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기 전, 전국 청소년 글짓기 심사를 끝내며 갖는 유감이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기려 유한재단이 해마다 5월이면 전국 초??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했다. 28년째를 맞았으니 연륜이나 규모면에서 대표적인 전국 규모의 백일장이다.

 

그해도 천여 명의 청소년이 아카시아 향이 진동하는 유한공고 교정에 모여 글제에 따라 글 향기를 뽐냈다. 공유하고 싶은 것은 내가 아버지라면이란 글제를 놓고 중학생들이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다. 글제를 택할 때 10대의 자녀들이 평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버지 상()’을 유추해 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글제를 내면서 혹시나했는데, 적지 않은 학생에게서 아버지의 이미지가 역시나인 것을 확인하고 말았다.

 

학생들은 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하다는데 불만이 컸다. “잘했네.” “수고했어.” 정감 없는 아버지의 말투에 아이들도 묻는 말에나 답하는 단답식 대화가 늘어남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칭찬이 있을 때도 그 뒤 따라오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 그건 잘했어. 그런데 넌말 나온 김에 한다면서 한숨까지 섞인 조언을 듣노라면 마음부터 움츠러든다고 했다.

 

아이들은 순수한 칭찬에 목말라했다. 감정의 표현이 없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무뚝뚝한 아버지, 어려운 아버지로 생각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원했다. 내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아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그러한 아빠를 기다린다. “이리 와 봐.” 식의 부름보다 격려의 부름이, 사랑의 부름이었으면 한다. “넌 왜 엄마를 통해서만 말하지?” 아버지의 불만도 이해되지만 실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평소 대화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아이들은 생각만큼 철부지가 아니었다
. 속에 넣고 말을 안 할 뿐,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는데도 다가서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역지사지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버이날, 친구들과 나눈 에피소드이다. 어버이날이라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가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 아버지의 첫마디는 늘 이러셨다.

 

그래 나다. 기다려 엄마 바꿔줄게아들이 서둘러 아버지 그게 아니고요.”라고 말하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 벌써 돈 떨어졌냐?” 그래도 아들이 용기를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아버지의 대답은 더 파격이셨다. “뚱딴지같은 녀석! 여보 전화받아.”

 

말투가 그러셨다. 우리는 옛날 아버지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파안대소했다. 마음은 아니면서 말씀은 참 멋없게 하셨다고. 이 또한 유교문화의 영향 탓이리라. 따지고 보면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자식을 낳아 키운 아들이 지금의 아빠들이다. 대대로 물려온 언어의 관습이 우리 세대를 거치면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직도 자녀들과 단답식 대화를 나누는 아빠들이 많은 모양이다.

 

대화도 훈련이다. 훈련되지 않으면 쉽게 끊기고 단절되기 십상이다. 대화 부족이나 불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녀들의 정서적 불만으로 이어진다. 커가면서 멀어지는 아버지,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는 현대사회가 만든 자화상일지 모른다.

피곤에 절어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처럼 나가는 아버지. 가뜩이나 어려워진 자영업자 아버지. 그 침통함이 무의식 중에 내비친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이미지 탓에 접근이 쉽지 않다는 아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크면서 아버지가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자녀와의 대화를 엄마가 독점할 때, 혼자 떨어져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는 딸도 있었다. “나 요즘 힘들다라고 엄마에게 말할 때는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도 느껴졌단다. 세상이 바뀐 줄 알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외로운 존재인가.


사람은 태어난 후
아빠로 부르며 성장기를 보내다 때가 되면 '아버지'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다. 멀리 이스라엘에서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고 해 놀랐다. 친구 목사님이 전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에 갔는데, 뒤에서 누가 아빠하고 부르더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현지의 아이가 제 아빠를 부르는 소리였다.

 

같은 뜻의 어휘지만 '아빠''아버지'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아빠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고, 아버지는 역어인 헬라어. 아빠로 불리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무한책임을 지지만, 아버지로 부르는 아들은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뜻한다. 그런 역할 구분이 어휘에 담겼다. 자녀들에 대해 무한책임으로 모든 헌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지만, 어느 날이면 아버지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한다.

 

그 과정이 매끄럽고 아름다우려면 아버지가 자녀들과의 대화에 새로운 눈을 뜨고 다가가야 한다. “아버지가 미안하다. 그때 네 맘을 헤아리지 못해서.”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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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미안하다, 널 몰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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