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은 이 나라의 근본이었습니다. 농사철이 돼 들판에 나가면 커다란 천에 이 글을 쓰고 지네발을 달은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었지요.

 

예로부터 천하의 사람들은 농업을 살아가는 큰 본으로 삼아 이를 귀히 여기고 장려했습니다. 이 불변의 진리를 신봉했던 사람들이 요즘 환생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을지로를 지나다가 한 빌딩 앞 직사각형의 돌에 새겨진 문구 하나를 보면서입니다. 을지로입구역 부근의 중소기업은행 빌딩 앞에 세워진 돌비석이 그것입니다.

 

기업인천하지대본’( 企業人天下之大本) 농업을 우대하고 상인을 천시하던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서열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문구입니다. 장사꾼의 높인 말인 상인도 아니고 기업인으로 쓰인 점도 이채롭습니다.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바뀐 지 불과 한 세대 만에 일어난 가치 전도인 셈이죠. 이제 우린 기업이 주도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 천하 대본이 된 세상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기업인·기업가로 불리는 명칭에는 장사꾼, 상인과 다른 품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익에 집착하는 이가 상인이라면, 기업가는 사익과 함께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말은 고상해도 사익과 공익은 쉽게 충돌할 수 있는 구조라, 양면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겉만 번지르하게 기업가로 행세하고, 내면은 사익을 좇는 이가 많아 지탄을 받기도 해요.

 

우리의 짧은 산업사에도 내게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로움을 주는 가치를 추구한 기업가가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짧은 생애를 살고도 참 기업인의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병철, 이건희, 정주영, 김우중 같은 글로벌 기업가 말고도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회장도 그런 분입니다.

 

광화문 중심에 위치한 교보문고에 들리면, 교보 창업주 고 신용호 회장을 떠올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금싸라기 땅에 웬 책방? 돈벌이도 시원찮을 텐데!“ 고개가 갸우뚱 해져요.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책방을 열어서 누구나 편하게 책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쉼을 갖고, 생각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교보문고의 쾌적한 시설은 세계 어느 책방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자랑스러운 공간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처럼 훌륭한 책방이 있어서 서울이란 도시의 품격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광화문의 또 하나의 명물인 교보 글판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죠 기업 홍보에 쓰면 딱 좋을 공간에, 지친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 넣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글판을 운영한 것입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에 가면 신용호의 유명한 어록을 볼 수 있어요. 가방끈이 짧아 늘 책에 대한 갈증을 풀고자 애썼던 그는 자신의 원과 한을 이타의 마음으로 실현했습니다. 결과물이 교보문고인 셈이죠.

 

그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 어려운 가정 형편에 폐병이 걸려 졸업도 못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고 ‘31000일 독서라는 계획을 세워 지식과 사유의 세계를 열어갔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에 감동하고, 카네기 자서전을 읽으면서 사업을 생각했고, ‘죄와 벌같은 세계명작을 읽고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보험, 교육, 도서, 문화사업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이러한 꿈에서 태동되었습니다.

그는 환갑이 된 나이에 심중에 품어온 꿈을 이룹니다. 1981년 서울 광화문에 교보빌딩을 완공하면서 가장 편리하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에 교보문고를 들였지요. 광화문 글판도 그의 아이디어 산물입니다. 신용호 회장이 이 땅을 떠난 지 18. 오늘도 교보문고에서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 익어가고, 서울 시민의 문화 갈증과 지적 욕구를 풀어줍니다.

참 기업인은 이런 사람이 아닐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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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근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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