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골드러시를

따라 미 서부로 향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공자는 행복을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행복은 없다고 명료하게 이르고,

인생에는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행복은 눈이 혹할 보석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바위 밑 은밀한 곳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속에 숨겨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 속의 그 사소한 것들, 그 속에 흐르고 있음을

말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행복은 더 이상 파랑새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닌, 바로 우리의 바쁜

일상 속에 스쳐갑니다. 매일 우물에 나가 물을 길어 올리듯 행복도

기쁨도 일상이란 우물에서 길어 올려야 내 것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외롭다고 합니다. 돌아보니 그 많고 아름답던 내 일상들,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도 값진 것들이 허공에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되돌릴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으니 쓸쓸한 것이겠지요.

자식들로 들썩이던 식탁은 소산 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흐릅니다. 전화도

오고 주말이면 찾아주니 반갑기도 했는데 그마저 지난 일. 가깝게 살던

막내마저 지난해 본사가 이전한 진주로 내려갔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

이치가 한 획도 틀리는 게 없을까.

형제간의 소통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통화를 해도 쉬 대화거리가 궁해

집니다. 전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들로 풍성하겠지만 빈 둥지끼리 나눌

것은 그저 건강 걱정이나 해주면 끝입니다.

흉허물이 없는 후배와 만났습니다. 슬하에 두 딸이 있는데 공부를 잘해

다 해외에 살고 있습니다. 큰 딸은 사위와 함께 독일에서 학위를 따고

눌러앉은 지 11년째랍니다. 대학 정교수가 되는 게 꿈인데 아직도

넘을 고개가 많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둘째는 스위스에 있는 유엔 기구에서 일합니다.

직장은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데 사는 게 생각만큼 삼빡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코로나가 휩쓸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궁리를 한답니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자식들 얘기가 격의 없이 오갑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늘 따라 미국과 일본에 둥지를 튼 자식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오늘도 아들 걱정하다 맺는말은 알아서 잘하겠지.”

내일은 손자 녀석이 화상통화라도 줄려나? 그러다가 그래, 이번 주는

시험이라고 했지. 할아비가 깜박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며

생각을 접습니다.

다시 생각은 딸네를 향합니다. 일본에 있는 둘째는 지난 통화에서 아이

교육이 힘들다고 넋두리하던데. 일본은 우리 대학 입시만큼 중학교

입시가 지옥문이라는데. “얘야, 어쩌겠니. 각오하고 살아야지.”

힘든 모습이 한눈에 보여도 이젠 도와줄 힘이 없구나. 그저 잘 되길

기도할 뿐입니다. 하루 삼시 세끼, 잠 잘 때도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감습니다.

제 둥지로 날아간 자녀들과 만든 옛 추억을 더듬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돼 넋두리만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거쳐야 할

여정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 명상에 잠깁니다.

늘 아쉽고, 부족하고, 늘 그리움이 많은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래도

남은 인생이 있고 걸어야 할 길이 있고, 일상이 이어지는 한 희망이란

새 한 마리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아 주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마다 간절해지는 것은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 분만이 내 남은

여생에 삶의 무늬를 함께 짜 주실 분입니다. 식탁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내가 입술을 열어 기도하면 반겨 주시지요.

성경을 펴면 말씀이 두런두런 대화를 걸어옵니다. 예전에 몰랐던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이때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식탁의 축제는

흩어진 지 오래여도, 식탁의 감사는 오늘도 노을만큼 아름답습니다.

저녁 하늘이 노을에 젖는 것은 내일 아침이 있다는 예시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더라도 내일이란 것에 기대를 겁니다. 혹시 모를 일.

생각지 않은 귀한 손님이라도, 전화라도 올지 모를 테니까.

오늘도 붉게 핀 창밖 노을이 식탁으로 날 찾아옵니다. 사랑과 그리움이

절은 빈 의자들, 아내마저 저세상으로 떠난 뒤로는 가족들의 기억이

숨 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커피 한 잔 탁자 위에 놓고 고 장영희 교수가 남긴 영미시 산책

폈습니다. 타고난 장애와 세 번의 암 투병에도 삶의 희망을 노래하던

그녀의 영미시 해설은, 언제 읽어도 기분을 맑게 해 줍니다.

그녀가 자신의 장애를 딛고 살았듯이 우리는 모두 저만의 장애를 갖고

살아갑니다. 몸만 아니라고 마음의 장애도 있으니까요. 그녀가 좋아한

월트 휘트먼의 시 나의 노래가 이젠 나의 노래가 되었죠.

고뇌는 내가 갈아입는 옷 중 하나이니, 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그 상처받은 사람이 된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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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던 노을빛 식탁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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