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위기, 인수전염벙 창궐, 생태계의 멸종으로 지구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인 상황도 크게 급변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세상이 전개될지 전혀 알 수 없다.

2022년 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가 ‘2075년으로 가는길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세계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인구 추세를 기준으로 30년 후인 2050년과 50년 후인 2075년 세계경제의 경제규모를 전망하였다.

 

그런데 2050년 전망에서 1위에서 10위의 판도만 살펴보아도 크게 변하였다. 즉 중국,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독일, 일본, 영국, 브라질, 프랑스, 러시아로 순위가 전망되고 있다. 더욱이 2075년에는 1위에 10위권의 국가들을 살펴보면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브라질, 독일, 영국으로 나타났다. .

대부분 선진국들은 크게 후퇴하고 난데없이 인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등과 같은 개도국들이 크게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205015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2075년에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즉 한국의 인구가 2075년이 되면 3500만명으로 크게 감소하고 현재 2%대의 경제성장률도 20301.4%, 2050년에는 0.3%로 하락하여 OECD 34개국 중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변수가 인구변동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4차산업혁명과 기후변동이라는 변수도 크게 작용할 소지가 높아 정말 불확실성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인지 되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공부를 조금 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싶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은 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있기 때문에 모든 걸 모르다고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물안에 개구리와 같은 신세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삼모사(朝三暮四)도 모른채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원숭이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준다는 것을 아침에 4,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니 너무나 기뻐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아침에 3, 저녁에 4개 주는 것이나 아침에 4, 저녁에 3개 주는 것은 결국에는 다 같은 내용인데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마냥 좋아하는 원숭이처럼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확실성 시대를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늘 정해진 방향에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논리적, 분석적, 통계적인 접근방법으로 어떤 해답을 찾으려는 수직적 사고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기존의 관념이나 사고에 젖어 편견과 아집을 내세우기 일쑤이어서 세상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적당한 대안을 찾아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사물을 관찰할 때 숲이나 나무만을 고집하지 말고 숲 속에 나무를 볼 수 있는 사고력을 갖춰야 한다고 권고한다.

나무란 당장 앞에 보이는 사물들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숲이란 전체를 보는 눈을 말한다. 따라서 숲속에 나무란 전체를 보는 안목으로 앞에 보이는 사물을 관찰해야만 정확하게 사물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고정관념이나 평면적인 사고의 에서 벗어나 제로 베이스위에서 모든 걸 생각하는 정리하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주어진 정보에 만족하지 않고 제1단계에서 얻어진 정보를 다른 각도에서 선택, 정리하는 수평적 사고를 터득하면 의외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새로운 회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리 신통력을 발휘하여도 알아낼 수 없었던 사실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는데 큰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요즈음 기업경영혁신에서 말하는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 등도 바로 이런 사고의 전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국 질문과 해답이라는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굴려 가는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이 없다면 무슨 질문이 있겠는가?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올바른 답안을 작성할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 크고 작은 문제에 얽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에 골몰하면서 살아가는 노력으로 내일을 기획하고 이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는 평면한 진리를 터득한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보다 큰 발전의 기틀이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당진시는 탄소중립이라는 엄청난 구조 변혁를 앞두고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 이를 맡기고 뒷전에서 이를 평가하고 지원하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담당해 나가겠다고 탄소중립 기본법에서 선언을 하였다.

어찌보면 국내 최고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당진시로써는 중앙정부의 심판을 받게 되는 첫번째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직접 체험해서 멋진 당진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수립, 당진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찾아내야 한다.

 

즉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지자체가 주체자가 되고 이를 탄소인지 예산제도를 도입, 중앙정부는 이를 실현시켜 나갈 수 있는가를 평가하여 지원여부를 결정짓는 마중물 역할만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나무나 숲을 고집하지 말고 숲속에 나무를 보는 관찰자가 되어 당진경제의 미래를 설계하여 정부의 탄소중립 지원 예산을 확보하여야 한다.

이는 곧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평면한 진리를 당진시민들이 다함께 인지하고 내가 직접 주체자라는 입장에서 다양한 방안을 제시, 당진경제를 재구성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된다.

결국 당진시민들이 탄소중립 시민연대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이 기구를 논의하는 플랫폼으로 활용, 멋진 집단지성으로 당진경제의 미래를 멀리보고 큰 그림을 그려내는 슬기를 내보여야 한다.

 

아무튼 당진시 탄소중립 기본계획이 앞으로 30, 50년 당진경제의 미래를 결정짓는 관건이 된다는 각오로 다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당진경제의 미래를 설계하는 주체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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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현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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