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극강 호우에 숨죽이던 지난 7, 제목조차 낯선 책 한 권과 마주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조력 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5이란 부제가 달렸다. 작가 신아연은 어느 날,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스위스 조력사(존엄사) 현장에 동행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여행을 하면서 삶과 죽음이 동전처럼 붙어 있다는 사실을 성찰하고 이 책을 썼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작가와 그분과의 대화를 간추려보았다.

 

2021826, 스위스 바젤에서 64세로 생을 마감한 한 남자가 있다. 독자라는 인연으로 스위스까지 동행했지만, 그전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사람이었다. 그분은 폐암 말기 환자로, 두 번의 시술을 받고 다시 재발해 작가와 연결이 될 때는 주치의가 예상한 여명을 석 달 남짓 남기고 있었다. 마련해 준 비즈니스석을 타고 스위스까지 거창한죽음 배웅에 나서면서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보리라고 마음을 다잡지만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눕고 마는 그를 보며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들었다. 내가 그때 하나님을 만난 후라면 그분 손에 천국행 티켓을 쥐어드렸을 텐데, 그리고 천국행 티켓은 스위스에서 발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드렸을 텐데,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스위스로부터 안락사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담담했어요. 그동안 깊이 생각했고 오래 준비해 왔기 때문인지 슬픔이나 아쉬움, 회한, 두려움 같은 감정은 없었어요. 남은 건 언제 생을 마감할 것인가만 결정하면 됩니다. 이제 버킷리스트 같은 건 없어요. 하루하루 편안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다 때가 되면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원 웨이 티켓을 손에 쥐고.”

한 사람은 왕복 티켓, 또 한 사람은 편도 티켓을 쥔 그 엇갈린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스위스 여행을 시작했다. 현지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비행기를 오래 탄 사람처럼 약간 지친 모습일 뿐 말기암 환자라 할 만한 동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 작가님, 와 줘서 고마워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지요?" 그가 분위기를 띄우자 동행자들의 긴장도 누그러지면서 약간의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뭐야, 형님 멀쩡하구먼. 이렇게 건강한데 왜 이런 결정을 하고 그래요."

"내가 너무 생생해 서운한가. 모두들 따끈할 때 날 만져 봐. 이틀 후면 싸늘하게 식을 테니까."

스위스 2일째, 조력사 단체에서 담당 의사가 찾아왔고, 마지막 면담을 가진 후 그는 이생에서 남기는 마지막 ㅅ사인을 했다. "두렵지는 않은데 어릴 때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 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네요. 어떤 면에선 설레기도 해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거지만, 엄밀히는 내가 찾아가는 거지요."

 

조력사 시행 하루 전, 생애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눈치 챌만큼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은 채 주위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밤은 잠들지 않으려고 해요. 인생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모든 순간을 깨어서 느껴보려고 해요. 지상의 모든 순간, 모든 마지막을." 날이 밝았다. 모두에게는 새날이지만 그분에겐 이생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은 것이다.

 

오전 10시경 안락사 시행장소로 이동했다. 동행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명씩 돌아가며 각자의 휴대전화로 그분과 사진을 찍었다. 일부러 환하게 웃고 최대한 고개를 꺾어 얼굴이 닿는 포즈를 취했다. 팔짱을 끼거나 한쪽 손은 그러쥐고 다른 손으로는 어깨를 얼싸안기도 하면서. 그분은 표정이나 몸에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동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우리의 호들갑에 잠시 희미한 미소를 짓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짧게 스쳤다.

 

그 분은 농담을 거는 여유도 보였다. ", 내가 무슨 연예인 같구나. 나하고 사진들 찍느라고 난리인 걸 보니." 정적이 흐르던 공간에 웃음이 깃털처럼 흩어졌다. 그곳 담당자가 말했다. "이제부터 충분히 시간을 드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준비가 되면 저희를 부르시면 됩니다." 직원이 나가자 그분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수고 많았어요." 담담한 어투로, 엷은 미소까지 얹으며 하직 인사를 했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예행연습을 했으면 저럴 수 있을까.

작가가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어디든 가겠지요." "좋은 데로 가실 것 같나요?" "있다면 갈 것 같아요."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으신가요?" "어머니요. 부모님이 마중 나와 계시면 좋겠어요. 수목장을 할 테니 한 번 와줘요."

 

잠시 정막이 흐를 때 그분이 말했다. "이제 가야겠어. 밖에 사람을 불러요." 그러나 선득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어서. 모두 배고플 거야. 내가 어서 가야 점심을 먹지."

그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는 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본인이 어서 떠나야 우리가 점심을 먹는다니. 조카가 마지못해 문밖에 사인을 보내자 작은 카메라와 거치대를 들고 담당자가 들어왔다. "이제 모두 조용히 하세요. 짧은 동영상을 찍어야 하니까요." 그리고는 그분을 향해 정면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는 자기의 말을 또렷하게 복창하라고 했다.

 

I'm sick, I want to die. I will die.

나는 아프고 죽길 원하며 죽을 것이다

그분이 그 말을 따라 하자 녹화는 끝났고, 약물 팩이 걸렸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밸브를 손수 돌리세요. 그러면 수 초 안에 편안히 잠드실 겁니다."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그분 스스로 밸브를 돌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설명을 하던 남자도 흠칫했고 우리의 입에서도 짧은 탄식이 나왔다.

", 졸리다..."

 

그 말을 끝으로 5~8초 남짓한 사이에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찰나의 순간에 넘어 스스로 생명을 내놓은 그분의 발을 작가는 식어갈 때까지 잡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강렬한 체험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삶과 죽음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 분은 현지에서 화장 돼 지금 공주의 한 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디그니타스는 스위스 취리히의 조력 자살(존엄사)’을 돕는 기관이다. 이곳에 가입한 한국 사람만300여 명. 그동안 10명이 이곳을 찾아 생명을 내려놓았다. 우리 사회에 안락사 논쟁이 물살을 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의 조력사 현장을 경험한 작가는 돌아와 기독교인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며,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라고. 그가 소중하게 느낀 것은 생명의 존엄이 아닌가 싶다.

조력자살은 죽음이 금기시 된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부를까.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태그
첨부파일 다운로드
이-2.jpg (85.6K)
다운로드

전체댓글 0

  • 6702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스위스, 안락사 현장 동행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