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한때 좋은 영화를 보면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을 때가 있었죠소설을 읽고도 소설 속 주인공이 돼 상념에 잠기기도 합니다. 상상의 나래만으로 가슴 뛰고 얼굴 붉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나이 듦에 대한 조바심이 들면서 냉정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렸지요. 그 많던 동경과 상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연말이면 이렇다 할 내세울 것이 없는 날들을 돌아보며 애먼 나이를 탓합니다.

 

절반의 성공이란 대부분 구차한 변명입니다. 절반의 실패란 없으니까요사안 따라 대박도 터뜨리고 피박도 썼겠지만, 대부분 아슬아슬한 성공아슬아슬한 실패를 오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정보가 아슬아슬한 성공과 실패에 들어 있다는 것이죠그게 바로 나입니다. 아슬아슬한 패배, 아슬아슬한 성공은 아슬아슬 이란 같은 씨앗을 품고 있어서 언제나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뿐인 인생, 당연히 성공해야지요. 성공이란 무엇일까? 재력과 권력명예를 말하기도 하지만, 보다 확실한 것은 후회 없이 사는 것입니다후회가 남으면 이미 성공한 삶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자신을 괴롭혀 온 불안, 강박, 울분에 눌린 채 비분강개하고 좌절하고 현실 도피에 급급하다 보면, 진즉 나 자신과의 싸움은 뒤로 미뤄집니다.  그리고 엉뚱한 곳에다 기력을 소진하기 쉽지요.

 

삶은 헌신과 노력이 조합할 때 가장 빛납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20세기가 낳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연주가입니다. 그는 불행히도 군에서 부상을 입고 전역하면서 상당기간을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방황 끝에 자각한 것이 어린 시절 배워 둔 바이올린을 잡는 것이었어요그로부터 온 정성을 쏟아부어 세계적인 연주가로 명성을 얻습니다어느 날 젊은 음악도가 그의 연주에 감동하여 찾아왔어요. “제가 선생님 같이 연주할 수 있다면 막대한 유산도 포기하겠어요.”

 

그러자 이렇게 말해 줍니다. “오늘의 연주는 지금까지 나 자신을 바친 결과라네. 하지만 젊은이, 나는 자네가 음악을 위해 자신을 바칠 때 무엇을 위해 바치고자 하는지를 잊지 않길 바라네.”

 

한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만화가와 만났어요. 만화가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사인까지 해주자 흥분합니다. “이 멋진 그림을 어떻게 빨리 그려요?” 화가가 무릎을 접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해요. “얘야. 이 그림을 그릴 수 있기까지 30년이 걸렸단다”.

 

여름이면 건물 벽체를 덮은 담쟁이와 만납니다. 벽면을 녹색 잎으로 빼곡히 채우기까지 담쟁이의 처절한 떨림의 사투가 있습니다. 지지대를 오르는 나팔꽃, 벽을 타는 담쟁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놀라운 현상을 발견합니다.

 

혼신을 다해 암반을 오르는 등벽가처럼 다음 발판을 겨냥하고 무수히 몸을 떨다가 한 순간 벽을 잡고, 다시 호흡을 조정해 몸을 떨다 발판을 잡아요. 그 과정을 생각하면 담쟁이가 벽체를 덮기까지 얼마나 많은 떨림과 사력을 다했을까.

 

들판에 피는 들꽃도 한 송이 꽃을 피우려고 비바람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뿌리를 뻗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꽃피운 노력의 결과는 단순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자신을 바치는 헌신과 피나는 노력의 결정입니다.

 

선물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함은 물건의 값어치가 아닙니다. 나를 존중해 준다는 느낌이 좋아서죠. 값으로 치면 뇌물이 클 테지만 선물의 기쁨을 앞서지 못합니다. 숲에서 새가 노래하며 살 듯, 사람은 기쁨이 있어야 삽니다.

 

성공한 삶을 원한다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이타적인 보람 말입니다. 사람들의 욕망은 거개가 비슷해요. , 명예권력을 선망하고 남들에게 존중받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지닌 소망은 각기 다릅니다.

 

가치와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죠. 문제는 끝 모를 욕망입니다. 설령 누가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해도 기쁨은 잠시뿐. 다시 더 많은 걸 원하죠. 성에 차지 않으면 원망이 되고 원망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그러나 소망은 달라요. 소망이란 나만이 원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이뤄지면 이때의 기쁨과 감사는 오래오래 이어집니다세상에는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내 소망이 무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소망과 욕망을 구별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아요. 평소 간절히 원했지만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할 때, 연기처럼 사라지면 부질없는 욕망입니다부귀 명예 영화 같은 것. 죽을 사람에게는 천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소망은 끝까지 남아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더욱 간절함이 커지는 것이 소망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사람처럼.

 

누가 말했어요.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하다라고. 내가 목표하는 삶은 지금 어디를 향하여 떨고 있습니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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