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외국에서는 발행도 되기 전 주문이 쌓이고 거금의 선 계약금이 지불될

정도로 관심을 끌지만 우리나라에선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있지요.

자서전, 회고록, 평전 같은 이름의 책들입니다.

 

모두 한 개인의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서술 뭉치들입니다. 자서전이

개인사에 치중한 글이라면, 회고록이나 평전은 이에 더해 필자가 살아온

시대 및 사회적 현실에 무게를 둡니다.

 

역사 기록도 좁혀 보면 수많은 유·무명의 사람들이 살아온 세상살이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어린이가 읽을 필수도서로 굳어진 위인전처럼,

그래야 평전·회고록도 읽는 맛이 각별합니다.

 

엄정하게 쓰인 자서전만큼 귀한 역사기록도 없습니다. 개인적인 삶이

곧 정치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삶이 가장 역사적인 것이 되기도 해요.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유성룡의 징비록같은 책이 그렇습니다.

 

최근 읽은 책으로 영국의 디스커버리 시리즈를 번역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토머스 딜로렌조 교수가 쓴 링컨의 진실이 있어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우리에게 친숙한 알렉산더의 본명입니다.

 

스물다섯 살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후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격렬한 군사 정복을 지속하여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에

이르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어요.

 

이로부터 동양과 서양을 융합하는 헬레니즘 문명이 잉태돼 인류

문명사를 빛나게 했고, 그의 발자취는 시대를 넘어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후대에 전해졌습니다.

 

이 책은 정교한 일러스트와 사진으로 생활상과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티레 해전은 바닷가 요새의 탑과

투석기, 함선 접근을 막는 물속 바위까지 세밀하게 보여주지요.

 

책의 매력은 알렉산더의 위대함과 잔인함을 함께 묘사해 기존 위인전의

틀을 벗어났다는 것이죠. 페르시아를 정복한 그는 술독에 빠져 원로

지휘관을 창으로 찔러 무참히 살해하는 실수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우리는 알렉산드로스를 잃었다. 우리를 경멸하는 신을 위해 우리가

피를 흘렸단 말인가?”라는 부하들의 절규는, 인간이란 선악 어느

한쪽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양면의 존재임을 설파합니다.

 

본성이 같은 인간에게 완벽한 인격과 우월적 존재가 따로 있을까?

온누리를 고루 밝히는 햇볕도 그늘을 만드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그림자 없는 삶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망한 일입니다.

 

역사가 칭송하는 인물도 흠결은 다 있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위대한 인물로 추앙 받는 에이브라함 링컨,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영국인이 존경하는 윈스턴 처칠도 예외이지 않습니다.

 

링컨이 보인 변호사 시절의 처신, 남북전쟁에서의 문제는 지금도 논쟁이

이어집니다. ‘재산을 가지고 죽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라며 소유의

90%를 사회에 내놓은 카네기도 자랑스럽지 못한 과오가 있어요.

 

기업을 일으키며 많은 경쟁기업과 사람에게 아픔과 상처를 남겼으니까요.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링컨과 카네기를 깎아내리지 않아요. 오히려

미국인의 긍지를 심은 인물로 높이 평가합니다.

 

미국이 위대한 인물로 정치인보다 훌륭한 기업인, 예술인을 앞세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큰 업적 앞에 과는 사람이면 피할 수 없는

허물로 덮어줍니다.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죠.

 

인도가 영국 식민지 시절, 벵골 지방 가뭄으로 4백만 명이 아사할 때

보인 그의 비인도적 모습은 우리가 아는 처칠과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그럼에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위대한 인물로 꼽아요.

 

동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참 어려운 난제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부족한 인간들이니까요. 잘 쓰인 평전이나 회고록은

객관적인 나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줍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우리 서점에 나온 많은 전기 책들엔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결같이 살아온

길을 미화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모두가 험난한 파도를 타고 넘은 서퍼 이야기뿐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열정과 도전으로 태산준령을 넘었다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로 가득 찹니다.

 

나무가 하늘 높이 솟기까지 얼마나 그늘을 만들었는지, 이로 인해 어린

나무들의 성장을 해쳤는지는 생각지 않아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도 자랑뿐이죠. 그래서 패자를 보듬는 승자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누리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나를 내세우기 전에 자신이 만든 그늘부터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성찰을 앞세워야 하고 나의 성공을 말하기 전에

내가 남에게 준 상처와 그늘을 생각 해야 합니다.

 

임종을 맞는 분의 말만큼 솔직한 인생 고백은 없어요. 이 자리에선

세상의 명예나 훈장은 빛을 잃고 영광은 쇠락해 그림자마저 없습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그뿐입니다.

 

오래전 한국 기업 1세대 대기업 창업주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고인의

아내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회장님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날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회사를 염려하지도, 자식을 걱정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사람들에게 몹쓸 일 많이 했지?”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릴 때 스스로를 돌아본 것입니다.

 

그런 소리 마세요. 회장님은 다 회사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한 거예요.”

부인은 뜻밖의 남편 말에 당황했지만 그는 세상을 등질 때 60

기업 인생의 성공보다 업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인생은 다 한 편의 영화요 책일 만큼 굽이친 역정을 밟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일생이 그만큼 희로애사의 언덕을 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에게 좋은 영향도 주었겠지만 해를 주기도 했겠죠.

 

사람의 일생에는 공과가 함께 존재합니다. 이리 살고 저리 살아도

남는 건 후회뿐입니다. 나이 60이 넘어 석양이 기우는 걸 보면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내 안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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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도 실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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