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0(월)
 

살면서 저 사람은 정말 훌륭하다라고 믿었다가 그럴 줄 몰랐다’ ‘진짜 모를 건 사람 속이라며 탄식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모습이다. 수많은 위인전의 인물들도 일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명과 암이 교차한다. 어쩌면 그들도 어둠을 입고 빛나는 별들이다. 우리가 아는 링컨은 노예를 해방하고 조각날 뻔한 미국을 한 국가로 건설한 위대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미국 남부 사람들은 링컨을 결코 우호적으로 보지 않는다. 치적에 대해서도 아직 많은 논쟁거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메릴랜드 로욜라 대학의 토마스 딜로렌조 교수가 펴낸 <링컨의 진실>은 링컨을 간교한 정상배이며, 남북전쟁은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해 링컨에 관한 토론을 촉발시켰다.

 

링컨의 진면목은 통념과 다르다는 주장을 폈다. 변호사로서 링컨은 철도 회사 같은 대기업을 변론했고, 흑인을 변호하기커녕 노예 소유주를 법정에서 대리했다. 대다수 북부 사람처럼 흑인을 혐오했다. 링컨은 북부와 서부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보호무역주의자이다. 자유무역을 지지한 남부는 링컨이 남부경제를 파멸시킬 걸로 보았으니, 남북전쟁은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가 충돌한 비극인 셈이다.

 

링컨은 남부의 군사력을 얕잡아 보고 몇 달이면 남부 연합을 굴복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북부 버지니아의 전투에서 북군은 스톤윌 잭슨이 이끈 남군에 대패했다. 그러자 링컨은 느닷없이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대외적으로 북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노예 해방선언은 북군에도 큰 동요를 일으켰다. 남군의 전술에 놀라고 흑인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데 환멸을 느껴 20만 명이 탈영하고, 9만 명이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도주했다. 그러자 링컨은 유럽에서 건너온 부랑자 이민자들을 전선으로 보냈다. 북군은 남부지역을 무참하게 약탈했다. 애틀랜타 등 많은 도시와 숱한 농장, 교회가 불탔다. 남부에 대한 조직적 파괴는 북군 최고 지휘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링컨은 전쟁을 반대하는 신문을 탄압하고, 인신보호 영장을 정지시키는 등 인권을 유린했다. 전쟁으로 무려 62만 명이 사망했는데, 특히 남부 청장년 남성은 넷 중 한 명이 사망했다. 이를 두고 링컨을 지지한 학자들은 이 엄청난 대가가 연방 수호를 위해 불가피함을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런 해석에 반대했다. 영국 등 유럽 국가가 노예 해방을 국가 보상으로 해결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므로 전쟁 불기피론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것이고, 링컨의 진짜 속셈은 보호무역으로 거둔 세금을 철도와 운하 회사를 지원해 정경 유착의 관제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특히 남북전쟁으로 남부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링컨 때문에 중앙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져 정치가 부패해졌다는 것이다.

 

링컨이 아니었으면 미국이 조각났을 것이란 주장에는 이렇게 반론했다. 남부는 단지 연방 탈퇴를 위협했을 뿐, 결국 협상으로 타결됐을 것이고 노예문제도 보상으로 해결됐을 것이라고. 또한 미국 · 스페인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개입해 독일이 완전히 패배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으면 끔찍한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그래도 링컨 때문에 오늘날 미합중국이라는 강대국이 탄생했다고 옹호한다. 미국 역사에서 링컨이 차지하는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과 존중을 받을 자격은 어디에 있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일생을 아프리카에서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 봉사한 슈바이처 박사도 현지에서는 비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 박사가 병원을 세워 구호활동을 폈던 가봉 랑바라네에 이런 글을 쓴 비석이 있다. “슈바이처 박사, 당신이 아프리카에 와서 노벨상도 탔지만 우리 아프리카 사람을 위해서 한 일이 뭐요?”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병을 고쳐준 것은 훌륭한 일이나, 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했어야 옳았는데, 그렇지 않아 결과적으로 자기 명성만 높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매끈하게 정리된 앨범처럼, 깔끔하게 단장한 소셜미디어처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위대한 삶도 시시한 삶도 삶이란 내밀함 속에 교차하는 명과 암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인생인들 반짝반짝 빛나기만 할까. 화려한 샹데리아를 가깝게 다가가 본 사람은 안다. 실망스럽게도 상처 투성이란 것을. 별이 빛나는 것은 상처와 허물을 어둠 속에 묻어주는 밤하늘이 있어서다.

 

약간의 자존감조차 붙잡기가 어려운 세상이 돼서일까? 칭찬보다는 비판에, 끌어내리는 것이 밀어주는 것보다 달콤한 시대를 사는 것만 같다. 서점에서 당신은 옳고,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문구로 가득한 에세이 코너에 가면 마음은 더 착잡해진다. 다들 저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구나.

 

사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사랑과 존중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이를 선뜻 내주지 못하고 타박하는 건 우리가 너무 이기적인 존재여서 일까. 사람은 다 어둠을 입고 빛나는 별일 뿐이다. 누구는 붙박이별로, 누구는 떠돌이별로, 또 누구는 꼬리별로...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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