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1(금)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아는 것과 죽음을 경험하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과는 달리 죽음을 먼 날의 일로 잊고 살지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전혀 다른 고백이 뒤따릅니다. 지난 번 지인들 모임에서 나온 얘기예요.

 

사는 게 시들하다” “흥미가 없다같은 비슷한 말이 오갈 때, 뇌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친구가 호통을 칩니다. “이보게. 난 하루하루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사네. 내가 사는 11초가 기적인 걸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말게.” 맞아, 앎이란 경험 앞에 허접스러운 것이지요.

 

단 하루, 한 달, 1년만 더 살았으면... 가슴에 절절함을 지닌 사람들 얘기는 아가미가 펄떡이는 생선의 가시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내 주변에 아내를 앞세워 보낸 친구가 벌써 서넛입니다. 어제 만난 친구도 3년 전 아내를 앞세웠지요. 그래도 잊을 건 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지만, 혼자 넘는 마음의 산은 태산보다 높아 보입니다.

 

여름에 큰 딸이 마카오로 떠난답니다. 세계적 브랜드호텔의 이사로 스카웃 제의가 올 때만 해도, ‘내 걱정 말고 네 인생을 살라고 등을 밀었는데, 막상 날이 잡히니까 마음에 한줌 바람이 일더랍니다. 60대의 아내를 병마로 보낼 때 그걸 인생이라 살았느냐고, 아쉬운 대로 일흔만 채웠어도 이렇게 미안하지는 않을 거라는 친구였어요.

 

그래도 자넨 행복한 줄 알게. 같이 사는 둘째 딸이 있잖아. 혼자 사는 사람들 생각해봐. 그리고 큰딸 속 깊은 것 좀 봐라. 언제든 아버지가 마카오 오시면 룸을 내주기로 계약에 명시까지 했다며? 효녀다. 하늘의 아내가 뿌듯해 하겠다.” 그제서 친구 얼굴에 밝은 미소가 지핍니다. 그건 그렇다면서...

 

나이 들면 결국 남는 건 가족뿐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분도 자녀가 해외에 사는 게 자랑이 아니라며 헛헛해 합니다. 대기업의 미국 주재원으로 10년 이상 지낸 아들이 귀국 발령을 받고는, 자녀 교육문제로 고민하다가 결심을 했답니다. 사표를 내려고 잠시 귀국했을 때만 해도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이해했는데, 최근 동()에서 서류를 떼다 아들 난에 해외이주로 표기된 걸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일렁이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내와 사별한지 5년이 됐습니다. 역시 60대에 남편 곁을 떠났지요. 5년간의 병수발 끝이라 좀은 홀가분할 법도 한데 “1년만 더 살았으면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비원으로 남습니다. “떠난지 3년까진 정말 힘들더라. 5년 되니까 좀 낫긴 한데.” 그래도 웃는 얼굴에 그리움이 일렁입니다. 아들과 아파트 앞뒤 동에 사는 친구는 용문 5일장에 갔던 얘기를 해서 함께 웃음을 터뜨렸지요.

 

옛날 고향 장터를 생각하면서 재미삼아 이것저것 흥정도 하고 물건도 사봅니다. 그러다 시장기를 느끼고 장터에 생긴 식당에 들어가 앉습니다. 국밥에다 기분으로 평소 입에도 안 대던 막걸리도 한 병을 주문했답니다. 결국 술은 한잔도 못 마시고 옆 테이블에 넘겼다가 합석까지 하게 됐다는 군요.

 

연배가 비슷한 구로에서 왔다는 옆자리의 분과는 통성명을 했습니다. 평소 남에게 각박한 소리를 못하는 친구를 알아봤는지 물 만난 고기처럼 연신 말보를 풀어 놓습니다, 아들이 한 주에 3만원을 주면, 이렇게 시장 찾아다니며 술도 한 잔하고 말벗도 만드는 게 낙이라면서 주절주절...

 

매정하게 끊지 못한 친구는 한 시간 얘기를 듣고도 전철까지 같이 탔답니다. 내릴 때까지 며느리 흉보고, 아들 자랑하고, 한 얘기 또 하는 그를 상대하느라 말은 않지만, 고역이었을 겁입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그러겠나. 자넨 행복한 걸세. 그런 아들 며느리가 어딨나? 홀아버지 돌보려고 앞 동으로 이사까지 오는, 그런 자식 요즘 없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친구는 며느리를 칭찬합니다.

 

그날 친구는 좋은 일을 했습니다. 끝까지 싫은 표정 안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마음 수양을 넘어 덕을 쌓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태산보다 높은 마음의 산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높아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대화를 통해 한 가지는 확인했지요. ‘그래도 우린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오늘이 있어 그렇고, 같이 할 친구가 있어 그렇고, 오늘 우린 기적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요.

 

기적은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이다.?이 말을 아는 사람은 행복을 아는 사람일 테니까. (/ 이관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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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기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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