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요즈음 뉴스를 보고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면 될 일을 양편으로 갈라치기를 해서 네가 오르냐? 내가 오르냐? 싸움을 하고 있다. 누가 잘못을 했는지 무엇이 옳은지 도무지 알수 없게 만든다. 결국 언론이 나서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조작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일에 앞장 서고 있으니 어떻게 나랏 일이 잘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언론은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보장시키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 진실된 것을 알려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무를 내팽개치고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사회 혼란의 가장 큰 주범이라는 부담을 지워야 할 것이다.

이론 혼란된 사회를 어떻게 극복하고 국민들이 서로 믿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공자의 논어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공자는 약소국가이었던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주나라가 세상을 통일하고 모든 지역을 나눠서 제후국가로 다스렸다. 주니리의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그 때 당시 유명한 강태공의 도움으로 전국을 여러 지역으로 나눠 제후를 임명하고 대리 통치를 하도록 하였다. 이는 처음에는 땅이 넓어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제후가 그들의 아들을 내세워 통치하게 됨으로써 중앙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었고 제후들은 전국 통일을 누가 할 것인지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춘추 전국시대를 열어나가게 되었다.

제후들은 혼란을 안정시켜 백성들을 토탄에서 구하여야 할 텐데를 이런 의무를 망각하고 모의 작당을 하여 전국통일을 꿈꾸는 사람들과 제휴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에 공자는 혼란된 나라를 안정시키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백성들을 토탄에서 구하고자 제후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노자나 장자와 같은 도가 사상가들은 혼란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아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지만 공자는 난세의 원인과 대책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를 연구하고 골몰한 끝에 결국 전통적인 예법인 인과 예라는 사실을 잃고 자기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인과 예를 가르쳐 세상을 바로잡고 태평성대를 누릴 수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공자는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쳤다. 어짊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에 부여된 본성이라고 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신하가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친구가 친구를 살피는 일도 바로 인에서 나온다고 여겼다.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 즉 어짊을 말하는 것이며 사람다움의 핵심내용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예()란 예절을 말하는 것으로 어른을 보면 인사를 올리고 친구를 보면 손을 내밀고 반가운 사람을 보면 웃으면서 대접하는 것이 예라고 했다. 예절이 무너지면 인간관계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아무리 가까운 친구일지라도 예를 꼭 갖춰야 인간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인간관계가 원만해져야 사회질서가 안정되며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된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삶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각자 맡은 일을 해나가면서 힘든 일은 돕고 좋은 일은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공자의 인과 예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을 무시하지 않고 지켜나가야 될 덕목으로 바로 이런 것들을 잃게 되면서 결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인과 예를 지켜 나갈 것을 널리 알려서 모든 사람들이 인과 예를 지켜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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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조 때 큰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이 모두 타버리고 인심이 흉흉해져 인조대왕은 베옷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로 하늘이 감동을 해서 굵은 빗방울을 내리기 시작하였고 만조 백관들과 백성들은 얼싸안고 비를 맞으면서 춤을 추면서 기뻐했다. 인조대왕도 함떼 춤을 추면서 기뻐했는데 그 때 어느 선비가 비가 오니까 황급히 갓끝을 붙잡고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달려갔다.

아니 고마운 비가 내리는데 이를 처마 끝으로 가서 이를 피하다니 고얀 놈이라고 인조 대왕은 화가 나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저 놈을 당장 잡아서 끌어내라신비는 졸지에 비를 피한 죄로 고역을 치루게 되었다.

네 이 놈 3년 동안 내리 가물어서 짐이 신하들과 베옷을 입고 지성으로 기우제를 올려 하늘이 감복해서 내린 비인데 어찌 이런 고마운 비를 피했는가? 당장 형틀에 묶고 주리를 틀도록 해라

이에 선비는 전하, 하늘이 감복해서 내린 비인데 어찌 저같이 비천한 몸이 맞을 수가 있겠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메마른 땅을 적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인 즉 그 선비의 말이 옳았다. 세상에 함부로 자기 판단이 옳다고 판단해서 상대방을 그 잣대로 평가하고 심판해서는 안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헤아리고 배려해야만 세상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마음을 언론기관이 나서서 방해하고 가짜뉴스와 사건을 은폐 조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으니 세상이 편할리 없는 일이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협조해 나갈 때 사회는 편안해지고 혼란이 안정을 되찾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독불장군을 비호하고 두둔하는 언론들의 행패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혼란된 사회를 보다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과 예를 갖추는 세상을 만들고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각지를 돌면서 제후들을 설득했던 공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과 예를 갖추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배려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인과 예를 갖추지 못하는 사람을 책망하고 바로 살 것을 권유하는 사회가 될 때 사회적 혼란은 극복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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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사회를 극복하려 했던 공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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