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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가 미안하다, 널 몰랐구나
    며칠 전 전국 청소년 글짓기 심사를 끝내면서 갖는 유감입니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받들어 유한재단이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합니다. 올해로 28년째니 연륜이나 규모면에서 전국 규모로 열리는 대표적 청소년 백일장입니다. 올해는 천여 명의 청소년이 아카시아 향이 흩날리는 유한공고 교정에 모여 초?중?고별 글제에 따라 글 향기를 뽐냈습니다. 씁쓸한 것은 ‘내가 아버지라면’ 이란 글제를 놓고 중학생들이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의식 때문입니다. 글제를 택할 때 10대의 자녀들이 평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글을 통해 아버지 상(像)을 유추해보자는 의도가 있었지요. 글제를 내면서 ‘혹시나’ 했는데, 적지 않은 학생에게서 아버지의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못함을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하다는데 불만이 컸습니다. “잘했네” “알았다” “수고했어.” 등과 같은 정감 없는 아버지의 말투에 아이들도 묻는 말에나 답하는 단답식 대화가 늘어남을 알 수 있었지요. 아버지의 칭찬이 있을 때도 그 뒤에 따라올 말에 신경을 쓴답니다. 때 아닌 칭찬이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죠. “그래 그건 잘했어. 그런데 넌...” 한숨까지 섞인 조언을 듣노라면 작은 희망조차 웅크려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칭찬에 목말라합니다. 아버지의 특징으로 감정표현이 없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아버지, 어려운 아버지라고 쓴 학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원합니다. 내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아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빠를 기다립니다. “이리와 봐” 식의 부름보다 격려의 부름이, 사랑의 부름이었으면 한답니다. “넌 왜 엄마를 통해서 말하지?” 아버지의 불만도 이해는 되지만 사실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평소 대화가 부족했다는 방증이지요. 아이들은 철부지가 아니었습니다. 속에 담아놓고 말을 안 할뿐,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도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분일뿐이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날, 친구들과 나눈 에피소드입니다. 어버이 날이라고 아들이 전화를 했을 때, 예전에 우리는 첫마디를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 나다. 기다려 엄마 바꿔줄게” 아들이 그게 아니고요 하면 “벌써 돈 떨어졌냐?” 그래도 아들이 용기를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미친 놈, 뚱 단지 같긴!” 옛날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파안대소했습니다. 자식의 마음을 알면서도 멋대가리 없는 말을 했다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아들이 지금의 아빠들입니다. 대를 이어 배워온 언어의 관습이 그렇다면, 누구를 탓할 입장도 아니지요. 대화도 훈련이 되지 않으면, 끊기고 단절되기 싶습니다. 대화의 부족이나 불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서적 불만으로 이어집니다. 갈수록 멀어지는 아버지,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는 어쩌면 현대사회가 만든 자화상일지 모릅니다. 피곤에 절어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처럼 나가는 아버지... 가뜩이나 어려워진 자영업자 아버지... 그 침통함이 무의식중에 그렇게 비춰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강한 이미지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아이들은 크면서 아버지가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엄마가 자녀들과 대화를 독점하고 있을 때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고 합니다. “나 요즘 힘들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는 아버지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도 느껴졌답니다. 좋은 세상이 된 줄 알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란 존재가 외롭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사람은 태어난 후 ‘아빠, 엄마‘ 로 부르며 성장기를 보내다가 때가 되면 ’아버지 어머니‘로 바꿔 부르기 시작합니다. 멀리 이스라엘에서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고 해 놀랐습니다. 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다 정년퇴임하고 거창으로 내려간 친구 이재철 목사가 전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갔을 때, 누가 아빠하고 뒤에서 부르더랍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스라엘 아이가 자기의 아빠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뜻의 어휘지만 ’아빠‘와 ’아버지‘는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아빠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고, 아버지는 역어인 헬라어입니다. 아빠로 불리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무한책임을 지지만, 아버지로 부르는 아들은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런 역할과 기능이 어휘에 담긴 거지요. 지금은 자녀들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아빠의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헌신으로 아이들을 키우지만, 어느 날이 되면 아버지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름다우려면 아버지가 자녀들과의 대화에 새로운 눈을 떴으면 합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네 맘을 헤아리지 못해서”라는 생각으로. 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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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음악은 천상의 소리
    밤바람이 선득한 주말. 저녁을 먹고 장자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로 청아한 색소폰 연주음이 들려옵니다. 발길이 절로 이끌려 간 곳엔 한 분이 ‘셀프 콘서트’를 열고 있네요. 잔디밭에 앉아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칩니다. 연주력이 준수한데다 가을밤의 정취까지 더해져 색소폰 선율에 젖는 아름다운 가을밤을 즐겼지요. 음악은 사랑을 전하는 신의 소리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지요. 음악은 연주자의 기쁨도 되지만 만인의 즐거움도 됩니다. 연주가의 재능을 부럽게 바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어거스트 러쉬.’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는 말이 잘 어울린 영화지요.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와 촉망 받는 첼리스트 라일라의 보석보다 반짝였던 단 하루 밤 이후, 남자는 그녀를 한 번도 잊은 적 없고,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낳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놓은 적이 없지요. 이들의 믿음 하나는 “음악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라는 것. 부모의 DNA를 받은 아이는 일찍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입니다. 시설에서 자란 11세의 소년은 부모만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뉴욕을 찾아갑니다. 모든 게 신비한 뉴욕. 도시가 만드는 수많은 소리들이 소년의 청각에 음계로 포착됩니다. 소년은 아이들을 모아 거리에서 노래를 시키는 워저드를 만나 어거스트란 이름으로 거리 연주자로 등장해 천부적인 실력을 보입니다. 하루는 소리에 끌려 교회 합창단 연습장에 들렸다가 처음 보는 오선지와 오르간 앞에서 작곡하고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합니다. 이를 지켜본 목사님이 줄리어드에 음악천재로 추천합니다. 줄리어드에서 사모곡 라프소디를 작곡해 주위를 놀라게 한 어거스트. 마침내 뉴욕필하모니 콘서트에 특별 출연자로 초청됩니다. 줄리어드 출신의 유명 첼리스트(엄마)와 함께. 하지만, 연주회를 앞두고 위기가 오죠. 워저드가 연습장에 나타나 아버지라며 친권을 주장하고 데려갑니다. 학교는 간곡히 연주회만큼은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절당하죠. 금관악기가 아이의 영혼을 뽑는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다시 광장 연주에 나서는 어거스트. 부근을 지나던 루이스가 소리에 홀려 찾아오고, 금세 호흡을 맞추더니 황홀한 기타 2중주를 펼칩니다. 어거스트가 오늘 밤 있을 센트럴파크 공연을 알려주지만, 루이스는 귀에 담지 않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만 주고 떠납니다. 그날 밤, 어거스트는 친구의 도움으로 탈주에 성공해 연주장으로 달려가고, 지방공연에 나서던 루이스는 뉴욕 중심가에서 아이 얼굴이 나온 배너광고를 보지요. 전율을 느낀 그도 차를 버리고 연주회장으로 내달립니다. 환호 속에 첼로 연주를 끝낸 라일라가 아이를 생각하며 공원을 빠져나올 때, 줄리어드 총장이 특별초청 지휘자를 소개합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어거스트. 환호하는 청중... 놀라운 자작곡이 그의 지휘 속에 연주를 시작합니다. 밖을 향하던 라일라가 연주음에 끌려 뒤돌아서고, 또 반대편에서는 황홀한 눈빛의 루이스가 나타납니다. 마침내 무대 앞에 이르러 12년 만에 마주 서는 남과 여... 환희의 포옹을 할 때 지휘하는 아이의 모습이 비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지요. 귀를 기울인 만큼 들리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세상의 소리를 옮겨 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천재가 말하죠. “아이들이 동화를 믿듯 저는 음악을 믿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제 음악을 꼭 듣게 될 거야요.” 어거스트의 간절한 믿음처럼 나는 어떤 믿음을 확신하며 살고 있나요?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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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9
  • 내 앉아있는 자리
    스산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니 단풍은 지고 낙엽만 우수수 쌓입니다. 이렇듯 나무도 꽃도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사이즈를 줄이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한 주기의 마지막 겨울을 상대하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 또한 사이즈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몸집이 줄고, 먹는 게 줄듯 이것이 절제의 근본이며 이치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작게 나왔으니 돌아갈 때도 비우고 작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실상과 허상이 공존하지만 스스로 말수를 줄이고, 욕심도 미움도 줄이고, 자랑, 명예 같은 덧없는 것은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이즈가 줄지요. 루디 세네카는 “인간은 마치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꼬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를 알면서도 어제의 습관을 오늘도 고집하고 삽니다.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시나요? 바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보다는 흉금을 터놓고 말할 한 사람의 친구가 더 소중한 때입니다. 친구도, 만남도, 분주함도 지혜롭게 줄여가는 것이 노년의 삶을 가볍게 하고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은 수분이 80% 이상이라고 하죠. 비슷한 비율로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그만큼 물과 말은 몸을 유지하고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말입니다. 내가 살면서 토해낸 말을 양으로 계측한다면 얼마나 될까. 그중 꼭 필요했던 말은 얼마쯤 일까. 이제는 할 말 못할 말, 안 해도 좋을 말, 상처 주는 말을 가려가며 했으면 합니다. 내뱉은 말은 흘러간 세월처럼 돌릴 수 없으니... 그래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많이 들어주자. 듣는 귀는 8로 열고 말하는 입은 2로 줄이자. 남이 말할 때 자르지 말자. 중간에 끼어들지 말자. 말 줄기를 돌리지 말자.” 비위 상한다고 파르르, 욱, 버럭 하는 감정도 이젠 삭혀 없애야 합니다. 행여 그런 상황이 되면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버리세요. 대신 많이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가족, 친구, 이웃, 누구든 만나면 웃는 것으로 말문을 열어요. 나이가 들면 웃는 근육도 굳는다는데, 얼굴에 웃음기마저 빠지면 노인 특유의 표정 없는 일그러진 인상만 남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옻칠을 더하는 것처럼 윤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움이나 시기, 질투는 다 헛된 뜬구름이지요. 뜬구름을 좇다가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아픈 일입니다. 살고 있는 이날,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족해야 할 자리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맘대로 못할 게 뭐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사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살아보니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상의 스승은 없더군요. 사서삼경이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편 입장을 늘 먼저 헤아리면 그것이 상선의 절제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래 저럴 수 있겠다... 나도 그 입장이면... 저도 사람인데.”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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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너도 죽는다‘메멘토 모리’
    말에는 묘한 힘이 있어 곱씹을수록 향기를 내는 말이 있고, 겸손함을 가르치는 말도 있지요. 라틴어는 그런 철학적 의미를 함의한 말과 글이 꽤 많습니다. 언젠가의 기억입니다.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 1인이 된 학생에게 50번 마지막 골든벨 문제가 주어집니다.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주위에서 외쳤던 라틴어는?“ “메멘토 모리" 영예의 골든벨이 울리는 짜릿한 순간을 지켜보았지요. 다소 생소한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유래는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개선장군은 관습에 따라 전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영웅이 탄 마차가 시민의 환호 속을 헤치고 행진하는 동안 뒤에서 노예들이 큰소리로 외쳐댑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승리에 도취된 장군에게 본분을 잊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장치인 셈이죠. 로마 최고의 환대 속에서도 너는 신이 아닌, 한 인간일 뿐임을 알린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 이 셋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를 강조했습니다. 췌장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격찬합니다. 그러므로 제한된 인간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 듯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집중하라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뜻이 통하는 라틴어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습니다. 몬래 이 말은 신을 공경하고 오만해지지 말라는,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는 뜻인데 이후 기독교 영향을 받아 현세의 부귀나 영화의 부질없음을 알립니다. 우리에게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죠.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다는 이 말엔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 는 속뜻을 지닙니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명한 노래 ‘아모르 파티’도 같은 말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하는 파티가 합성된 라틴어로 이 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지요.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철학자 니체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미국 남서부에 거주해온 나바호족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그들은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라.”는 의미심장한 철학을 닮고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화무십일홍>까지 모두 겸손한 삶을 가르칩니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인생에게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에 충실하라.... 이보다 더 삶을 성찰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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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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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8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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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4
  • 슬픔이여 안녕!
    죄 없는 어린 생명이 희생될 때 더없이 고통스럽습니다. 남달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덟 살에 충북 영동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과 몰려서 마을 앞에 흐르는 강에 나갑니다. 겨울엔 썰매를 타고 여름엔 물놀이를 하는 곳. 경부선이 지나가는 철교 아래가 또래들의 여름 아지트지요. 흰줄 하나를 내린 검정 팬티를 입고 상급생들은 수영으로 강을 건너고, 하급생들은 교각 중턱에 걸터앉아 형들을 부럽게 바라보다가 텀벙 강물에 몸을 던집니다. 이날도 철교 아래에 한 떼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비가 와서 물이 좀 불었지만 누구도 겁내지 않았지요. 그런데 물이 불면 수심에서 물돌이가 이는 걸 모른 게 비극입니다. 형들이 수영을 가르친다고 아이들을 밀어 넣는데 그만 1학년 쌍둥이 동생이 소용돌이에 말려든 겁니다. 아이가 물속에서 허우적이자 더럭 겁이 난 아이들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나도 겁에 질려 뛰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발을 구르며 울부짖는 쌍둥이 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죽은 아이는 내 짝꿍이었습니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지고... 나도 밤마다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땀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지요. 물에 퉁퉁 부은 친구가 나를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넋이 나간 친구 엄마, 고래고래 소리질러 아들 이름을 부르는 아빠, 나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쌍둥이 형... 나는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친구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과 슬픔이 어린 가슴을 쿵쿵 뛰게 했지요. 이로 인해 부모님 걱정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발령을 받아 새 임지로 이사하면서입니다. 가족이 아버지의 전근을 반색한 것도 나 때문이었죠. 아픈 기억은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많이 옅어졌습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끊은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결혼 후로는 아예 잊다시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도 길에서 쌍둥이 형을 만나면서 덜컥 상처가 뜯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매셨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답니다. 한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가족을 황폐화 시켰구나. 아물었던 내 상처에도 피가 나는 걸 느꼈습니다.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형의 얼굴에 깔린 그늘을 보았습니다. “가족 몫까지 잘 살아야지. 흔들릴 때마다 그렇게 위로해.” 예민한 성격 탓일까, 이후로 이따금 꿈을 꿉니다. 시골에서 놀던 추억들이, 떠난 어린 친구의 모습도 생생하게 포착됩니다. 더 힘들게 하는 건 잊을 만하면 날아드는 이런저런 또래 아이들 희생소식입니다. 줄어드는 인구도 걱정인데 죽었다하면 아이들이냐고 격분도 합니다. 지난 봄, 헝가리에서 유람선 전복으로 6세 소녀가 숨졌다는 비보가 그랬었죠. 외할머니 손을 꼭 잡은 아이의 인양된 모습은 더 애처로웠습니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엄마가 일곱 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했다는 비보가 들렸습니다. 죽음이 낯설기만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섬뜩했을까, 얼마나 설득했을까, 아니 강요했을까. 그래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푸른 6월에는 전 세계인을 슬픔에 잠기게 한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멕시코 국경에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25세 아빠와 두 살짜리 딸이 익사한 것입니다. 아빠가 아이를 셔츠 안에 넣고 아이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은 채 떠내려 온 사진을 봤습니다. 물살을 이겨내려 했던 아빠의 다리는 물위에 떠 있고, 아이의 바지는 물먹은 기저귀로 불룩했습니다. 강 건너서 울부짖는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멕시코 영화 ‘신 놈브레’는 중남미사람들이 ‘죽음의 열차’를 올라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열차 지붕에 올라타다 떨어져 죽고 힘겹게 탄 뒤는 살해나 강간을 당하기도 합니다. 서글픈 것은 점쟁이가 찾아온 주인공에게 일러주는 말이죠. “넌 미국에 도착할거야. 그런데 안내는 신이 아닌 악마가 하지.”라고. 그 악마는 죽음의 열차를 올라 탄 아빠와 딸을 강물 속에 빠뜨린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찾아간 저세상이 험난한 이 세상을 사느니 보다 낫지 않겠냐고. "여긴 낙원이 아냐. 슬퍼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오래전 읽은 프랑수아 사강이 쓴 ‘슬픔이여 안녕’ 이란 소설 제목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요? *글/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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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실시간 기고 기사

  • 혼자 잘 노는 것도 능력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6천만 명을 향합니다. 중국 우환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후 1000만 명에 이른 기간이 6개월인데, 2천만 명 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3일, 그리고 석 달 만에 5000만명을 넘습니다. 우리나라도 확산세가 가팔라 연말 모임을 다 망치게 되었죠.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뜰 때마다 사람들은 ‘그래서 어쩌자고’ 한숨과 푸념을 앞세웁니다. 언택트 규제가 격상되면서 3월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는 것 같아, 사는 걱정에 울음을 참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걱정이 커지면 꿈도 많아져요. 심하면 악몽에 시달리고 외로움, 두려움을 느낍니다. 올해 내내 계속된 비대면 생활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속앓이를 한 거죠. 까닭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벌컥 화가 치밉니다. 외로움을 방치하면 질병이 되죠. 혼자인 것이 두려운 겁니다. 심리학자 카를융은 ‘외로움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요한 문제를 두고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을 때 생긴다’라고 진단합니다. 한 번 혼자인 게 두려웠던 경험을 한 사람은 작은 상황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난 것을 기억하니까요. 2001년 11월 시카고 공항에서의 일이죠. 출장을 마치고 동료와 헤어져 딸이 사는 테네시 레시빌로 가기 위해 터미널을 찾아 갈 때입니다. 때는 ‘9.11테러’가 난지 두 달 밖에 안 된 터라,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무장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돼 행장이 수상쩍은 사람은 가차 없이 검색을 하고, 보안검색대는 통과까지 가히 수용소 입감 수준입니다. 신발을 벗어 들어 보이고, 검색요원은 가방을 까발려 내용물을 하나씩 흔들어 댑니다. 여성의 속옷을 들고 흔들어도 입도 벙긋 못할 분위기였죠. 검색이 끝난 사람은 헝클어진 가방을 다시 정리하느라 북적이고, 밖으로는 검색을 기다리는 대기 줄이 공항 밖으로 한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나마 출발 5시간 앞에 나온 게 다행입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출발 15분 전에야 가까스로 탑승지역까지 왔지요. 어수선하긴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이젠 게이트 스크린에서 번호만 확인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쩔거나. 스크린에 탑승할 게이트 번호가 안 뜨는 거 있죠. 마음이 급해집니다. 스크린 보다 시계보고, 주변을 돌아봐도 말 붙일 사람이 없어요. 다들 시간에 쫓겨 뛰는 사람들뿐입니다. 뭔가 잘못됐구나! 긴장감에 불을 붙이는데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어요. 내게 티켓을 보이며 게이트 번호가 안 보인다고 슬픈 표정을 짓고서. 티켓을 보는 순간 이렇게 반가울 수가! 행선지가 같은 레시빌입니다. 동행인이 생기면서 이상한 것은 혼란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거였어요. 그녀도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는 차분하게 쌍 라이트를 켜고 스크린을 다시 보는데, 우리가 찾는 번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거 있죠.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정을 찾자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혼자였을 때는 보이지 않았을까? 지연 방송도 했다는데 내겐 왜 안 들렸을까? 그러면서 모아지는 생각은 내가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문제 중에는 혼자라고 생각할 때 의외로 많은 일과 맞닥뜨립니다. 어릴 때 경험이 그런 거였어요. 부모님이 안 계시면 평소 없던 상황과 마주치게 되고,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심리적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소통은 생명과 산소처럼 인간에겐 필수요소입니다. 성경에도 ‘홑겹은 쉬 끊어지나 겹줄은 견줄만하고 세 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데레사 수녀도 “인생에서 최고의 가난은 외로움”이라고 알렸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인데, 현실은 이를 가로막아요. 혼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히면 삶을 힘들게 합니다. 그렇다고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려면 좋든 싫든 혼자 사는 능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혼자일 때 온전히 혼자인 나와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나하고 잘 노는 것이 능력인 시대가 온 것입니다. 혼자서 잘 놀고 잘 먹고, 즐기기. 언제라야 이 야속한 세상이 끝날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긴겨울의 시작입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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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1
  • 사라진 설렘과 기다림의 시간
    코로나의 일상이 정상으로 향하면서 지난 주말 오랜만에 결혼식장을 찾았다. 마흔 된 딸을 시집보낸다고 감격하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찾은 예식장에서 반가운 옛 친구들을 만났다. 예식을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70년대 젊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포를 풀었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와 성악을 한 친구, 문학을 한 내가 친구가 된 것은 같은 대학을 다녀서였다. 전공은 달라도 기독 학생으로 함께 서클활동을 하면서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출신 학교와 고향이 제각각임에도 흉허물 없는 친구로 젊은 한 시절을 같이 걸었다. 이젠 다들 원로급 나이가 되었으니 주고받는 대화가 모두 지난날 그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때를 회상하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렇듯 친구는 10년을 못 만나도 금방 퍼즐이 맞추어진다.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딸에게 오래된 상자를 열어 소장해온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보여주며 의중을 물었다. “얘야, 아빠가 아꼈던 것인데 네가 보관할래?” “아빠, 이런 건 박물관이나 수집가들에게나 필요하잖을까? 난 사양할래요.” 딸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시답잖다는 표정을 얼굴에 그렸다.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진 않았지만, ‘박물관’ 운운하는 표현에서 섭섭함이 살짝 마음에 깔렸다. 아비가 박물관 갈 나이라도 됐다는 뜻인가? 호불호가 분명한 것은 좋지만 요즘 젊은 얘들은 같은 말을 해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둔감해 있다. 디스크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인데, 세상이 그리도 빠르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향해 불화살을 당기는 느낌이었다. 음원을 파일로 다운받아 듣고, 모든 정보를 핸드폰에 담고 사는데 익숙한 세대들이 흘리는 얘기를 듣다 보면, 불쑥불쑥 현대판 청맹과니의 부적응력이 잉어처럼 튀어 오를 때가 있다. 사진가 친구도 한 수 거들었다. 그 시절은 필름 값도 비싼 데다 일단 카메라에 필름을 넣은 후에는 다시 뺄 수도 없으니 순간순간 판단을 잘하고 찍어야 했다. 게다가 필름 한 통에 20~30여 컷으로 제한돼 있어 필름이 떨어질까 봐 남은 컷을 셈하면서 셔터를 눌러야 했다. 사진을 찍어도 확인해 볼 수가 없으니 다 찍은 필름은 서둘러 현상소에 맡기는 것이 상수였다. 그리고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기까지 몇 날을 또 기다렸던가. 사진은 나온 대로가 다였다. 보태고 뺄 것이 없으니까. 지금 같으면 온갖 수정으로 아예 딴 얼굴을 만들기도 하지만, 수정 불가의 시절에는 인화된 사진을 보고야 모든 것이 결판났다. 나왔다, 못 나왔다 볼멘소리가 나오고, 더불어 사진 몇 장으로 카메라 맨의 실력을 평가했다. “이게 뭐야. 나 눈 감고 있잖아?” “내 사진 뽑지마. 안 찾을 거야.” 제 얼굴 잘못 나왔다고 토라지는 여학생들에게 핀잔만 듣고 ‘미안해’ 하던 얼굴이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친구였다. 카메라 들고 나온 죄로 구박을 받고도 싱글싱글 웃는 데는 여전히 사진 잘 찍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의 형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약속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거나 야외로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한 날이면 으레 한 친구는 20~30분 늦게 나타났다. 모임마다 그런 짓하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지만, 그중에도 기다림의 끝판왕은 오늘 혼주였다. 그래도 그때는 인성들이 너그러워 한참을 기다려 주고도 크게 타박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핸드폰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요즘 세상에는 어디 용납이나 될 일인가.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기다리는 데 쓰는 시간이 줄면서 분단위 시간관리가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반대로 잃는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설렘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노래를 LP로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역광으로 찍었는데 잘 나왔을까” “그 여학생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지금처럼 영악하지 못했던 그때는 모든 것을 선의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실시간으로 추적을 당할 리도 없었으니 둘러대는 요령이 생기고 대충 넘어갈 틈도 주었다. 주변의 간섭이나 통제에서 수월하게 벗어나 나만이 즐기는 공상과 상상의 여백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의 모습이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나는 세상이라서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아졌다. 세상이 편해졌다고 날개를 달아준 것도 아닌데…. 어떡하든 디지털 삶에 뒤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쥐어짜느라 삶은 더 고달파졌다. 모처럼 해묵은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가 날이 어둑해져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손에 쥔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삶의 시간을 촘촘히 쓰고 있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연신 화면을 굴려 패션을 찾고, 먹방을 살피고, 게임에 몰입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내게서 사라져 간 그리움들이 생각났다. 마치 일상의 여백 같던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아득하고 아련하게 멀리서 요령처럼 흔들렸다. 가수 진성이 노래한 ‘안동역 앞에서’가 그런 것일까? “첫눈이 내리던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못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오지 않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퍼즐의 한 조각씩을 들고 서로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끝내 못 만나고 마는 걸까? 노년의 삶이란 ‘그리움’이고 ‘추억의 퍼즐’이다. 각자가 쥔 퍼즐을 들고 친구들과 한 자리에 모여 빠진 조각들을 채울 때, 잊혔던 그 시절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날 때, 그 환한 기쁨은 반갑고도 놀라움이었다. 그날 오래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느꼈던 그 감정처럼. 때때로 그 시절을 꺼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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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2-08-29
  • 12월엔 안데르센이 생각난다
    일기책을 뒤적이다 원치 않은 기록과 마주했어요. 1999년 12월 12일의 지문입니다. 이때는 온 세상이 뉴 밀레니엄 시대가 열린다고 과도한 꿈에 부풀려 있을 때였지요. 20년이 흘렀는데도 당시 몸에 일었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발육이 시원치 않은 소아마비인 초등학교 2학년 여아가 계모의 음흉한 계획과 장기 학대로 죽었다는 비보입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었지요. 계모가 1년 넘게 몸에 해로운 약을 먹인 것이 경찰 수사로 밝혀졌지요. 여아 책상엔 2년 전 죽은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안데르센동화집이 꽂혀 있고, 아이는 수시로 그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7권 중 유난히 낡아 보인 책이 ‘성냥팔이 소녀’ 였다고 해요.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그리 됐을까. 담임선생은 아이가 늘 그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조용히 불렀답니다. “이 책이 그리 좋아? 뭐가 좋아?” 한참 뜸을 들인 아이가 내놓은 말은 “슬퍼서”였어요. 선생님은 아이를 붙들고 오랜 시간을 얘기했답니다. 마음 문을 연 아이는 “커서 안데르센 선생님처럼 동화책을 쓰고 싶어요.” 아이는 야무진 속내를 비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안데르센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안데르센은 아주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들로 태어나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는 재혼하는 불우한 환경 속에 자랐단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지. ‘성냥팔이 소녀’는 어린 시절 가난한 엄마를 모델로 썼다고 해. 놀랍지? 너도 그렇게 될 거야. 꼬옥!” 그로부터 아이를 더 관심 있게 봐왔는데 저런 비극이 온 겁니다. 불우한 소녀에게 실낱같은 꿈을 이어준 안데르센. 그 꿈을 찢어버린 계모란 이름의 여자. 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이렇게 달랐어요. 철자법도 서툰 소년이 삶의 질곡을 환희로 승화시켜 덴마크의 자존심이 되고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르는 예우까지 받습니다. 강단에 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곧잘 안데르센과 쇼펜하우어를 비교했습니다. 국적은 달라도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고, 거부인 아버지 덕에 온갖 영화를 다 누리며 자라고도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고요. 환경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끝말은 ‘성냥팔이 소녀’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어땠을까? 토를 답니다. 안데르센은 불쌍한 소녀를 왜 얼어 죽게 했을까? 사무침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 소녀도 살았으면 지금쯤 스물아홉? 어쩌면 잘 자라서 소원한대로 동화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 외에 ‘미운 오리새끼’ ‘인어 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등 보석처럼 반짝이는 160여편의 동화를 세상에 남겼어요. 그의 동화 속에는 늘 아름다운 환상 세계가 펼치어 있고, 따뜻한 사랑이 녹아 있지요. 하지만 그의 동화는 곧잘 비극으로 끝나곤 해요. 부잣집 창 밑에 앉아 성냥불로 몸을 녹이던 불쌍한 소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남고, 짝사랑한 왕자를 만나려고 목소리를 팔아 두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끝내 바다의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여기에는 인생을 바라보는 안데르센의 애상적 관점이 투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데르센은 말년에 자서전을 냈습니다. 세 번 고쳐 낼만큼 애착을 보였어요. 수많은 작품의 탄생 배경과 집필 동기 등을 소개해 안데르센 작품 주석서라는 평가가 따릅니다. 그는 책머리에 “역경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으며, 어떤 요정이 도왔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삶으로 인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썼지요. 서양의 문학사가들은 괴테의 시와 진실, 루소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함께 세계 5대 자서전으로 꼽습니다 12월이 오고 구세군의 자선냄비 소리가 나면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요. 그러면 나도 마음의 창을 엽니다. 혹시 내 창밖 아래에 떨고 앉아있는 어린 누가 있지 않나 해서. 어둡고 쓸쓸한 올해는 더욱 더.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
    • 오피니언
    • 기고
    2022-08-25
  • 살면서 밑줄 긋기
    우리는 세대를 구분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애나 어른이나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생이고 그대로가 우주인데, 그렇게 보지 못하고 한 묶음으로 처리합니다. 젊은이들은 칠팔십 대 사람을 생물 연령만으로 따져 노인으로 규정하고, 사오십 대 사람은 싸잡아 아저씨로 병렬 처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6.25 70주년을 맞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그런 인식에 매몰돼 있던 나를 끄집어 낼 수 있었지요. 나라 위해 싸우다 숨진 영령 한 분 한 분이 다 광활한 우주인데, 전사자라는 한 묶음에 일렬 횡대로 처리해온 내 생각이 미안합니다. 그러다 시 한편을 찾았지요. 시인 정현종의 ‘방문객’ 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마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선의로 대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 하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에요. 우스꽝스럽고, 누추하고, 바보 같은 사람일지라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 분도 고결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외모는 다 달라도, 속사람은 다 같지요. 잘났든 못났든 사람에게는 나만의 영혼이 살고 있으니까요. 누가 나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고, 혐오스런 짓을 하더라도 “저 사람의 사는 방법이려니” 하고 넘길 일입니다. 주유천하 하는 김삿갓이 술 한 잔에 너털웃음을 짓고 다닐 수 있었던 데는 삶의 이치와 인간의 의무를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혐오를 앞세운다면, 그는 깨닫지도 못할 것이고 나는 더 큰 증오만 키우겠지요. 자기 자신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바꾸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일하게 약발이 잘 듣는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을 인격체로 예우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일입니다. 쇼펜하우어도 만인에게 할 일은 ‘오직 선의로 대하라’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시 하나 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을 소개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대추 한 알에 우리 인생을 담은 시인의 눈이 아름다워요. 잘 생긴 대추나 못 생긴 대추나 똑같이 추운 밤을 견뎠습니다.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벼락을 맞으며 상처를 보듬었어요. 모두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아 결실한 것들입니다. 대추처럼 사람도 둥글둥글 살기까지, 제 혼자 노력으로 된 건 없습니다. 오스스 몸을 떨며 무서리를 맞고,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그을렸고요. 초승달이 둥근달이 되고 이지러지기를 또 얼마나 보며 기다렸을까. 아이 어른도 노인도 시련을 이기지 못하면 저렇게 붉고 둥근 대추 한 알을 맺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고 구박함은, 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꽃잎을 때리는 빗줄기의 심술에 다름아니죠. 한 자리에서도 화려하게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뒤늦게 서리를 맞으며 꽃장을 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을 불의로 예단함은 죄악이라 했어요. 물을 주고 북을 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해도,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오로지 하늘의 소관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따금 살아온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러울 때가 있지요. 까칠한 상전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제는 내가 함부러 대해 탈이난 몸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한 번쯤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보세요. “수고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몸도 칭찬하면 새 힘을 낼 겁니다. 선의를 아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letter
    • 오피니언
    • 기고
    2022-08-22
  • 황금의 시간은 바로 지금!
    나도 한 때는 아름다운 노년을 꿈꾼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면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을 벗 삼아 남은 생을 자족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키웠었다. 그러다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지만…. 나에게 선망의 꿈을 불어넣은 사람은 친구였다. 남편은 고등학교,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인 부부는 50대부터 10년 계획을 세워 노후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은퇴 후 자연에 묻혀 살면서 1년에 두 번 해외여행을 다니겠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힘에 부칠 나이가 되면 제주에서 1년 살고, 남해, 고흥, 속초, 담양, 안면도 등으로 둥지를 옮겨 다니며 노매드 인생을 살겠다고 했다. 그의 은퇴 후 10년 계획은 치밀하고 촘촘했다. 모든 걸 아끼며 구두쇠처럼 살아도 목표가 있는 삶을 사니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다. 친구 내외는 시간이 될 때마다 시골에 내려가 심을 식물 종자와 나무를 찾아 5일장을 돌았고, 여행에 필요한 각종 용품과 옷가지 준비를 낙으로 삼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렇게 많은 날이 지나갔다. 건장했던 친구가 정년을 1년 앞두고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는, 여섯 달도 못 채우고 죽고 말았다. 들판에 덜렁 혼자 남게 된 친구 아내가 안쓰럽고, 무거운 현실에 가위눌리는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다. 원망과 분노, 슬픔이 몸을 탈진시키면서 우울증을 불렀고, 사람을 피하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외출을 멈춘 채 전화도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만 선별해 받다가 그마저 전원을 꺼놓을 때가 많았다. 깔끔한 성품 탓에 반질반질 윤이 나던 집안 살림에 먼지가 안고,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집안이 헝클어졌는데도 치우거나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엄마의 집을 정리해 주려고 내려왔다가 한숨만 말아 쉬었다. 방마다 널린 전원생활에 필요한 용품들. 구석구석에 처박은 씨앗 봉지들. 열린 대형 여행용 가방엔 텍이 그대로 달린 옷가지들로 정신이 사나웠다. 어떻게 정리 좀 할까 했던 아들도 적당한 선에서 손을 들고 말았다. 하나같이 두 분의 꿈이 차 있던 것들이고, 소망했던 것들이다. 나는 그 허망함을 보고 전원의 꿈을 접기로 했다. 미래를 담보하려다 오늘을 망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들면서였다. 2년쯤 지나 아내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았다. 우리 내외와는 어울려 여행을 다닐 만큼 허물없이 지낸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가겠다고 할 때 타박하지 않았다. 만나보니 생각보다 표정이 밝았고, 생활도 좋아 보였다. 그녀는 아내를 향해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지 않은 미래를 좇다가 오늘을 실패한 사람”이 나라며, “오늘 맑았던 하늘이 내일은 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편이 더 좋아지고 자유로울 때 하겠다고 미룬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라고 권했다. 어제는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친구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37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친 친구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낸 마지막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강의를 마치면서 칠판에 이렇게 쓰고 각자의 생각을 적어 내라고 했다. “말기암으로 5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행을 가겠다.” “소문난 맛집을 순례하겠다.” “등 돌린 친구들과 화해를 하겠다.”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라는 등 돌발적인 질문에 학생들은 비교적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저마다 가슴에 담았거나 그려온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만이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교수가 학생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었다. “무엇이라도 쓰게. 아무것도 안 쓰면 영점 처리된다네.” \ 학생은 그 후에도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과제 제출 5분 전이란 소리를 듣고서야 무언가를 단숨에 적었다. 학생이 제출한 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일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일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며 사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수밖에는, 그것이 남은 삶을 향한 내 사명이다.” 그 학생만이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이해하고 있었다. 100여 명의 학생 중 그만이 유일하게 과목 성적 ‘A+’을 받았다. 'do it now!' 바로 지금 시작하라! 과거는 돌릴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유일한 삶은 오늘뿐이지 않은가. 종이를 찢기는 쉬워도 붙이긴 어렵듯,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오늘이 없으면 덧없어 지는 것이 내일이다. 미래는 내 것이 아니므로 할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해야 한다. 어제를 녹여 내일을 만드는 용광로의 시간은 지금 이 시간, 오늘뿐이라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최고의 선물은 현재이다.(giving is the best preseant.)"라고. 삶에 황금의 시간은 내가 숨 쉬고 있는 바로 지금! -소설가 da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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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8
  • 인간의 본성은 악일까?
    사람만 생장소멸의 생애를 밟는 건 아닙니다. 언어도 생장소멸의 과정을 지닙니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대략 6천여 개 정도로 추정하는데, 최근엔 매년 이십여 개의 언어가 사라진다고 해요. 언어가 소멸한다는 건 부족이 사라지고 인종이 사라지는 것과 통합니다. 인류는 지난 수 세기를 문명과 과학이란 이름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침략자의 행태를 드러냈어요. 그 바람에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유산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갔어요. 조금 더 편하게 살려는 인간들의 욕구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밀림이 1년에 서울의 여섯 배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천하고 게을러요. 고금을 막론하고 신분이 오르고 부자가 되면 종부터 두고 싶어 하죠. 그 심성엔 천박함이 자리해요. 인류의 조상 아브라함 때 이미 종을 둔 걸 보면, 종의 역사가 사람의 역사입니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문명의 실상은 야만이죠. 여기에 과학의 오만함을 더해 죄악을 잉태합니다. 마지막 금도인 상식에 눈 감아버리고 양심마저 귀를 닫으면, 문명사에는 죄의 피가 흐르기 마련입니다. 1897년 9월 끝날, 로버트 피어리가 지휘한 탐험선 호프호가 뉴욕 항에 들어왔어요. 북극점 정복에 실패한 피어리는 두 가지 선물을 가져옵니다. 하나는 그린란드에 떨어져 있던 운석이고, 또 하나는 살아있는 여섯 명의 에스키모들입니다. 연 이틀간 3만 명의 미국인들이 입장권을 손에 쥐고 신기한 에스키모를 관람하기 위해 밀려들었습니다. 피어리는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했으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지요. 실패한 탐험에 대한 여론을 잠재우고 후속 탐험을 위한 모금을 하려면 무언가 이목을 집중시킬 깜짝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느낀 겁니다. 뉴욕에 온 뒤로 피어리는 단 한 번도 에스키모를 돌보지 않았어요. 이들에게 에스키모는 북극점 정복이란 자신의 야망을 채워줄 도구로 밖에 보지 않았고, 다수의 백인들도 에스키모는 하등 인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면 6명의 에스키모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자연사 박물관에 살아 있는 인종 표본으로 전시됩니다. 그러다 백인 풍토병인 감기에 감염돼 몇 달 새 네 명이 죽고, 한 명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고향을 찾아 돌아갈 수 있었어요. 일곱 살 에스키모 소년 미닉(Minik)만 폐렴으로 아버지를 잃고 황량한 도시에 천애고아가 되었지요. 그 후 미닉은 미국 가정에 입양돼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비교적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커갑니다. 하지만 청년이 된 미닉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연사박물관측이 치러준 아버지의 장례식은 가짜였고, 시신은 해부돼 박물관에 진열되었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미닉은 유골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조롱이나 무관심 속에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미닉은 백인사회에 대한 환멸만 키우다가 고향인 그린란드로 돌아갑니다. 고향에 돌아간 미닉은 행복했을까. 12년 동안의 미국생활로 이미 모국어를 잃은 상태인데다가 에스키모 생활방식조차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편치 않았어요. 이미 화려한 브로드웨이의 불빛을 본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미닉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방황하던 미닉은 끝내 고향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7년 만에 그토록 혐오했던 미국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미국생활 마저 철지난 유행에 지나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떠돌다 벌목장 노동자로 살아가던 미닉은 28세이던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숨을 거둡니다. 2002년 9월 10일자 내 일기에는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이란 책을 읽고 쓴 글이 있어요. 과학의 이름으로 저지른 문명의 죄악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가득합니다. 미닉의 짧고 비극적인 삶에 연민이 차오르고, 에스키모인의 시체로 인종 표본을 만든 과학의 오만함에 분노에 차 있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어린 시절에 읽고 기억해온 세계위인전 속 피어리의 이미지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끌어내릴 수 있을까. 인간 본성은 악일까 선일까. 물음에 물음이 꼬리를 무는 이 순간도 세상에는 사람이 사람을 정죄하는 날선 칼날이 무섭게 번쩍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 인간의 역사는 진실하지 못하고 난잡하다는 것이지요.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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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6
  • 글로벌 코리아의 영웅들
    한국이 지난번 G11에 초대를 받았어요. G7의 별개 국가로 초청된 4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국이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는 방증이겠죠? 코로나 이후 한 외신은 한국 사람만 자기들이 선진국임을 모른다고 전하더군요. 뛰어난 기업인은 하늘에서 낸다고 합니다. 기업인은 사람을 모아 일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내 이윤을 내야합니다. 사업으로 돈 좀 벌었으니 편히 살겠다고 손 터는 사람은 장사꾼이지요. 기업가는 자신의 ‘멘탈’을 끝까지 유지하며 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이건희 같은 사람이지요. 사람은 본성이 게을러 부자가 되면 편하게 호강하며 살고파합니다. 여기에 보상심리, 대리만족 같은 게 작동하면 자식들은 이에 편승해 흥청망청하게 되지요. 한국 기업가에겐 ‘사업보국’ 이란 특이한 애국심이 있어요. 일제 치하를 거치며 생성되었어요. “우리가 잘 사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거고, 나라가 잘 돼야 우리도 잘살게 된다.” 한국의 창업세대가 갖는 정신이었어요.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나와 내 가족을 넘어 나라의 풍요를 불렀습니다. 한국경제의 기둥이 된 반도체는 이병철 이건희의 집념에서 시작됐어요. 1973년 사운을 걸고 반도체에 투자할 때, 이병철은 폐암말기였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해요? 사람들이 갖는 의문이었습니다. 40만평 부지를 확보하고 밝힌 선언문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삼성이 먼저 한다.” 이병철은 처음부터 기업인을 꿈꾸지 않았어요. 좌절하고 방황하다가 나갈 길을 찾은 것입니다. 와세대 경제학부를 다닌 것도 그 일환입니다. 일본 유학을 위해 관부연락선(부산↔시모노세키)을 탔을 때 일이예요. 멀미가 심해서 일등석을 찾아 갔는데 ‘조선인 나가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습니다. 그로부터 민족의식이 싹텄다고 해요. 정주영도 하늘이 낸 기업인입니다.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한국의 대표적 얼리버드 기업인이지요. 하루는 새벽같이 울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밖을 보다가 리어카에 배추를 잔뜩 실고 가는 행상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자각이 들고, 그 자각이 정주영의 생각을 다져놓았습니다. “돈을 벌어 가정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을 해서 재화를 생산해내는 사람이다.” 한강의 기적은 지도자와 기업인의 합작품입니다. 박정희의 성취에서 기계공업도시를 통째로 건설한 창원을 빼놓을 수 없어요. 당시 대화록엔 기계공업단지의 규모를 제시하는 말이 나옵니다. “규모는 미스비시가 일본 전역에 세운 공장의 총합은 돼야 한다. 도시의 모델은 호주의 캔버라.” 손 떨리는 스케일을 제시했습니다. 국가가 플랜을 세우면 기업이 시행하는 구도였어요. 창원기계공단 출범은 창원 이전과 이후 역사로 나눕니다. 종합 기계공업을 풀 세트로 도시를 건설한 유래가 지구상에 없었으니까요. 박정희의 배포는 어디서 나왔을까. 기업인들의 추진력은 또 어디서 나온 걸까. 이병철의 말처럼 “일본이 성공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오기에서 발동한 것입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시절, 일본이 본국 예산의 7배를 투입한 만주기계 공단 5개년 계획을 곁눈질했다고 해요. 후일 박정희가 박충훈 상공장관 에게 묻습니다. “임자는 士農工商 중 무엇이 중요하오?” 장관은 공업을 말했는데, 박정희 입에선 ‘상인(기업인)’이 나왔습니다. ‘장사 잘하는 사람에게 중화학을 맡긴다.’ 박정희는 일을 잘 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겼어요. 그것이 성공해 재벌이 되고 글로벌 기업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훌륭한 지도자, 훌륭한 기업인이 일으킨 나라입니다. 국가경쟁력의 힘은 기업에서 나옵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등을 한국이 잡은 것은 대량소비사회를 견인할 능력이 있어서입니다. 그 능력을 대한민국 대기업이 갖춘 것이지요.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날 때, 전 언론이 생각 이상으로 지면을 늘려 고인과 삼성을 조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자신감을 준 사람, 대한민국 사람으로 자부심을 갖게 한 사람으로. 특히 대기업에 이해가 부족한 2030 세대에게 감성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나름 의미가 있있어요. “장사꾼이 되지 말라. 경영자가 되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 했던 이건희. 모든 인생이 ‘공수래 공수거’는 아닙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letter)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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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1
  • 달리기의 천재 치타의 슬픔
    과학의 영역이 어디까지 미칠지 자고 나면 달라지는 변화 속도에 그저 놀라움뿐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기가 더해지는 세상이다 보니, 이에 적응하려는 노인 세대의 노력이 눈물겹고, 지친 나머지 두 손 들고 스스로 문명의 청맹과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미 4차 산업시대와 5G의 빠르기를 실현한 인간의 문명은 어디까지 이를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생기고,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이 따르는 이치인데 마치 한 방향으로만 내달리는 모습이 사바나의 생존 세계를 연상시킵니다. 한쪽은 먹이를 향해 질주하고, 다른 한쪽은 생존을 위해 달려야 하는 약육강식의 초원에서는 딱 한 가지, 누가 더 빠르냐의 시합으로 사느냐 죽느냐가 결판납니다. 그러다 보니 육상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처럼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매일같이 자기만의 주법으로 고된 속도의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땅 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은 달리기의 천재 치타입니다. 시속 120km까지 주파가 가능해 사냥터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지녔지요. 사자나 표범은 먹이 앞에 20-30m 정도 접근한 후에야 사냥을 개시하지만, 치타는 먼 거리에서도 쏜살같이 달려가 사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냥 성공률이 20-40% 정도인 사자나 표범에 비해 치타는 40-50%로 훨씬 높아 작은 초식동물에겐 큰 위협이 됩니다. 치타의 빠른 속도는 오랜 기간에 걸친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합니다. 치타가 좋아하는 주 먹잇감은 가젤 영양입니다. 이 동물은 몸집이 작은 데다 워낙 날렵해서 몸집이 큰 육식동물들은 공격이 쉽지 않지만, 치타는 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서 가젤 영양 사냥에 적합한 신체구조로 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대한의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폐를 키워 분당 호흡을 60회에서 150회로 올렸고, 보다 많은 혈액공급량을 위해 간과 동맥, 심장을 확대했으며, 다리와 등뼈는 더 빨리 유연하게 뛸 수 있도록 가늘고 길게 바꾸었습니다. 또 바람의 저항을 줄이고자 턱과 이빨 크기를 줄이고 몸무게도 날렵하게 40-50kg으로 줄였고요. 이 같이 줄기찬 전문화를 꾀해 치타는 세 걸음 만에 시속 64km까지 올릴 수 있고, 1초에 7m씩 세 번 뛸 수 있게 진화해 말 그대로 ‘바람의 파이터’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속도를 목표로 신체 구조를 진화시킨 것까진 좋으나, 예상치 못한 취약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타의 비극을 부른 셈이지요. 치타는 사냥 성공률이 높은 대신, 왜소한 체격 탓에 애써 잡은 먹이를 절반 이상 빼앗겨야 합니다. 가령 표범은 사자나 하이에나를 피해서 먹잇감을 나무 위로 갖고 올라가지만, 치타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이죠.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강탈당하고 물러서야 하는 치타의 마음은 얼마나 슬프고 쓸쓸할까. 더 큰 문제는 치타가 가젤 영양에만 매달리다가 가젤 영양의 숫자가 조금만 줄어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점이지요. 그동안 아프리카 개발로 초원이 줄면서 가젤 영양의 숫자가 준데다 경쟁자 간 먹이 다툼까지 치열해져 치타는 멸종을 걱정할 위기에 빠집니다. 대나무 잎을 먹이로 특화했다가 중국 개발 붐에 대숲이 줄면서 멸종위기에 처한 판다곰처럼 밀이죠. 선택과 집중은 셍존에 필요한 삶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일에만 전념하는 건 진정한 의미의 전문화가 아닙니다. 진정한 전문화는 세계적 강소기업들처럼 한 우물을 파되, 세상의 변화와 추이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라는 말처럼 급한 욕심에 좁게 파기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삽이나 곡괭이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비좁아지고 결국 물은커녕 자신이 판 구덩이에 스스로를 가두는 비극을 부르게 됩니다. 빨리 달리는 것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방향을 제대로 잡고 달리는 것입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길을 들면 갈수록 돌아오는 길은 멀어질 뿐입니다. 시인 노천명이 노래한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은 사슴뿐이 아닙니다. 애써 잡은 먹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치타도 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더 슬픈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생각하지 못한 ‘치타의 비극’이 동물의 세계에만 있지 않고,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에도 많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세상은 한 곳에 몰두하는 것보다 관계의 다변화가 더 중요시 되는데, 여전히 그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죠.(*)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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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8
  • 나와 함께 하소서
    멀리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나를 위한 종소리가 울리나 보다. 종지기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때가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조금씩 조금씩4기 판정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그 말종 암이다. 길어야 1년이라는 예단된 수명. 태산이 눈앞을 가로막고 선 느낌이 이런 걸까. 사람의 어리석음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 데 있고, 더 안타까운 것은 기회를 다 놓친 후 눈물짓는 일이다. 그 말이 현실로 찾아왔다. 신기루 같은 삶을 좇다가 때가 저물어서야 헛된 인생을 살았다는 자각이, 아프게 뼛속을 찔렀다. 그로부터 하루하루 내 세포를 갉아먹고 사는 암세포와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출렁이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죽어갈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며 불굴의 투혼을 불사른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전쟁과 사랑 영화쯤으로 알다가 반도 읽지 못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결국 책장을 덮고 말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다름 아닌 나를 향한 종소리였기에… 헤밍웨이가 소설 제목으로 인용했다는 성공회 신부 존 던이 쓴 기도문을 세 번째 읽을 때, 종탑 계단을 밟는 종지기의 발자국 소리가 가슴에서 공명을 일으켰다. 당시 영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교회의 종을 치는 관습이 있었다. 하인은 종소리가 들리면 누가 죽었나를 알아다 주인에게 고해야 했다. 왜 그런 수고를 이어간 것일까? 세상 어느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다 누구의 죽음이든 나를 줄어들게 한다 그러니 저 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일이니 깊이 애도하라는 메시지처럼 종소리가 들렸다. 헤밍웨이도 작품에서 생명의 연대를 강조하려고 이 문구를 제목으로 차용했나보다. 참혹한 전쟁의 광기 앞에 죽어가는 생명들. 질병으로 죽든, 사고로 죽든, 그때마다 울려 퍼졌을 종소리... 나도 죽으면 누군가가 종을 쳐 줄까? 하지만 지금은 죽음의 연대감을 기대할 수 없다. 누가 죽든 종소리는커녕,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이니까. 인생은 한순간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날 저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을 뿐이다. 왜 생명이 코에 있음을 일찍이 몰랐을까. 주야장천 호흡을 하면서도 코에 달린 호흡이 죽음을 자각하라는 신호임을 좀더 진작 알지 못했을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열 달, 아니 여섯 달?… 그러한 내게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나? 인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무슨 말을 준비해야 할까? 다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15년 만의 일이다. 목사님이 지난주는 세 번이나 나를 찾아와 기도해 주셨다. 사그라드는 젊음이 불쌍했을 것이다. 혹시 목사님이 나의 죽음을 연대해 주시는 걸까? 오늘은 위로가 될 것이라며 내게 적합한 찬송가를 선곡해 담았다는 USB를 놓고 가셨다. 친절하게도 첫 곡을 설명한 글도 함께. A4용지 한 장에 또박또박 손으로 쓴 글이었다. 오후 내내 1번 곡을 리플레이하면서 목사님이 주신 글을 읽고 또 읽었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이 임박한 순간에 승선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렀고, 2009년 네덜란드 항공기 추락사고 현장에 울려 퍼 졌다는 노래… 비극의 현장뿐 아니라, 축제의 현장에서도 불려졌다고 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되었고, 유럽축구 FA컵 결승전 경기장에서 관중이 모두 일어나 합창한다는 저 노래… 환호와 환희의 순간에도 죽음을 잊지 말라는 뜻인가?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조차 국경일인 공화국의 날에 이 곡을 연주한다니 더욱 놀랍다.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애창한 노래라고도 메모돼 있다. 무겁고 장중한 노래가 시공을 초월해 불리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기도일까? 아니면 영광의 순간에도 일몰의 순간을 상기하라는 뜻일까? 소프라노 찬양곡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의 쓰임새가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한 편의 시가곡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영국 국가(여왕을 지켜주소서)’ ‘독일 국가(독일인의 노래)’가 찬송으로 번안돼 있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도 많은 사람이 찬양하는 곡이다. 눈가에 이슬이 촉촉하게 맺힌 건 찬송이 탄생한 배경을 알면서였다. 100년 전부터 불려진 ‘abide with me(찬송가481장)’는 헨리 라이트 성공회 신부가 병이 깊은 선배 신부를 병문안하며 만들어졌다. 젊은 사제는 병상의 늙은 신부로부터 절절한 신앙 고백을 들었다. 임종을 앞둔 신부는 성경 말씀대로 신실하지 못했다고 눈물 흘리며 회개했다. 그러면서 계속 한 문장을 반복해 되뇌다 숨을 거두었다. 세월이 흘러 헨리 사제도 늙어 요양을 떠나게 되었다. 시인이던 사제는 떠나면서 딸에게 시 한 편을 건넸다. 아버지가 선종한 뒤 딸은 시를 들고 작곡가 윌리엄 몽크를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몽크 또한 어린 딸을 여의고 깊은 슬픔에 젖어있었다. 노래는 이러한 배경 아래 탄생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격정의 순간에도 찰나의 삶을 살피라는 자기 성찰을 실어 국경과 종교를 넘어 전파되었다. 일출처럼 장엄하게 떠오르는 인생 같지만, 한 순간 서산 그림자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임을 안다면, 그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이 쇠락해질 때, 더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때…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할 때라 서야, 병상에서 임종을 앞두고 서야, 자식을 잃고 참척의 아픔을 느낄 때 서야 사람들은 신의 은총을 희구한다. 멀리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나를 위한 종소리가 울리나 보다. 종지기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때가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더 가까이서…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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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4
  • 망각하면 안 될 세 문장
    성서에도 사람은 겸손하기가 참 어려운 동물이라고 여러 곳에 기록했다. 한여름의 잡초처럼 매일 같이 발로 꾹꾹 밟아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웃자라 버리는, 그것이 잡초의 성질이고 사람의 교만이다. 평생을 머리 조아리다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이 돈 좀 벌었다고 거덜대고, 작은 감투 하나에 큰 벼슬이라도 한양 목에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우쭐되는 걸 보면, 교만만큼 인간의 본성이 뚜렷한 것도 없어 보인다. 교만이 ‘일만 악의 뿌리’이고 ‘패망의 앞잡이’란 가르침이 끊이질 않지만, 인류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인류의 흥망성쇠가 교만의 악순환에서 비롯됨이니, 사람이 언제라야 창조주의 뜻에 맞추어 겸손해 질까? 사람의 겸손과 교만은 말하는 것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자기 말만 앞세우고 남의 말을 무시하거나, 박수를 치는 것보다 박수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겸손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교만과 겸손을 구분하는 방법은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좀 더 다가설 수 있다. 짧은 생을 살다가는 인생임을 아는 사람은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나대지 않으니까. 말에는 묘한 힘이 있고 향이 나는 말이 있다. 라틴어에는 그러한 철학적 의미를 함의한 문장이 많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엔 때리고 때려도 솟아오르는 두더지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는 것이 교만이다. 20년은 족히 지났을 기억 하나가 있다. KBS-TV1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의 1인이 된 학생에게 마지막 50번 문제가 주어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장군 뒤에서 계속 외쳐대는 라틴어는?” “메멘토 모리!” 우와~! 학생들의 함성과 함께 영예의 골든 벨이 울리는 짜릿한 순간을 아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오묘한 뜻을 지니고 있다. 유래는 2000년 전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에서 비롯되었다.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였다. 백마 네 마리가 끄는 전차를 타고 개선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이다. 영웅이 탄 마차가 연도를 메운 로마 시민의 환호 속을 헤치고 행진하는 장면은 장쾌했다.' 그러나 화려한 금빛 마차에는 열광 속에 가린 ‘숨은 그림’ 하나가 있다. 개선장군이 손을 들어 시민들에게 화답하는 동안, 장군 뒤에 탑승한 사람이 큰소리로 계속 외쳐대는 장면이다. 대중의 환호소리가 커지면 커진 만큼 그의 목청도 따라 커지는 외침이 있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승리에 도취된 장군을 향해 준엄한 하늘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승전한 영웅 그대여! 영광의 이 순간에도 유한한 인간의 본분을 잊지 말지니! 교만한 인간의 관성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장치 하나를 둔 것이다. 로마 최고의 환대 물결 속을 가르면서 행진하는 시간에도, 모두가 너를 향해 열광하는 순간에도, 그림자처럼 죽음이 뒤따르는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를 담았다.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것이다. 이 세 경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획 하나 가감 없이 들어맞는 처세훈이자 삶의 태도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를 강조했다. 췌장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잡스가 연단에 올라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격찬했다. 죽음이 없었으면 나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제한된 나에 주어진 시간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듯이 낭비하지 말라”라며 “오로지 자신을 믿고, 열정으로, 집중하십시오.”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스탠퍼드 학생들에게 혼신의 힘을 실어 일렀다. 메멘토 모리와 함께 자주 인용되는 또 하나의 문장이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본래 이 말은 오만하지 말고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라는 뜻으로, 오늘을 즐기며 살라는 것으로도 읽힌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언뜻 보면 다른 뜻 같아 보이나, 늘 함께 짝을 이루어 역사의 물결을 타고 사람들에게 속살거린다. 우리에게도 ‘花無十日紅’이라는 같은 맥락의 문장이 있다. 열흘 가는 꽃이 없듯이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는 이치를 꿰뚫고 있다. 트롯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명한 ‘아모르파티’도 일맥상통한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한 ‘파티’를 합성한 라틴어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을 지녔다.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이 되는 삶의 태도로, 니체가 처음 사용했다. 메멘토 모리의 처세훈은 미국 남서부에 거주한 나바호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는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라.” 마음을 휘어잡는 짧은 문장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파티>, <화무십일홍>까지 모든 문장은 한결같이 겸손한 삶을 이르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 상기해야 할 본분임을 깨친다. 생명이 너의 코에 달려 있다. 날숨 한 번 뱉었다가 들이키지 못하면 죽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똥 하나를 피하지 못하는 게 연약한 사람이다. 그러니 교만하지 말고 매 순간 삶을 성찰하며 살라고 이른다.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에 충실하라고...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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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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