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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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강(江)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항상 봄처럼 꿈을 가져라, 항상 봄처럼 새로워져라.... 그때는 그 말의 속내가 무엇인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불혹이 넘어서 비로소 그 말에 눈을 떴습니다.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혼신을 다해 생명을 탈환하는 노력을 보고, 어린 자녀들에게 ‘부지런해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을 깨달으며, 항상 봄처럼 꿈을 가져라고 당부했습니다. 화단의 나무에서, 연못과 들에서 움트는 대지의 새눈들이 경이로워 딸아 너도 저렇게 새로워져라고 일렀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여기 서 있는데 왔다간 건 그들입니다. 이젠 아들이 손자에게 같은 말을 전합니다. 부지런해라, 새로워져라, 꿈을 가지라고. 어머니 말씀은 그렇게 대를 이어가며 전해지겠지요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을 잠깐 살다가는 여름밤의 꿈이라지만, 유독 그리움만 겁을 넘습니다. 마치 태양이 헐었다는 소리를 못 들은 것처럼. 이 세상에서 생명력이 가장 길고 영원한 향기를 내는 것, 그리움이 아닐까요?. 사람은 그리움을 먹고 사는 영물입니다. 5월은 많은 생각을 부릅니다. 생각은 그리움을 키웁니다. 어머니는 내게 유독 많은 그리움을 남기셨습니다. 오늘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그리움이 바람을 타고 산과 강을 건너 퍼집니다. 언젠가는 내가 좋아했던 공단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어머니가 저 하늘에서 내려올 것만 같습니다. 부모가 죽으면 불효한 자식이 가장 서럽게 운다지요. 내가 그렇습니다. “서방님은 어머니한테 할 만큼 하셨어요. 우리가 못했지.” 형수님은 늘 그런 말을 해도 나는 잘못한 것만 생각납니다. 그런 일들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왜 그걸 못해드렸을까.” 아쉬움이 커지면 가슴이 시려옵니다. 떠나신 지 30년인데 지금도 어머니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짠합니다. TV에서 어머니 얘기를 듣다 눈시울이 붉어진 적도 많습니다. 지난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아내 바바라 여사(94)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유난히 숱이 많은 순백의 백발은 그녀만의 캐릭터였습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만평 한 컷이 실렸습니다. 그림판 하나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녀의 백발은 결코 화사하지 않은 슬픔이었기 때문이죠. 병을 앓던 어린 딸이 일찍 세상을 뜨자 백발로 변한 것입니다. 얼마나 슬픔이 컸으면, 딸이 그리웠으면, 그녀의 금발을 하루아침에 백발로 만들어버렸을까?.... 그림판은 백발의 여사가 흰 날개를 달고 천성 문을 향해 나르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어린 천사가 흰 날개를 퍼덕이며 그리운 어머니를 영접하러 나오는 장면입니다. 한 컷의 그림판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시키는구나... 그리움이 슬픔이고 슬픔이 그리움이란 것을, 작가가 잘 포착해 낸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리운 날엔 한강에 나갑니다. 오늘같이 안개까지 내린 날이면, 강뚝에 앉아 딱히 정한 곳도 없이 강자락에 싸여 흘러온 세월을 돌아봅니다. 푸른 물 겹겹으로 가슴 휘두르며 나홀로 걸어가셨던 당신의 세상을 생각합니다. 강은 흐르다 돌에 부딪치고 바위에 깨져도 이내 한 물로 흘러갑니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아픔이, 슬픔이 있었을까요.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넉넉한 품으로 안고 가셨습니다. 눈물을 삼키시면서... 그래서 물색이 저리도 검푸른가봅니다. 오늘도 새벽처럼 찾아오시는 어머니, 담장너머 아득한 안개 속으로 문풍지 같은 나의 떨림을 들으시나요? 당신의 자리는 억겁을 두고도 돌아오지 못할 흘러간 강물이신가요?. 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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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3
  • 아빠가 미안하다, 널 몰랐구나
    며칠 전 전국 청소년 글짓기 심사를 끝내면서 갖는 유감입니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받들어 유한재단이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합니다. 올해로 28년째니 연륜이나 규모면에서 전국 규모로 열리는 대표적 청소년 백일장입니다. 올해는 천여 명의 청소년이 아카시아 향이 흩날리는 유한공고 교정에 모여 초?중?고별 글제에 따라 글 향기를 뽐냈습니다. 씁쓸한 것은 ‘내가 아버지라면’ 이란 글제를 놓고 중학생들이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의식 때문입니다. 글제를 택할 때 10대의 자녀들이 평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글을 통해 아버지 상(像)을 유추해보자는 의도가 있었지요. 글제를 내면서 ‘혹시나’ 했는데, 적지 않은 학생에게서 아버지의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못함을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하다는데 불만이 컸습니다. “잘했네” “알았다” “수고했어.” 등과 같은 정감 없는 아버지의 말투에 아이들도 묻는 말에나 답하는 단답식 대화가 늘어남을 알 수 있었지요. 아버지의 칭찬이 있을 때도 그 뒤에 따라올 말에 신경을 쓴답니다. 때 아닌 칭찬이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죠. “그래 그건 잘했어. 그런데 넌...” 한숨까지 섞인 조언을 듣노라면 작은 희망조차 웅크려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칭찬에 목말라합니다. 아버지의 특징으로 감정표현이 없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아버지, 어려운 아버지라고 쓴 학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원합니다. 내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아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빠를 기다립니다. “이리와 봐” 식의 부름보다 격려의 부름이, 사랑의 부름이었으면 한답니다. “넌 왜 엄마를 통해서 말하지?” 아버지의 불만도 이해는 되지만 사실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평소 대화가 부족했다는 방증이지요. 아이들은 철부지가 아니었습니다. 속에 담아놓고 말을 안 할뿐,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도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분일뿐이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날, 친구들과 나눈 에피소드입니다. 어버이 날이라고 아들이 전화를 했을 때, 예전에 우리는 첫마디를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 나다. 기다려 엄마 바꿔줄게” 아들이 그게 아니고요 하면 “벌써 돈 떨어졌냐?” 그래도 아들이 용기를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미친 놈, 뚱 단지 같긴!” 옛날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파안대소했습니다. 자식의 마음을 알면서도 멋대가리 없는 말을 했다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아들이 지금의 아빠들입니다. 대를 이어 배워온 언어의 관습이 그렇다면, 누구를 탓할 입장도 아니지요. 대화도 훈련이 되지 않으면, 끊기고 단절되기 싶습니다. 대화의 부족이나 불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서적 불만으로 이어집니다. 갈수록 멀어지는 아버지,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는 어쩌면 현대사회가 만든 자화상일지 모릅니다. 피곤에 절어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처럼 나가는 아버지... 가뜩이나 어려워진 자영업자 아버지... 그 침통함이 무의식중에 그렇게 비춰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강한 이미지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아이들은 크면서 아버지가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엄마가 자녀들과 대화를 독점하고 있을 때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고 합니다. “나 요즘 힘들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는 아버지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도 느껴졌답니다. 좋은 세상이 된 줄 알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란 존재가 외롭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사람은 태어난 후 ‘아빠, 엄마‘ 로 부르며 성장기를 보내다가 때가 되면 ’아버지 어머니‘로 바꿔 부르기 시작합니다. 멀리 이스라엘에서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고 해 놀랐습니다. 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다 정년퇴임하고 거창으로 내려간 친구 이재철 목사가 전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갔을 때, 누가 아빠하고 뒤에서 부르더랍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스라엘 아이가 자기의 아빠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뜻의 어휘지만 ’아빠‘와 ’아버지‘는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아빠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고, 아버지는 역어인 헬라어입니다. 아빠로 불리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무한책임을 지지만, 아버지로 부르는 아들은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런 역할과 기능이 어휘에 담긴 거지요. 지금은 자녀들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아빠의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헌신으로 아이들을 키우지만, 어느 날이 되면 아버지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름다우려면 아버지가 자녀들과의 대화에 새로운 눈을 떴으면 합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네 맘을 헤아리지 못해서”라는 생각으로. 소설가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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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음악은 천상의 소리
    밤바람이 선득한 주말. 저녁을 먹고 장자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로 청아한 색소폰 연주음이 들려옵니다. 발길이 절로 이끌려 간 곳엔 한 분이 ‘셀프 콘서트’를 열고 있네요. 잔디밭에 앉아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칩니다. 연주력이 준수한데다 가을밤의 정취까지 더해져 색소폰 선율에 젖는 아름다운 가을밤을 즐겼지요. 음악은 사랑을 전하는 신의 소리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지요. 음악은 연주자의 기쁨도 되지만 만인의 즐거움도 됩니다. 연주가의 재능을 부럽게 바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어거스트 러쉬.’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는 말이 잘 어울린 영화지요.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와 촉망 받는 첼리스트 라일라의 보석보다 반짝였던 단 하루 밤 이후, 남자는 그녀를 한 번도 잊은 적 없고,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낳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놓은 적이 없지요. 이들의 믿음 하나는 “음악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라는 것. 부모의 DNA를 받은 아이는 일찍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입니다. 시설에서 자란 11세의 소년은 부모만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뉴욕을 찾아갑니다. 모든 게 신비한 뉴욕. 도시가 만드는 수많은 소리들이 소년의 청각에 음계로 포착됩니다. 소년은 아이들을 모아 거리에서 노래를 시키는 워저드를 만나 어거스트란 이름으로 거리 연주자로 등장해 천부적인 실력을 보입니다. 하루는 소리에 끌려 교회 합창단 연습장에 들렸다가 처음 보는 오선지와 오르간 앞에서 작곡하고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합니다. 이를 지켜본 목사님이 줄리어드에 음악천재로 추천합니다. 줄리어드에서 사모곡 라프소디를 작곡해 주위를 놀라게 한 어거스트. 마침내 뉴욕필하모니 콘서트에 특별 출연자로 초청됩니다. 줄리어드 출신의 유명 첼리스트(엄마)와 함께. 하지만, 연주회를 앞두고 위기가 오죠. 워저드가 연습장에 나타나 아버지라며 친권을 주장하고 데려갑니다. 학교는 간곡히 연주회만큼은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절당하죠. 금관악기가 아이의 영혼을 뽑는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다시 광장 연주에 나서는 어거스트. 부근을 지나던 루이스가 소리에 홀려 찾아오고, 금세 호흡을 맞추더니 황홀한 기타 2중주를 펼칩니다. 어거스트가 오늘 밤 있을 센트럴파크 공연을 알려주지만, 루이스는 귀에 담지 않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만 주고 떠납니다. 그날 밤, 어거스트는 친구의 도움으로 탈주에 성공해 연주장으로 달려가고, 지방공연에 나서던 루이스는 뉴욕 중심가에서 아이 얼굴이 나온 배너광고를 보지요. 전율을 느낀 그도 차를 버리고 연주회장으로 내달립니다. 환호 속에 첼로 연주를 끝낸 라일라가 아이를 생각하며 공원을 빠져나올 때, 줄리어드 총장이 특별초청 지휘자를 소개합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어거스트. 환호하는 청중... 놀라운 자작곡이 그의 지휘 속에 연주를 시작합니다. 밖을 향하던 라일라가 연주음에 끌려 뒤돌아서고, 또 반대편에서는 황홀한 눈빛의 루이스가 나타납니다. 마침내 무대 앞에 이르러 12년 만에 마주 서는 남과 여... 환희의 포옹을 할 때 지휘하는 아이의 모습이 비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지요. 귀를 기울인 만큼 들리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세상의 소리를 옮겨 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천재가 말하죠. “아이들이 동화를 믿듯 저는 음악을 믿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제 음악을 꼭 듣게 될 거야요.” 어거스트의 간절한 믿음처럼 나는 어떤 믿음을 확신하며 살고 있나요?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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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9
  • 내 앉아있는 자리
    스산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니 단풍은 지고 낙엽만 우수수 쌓입니다. 이렇듯 나무도 꽃도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사이즈를 줄이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한 주기의 마지막 겨울을 상대하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 또한 사이즈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몸집이 줄고, 먹는 게 줄듯 이것이 절제의 근본이며 이치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작게 나왔으니 돌아갈 때도 비우고 작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실상과 허상이 공존하지만 스스로 말수를 줄이고, 욕심도 미움도 줄이고, 자랑, 명예 같은 덧없는 것은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이즈가 줄지요. 루디 세네카는 “인간은 마치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꼬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를 알면서도 어제의 습관을 오늘도 고집하고 삽니다.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시나요? 바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보다는 흉금을 터놓고 말할 한 사람의 친구가 더 소중한 때입니다. 친구도, 만남도, 분주함도 지혜롭게 줄여가는 것이 노년의 삶을 가볍게 하고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은 수분이 80% 이상이라고 하죠. 비슷한 비율로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그만큼 물과 말은 몸을 유지하고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말입니다. 내가 살면서 토해낸 말을 양으로 계측한다면 얼마나 될까. 그중 꼭 필요했던 말은 얼마쯤 일까. 이제는 할 말 못할 말, 안 해도 좋을 말, 상처 주는 말을 가려가며 했으면 합니다. 내뱉은 말은 흘러간 세월처럼 돌릴 수 없으니... 그래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많이 들어주자. 듣는 귀는 8로 열고 말하는 입은 2로 줄이자. 남이 말할 때 자르지 말자. 중간에 끼어들지 말자. 말 줄기를 돌리지 말자.” 비위 상한다고 파르르, 욱, 버럭 하는 감정도 이젠 삭혀 없애야 합니다. 행여 그런 상황이 되면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버리세요. 대신 많이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가족, 친구, 이웃, 누구든 만나면 웃는 것으로 말문을 열어요. 나이가 들면 웃는 근육도 굳는다는데, 얼굴에 웃음기마저 빠지면 노인 특유의 표정 없는 일그러진 인상만 남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옻칠을 더하는 것처럼 윤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움이나 시기, 질투는 다 헛된 뜬구름이지요. 뜬구름을 좇다가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아픈 일입니다. 살고 있는 이날,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족해야 할 자리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맘대로 못할 게 뭐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사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살아보니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상의 스승은 없더군요. 사서삼경이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편 입장을 늘 먼저 헤아리면 그것이 상선의 절제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래 저럴 수 있겠다... 나도 그 입장이면... 저도 사람인데.”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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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너도 죽는다‘메멘토 모리’
    말에는 묘한 힘이 있어 곱씹을수록 향기를 내는 말이 있고, 겸손함을 가르치는 말도 있지요. 라틴어는 그런 철학적 의미를 함의한 말과 글이 꽤 많습니다. 언젠가의 기억입니다.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 1인이 된 학생에게 50번 마지막 골든벨 문제가 주어집니다.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쟁취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주위에서 외쳤던 라틴어는?“ “메멘토 모리" 영예의 골든벨이 울리는 짜릿한 순간을 지켜보았지요. 다소 생소한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유래는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개선식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개선장군은 관습에 따라 전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영웅이 탄 마차가 시민의 환호 속을 헤치고 행진하는 동안 뒤에서 노예들이 큰소리로 외쳐댑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승리에 도취된 장군에게 본분을 잊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장치인 셈이죠. 로마 최고의 환대 속에서도 너는 신이 아닌, 한 인간일 뿐임을 알린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세 가지 철학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에 충실하라.’ 이 셋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를 강조했습니다. 췌장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격찬합니다. 그러므로 제한된 인간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 듯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집중하라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뜻이 통하는 라틴어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습니다. 몬래 이 말은 신을 공경하고 오만해지지 말라는,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는 뜻인데 이후 기독교 영향을 받아 현세의 부귀나 영화의 부질없음을 알립니다. 우리에게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죠.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다는 이 말엔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 는 속뜻을 지닙니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명한 노래 ‘아모르 파티’도 같은 말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하는 파티가 합성된 라틴어로 이 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지요.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철학자 니체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미국 남서부에 거주해온 나바호족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그들은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라.”는 의미심장한 철학을 닮고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화무십일홍>까지 모두 겸손한 삶을 가르칩니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인생에게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에 충실하라.... 이보다 더 삶을 성찰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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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5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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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8
  • 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 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 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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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4

실시간 기고 기사

  • 웰컴 투 팝콘
    신록은 꽃철에서 시작합니다. 꽃철은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냅니다. 살아난 산들이 골짝마다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딱히 갈 데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꽃동산을 열어줍니다.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등 색색으로 피어난 봄꽃들이 능선과 골짝을 물들이고, 흥에 겨운 아이들이 쉬지 않고 꽃을 찾아다니던 풍경 속엔 아이들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야, 여기! 이리 와!” 또래 형이 소리치면 아이들은 소리 난 곳을 향해 우르르 비탈을 내달리죠. 와~! 아이들이 지르는 탄성엔 아름다움보다 ‘많다’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봄꽃은 곧 먹는 꽃이니까요. 아이들은 그때가 보릿고개란 것을 모릅니다. 쫄쫄 배를 골아도 사는 게 그러려니 할 뿐. 또래들의 관심은 늘 노는 데만 정신을 팔지요. 그러다 허기를 느끼면 또래 형이 소리칩니다. “야, 산에 가자!”. 뒷산에서 삘기를 뽑아 먹고, 붉은 진달래를 따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습니다. 쌉쌀한 맛이지만 모두들 입술이 물 들도록 꽃잎을 따 먹고 집으로 향할 때면 입술마다 보랏빛에 물들었죠. 음식으로 치자면 요즘 한창인 이팝나무꽃이 더 살갑습니다. 나뭇가지를 뒤덮은 하얀 꽃이 마치 ‘이밥(쌀밥)’ 같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핀다고 입하 목(立夏木)으로도 불립니다. 이팝이 꽃을 피울 때가 공교롭게도 보릿고개와 겹쳤습니다. 보릿고개를 넘던 옛 조상들 눈에는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꽃이 쌀밥으로 보였나 뵵니다. 이팝꽃이 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환영입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압권인 장면은 정적을 깨는 팝콘 판타지입니다.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마을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아픈 서사를 더 저리게 했던 바로 그 장면…. 수류탄이 마을 옥수수 창고로 굴러들어가 터지면서 옥수수가 팝콘으로 튀겨져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사람들 얼굴에 온기를 돌리고, 팝콘이 밤하늘에서 흰 눈으로 내릴 때, 모두를 잠시나마 선한 얼굴로 되돌려 함박웃음을 짓게 했던 팝콘 판타지…. 어제 들린 서울 현충원에도 이팝나무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혼의 넋을 위로하는 지금은, 저보다 맞춤한 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새 정부가 국민 품으로 돌려준 청와대에도 이팝나무 꽃이 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고항인 대구 달성에서 가져와 심었다는데, 올해는 더 풍성하게 피어 ‘웰컴 투 청와대’의 한 자리를 밝힙니다. 언젠가부터 은행나무를 대체해 가로수로 각광을 받더니 청계천에도 가로수에서 흰 팝콘을 터트립니다. 전주 팔복동 철길, 함평 양재리도 그 소박한 꽃송이가 밥사발 가득 흰쌀밥을 얹었습니다. 조선 왕조 때는 벼슬을 해야 이씨가 주는 귀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 ‘이(李)밥나무’로 불렸다는 꽃.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로도 불리지만 이미지는 다 흰쌀밥이죠. 나무에 무슨 귀족이 있고 서민이 있을까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서민 나무의 대표라 할 것입니다. 군락을 이루어 피는 벚꽃, 배꽃, 지금이 한창인 이팝꽃, 아카시아꽃처럼 흰꽃만큼 우리 눈을 환하게 열어주는 꽃도 없습니다. 지금은 산하마다 아카시아가 제철입니다. 오늘도 워커힐을 지나 집으로 가는 아차산로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로 진동합니다. 사시사철 내게 넓은 품을 열어준 아차산의 지금은, 하얀 꽃무리가 구름꽃이 되어 녹색 숲을 덮고 있습니다. 밤에 창을 열면, 베란다를 지나 서재로 들이친 고혹한 향기가 절로 깊은 들숨부터 쉬게 합니다. 아카시아는 서러움의 꽃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밥 대신 따먹던 꽃이었으니까요. 또한 그리움의 꽃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 ‘아카시아’가 그렇습니다.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아카시아 향이 멀어지고 찝찔한 밤꽃 향이 나면, 여름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벌써 봄의 끝자락, 야속한 건 부리나케 폈다 떠나는 봄꽃의 속성입니다. 어쩜 성질머리가 봄을 꼭 빼닮았을까? 삶을 그리웁게 하는 건 배불리 먹고 잘 놀던 기억이 아니라, 힘든 때를 함께 한 사람들과의 기억입니다. 봄꽃은 그래서 애잔하고, 지울 수 없는 얼룩이고, 정겨운 내 기억의 문신이죠.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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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8
  • 어느 인턴 부부
    그렇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더니 그녀가 지금 그 짝인 셈이다. 여자 나이 서른셋, 여자로 익을 만큼 익은 나이지만, 지난해 가을 시집을 보내던 친정어머니의 표정은 만 가지가 다 안쓰러움뿐이었다. “어쭙잖게 나이만 찼지 살림을 아나, 세상 물정을 아나, 그저 신랑 하나 좋아 헤헤대며 따라나선 내 꼴이 꾀나 철딱서니 없어 보였겠다…. ” 이제야 느끼는 감정이다. 신랑 떨어져 시부모 모시고 한 번 살아봐라, 눈물이 쏙 빠질 테니까.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런 집안이 있니? 신랑은 발령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고 새색시는 시집에 그냥 눌러있게 하다니 그게 뭐하는 짓이랴? 며느리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우리 집 가풍이 그렇다고 주접떨 때 하 서방 내 그때 알아봤다…. 눈시울까지 붉히며 지난 설 명절 때 처음 친정에 들린 딸을 보고 이것아, 얼마나 고생이 되면 얼굴이 반쪽이냐 하며 타박하던 엄마 모습이 아릿하게 눈에 밟히는 것도 요즘의 그녀 마음이다. 겁 없이 덥석 시댁 생활 1년 약속을 받아들인 게 잘못이다. 친정 동생이 군에서 제대할 날짜를 꼽느라 달력에 엑스표를 치며 살았다는 말이 지금의 심정 이리라. 아직도 여섯 달이 남아 있다. 말이 신혼이고 단꿈이지 지금 그녀에겐 이것도 지옥이구나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 신랑 꽁무니 잡고 따라나섰어야 했는데, 시부모 마음 헤아려 입술을 깨물다가 신랑만 서울로 보낸 것이 원초적인 죄다. 그렇다고 시집살이가 고된 것은 아니다. 외관상으로는 투정 부릴 것이 없는 비교적 후한 시집 여건이었다. 끔찍이도 막내며느리라고 되레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다. 식구라곤 두 시어른뿐이니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나 편하다면 한없이 편한 시댁이었다. 단 하나, 신랑이 돌아오는 주말까지 혼자 독수공방을 하는 것이 큰 흠이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 하나님을 부르짖어야 할 정도로 고독과 쓰라림이 아긋아긋 벌어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약속한 것 아냐? 열 달 참지 못 하겠냐고! 서울에 혼자 있는 나도 힘들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앙앙거리는 색시를 얼리다 달래다 하던 신랑도 괴롭다는 듯 말을 했다. 마침 주말이 돼 시부모가 결혼식이 있다고 일찍 나가셨겠다 그녀는 그동안 별러온 남편과의 일전을 작심하고 달려들었다. 남자는 신혼 때 꽉 잡지 못하면 평생을 후회한다는 선배 언니 말을 되살리면서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굵지도 않은 손목이 드러나도록 팔을 칭칭 걷어 부치고 입에 억지 거품을 물었다. 어둠이 내린 저녁녘 부모님이 돌아오기까지 젊은 내외는 찬물을 벌컥 들이키며 설전에 냉전을 거듭한 결과 성에는 안찼지만 그래도 맘이 후련한 것은 여자 쪽이었다. 현실이 현실인 만큼 어차피 올가미를 벗을 수 없는 쪽은 색시란 것을 신랑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나도 괴롭다. 힘들다. 나 이렇게 달력에다 매일 같이 X표 긋고 사는 사람이야.” 신랑은 양복 주머니에서 깨알처럼 날짜 위에 X표를 그어댄 손 달력을 여자에게 내보이며 탄식했다. 순간 코끝이 찡해온 건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멍청하긴 사내대장부가…. 그 속도 모르고 신랑만 닦달한 자신이 좀 심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이 스쳤지만, 눈을 질끈 감는 게 상책이다. 어쨌거나 이날을 계기로 남편과 어른 간에 어떤 내막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지만 시어머님이 묻지도 않은 말을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아가, 지금은 이 생활이 쓰겠지만 좀만 참아내면 훗날 다 약이 될 거다. 있는 날까지 남편한테 투정 부리지 말고 잘해.” 뜻 모를 시어머니의 말이 그녀의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아직도 엄마엄마 해가며 미주알고주알 다 쏟아내는 신랑의 얼굴이 야지랑스럽게 떠올랐다. 아직도 마누라 치마폭으로 못 들어오고 엄마 치맛자락에 놀고 있는 남편이 철없어 보이기도 딱하기도 했다. 방에 들어와 쪼그리고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삐죽 흘러나왔다. 그래 참자.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그르칠 수는 없잖아. 얼굴을 거울에 들여대고 화장을 고친 후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고대해온 주말 저녁, 땅거미를 밟고 허청 대며 신랑이 집으로 들어왔다. ‘색시야 나 왔어’ 방싯거리는 신랑의 모습, 그래도 반가운 건 신랑이었다. 한 주간의 고단함을 씻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들어와 봐, 오빠 나보고 싶었어? 정말?” 안방에서 인사하고 나온 신랑을 방으로 밀고 들어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딴에는 정제하며 털어놓을라 치면 영 손발이 안 맞고 어긋나기 일쑤다. “아직도 애네 우리 색시. 자 어서 나가 저녁 해야지. 어른들 시장하시겠다.” 분위기 좀 잡으려고 하면 이런 식으로 찬물 뒤집어쓰고 색시는 부엌으로, 신랑은 안방으로 각자 약진을 해야 하는 아픔을 씹어야 했다. 그때마다 야속한 사람 얄미운 사람, 색시는 소금장수 물 키듯이, 섭섭함으로 헛배를 키우며 부엌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그러한 색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신랑은 안방에만 들어가면 하세월이었다. 연속극이 다 끝나고 엄마가 TV를 끌 때까지 자리 보존하다가 야심해서야 색시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아직 안 잤어? 피곤하잖아?” 저 뻔뻔! 몰라서 저럴까 알면서 능청일까. 색시는 등을 돌려 누며 눈을 감았다. 신랑이 등 뒤에서 수작을 걸었지만, 오늘 내가 꼼작이나 하나 봐라. 어림없지. 신랑의 손이 닿을 때마다 달팽이처럼 몸을 말아 틈을 주지 않으려고 오기를 부렸다. “색시야, 또 삐친 거야? 미안해.” “뭐 하러 왔어? 그렇게 좋으면 엄마랑 자지 왜. 여기 잠자는 하숙집 아냐.” 존심도 상해 생각 같아서는 밤기차에 올라타고 친정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주말에 내려왔다 하면 안방에 무슨 꿀단지라도 박아놨나 낄낄대다가 과일 찾고, 커피 주문하며 그 넉살을 혼자 다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참 태평천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색시야. 질투할 게 따로 있지, 그러지 마. 엄마와 난 선택의 대상이 아냐.” 어쩌면 신랑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말이라도 자기밖에 없어 왜 말 못 하는 거지? 편의 주의자, 이기주의자 남자란 다 저 모양일까. 생각이 이쯤 미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결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때늦은 후회가 폴싹 거리기도 했다. “나도 자기 맘을 다 알아. 하지만 저녁 숟갈 놓고 바로 일어날 수는 없잖아. 보기에 그렇잖아. 우리 이 집에서 사는 날까진 어른 중심으로 살자. 나도 불편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 피곤하다고 하고 나오면 안 돼? 아님 몸이 안 좋다고 하던지. 그런 주변도 융통도 없어? 턱을 차고 넘어오는 말마디를 문질러 삼킨 색시는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남편은 갑자기 어진 신랑이 되어 아내의 눈물을 닦아준다. “우리 각시도 어쩔 수 없는 여자군.” 그래 나 속 좁다. 그러는 오빠는? 색시는 입에서 오물거려지는 말이 있었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말하고픈 의욕도 기력도 없어진 듯했다. 자기가 무슨 독립투사야, 입만 열면 대의를 위해서고, 가정 평화고 더 이상 그런 구호에는 신물이 넘어온다. 그런데 신랑은 한발 더 나간다. “내가 안방에 앉아 좀 있기로, 그런 식으로 시위하는 건 지혜롭지 않은 거야. 밖에서 괜히 콩콩 소리 내어 걷고 기침하고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지 좀 말자.”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알긴 다 알고 있었구나. 저 거미줄 같은 탄력 좋은 감성으로 어쩜 하나뿐인 자기 사람에게 저렇게 차고 이성적일 수 있을까. 이질적인 개체들이 하나의 동질로 이루어가는 게 부부라면 우린 애 저녁에 그르친 건 아닐까…. 이 같은 실망감이 들기 시작하면 섬뜩하다. 이 날따라 서방님은 자정이 돼서야 안방에서 돌아왔다. 혼자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가에 치약의 거품 같은 웃음을 베어 물고서. 저런 웃음을 가증스럽다고 하는 게지. 마음이 상한 색시는 남편을 보고 등을 돌렸다. 언제 옷을 벗어던졌는지 이부자리에 들어오는 남자의 맨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색시는 도망치듯 등을 앞으로 밀어갔다. “색시야. 얼굴 들고 날 좀 봐봐.” 신랑의 팔이 어느새 색시의 목과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색시의 식어빠진 눈빛이 태양처럼 환한 서방님의 눈빛에 부시었다. “색시야. 엄마가 오늘 승낙하셨어. 기을에 살림을 내주시기로 했어.” 색시는 서방님의 달뜬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가슴을 때리는 천둥소리였고 예리하게 꽂히는 비수의 칼끝이었다. “그 따가운 색시 눈총 참아가며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모를 거야. 입 악다물고 이날을 기다려왔는지 색시는 모를 거야. 이 속 좁은 여자야.” “진짜? 정말 어머님이 그러셨단말야?” “ 아님 가짜라면 좋겠어?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조기 졸업하려고. 그것도 모르고 앙탈만 부리고.” 오 마이 갓! 이들 둘은 으스러지게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토록 이질적으로만 느껴왔던 서방님이 이 순간처럼 동질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란 걸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미안해 난 그것도 모르고 오빠한테 투정 부렸어, 사실 내 맘은 그런 게 아녔어. 알아 다 알아. 온몸이 장작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동창이 열리고 아침 해가 한 발도 넘게 떠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에 새댁의 그림자가 보이질 않았다. 시어머니가 밥을 짓고 아침상을 다 차렸는데도 기척이 없다. 밖에서 시아버지의 헛기침소리, 야들아, 야들아! 시어머니의 애끓는 부름도, 백방이 무효였다. “연탄가스 마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 문이라도 뜯어야겠네.” 허겁 대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요령처럼 꿈결에서 흔들렸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다 문짝 뜯는 소리가 날 때, 젊은 내외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오빠, 이를 어쩜 좋아?” 두 사람의 눈빛이 난감하게 엇갈렸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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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5
  • 4월의 노스탤지어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의 끄트머리 30일에,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4월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노래입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만큼이나 반가웠습니다. 목련꽃그늘 아래로 스며드는 서정이 그러합니다. 피리 하나 들고서 구름꽃 언덕을 넘어, 이름 없는 항구를 돌고 돌다가, 그러다 찾은 것이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이라면, 그래도 4월은 찬연하고 선연합니다. 늘 멜로디에 사람의 얼굴을 얹거나 모습을 떠올리며 불러야 제 맛을 내던 노래…. 학창 시절 무지개로 떠오르던 얼굴들은 지고, 지금은 노래 구절마다 흔적 없는 세월의 연민이 뒤따를 뿐입니다. 1953년 산하를 핏빛으로 물들이던 6.25전쟁이 끝날 무렵. ‘학생계’라는 잡지에서 학생들의 정서를 다독이고 희망을 노래하는 곡을 만들려고 두 분에게 작시와 작곡을 의뢰했습니다. 노랫말은 박목월 시인이 시로 짓고 작곡가 김순애 선생이 곡을 붙여 태어난 노래가 ‘사월의 노래’입니다. 노래가 잡지에 실린 후,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피리불던 추억을 노래했습니다. 꽃다운 청춘들이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참혹하게 희생된 전쟁의 잿더미 위로 다시금 피어날 봄을 사모한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시론(詩論)을 가르친 박목월 선생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목련화가 화사하게 핀 목련목그늘에서 책을 읽는 여학생의 얼굴을 상상했다. 파란 하늘에 뜬 흰구름, 눈부신 흰꽃과 하얀 학생복을 입은 여학생이 조합 된 순백의 아름다움을…. 구차한 피란살이와 숨 막히는 생활에서 벗어나 동경의 세계로 훌훌 날고 싶은 계절의 유혹을, 젊음이 누릴 수 있는 낭만과 그리움에 담았다”라고. 세월은 가고 4월 끄트머리에 다시 찾아온 ‘4월의 노래’. 아름답다 못해 서늘하기조차 한 목련목 그늘아래... 음미할수록 파란 하늘에 떠도는 구름 위로 아련하고 아득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 대신 이어폰을 끼고, 눈물 어린 무지개를 눈물 없이 흥얼거리고, 이름 없는 항구 대신 이름 있는 항구 여수항을 떠올리면서 찬란한 5월의 모란을 기다립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는 얼마나 자랐을까? 지금이 모란이 필 때가 아닐까? 조금만 지나면 감꽃도 아카시아도 필 텐데. 그냥 들판으로 나가고 싶다 순백의 생명이 등불을 밝히는 들판으로….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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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솔로몬이래 세계최고의 부를 획득한 소수의 사람들만 알아온 성공 비결과 의미를 풀어낸 책이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입니다. 2011년 처음 대했는데, 집콕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어요. ‘캅베드’는 ‘공경하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유대교 랍비들이 신을 경외 한다는 의미로 쓰지요. 또한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적용한 열 가지 원리 중 하나를 기록한 양피지 두루마리 이름이기도 하답니다. 터키를 여행하던 주인공 윌리엄이 우연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을 도와주었어요. 그러자 자신을 선박왕 오나시스로 밝힌 노인이 그 보답으로 세계의 거부로 만들게 한 비밀의 양피지를 선물합니다. 책의 내용을 집약하면 ‘헛되이 살지 마라.’ ‘진심을 다해 공경하라.’ 메시지가 간결합니다. 억만장자 선박왕 오나시스처럼 원 없이 살아도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말은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였어요. 무대에서 매혹적으로 노래하는 마리아 칼라스에 매료돼 결혼하지만, 여자로서 부족함에 실망한데다 권태감만 키워 8년만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하죠. 어떻게 그럴 수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이 결혼도 1년도 못 가서 “내가 큰 실수를 했다”며 남자가 가슴을 칩니다. 오나시스는 이혼을 위해 자문을 받지만 여자가 요구하는 위자료가 엄청나 포기하지요. 한 달에 수십억 씩 펑펑 써대는 소비벽도 문제지만 온 종일 책만 붙들고 있는 것도 불만입니다. 재클린은 아랑곳 하지 않았어요. 독서는 그녀의 빛나는 자존감이었고, 세상 어디서 누구와 만나도 풍성한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니까. 하지만 이들에게도 불행은 찾아 옵니다. 사랑했던 외아들을 비행기 사고로 잃자 이에 충격을 받은 오나시스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뜨죠. 재클린도 드센 팔자로 불운한 삶을 살긴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남자를 둘씩이나 남편으로 맞고도 세상을 앞세워 보낸 재클린은 또 다른 남자와 세 번 째 결혼을 했어요. 이마저 얼마 가지 못하고 낙마 사고로 고생하더니, 끝내는 림프종암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칩니다. 천하의 바람둥이요, 천부적인 사업 능력으로 억만장자의 호사를 다 누린 오나시스도 죽음을 앞두고 자책했습니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처럼 던지고 간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하는 여자와 살아도, 당대 최고의 여인과 만나도,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인생을 생각한 사람입니다. 오나시스가 남긴 삶의 긴 서사에는 간결하지만 확실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공경이란 무엇인가?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원리로 사용한 창조의 비밀인 캅베드는 공경의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어요. 첫째, 공경하는 대상의 말을 잘 들어라. 둘째, 공경할 대상을 기쁘게 하라. 셋째,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지요. 공경해야 할 대상도 알려줍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이요,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요, 남은 하나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진심을 다해 공경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창조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지요. 존경은 그것을 받을 만한 상대에게 바치는 정성이요, 존경엔 대가가 없소. 그러나 공경은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바치는 정성이요. 따라서 공경엔 언제나 대가가 있소. 난 처칠을 존경하지 않고 공경했소. 그에게서 내가 원한 것은 다 얻었다오.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지. 놀랍지 않소? 사람의 미래는 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된다는 사실 말이오. 신이 그런 방식으로 인간을 창조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소. 그러나 이를 사람들은 모르오. 알려줘도 믿으려 하지 않소. 지금 내 밑엔 수백 명의 사장들이 있소. 그 밑엔 수만 명의 사원들이 있소. 재미있는 것은 사장은 늘 사장처럼 생각하고 일하고, 사원은 늘 사원처럼 생각하고 일한다는 것이오. 작아보이지만 사실은 큰 차이를 만든다오.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며 그것이 결과로서 이어지고 그 결과가 다시 생각으로 지속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이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실제로는 그대로인 것이오. 사람의 입장이란 같은 걸 보면서도 전혀 다른 사실을 만들어요. 예를 들어 보겠소. 여기 이 컵을 보시오. 내 쪽에서 보면 이 컵의 손잡이가 오른쪽에 붙어 있소. 하지만 당신 쪽에서 보면 왼쪽에 붙어 있잖소? 하나 더 예를 들겠소.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사원은 돈만 밝히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원 입장에서는 다르오. 사장이 돈은 조금 주고 일만 많이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오.? 캅베드의 결론은 이렇게 귀결됩니다. 공경이란 언제나 받는 쪽보다 하는 쪽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죠. 진정한 공경은 자기 자신을 공경하는 것이 캅베드의 근본 원리라고 밝혔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근거이자 이유기도 하죠.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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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8
  • 내 삶 자체가 내 스펙이다
    어느 사람이 코로나-19로 죽은 사람이 대부분 노인이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살아봤자 몇 년인데 이참에 다들 가시면 고령화도 막고 부양을 책임져야 할 젊은 세대의 짐도 덜지 않겠느냐고요. 웃자는 소리겠지만 사람들은 곧잘 불온한 생각을 합니다. 말대로 세상에 노인들이 한순간 다 사라지면 사회가 젊어지고 활력이 넘쳐 삶의 질이 크게 향상 될까요? 마오쩌둥 시절, 중국 전역에 나붙은 포스터가 있었죠. 소년이 새총으로 참새를 겨냥하고 있는 그 유명한 참새 포스터입니다. 1950년대 후반, 농촌 순시를 마치고 온 마오쩌둥이 인민의 식량인 곡식을 대량 축내는 참새를 박멸하라는 지시를 내렸지요. 그 결과 한 해 동안 2억 마리의 참새가 사라졌다고 해요. 박멸 작전은 성공해 보이는데 기다린 풍년이 왔을까요? 참새가 사라진 자리엔 생각지 못한 메뚜기 떼와 해충들이 들끓어 풍년은커녕 심한 흉년을 겪습니다. 계속된 흉년으로 1958년부터 3년간 2500만 명이 굶어 죽는 비참하고 끔찍한 대참사를 내고 말았지요. 다급해진 정부가 소련에서 참새 수십만 마리를 긴급 수입도 해보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도 쥐떼의 창궐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지요. 그러자 나라가 나서 쥐 섬멸을 목표로 쥐꼬리를 가져오면 포상금을 주는 시책을 폈어요. 문제는 포상금은 늘어나는데 쥐가 줄지 않는 것입니다. 꼬리만 자르고 쥐들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죠. 쥐를 번식시켜서 더 많은 꼬리를 얻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 제도도 실패로 끝날 수밖에요. 세상엔 거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존재 이유가 다 있으니까요. 남녀노소, 유익균과 유해균, 익조와 해조가 필요에 의해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존재합니다. 자연 질서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게 먹이사슬입니다. 그것이 밸런스를 유지하고 못하느냐에 따라 생명권의 안녕과 재앙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지쳐 희망을 접었다는 학생이 연구실로 교수를 찾아왔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 왔는데 부족한 성적 때문에 기업의 해외연수생 모집에 응시를 못한다고 눈시울을 붉힙니다. 정말 잠 안 자고 안 먹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지금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했어요. 교수는 그 학생의 성실한 생활 태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 스승은 학생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까. 스승은 제자에게 말합니다. “네가 살아온 삶이 네 스펙이다.” 접수부터 하라고 권했습니다. “학점이 'all B' 이상여야 하는데 C가 하나 있어요.” 스승이 제자 등을 두드리며 “학점이 다가 아니다. 너만의 스펙이 있잖니? 추천서는 내가 해주마.” 결국 학생은 선발되었고, 1년 연수를 성실하게 마치자 곧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됩니다. 그리고 런던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내가 살아온 것이 내 스펙’이라고 알려준 스승의 한마디가 절망의 어둠 속 인생을 부활시킨 겁니다. 스승의 그 한마디에 열등을 치유하고 온전한 자유를 찾은 제자는 런던에 부임한 첫날 밤, 비 오는 테임즈 강가에서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스승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립니다. 희망, 꿈, 환상, 미래까지 다 덮어요. 그러나 칠흑의 어둠도 한 줄기 빛에 날아갑니다. 영화 ‘미션’ 첫 장면에 성경 구절을 인용한 자막이 떠요.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과 역경이 따라붙지만 그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어딘가에 열려 있다고 하죠. 인생이 매력적인 것은 ‘고난을 거듭할수록 지혜는 쌓이고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바로 앞에 두고 쓰러진다고 해요. 터널 끝을 눈앞에 두고. 시련의 순간을 좀만 더 견뎌냈더라면 승리할 텐데. 이 고통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지상의 언어요 약속입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해 줄까요? 나는 나다운 멋이 있고 재능을 지닌 존재입니다. 가치를 모르거나 비하하고 있을 뿐이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이가 역경에서 이깁니다. 올 한 해 주눅 들지 말고 어깨를 쫙 펴고 계속 걸어요. 때가 되면 내가 바로 비장의 무기랍니다. 가장 완벽한 정보는 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것과 아슬아슬하게 패한 것에 있습니다. 그게 나입니다. 터널은 끝이 있고, 나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기다립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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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소꿉놀이 하는 인생
    은퇴한 친구가 시골에 집을 마련해 내려갔습니다. 그는 귀촌하면서 두 가지를 꿈꾸었는데 하나는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읽는 것이고, 하나는 나무를 심고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지고 싶다 했어요. 이사 한 달 뒤, 괴산으로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미처 정리가 안 된 탓이지만, 비었던 집을 사람 온기로 채우기엔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200평의 너른 텃밭은 풀과 나무들로 어지러웠죠. “정신 사납지? 다음에 오면 나아질 거야.” 친구가 입막음부터 합니다. 하긴 남의 집에 손댈 필요는 없겠지요. 연로한 집주인이 서울 아들네로 가면서 세를 놓은 집입니다. 을씨년스럽던 집안이 갈 때마다 변화가 보입니다. 2년 뒤 찾았을 때는 마당과 텃밭 뒤란까지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지요. 시골생활이 싫다던 아내가 내려오고 집도 매입하면서 시골생활이 정갈해 보였습니다. 친구는 때마다 나무를 심었습니다. 감나무, 대추나무 같은 과실수부터 심더군요. 제사상에 쓰이는 과일을 직접 재배해 올리려는 알뜰한 조상 숭모의 마음이 은연중 배어나옵니다. 이어, 계절마다 꽃과 열매를 보려고 매화, 명자, 매실, 살구, 백일홍에 배롱나무, 단풍나무 등을 텃밭에 심습니다. 이주 6년이 되자 그의 집엔 아직 굵지 않은 대추나무에 꽃이 지면서 콩만 한 열매가 달렸어요. 비바람 속에 열매들이 여물어가는 걸 보노라면 생명의 경이도 놀랍지만 모진 세월을 견딘 여린 열매가 대견합니다. 대추나무는 피는 꽃마다 열매를 맺는 속성 때문에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로 일찌감치 제사상 과일로 택함을 받았지요. 그의 말처럼 나무를 심는 것만큼 윤리적 생명관에 부합한 일도 없어요. 그 과정에서 몸에 기생하고 있는 미움과 증오, 화기를 누그러뜨리고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키웁니다. 자식들이 짝을 만나서 제 삶을 찾아 떠나자 덩그러니 두 내외만 남은 것은 친구나 나나 같지요. 내 인생은 살뜰하지 못했어도 아이들이 늠름하게 자라 제 길을 간 것이 대견하고 고맙다는 마음도 같습니다. “사실 사람도 나무처럼 스스로 크는 것이거든. 부모는 그저 걱정할 뿐이고.” 집안에 온기를 찾으려고 들인 누렁이가 그 사이 새끼를 낳고, 새끼가 새끼를 낳고 낳아 젖을 물려 살뜰히 기르는 걸 봅니다. 몸에 생명을 품고 낳아 세대를 잇는 건 생명체의 숭고한 본분입니다. ‘자식농사 반타작이면 잘 한다’라고 한 시절이 있었죠. 전란과 질병으로, 사고로 자식을 앞세웠던 아픔들. 모든 것이 열악했던 그리 멀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생명은 다 비슷한 삶을 살아요. 나무도 운명이 있는지 살고 죽는 게 각각입니다. 어떤 나무는 심었으나 한 겨울을 못 넘기고 죽고, 영양제 링거까지 놔주며 정성을 쏟는데도 살지 못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열을 심으면 서넛은 그렇게 죽어요. 나무는 제가 선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수행자와 같이 서서 시련을 견디며 열매를 얻습니다. 모든 걸 바쳐 구한 열매들입니다. 그것이 열매나무의 소명입니다. 2월임에도 울안에는 이름 없는 들풀이 숨죽인 채 봄기운을 머금었어요. 자연생도 있지만 이 집 마님이 여기저기서 분양받은 야초도 많습니다. 약이 없던 시절엔 다 비상약으로 쓰이던 것들입니다.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인 집에는 봄의 전령사들이 곳곳에 숨어있어요. 눈을 헤치니 밟아도 죽지 않는다는 질경이가 모진 생명을 키우고, 돌 틈 사이로 싹을 보인 쑥이며 민들레가 벌써 봄 마중에 나섰습니다. “자연은 생각지 않은 선물을 안겨요. 좀 있으면 울안은 약초밭이죠. 자라는 모습에서 행복감을 느껴요.” 말하는 아내가 친구보다 더 자연에 심취돼 보입니다. 무조건 뽑아내던 풀들이 다 친구가 되었답니다. 오늘은 아무렇게 자란 질경이를 뿌리부터 씨까지 그대로 말렸다며, 생강과 대추를 넣고 우려낸 차를 내옵니다. “토종 허브 차에 맛 들린 뒤론 싸놓고 마시던 커피 같은 차들은 다 뒷전으로 밀렸어요.” “우리 이렇게 소꿉장난하며 산다네.” 그 말에 모두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연과 소꿉놀이한다는 친구의 말이 그렇게 곱기도 하고 또 서늘한 것이, 흙 묻히며 소꿉놀이하다 엄마가 부르면 다 놓고 가야 하는 인생 같아서죠. 순박한 친구의 주름진 얼굴이 차창 밖 노을에 흔들립니다.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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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1
  • 벚꽃 엔딩과 이등병 편지
    봄이 성급한 매스컴의 기상나팔로 잠을 깨더니 어느새 절기는 청명을 돌아 곡우로 향합니다. 이정표가 바뀌는 이맘 때면 생명의 외경함이 생살처럼 차오르는 섬진강 꽃길이 떠오릅니다. 강가엔 우렁이가 알을 까고 마른 갈대 위로 개개 개~ 우는 개개비가 청아한 울음을 높일 때입니다. 강을 찾아와 주인이 되고 둥지를 틀어 사랑을 나누는, 곳곳이 생명 에너지로 넘쳐납니다. 물고기와 새들하며 곤충들까지, 섬진강 갈대숲은 무수한 생명체에게 번식처가 되고 은신처가 되는 곳. 봄은 생명의 태반입니다. 한 해를 살아도 혼신을 다하는 생명의 탈환 모습은 늘 경이롭습니다. 암록빛 섬진강을 품은 산과 들엔 꽃보라를 날리는 봄의 지령(地靈)으로 충만하고, 나무마다 움이 돋고, 순이 나고, 연녹색 잎들로 우중충했던 회색 산들이 살아납니다, 봄꽃들도 찬란한 빛을 찾았습니다. 하동의 벚꽃.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십리는 모두가 꽃길입니다. 입안 가득 피어나는 웃음꽃들. 낯선 객은 친구가 되고, 우연은 필연이 되는, 누구와 만나도 어질고 반가운 봄날이 흐릅니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피어오르던 날…. 산길을 재촉하는 동자 스님에게 길을 묻다가 짧은 동행의 연이 시작됩니다. 가깝게 절이 있으니 스님과의 조우가 낯설 일은 아닙니다. “지금은 어딜 가도 도량(道場)이지요. 걷는 것도 수양입니다.” 정다운 인사를 남기고 잠잠히 걸어간 그 단아한 눈빛의 동자 스님은 올해도 쌍계사 꽃길을 밟을까. 윤중로에도 벚꽃 계절이 한창입니다. 화사하게 폈다 바람처럼 흩어지는 자연의 순환은 늘 같은 이름이어도 가슴에 닿는 느낌은 매 해 다른 것이 언제는 아픔으로, 기쁨으로, 그리움일 때도 있습니다. 요즘 거리에 흩날리는 노래는 단연 ‘벚꽃 엔딩’입니다.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몰랐던 그대와 손잡고 둘이서 걸어요~” 어쩜 저렇게 장범준의 목소리가 벚꽃 잎에 살랑이는 바람일까. 버스커버스커 그룹으로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장범준이 ‘벚꽃 엔딩’을 발표한 때가 2012년인데, 봄의 생글생글한 분위기는 올해도 여전하고, 벚꽃 좀비들로 이 계절을 에워쌌습니다. 100억 이란 저작권료를 벌어들이며 ‘벚꽃 연금’이란 신조어까지 만든 ‘벚꽃 엔딩’은 가히 국대급입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들~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하지만 내겐 같은 해 나온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더 달달합니다. 벚꽃이 빗속에 흩날리는 청풍 호반 버스 안에서 듣던 ‘이등병의 편지’가 저리도 붉은 날의 추억으로 흔들리는가. 그것은 옛 신작로, 길 끝에서 흙먼지 일으키며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고, 아련함이고, 아득함입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전국 산하마다 발길 닿는 곳에 봄꽃들이 꼬리를 물며 지천으로 필 때, 꿀벌들의 역사도 꽃보라 속에 흩날립니다. 개천에서 몸을 푸는 은어떼와 춘광 아래 꽃들을 꺾는 해맑은 아이들 웃음까지…. 돌담 넘어 보리밭 이랑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하며, 그 위로 수직 비행하는 종달이의 울음까지, 모두가 주연급인 봄의 향연은 늘 어질고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펴주는 한 움큼 하늘의 은총이고요...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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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이어령과 그의 딸 민아
    이어령 선생이 지상의 언어를 내려놓고 세상을 뜨면서 세간의 입에 오른 것이 그의 딸 이민아 목사입니다. 아버지보다 10년 앞서간 딸이 다시금 사람들 기억에서 되살아난 것입니다. 부녀 사이지만 서로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딸의 간절한 기도는 무신론자 아버지를 ‘지성에서 영성으로’ 쉽지 않은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성경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던 아버지를. “내가 노아라면 혼자 살기 위해 방주를 짓지 않았을 것”이며, “신(神)은 “6.25 전쟁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반문하던 아버지의 견고한 이성을 무너뜨린 것은 딸의 영성이었습니다. 사랑했던 딸이 망막박리로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어령은 처음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내 딸에게서 빛을 거두어 가지 않으신다면 남은 저의 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2007년 이어령이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성의 높은 탑에서 스스로 내려온 겁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낯선 영성의 길을 찾아 기독교에 귀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7개월 뒤 딸이 눈을 떴습니다. 딸의 실명이 아버지의 회심을 불렀다면, 딸의 회심에는 아들의 죽음이 있습니다. 딸은 1981년 김한길 전 의원과 결혼해 첫아들을 낳고 아기와 처음 눈 맞춤 한 순간을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기쁨이었던 아들 유진이 허망하게 죽습니다. 버클리대 음대생이던 아들이, 가출한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 보살폈던 착한 아들이, 쓰러져 혼수가 되고 19일 만에 눈을 감은 것입니다. 비극의 출발은 결혼이었습니다. 딸은 첫사랑 남자인 김한길에서 아버지와 닮은 지적 분위기를 느꼈고,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딸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결혼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스물둘의 어린 딸이 흑인 동네에 살며 밤에는 주유소, 낮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고단한 인생을 살아야 했지요. 서울 집에는 모든 사실을 숨긴 채 아이 낳고 공부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격 차란 이유로 5년 만에 헤어지고, 미국인과 재혼 했지만 둘 사이에서 특수 자폐아가 태어납니다. 딸은 그 아이를 데리고 초등학교만 다섯 번 옮기고, 중학교는 1년 만에 쫓겨났습니다. 이대 영문과를 3년 만에 마친 후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딸은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다시 변호사로 변신을 계속했지만, 그녀의 내면적인 삶은 비운으로 얼룩졌습니다. 두 번의 이혼과 큰아들과의 사별, 자폐아를 둔 엄마, 암세포와 싸우는 암환자, 망막 박리로 시력까지 잃는 등 이어령의 딸로는 어울리지 않게 파란만장했습니다. 아들을 잃고 1년을 매일같이 울며 신을 원망했습니다.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쓰여 있는데, 그 아이보다 부모를 사랑한 아이가 있으면 대보 시라”라며 대들었습니다. 평안이 없던 그녀에게 기적이 찾아옵니다. 하와이 크리스천스쿨로 옮긴 지 1년 만에 아들의 자폐 증상이 안개처럼 걷힌 겁니다. 큰 아들의 죽음, 둘째의 자폐를 겪으며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이 청소년 사역입니다. 그로부터 ‘유진 엄마’는 ‘땅끝의 아이들’ 엄마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녀가 돌 본 서른 명의 아이들은 그녀를 ‘마마 미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2009년 목사가 되고 서원했습니다. “유진이가 엄마 아빠 이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흘렸던 눈물을 씻어 주시고, 잘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 대신 부모 사랑을 못 받고 하나님 모르는 아이들에게 저를 보내주시면,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목사가 된 그녀는 미국, 아프리카, 중국 등지를 돌며 술과 마약에 빠진 청소년 구제 활동을 펼치다 암이 재발한 걸 알았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는 암세포가 위에서 난소로 뼈까지 퍼졌습니다. 암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무얼까? 그녀가 2011년 두 번째 위암을 판정받고 스치는 첫 생각이었습니다. 차분하게 물었습니다. 저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요? 갑상선암 치료 때와 같이. 결혼생활에서 받은 상처가 암세포가 된 건 아닐까. 모든 걸 용서한다고 했지만, 정작 결혼으로 인한 아픔은 뼛속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죠. 비로소 그녀의 상처에 딱지가 앉습니다. 그로부터 그녀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3~4시간씩 이어진 집회 일정을 다 소화했습니다. 암 환자가 다른 암환자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하던 이민아 목사는, 2012년 봄 하늘의 부름을 받습니다. 딸은 생전에 쓴 책 ‘땅끝의 아이들’에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었죠. “자기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예쁜 잠옷을 입고 아버지 서재 문을 두드렸다. 아빠가 ‘굿 나잇’ 해주길 기대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손만 흔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딸이 떠난 후 수필집 ‘딸에게 보내는 굿 나잇 키스’를 통해 아비의 미안함과 사랑을 전했습니다. 하나뿐인 딸에게 마음에도 없는 냉정한 아비로 느끼게 한 것을 때늦은 후회로 편지에 담았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전, 딸 10주기에 맞춰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출간을 준비했습니다. 세상을 뜨기 며칠 전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시집 서문을 불러줬습니다.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라고. 풍파 많은 삶으로 세상을 울리고 간 딸을 이어령은 어떻게 보았을까. 딸을 보내고 그리움에 살던 아버지는…. 딸을 보낸 지 꼭 10년 만에 아비도 딸을 따라 영원한 영성의 길을 떠났습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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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4
  • 죽음도 관찰한 이어령
    시대의 큰 어른이 죽으면 ‘별이 졌다’라고 하거나, ‘별이 되었다’라고 하잖아요. 같은 뜻이겠지만 굳이 ‘하늘에 별이 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때.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던 이어령 교수(89세)가 2월 26일 세상에 부음을 알렸습니다. 그토록 곡진한 사랑을 쏟았던 딸(이민아 목사)이 하늘에 별이 된 지 10년 만에 아버지도 별이 돼 하늘로 이사했습니다. 2012년 젊은 딸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의연하게 별이 되자, 췌장암을 앓던 아버지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꼿꼿하게 일상의 삶을 지탱하면서 마지막 벽을 응시하다가 별이 된 것이, 부녀가 닮았습니다. 선생은 통증을 잊기 위해 일을 하고 피를 토하듯 열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통증을 줄이려는 방법임을 사람들은 몰랐죠. 죽음은 보는 사람을 선하게 만듭니다. 스토리 텔러 김지수가 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도 인간 선함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어령의 죽음은 그를 경험한 사람에 따라 천재 지성인의 죽음이고, 학자의 죽음이고, 전직 장관의 죽음이고, 혹자는 88 올림픽 개·폐막식을 지휘한 지성 엔터테이너의 죽음이라고도 말할 것입니다. 생전에 그를 따르던 수식어들. 문학평론가, 대학 교수, 언론인, 소설가, 수필가 등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천재의 깊이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요소지만, ‘다작 작가의 죽음’에는 모두가 동의하겠지요. 많은 이가 이어령 선생을 천재 작가라기보다 천재 지식인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얼까? 대부분의 작가들은 부박한 전두엽을 다잡고 고뇌하고 고통과 부실함에 싸우다 산물로 적당한 ‘문장’을 건집니다. 내가 천착하는 이어령의 문장은 ‘굴렁쇠’, ‘눈물 한 방울’, ‘관찰’이라는 세 개의 문장입니다. 굴렁쇠와 눈물 한 방울은 선생의 비장한 관찰이 없었으면 생겨나지 못했을 문장입니다. 들판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 아이가 바람 속에서 바라본 것, 내 일생에 헌신한 쭈그러진 발톱을 깎다 뚝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은 그만이 관찰할 수 있는 삶과 죽음의 통찰의 산물입니다. 때마침 읽은 책이 로보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입니다. “수학이 애먹인다고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심각하다네.” 아인슈타인이 수학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동료를 배려하는 천재 과학자의 지나친 겸손이었을까? 아인슈타인의 동료들은 그가 실제로 수학에 약했으며, 자신의 작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다른 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흔히 천재란 복잡한 이론과 논리로 철저하게 사고하는 사람으로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는 공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관찰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저자는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창조성을 빛낸 천재들의 사례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이를 ‘상상력’과 ‘관찰’로 요악합니다. 모든 지식은 먼저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관찰의 대가였던 피카소가 하루는 기차를 탔습니다. 옆 좌석의 신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사에게 실재의 본보기가 있다면 내게 보여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지갑에서 아내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내 아내죠. 놀랍도록 같아요.” 피카소가 사진을 위아래로 한참을 살핀 뒤 말합니다. “당신 부인은 아주 작군요. 게다가 납작하고요.” 피카소는 예술이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그는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어령의 관찰을 생각했습니다5. 그는 삶 너머 죽음도 관찰하고 싶어 했어요. 마지막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까지. 그의 말이 화려한 언변 수사가 아님은 그의 죽음에서 확인합니다. 그의 아들이 전하는 선생의 임종 장면은 온몸에 전율을 일게 합니다. 죽음을 응시하고 보고 싶다던 말대로 죽음 앞에 꼿꼿했던 눈빛…. 선생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눈을 뜬 채로 맞았습니다. 하늘에 또 하나 별이 떴습니다. 이제 살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남긴 많은 문장의 숲을 거니는 것뿐입니다. 그 숲을 거닐다 아주 가끔 생각이 날 때면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겠지요.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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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0
  • 아버님 전 상서
    유품에서 나온 아버지 편지를 읽고 북받쳐 운 지 30년입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어도 한 땀 한 땀 써 내린 볼펜 글씨엔 아직도 아버지의 인자가 촉촉하고 내 배내옷 들고 체취를 맞던 그 모습이 선연해 찌리릭 아들 가슴에 전류가 흐릅니다. 어느새 아들이 아버지가 떠나시던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연초에, 떠나신 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생시처럼 꿈에서 뵌 후, 저도 아버지처럼 제 아들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글을 써두었습니다. 아들이 아비 유품에서 편지를 쥘 때면 저 역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 곁으로 가 있겠지요.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울 것 없다. 대단한 일 아니다. 때가 되어 갈 뿐이다. 낙엽이 지면 그 위로 흰 눈이 덮이고 계절이 바뀌면 그 자리에 새 생명이 싹을 올리거늘, 무엇이 슬퍼할 일이더냐. 생명의 질서일 뿐”이라고 일렀어요. 삶이란, 한 조각의 구름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니 애석해하지 말라고 요. 죽음 역시 인생의 한 부분임을 깨달으면 삶을 더 여유롭게 성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나는 옛날 사람’이라고 자신을 낮추셨지요. 지금은 제가 셈법이 빠른 요즘 아이들 총기 앞에 몸을 낮춥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는, 이 참에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 다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어보았습니다. 사람이 부대끼고 접촉하며 살아야 하는데, 인터넷, SNS 같이 접속에만 능한 아이들이다 보니 딱히 탓할 일도 아닙니다. 저보고 ‘넌 책 줄이나 읽었으니 잘 헤아리며 살 거다.’ 하셨는데, 그 말씀은 틀리셨습니다. 세상사 막막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IMF 때 구조조정을 당하고, 한동안 집에 말도 못 하고 남산으로 출근할 때, 친구 보증을 섰다가 날벼락을 맞을 때, 전 허깨비에 마른 수수깡임을 알았습니다. 그 앞에 세상의 지식과 앎이 얼마나 허접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인생을 살며 ‘구할 것은 화해이고 용서’라는 것도 깨쳤습니다. 겨울이면 난방비를 줄이려고 주유소에서 20리터 플라스틱 통에 기름을 받아 옮겼습니다. 제가 자동차로 실어 오면 어린 아들과 함께 4층까지 들어 올렸습니다. 그때는 아이의 도움이 뿌듯했었는데 세월이 흐른 뒤, 그것이 아이에게 힘에 부친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겠다. 경박한 아비였구나.’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게 저려옵니다. 실수는 또 있습니다. 아이를 체벌로 다스려서는 안 되는 걸 알고도 아픔을 주었습니다. 부모라면 다 겪는 일, 돌아보면 한 때 과정임을. 이를 부박한 아비가 몰랐습니다. “아비처럼 속 끓이고 애태우며 살지 말라고, 눈물 삼키며 살 일 없다”고 하신 당부도 따르지 못했습니다. 수술실로 아이를 들여보낼 때는 천하를 잃는 것 같았습니다. 면허 없는 아이가 차를 끌고 나가 사람을 상하게 하고,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 버틸 땐,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안아 키우지 못한 것도 후회스럽습니다. 좋을 때는 좋아서, 나쁠 때는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었어야 했는데···. 그래서 손 자녀는 하루에 열 번도 안아주고, 사랑한다며 살을 비빕니다. 고마운 것은 할아버지의 자립심을 닮은 아이들입니다. 스스로 짝을 찾고 사람 구실 하며 앞가림하는 아이들이 제겐 훈장입니다. 언젠가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말할 저의 자랑거리가 되겠죠. “부질없는 것이 욕심이고 재물”이라고 하신 말씀은 평생 금과옥조로 삼았습니다. 살고 보면 허상인걸 죽어 무엇을 들고 갈게 있겠습니까? 남는 건 쌓은 덕이고, 뿌려놓은 사랑뿐인 것을. 아버지는 제게 “아침마다 ‘참을 忍’자 열 번씩 쓰고 나가라”하셨지요. 그것을 실천하면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운명은 할퀴고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는 이치도 알았습니다. “비바람, 천둥 번개에 몇 번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대추 알이 붉어 진다”고 하신 말씀. 아이들은 깨지고 부러지고 상처가 나고, 덧나기를 거듭하면서 크고 야물어진다고 하신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인생을 비굴하게 살지 말라”고도하셨지요. 그것이 왜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비루한 행동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남보란 듯이 살려고 버둥대지 말라. 게걸스럽게 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뿔나게 잘 난 사람 없으니, 나답게 살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며, 내 삶이 남에게 그늘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큰 나무가 잘나 보인다고 우쭐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제 몸통이 만든 그늘로 인해 자라지 못하고 눌려 있는 어린 나무가 없는지 늘 살펴 살라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운명은 수레바퀴처럼 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은 바퀴 위에 있지만 내일은 바퀴 아래에 있는 것이 삶이니 아들아,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백화난만한 봄길도 걸어보고, 녹음방초 우거진 뜨거운 여름도 살았고, 노을로 불타는 가을 산천을 즐겨도 보았고, 세한(歲寒) 언덕에 청청한 솔의 인고도 겪었으니 후회하고 아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자랑은 아니어도 눈살 찌푸릴 삶은 살지 않았으니, 아들에게 아비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마무리했습니다. 일생을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가는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삶임을 아이들은 알 테니까요. 이제 저도 돌아갈 본향 집을 늘 머릿속에 담고 살아갑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정신이 청연할 때 아이들에게 남길 마지막 말도 준비했습니다. 너희들과의 만남이 축복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어 고맙다···. 함께 한 세상이 즐거웠다···. 끝으로 생전에 멋쩍어서 못 했던 말씀을 늦게나마 올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날로 더 귀하신 이름 아버지... 아버님 전 상서.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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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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