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때를 지켜서 나 다운 삶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서의 가르침에도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다. 이 시대가 아픈 것은 모든 세대가 자기 때를 지켜 나 다움으로 살지 못하는 데 있다. 젊은이가 꿈을 상실하고 세상 눈치나 슬슬 본다거나, 장년은 장년 다움을 지켜내지 못하고 심약함과 맹종으로 자신의 때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다 한 번뿐인 때와 기회를 훅 날리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깃들 곳이 없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잘 익어간다는 것이고, 성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누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은유했다. 옻칠은 더할수록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인 '생명(生命)'에는 ()에 따라 잘 살라()’라는 뜻이 있다. 살되 혼자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의 삶으로 잘 살라는.

 

성서는 또 인생의 완성은 아름다운 공동체 삶에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한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른 것이나 나그네 된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왕이 대답하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여기서 작은 자는 소외된 우리의 이웃이다.

 

1863년 영국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남부 웨일스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세찬 눈보라가 몰아닥쳐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사방을 향해 울부짖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다음 날 건초 더미를 짊어지고 눈 쌓인 언덕길을 걷던 한 농부가 이상한 형태의 눈더미를 발견했다. 언덕의 한 움푹한 곳에 쌓인 눈을 헤치자 알몸으로 얼어 죽은 여인이 나왔다. 품에는 자신의 옷으로 무엇인가를 꼭 감싸 안은 채. 조심스럽게 옷을 헤치자 숨이 살아 있는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추위에 하나씩 자기 옷을 벗어 아이에게 주고 자신은 얼어 죽었다.

 

엄마의 희생으로 살아난 아들은 훗날 1차 대전 중 전시내각을 이끌면서 베르사유 조약을 성사시킨 34대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였다. 그는 자신을 키워준 농부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어머니의 그 희생을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5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추위가 와도 따뜻한 옷은 사양했으며,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지 않았다.

 

스스로 나태해진다는 생각이 들면, 웨일스 언덕에 올라 눈보라 속에서 아들을 위해 옷을 벗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일생 동안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에 보답하려는 간절함이 그를 영국의 지도자로 키웠다. 세상이 살만하게 느껴질 때는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음에서 난다. 늘 떨림으로 다가온 사랑 이야기는 울림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그것이 사람이 지녀야 할 선한 영향력이다.

 

2019년부터 목마르거든의 필진으로, 독자로, 함께 하면서 매월 새 책이 발간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읽는 글 꼭지가 있다. ‘여기에.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곳엔 아프고 가슴 시린 사연들이 호()마다 빠지지 않고 올라왔다. 사랑의 손길을 펴고 기쁨의 발길을 돌리는 후원자 명단과 함께. 글을 읽다가, 가끔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에 나설 때가 있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누구는 복에 겨워하고, 누구는 찌든 불행에 가슴 떨어야 하나? 같은 시간대에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는 주위에 짐이 될 만큼 오래 살고, 어느 누구는 꽃다운 청춘조차 피어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나? 삶의 모순은 문학을 존립시키는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끊임없는 물음을 원하신다. 왜 일하는가? 왜 감사하는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 나름의 치열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 물음에 깨달음을 갖는다. 일과 인생에서 가장 우선시할 것이 가치관태도에 있다는 것을. 지난해 9월 회사 소유권(41800억 원)을 통째로 환경단체에 기부한 한 기업인의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을 소유하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가 아니었다내 삶을 올바르게 정리할 수 있게 돼 안도감이 든다라고 행복해했다. 쉬나드 회장은 일생을 바쳐 아웃도어계 구찌로 불릴 만큼 명품 브랜드 기업을 키우고도 이를 소유하지 않고 아름다운 나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사람들에게 존귀해지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시는 일을 할 때, 보다 큰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행복감이란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는 감정이다. 삶의 가치는 행복감을 키워나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 때 더욱 또렷해진다. 특히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영역에서 나눔이란 사랑의 행위는 사람만이 향유하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준다. 남이 나에게 무엇이 돼달라고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 이웃에 선물이 되자. 작더라도 기쁨을 전하는 선한 수단이 되자. ‘여기에출간이 더 많은 우리의 이웃들을 보듬는 기회로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우리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자식을 열 둔 엄마는 듣는 사람이 없어도 숨을 쉬듯 입버릇처럼 혼잣말을 멈추지 않는다. 능력이 없고 가진 것 없으니 독백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는 늙은 엄마의 간절한 비원이 이 한 문장에 배어 있다. 그 선한 영향력이 이웃으로 널리 퍼져나갔으면, 그 기원을 책 출간에 얹고 싶다.

-소설가 /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태그
첨부파일 다운로드
이-10.jpg (7.8K)
다운로드

전체댓글 0

  • 3483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그냥 우리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