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손마디에 작은 가시가 박히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빼내려고 손톱으로 쥐 뜯어보지만 쉽지가 않다. 작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이 가시의 속성이다. 성서에 나오는 바울은 기독교사에 빛난 인물이다. 이방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안고 죽기까지 기독교를 세계에 퍼뜨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었고, 끝까지 이를 외면하셨다. 학자들은 그 가시를 간질로 주목하고 있다. 바울은 오랜 기간 그 가시를 위해 기도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발작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주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결코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서.

주님과 바울의 대화를 의역하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주여, 내게서 이 가시를 제하여 주소서.” 그런데 답은 ‘yes’ ‘no’가 아니라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 성경에 보면 세 번씩 구했다고 하는데 답은 같았다. 내 나름 주석을 달면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 ‘크도다’ ‘많도다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사람에게 이적을 베푸신 주님이 왜 사랑하는 제자의 기도를 세 번씩 거절했을까. 한 때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후로 바울은 더 이상 간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교만하지 않게, 자고 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사랑의 가시임을 안 것이다. 가시의 삶은 아프지만, 그를 통해 연약한 인간인 나를 돌아봄으로 인생을 실패하지 않게 하려는 주의 은총임을 깨달은 것이다.

 

오래전 서울 명일동에서 생긴 일이다. 20대 처녀가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40대 중년 남자와 열애를 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전처가 난 초등생 1학년 아이도 있는데. 친정 부모마저 참석지 않은 결혼식을 올리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부모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내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이의 좋은 엄마가 되는 길뿐이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그 자리를 찾고자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노력하면 한 만큼 아이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학교에서 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부터 잠갔다. 밥 먹을 때만 살짝 나와 후딱 먹고 제방에 들어가면 끝이었다. 마침내는 자폐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울기도 하고, 인내도 해보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의 존재가 손톱 밑 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다. 뽑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거슬렀다. "저 아이만 없으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어쩌다 한 번 스친 생각은 잊을만하면 꼬리를 물고 나타나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초겨울 어느 휴일 새벽녘,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안개가 자욱한 이른 시각에 새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한강 둔치로 나와 수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새엄마가 걸음을 멈추더니, 안개 낀 사방을 돌아보고는 갑자기 아이를 강으로 떠밀었다. 그 순간 어디서 보았는지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다.

 

이 사건은 미수로 끝났지만,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비정한 새엄마의 기사는 밤 9시 뉴스 톱으로 올랐고,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기사로 장식되었다. 당사자인 아이와 새엄마, 아빠까지 일가족 모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후유로 세 가족은 용인 청량리 · 장흥 정신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의 종말을 맞았다. 새엄마는 아이란 가시를 뽑으려다 자신은 물론 한 가정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 이왕 모질게 결심한 일이니 좀 더 인내했더라면, 좀 더 사랑으로 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오래오래 남긴 사건이었다.

 

허남진은 프랑스 월드컵에서 축구공 묘기로 전 세계 축구팬을 감동시킨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무려 18시간 11분을 계속 축구공을 차올려 세계 기네스에 이름을 올렸다. 이마로 공을 쳐 올리며 물과 이온음료, 바나나 등을 받아서 먹었고, 생리도 선 채로 해결하면서 세계기록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의 인생역정도 눈길을 모았다. 어려서부터 축구선수로 제2의 차범근을 꿈꾸었다가 고교 선수 시절 큰 부상을 입으면서 모든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졸업 후는 공사장으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떠돌며 인생을 비관했다.

 

자포자기한 삶으로 그렇게 몸을 마구 굴리다가 어느 날 내 젊음을 이렇게 끝내야 하나?”라는 자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각성은 했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세울 배경도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다시금 절망의 낭떠러지 위로 자신을 밀어 올리다가 생각이 스쳤다.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그걸 살려봐!’ 그제야 비로소 축구공을 가지고 묘기를 부려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내가 잘하는 축구공 묘기를 살려보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살려 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그는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축구공을 놓지 않고 살았다. 인생의 목표와 꿈이 함께 살아났다. 꿈을 떠올릴 때마다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잠을 잘 때에도 축구공을 가슴에 품고 잤다. 그 결과 축구공 묘기로 세계를 누비는 민간 외교관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수 억 명이 시청한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시간에 펼쳐진 허남진의 축구공 묘기는 한순간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2000년에는 또 다른 도전으로 축구공 헤딩 세계기록(7:24:54)을 세워 축구공 전신 컨트롤 세계기록과 함께 두 개의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을 장식했다.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소아마비 젊은이가 정규 레이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는 접수를 망설이는 주최 측을 설득해 꿈의 뉴욕 마라톤대회 출발대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주최 측도 중도에 기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몸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 쓰러지지 않고 반환점을 돌았다.

 

선두를 중심으로 비추었던 중계 카메라가 선두와 꼴찌의 그를 번갈아 비추기 시작했다. 연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주자들이 다 골인했는데도 TV 카메라는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꼴찌로 들어오는 소아마비 주자의 감격적인 골인 장면을 잡았고, 이를 지켜본 전 미국인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취재진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에게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을 만큼 탈진한 그에게 기자들이 소감 한마디만!’을 주문하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격정의 한마디가 미국 시민들 가슴에 전율을 일으켰다. “내게 건강한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큼지막한 인터뷰 사진과 함께 그의 기사를 실었다. 뉴스의 헤드라인도 그의 말을 따옴표 안에 넣어 독자들에게 전달해 감동의 파장을 높였다.

 

누구나 삶에, 가시가 있다. 밖으로 드러난 가시도 있지만 자기만의 가슴속 가시도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시에 집착하다가 자멸하고, 비하하다 절망하고, 그것을 빼내려다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서의 바울이나 허남진, 소아마비 마라톤 주자처럼 가시를 끌어안고 살아 승리한 인물도 많이 있다.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사시면서 유난히 팔자를 강조하셨던 외할아버지. 여기서 팔자는 체념일까, 수긍일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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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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