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밥은 먹고 잘 지내냐?’ 안부를 묻는 세상의 말 중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짧은 토막말에 인생사의 근본인 먹는 일과 건강까지 챙기고

있으니 한글은 위대하다.’ 찬사를 받을 만 합니다.

 

내 핸드폰 속 달력 칸에도 밥 먹는 약속이 최우선으로 저장 돼 있죠.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요? 잘 먹어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잘 먹을 수 있는 불가분의 고리는 우주적 성찰입니다.

 

하지만 쓰는 말에 따라 어감이 달라요. “제가 식사 한 번 모시겠습니다.”

격식을 차리기도 하지만 저랑 밥 한 번 먹어요라는 말이 한결 정겹고

친근감을 전합니다.

 

오래 전, 건강식이란 미명아래 사찰음식이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었어요.

마침 사찰음식 연구가인 선재스님을 만날 자리가 있어서 물어봤습니다.

불가에서 밥이란 무엇인지 편하게 물었는데 경전 공부를 시킵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에 아함경이라고 있어요. 경에 이르길

일체 제법은 식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

(食自在 法自在)’ 라고 했어요.”

 

불가에서도 밥은 귀한 존재입니다. 말을 빌리면 밥은 곧 음식이며 약

입니다. 사찰에 들려 관심 있게 살핀 사람은 알아요. 경내에 많은 식자재

식물이 자란다는 걸.

 

사찰 주변에 심어진 벚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등은 단순히 풍광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여기에 약효를 찾은 지혜가 있어요. 벚나무의 껍질을

진하게 달인 물은 기침 치료에 좋고, 속껍질 달인 물은 식중독에 잘

듣는다 하죠.

 

솔잎에 음식을 싸두면 쉽게 상하지 않고요, 은행나무 열매는 폐결핵을

예방할 뿐 아니라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 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공양(供養)’에는 여럿의 뜻이 담겼습니다. 부처 앞에

음식과 재물을 바치는 공양드림에는, 음식이나 의복 등을 이바지하고

웃어른을 모시는 일(부모공양), 하루 세끼 음식을 먹는 일(식공양)이 다

해당됩니다.

 

공양에는 수천 년을 이어오는 계율이 있습니다. 발우(그릇) 공양에는

다섯 공덕이 들어 있어요. 평등함(같이 먹고)과 청결함(각자 발우 사용),

절약(밥 한 톨), 공동(한 솥밥), 복덕정진(음식 만든 이의 은혜)이 그것입니다.

 

반대로 승려들이 금기시하는 것도 있어요. 육류와 어패류, 오신채가

이에 포함됩니다. 육류 어패류를 금기시함은 불성을 지닌 생명에

대한 자비심 때문입니다.

 

어쩌다 해탈하지 못하고 윤회하는 과정에서 부모로 만난다면 난감한

일이겠죠. 육류 섭취는 마음을 밖으로 치닫게 해 수양에 방해가 되어서

입니다. 맵고 쓰고 시고 쓴 것이 오신채의 특징인데, 냄새가 지혜를

방해하고 스님들 공부에 지장을 준다고 본 것입니다.

 

산에 짐승이 흔할 때는 육류나 오신채를 먹으면 냄새를 맡고 호랑이

같은 짐승이 내려온다는 경계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찰음식으로

차려나온 상차림을 보면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먹물 빛 의복을 지어 입는 스님들의 식생이 검소하다는 것은 상식인데

상차림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죠. 꽃을 붙여 부친 부꾸미만

해도 그래요. 찹쌀가루 반죽에 철 따라 꽃을 붙여 기름에 지진 화전이

내 눈엔 화려해 보입니다.

 

화려함이 부처님 뜻은 아니지 않느냐며 어깃장을 놓았더니 스님의 설명은반대로 갑니다.

예를 들어 볼 게요. 사찰의 단청을 보세요. 화려하지

않던가요? 화려함도 공양의 참뜻을 받들기 위한 방법입니다.”

 

부처님 공양음식도 결국 먹는 이는 대중입니다. 화려한 신심은 대중을

화려하게 대하는 겁니다. 부처님 오실 때 오색광영이 비쳤듯이 일상을

검소하게 사는 건 무소유의 실천이지만 궁극의 경지는 화려함이죠.”

 

나는 그날 마음에 남아 있던 의문 하나를 더 풀었습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 절에서 웬 빈대 얘기가

나오느냐고 묻자 웃기부터 합니다.

 

스님들이 즐겨 먹는 나물 중에 고소란 게 있습니다. 본 이름은 고수

지만, 고소하다해서 그리 불렸나 봐요. 이 나물 맛이 좀 비릿합니다.

하지만 먹다가 참맛을 알게 되면 빠지게 되죠. 그래서 빈대(줄기)까지

먹는다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ㅎㅎ~ 그래서 빈대가 남아나질 않았군요. 속뜻을 알고 나니 입가에 절로

고소(苦笑)가 돕니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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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고기 맛을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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