지요. 가난한 사람들 서로의 가슴에 신바람을 불어넣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 수고하십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1초에 기뻐하고 1초에 우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 번쯤 뒤돌아보고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두 개의 세상 사이 어느 지점에 있을 나의 존재에 대해.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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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6
  • 잘 먹어야 할 다섯 가지
    ‘강산은 바꾸기 쉽지만, 본성은 고치기 힘들다(江山易改 本性難改)’라는 문장이 있다. 나이 들수록 본성이 잇몸처럼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송곳처럼 뾰족해지는 경우를 지적하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일렀을 때, 그의 친구들이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자신을 잘 아는가?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나도 모른다’라고 운을 뗀 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안다’라고 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다. 존중받는 인격과 성품을 만들어가는 출발대가 되기 때문이다. 책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은 무릇 다음 다섯 가지 를 잘 먹어야 한다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공감한 적이 있다. ?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 물을 잘 마셔야 하고, ?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하고, ? 마음을 잘 먹어야 하고, ? 나이를 잘 먹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삶의 비결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존중받는 삶을 사는 길이기도 하겠다. 이 다섯 가운데 음식, 물, 공기는 일상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마음’과 ‘나이’에 관해서는 경험상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 인간의 본성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의 수고로 될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문제는 생의 보람을 찾아 나설 때 바뀔 수 있다. 그것이 학문이 됐든 수양이 됐든 봉사가 됐든….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면,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생의 보람을 찾았느냐?’라고. 많은 사람이 쉽게 답을 내지 못하고 머뭇대거나 ‘자신 없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나이가 든 사람의 공통점은 시야가 ‘나’라는 문제로 좁혀든다는데 있다. 몸은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나고, 사는 맛이 예전 같지 않다. 이룬 것이 변변하지 못하면 허망한 생각이 들고, 마땅히 행할 일이 없으면 삶이 공허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 소리로 시끌벅적했던 집안은 자식들이 제 살림을 꾸려 나간 뒤 적막강산이 되었다. 생이 쓸쓸해지고, 깜빡거리는 기억력을 탓하다 치매라는 울렁증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면서 문득 찾아오는 존재론적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내세가 있긴 한 건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이 생을 바라보며 허무감을 느낄 때, 인생의 아픔이나 좌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동료가 되고 벗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몰두하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로 나서는 데 있다.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로 살아내는 것만큼 인생을 보람차고 아름답게 사는 길이 없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으로 대접받기를 원할 게 아니라, 연륜으로 존경을 받는 어른이 돼야 한다. 나이는 해가 바뀔 때마다 거듭되지만,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비바람 삭풍 한설을 이겨야 만들어진다. “스무 살의 얼굴은 당신의 얼굴이고, 예순 살의 얼굴은 당신의 공적이다’라고 패션 디자이너 샤넬이 적절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어른이 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도 다루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향노루 이야기’가 있다. 어느 숲 속에 살던 사향노루가 코 끝에 와닿는 향기를 맡고 황홀감을 느꼈다. “나를 사로잡는 이 향기의 정체가 무엇이지? 내가 꼭 찾아내고 말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사향 노루는 마침내 그 향기의 진원을 찾아 나섰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를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는 때에도 쉬지 않았다. 몸이 지칠수록 향기의 유혹은 더욱 강렬해졌다. 하루는 절벽 끝에서 코끝을 맴도는 향기를 느꼈다. “이 절벽 밑에 있는 것이 틀림없겠구나.” 사향 노루는 희망에 들떠 향기가 나는 험한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을 헛디디고 수십 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부러졌다. 사향노루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때 사향노루가 쓰러져 누운 자리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죽는 순간까지 향이 자신의 뿔에서 나는 줄을 몰랐던 사향노루…. 슬프고 안타까운 이 사연은 한 사슴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우리 인생,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찾으러 어디에 가 있는가? 나 자신에 매몰되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들에게 나눠줄 아름다운 사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위태한 절벽을 방황하는 사향노루가 된 것은 아닌지…. 나를 떠나 새로운 것을 찾고, 누군가를 통해 행복과 사랑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나야 말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끝내 비명 횡사하는 사향노루가 아니겠는가. ‘진정한 가치는 작은 결함에 나온다’라고 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인데 한 보석상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쓴 대사다. 때로는 내가 부끄러워했던 그 흠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지하에서 채굴된 가공되지 않은 원석들이다. 원석을 오랜 시간 깎고 다듬고 디자인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원석엔 저마다 흠이 있는 것이니 그것이 부끄러움이 될 수는 없다. 소크라테스 말처럼, 우선은 나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고, 다음은 이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이 사향노루가 갈망했던 향기를 찾아가는 첫걸음이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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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2
  • 오늘을 눈물 나게 살아라
    우리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고 사는 때가 많다. 건강하게 탈 없이 살고 있으니 하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제를 살았으니 의당 오늘이 오는 것 같이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때가 많이 있다. 그러한 우리에게 ‘눈물 나도록 살아라.’ Live to the point of tears. 이 유명한 말을 알베르 카뮈가 남겨주었다. 카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라’라는 뜻으로 이 말을 전했다. 이 말이 더욱 실감 나게, 한 생을 살다 간 사람은 영국의 여류 극작가 샬롯 키틀리이다. 그녀는 36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눈물 나게 살기를 원했던 바람이 유언이 되어 우리들 앞까지 찾아왔다. 두 아이의 젊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은 후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암세포가 간과 폐로 전이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종양 제거술 2회, 방사선 치료 25회, 화학요법 치료 39회 등 암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이어갔고, 간호사들은 주사 놓을 곳을 찾느라 그녀의 가녀란 팔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이겨내기 힘든 슬픔을 앙다물고 견뎌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남편과 다섯 살, 세 살짜리 자녀를 남기고 가족 곁을 떠나고 말았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샬롯 키틀리(chaarlotte kitley)...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는데, 그 글이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아프게 울렸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절절하고 간절한 것인가를 곱씹게 하는 글이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이렇게도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질 않네요.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겐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내게는 허락하지를 않네요. 살아보니 알겠더라고요. 매일 아침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지르던 날들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란 치료는 다 받아보았어요. 기본인 의학적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 보고 쓰디쓴 즙도 눈을 꾹 감고 마셔도 보고... 한방에 가서 침도 맞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보니 매일아침 일어나 내 아이를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는 1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에 나는 남편 곁에서 잠이 깬 아침의 기쁨과 행복마저 잃겠지요. 남편은 무심코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아이 머리를 땋아주어야 하는데 이를 누가 하지? 아들 녀석이 가지고 놀던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들어가 있는지 나만 아는데 이제 누가 찾아줄까? 의사로부터 6개월 사망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22개월을 살았어요. 그렇게 1년 넘는 시간을 보너스로 얻은 덕분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의 흔들거리던 이가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보너스 인생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니 감사한 일이죠. 어디 그뿐인가요. 감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중년의 복부 비만 같은 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살아있다는 얘기잖아요. 저도 한 번 늙어 보고 싶어요. 남들에겐 흔한 일상인데 왜 내겐 허락하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손으로 오늘의 삶을 꼭 붙들길 바랍니다. 샬롯 키들리.”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가치 있게 살고, 의미 있게 보내며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 독서계에도 잘 알려진 스펜서 존슨은 2020년 스페셜 에디션으로 발매된 책 ‘선물(present·알에이)'에 인생을 행복하게 할 선물 하나를 넣어 두었다. 그가 독자들에게 준비한 선물이 지혜였는데, 다름 아닌 바로 지금, 오늘을 이르는 것이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원망이나 슬픔을 떨쳐버리고 지금의 시간,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미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인생을 눈물 나도록 살아라’라고 한 존슨의 주문 속에는 가장 소중한 선물인 오늘 하루, 현재가 오롯이 녹아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삶이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즐겨야 할 축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2800만 부가 팔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저자이기도 한 존슨은 ‘선물’에서 우화의 대가답게 깊이 있는 아야기도 남겼다. 어느 노인이 동네 소년에게 어릴 적부터 근사한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인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약속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하루는 기다림에 지친 소년이 노인에게 약속한 선물을 달라고 채근했다. 그 과정에서 소년은 깨닫는다. 노인이 주겠다고 한 선물이 바로 ‘present’의 또 다른 의미인 ‘지금’이란 것임을…. 노인은 소년에게 ‘선물’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해주었다. learn from the past, plan for the future, be in the present…. 샬롯 커틀리가 미련 많은 세상을 떠나면서 “오늘을 눈물 나도록 살라”고 호소한 말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건성으로 넘겨 듣고 오늘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가 /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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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7
  • 12월에 생각나는 소녀
    일기책을 뒤적이다 원치 않은 기록과 마주했다. 1999년 12월 12일 내가 남긴 지문은 선명했다. 시기적으로는 ‘뉴 밀레니엄’ 시대가 열린다고 온 세상이 과도한 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당시 몸에 일었던 전율은 지금도 기억된다. 그 날짜 언론들은 몸도 시원치 않은 소아마비 초등학교 2학년 여아가 계모의 음흉한 계획과 장기적인 학대로 죽었다는 쇼킹한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이 비보는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계모가 1년 넘게 몸에 해로운 약을 계속해 먹인 것이 경찰 수사로 밝혀지면서였다. 여아 책상엔 2년 전 죽은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안데르센 동화집이 꽂혀 있고, 아이는 수시로 그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데르센 전집 7권 중 유난히 낡아 보인 책이 ‘성냥팔이 소녀’ 였다고 한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해질 정도가 되었을까. 담임선생은 아이가 늘 그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불러 물어보았다. “이 책이 그리 좋으니? 뭐가 좋아?” 한참 뜸을 들인 아이가 내놓은 말은 “슬퍼서”였다. 선생님은 아이를 붙들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음 문을 연 아이는 “커서 안데르센 선생님처럼 동화책을 쓰고 싶어요.” 동화작가라는 야무진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안데르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안데르센은 아주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들로 태어나,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는 재혼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단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지. 네가 좋아하는 ‘성냥팔이 소녀’는 안데르센이 어린 시절 가난한 엄마를 모델로 썼다고 해. 놀라운 일이지?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꼭 될 거야!” 그날 이후로 아이를 더 따뜻하게 관심을 갖고 봐 왔는데, 이런 비극이 찾아왔다고 슬퍼했다. 불우한 소녀에게 실낱같은 꿈을 이어준 안데르센. 그 꿈을 찢어버린 계모란 이름의 여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이렇게 달랐다. 철자법도 서툴었던 안데르센 소년은 거칠었던 삶의 질곡을 환희로 승화시켜 덴마크의 자존심이 되었고, 안데르센이 죽자 나라가 나서서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를 만큼 예우를 갖춰 애도했다. 강단에 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곧잘 안데르센과 쇼펜하우어를 비교했다. 국적은 달라도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고, 거부인 아버지 덕에 온갖 영화를 다 누리며 자라고도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고. 환경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끝말은 ‘성냥팔이 소녀’가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 안데르센은 불쌍한 소녀를 왜 얼어 죽게 만들었을까? 사무침은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소녀도 살았으면 지금쯤 서른 살쯤? 어쩌면 잘 자라서 소원한 대로 동화작가가 되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 외에 ‘미운 오리 새끼’ ‘인어 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등 보석처럼 반짝이는 160여 편의 동화를 세상에 남겼다. 그의 동화 속에는 늘 아름다운 환상 세계가 펼치어 있고, 낭만적인 세계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화는 곧잘 비극으로 끝나곤 했다. 부잣집 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성냥불로 몸을 녹이던 ‘성냥팔이 소녀’는 차가운 주검으로 남고, 짝사랑한 왕자를 만나려고 목소리를 팔아 두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끝내 바다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안데르센은 말년에 자서전을 냈는데, 세 번을 고쳐 낼만큼 애착을 보였다. 자신의 수많은 작품의 탄생 배경과 집필 동기 등을 자상하게 서술하여 안데르센 작품 주석서라는 평가가 따랐다. 그는 책머리에 “역경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으며, 어떤 요정이 도왔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삶으로 인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삶을 자긍 했다. 서양의 문학사가(文學史家) 들은 괴테의 ‘시와 진실’을 ‘루소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함께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를 세계 5대 자서전으로 꼽는다. 12월이 오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고, 딸랑딸랑 구세군 자선냄비가 종소리를 낼 때면 안데르센이 생각난다.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창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혹시 내 창밖 아래 그 누군가가 떨고 앉아 있는 건 아닐까? 이태원 참사, 열 달째 이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끝 모를 경기침체 등 유달리 마음을 아프게 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를 보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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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송산 초등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2023년 4월 1일, 송산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습니다. 90년대 농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당진시는 서해안 시대를 맞이하여 국내에서 가장 긴 서해대교가 완성되면서 수도권과는 1시간 생활권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제철, 당진화력발전 등이 입주해 있는 당진산업단지와 당진항만이 건설되면서 명실상부한 도농융합복합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00년의 전통을 지닌 우리 학교는 각급 학년이 20명 내외수준으로 전체 학생수가 141명에 불과하게 왜소해졌지만 지난 100년이라는 오랜 역사을 지닌 학교로서의 전통과 긍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송산초등교는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학교로써의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와 우리들은 모교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 동문들은 앞으로도 우리 모교가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자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는 무언간 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총동문회에서는 우리 학교의 100년사를 발간하고 100주년을 상징하는 기념비 및 조형물을 제작하며 기념 식수와 함께 100주년 축하공연 무대를 갖고자 합니다. 2023년 4월 1일, 100주년 축하 공연 무대를 학교 내에 마련하여 학생, 학부모, 동문, 지역사회 인사 등을 모시고 축하 공연과 함께 100주년 기념 작품전시회 및 예능발표 등도 가질 예정입니다. 우리 학교를 상징하는 소나무처럼 푸르고 변하지 않는 지조를 갖고 목련처럼 고귀하고 숭고한 품격을 지닌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써의 전통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선배 동문들의 몫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에 100주년기념 운영기금 마련하고자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많은 동문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로 의미있는 성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100주년 축하 무대에 다시 뵙게 되길 기약 드리면서 이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송산초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김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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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9
  • 가시가 있는 삶
    손마디에 작은 가시가 박히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빼내려고 손톱으로 쥐 뜯어보지만 쉽지가 않다. 작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이 가시의 속성이다. 성서에 나오는 바울은 기독교사에 빛난 인물이다. 이방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안고 죽기까지 기독교를 세계에 퍼뜨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었고, 끝까지 이를 외면하셨다. 학자들은 그 가시를 간질로 주목하고 있다. 바울은 오랜 기간 그 가시를 위해 기도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발작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주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결코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서. 주님과 바울의 대화를 의역하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주여, 내게서 이 가시를 제하여 주소서.” 그런데 답은 ‘yes’ ‘no’가 아니라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 성경에 보면 세 번씩 구했다고 하는데 답은 같았다. 내 나름 주석을 달면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 ‘크도다’ ‘많도다’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사람에게 이적을 베푸신 주님이 왜 사랑하는 제자의 기도를 세 번씩 거절했을까. 한 때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후로 바울은 더 이상 간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교만하지 않게, 자고 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사랑의 가시임을 안 것이다. 가시의 삶은 아프지만, 그를 통해 연약한 인간인 나를 돌아봄으로 인생을 실패하지 않게 하려는 주의 은총임을 깨달은 것이다. 오래전 서울 명일동에서 생긴 일이다. 20대 처녀가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40대 중년 남자와 열애를 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전처가 난 초등생 1학년 아이도 있는데…. 친정 부모마저 참석지 않은 결혼식을 올리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부모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내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이의 좋은 엄마가 되는 길뿐이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그 자리를 찾고자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노력하면 한 만큼 아이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학교에서 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부터 잠갔다. 밥 먹을 때만 살짝 나와 후딱 먹고 제방에 들어가면 끝이었다. 마침내는 자폐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울기도 하고, 인내도 해보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의 존재가 손톱 밑 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다. 뽑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거슬렀다. "저 아이만 없으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어쩌다 한 번 스친 생각은 잊을만하면 꼬리를 물고 나타나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초겨울 어느 휴일 새벽녘,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안개가 자욱한 이른 시각에 새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한강 둔치로 나와 수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새엄마가 걸음을 멈추더니, 안개 낀 사방을 돌아보고는 갑자기 아이를 강으로 떠밀었다. 그 순간 어디서 보았는지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다. 이 사건은 미수로 끝났지만,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비정한 새엄마의 기사는 밤 9시 뉴스 톱으로 올랐고,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기사로 장식되었다. 당사자인 아이와 새엄마, 아빠까지 일가족 모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후유로 세 가족은 용인 청량리 · 장흥 정신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의 종말을 맞았다. 새엄마는 ‘아이’ 란 가시를 뽑으려다 자신은 물론 한 가정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 이왕 모질게 결심한 일이니 좀 더 인내했더라면, 좀 더 사랑으로 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오래오래 남긴 사건이었다. 허남진은 프랑스 월드컵에서 축구공 묘기로 전 세계 축구팬을 감동시킨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무려 18시간 11분을 계속 축구공을 차올려 세계 기네스에 이름을 올렸다. 이마로 공을 쳐 올리며 물과 이온음료, 바나나 등을 받아서 먹었고, 생리도 선 채로 해결하면서 세계기록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의 인생역정도 눈길을 모았다. 어려서부터 축구선수로 제2의 차범근을 꿈꾸었다가 고교 선수 시절 큰 부상을 입으면서 모든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졸업 후는 공사장으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떠돌며 인생을 비관했다. 자포자기한 삶으로 그렇게 몸을 마구 굴리다가 어느 날 “내 젊음을 이렇게 끝내야 하나?”라는 자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각성은 했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세울 배경도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다시금 절망의 낭떠러지 위로 자신을 밀어 올리다가 생각이 스쳤다.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그걸 살려봐!’ 그제야 비로소 축구공을 가지고 묘기를 부려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내가 잘하는 축구공 묘기를 살려보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살려 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그는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축구공을 놓지 않고 살았다. 인생의 목표와 꿈이 함께 살아났다. 꿈을 떠올릴 때마다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잠을 잘 때에도 축구공을 가슴에 품고 잤다. 그 결과 축구공 묘기로 세계를 누비는 민간 외교관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수 억 명이 시청한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시간에 펼쳐진 허남진의 축구공 묘기는 한순간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2000년에는 또 다른 도전으로 축구공 헤딩 세계기록(7:24:54)을 세워 축구공 전신 컨트롤 세계기록과 함께 두 개의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을 장식했다.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소아마비 젊은이가 정규 레이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는 접수를 망설이는 주최 측을 설득해 꿈의 뉴욕 마라톤대회 출발대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주최 측도 중도에 기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몸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 쓰러지지 않고 반환점을 돌았다. 선두를 중심으로 비추었던 중계 카메라가 선두와 꼴찌의 그를 번갈아 비추기 시작했다. 연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주자들이 다 골인했는데도 TV 카메라는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꼴찌로 들어오는 소아마비 주자의 감격적인 골인 장면을 잡았고, 이를 지켜본 전 미국인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취재진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에게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을 만큼 탈진한 그에게 기자들이 ‘소감 한마디만!’을 주문하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격정의 한마디가 미국 시민들 가슴에 전율을 일으켰다. “내게 건강한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큼지막한 인터뷰 사진과 함께 그의 기사를 실었다. 뉴스의 헤드라인도 그의 말을 따옴표 안에 넣어 독자들에게 전달해 감동의 파장을 높였다. 누구나 삶에, 가시가 있다. 밖으로 드러난 가시도 있지만 자기만의 가슴속 가시도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시에 집착하다가 자멸하고, 비하하다 절망하고, 그것을 빼내려다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서의 바울이나 허남진, 소아마비 마라톤 주자처럼 가시를 끌어안고 살아 승리한 인물도 많이 있다.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사시면서 유난히 ‘팔자’를 강조하셨던 외할아버지. 여기서 ‘팔자’는 체념일까, 수긍일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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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8
  • 비로소 깨닫는 ‘시든다’는 말
    늦가을의 기억입니다. 막내아들 집을 찾은 어머니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뜬금없이 “세상이 참 헐거워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뭐가요?” 젊은 아들이 묻지만 어머니는 밍근한 웃음만 지어 보이셨지요. 그땐 무엇을 말씀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야 그 미소의 뜻을 알게 됩니다. 가을 끝을 돌다 절로 깨친 겁니다. 연이틀 추적되던 가을비가 그치자 문득 세상이 헐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낙엽진 거리가 성글어 보이고 공원도 휑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사람들 사이를 스치는 바람도 스산합니다. 산 계곡 물소리는 수척해졌고, 젖은 돌계단을 밟는 사람들 표정도 쓸쓸합니다. 들에도 산자락에도 이별하는 것뿐입니다. 그 길을 걷다 문득 때 지난 어머니의 대답을 찾았습니다. ‘너도 살아보면 안다’는 것을. 시든다는 것은 돌아가기 위한 생명체의 마지막 경건한 행위란 것을. 한 생을 휘돌았던 뜨거운 피가 빠지며 전하는 마지막 언어가 ‘시든다’ ‘시듦’이라는 말이겠지요. 다음은 ‘사위다.’ 불타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만 남습니다.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는….사람들은 1년이 훅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속절없어 하지만, 누구에겐 그 짧은 시간이 성심을 다해 살았던 생애입니다. 어느 시인은 낙엽을 보고 ‘땅에다 맨몸을 뉘고 상처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온 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지막 지움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요. 시듦이란 소임을 다한 생명이 자신의 삶을 거두는 일이니까. 그래서 ‘잘 시들면 잘 거두는 것’이란 말이 생겼나 봅니다. 세월의 속도감은 12월 들어 유난히 빠르게 느껴집니다. 엊그제 꽃이 피었다 했는데 여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이 들더니 그도 잠시, 비바람이 낙엽을 털어냅니다. 그리고 앙상한 뼈마디로 남기까지 나무의 1년은 쉼 없이 가쁘게 돌아온 시간의 매듭뿐입니다. 지난 주말, 도봉산에 올랐다가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이 또 있습니다. 마른 낙엽을 밟다가 돌연 미안한 마음이 든 겁니다. 오롯이 순종으로 잇대 온 나뭇잎의 굽은 등을 밟다가 말입니다. 생애를 끝내고 갖는 마지막 쉼에 모질게 가하는 내 밟는 행위를 보고…. 잊고 지내온 이기적인 내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낙엽을 빗겨 밟으려고 하면 할수록 발에 밟히는 낙엽의 마른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어찌 성한 몸으로 피멍 든 등을 밟으려 하나. 산행 때마다 나무뿌리 밟지 말라고 당부하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등산길에 드러 나무뿌리를 밟는 모습에, 생명에 가하는 야만행위라고 펄쩍 뜁니다.나뭇잎이 돋아날 때의 향긋함, 우거진 수풀을 제초할 때 나는 알싸한 풀 향기, 쌓인 시든 잎에서 풍기는 농익은 낙엽의 향은 얼마나 코끝을 홀리고 벌렁거리게 하던가. 푸른 잎 단풍으로, 낙엽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 가슴에 위안을 주던 잎새의 생은 그래서 경건하기조차 합니다. 김동길 박사가 이런 말을 했지요.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모든 것이 이해될 줄 알았는데, 실은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더라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걸 느낍니다. 넓은 길보다는 호젓한 오솔길이 좋고,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좋습니다. 살가움보다 무던함에 마음이 가고, 질러가는 것보다 에둘러 돌아가는 굽잇길이 즐거움을 줍니다. 시든다는 것은, 힘줄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것은, 한 생을 휘돌아 나가는 생명들의 마지막 미사입니다. 시들어 마른 맨몸을 땅에 뉘이고 상처를 묻는, 숙연한 의례입니다. 길을 나서면 만나는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하찮은 마른 낙엽이 내게 죽비를 들이댈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지난 1년 삶을 털어서 슬픔은 슬픔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사위어 땅에 묻어야겠습니다. 미움도, 아픔도, 미련도 모두.그리고 다시 울고 웃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휘감고 돌아가면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나도 이런 변화를 맞습니다. 얼굴도, 생각도, 마음도, 모두가 다…. 시인 친구가 일러주더군요.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주머니에 편지가 그냥 있으면, 가을이 맞다고…. 가을 건망증은 다람쥐가 더합니다. 애써 도토리를 땅에 묻고는 잊으니까요. 세상뿐 아니라, 세월도 헐거워 보이는 12월의 시작입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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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1
  • 원했지만, 탕진한 사랑
    12월 8일은 비틀스의 아이콘 존 레넌의 사후 40주기가 된 날입니다. 매년 이맘 때, 추모 인파로 붐볐어야 할 뉴욕 센트럴파크의 레넌 추모공원엔 코로나19 때문에 사후 가장 쓸쓸한 추모회가 되었더군요. 비틀스는 젊은 날 세기의 우상이었지요. 레넌이 요노요코에 빠져 밴드를 위태롭게 할 때 그녀가 참 밉상이었는데, 흐르는 세월속에서 고등어 푸른 등처럼 선명한 레넌의 진실된 사랑의 언어를 발견합니다. “매일 신께 감사해. 운명이 우리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요노요코 널 만나기 위해서고, 내가 어른이 된 것은 너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어.” 만인의 사랑을 받고도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던 남자. 두 사람의 운명은 레넌이 그녀의 그림과 만나면서 시작되었지요. 사이가 깊어지면서 레넌은 비틀스와 멀어지고 해체가 선언되자 모든 비난이 그녀를 향했습니다. 음악잡지 커버 사진을 찍는 날, 레넌이 말합니다.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그 유명한 ‘사랑의 포즈’를 취했지요.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아도 함께 꾸는 꿈은현실이다.”라는 명구를 남기면서. 그것이 마지막임을 몰랐을까. 그날 밤 레넌은 집으로 가던 중 그의 광팬 체프만이 쏜 총에 최후를 맞지요. 그러고 40년, 올해 88세의 요노요코는 “난 지금도 그를 잊을 수 없단다”며 두 아들에게 연서를 썼다고해요. 12월엔 문득 살아나는 기억들이 많아요. 젊은 시절, 매년 네 친구 가정이 함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뮤지칼을 보던 기억이 아스라이 살아납니다. 당시 ‘호두까기 인형’처럼 12월 공연으로 빠지지 않던 것이 비련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빠담 빠담 빠담’입니다. 매번 피아프 역을 맡은 윤복희가 피를 토하듯 열창할 때, 뭉클하던 기억이 따스합니다. 거리의 노래 소녀 피아프가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사장 르프레의 눈에 띤 건 행운이었지요. 무명의 그녀에게 스타 탄생의 변주곡이 울립니다.당대 유명한 사교모임에서 펑크 난 가수를 대신하면서죠. 그러나 그것이 그녀 운명의 서곡일 줄은 몰랐어요. 르프레를 사랑하면서 사랑에 눈 뜨지만 남자의 돌연사로 물거품이 되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삶의 좌절을 곱씹던 그녀는 배우 이브몽땅을 만나 구원되는 듯했어요. 그녀의 인생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바람둥이 이브몽땅은 오래 가지 않아 그녀를 떠납니다. 깊은 시름에 알콜로 위안 받던 그녀에게 마지막 구원자로 등판한 이가 세계 미들급 챔피언 복서 마르셀입니다. 그녀는 모든 걸 바쳐 세기의 로맨스를 불태우지만, 운명은 마르셀까지 교통사고로 앗아가죠. 기자가 묻고 답해요. “죽음이 두렵나요?” “외로움 만큼은 아니에요.” 죽음보다 무서웠던 외로움을 술과 모르핀으로 달래던피아프. 결국 47세에 비운의 삶을 마칩니다. 피아프 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비련의 여인이 마릴린 먼로입니다. 20세기최고의 섹스 심볼이 된 먼로는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어머니를 정신병으로 잃는 극한 환경속에 성장했어요. 모든 남성을 열광시키며 한 해 30개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던 먼로는 굶어죽지 않고자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유명 야구선수와 두 번째 결혼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먼로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주목 받는 동시에 골빈 여자란 소리도 함께 들었지요. “난 잠자리에서 샤넬5 이외엔 아무 것도 입지 않아요.” 이 말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숨 막혀 했던 그녀의 저항적 음유가 깔렸습니다. 행복을 희구했던 먼로는 유명 극작가와 세 번째 결혼에 성공하나 그토록 갖고자 한 아기를 유산하고 그 충격에 다시 이혼합니다. 어딜가도 환호가 넘쳐나고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만 모두 섹스 어필뿐이었어요. 극도의 신경쇠약과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먼로.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중 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삶은 원했던 아이도, 남편도, 행복도 거머쥐지 못하고 의문사로 생을 마칩니다. 습도, 온도, 햇빛 같은 평범한 일상을 못 누리고 주어진 제몫의 사랑마저 탕진하고 만 사람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그 속을 모르니 운명이라고 돌릴 수밖에요. 세월과 운명은 진정 거스를 수 없는 걸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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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7
  • 나이 듦에 대하여
    왜 사람에게는 시든다는 말 대신 늙는다는 말을 쓸까. 나무도 꽃들도 다 시들어버린다면서 사람은 왜 세상을 뜬다고 할까. 무심코 흘려보냈던 말들이 잔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언젠가부터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몸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갑자기 눈귀가 밝아질 리도 없을 텐데... 살아온 날들로 많은 생각이 기울면서 젖는 현상일 것이다. 너무 인생을 무심히 살아왔다는,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거나, 회한 아니면 후회일 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걸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앞세워 살지는 않았는지, 인생이란 산허리를 내려오다가 문득 무심히 지나친 많은 일들이 잠들지 못하고 부스스 눈을 뜨곤 한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나를 부르고 찾기도 했을 텐데…. 그때 나는 보지 못했고 응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 듦이 현실이 된 나를 용하게 기억하고 불러 세운다. 석양의 그림자 같은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허상을 잡으려고 때 묻히고 얼룩진 나를 말이다. 시듦으로는 그것을 알리 없다. 오직 나이 듦으로 아는 진리이다. 이는 늙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음유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과 달리 주고받는 것이 다르고, 떠남과 만남에도 유별함이 생기니까. 이생이 허망할수록 내생에 기대고 싶고, 병들어 건강을 다치면 무심했던 내 몸의 소중함을 깨치는 이치와 같다. 보는 눈이 흐려지면 듣는 귀라도 쌩쌩했으면 좋으련만, 귀마저 예전 같지 않다. 돌아보면 살아온 지난 날들이 영특하지 못했고 좀은 미련스러웠다. 눈은 침침해졌다며 수술하고,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고, 건강 보조식품까지 챙겨 들면서, 실로 귀중한 것이 귀라는 것은 잘 몰랐다. 눈은 흐려져도 살 수 있지만, 귀가 어두워지면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을…. 시력을 잃으면 청력이 강해지듯 미움을 버리면 커지는 것도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비감해지고 미움과 원망이 커진다. 소유는 머리에 망념을 부르기 쉽다. 아직도 채울 것이 남은 사람은 부족함에 갈증이 남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마음에 족함을 갖게 된다. 옛 문장에 같은 것을 갖고도 ‘팔여(八餘?8개가 남음)’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구는 ‘팔부족(八不足)’ 이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기준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세우는 것이다. 나이 듦이 시듦보다 차원이 다른 것은 긴 세월을 살며 경험하고 축적한 내 인생의 스펙이 내 기준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푸르던 세월이 사위어 가고 있다. 생명의 경이에 눈 떴던 봄이 이울더니, 노동의 보람을 주던 여름이 오가고, 그 자리로 목마른 가을이 물들고, 그마저 잠깐, 어느새 낙엽귀근(落葉歸根)을 가늠해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굽은 등 너머 노을 진 서녘에서 부엉이가 울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이 듦이란, 떠난 것에 미련두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하지 말고, 마음에 찌든 미움이나 원망은 관용하고 화해할 시기임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별난 인생 있나?” “나도 잘 한 게 없네 미안하네.” 고까웠던 일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곰삭힌 감정은 다 흐르는 세월에 씻어내고 텅 빈 마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그곳에 명상의 시간으로 충만하자. 나이 듦이란, 비천한 인생의 한계를 알고 참회와 감사로 채우는 시간이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눈 뜨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때이다.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이만하면 잘 살았다 감사하다.” 마음에 평강이 깃든다. 무한한 성찰과 감사 뒤로 하늘의 자비와 은총이 내린다. 태양빛으로 짱짱한 한낮도 아름다웠지만, 낙조가 들 때의 고혹함도 매력적이다. 생의 어느 한 곳 의미가 없는 과정이 있을까. 해가 많이 기울었다. 촘촘하던 시간도 그만큼 헐거워졌다. 동네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깊고 서늘해졌다. 누가 노래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남은 세월을 배웅해야 하리라. -소설가/ daumcafe/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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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3
  • 그때 왜 그랬어요
    코로나로 격리를 당할 때처럼 맹랑하고 황당한 적이 없었다. 2년 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강제당하면서 느낀 감정이 그랬다. 크게 아프지도 않은 몸을 생으로 묶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지난날 나도 꽤나 헤매고 살았다. 본래 인간은 헤매는 것이라지만, 헤매도 방향을 잡아 제대로 헤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많았다. 후회되는 일들은 모조리 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실수를 할까 봐 포기하고, 실패할까 봐 망설였고, 그러다 때를 놓치기도 했다. 가족 부양이란 책임 때문에 여건이 받혀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인생을 한 걸음씩 확실히 딛고 나갔어야 했는데, 어느 날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어 돌아보니 여러 풍경이 엇갈려 보였다. 내가 몰랐던 것, 간과했던 것, 알고도 못한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생살처럼 차오를까? 후회감이 고요한 마음을 휘저었다. “그땐 그랬었지.”, “그래, 그런 적도 있고.” “그땐 천둥벌거숭이일 때였으니까….” 까맣게 잊힌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풀려 돌아갔다. 나 홀로 집에 있던 그날, 심심파적으로 떠오르는 후회스러운 일들을 적어보았다. 두어 시간 동안 떠올린 것이 서른 개가 넘었다. 미래와 연관된 일이 열넷으로 가장 많았고, 주택문제가 일곱으로 뒤를 따랐다. 나머지도 대부분 사람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름 명분이야 다 있지만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길을 잘못 들더라도 시도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완벽하게 하려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헤매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2년 반을 맹하게 소진하고 지난여름, 부산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해운대와 자갈치 시장을 들려 저녁을 먹으면서 긴 시간을 친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져 호텔로 향하다 밤바다에 흐르는 네온 불빛을 보았다. 바다 건너 영도 쪽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불빛에 이끌려 시장 앞 광장에서 빛이 흐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밤물결 위로 찰랑이는 저 불빛…. 영도 앞바다에 떠있는 것은 일곱 자로 된 한 문장이었다. ‘그때 왜 그랬어요.’ 영롱하고 명징한 문장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자력에 끌리듯 마음이 도리질을 했다. 수면 아래 깊은 곳에 묻고 봉인해 둔 것들이 들썩였다. 섣불리 물에 손을 뻗었다가 파도를 일으킬까 봐 후회는 후회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묻어두었는데, 문장이 내뿜는 파장에 회한의 그림자가 영도의 불빛을 타고 흘렀다.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 “그때 왜 그러셨어요?” “그전엔 안 그랬잖아?” 아내가 묻고, 아들이 묻고,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친구가 물어왔다. 해운대를 다녀간 사람마다 저 물음 앞에 섰으리라. 떠난 사람에 대해, 실패한 일에 대해, 깨진 우정에 대해, 누구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자식을 떠올리고, 먼저 떠난 아내를 생각하면서 무수한 상념으로 갈래를 쳤겠지. 어느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를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로 표현했다. 그날 밤 나는 이 세 가지 슬픈 대답을 번갈아 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스러운 것들이 이 셋과 연결돼 있어서였다. 인생을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회한은 남는다. 굳이 성공한 삶을 따진다면, ‘때를 지켜 잘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어느 때를 지나는 지를 알고 그때를 자기 다움으로 잘 살아내는 것. 꽃이 때를 찾아 피듯이, 때를 지켜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모든 후회나 회한은 때를 잊거나 지키지 못한 데서 시작된다. 성경 말씀처럼 심을 때와 거둘 때, 세울 때와 허물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가 있다 했듯이. 이 시대의 아픔은 모든 세대가 자기 때를 지켜 자기다움으로 살지 못하는 데 있다. 젊은이가 꿈을 상실하고 세상 눈치나 슬슬 본다거나, 장년은 장년다움을 깨치지 못하고 박약하거나 맹종으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뿐인 때와 기회를 훅 날리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깃들 곳이 없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잘 익어간다는 것이고, 잘 익는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누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은유했다. 옻칠은 더할수록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종종 허무감에 젖을 때가 있다. 이룬 것이 없으면 허망한 생각이 더 빈번해지고, 마땅히 할 일까지 없으면 삶이 쓸쓸하고 우울하다. 이렇게 마음에 그늘이 들기 시작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도 찾아든다. 노년의 생은 이런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생각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잊혔던 것들이 살아나면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든 대로 때가 있고 삶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 내가 주인이라는 행세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더 지치고 고달파진다. 세상의 주인 된 삶은 후대에 내주고 나는 그들을 돕는 수단이기를 자원하거나,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나서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의 보람을 나에게서 찾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가 되어 줄 때, 삶의 기쁨과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부산 밤바다에서 일렁이던 그 문장. 진짜 내가 그때는 왜 그랬을까? 채워지지 않는 일상의 공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흔들려 보시라. 비린내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늙은 거리악사가 연주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애절한 선율을 들으면서…. 어둠이 깔리는 남포동 밤바다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부산이 주는 낭만이다.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을 이들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되고, 원망과 미움을 키운 사람들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영국의 철인 데이비드 흄의 말처럼 ‘사물의 가치는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바다를 떠날 때쯤 긍정적이고 희망찬 문장 하나쯤 건질 수도 있으리.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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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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