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아이가 피아노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었나 봐요. ‘코로나로 시작된

교습 중단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에 나름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전화를 끊고 난 아이 표정이 밝지 못해 엄마가 묻습니다.

 

뭐라시든?” “세상이 많이 아프데요. 문을 열 수가 없대요.” 뭐라, 세상이

아프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어? 어쩌면 우리가 처한 아픈 상황을 저리도 센스있게,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얼굴도 마음도 다 예쁠 것 같습니다.

사방에 모두 아픈 사람뿐입니다. 전철에도 거리에도 버스에도 성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신음하는 모습들입니다. 얼굴을 온통

붕대로 칭칭 감은 사람들이 타고 내립니다.

 

오늘 전철에서 입 코 양 볼을 덮은 마스크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모자까지 눌러 쓴 한 여성을 봤어요. 뚝 떨어진

외계인 같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 같기도 합니다.

 

앞자리 그 여성을 보다 갑자기 사람이 죽어 염할 때 모습이 떠올랐어요.

신체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틀어막는. 그러다 갑자기 저것도 패션이란

생각을 했어요.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서 올해는 어떤

 

패션이 또 등장할까?

몸이 아프면 말하는 것부터 귀찮죠. 말을 거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도

 

싫습니다. 간섭은 물론이고, 누구랑 눈 맞추고 싶지도 않아요. 세상 일에

눈 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멀리하고 싶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조카는 상가에 들릴 때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를

틀어막는 일부터 한대요. , 귀 다 막았으니 말 시키지 마세요.’ 무언의

사인입니다. 마스크가 갑갑은 해도 이런 심리적 방어벽을 치는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불편해 하는 세대가 늘어납니다. 낯선 사람이 불쑥 말을

걸어올 때, 피하고픈 충동부터 생기나 봅니다. 지인이 지하철에서 딸이

새로 사준 스마트 폰을 익히다가 옆 자리의 아가씨에게 물어보려고

이것 좀하는데, 벌떡 일어나 가버리더랍니다.

 

이 기막힌 상황에 황당해진 지인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세태

탓으로 자위합니다. SNS 소통이 워낙 대세이다보니 통화 공포증

(call phobia), 대화 공포증(talk phobia)을 부르나 봅니다.

 

나이 들면 사람도 비슷해집니다. 예전엔 외출할 때 시계부터 챙겼는데

어쩌다 놓고 나가면 종일 손목이 허전함을 느꼈지요. 지금은 마스크,

핸드폰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이어폰이 추가됐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사는 손녀에게 네게 이어폰은 어떤 존재냐?” 물었더니,

얘 없인 하루도 못 버티는 내 고막 절친이라네요.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은 불안불안하다는 게 또래들 생각이랍니다.

 

귀에 꽂혀 있지 않으면 불안을 키우는 이어폰. 주변을 둘러보세요.

출퇴근길 전철과 버스, 카페, 어딜가도 귀를 틀어막고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납니다. 전에는 예의를 차린다고 윗사람 앞에선 모자부터 벗었는데,

 

요즘엔 귀에서 이어폰을 뽑지요.

주변에 신경 안 쓰고 오롯이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 공부나 일할 때

구분 없이 낀다해요.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혼밥 혼술처럼

혼자일 때가 편하다는 생각이 소리도 골라듣겠다는 청각의 개인주의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가 장·노년층에도 보편적 가치로 확대됐습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탓할 바 아니나 더불어 사는 사람의

가치나 영역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 아파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사람이 사람 만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면 결혼은 더 기피할 테고, 대신

외로움을 나누려는 욕구는 엉뚱한 곳으로 분출할 수밖에요.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애완견이 반려견이 되고, 인공지능이 발전해

로봇이 사람의 고유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그러다 창의성, 감정, 기억까지 공유하는 날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과부대끼며 사느니 반려로봇과 살림을 차리는 그런 세상은 아닐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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