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사교모임을 즐기는 미국의 한 상류층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침실이 여섯 개나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날도 저녁 파티에 참석할 준비에 들떠 있었습니다.

 

막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뜻밖에도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어머니, 방금 제대하여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 아들! 네가 살아 돌아왔다니 정말 기쁘구나. 언제 집에 오느냐?”

 

어머니가 기쁨에 넘치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빨리 갈게요. 그런데 집에 내 전우 한명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여부가 있냐. 내가 환영해 주마. 그 친구도 데리고 오너라.”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어요.

어머니, 그런데 제 친구는 두 다리가 절단되고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귀 하나와 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매우 흉한데, 딱히 갈 집이 없답니다.”

 

그래?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같이 쉬면서 갈 곳을 찾아보자.”

아들은 감사하다면서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승낙을 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그가 우리 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게 하고 싶거든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당황한 기색입니다. 그녀는

황급히 아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건 안 된다. 친구의 딱한 사정은 백 번이고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마냥 있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실 테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깊게 생각을 해보렴. 동네 사람들은 무어라고 할 것이며 네 아버지가

이를 허락하시겠니? 친구는 나라가 적절한 예우로 사는데 지장 없게 돌봐

줄 거다. 마침 연휴도 다가오니 너나 빨리 집에 돌아와서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휴가를 즐기도록 하자.”

 

그 말에 아들이 침묵하면서 대화가 끊겼습니다.

아들아, 내 말 안 들리니? 아들아?”

띠띠띠......”

 

어머니는 먹통이 된 전화통에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전화가 통화 중에

끊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전화 오기를 기다렸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어요. 초조하게 시계를 보던 부부는 할 수 없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부재 중 전화

메시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메시지는 없고 대신 캘리포니아

한 카운티 경찰서에서 온 녹음된 메시지 하나가 기다라고 있었어요.

 

이건 뭐지? 알지도 못하는 경찰서에서 왜? 이상한 예감이 든 어머니는

다급히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마을로

먼 길을 달려서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경찰서장이 부부를 앉히고 침통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여기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고 눈과 귀가

하나씩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어서요.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의 신원증명서를 보니 당신의 아드님인 것 같습니다.”

 

미국 전쟁사에 기록된 가슴 아픈 사연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그 어머니를 탓하기가 쉽겠죠. 그러나 막상 우리가 그

어머니였다면 달리 어떤 처신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어머니는 평소에 자원 봉사도 열심히 하고 교회의 자선 사업에 앞장

서서 적극 참여한 여성이었습니다. 월남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미국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미군 58천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낸 월남전은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부작용을 불러왔지요. 히피족이 등장한

것도 실은 월남전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당한 부상보다 더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은 사회의

냉대였습니다. 자신의 참담한 모습과 마주하게 될 부모님의 절망하는

모습이 두렵고 무서웠던 아들은 집을 찾기 전에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의중부터 살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깊은 고뇌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지요. 어머니의 선을 긋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그리워한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 저장된 자랑스러운 아들의 이미지를 지켜드리고

싶은 아들이었을 테니까요. 가정의 달엔 가족 간의 이동과 모임으로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양지가 환할수록 한쪽으로 그늘이

짙어집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들뿐이 아닙니다. 아버지일 수도, 엄마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도는 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랑에 굶주려 있는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겐

5월의 웃음소리가 가슴 저미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금년 5월에는, 우리 가족 이름으로 그늘진 이웃을 헤아리고 살피는

작은 무엇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가정의 달로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아서···. 한 뼘 그늘을 지우는 빛이

되기도 하겠죠.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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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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