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 ‘가족이상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 있을까 싶지만, 사회가 개인 중심의 늪에 빠지면서 이기적 생각이 일상을 지배합니다.

 

고통을 주려고 상대 가족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건 영화 속 얘기만이 아닙니다. 자녀를 납치하고 아내를 폭행하고 가족을 볼모로 한 범죄가 계속 느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아픈 곳이 가족이어서죠.

 

우리 생활에 가족이란 용어가 일상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요. 전엔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식구(食口)’란 말을 많이 썼는데, 언젠가부터 가족이란 말로 대체된 모양새가 됐습니다.

 

가족은 사전적 의미로 부모, 자식, 부부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라는 뜻이지만, 식구는 같은 집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이릅니다.

 

여섯 식구가 코딱지만 한 방 두 칸에 기거하면서 아버지는 식솔의 입들을 책임지느라 평생을 힘겹게 사셨다.”필자 소설 중

 

가난과 싸우던 시절, 먹는 일만큼 중한 것은 없었죠. 그래서 아버지는 딸린 식구의 입을 책임지는 막중한 짐을 지셨어요. 식솔, 가솔 등의 말은 다 가장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아버지 용어입니다.

 

가족이 먹는 입을 따지는 식구보다 격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끈끈한 정분과 생명력은 식구가 더 우직하면서도 살갑습니다. 먹고사는 생존 운명체로서의 질긴 연()입니다.

 

식구와는 또 다른 의미의 생구(生口)’란 말이 있습니다. 식구뿐 아니라, 노비나 식객, 집에서 기르는 소, , 개 같은 짐승들을 통틀어 생구라 불렀어요. 함께 기식한다는 뜻입니다.

 

조선일보 인기 칼럼을 연재한 이규태 선생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찾은 말입니다. 선생은 이 세상에서 짐승을 사람과 동격으로 표현하는 말을 가진 나라는 아마 우리 외엔 없을 것이라고 통찰했지요.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탄 펄벅 여사가 오래전 한국에 왔을 때 소 달구지를 모는 지게꾼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죠. 다큐 영화 <워낭소리>에 전율했던 그 짠함이 펄벅의 감성을 흔든 겁니다.

 

소는 40년을 동고동락한 할아버지의 식구요 생구입니다. 할아버지는 소가 무거워할까봐 얼마 안 되는 짐도 나눠지고, 소가 늙어 죽으면 묘도 써 줍니다. 그 공생의 삶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어요.

 

지구의 육지 면적에서 매년 남한 면적의 60%만 한 사막이 늘어나고, 아마존 밀림은 매년 여의도 면적의 6배가 사라진답니다. 이 모두 공생의 삶을 저 버린 인간의 탐욕이 빚는 참사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은 무엇일까?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답합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청중을 감동시킨 연설에서죠. 정치적 수사 가득한 연설문 대신, 가슴의 언어로 국민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텍스트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을 다룬 성서입니다. 신이 아벨의 제사를 즐겨 받는데 화가 난 형 카인이 동생을 죽이자 카인에게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 대답을 21세기의 오바마가 대신한 것입니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니어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제 할머니가 아니라도 제 삶마저 가난해집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전 미국인이 숨을 죽입니다.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자비와 희망에 불씨를 살려주었기 때문이죠. 강퍅한 세상에 찌든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오바마의 연설은 절정을 향합니다.

 

저는 다음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여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미국이란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동생을 지키는 자란 말은 구약성서 창세기 4장에 나옵니다. 오바마는 카인처럼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항변하지 않고 성서를 깊이 묵상한 지혜로 가족애와 이타적 사랑을 말했어요.

 

결국은 가족입니다. 내가 우선할 일은 먼저 나를 보호하고 가족을 지키는 일입니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가족을 지키지 못하면서, 이타적 사랑을 저버리는 이기적 행위에서 생성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생구입니다. 통섭을 주창하는 최재천 교수의 호모 심비우스(공생인)’와도 통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내 가족과 인류와 자연을 지키는 진정한 공생인이 되는 길이 아닐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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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지키는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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