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세계경제가 어렵다. 그리고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다. 이럴 때는 국가의 운명을 바꿔줄 구세주와도 같은 분이 나타나길 기도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가격은 6배나 상승하면서 전 세계 경제는 고물가의 덮에 걸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고금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수지 작자폭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데도 코로나 팬데믹은 3년이 지났는데 불구하고 아직도 풀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패권전쟁은 언제 해결될 것인지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적을 제고하기 위한 정쟁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다.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대해서도 양 진영은 강경하게 대치하면서 오로지 대장동 특검, 김건희 특검만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말만 옳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올해 1043.1절을 맞아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조국을 되찾게 만든 장본인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되새겨 보게 된다.

 

일제시대에 나라를 잃고 암울했던 그 시대에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과감하게 한몸을 던졌던 열사들을 되새겨 보게 된다.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과 그리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3분 의열사들의 묘소가 있다. 3의사 묘소 옆에 1기의 가묘가 있으니 그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

이봉창 의사는 대한애국단에 가입하여 상해에서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 암살계획을 세워 193218일 동경 사쿠라다 문에서 열병을 마치고 나오던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리고 윤봉길 의사는 1930년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해에 도착하여 김구 선생의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여 1932429일 상해 홍구 공원에서 천장절(일왕 생일)에 축하기념식에 참가한 일본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많은 요인들을 암살과 중상을 입혔다.

백정기 의사는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에 참가하고 일본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암살 친일파 숙청에 투신하여 항일운동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그는 1933년 홍구공원 육삼정연회에서 일본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실패하였다.

 

이런 의열사보다 앞서서 안중근 의사는 19091026,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초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자 초대 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32살의 나이에 대한독립군의 장군격인 참모 중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동양평화를 해치는 주범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단죄하는 것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불가피한 선택이라는그의 동양평화론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3.1 운동이라는 거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을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한국민의 당당함으로 보여주었다.

본래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 신자이면서 민족의 계몽사업을 중심으로 교육사업을 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만행은 두고 볼 수 없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후 의군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모친인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에 있는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을 감동시킨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라는 것이었다.

이런 의연하게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기리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있어 그의 죽음을 더욱 값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20111031,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안중근의 시복(諡福)을 추진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는 "안 의사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이라며, 안중근 의사가 "순교자"는 아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신앙 고백함으로써 의연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한 증거자"라고 밝혔다.

또한 염수정 주교는 안중근의 동양 평화 사상과 노력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으며 그분을 민족주의 관점에서만 평가되는 반쪽짜리 인간으로 만들지 않기를 당부한다

프랑스에서는 나라를 구한 잔 다크를 시성으로 모시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안중근 의사를 시성으로 모셔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온 국민들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갖은 탄압을 받던 시대, 이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대담하고 거대한 동양평화론을 내세워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하였던 그의 기개는 국가운명을 바뀌어 놓은 드높은 지도자의 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란 국가의 운명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를 위해서 과감하게 자신을 몸을 불사르고 국가운명을 바뀌어 놓을 수 있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라고 여겨진다.

3.1절에는 암울한 국가운명을 생각하면서 이를 구원해 줄 안중근과 같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모든 국민들이 갖고 있는 한결같은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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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겨 보아야 할 안중근 의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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