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살면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단어가 희망이고, 피하고 싶은 단어가

고통입니다. 단테의 신곡지옥의 문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희망은 모두 박박 긁어 버리라고 하죠. 지옥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오래전 대상포진으로 큰 고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넘는

치료과정에서 겪은 통증의 기억은 10년이 다 된 지금도 대상포진이란

말에서 조차 신경이 써집니다.


중추를 칼끝으로 헤집고 침이 곳곳의 피부를 뚫어대는 통증에 한바탕

진땀을 흘리다보면 고통도 잠시 쉴 때가 있습니다. 그때 먹고, 웃고,

수다도 떨지만 다시 올 고통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해도 고통의 강도가

센들 회복이 주는 기쁨만 할까.

 

여자가 겪는 산고도 마찬가지겠지요. 입덧이 나면서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짊어지는 고통을 남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산실 밖에서

기다리다 조는 남자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산고가 심한들, 새 생명의 탄생이 주는 환희에 비할까. 그 고통을

겪고도 둘째, 셋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희락과

기대가 훨씬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낳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 힘들 텐데, 그 때문에 양육을

포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받은 고통의 수천만 배를

더 얹어 자식들을 사랑합니다.

 

자식의 혼사를 끝내고 속 시원하다는 말은 다 겉치레 수사입니다. 여전히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손수건을 꺼내듭니다. 천방지축이던 것이 언제

저렇게 성장해서 제 가정을 이룬다는 사실에 한 없이 파도치는 것은

감동과 감사뿐이지요.

 

세상이 온통 다 변했다 해도 고통의 질과 양은 옛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피하고 싶은 것이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태도를 바꾸고 그 속으로 뛰어들지요.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겪다와 동의어입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한

고통은 불가피 하니까요. 꽃도 흔들리며 피고 바람에 눕는 풀도 아프긴

마찬가지입니다.

 

통증의 신호가 잘 전달돼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 고통이 지겹다고 감각

신경을 제거해버리면 통증을 잊을지 몰라도 신체 어딘가에 마비를

부릅니다.

 

한 의료 선교사가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다가 겪은 이야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발에서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감염을

의심할 수밖에요. 발에 주삿바늘을 여기저기 찔러보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가 밤새 홀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단 한 가지뿐. “주님, 제게 고통을

돌려주세요! 통증을 느끼게 해주세요!” 그제사 비로소 통증이 생명에

없어선 안 될 하늘이 내려준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무엇일까? 지금 내가 겪는 이 고통도,

이 역경도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옛 어른의 가르침은 결코 빈말이 아녔어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인생도 생명의 탄생에는 고통이 있고 성숙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갓 핀 국화송이가 전합니다.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었다고 해요.

 

이듬해 봄이 됐어요.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에 잎과 가지는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첫 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음해도 그다음해도 꽃은 피지 않는 걸 보면서 비로소 알았답니다.

 

혹한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음을. 저온을 거쳐야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이라고 하는데 진달래, 철쭉, 튤립, 백합,

라일락 등이 이에 속한답니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 보다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가

수확도 많고 맛도 좋은 이치와 같아요.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풍성하고

더욱 견실해집니다. 사람도 고난을 많이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인생의 깊이가 다릅니다.

 

무르익은 누군가의 인생이 부럽다면 그의 고난부터 이해할 일입니다.

지금 겪는 내 고난을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통증이 몸이 건강함을

알리는 신호듯이 그 고통이 나를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일 수 있으니까.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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