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가장 혼란스러울 때가 세상이 낯설게 보일 때입니다. 눈을 감고도 찾아갈 것 같은 데 어느 날 갑자기 여기가 어디지?’ 하는 황당함과 마주할 때죠.

 

몽골에 빠져 뼈라도 묻을 것 같은 각오로 몽골승마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광활한 평원을 누비던 친지 한 분이 지난 봄 귀국했습니다. 여행객이 뚝 끊어지면서였지요. 한번 묶인 발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페이스북에 전국을 순례하는 모습이 올라왔어요. 글마다 초원을 향한 그리움과 회귀하고픈 간절함이 행간에 묻어납니다. 이 또한 코로나란 별종이 온 세상을 휘저어 생긴 일입니다.

 

인류도 옛날부터 동물같이 생존하기 위해 이동하며 살았어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이동은 아시아 유럽 등으로 퍼져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 갔습니다. ‘땀 흘려 살라는 원죄의 굴레 때문일까?

 

문명인으로 사는 지금도 초장을 찾아다녔던 예전의 유목민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니, 더 바쁘게 돌아다니죠. 직장 따라, 상품 따라, 공부 따라, 떠도는 글로벌 신()노마드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엔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노마드 욕망이 도사려요. 뭔가를 찾아 순례 하고픈 그 속성 말입니다. 이를 산뜻하게 포장하면 여행이 됩니다. 그래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길수록 여행의 욕망은 더 커질 수밖에요.

 

그 욕망이 봉쇄된 8개월. 다시금 인간은 방목(放牧)’임을 확인합니다. 가슴 설레게 하는 인생의 로망, 여행이란 그런 것. 누구는 나를 찾으러가 나를 버리고 오는 것이며, 나를 버리러 갔다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 했고.

 

다른 이는 우리가 사는 곳을 바꿔주고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어요. 결국 여행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경험함이 되겠지요.가끔은 생판 모르는 곳을 그리워하고, 먼 곳의 사람이 속절없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 전, 헝가리 옥탑술집에서 만난 수염으로 얼굴을 덮은 젊은 미국인도 그중 하나입니다. 오색안경을 걸치고 대마초를 뻑뻑 빨던 그의 화두는 내가 보는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것이었어요. 가이드가 통역을 해 줍니다.

 

내가 타락한 사람 같나? 걱정 마. 다음 생에서는 착하게 살 거니까.” 불교신자라며 천진하게 웃던 그 친구는 지금쯤 지구여행을 끝냈을까? 몽골평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낙타떼

내 지인은 몽골의 별밤을 회상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향수에 젖습니다. "난 혼자서 몽골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몽골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정으로 몽골을 알려면 초원이 부르는 바람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는 유하의 시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를 이렇게 변주했어요. ?나 어느 날 내가 사는 초원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어느 날 나의 초원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승마여행 중에 만난 초원의 무지개와 신비의 구름과 바람들. 광야에 핀 꽃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노을, 이 모두가 소리 내어 나를 찾는 곳. 그곳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는 그 소망이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어요.

 

줄이고 또 줄여본다. 견디고 또 견뎌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접어야 할지 말지. 이 현실이 어지럽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이동이 곧 우리의 미래인데. 어느 날 그 이동이 막혀버렸다. 하늘길, 땅길, 물길도 모두. 텅 빈 인천국제공항에서 인간의 역사가 멈춤을 보았다.”

 

오늘은 17년간 몽골 초원을 함께 달린 낡은 모자 사진도 올렸습니다. 그의 글을 보다 징기스칸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글이 떠오르네요. “빵을 먹는 자 길을 내고, 밥을 먹는 자 마을을 만든다.” 이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계속 걷는 것은 희망이 보여서가 아닙니다. 계속 걸어야 희망이 보여서 입니다.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나,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물리친 어느 훗날에, 참고 이겨낸 오늘을 회상하며 행복감에 젖을 그날을 생각하고, 부디 오늘을 잘 견디시게. 당신은 길을 내는 사람이지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leeletter)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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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모든 길이 다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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