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강산은 바꾸기 쉽지만, 본성은 고치기 힘들다(江山易改 本性難改)’라는 문장이 있다. 나이 들수록 본성이 잇몸처럼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송곳처럼 뾰족해지는 경우를 지적하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일렀을 때, 그의 친구들이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자신을 잘 아는가?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나도 모른다라고 운을 뗀 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안다라고 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다. 존중받는 인격과 성품을 만들어가는 출발대가 되기 때문이다. 책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은 무릇 다음 다섯 가지 를 잘 먹어야 한다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공감한 적이 있다.

?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 물을 잘 마셔야 하고,

?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하고,

? 마음을 잘 먹어야 하고,

? 나이를 잘 먹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삶의 비결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존중받는 삶을 사는 길이기도 하겠다. 이 다섯 가운데 음식, , 공기는 일상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마음나이에 관해서는 경험상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 인간의 본성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의 수고로 될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문제는 생의 보람을 찾아 나설 때 바뀔 수 있다. 그것이 학문이 됐든 수양이 됐든 봉사가 됐든.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면,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생의 보람을 찾았느냐?’라고. 많은 사람이 쉽게 답을 내지 못하고 머뭇대거나 자신 없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나이가 든 사람의 공통점은 시야가 라는 문제로 좁혀든다는데 있다. 몸은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나고, 사는 맛이 예전 같지 않다. 이룬 것이 변변하지 못하면 허망한 생각이 들고, 마땅히 행할 일이 없으면 삶이 공허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 소리로 시끌벅적했던 집안은 자식들이 제 살림을 꾸려 나간 뒤 적막강산이 되었다. 생이 쓸쓸해지고, 깜빡거리는 기억력을 탓하다 치매라는 울렁증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면서 문득 찾아오는 존재론적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내세가 있긴 한 건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이 생을 바라보며 허무감을 느낄 때, 인생의 아픔이나 좌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동료가 되고 벗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몰두하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로 나서는 데 있다.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로 살아내는 것만큼 인생을 보람차고 아름답게 사는 길이 없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으로 대접받기를 원할 게 아니라, 연륜으로 존경을 받는 어른이 돼야 한다.

 

나이는 해가 바뀔 때마다 거듭되지만,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비바람 삭풍 한설을 이겨야 만들어진다. “스무 살의 얼굴은 당신의 얼굴이고, 예순 살의 얼굴은 당신의 공적이다라고 패션 디자이너 샤넬이 적절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어른이 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도 다루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향노루 이야기가 있다. 어느 숲 속에 살던 사향노루가 코 끝에 와닿는 향기를 맡고 황홀감을 느꼈다. “나를 사로잡는 이 향기의 정체가 무엇이지? 내가 꼭 찾아내고 말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사향 노루는 마침내 그 향기의 진원을 찾아 나섰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를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는 때에도 쉬지 않았다. 몸이 지칠수록 향기의 유혹은 더욱 강렬해졌다.

 

하루는 절벽 끝에서 코끝을 맴도는 향기를 느꼈다. “이 절벽 밑에 있는 것이 틀림없겠구나.” 사향 노루는 희망에 들떠 향기가 나는 험한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을 헛디디고 수십 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부러졌다. 사향노루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때 사향노루가 쓰러져 누운 자리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죽는 순간까지 향이 자신의 뿔에서 나는 줄을 몰랐던 사향노루. 슬프고 안타까운 이 사연은 한 사슴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우리 인생,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찾으러 어디에 가 있는가? 나 자신에 매몰되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들에게 나눠줄 아름다운 사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위태한 절벽을 방황하는 사향노루가 된 것은 아닌지.

 

나를 떠나 새로운 것을 찾고, 누군가를 통해 행복과 사랑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나야 말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끝내 비명 횡사하는 사향노루가 아니겠는가. ‘진정한 가치는 작은 결함에 나온다라고 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인데 한 보석상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쓴 대사다.

 

때로는 내가 부끄러워했던 그 흠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지하에서 채굴된 가공되지 않은 원석들이다. 원석을 오랜 시간 깎고 다듬고 디자인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원석엔 저마다 흠이 있는 것이니 그것이 부끄러움이 될 수는 없다.

 

소크라테스 말처럼, 우선은 나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고, 다음은 이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이 사향노루가 갈망했던 향기를 찾아가는 첫걸음이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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