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인류 최초의 고대 문명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인더스 강, 황하 유역 등 큰 강 유역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4대 문명은 모두 큰 강을 끼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가 온화하고 농업발달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풍부한 물과 집약적인 농업을 바탕으로 꽃피웠던 문명은 점진적으로 쇠퇴하게 되는데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고 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 갠지스강 유역, 메소포타미아 유역과 나일강 유역의 찬란했던 문화가 지금은 모두 모래 속에 묻혀 있다. 세계 최고의 문명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숲을 파괴하고 경작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결과 붕괴되는 운명을 겪었다.

 

나일강의 범람은 경작지에 매년 새로운 기름진 토양을 공급하는 축복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쏟아지는 빗물은 상류로부터 엄청난 양의 부식토를 하류로 운반하였다. 7년에 한번 정도 큰비가 내리면 강줄기가 바뀌어 이쪽저쪽 번갈아 가며 자연스런 윤작까지 가능하였다. 지중해의 수산물과 나일강 하구의 농산물을 기초로 풍부한 식량을 바탕으로 무역이 성행하여 부강한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일강 상류에 울창한 산림이 남아 있던 로마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나일강의 갈대 대신 남쪽 산림의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건설하기위해 주변의 나무를 베어 굵은 통나무를 깔고 돌을 밧줄로 묶어 운반하였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무게 1톤이 넘는 돌덩이를 230만개나 쌓아 만들었다. 때로는 수백 만 개의 돌덩이를 나일강 상류 850km지점에서 뗏목으로 운반하였다. 수백 년에 걸쳐 계속된 피라미드의 건설로 엄청난 면적의 산림이 사라졌다.

 

이집트인들은 로마와의 전쟁을 위하여 거대한 전함을 만들면서 나일강 하류의 숲을 전부 벌채하였다. 또한 로마와 그리스에 식량과 장작, 숯 등을 팔았는데, 특히 숯은 이익이 많이 남는 품목이었다.

 

로마와 교역한 300년 동안은 이집트 삼림의 수난기였다. 나일강을 따라 남부 오지의 산림까지 벌채하여 숯을 만들었고 오랫동안 숲을 파괴한 결과 풍수해가 계속되고 경작지는 사막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이집트의 귀중한 문화유적들은 모래 속에 묻히기 시작하였으며 기름진 경작지는 강물이 적어짐에 따라 염분이 증가하여 황무지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로마시대 이후 700여 년에 걸쳐 이집트는 지중해 연안을 제외하고 모든 국토가 모래 속에 묻히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달하였다. 이 지역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지역이지만 두 강의 상류지역인 터키 고원에는 큰비와 눈이 내렸다. 봄과 여름에는 눈 녹은 물과 강우로 인하여 강은 자주 범람하고 주변 경작지에 기름진 토양을 운반했다.

 

메소포타미야 사람들은 제방과 저수지, 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는데, 땅이 넓고 기름져서 문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북부 산림지대에 유목민족이 침입하여 산림을 개간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소와 양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홍수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결국에는 수십 미터의 점토 속에 도시문명이 묻히는 불행한 역사로 기록되게 되었다. 실제로 이라크의 우르에서 발견된 성전과 탑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부서지지 않은 원형상태로 발굴되었다. 그리고 레바논 산맥의 나무와 유프라테스 강변의 모든 버드나무를 벌채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고비 사막은 옛날에는 사막이 아닌 푸른 초원과 울창한 산림지대였다. 그러나 이 지역을 근거지로 침략을 계속하는 흉노족을 내쫓기 위하여 한나라 이후 200년 간 이 지역의 산림을 지속적으로 불태운 결과 사막이 되었다.

 

리비아의 사막지대도 2000년 전에는 울창한 산림지역이었으나 회교도인 사라젠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한 이후부터 산림을 베어내고 양과 소를 방목함에 따라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지구생태계에서 살아 숨 쉬는 숲이 없어진다면 결국 황폐해지거나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삼림 중 거의 80%가 없어졌다고 한다. 산림이 파괴되어 고대의 4대 문명발상지가 모래에 묻히는 비극과 같이 오늘날 어떤 재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인류가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이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구환경을 지켜 나가는 길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중엽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사람도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이 모든 생물들에게 적용되고 자연 환경이 변화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 간다는 사실이 화석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그래서 사람의 조상이 원숭이의 한 종류가 진화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최초의 인류는 약 300만 년 전에 남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한다. 1924년에 인류학자인 다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하여 연구한 결과 돌도끼를 가지고 사냥했으며 사냥한 짐승을 날로 먹고 동작이나 신음 소리로 자신의 뜻을 전하는 동물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약 100만 년 전부터 지구는 빙하 시대에 들어가 많은 생명들이 얼어 죽었고, 이때 나타난 인류가 호모 에렉투스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털가죽을 몸에 걸치게 되었고 비바람을 피하려고 나뭇잎으로 천막을 치기도 하고 동굴 속에서 살기도 했다.

 

한편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약 50만 년 전으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인류는 불을 피워 추위를 가시게 하고, 어둠을 환하게 밝혔으며,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다. 불에 익힌 음식은 연하고 맛있을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 되었고 모닥불을 피워서 맹수의 습격을 막을 수도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비록 지혜롭기는 했으나, 이들은 3만 5000년 전에 자취를 감춰 버려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약 10만 년 전에 현생 인류와 닮은 인류가 나타나 이들을 ‘생각하는 지혜인’이라고 하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약 5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신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인도네시아의 섬들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동북아에서 베링 해를 건너 북아메리카로 옮겨 갔다.

 

이 무렵부터 인류에게는 인종의 구분이 생겼으며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흑인종과 백인종, 황인종의 특징이 각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 인, 크로마뇽 인으로 구분된다. 네안데르탈 인은 두개골의 크기가 현대인과 비슷할 정도로 진화된 인류로서, 40만 년 전부터 20만 년 전까지 살았다. 이들은 수렵 생활을 하면서 종교 의식을 거행했었다.

 

크로마뇽인은 40만 년 전에서 1만 5000년 전까지 살았던 인류인데, 현대인과 큰 차이가 없다. 석기, 창, 활 등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가죽 털옷을 입었다. 이들은 수렵 생활을 하면서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매머드, 물소, 들소 따위의 동물 그림들을 동굴 벽에 그려 놓는 등의 예술 활동을 했다.

 

한편 인류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은 인류는 대부분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왔다는 게 공통된 견해이다. 즉 인류는 인류역사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기간을 아프리카 사바나 등의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왔으며, 이것이 인간의 고유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직립보행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사바나 숲에서 인류는 먼 거리를 보고 적과 위험요소를 미리 감지해야 했고 또한 나무의 열매를 채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바나에서 살아가면서 사냥과 공동생활을 해야 했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뇌의 크기가 커지게 되었다. 이런 사바나이론에 의하면 약 3백만 년 이상의 시간을 통해 우리 인류는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서서 걷고 멀리 바라보는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달될 수 있었다.

 

빙하 시대가 끝나고, 지구는 따뜻한 기후를 되찾자 매머드처럼 추위에 강한 동물들은 추운 북쪽으로 옮겨 가고, 따뜻한 지역에는 토끼처럼 작고 빠른 동물들이 나타났다. 작고 날쌘 동물을 잡는 데에 인류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쓰게 되었다. 또한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만들었으며, 어롱이나 작살도 사용하였다. 이 무렵 인류는 개를 길들이기 시작했고, 소나 양, 낙타, 닭 등도 길러 가축을 사육하는 유목민들이 탄생되었다,

 

이와 같이 한 곳에 정착해서 살게 되자, 인구가 늘어나 마을은 도시로 발전하면서 도시를 다스리는 왕과 도시를 지키는 군인,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도 생겨났다. 또한 말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도 만들어져 이것이 바로 고대 문명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고대문명들이 모두 기후변화에 따라서 모래에 묻혔다고 하니 인류가 아무리 자연을 지배한다고 해도 자연순환의 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는 한계성을 인식하게 된다. 어찌보면 지구생태계의 역사는 기후변화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니 세계 인류도 결국의 기후변화에 따라서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근, 홍수,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세계의 모든 지역, 대부분의 세대가 겪었던 보편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최근 인류가 현재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현상의 평균적인 상태 변화’라는 역사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먼 세로운 지구생태계의 역사라는 점에서 인류의 존망이 달린 생존문제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이해하고 지구생태계를 되살려 내는 세계 인류의 의무를 완수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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