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무성한 잎들로 가득했던 나의 인생 나무가 어느 날부터 휑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빛이 새지 않을 만큼 나뭇가지 사이를 빼곡히 채웠던 잎사귀가 하나 둘 떨어진다 했는데, 어느 날 가지 사이로 틈이 생기면서 그 공간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잎이 진다는 사실을 별 감흥 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던 지난 6월 한 달을 보내면서 비로소 떨어진 잎새보다 가지에 남은 잎이 적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무에 달린 한 잎 한 잎은 친소의 경중은 달라도, 나의 시선을 잡았던 사람들이다. 가족, 친척, 친구, 선후배, 친지뿐 아니라,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 내가 멘토로 삼은 분들, 만나본 적은 없어도 나에게 유무형의 영향이나 생각을 나눠준 사람들의 이름들이 나뭇잎마다에 달려있었다.

 

변한 것은 나뭇잎을 바라보는 내 시선뿐이 아니었다. 전에는 신문을 펴면 인사동정 난부터 살폈는데 언젠가부터 부음 난에 먼저 눈길이 갔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하인들이 누가 죽었는지를 알아다 주인에게 알리는 관습처럼. 단순한 부음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내게 남기는 크고 작은 종소리로 들려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6월은 유난히 내 귀에 종소리가 크게 들린 달이었다. 현역 최고령 최장수 MC로 활약한 송해 선생이 8일 아흔 다섯 나이로 세상을 뜨더니, 19일에는 믿음과 삶, ‘앎과 행동이 일치한 삶으로 평소 존경했던 주선애 전 장신대 교수가 부음을 알렸다. 23일에는 한국 경제학의 거목이자 관료로 강직한 행보를 보여 서울 포청천이란 별호를 얻은 조순 전 서울대 교수가, 그리고 26일에는 민족사관학교 설립자 최명재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최명재 선생은 사업차 들린 영국에서 명문 이튼스쿨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열리고 있는 이 학교 출신 넬슨 제독의 전승기념일 행사를 지켜보면서 마음에 감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튼 학교 졸업생들이 1.2차 세계대전에 얼마나 많이 참전하고 전사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나치에게 제공권을 빼앗긴 후 나치군을 물리치기 위해 자폭 결사대를 결성할 때, 지원자의 75%가 이튼스쿨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이야기는 최명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 3대 해전으로 꼽히는 명량대첩이 있고, 넬슨 제독보다 더 유명한 이순신 제독이 있지 않은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이튼스쿨 같은 인재 양성학교를 만들겠다는 필생의 꿈을 품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학교가 1993년 강원도 횡성 385천 평 부지에 세워진 민족사관학교였다.

 

네 분 다 이 땅에 선한 영향력을 남기신 훌륭한 분들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내 가슴에 가장 크고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린 분은 주선애 교수였다. 사람들이 열망하는 천수를 다한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죽음에서 그 모습을 상상했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우듯이, 눈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오롯이 불태우고 한 순간 깜박 꺼지는, 바로 주선애 선생 같은 생이 아닐까?

 

그는 일생을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살았다. 떠나시기 두 달 전까지, 강사로 초청되어 90분간 열강을 하셨다. 그것이 대중 앞에서 행한 마지막 강의가 되었고, 그날 전한 메시지는 유언처럼 남게 되었다. 그는 생전에 이미 전재산을 낮은 곳을 향해 환원했다.

학자나 목사나 가르침과 행함이 나뉘어서는 안 되고, 늘 나의 행동으로 상대를 가르치기를 힘써야 한다라며 인생을 주님과 동행하려면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가지인지, 늘 돌아보고 살피라라고 당부했다.

 

주선애 교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믿음이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이 삶으로 요약할 수 있잖을까? 그의 사랑을 많이 받은 김동호 목사의 말을 빌리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길이가 가장 짧은 분이며, “믿으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가슴으로 오고, 가슴으로 오면 밖으로 나가 행동하는 분이셨다.

 

가슴을 짠하게 한 것은 장례식의 조사를 부탁받은 제자 김동호 목사의 슬프면서 아름다운 축사 이야기이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 애를 써도 조사가 써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 선생님 앞에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조사가 아니라 축사여야 한다는 것. 이렇게 쓰인 장례식 축사가 오히려 장례를 더욱 아름답게 따뜻하게 밝혀 주었다.

 

저 동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떠나셨는데 불경스럽게도 슬프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말도 못 하게 기쁩니다. 이렇게 기쁨을 느낀 것은 70 평생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름 받으시기 3일 전 동호 선교사무실에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기다렸는데, 갑자기 넘어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오후 선생님 병문안을 갔었지요. 그런데 너무 멀쩡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데요. 잡아주시는 손에 힘이 느껴져 제가 속으로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려면 아직도 멀었네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부음을 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죽음이 기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도 늘 죽음을 꿈꾸며 삽니다. 제가 꿈꾸고 욕심내는 죽음은 ‘beautiful landing’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죽음은 그것을 뛰어넘은 ‘fantastic landing’입니다.

 

선생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훈장입니다. 훈장 중에 최고 훈장이십니다. 98년을 한결같은 삶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신 선생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고 상급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선생님의 죽음 앞에서 조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축하합니다! 선생님의 그 복되고 아름답고 황홀한 죽음을 축하합니다!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셔서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오늘도 종소리가 울린다. 들리는 종소리는 같아도 가슴을 때리는 울림은 매 번 다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복된 죽음을 맞을까? 입으로는 인생이 정말 짧다고 잘 살아야 한다고 외치면서, 머리로는 백 년도 더 살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는지.

 

진정 삶이 복되려면 죽음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사느냐에 달려 있다. 진실로 죽음을 이해하고 산다면, 더 좁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다 선연해 질 것이다. 어디에 방점을 찍고 살아야 하는가를 일러주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에너지 또는 달란트를 성심껏 키워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남김 없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떠나는 삶이 영예로운 삶이다.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 나의 고백이 될 때, 이 짧은 생을 허투루 낭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하루를 가치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감사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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