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정월 대보름 밤에 달빛 열차를 타고 옛적 그 시골 길에 내렸습니다. 코앞에 떠오른 휘영청 밝은 달과 별빛이 교교히 흐르는 곳. 온 천지가 몽환적인 고향에 말입니다.

 

대보름이 되면 화롯불로 피어나는 따스한 얼굴들이 있습니다. 달빛을 밟으며 이집 저집 밥을 얻으러 다닌 머리 큰 짱구’, 눈이 작은 졸려’,몸을 배배 꼬던 지렁이친구, 학교 운동장에서 달빛그네를 타던 여자 동창들... 다들 어디서 살까?

 

워얼얼얼얼들판 위로 솟은 보름달을 보고 우리 집 황구 워리가 길에 나와 짖기 시작합니다. 이를 받아 건너 마을 개들이 따라 짓고 동서사방 개 짖는 소리로 가득할 때, 밤의 서정은 말갛게 핀 숯불같이 따스합니다.

 

어른들은 그 소리가 청승맞다고 작대기를 휘두르지만 내겐 교회의 새벽 종소리처럼 아름답기만 했지요. 청량한 들판으로 개 짖는 소리가 퍼지고 반향 돼 돌아올 때 그 아득함과 아련함이 달빛에 실려 떠다닙니다.

 

보름달만 보면 짖던 워리.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달빛그네를 타고 이 밤에 출렁입니다. 워리에게 달은 두려움이었을까? 행여 그리움에 운 워리의 곡성은 아니었을까? 문득 워리가 그리워집니다.

 

달빛이 길어 올린 열의 아홉은 그리움입니다. 슬픔, 사랑, 이별 같은. 그리움은 운명처럼 차지게 따라붙어요. 인생 항로에서 잃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찾지 못한 것들의 갈망이 달빛 속에 숨고르기를 합니다.

 

떠나간 부모님이, 배우자가, 잃은 자식이 그렇고, 토라져 가버린 사랑이, 가슴 설레는 만남을 꿈꾸는 저마다 사연이 이 한밤 달빛에 충만합니다.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엔 세상 끝 그네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가는 줄에 생명을 걸고 벼랑을 오고가는 아찔한 그네를 탑니다. 삶과 죽음을 건너뛰는 희열을 느끼면서 나만의 고통도 함께 털어내고픈 야릇한 충동을 받겠지요.

 

나도 이 밤에 달빛이 풀어놓은 그네를 탑니다. 창공으로 내 몸이 솟구쳐 오를 때마다 속진을 씻는 개운함과 현기를 느낍니다. 뜰 위로 쌓이는 달빛 별빛을 더듬다 화롯불에 넣어둔 고구마를 잊은 그 밤의 기억이 아물거립니다.

 

뒤란의 댓잎 스치는 소리에 떠난 임이 오는 기척인가 싶어, 허망한 짓인 줄 알면서도 은근히 문을 열어보고, 뜨락에 내린 노란 달빛을 두 손으로 담아보기도 하고, 댓잎 스치는 곳으로 귀를 열어도 보지만 월광을 흔드는 바람소리뿐입니다.

 

오스스 온몸에 한기를 느낄 때, 은혜로운 달빛이 몰려와 한 자락 이불로 몸을 감싸줍니다. 사람은 가진 것을 잃은 후 새로운 것을 얻기도 해요. 시력을 잃었더니 청력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청력을 잃은 뒤 불후의 작품을 남긴 예술혼도 있습니다.

 

달은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죠. 보름에서 그믐으로 이지러졌다가 다시 둥근달로 되살아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경이 그 자체입니다. 비탄 속에 희망이 움트고, 절망의 벼랑에 선 이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 것도 보이지 않는 마음속 달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바둑 대결에서 인간을 이기는 세상일지라도, 여전히 달의 영역은 존재합니다. 사리와 조금이 갯벌을 만들고, 사람들에겐 끝 모를 동경과 사유를 주는 가치를 계수나무와 토끼로 덮기엔 한없이 부족하죠.

 

설령 달이 지구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도 달과 지구는 한 몸입니다. 지구와 달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이, 오늘도 지구가 흔들리지 않고 자전할 수 있게 잡아주는 힘은 오롯이

 

달의 몫이요 달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도 달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앞길이 막혀 방황할 때,

마음 둘 곳을 잃고 비틀거릴 때, 무엇이 나를 잡아줄까? 남편과 아내가,부모와 자식이, 아니면 친구나 또 다른 무엇이 있겠지요.

 

분명함은 어딘가에 나를 지탱시키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시에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힘이 될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 기대어 사는 존재.

서로 기원하며 사는 존재.

대보름 밤,

달빛그네를 타고 이렇게 외쳐 봐요.

내 달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달인가?

달빛 서정이 이에 답할 것입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 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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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그네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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