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어김없이 올해도 설날은 찾아왔고, 3대가 둘러 앉은 가족들 앞에 떡국 한 그릇씩이 놓였습니다. 떡국을 먹음으로 나도, 아들도, 손자들 모두 미뤄져 온 나이를 한 살씩 온전히 먹게 되었지요.

 

아이들은 손가락을 꼽으며 한 살 더 먹은 기쁨을 자축하기에 흥났고 아들 내외는 제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고, 아내는 올해로 끝날 60대를 반추합니다.

 

떡국을 먹을 때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는 젊음이 한창인 아들에게 떡국을 드시면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한 살 더 먹으면 한 살 더 어른스러워야 한다. 그때는 도덕 책에나 있을 공자님 말씀쯤으로 건너 들은 글귀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고, 먹은 나이를 생각하다 불현듯 자각이 듭니다. 부모님 생전엔 아들과 나이 차가 늘 똑같아서 두 분은 늘 어른이셨고 난 여린 아들였는데, 떠나신 뒤로는 매년 한 살씩 부모님 나이를 따라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던 어느 해 설, 갑자기 어머니 나이에 근접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어머니와 동갑이 되던 설날 아침에, 목이 잠겨 떡국 한 그릇을 먹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15년 아래셨던 어머니는 아들 사업이 힘든 것을 알고 파트타임으로 식당 주방 일을 나가셨습니다. 가족들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설날 어머니가 대학에 합격한 손자 세배를 기뻐 받으시고 1년치 등록금을 담은 봉투를 쥐어줄 때서야 그간 사정을 알게 되었지요. 아들 합격 소식에 기쁨도 잠시, 등록금 마련에 한숨이 나던 힘든 때였죠. 덕분에 아들은 대학에 들어갔으나, 그때 얻은 허리병과 낙상 사고가

겹치면서 어머니는 마지막 2년을 누워 고생만 하다 눈을 감으셨지요.

이후로 설이 오면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고, 손자도 할머니 사랑을 잊지 못했지요. 그런데, 그때 어머니보다 내 나이가 더 들었는데도 손자를 위해 그 헌신을 해낼 수 있을까? 여전히 물음이 생깁니다. 나는 여전히 여린 어머니의 아들일 뿐입니다.

 

올 설날 아침, 떡국 한 그릇을 비우면서 눈이 욱신 거려옴을 느꼈습니다. 태산 준령만큼이나 높아보이던 아버지의 그 나이가 된 자신을 알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보다 8년 아래였을 때, 고열로 쓰러진 아들을 살리려고 고희를 훌쩍 넘기신 분이 눈 쌓인 산길을 걸어 외삼촌 댁 약방을 찾아 떠나셨습니다.

 

아내만 어쩔 줄을 몰라했지요. 집에는 체온이 39도를 넘나드는 남편이 벌겋게 익어 있고, 눈구덩이에 약을 구하러 떠나신 시아버지는 자정이 되는데도 연락이 없으셨습니다.

가슴 조이던 새벽 두시, 눈을 뒤집어 쓰고 아버지가 약을 구해 가슴에 품고 오셨습니다.

 

폭설로 응급차마저 출동을 못할 때 쉰살이 넘은 아들을 구하려는 일심으로 늙으신 아버지가 눈이 덮인 20리 산길을 걸어 갔다가 오신 것입니다.

그 담력은 어디서 나온것이며,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느새 아들이 아버지의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스스로 그러한 헌신을 할 수 있을까? 되물으면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떡국을 먹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 한 살 나이를 먹으면 한 살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것.

아버지의 당부가 무엇을 뜻한 것인지 딱히 짚을 수는 없음에도 아들은 어느새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을 봅니다.

 

올 설날 아침에도, 떡국을 나누며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한 살 더 나이를 먹으면 한 살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그저 나이 먹으면 헛똑똑이가 된다고, 손자 손녀에게 당부했습니다.

아버지가 생시에 하시던 그 말법 그대로 써서.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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