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비에 바람까지 불어 꽃비가 내리던 날, 지인이 페이스 북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습니다. 택배가 왔다고 해서 나갔더니 아들이 책을 보냈습니다.

별생각 없이 포장을 뜯다가 한바탕 웃고 말았다는 책···.

 

제목이 뜻밖에도 <알츠하이머의 종말>(2018)입니다. 책을 보낸 이유가

따로 있을 테지만 아버지가 치매에 걸릴까 걱정한 모양입니다. 불현듯

요즘 엄마한테 자주 화를 내시나요?” 며칠 전 아들이 엄마와 통화하며

이것저것 묻더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하루 뒤 이 엄중한 책 한 권이 도착한 겁니다. 책 표지엔 아마존·

뉴욕타임스 종합 1, 월스트리트 저널 올해의 책 등 베스트셀러 인증을

넷이나 달고 있었지요.

 

아들아, 걱정마라 아비는 멀쩡하다. 잘 읽고 더 건강해지마. 고맙다.”

그래도 걱정하는 아들이 기꺼워 휘파람을 불며 답글을 보내다가 문득

생각이 스칩니다. 내가 벌써 애들이 걱정할 나이인가? 쓴웃음 뒤로

한 줄기 바람이 스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결말은 항상 해피 엔딩입니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행복한 세상을 찾는다는, 설정 자체가 대부분 그렇게 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비틀면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백설 공주는 사악한 새엄마에게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불덩이에 마녀를 죽인 헨델과 그레텔은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동화작가들이 주인공들을 통해 어린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것은 재미와

함께 들려주려는 교훈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동화 속 규범이 획일적인 건

좀 불만스럽습니다.

 

현실과 통섭 없는 세계만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적

관찰로 동화를 보면 동화속 미심쩍은 부분에 눈이 떠져요. 관점을 달리해

보면 또 다른 모색과 재미, 상상이 더해지게 됩니다.

 

백설 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주지? 일곱 난쟁이가 신신당부했음에도

한 번도 아니고 사람만 찾아오면 번번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니 연거푸 곤경에 빠질 수밖에요.

 

엄마 백설 공주가 좀 멍청한 것 같아요?” 요즘엔 이렇게 되묻는 똑똑한

아이들이 있어 생각 없이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를 당황하게 합니다.

이점도 명작 동화가 예전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고 해요.

 

그러나 차분하게 뜯어보면 주목할 부분이 보입니다. 일곱 난쟁이가 아무리

백설 공주에게 잘해준들, 온종일 친구도 없는 빈집에 혼자라 생각해 봐요.

얼마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울까. 백설 공주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든 문에

손이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세상에는 소외됨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화는 주인공들을 통해 현대인이 지닌 결핍, 상실 등 사회적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죠. 많은 동화가 표면상의 교훈적인 것 외에도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획일화된 구조 속에 있는 세상은 ?’ 라고 묻는 사람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규범에 갇혀 살아요. 이에 맞설 설득력이

없으면 기존 논리를 따를 수밖에요. 과학이 ?’라는 것에서 출발했듯

우리의 삶도 이러한 물음을 통해 발전합니다.

 

이팝나무에 흰쌀밥이 탐스럽게 꽃 피던 때, 친구의 전화를 받았어요.

내용인즉 시골에서 혼자 사신 어머니를 모셔왔는데 얼마 전부터

자꾸 아파트 출입문을 열어준다고 걱정이 태산입니다.

 

딩동!’ 벨 소리만 나면 반사적으로 현관문으로 달려가 찰칵소릴 내며

문부터 열어준다는 어머니. 그렇게 설명하고 당부해도 허사라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부부 중 하나가 집에 남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답니다.

 

한동안 어머니 덕에 알바 없이도 부부가 편의점을 잘 운영해 왔는데···.

결국 알바를 다시 두기로 하고 아내와 교대로 집에 남기로 했다는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 이런저런 상념이 모락 거립니다.

 

어머니는 왜 현관문을 자꾸 열어주는 걸까? 시골집에선 밤새 사립문을

열어두고 사셨다는 어머니. 그 무의식 속엔 혹시 2년 전 세상을 뜨신

아버지가, 1년 전 사고로 잃은 큰딸이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후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혼자된 여동생이 올라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고. 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한시름 놓았다고... 그래도 어머니를

보내는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요.

 

책을 보낸 친지의 아들, 동화 속 주인공들, 친구의 어머니까지. 모두

물음을 던집니다. 왜 그랬을까? 때로는 내가 모르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고,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요 가족입니다.

 

삶이 외롭고 힘들어 다리가 휘청일 때, 발 벗고 나서서 그의 빛나던

한 때를 증언해야 함은 가족이 나눠야 할 몫입니다. 서로에 관심을

높이고 혼자가 아닌 함께 기대어 사는 것이, 메마른 세상을 이기는

참 지혜가 될 테니까요.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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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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