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젊은 날, 제목에 끌려서 손에 잡은 것이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이었다. 그곳에 무엇인가 허기진 젊음을 눈 뜨게 할 신비함이 있을 것만 같았다.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 표범이 말라붙어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소설은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라는 말로 도입부를 장식했다. 셀렝게티 평원에 있어야 할 표범이 왜 그 높은 정상에서 어슬렁거렸을까?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사람들은 본성이 높이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바벨탑을 쌓다가 저주를 받았듯이 산에 가도 낮든 높든 꼭 정상을 밟아야 성이 풀리고, 사업을 해도 고지를 정해 놓고 등산하듯 정복 전략을 세운다. 그 전략에는 오르는 건 있어도 후진은 없다. 정상에 오르려면 먼저 알아야 하는 하나가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세는 험하고 가팔라서 우리의 인내와 한계를 시험한다는 것.

 

가쁜 숨을 헉헉거리면서 몸을 숙이고 정점을 밟을 때까지 고난의 걸음을 이어가야 한다. 어느 데 건 만만한 정상은 없다. 모든 사람이 억척스럽게 정상에 오르기를 염원하지만 문제는 고지를 밟은 다음에 일어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정상에 오른 후에 나타난 상황은 무엇일까.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방이 가파른 비좁은 정상에서 느낌은 길지 않으니까.

 

마음을 읽는 책을 쓴 서천석은 우리에게 그 점을 묻고 있다. 정상이란 목표와 의미에 대해서. 삶의 목표의미는 다르며,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설 제목이 좋았듯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나에겐 매력적인 노래이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라고 노래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정상을 향한 나의 몸부림이 나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성과주의, 목표주의에 내몰리고 있다. 그것만 이루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혼신을 다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목표 하나를 향해 질주한다. 오르는 것에 천착할 뿐, 왜 올라야 하는지, 오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못한 채. 목표인가? 의미인가? 햄릿이 울부짖는 죽느냐’ ‘사느냐만큼 이를 집요하게 묻고 되물어야 한다.

 

살아보면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기쁨도, 행복도, 그리고 슬픔도, 아픔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는, 하강의 때와 길을 잘 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를 어떻게 찾고 보내느냐가 그다음의 삶을 결정지을 때가 많아서다. 시기를 놓치면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 간발의 차이인데 멀쩡하던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날벼락을 맞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구를 수 있다.

 

지혜로운 삶이란, 이루려는 목표와 찾고자 하는 의미를 잘 구분하고 다루는 데 있다. ‘의미는 언제나 목표위에 두어야 한다. 목표는 삶의 의미를 발화시키는 수단이지 목표가 의미를 지배하면 삶이 변질되어 버린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짧은 인생이지만 1, 2기로 나누어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려고 한다. 1기 인생이 고지를 오르는 수고의 몫이라면, 2기 인생은 수고로 얻은 가치를 선하게 행사하는 것으로 연결 지으려 한다.

 

선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삶의 의미이다. 학문을 얻은 사람은 가르침으로, 기업을 얻은 사람은 수확한 재화로, 예술가는 그만의 재능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이다. 파동을 키우고 울림을 남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상의 칭송은 아니더라도 이 땅에 태어나 몇몇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삶의 파장을 전할 수 있다면, 헛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생을 살아도 삶에서 남는 건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뿐이다. 그 많은 세월을 보내고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시간은 포말처럼 덧없이 날린 시간들이다. 뒤를 돌아보면 안다. 한평생을 살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시간을 합치면 몇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가. 모든 게 풀잎 위 이슬이고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고 굴뚝에서 사라진 연기처럼 흔적도 없다.

 

떨림과 울림을 쓴 물리학자 김상욱이 이렇게 설명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모든 것이 떨고 있다라고. 우리의 삶도 떨림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울림은 무엇인가? 그의 설명이 공감력을 높여주었다.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뿐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심장의 두근거림, 딱딱한 건물도 각자의 진동으로 떨고 있다. 소리나 빛도 떨림이란 면에선 같다. 과학자들에게 모든 건 진동으로 환원된다라고 했다.

 

그 진동에 보응하는 것으로 울림이 있다. “울림은 공명이다. 스마트폰도 주파수가 맞아야 울고, 우리가 엉엉 울거나 깔갈대며 웃는 것도 다 울림이다. 그러나 무수한 그 떨림에 공명을 맞추지 못하면 울림이란 없는 것.”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떨림이라면 울림은 떨림이 주는 선한 영향력에서 생겨나고 파동을 일으킨다. 그것이 우리 가슴이 느끼는 시간이다. 킬리만자로의 말라붙은 표범의 흔적을 보며, 나는 지금 어떻게 떨고 있는가? 삶의 의미를 묻는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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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이 킬리만자로에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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