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에서 오네...”

오늘아침 FM방송에서 박재란의 봄노래를 들으며 달력을 보았습니다.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그녀의 명곡입니다.

“꽃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지인들 실어 안 오리 남에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아직은 조석에 이는 바람이 매워도 더는 봄을 막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봄을 노래하지 못하는 건 녹록지 않은 안팎의 환경 탓이겠죠.

무지막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백척간두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이 그렇고...

 

방역 성공을 자랑하던 나라가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 세계 1위라는

순위도 가시처럼 목에 걸려요. 모진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의 봄으로 가는 고비가 이렇게 힘겹습니다.

 

옛날, 작은 왕국이 있었어요. 인자한 왕과 착한 백성이 평화를 사랑하는

행복한 소왕국입니다. 여기에도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마법사가

있었어요. 하루는 왕을 찾아가 백성 흉을 늘어놨어요.

 

백성을 믿다가 발등 찍힌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사악한

마법사를 쫓아냅니다. 그러자 이번엔 백성 대표를 찾아가 왕의 간악함을

알렸어요. 왕이 머잖아 백성을 내치고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고.

 

대표들도 마법사 말에 현혹되지 않고 그를 내쫓았습니다. 왕과 백성 모두

에게 박대를 당한 마법사는 약이 머리끝까지 올랐어요. 왕국에 어떻게

복수할까를 생각하다 엄청난 일을 꾸몄어요.

 

자신이 지닌 바이러스를 퍼뜨리기로 한 겁니다. 마법사는 모두가 잠든

새벽, 백성들이 사용하는 우물에 바이러스를 풀었어요.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지요.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물을 따로 쓰는 왕의 가족만 빼고요. 흥분한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평화의 왕국이 한순간 미친 왕국이 돼버린 거예요. 왕은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할 관청이나 치안을 맡은 경찰이 이미 바이러스에

중독된 상태여서 왕명에 복종을 거부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왕명은

받들 필요가 없다”라며 오히려 왕을 비난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미쳐버렸다고 탄식의 소리를 높였어요. 시위대로 돌변한

백성들이 궁궐 앞으로 몰려들더니 왕의 하야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였어요.

 

절망에 빠진 왕이 하야를 고민합니다. 그때 지혜로운 왕비가 묘안을

냈어요. “우리도 저들과 똑같은 우물물을 마셔보자고요. 그러면 백성과

같아질 게 아니겠어요?”

 

정신이 온전하든 돌아버리든 백성과 같아지면 더 이상 왕을 비난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왕은 시녀에게 우물물을 길어 오게 하고 왕비와

함께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왕이 희한한 헛소리를 시작합니다.

 

그것을 본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와! 우리 왕이 제정신을 찾으셨다”라며.

백성들은 왕을 악령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면서 고을마다 ‘왕빠’들이

앞장서 결사옹위를 다짐합니다.

 

왕국에는 잃었던 평화가 찾아왔어요. 왕과 백성이 생각과 마음이 같아

지면서 모든 사물이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마을이 평온을 찾자 심기가

상한 마법사가 이번에는 우물에다 바이러스 해독제를 풀었어요.

 

이물을 마신 신하들이 또 왕이 이상해졌다며 숙덕입니다. 삽시에 왕이

다시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신하들은

망령이 도졌다며 왕은 말도 안 되는 명을 거두라고 반발합니다.

 

“미친 왕은 하야하라.” 금세 시위대가 들끓어 올랐고, 왕은 할 수 없이

하야를 결심하는데 왕비가 새로 길어온 우물물을 들고 나타납니다.

물을 마신 왕은 다시 정상이 됐고 나라도 마침내 평온을 찾았지요.

 

우리가 사는 것이 새날 같지만 실은 데자뷔 같은 세상을 사는 거예요.

정상과 비정상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진심과 사심(邪心)이 모호해져

분별력을 잃게도 하죠. 그제 전철을 타고 양수리를 찾았습니다.

 

운길산역에서 철길을 건너 강변을 따라 걸으면 발 끝에 ‘두물경’이라

쓰인 돌비석과 만납니다. 결빙과 해빙이 공존한 곳…. 밀려나는

겨울과 밀려오는 봄이 합수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두 강줄기가 합수해 만든 호수와 팔 벌린 운길산과 검단산이 사방으로

열어놓은 아름다운 경관과 조우합니다. 암록빛 강물과 강가 버드나무에

스치는 연록 빛과 억새 위로 소복이 내려 앉는 봄볕들….

 

봄은 강을 타고 오른다는 말이 맞아요. 두 시간 남짓, 친구와 둘이서

겨우내 눅눅했던 마음을 훈풍에 말리고, 따뜻한 자연의 성정과 위로를

청하기도 하면서…. 자연이 주는 위로는 늘 어질고 진실됩니다.

 

엄혹했던 겨울을 이기고 찾아오는 봄소식을 듣습니다. 강화도 친구가

담장 아래 잔설을 헤집고 꽃대를 올린 복수초 사진을 보내오고, 횡성에

사는 친지는 변산바람꽃 소식을 담아보냈습니다.

 

봄의 특징은 바람입니다. 봄은 흔들리며 옵니다. 꽃도 흔들리며 피고,

가지들도 흔들리며 잎을 냅니다. 바람이 생명을 깨우고 봄길을 열어요.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더니, 어둑한 동네 골목에도 춘광이 쌓입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 자식을 잃고도, 공장을 불태우고도,

숯덩이 된 가슴으로 이 봄을 맞는 사랑하는 내 이웃들…. 꿋꿋하게

겨울을 이겨낸 이들이 고맙습니다.

 

이 봄에 전하고 싶은 안부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농밀한 마음입니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잘 할 거야.”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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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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