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나도 어릴 때는 팔다리가 성할 날이 없었다. 팔꿈치와 무릎, 정강이, 이마에 콧등까지 곳곳이 깨지고 멍이 들어 다녔다. 지금 같이 밴드나 연고가 없던 시절, 상처엔 그저 빨강약(머큐로크롬)’이 최고였다. 집집이 만병통치약처럼 비치한 구급약이었다. 피가 철철 나도 빨강약만 바르면 안심이 되었으니까. 저녁 무렵, 버스 정거장 앞을 지나다 한 광경을 보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가 퇴근하는 아빠를 부르면서 뛰어가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건 아이를 일으켜 세운 아빠의 말법이 엄마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괜찮아. 남자가 이런 걸로 우냐. 조심해. 알았지?” 아빠는 연방 알았지를 강조하는데 위로가 안 된 아이는 더 섧게 울었다. 같은 상황에서 엄마라면 어떻게 할까? 우선 아이부터 꼭 품에 안고 ?? 얼러줄 것이다. “놀랬지? 많이 아프겠다. 엄마가 봤어 피 안나.” 엄마는 계속 위로의 말을 건네며 등을 토닥여 준다. 아이는 점차 안정을 찾고 울음을 그치지 않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억인 듯하다. 겨울방학이 돼 부모님과 기차를 타고 외가로 가는데 무척이나 추운 날이었다. 그때는 객차가 화물차 개조 수준이라 난방은커녕 숭숭 찬바람이 들어왔다. 어린 내가 추워서 몸을 배배 꼬니까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셨다. “사내가 이 정도 추위를 못 이기면 어쩌려고. 이렇게 제자리에서 뛰어봐. 열이 나게.” 그리고 시범을 보이셨다. 이 모습을 말없이 보던 어머니가 다가와 당신의 버선을 벗어 내 발에 씌워 주시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이는 같은 것 같으면서 조금은 다른,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아이에게 엄마는 모든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다. 엄마만 옆에 있으면 세상 어디를 가도 두려울 게 없던 아이도 어느 나이가 되면 엄마가 야단을 쳐도 들은 척도 않는다. 말을 안 들어도 그런 마이동풍이 없다. 그래서 미운 몇 살이 생겼겠지만, 아이들은 아무리 말해도 같은 실수를 계속한다.

 

위험하다라고 소리쳐도 귓전으로 흘리니, 그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하다가 꼭 하는 말이 있다. “너 얼마나 다쳐야 정신 차릴래?” 아이들에게 그 말은 백 번 맞는다. 골백 번의 말보다 스스로 다쳐보면 바로 깨치기 때문이다. 몸으로 겪는 것만큼 효과가 확실한 것은 없다. 그래서 아동심리학자들은 큰 위험이 아니면 아이를 보호하려고 과잉 방어를 하지 말라고 이른다.

 

독일에서는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 때 안전만을 고집하지 않고 감당할 정도의 위험 요소를 고려한다고 한다. 떨어질 위험이 있는 놀이기구에 안전망 같은 장치를 느슨하게 해 두거나, 나무로 된 놀이기구도 매끄럽고 보기 좋게 하는데 치중하지 않는단다. 가끔은 가시에 찔려야 가시를 조심하게 되고, 한 번쯤 떨어져 봐야 본능적으로 안 떨어지는 법을 터득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 다쳐본 사람이 어른이 돼서 더 큰 위험을 피하게 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아이를 보호한다고 어른이 함께 있으면 되레 더 다칠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단다. 누군가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의식이 잠재되면 방심하는 심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심리는 성인들의 사회생활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상처 없이 배움이란 없다. 열 권의 책 보다 한 번의 경험이 최고의 산교육이다. 그러니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심까지 할 건 없는 것이, 우리들도 그렇게 자랐듯이 아이들도 아픔을 통해 깨달을 테니까. 음악가 정경화 씨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손가락 부상으로 쉬면서 배운 것이 인생은 원래 헤맨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헤맬 때는 그냥 헤매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후회를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회가 되는 일은 모조리 망설이다가 하지 않은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실수할까 봐 주저했던 것들 말이다.

 

그녀에게 헤맨다는 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거였지만 그러다 길을 잘못 들어 정신없이 헤맬 때도 있었다. 특히 악기를 다루면서 그랬단다. 내 머리가 원하는 것과 내 몸이 따라가는 속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지나치게 저자세로 살지는 않았는가 이따금 회의가 들더라고 했다. 그러다 손을 다쳐 못 움직이면서 이런 답을 얻었다. “완벽하게 하려고 망설이며 안 하는 것보다 헤매더라도 계속하는 게 낫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모든 상처에 통했던 빨강약처럼 최고의 스승은 경험이다. 굶어봐야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목이 타 봐야 물이 생명수임을 아는 것처럼. 죽음이 눈앞에 어른대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객이 아니고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깨친다. 주인처럼 살지 못하고 세상에 얹혀살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죽을 때라야 철이 든다는 말이 생겨난 걸까? 사람 사는 게 이처럼 어둑하고 엉성한 구석이 많다. 그럼에도 위안이 되는 건 오류 없는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본성이 헤매는 존재이니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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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빨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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